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120회 두예를 추천하니 노장이 새로운 계책을 바치고 손호가 항복하여 삼국이 하나로 합쳐진다

    한편, 오나라 군주 손휴는 사마염이 위나라를 찬탈한 것을 듣고, 곧이어 오나라를 정벌할 것이라 생각한다. 손휴가 걱정하다가 병이 생 겨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한다. 이에 승상 복양흥을 궁중으로 불러들이고, 태자 손만을 불러내어 절하게 한다. 오나라 군주가 복양흥 의 팔을 잡고, 손으로 손만을 가리키더니 숨을 거둔다. 복양흥이 나가서 신하들과 상의하여, 태자 손만을 임금으로 세우려는데 좌전군 만욱이 말한다.

    “손만은 어려서 정사를 맡을 수 없으니, 오정후 손호를 데려다 옹립하는 것이 낫겠소.”

    좌장군 장포도 말한다.

    “손호는 재식才識(재능과 식견)과 명단明斷(명철한 판단력)을 갖추어 제왕이 될 만하오.”

    승상 복양흥이 결단하지 못하고 들어가서, 주 태후에게 아뢰니 태후가 말한다.

    “나는 과부 된 사람일 뿐인데 어찌 종묘사직의 일을 알겠소? 경들이 잘 판단해서 옹립하시오.”

    이에 복양흥 등이 손호를 임금으로 맞이한다. 손호의 자는 '원종'이고 대제 손권의 태자 손화의 아들이다. 그해 7월에 황제에 즉위하 여 “원흥 원년”으로 개원한다. 손만을 예장왕으로 봉하고 부친 손화를 “문황제”로 추증하고 모친 하 씨를 태후로 높인다. 정봉에게 좌우 대사마의 벼슬을 더한다. 다음해 감로원년으로 개원한다. 손호의 흉포함이 나날이 심해지는데 주색에 몹시 빠지고 중상시(환관) 잠혼을 총애한다. 복양흥과 장포가 이것을 간언하자, 손호가 노해 두 사람을 참하고 삼족을 멸한다. 이로부터 조정의 신하들이 입을 다물고 감히 다시는 간언하지 못한다. 다시 “보정 원년”으로 개원하고 육개와 만욱을 좌우의 승상으로 임명한다. 이때 손호가 무창에 머 물며 양주 백성들로 하여금 강물을 거슬러 각종 물품을 공급하게 명해 몹시 괴롭힌다. 또한 사치가 끝이 없어 관리와 백성들이 궁핍해진다. 육개가 상소해 간언한다.

    이제, 아무 재해가 없는데도 백성의 목숨이 다하고, 아무 하는 일이 없는데도 나라의 재물이 텅 비니, 신이 마음속으로 통탄스럽게 생각 합니다. 지난날 한나라 황실이 이미 쇠퇴하고, 세 국가가 정립하였으나, 이제 조 씨와 유 씨는 도의에서 벗어나더니, 모두 진나라의 차지 가 됐습니다. 이것이 눈앞의 명백한 증좌이니, 신은 다만 폐하를 위해 국가를 걱정할 따름입니다. 무창의 토성은 위험하고 궁핍하므로, 결코 왕이 머물 도읍이 아닙니다. 게다가 아이들이 노래하기를, ‘차라리 건업의 물을 마시지, 무창의 물고기를 먹지는 못하겠네. 건업으 로 돌아가 죽을지언정, 무창에서 머물지는 못하겠네.’라고 합니다. 이것으로 백성의 마음과 하늘의 뜻이 명백히 드러나고도 남습니다. 이 제 국가에는 1년치의 비축도 없고, 백성들은 살곳을 잃고 떠도는 처참한 지경입니다. 관리들은 백성을 수탈하며, 아무도 백성을 가엾게 여기지 않습니다. 대제(손권)의 생전에는, 후궁이 1백을 채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경제 이후에, 수천이 됐습니다. 이 때문에 재물의 낭 비가 심합니다. 또한 좌우의 사람들이 모두 부적당한 사람들로서, 군당群黨(붕당)을 만들어 서로 감싸며, 충신을 해하고 현자를 모함하 니, 이것들은 모두 국가의 정사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것들입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각종 노역을 살펴서, 수탈을 멈추게 하 고, 궁녀를 추려내고, 백관百官을 깨끗하게 뽑는다면, 하늘이 기뻐하고 백성이 귀부해 국가가 안녕할 것입니다.

    이렇게 상소하지만, 손호가 불쾌하게 여기고, 다시 토목 사업을 크게 일으켜, 소명궁을 건축하고, 문무 관리들을 시켜 산에 들어가 나무 를 벌채하게 한다. 또한 술사術士(도사/마술사) 상광을 불러, 댓가지로 점을 치게 해 천하의 일을 묻는다. 상광이 대답한다.

    “폐하의 점괘를 보니 길조입니다. 경자년에 청개青蓋(푸른 비단에 학이나 용을 그린 햇빛을 가리는 일산의 일종)를 쓰고, 낙양으로 들어 갈 것입니다.”

    손호가 크게 기뻐하며, 중서승 화핵에게 이른다.

    “선제께서 경의 말씀을 받아들여, 장수들을 여러 방면으로 파견하여, 장강 일대에 수백 곳의 영채를 세우고, 노장 정봉으로 하여금 총독 하게 하셨소. 짐이 한나라를 겸병兼并(빼앗음/점령)하여, 촉나라 임금의 복수를 하고 싶은데, 어느 곳을 먼저 쳐야겠소?”

    화핵이 간언한다.

    “이제 성도를 지키지 못하여, 촉나라 사직이 기울고 무너졌으니, 사마염은 틀림없이 오나라를 병탄할 마음을 품었을 것입니다. 폐하께서 는 마땅히 덕을 닦아 오나라 백성을 어루만지는 것을 상책으로 삼으셔야 합니다. 만약 억지로 병갑兵甲(군대/무기)을 동원한다면, 그것 은 마치 베옷을 입고 불을 끄는 것과 같아서, 결국 스스로 타죽고 말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살펴주소서.”

