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37회 사마휘가 이름난 선비를 다시 추천하자 유현덕이 삼고초려한다

    한편, 서서가 길을 달려 허창에 이르자 조조가 순욱과 정욱 등에게 모사들을 거느리고 그를 맞이하라 한다. 서서가 승상부에 들어가 조조에게 인사한다. 조조가 말한다.

    "그대는 고명한 선비이거늘 무슨 까닭으로 몸을 굽혀 유비를 섬겼소?"

    "제가 젊어서부터 강호를 떠돌며 피난하다가 신야에 이르러 현덕과 교분이 깊어졌습니다. 노모께서 살아계신데 다행히 승상께서 돌봐주시는 은혜를 입으니 부끄러운 마음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이제 여기 왔으니 그대는 아침저녁으로 모친을 모시고 나는 그대의 가르침을 듣게 됐소."

    서서가 삼가 사례하고 나간다. 서둘러 노모를 만나서 대청 아래에서 눈물흘리며 절한다. 노모가 깜짝놀라 말한다.

    "네가 무슨 까닭으로 여기 왔느냐?"

    "신야에서 유예주를 모시다가 편지를 받고 밤낮없이 여기로 달려왔습니다."

    노모가 왈칵 성내며 탁자를 내리쳐 꾸짖는다.

    "못난 놈아! 네가 강호를 몇년 떠돌아 네가 학업에 정진하는 줄 알았거늘 어찌 반대로 처음의 마음 같지 않냐! 네가 책을 읽었으면 충효를 함께할 수 없음을 알 것이다. 조조는 기군망상하는 역적인 것을 모르냐? 유현덕은 인의를 사해에 베풀고 더욱이 한실의 후예 아니냐! 그분을 섬긴 것은 참주인을 만난 것이었다. 지금 한장의 거짓편지에 자세히 살피지 않고 광명을 버리고 암흑으로 넘어와 악명을 자초하다니 참으로 못난 놈이구나! 무슨 낯으로 너를 보랴! 네가 조상을 더럽히니 천지간에 헛살았을 뿐이구나!"

    욕을 뒤집어쓴 서서가 엎드려서 고개를 들지 못한다. 노모가 병풍 뒤로 돌아선다.

    잠시 뒤 하인이 나와 알린다.

    "노부인께서 목을 매셨습니다!"

    서서가 허겁지겁 구하러 뛰어드나 노모는 숨진 뒤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서서의 모친을 기렸다.

    어질도다! 서서 모친! 꽃다운 이름 천고에 흐르리!
    절개를 지켜서 이지러지지 않고 집안을 빛냈구나
    아들은 이것저것 가르치고 제몸은 돌보지 않았네
    기백은 산과 같고 의기는 깊은 마음속에서 나오네
    유예주를 찬미하고 위나라 무제를 꾸짖어 욕했구나
    솥으로 삶아죽인들 두려우랴! 칼로 벤들 무서우랴!
    오로지 두려운 것, 뒤이을 아들이 선조를 더럽힐까
    스스로 죽어 옛 영웅과 같고 맹자 모친과 견주겠네
    살아서 그 이름이 빛나고 죽어서 그 뜻을 이루었네
    어질도다! 서서 모친! 꽃다운 이름 천고에 흐르리!

    서서가 노모의 죽음을 알아 목놓아 울다 바닥에 쓰러져 한참 지나 겨우 깨어난다. 조조가 사람을 보내 예물을 갖춰 조문하고 스스로 찾아와 영전 앞에 제물을 바친다. 서서가 노모의 운구를 허창의 남쪽 들에 장사지내고 무덤을 지킨다. 무릇 조조가 하사하는 것들을 서서가 받지 않는다.

    그때 조조가 남쪽을 정벌할 것을 상의하니 순욱이 간언한다.

    "날이 추워 아직 용병하지 못합니다. 따뜻한 봄날을 기다려 거침없이 크게 진격해야 합니다.

    조조가 받아들여 장하의 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어 '현무지'라고 이름짓고 거기서 수군을 교련하며 남쪽정벌을 준비한다.

    한편, 현덕이 예물을 안배해 융중으로 제갈량을 찾아가려는데 밑에서 아뢴다.

    "문밖에서 어느 선생이 높은 갓과 넓은 띠를 차려입고 생김새가 남다른데 일부러 찾아왔다고 합니다."

    현덕이 말한다.

    "그가 공명이 아니겠는가?"

    옷을 차려입고 맞이하니 바로 사마휘다. 현덕이 크게 기뻐하묘 후당으로 불러들여 앉아서 인사하고 묻는다.