    손호가 크게 노해 말한다.

    “짐이 이 기회에 구업舊業(선조의 사업)을 회복하려는데, 네놈이 이런 불리한 말을 내뱉다니! 만약 네가 오랜 신하만 아니라면, 당장 목을 베어 호령號令(여기서는 죄인을 처형해 군중에게 보인다는 뜻)할 것이다!”

    무사들에게 소리쳐, 궁문 밖으로 끌어낸다. 화핵이 조정을 나와 탄식한다.

    “애석하구나! 금수강산이 머지 않아 남에게 넘어가고 말겠구나!”

    이에 은거하며, 나오지 않는다. 손호가 진동장군 육항에게 군을 이끌고 강구江口에 주둔하여, 양양을 도모하도록 한다.

    재빨리 이 소식이 낙양으로 들어간다. 측근 신하가 진나라 군주 사마염에게 알리니, 진나라 군주는 육항이 양양을 침범할 것이라는 소식 에, 뭇 관리와 상의한다. 가충이 반열에서 나와서 아뢴다.

    “신이 듣자, 오나라의 손호는 덕정德政을 베풀지 않고, 함부로 행동하며 무도無道하다고 합니다. 폐하께서 도독 양호에게 조서를 내려, 군을 이끌고 맞서게 하고, 오나라에 변고가 생기기를 기다려, 그 틈에 공격한다면, 동오를 마치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얻을 수 있을 것 입니다.”

    사마염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조서를 내려 사자를 양양으로 보내, 양호에게 선유宣諭(임금의 말을 전함)한다. 양호가 조서를 받들어, 군 마를 점검하여, 적군을 맞을 준비를 한다. 이로부터 양호가 양양을 진수鎮守(주둔해서 수비함)하며, 병사와 백성의 마음을 크게 얻는다. 투항한 오나라 사람들 가운데 돌아가려는 이들이 있으면, 그들의 청을 모두 들어준다. 수라戍邏(변방을 지키는 성루 / 혹은 그 병사)의 병력을 폐지하여, 8백 이랑이 넘는 밭을 일구는데 쓴다. 처음 왔을 때는 1백일의 군량도 없었지만, 다음 해가 되자, 10년을 먹을 군량이 쌓인다. 양호는 군중에 있을 때, 일찍이 가벼운 갖옷을 입고, 느슨하게 허리 띠를 매고, 갑옷을 걸치지 않았는데, 군막 앞에서 시위侍衛( 모시고 지킴)하는 이들이 불과 10여 인이었다.

    하루는 부장이 군막으로 들어와, 양호에게 아뢴다.

    “초마(정찰병)가 와서 보고하기를, 오나라 병사가 모두 해이하니, 그 무방비를 틈타서 습격하면, 틀림없이 대승을 거둘 것이라고 합니다. ”

    양호가 웃으며 말한다.

    “그대들이 육항을 업신여기는 것이오? 그는 지혜롭고 계책이 많소. 예전에 오나라 군주가 그에게 서릉을 공격하게 했는데, 그가 보천步 闡과 그의 장사 수십 인을 참했지만, 내가 미처 구원할 수 없었소. 그가 그쪽의 장수가 되었다면, 우리는 오로지 지켜야 할 따름이오. 그 내부에 변고가 생기기를 기다려, 비로소 도모해 취할 수 있소. 시세時勢를 살피지 않고 함부로 진격하면, 이것은 패배를 부르는 길이 오.”

    뭇 장수가 그 의견을 따라, 오로지 영역을 지킬 따름이다.

    하루는, 양호가 여러 장수를 이끌고 사냥을 나갔다가, 역시 사냥 하러 나온 육항과 마주친다. 양호가 영을 내린다.

    “아군은 경계를 넘지마라.”

    뭇 장수가 그 명령을 받들어, 진나라의 땅에 머물며 사냥할 뿐, 오나라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다. 육항이 바라보고, 탄식한다.

    “양호의 병사들이 기율이 있으니, 침범해서는 안 되겠구나.”

    해가 저물자, 각각 물러간다.

    양호가 군중으로 돌아와, 이날 잡은 금수들을 살피더니, 오나라 사람들이 먼저 쏴서 부상을 입힌 것들은 모두 오나라에 돌려보낸다. 오 나라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며, 육항에게 알리러 온다. 육항이 내인來人(사자/심부름꾼)을 불러서 묻는다.

    “너희 주수主帥(최고지휘관)는 술을 마실 줄 모르는가?”

    “좋은 술이 있어야만 마십니다.”

    육항이 웃으며 말한다.

    “내게 두주斗酒(말술)가 있는데, 저장한 지 오래다. 이제 네게 줄테니, 가져가서, 양 도독에게 바치거라. 이 술은 내가 직접 담가 마시는 것인데, 특별히 한 작勺(용량의 단위 / 약 0.01 리터)을 바쳐서, 어제 사냥에서 고마웠던 마음을 표하겠다.”

    내인이 응낙하여, 술을 가지고 떠난다. 좌우의 사람들이 육항에게 묻는다.

    “장군께서 술을 그에게 주시다니, 무슨 주의主意(여기선 ‘목적’의 뜻)가 있는 것입니까?”

    “그가 나에게 덕을 베풀었는데, 내 어찌 보답하지 않을 수 있겠소?”

    뭇 사람이 모두 악연愕然(몹시 놀람)한다.

    한편, 사자가 양호에게 돌아가, 육항이 물어보고 술을 선물한 것을 자세히 고한다. 양호가 웃으며 말한다.

    “그도 내가 술을 마시는 줄 안다는 말이냐?”

    이에 술 항아리를 열라고 하여, 마시려 한다. 부장 진원이 말한다.

    “그 속에 간계가 숨어 있을까 두려우니, 도독께서 나중에 천천히 마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양호가 다시 웃으며 말한다.

    “육항은 결코 남에게 독을 먹일 사람이 아니니, 의심할 것 없소.”

    마침내 술 항아리를 기울여 마신다. 이로부터 사람들을 시켜 통문通問(서로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함)하며, 서로 왕래한다.

    하루는, 육항이 사람을 보내 양호에게 안부를 전한다. 양호가 묻는다.

    “육 장군은 안녕하신가?”

    “주수主帥(최고지휘관)께서 며칠째 병석에 누워 아직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십니다.”

    “그의 병을 살펴보니, 나와 같은 병이다. 내가 이미 여기에 숙약熟藥(가공과 처리과정을 거친 약재)을 합성해 두었는데, 이것을 가져가 복용하시게 하라.”

    심부름꾼이 약재를 지니고 육항에게 돌아가니, 뭇 장수가 말한다.

    “양호는 바로 우리의 적이니, 이 약은 결코 양약良藥이 아닐 것입니다.”

    육항이 말한다.

    “어찌 양숙자羊叔子(양호)가 남을 독살하겠소? 그대들은 절대 의심치 마시오.”

    마침내 약을 먹고, 다음날 병이 나으니, 뭇 장수가 모두 삼가 하례를 올린다. 육항이 말한다.

    “그가 오로지 덕으로써 대하는데, 나는 오로지 폭력을 대한다면, 이것은 그가 싸우지도 않고 나를 굴복시키는 셈이오. 이제 마땅히 각자 강계疆界(영토의 경계)를 보전해야지, 작은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될 것이오.”

    뭇 장수가 명령을 받든다. 그런데 누군가 알리기를, 오나라 군주가 사자를 보냈다고 하니, 육항이 맞아들여, 그에게 물으니, 사자가 답한다.

    “천자께서 장군에게 전유하시기를, 서둘러 진격하여, 절대 진나라 사람들이 먼저 침입하게 하지 말라고 하셨소.”

    육항이 말한다.

    “그대는 먼저 돌아가시오. 내가 뒤따라 소장疏章(상소하는 글)을 가지고 천자께 상주上奏하겠소.”

    사자가 인사하고 떠나자, 육항이 표장(신하가 임금에게 바치는 글)을 써서 사람에게 줘서 건업으로 보낸다. 근신(곁에서 모시는 신하)이 이것을 바치니, 손호가 뜯어서 상소문을 읽는다. 상소문에서, ‘진나라는 아직 정벌할 상황이 아니므로, 우선 오나라 군주는 덕을 닦고 형 벌을 신중히 처리하여, 내부를 안정 시킬 것을 생각해야지, 군대를 어지럽혀서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손호가 읽고 나서, 크게 노해 말한다.

    “짐이 듣자니, 육항이 변경에서 적인들과 상통相通한다던데, 오늘 보니 과연 그렇구나!”

    이에 사자를 보내, 그의 병권을 빼앗고, 사마司馬의 직위로 강등하더니, 좌장군 손기孫冀로 하여금 그 군대를 대신 거느리게 한다. 신하 들이 모두 감히 간언하지 못한다.

    오나라 군주 손호가 연호를 건형建衡으로 바꾸고, 다시 봉황원년鳳凰元年으로 바꾸기까지, 제멋대로 망령되게 행동하니, 변경을 지키는 병사들이, 상하 가리지 않고 누구라도 한탄하고 원망하지 않는 이가 없다. 승상 만욱, 장군 유평, 대사농 누현, 세 사람이 손호의 무도함을 보고, 바른 말을 올려 애써 간언하지만, 모두 죽임을 당한다. 전후 십여 년 사이에, 충신을 사십 명 넘게 죽인다. 손호가 출입할 때 거 느리는 철기鐵騎(철갑을 두른 중무장 기병 / 정예 기병)가 5만에 달한다. 신하들이 공포에 떨며, 감히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한편, 양호는 육항이 병권을 잃고 손호가 덕을 잃을 것을 듣더니, 오나라를 칠 기회라고 여겨, 표문을 작성하고 사람을 낙양으로 보내, 오 나라를 칠 것을 청한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무릇, 기회는 비록 하늘이 주는 것이지만, 공업功業(공훈과 사업)은 반드시 사람이 이뤄야 합니다. 이제 강회江淮(오나라 방어의 중심인 장강과 회하 두 강물)가 험한들 검각劍閣(촉나라의 방어 요충지)만 못하고, 손호의 폭정은 유선劉禪을 넘어서서, 오나라 사람들의 괴로 움이 파촉보다 심합니다. 게다가 대진大晉의 병력은 지난날보다 강성한데, 차제此際(이 기회)에 사해(천하)를 하나로 평정하지 않고 병 권을 잡은 채 수비만 한다면, 이것으로 천하는 계속 변경의 수비에 시달리며, 성쇠를 겪게 되니, 결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사마소가 양호의 표문을 읽고, 크게 기뻐하며, 곧 군대를 일으키라 영을 내리지만, 가충, 순욱荀勗, 풍순 세 사람이 불가함을 역설하니, 사마염이 이 때문에 실행하지 못한다. 위에서 양호의 청을 윤허하지 않자, 그가 탄식한다.

    “천하에서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열 가지 가운데 여덟, 아홉뿐이다. 이제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니, 어찌 크게 애석하지 않으랴!”

    함녕 4년에 이르러, 양호가 입조入朝한다. 양호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요양하겠다고 아뢰니, 사마염이 묻는다.

    “경에게 나라를 편안히 만들 계책이 있다면 과인에게 가르쳐주지 않겠소?”

    “손호가 이미 몹시 포학하니, 이제 싸우지 않고서도 이길 수 있습니다. 만약 손호가 불행하게도 일찍 죽어서, 다시 어진 군주를 세운다면 , 오나라는 폐하께서 손에 넣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사마염이 크게 깨닫고 말한다.

    “경이 이제 군대를 거느리고 정벌하러 가는 것은 어떻겠소?”

    “신이 연로하고, 병이 많아 이러한 임무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 따로 지혜와 용맹을 겸비한 인물을 뽑으셔야 합니다.”