    "제가 선안 仙顏을 작별한 뒤 군무 軍務가 바빠 찾아뵙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광림하시니 제가 우러르던 마음이 크게 위로 됩니다."

    "서원직이 여기 왔다기에 일부러 찾아왔습니다."

    "이번에 조조가 그의 모친을 잡아가두고 모친이 서신을 보내어 허창으로 불려갔습니다."

    "조조의 계책에 빠진 것입니다! 제가 평소 듣자니 그 모친이 매우 어진 분이라 조조에게 잡힌들 아들을 불러들일 분이 아닙니다. 가지 않았으면 모친이 아직 살아있을 것이나, 갔다면 반드시 돌아가실 겁니다."

    현덕이 놀라서 까닭을 묻자 사마휘가 말한다.

    "서원직의 모친이 의기가 드높으니 아들을 보고 몹시 부끄러워할 겁니다."

    "원직이 떠날 때 남양의 제갈량을 천거했습니다. 그는 어떻습니까?"

    사마휘가 웃는다.

    "원직이 가려면 혼자 가지, 어째서 남을 불러내느라 심혈을 쏟는답니까?"

    "선생께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공명은 박륵의 최주평, 영천의 석광원, 여남의 맹공위와 서원직 등 네 사람과 깊이 사귀었 습니다. 이 네 사람은 순수한 것에 힘썼지만 공명만 원대한 전략을 살폈습니다. 일찍이 무릎을 잡고 앉아서 길게 노래하더니 네 사람을 가리켜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벼슬을 하면 자사나 군수가 될 수 있겠소.' 그들이 공명의 뜻은 어떤지 물었지만 공명은 웃을 뿐 답하지 않았습니다. 늘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견주니 재주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어찌 영천에는 어진 이가 이다지도 많습니까!"

    "예전에 은규라는 사람이 천문을 잘봤는데 일찍이 별들이 영 潁이라는 별자리에 모이자 그곳에 틀림없이 어진 선비가 많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운장이 곁에 있다 말한다.

    "제가 듣자니 관중과 악의는 춘추전국의 명사들로서 공적이 천하를 뒤덮었습니다. 공명 스스로 두 사람에 견주다니 지나치지 않습니까?"

    사마휘가 웃으며 말한다.

    "그들과 견주는 것은 부당합니다. 저는 다른 두 사람으로 그와 견주고 싶습니다."

    운장이 그 두 사람을 묻자 사마휘가 말한다.

    "주나라 팔백년을 일으킨 강자아와, 한나라 사백년을 꽃피운 장자방과 견주겠습니다."

    모두 악! 놀라는 표정이다. 사마휘가 계단을 내려가 작별하려 한다. 현덕이 붙잡아도 소용없다. 사마휘가 문을 나서며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어 말한다.

    "와룡이 주인은 만나도 때는 못 만나니 애석하도다!"

    말을 마치고 훌쩍 떠난다. 현덕이 탄식한다.

    "참으로 숨어지내는 어진 선비로다!"

    이튿날 현덕이 관, 장과 하인들을 데리고 융중으로 찾아가 멀리 바라보니 산자락에서 몇몇 사람이 곡괭이를 들어 밭을 갈며 노래한다.

    푸른 하늘은 둥근 덮개와 같고 땅은 바둑판을 닮았네
    사람들은 흑백을 가려 오고가며 영욕을 서로 다투구나
    영화란 스스로 평안하고 치욕이란 필시 하찮은 것인데
    남양에 숨어살며 높이 베개를 하고 잠들어도 모자라네

    현덕이 노래를 듣고 말을 세워 농부를 불러 묻는다.

    "그 노래는 누가 지었소?"

    "와룡선생이 지었습니다."

    "와룡선생은 어디 사시오?"

    "이 산 남쪽에 높은 언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와룡언덕입니다. 언덕 앞에 나무가 듬성듬성한 숲속의 초가집이 제갈선생이 높이 베개를 하고 누운 곳입니다."

    현덕이 사례하고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간다. 몇리 못 가 멀리 와룡의 언덕이 보이는데 과연 맑은 풍경이 비상하다. 뒷날 누군가 고풍 한편을 지어 와룡의 거처를 읊었다.