    마침내 사마염에게 작별하고 돌아간다.

    이해 11월, 양호의 병세가 위중하니, 사마염이 어가를 타고 친히 그의 집을 찾아가 문안한다. 사마염이 와탑臥榻(침상/침대) 앞으로 다 가오자 양호가 눈물을 떨구며 말한다.

    “신이 만번 죽어도 폐하의 은혜를 갚을 수 없습니다!”

    사마염도 눈물 흘리며 말한다.

    “짐은 경을 기용해 오나라를 정벌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소. 오늘날 누가 경의 뜻을 계승하겠소?”

    양호가 눈물을 머금고 말한다.

    “신이 죽을지언정, 감히 제 충정을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장군 두예가 적임입니다. 오나라를 정벌하려면, 반드시 그를 써야 합니다 .”

    “훌륭하고 어진 사람을 천거하니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오. 그런데, 경은 어찌 남을 조정에 천거하면서 그 추천하는 글을 스스로 불살라, 그 사람이 모르게 하였소?”

    “공조公朝에 관리를 임명할 때, 사문私門(가문 / 권력이 있는 집안)에 사은謝恩하는 것은, 제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을 마치고 사망한다. 사마염이 크게 곡하며 궁궐로 돌아가, 칙서를 내려 양호를 태부太傅 거평후鉅平侯에 추증한다. 남주의 백 성들이 양호의 죽음을 듣고, 시장을 닫고 곡한다. 강남에서 변경을 지키던 장수와 병사들도 모두 곡하고 눈물 흘린다. 양양 사람들이 양 호가 살아 있을 때 늘 현산峴山에서 노닐던 것을 기려서, 묘당을 짓고 비석을 세워, 사시사철 제사를 지낸다. 왕래하는 사람들이 그 비석 의 글을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어, ‘타루비墮淚碑(눈물 흘리는 비석)’라고 일컫는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린다.

    아침에 올라와서 진나라 신하를 생각하니
    옛 비석은 영락零落한데 현산에 봄이 왔구나
    소나무 사이로 아침이슬 방울방울 떨어지니
    그해에 눈물 흘리던 사람들과 같구나

    진나라 임금이 양호의 말을 듣고, 두예를 진남대장군, 형주 도독都督(지방의 군정장관)으로 삼는다. 두예는 그 사람됨이 노성련달老成練 達(노련하고, 숙달됨)하고, 학문을 좋아해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데, 특히 좌구명의 춘추전(춘추좌씨전)을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하여, 앉 거나 누워서도 늘 들고 있고, 출입할 때마다 사람을 시켜 좌전左傳(춘추좌씨전)을 그가 타는 말 앞에 가지고 다니게 하니, 당시 사람들이 ‘좌전벽左傳癖’이라고 불렀다. 진나라 군주의 명을 받들게 되자, 양양에 머물며 백성을 다스리고 군대를 길러, 오나라 정벌을 준비한다.

    이때, 오나라는 정봉과 육항이 모두 죽고 없다. 오나라 군주 손호는 신하들과 술을 마실 때마다, 모두를 잔뜩 술에 취하게 만들고, 황문랑 黃門郎(내시) 열 명을 ‘규탄관糾彈官(잘못을 규탄하는 관리라는 뜻)’으로 배치하여, 주연이 끝난 뒤에, 제각각 과실을 아뢰게 한다. 잘못을 저지른 이는 얼굴 가죽을 벗기거나, 눈알을 파내게 한다. 이 때문에 오나라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한다. 진나라 익주 자사 왕준王濬이 오나라를 정벌할 것을 상소한다.

    ‘손호는 황음흉역荒淫凶逆(몹시 음탕하고 흉악무도함)하니 마땅히 속히 정벌해야 합니다. 만일 어느날 갑자기 손호가 죽어서, 어진 임금을 다시 세운다면, 강적이 될 것입니다. 신이 7년에 걸쳐 배를 건조했는데, 이제 날마다 썩어가고 있습니다. 신의 나이 이제 7십이온데,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어그러지면, 오나라를 도모하기 어려워집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이 기회를 놓치 지 마소서.’

    진나라 군주가 상소를 읽더니, 곧 신하들과 의논한다.

    “왕공王公의 생각이 양 도독(죽은 양호)의 생각과 맞아떨어지오. 짐의 뜻은 정해졌소.’

    시중 왕혼이 아뢴다.

    “신이 듣자오니, 손호가 북쪽을 치려고, 군오軍伍(군대)를 모두 정비하여, 그 성세聲勢(명성과 위세)가 이제 한창 강성하니, 그들과 쟁봉 爭鋒(교전/전투)하기 어렵습니다. 다시 1년을 더 늦춰, 그들이 지치기를 기다려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진나라 임금이 그 말을 따라, 조서를 내려 군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후궁으로 들어가 비서승상秘書丞相 장화와 함께 바둑을 두며 소견消遣(소일)한다. 그런데 변정邊庭(변경의 관청 / 변경)에서 표를 보내왔다고 측근 신하가 아뢴다. 진나라 군주가 열어서 읽어보니, 두예가 올린 표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지난날, 양호가 조신朝臣(조정의 신하)들과 널리 의논하지 않고 폐하께 은밀히 계책을 올렸기에, 조신들에게 다른 의견이 많습니다. 무 릇 모든 일은 이해에 따라 비교해야 하지만, 이번 거사의 이득을 헤아려 보면, 이득은 열에 여덟, 아홉이지만, 그 손해는 혹시라도 공을 세우지 못하는 데에 그칠 따름입니다. 지난 가을부터, 적도를 토벌하려는 움직임이 자못 노출됐습니다. 이제 우리가 중도에 그만두고, 이미 공포에 질린 손호가 무창으로 도읍을 옮기고, 강남의 여러 성을 완전히 수리해 백성을 옮겨서 살게 함으로써 들판에는 아무 노획 할 것도 없게 된다면, 명년(내년)에 다시 계책을 내어도 역시 실패할 것입니다.’