    양양성 서쪽으로 이십 리 높은 언덕 있어 흐르는 시냇물을 베개 삼았구나
    높은 언덕 굽이 따라 구름 피어오르고 시냇물 졸졸졸 징검다리를 지나네
    기세는 곤룡이 돌 위 또아리 튼듯하고 형상은 봉황새 솔숲에 있는 것 같네
    사립문 반쯤 열린 초가집 가운데 고결한 선비가 누워 일어나지를 않는구나
    쭉쭉 자란 대나무 줄지어 병풍 같고 철마다 울타리에 들꽃 떨어지는 소리
    침대머리 쌓인 것은 책들뿐인데 그곳을 오고가며 찾아올 사람은 없으리라
    문 두들겨 원숭이가 열매 바치고 문 지키는 늙은 학은 한밤 독경소리 듣네
    양양의 이름난 거문고 비단 아래 숨고 벽에 걸린 보검에 솔그림자 비치구나
    초가집에 선생 홀로 그윽한데 틈을 내어 몸소 부지런히 밭 갈고 씨뿌리네
    오로지 봄날 우레 꿈 깨우기 기다려 긴 휘파람 한소리에 천하 평정하리라

    현덕이 집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몸소 사립문을 두들기자 동자가 문을 나온다. 현덕이 말한다.

    "한나라 좌장군 의성정후 영예주목 황숙 유비가 특별히 선생께 인사드리러 왔다."

    "이름이 길어서 제가 외우지 못합니다."

    "유비가 왔다고만 전해라."

    "선생께서 오늘 일찍 외출하셨습니다."

    "어디로 가셨냐?"

    "가는 데가 정해지지 않아 어디로 가셨는지 모릅니다."

    "언제 돌아오시냐?"

    "돌아오는 날짜 또한 정해지지 않아 어쩌면 3, 5일 어쩌면 십수 일입니다."

    현덕이 실망해 슬퍼해 마지않는다. 장비가 말한다.

    "만나기 글렀으니 어서 돌아갑시다."

    "잠시만 기다려보자."

    운장이 말한다.

    "일단 돌아가 사람을 보내어 찾아보는 것만 못하겠소."

    현덕이 그 말을 따라 동자에게 일러둔다.

    "선생께서 돌아오시면 유비가 인사 드리러 왔었다 말씀 드려라."

    결국 말에 올라 몇리를 가다 말고삐를 잡아 세워 융중의 경치를 되돌아보니 과연 산이 높지 않으면서 빼어나게 멋지고 물이 깊지 않으면 서 맑고 깨끗하다. 땅은 넓지 않으면서 평탄하고 숲은 크지 않으면서 우거지다. 원숭이와 두루미는 벗하고 소나무와 대나무는 뒤섞여 푸르러 하염없이 바라본다. 문득 누군가 보이는데 생김새가 남달리 아름답고 빼어난데 머리에 소요건 逍遙巾 (옛날 두건의 일종)을 쓰고 몸에 조포포 皂布袍 (검은 베 두루마기)를 입고 손에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채 산속 좁은 길을 따라 오고 있다. 현덕이 말한다.

    "저 사람이 와룡선생인 게 틀림없구나."

    서둘러 말에서 내려 인사해 묻는다.

    "와룡선생 아니십니까?"

    "장군께서는 누구십니까?"

    "유비입니다."

    "저는 공명이 아니오라 그 친구 박릉의 최주평입니다."

    "큰 이름을 들은 지 오래인데 다행히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여기 잠시 앉아 한마디 가르침을 듣고 싶습니다."

    두 사람이 숲속 바위에 마주 앉고 관, 장이 곂에 지켜 선다. 주평이 말한다.

    "장군께서 무슨 까닭으로 공명을 만나려 하십니까?"

    "지금 막 천하가 대란해 사방에서 구름이 일듯이 소란스러워 공명을 만나 국가를 안정시킬 계책을 구하려 합니다."

    주평이 웃는다.

    "공께서 난을 평정하는 것을 으뜸으로 삼으십니다. 비록 이것이 어진 마음이긴 하나 다만 예로부터 치란 治亂 (안정과 혼란)이란 늘 바 뀌었습니다. 고조께서 뱀을 베어죽여 의로운 군을 일으켜, 무도한 진나라를 토벌한 것은 난에서 치 治로 들어간 것입니다. 애제 哀帝 와 평제 平帝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2백년간 태평세월이 오래됐으나 왕망 王莽이 찬역한 것은 치에서 난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광무제께 서 중흥해 나라의 토대를 다시 바로잡은 것은 다시 난에서 치로 들어간 것입니다. 지금까지 2백년간 백성들이 평안한 지 오래이더니 간 과 干戈 (무기/전란)가 사방에서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치에서 난으로 들어가는 때이니 아직 하루아침에 평정할 수는 없습니 다. 장군께서 공명을 시켜 천지를 되돌리고 세상을 바로잡으려 하시지만 쉽지 않아 헛되이 몸과 마음만 써버릴까 두려울 뿐입니다. '하늘을 따르는 이는 편안할 것이요 거스르는 이는 수고로울 것이다.'라든가 '운수에 달린 것을 이치로 빼앗을 수 없고, 운명에 달린 것을 사 람이 강제할 수 없다.'라 하는 말을 장군께서 어찌 듣지 못하셨겠습니까?"