    진나라 군주가 두예의 표문을 다 읽자마자, 장화가 돌연히 일어서더니, 바둑판을 밀어내고, 두 손을 모으며 아뢴다.

    “폐하께서 성무聖武를 갖추시어, 국가는 부유하고, 백성은 강성합니다. 오나라 임금은 음학淫虐(음란하고 포학함)하여, 백성은 괴롭고 국가는 피폐합니다. 이제 오나라를 토벌한다면, 힘들이지 않고 평정할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 절대 주저하지 마소서.”

    “경의 말씀이 이해를 통찰하는데, 짐이 어찌 다시 주저하겠소.”

    즉시 밖으로 나가서 궁전으로 올라가, 진남대장군 두예를 대도독으로 임명하고, 병사 십만을 이끌고 강릉으로 출격하게 하고, 진동대장군 낭야왕瑯琊王 사마주司馬伷는 저중滁中으로 출격하게 한다. 정동대장군 왕혼은 횡강으로, 건위장군 왕융王戎은 무창으로, 평남장군 호분은 하구로 출격하게 한다. 각각 병사 5만을 이끌고, 모두 두예의 지휘를 받도록 한다. 또한 용양장군 왕준王濬, 광무장군 당빈은 수 군을 이끌고 장강의 물길을 따라서 동쪽을 공격하도록 한다. 수륙 양면의 병사가 모두 2십여 만이고, 전선戰船이 수만 척이다. 또한 관군 장군 양제에게 양양으로 가서 주둔하며, 제로諸路(여러 방면)의 인마를 절제節制(지휘하고 관할함)하게 한다.

    재빨리 이 소식이 동오로 전해진다. 오주 손호가 크게 놀라, 승상 장제, 사도 하식, 사공 등수를 불러 적병을 물리칠 대책을 토의한다. 장제가 아뢴다.

    “거기장군 오연을 도독으로 삼아, 강릉으로 진군하여, 두예를 대적하게 하소서. 또한 표기장군 손흠으로 하여금, 하구 등지로 진군해 적의 군마를 막게 하소서. ‘신’도 장수로서 출정하여, 좌장군 심형, 우장군 제갈정을 거느리고, 병사 십만을 이끌고 우저牛渚에 주둔하여, 제로諸路(여러 방면)의 군마를 맞이하고 이끌겠습니다.”

    손호가 이를 따라, 장제더러 군을 이끌고 떠나도록 한다. 손호가 물러나 후궁으로 들어가는데, 그 낯빛이 어두우니, 행신幸臣(임금의 총애를 받는 신하) 중상시 잠혼이 그 까닭을 묻는다. 손호가 말한다.

    “진나라의 대군이 몰려와서, 여러 갈래에서 병사들이 막고 있소. 그러나 왕준이 병사 수만을 이끌고, 전선을 완비하여, 물길을 따라 내려 오는데, 그 기세가 몹시 날카로워, 짐이 이 때문에 걱정하고 있소.”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사온데, 왕준의 전선을 모두 분쇄할 수 있사옵니다.”

    손호가 크게 기뻐하며 그 계책을 물으니, 잠혼이 아뢴다.

    “강남에 쇠가 많으니, 쇠사슬을 수백 개 만들면서, 그 길이를 수백 길(장丈)로 하고, 2, 3십 근의 고리로 연결하여, 강을 따라서 긴요한 거 처에 가로질러 막게 하십시오. 또한 쇠송곳을 수만 개 만들면서, 그 길이를 한 길 남짓으로 하여, 수중에 설치하십시오. 진나라 전선이 바 람을 타고 와도, 쇠송곳을 만나서 부서질 것이니, 어찌 강을 건너겠습니까?”

    손호가 크게 기뻐하며, 장공(장인)들을 뽑아 강변에서 밤을 새워 쇠사슬과 쇠송곳을 만들어 설치를 마치도록 전령한다.

    한편, 진나라 도독 두예는 강릉에서 출병하며, 아장 주지에게 명령을 내리기를, 수수水手(선원, 수병) 8백 인을 거느리고, 작은 배를 타고 몰래 장강을 건너, 낙향을 야습해, 수풀이 있는 곳에 정기(각종 깃발)를 많이 세우고, 낮에는 포를 쏘고 북을 두들기고, 밤에는 곳곳에서 불을 피워올리라고 한다. 주지가 명령을 받들어, 사람들을 데리고 강을 건너, 파산에 매복한다. 다음날 두예가 대군을 거느리고 수륙 양 면으로 진군한다. 전초 부대가 보고한다.

    “오나라 임금이 오연을 육로로, 육경을 수로로 보내고, 손흠을 선봉 삼아, 세 갈래에서 맞서려고 옵니다.”

    두예가 군을 이끌고 전진한다. 손흠의 전선들이 일찍이 와서 양군이 처음으로 교전하는데, 두예가 곧 퇴각한다. 손흠이 병력을 이끌고 상륙하여, 뒤따라 추격한다. 2십 리를 못 가서, 한 차례 포성이 울리며, 사방에서 진군이 크게 몰려오니, 오군이 급 히 돌아간다. 두예가 기세를 타고 덮쳐, 오나라 병사들 가운데 죽은 이를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손흠이 달아나서 성 가까이에 이르자, 주지의 8백 병사가 그 대열 속에 섞여서 들어가서, 성 위에 불을 피워올린다. 손흠이 크게 놀라 말한다.

    “북쪽에서 온 병사들이 날아서 강을 건너기라도 한 것이냐!”

    다급히 퇴각하려는데, 주지가 크게 호통을 치며 달려들어, 손흠을 베어서 말 아래로 떨군다.

    육경이 배 위에 있다가, 저 멀리 장강의 남쪽 강둑에 한 조각 불빛이 치솟고, 파산 위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큰 깃발에, ‘진나라 진남장군 두예’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본다. 육경이 크게 놀라, 강둑으로 올라가 달아나려 하지만, 진나라 장수 장상이 말을 타고 달려들어 베어버린 다. 오나라 장수 오연은 각각의 군대가 모두 패하는 것을 보고, 성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나 복병들에게 사로잡혀, 포박 당한 채 두예를 만난다. 두예가 말한다.

    “살려둬도 아무 쓸모가 없겠구나!”

    무사들에게 소리쳐서 오연을 참하라고 한다. 마침내 강릉을 점령한다.

    이에, 원상沅湘 일대부터 곧바로 황주黃州의 여러 군까지 수령守令들이 모두 소문을 듣고 인장을 바치며 항복한다. 두예가 사람들을 시 켜 부절符節(조정의 관리임을 증빙하는 증표의 일종)을 지니고 백성들을 안무하게 하며, 백성들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한다. 곧 무창을 공격하러 진군하니 무창도 항복한다. 두예가 이끄는 군대가 위세를 크게 떨친다. 곧 여러 장수를 크게 모아, 건업을 공격할 계책을 함께 의논한다. 호분이 말한다.

    “백년 된 적도들을 아직은 한번에 정복할 수 없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춘수春水(봄날의 강물)가 범창泛漲(범람)할 것이니, 오래 주둔할 수 없습니다. 내년 봄까지 기다려, 다시 대군을 일으켜야 합니다.”

    두예가 말한다.

    “지난날 악의가 제서濟西(제수濟水의 서쪽)에서 일전을 벌여, 강대한 제나라의 영토를 병탄했소. 이제 병위兵威(군대의 위세)를 크게 떨 치는 것이 마치 파죽지세와 같아서, 몇 마디만 쪼개지면 모두 칼날이 가는대로 쪼개질 테니, 다시 손을 댈 것도 없소.”

    이에 급히 격문을 돌려서 장수들과 만날 날짜를 정하여, 건업을 공격하러 일제히 진군하기로 한다.

    이때, 용양장군 왕준이 수병들을 거느리고 물길을 따라서 내려오는데, 전초 부대에서 보고한다.

    “오나라 사람들이 쇠사슬을 만들어, 강을 따라 가로질러서 막고 있습니다. 또한 쇠송곳을 수중에 설치해 두었습니다.”

    왕준이 크게 웃더니, 뗏목을 수십만 척 만들고, 그 위에 지푸라기를 묶어 사람처럼 만들어, 뗏목 둘레에 세워서, 물길을 따라서 내려보낸 다. 오나라 병사들이 이것들을 보더니, 산 사람으로 여겨서, 보자마자 달아난다. 수중에 숨겨진 쇠송곳들이 뗏목들에 박히고 뽑혀서 모 조리 뗏목과 함께 떠내려간다. 다시 뗏목 위에 횃불을 올려놓는데, 길이가 열 길 남짓이고, 크기가 열 아람을 넘는다. 이 횃불들을 마유麻 油(참기름)로 적셔서, 쇠사슬에 닿으면 불 붙은 횃불로 녹여, 순식간에 모두 끊어버리게 한다. 두 갈래로 대강大江(장강/양자강)을 따라 진군하며, 이르는 곳마다 승전을 거두지 않는 곳이 없다.

    한편, 동오의 승상 장제는 좌장군 심형沈瑩과 우장군 제갈정諸葛靚에게 진군을 대적하러 가라고 한다. 심형이 제갈정에게 말한 다.

    “상류의 병사들이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여, 진군이 틀림없이 여기까지 올 것이니, 마땅히 있는 힘을 다해 대적해야겠소. 다행히 승리를 거둔다면, 강남은 저절로 안정될 것이오. 이제 강을 건너가서 싸우다가 불행히도 패전한다면, 대사를 그르칠 것이오.”

    “공의 말씀이 옳소.”

    말을 미처 마치기도 전에, 누군가 진나라 병사들이 물길을 따라 몰려오는데 그 기세를 당할 수 없다고 알린다. 두 사람이 크게 놀라, 황망 히 장제를 찾아가서 상의한다. 제갈정이 장제에게 말한다.

    “동오가 위급해졌는데, 어찌 몸을 피하지 않으십니까??”

    장제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오나라가 곧 망하리라는 것은 현명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모두 알고 있소. 이제 임금과 신하가 모두 항복하면서 아무도 국난을 당해 죽지 않는다면, 역시 치욕이 아니겠소?”

    제갈정도 눈물을 흘리며 떠난다. 장제가 심형과 더불어 군을 지휘해 적군에 맞서자, 진군이 일제히 포위한다. 주지가 앞장서서 오군 진영으로 뛰어드니, 장제가 홀로 온힘을 다해 박전搏戰(격전)을 벌이다가, 난전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심형은 주지에게 살 해된다. 오군이 사방으로 흩어져 패주한다. 뒷날 누군가 장제를 기려서 시를 짓는다.

    두예가 파산에 큰 깃발을 휘날리고
    강동의 장제가 장렬히 죽을 때에
    이미 왕조의 운세 남쪽에서 끝이 났지만
    차마 자신을 알아준 은혜를 저버리며 구차히 살지는 못했네

    한편, 진나라 군이 우저에서 이기고, 오나라 경내를 깊숙히 침입한다. 왕준이 사람을 보내 첩음捷音(승리의 소식)을 전하니, 진나라 군주 사마염이 크게 기뻐하는데, 가충이 아뢴다.

    “우리 군대가 외지에서 오래 고생하며, 수토水土(기후)가 맞지 않아, 틀림없이 질병疾病이 생길테니 병사들을 불러서 다시 훗날을 도모 하셔야 합니다.”

    이에 장화가 말한다.

    “이제 이미 대군이 그 근거지를 침입하여, 오나라 사람들의 간담이 떨어졌으니, 한달이 못 가서, 손호를 잡을 수 있습니다. 만약 경솔하게 군대를 소환한다면, 앞서 세운 공들은 없어질 테니, 참으로 안타까울 것입니다.”

    진나라 군주가 미처 응답하지 못하는데, 가충이 장화를 꾸짖는다.