    "선생의 말씀은 참으로 고견입니다. 다만 제가 한실의 후예가 된지라 마땅히 한실을 바로잡아야 하니 어찌 감히 그것을 운수와 운명에만 맡기겠습니까?"

    "저는 산야지부 山野之夫 (평범한 민간인)라 천하대사를 함께 의논할 만하지 못지만 마침 질문을 받아 망녕되게 말하였을 뿐입니다."

    "선생께 가르침을 받아 고맙습니다. 그런데 공명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시겠습니까?"

    "저도 그를 방문할 참이었는데 어디로 갔는지 지금 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께서 저와 함께 저희 고을로 가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저는 한가히 지내고자 할 뿐 공명 功名을 세울 뜻은 접은 지 오랩니다. 언젠가 다시 뵙겠습니다."

    말을 마쳐 장읍 (두손을 높이 들어 예를 표하는 인사)해 가버린다. 현덕이 관, 장과 더불어 말에 올라 길을 나선다. 장비가 말한다.

    "공명을 찾아가 그는 만나지도 못하고, 도리어 그 썩어빠진 선비나 만나 한가한 이야기를 많이도 하셨수다!"

    "그가 말한 것 또한 숨은 선비의 이야기다."

    세 사람이 신야로 돌아와 며칠 지나 현덕이 사람을 시켜 공명을 찾아본다. 돌아와 알린다.

    "와룡선생이 벌써 돌아왔답니다."

    현덕이 말을 준비케 한다. 장비가 말한다.

    "까짓 일개 촌부이거늘 어찌 형님이 꼭 가셔야 하오? 사람을 보내 부르시우."

    현덕이 꾸짖는다.

    "네가 어찌 맹자께서 '현자를 만나려 하면서 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은 마치 안으로 들어가려 하면서 문을 닫는 것과 같다'라 하신 것을 듣 지 못했냐? 공명은 당세의 대현인데 어찌 부를 수 있냐?"

    말에 올라 다시 공명을 찾아간다. 관, 장도 말을 타 뒤따른다.

    때는 한겨울이라 날씨가 몹시 춥고 짙은 구름이 가득하다. 몇리 못 가서 갑자기 칼바람이 살을 에는데 서설 瑞雪이 펄펄 내린다. 산은 새하얀 옥돌 화살촉 같고 수풀은 얼어붙어 은빛이다. 장비가 말한다.

    "천지가 꽁꽁 얼어 용병할 수도 없는데, 어찌 멀리까지 아무 쓸데 없는 인간을 찾아간단 말이우? 신야로 되돌아가 눈바람을 피하는 것 만 못하겠수!"

    "나는 지금 공명이 내 간절한 뜻을 알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아우들이 추워 못 견디겠거든 먼저 돌아가도 좋다."

    "죽는 것도 두렵지 않거늘 어찌 추위가 두렵겠소? 다만 형님이 헛되이 애쓸까 걱정하는 것이오."

    "여러말 하지말고 따라오기나 해라."

    초가집에 가까워지자 길가 술집에서 누군가 노래를 부른다. 현덕이 말을 세워 들은 노래는 이렇다.

    장사가 아직 공명을 이루지 못해 아아! 오래도록 봄볕을 못 봤으리라!
    그대는 강태공을 못 봤는가?
    동해 어느 노인으로 지내다 거치른 땅을 떠나 수레를 따라가 문왕을 섬긴 것을?
    팔백 제후가 뜻밖에 모여들고 맹진을 건너자 흰 물고기 배 위로 뛰어 오른 것을?
    목야 일전으로 핏물이 강을 이뤄 응양하고 위열한 게 무신들 가운데 으뜸인 걸?
    또한 역이기를 못 봤는가?
    고양의 술꾼이 풀숲에서 일어나 망탕의 융준공 유방에게 두손 모아 인사한 걸?
    패왕의 길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니 그가 놀라, 발을 씻다 멈추고 우러러본 것을?
    동쪽으로 제나라 성읍 칠십이 개를 함락해 천하 아무도 뒤따를 수 없었던 것을?
    두 사람은 거룩한 천자를 만난 게 아니었는데 지금 누가 다시 영웅을 알아볼꼬?