    “네가 천시와 지리를 살피지 않고, 망령되게 공훈을 바라면서, 사졸들을 괴롭히려 들다니, 너를 참하더라도 천하에 용서를 구하기에 부 족하겠다!”

    사마염이 말한다.

    “이것이 바로 짐의 뜻이오. 장화가 짐과 뜻이 같을 뿐인데, 굳이 쟁변爭辯(논쟁)할 필요가 있겠소?”

    그런데 누군가 두예가 급히 올린 표문이 당도했다고 알린다. 진나라 군주가 표문을 읽어보니, 역시 급히 진군해야 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진나라 군주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마침내 정진征進(진군해서 정벌함)의 명령을 내린다. 왕준 들이 진나라 군주의 명령을 받들 어, 수륙 양면으로 나란히 전진하며, 폭풍과 우레처럼 맹렬하게 북을 울리니, 오나라 사람들이 그 깃발만 보고도 투항한다. 오나라 군주 손호가 이를 듣고, 대경실색한다. 여러 신하가 고한다.

    “북병(북쪽 군대)이 날마다 다가오는데, 강남의 병사와 백성들이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니, 이를 어찌해야겠습니까?”

    손호가 말한다.

    “어찌해 싸우지 않는 것이오?”

    사람들이 대답한다.

    “오늘의 재앙은 모두 잠혼의 죄이니,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그를 주살하소서. 신들이 성을 나가서 결사의 일전을 벌이겠나이다.”

    “기껏 중귀中貴(조정의 고위 관리) 한 사람이 어찌 나라를 그르칠 수 있겠소?”

    사람들이 크게 외친다.

    “폐하께서 어찌 촉나라 황호의 꼴을 못 보셨습니까?”

    이에 사람들이 임금의 명을 기다리지 않고 일제히 궁중으로 몰려들어가 잠혼을 조각조각 베어서, 그 날고기를 씹는다. 도준이 아뢴다.

    “신이 거느린 전선들이 모두 작으니, 바라옵건대 병사 2만을 얻어서 큰 배에 태워서 싸울 수 있다면, 충분히 적군을 격파할 수 있습니다.”

    손호가 그 말을 따라, 어림의 병사들을 뽑아서 도준에게 줘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적군을 막게 한다. 전장군 장상도 수병들을 거느리 고 강물을 따라 내려가 적군을 맞아 싸우려 한다. 두 사람의 부하 병력들이 가고 있는데 뜻밖에도 서북풍이 크게 불어, 오나라 군의 기치(온갖 깃발)가 모두 똑바로 서지 못하고, 모조리 배 위에 거꾸로 쓰러진다. 병사들마다 배에서 내려 싸우려 하지 않고, 사방으로 흩어 져 달아나는 바람에, 장상이 겨우 병사 수십을 이끌고 적군과 맞선다.

    한편, 진나라 장수 왕준이 돛을 올리고 항행하며, 삼산三山을 지나는데, 주사舟師(수군/수병)가 말한다.

    “풍파가 극심하여,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일단 바람이 조금 약해지기를 기다려 나아가야 합니다.”

    왕준이 크게 노하여, 검을 뽑아들고 그를 질타한다.

    “내가 목하目下(바로 지금) 석두성을 취하려는데, 어찌 멈추라고 하냐!”

    이에 북을 맹렬히 두드리며, 크게 진군한다. 오나라 장수 장상이, 따르는 병사들을 이끌고 항복을 청하니, 왕준이 말한다.

    “진실로 항복하는 것이라면, 선봉에 서서 공을 세우시오.”

    장상이 배로 되돌아가서, 곧장 석두성 아래에 이르러, 성문을 열라고 외쳐서, 진나라 군을 맞이해 들인다.

    진나라 군이 성에 들어온 것을 듣고 손호가 검을 뽑아 자살하려 하니, 중서령 호중과 광록훈 설영이 아뢴다.

    “폐하께서 어찌 안락공 유선처럼 하지 않으십니까?”

    손호가 이를 따라 스스로 관을 짊어지고 몸을 묶은 채, 여러 문무 관리를 이끌고 왕준 앞으로 찾아가서 투항한다. 왕준이 손호의 결박을 풀어주고, 그 관을 불 사른 뒤, 왕례王禮(제왕의 예절)로써 대우한다. 후세에 당나라 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한다.

    왕준의 누선들이 익주에서 내려오니
    금릉의 왕기王氣도 암연黯然히 거둬지네
    천심千尋이나 되는 쇠사슬은 강물 속에 가라앉고
    한 조각 항복의 깃발이 석두성을 나오네
    인간 세상은 몇번이나 지난 일을 되돌아보며 아파하건만
    산들은 차가운 강물을 따라 옛 모습대로 있구나
    이제 사해四海가 한 집안이 되는 때가 되었지만
    옛 보루에는 쓸쓸한 갈대와 억새가 슬프게 우는구나

    이에, 동오의 4 주州 83 군郡, 313 현縣, 호구戶口 52만3천, 군리軍吏(장교/군관) 3만3천, 병졸 23만, 남녀노소 2백3십만, 미곡 2백8십만 각斛(용량의 단위로서 10 되에 해당), 선박 5천여 척, 후궁 5십여 인이 모두 대진大晉에 귀속된다. 대사가 정해지자, 방榜을 붙여서 백성을 안정 시키고, 부고府庫(국가 관청의 창고)와 창름倉廩(곳간)을 모두 봉한다. 다음날 도준의 병사들이 싸우지도 않고 스스로 궤멸된다. 낭야와 사마주와 왕융의 대군이 모두 도착하여, 왕준이 큰 공을 세운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몹시 기뻐한다. 다음날 두예도 도착하여, 삼 군을 크게 호궤하고, 창고를 열어서 오나라 백성을 구제하니, 이에 오나라 백성이 안도한다. 오로지 건평의 태수 오언이 성을 지키며 항 복하지 않다가 오나라가 망한 것을 듣고서야 투항한다.

    왕준이 표문을 올려 승첩을 보고하니, 진나라 조정에서 오나라가 평정된 소식을 들으며, 임금과 신하가 모두 상수上壽(장수/생일)를 축 하한다. 진나라 군주가 술잔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이것은 양(양호) 태부의 공이거늘, 이제 그를 친히 볼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오!”

    표기장군 손수가 조정을 나가며, 남쪽을 보고 곡하며 말한다.

    “지난날 역적을 토벌하던 장년壯年(전성기)에, 일개 교위의 신분으로 기업(기틀/제국/왕국)을 창립하였는데, 이제 손호가 강남을 전부 포기하다니, 유유한 창천이여, 그는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한편, 왕준이 군을 거둬서 돌아오고, 오나라 군주 손호도 낙양으로 가서 황제를 만난다. 손호가 궁전을 올라가 바닥에 머리가 닿도록 절을 올리며 진나라 황제를 알현한다. 황제가 그에게 앉을 자리를 내어주며 말한다.

    “짐이 이 자리를 마련하여, 경을 기다린 지 오래요.”

    손호가 대답한다.

    “신도 남방에서 이런 자리를 만들어 폐하를 기다렸습니다.”

    황제가 크게 웃는다. 가충이 손호에게 묻는다.

    “듣자하니, 그대는 남방에서 매번 사람들의 눈알을 파내고 사람의 낯가죽을 벗겨냈다던데, 이것들은 무슨 죄에 내리는 형벌이오?”

    “인신(신하)이 임금을 시해하고 간녕奸佞(간사하고 아첨함)하고 불충한 놈들에게 이러한 형벌을 가할 뿐이오.”

    가충이 아무 말도 못하고 몹시 부끄러워한다. 황제가 손호를 귀명후歸命侯에 봉하고 그 자손을 중랑에 봉한다. 항복할 때 따라온 재보宰 輔(재상)들도 모두 열후列侯에 봉한다. 승상 장제는 진망陣亡(전장에서 죽음)하였기에, 그 자손을 봉한다. 왕준을 보국대장군으로 봉하 고, 나머지에게도 제각기 벼슬과 상을 내린다.

    이로써 삼국이 진나라 황제 사마염에게 넘어가, 통일의 기업基業을 이루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천하의 대세는 통합이 오래 되면 반드시 분열되고, 분열이 오래 되면 반드시 통합이 된다’는 것이다.

    그 뒤 후한의 황제 유선이 진나라 태강 7년에 사망하고, 위나라 군주 조환이 태강 원년에 사망하고, 오나라 군주 손호가 태강 4년에 사망 하는데, 모두 선종善終이다. 훗날 누군가 고풍古風(당나라 이전의 시가의 일종) 1편을 지어서 그 일을 이야기한다.

    고조 황제가 검을 들고 함양으로 들어가니
    이글이글 붉은 해가 부상 나무 위로 솟구나
    광무 황제가 용처럼 날아올라 대통을 이루니
    금오金烏가 하늘 한가운데로 날아오르네

    슬프도다 헌제가 천하를 이어받자
    홍륜紅輪이 함지에서 서쪽으로 떨어지구나!
    하진이 무모해 중귀中貴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양주의 동탁이 조당朝堂을 차지하네

    왕윤이 계책을 내어 역당을 주살하지만
    이각과 곽사가 창칼을 들고 난을 일으키네
    사방에서 도적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들고
    육합*의 간웅들이 모두 매처럼 날아오르네

    손견과 손책이 강좌江左(강동)에서 일어서고
    원소와 원술이 하량河梁(하북)에서 일어나네
    유언 부자가 파촉을 점거하고
    유표의 군려軍旅(군대)가 형양(형주와 양양 지역)에 주둔하네

    장수와 장로가 남정을 지배하고
    마등과 한수가 서량을 장악하네
    도겸, 장수, 공손찬 세 사람도
    제각각 웅재雄才를 떨치며 일방一方을 점유하네

    조조가 권력을 전횡하며 승상부를 차지하고
    영웅과 준걸들을 농락하며 문무를 두루 쓰네
    천자를 떨게 하는 위세로써 제후를 호령하고
    비휴貔貅를 거느리고 중원을 제압하네

    누상촌의 현덕은 본래 황실의 후손으로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어 천자를 도우려 하지만
    동서로 쉬지 않고 다녀도 터전이 없어 한스럽고
    적은 병사를 데리고 정처 없이 떠돌 뿐이네

    남양에서 삼고초려의 정이 얼마니 깊던지
    와룡 선생이 한눈에 환우寰宇(천하)를 나누네
    먼저 형쥬를 취한 뒤에 서천을 취하니
    제왕의 패업을 천부天府에서 도모하네

    오호라! 삼재三載(3년)만에 승하하며
    백제성에서 고아를 맡기니 애통하구나!
    공명이 여섯 차례나 기산으로 출정함은
    홀로 하늘을 떠받치려 함이네

    그러나 어찌 운수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으랴
    장성長星(큰별/혜성)이 한밤에 산중으로 떨어지구나!
    강유 홀로 기력 높은 것을 믿고
    아홉 번이나 중원을 정벌하지만 헛수고뿐이네

    종회와 등애가 군대를 나눠 진격하니
    한실漢室(한나라 황실)의 강산이 모두 조 씨에게 넘어가네
    조비, 조예, 조방, 조모를 조환이 잇자마자
    다시 사마 씨가 천하를 넘겨받네

    수선대 앞에 구름과 안개가 피어오르고
    석두성 아래는 파도가 그치네
    진류왕(한 헌제), 귀명후(오 손호)와 안락공(촉 유선)
    이들 왕후와 공작도 그러한 근원에서 나왔네

    분분紛紛한 세상의 일들은 끝이 없고
    천수天數(하늘이 내린 운명)는 망망해 피할 수가 없네
    솥다리처럼 세 나라로 갈라졌던 것도 이제 꿈이지만
    후인들은 슬퍼한다는 핑계로 공연히 불평하네

    ― 끝 ― ―

    이로써 2009년 5월 7일 1회를 올린 이래 7년만에 삼국지 번역을 완료합니다.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