    노래를 마치니 또 다른 사람이 탁자를 치며 노래한다. 그 노래는 이렇다.

    고조 황제께서 검을 쥐고 천하를 평정해 창업해 터잡은 지 사백 년
    환제, 영제 이어받아 운수가 기울어 간신적자들이 나라를 휘젓네
    푸른 뱀이 용상 곁으로 날아들고 요사한 무지개가 옥당에 걸리네
    도적떼 사방에서 개미처럼 일어나고 간웅의 무리, 매처럽 사납구나
    우리는 긴 휘파람에 헛되이 손뼉 치고 답답하면 주막에서 술 마시네
    홀로 몸을 아껴 매일 안락한데 어찌 꼭 천고에 남을 명성을 얻으리

    둘이 노래를 마치고 손뼉을 치고 크게 웃는다. 현덕이 말한다.

    "와룡이 저들 가운데 있는가?"

    말에서 내려 술집으로 들어가 바라보니 둘이 탁자에 기대어 마주 보고 마신다. 상석에 앉은 이는 수염이 길고 마주 앉은 이는 생김새가 빼어나게 남다르고 옛스럽다. 현덕이 인사하고 묻는다.

    "두 분 가운데 어느 분이 와룡선생이십니까?"

    긴 수염이 말한다.

    "공은 누구십니까? 와룡을 찾는 건 무슨 용무입니까?"

    "저는 유비입니다. 선생을 찾아 뵈어,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케 할 방법을 구하려 합니다."

    "저희는 와룡이 아니라 그 친구들입니다. 저는 영천 사람 석광원이고, 이 사람은 여남 사람 맹공위입니다."

    현덕이 기뻐하며 말한다.

    "제가 두 분의 큰 명성을 들은 지 오랜데 다행히 만납니다. 지금 수행하는 마필이 여기 있으니 감히 청하건대 두 분도 함께 와룡의 집으로 가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석광원이 이야기한다.

    "저희는 시골의 게으른 무리라 치국안민 治國安民의 일을 살피지 못하니 수고롭게 물어보실 게 못 됩니다. 바라옵건대 명공께서 말에 올 라 와룡을 찾아보십시오."

    이에 현덕이 둘과 작별해 말에 올라 와룡의 언덕으로 간다. 집앞에서 내려 문을 두르려 동자에게 묻는다.

    "선생께서 오늘 집에 계시지 않냐?"

    "현재 초당 위에서 독서하십니다."

    현덕이 크게 기뻐하며 동자를 따라 들어간다. 중문 中門에 이르니 문 위에 크게 적힌 글 한줄이 이렇다.

    '맑음으로 뜻을 밝히고, 고요함으로 멀리 다다른다.'

    현덕이 그것을 보고 있는데 무엇인가 읊는 소리가 들려 문 옆에 서 엿보니 초당 위에 어느 소년이 화로 곁에서 무릎을 안은 채 노래 한다.

    봉황새 천 길 높이 날아 오동나무 아니면 깃들지 않고
    선비 한 곳에 숨어 지내는데 참 주인 아니면 가지 않네
    몸소 밭이랑에서 농사 즐기니 오두막집도 소중하구나
    애오라지 거문고와 책에 마음을 쏟아 천시를 기다리네

    현덕이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려 초당에 올라 인사해 말한다.

    "제가 선생을 오래 사모했으나 만나뵐 인연이 없었습니다. 지난번에 서원직이 천거하므로 제가 신선이 사는듯한 곳을 찾아왔으나 선생을 만나지 못해 헛되이 돌아갔습니다. 지금 일부러 눈바람을 무릅쓰고 찾아와 마침내 만나게 돼 참으로 천만다행입니다!"

    그 소년이 황망히 답례해 말한다.

    "장군께서는 바로 유예주 아니십니까? 형을 찾아오신 게 아닙니까?"

    현덕이 놀라고 의아해 말한다.

    "선생도 와룡이 아니란 말입니까?"

    "저는 와룡의 아우 제갈균입니다. 저희 형제가 셋인데 큰형 제갈근은 현재 강동 손중모 진
    영에서 막빈으로 있습니다. 공명은 둘째 형입니다."

    "와룡께서 지금 집에 안 계십니까?"

    "어제 최주평과 약속해 멀리 유람하러 떠났습니다."

    "어디로 유람하러 갔습니까?"

    "어느 날은 조각배를 빌려 강과 호수를 노닐고, 어느 날은 산고개를 올라 중이나 도사를 만나기도 하고, 어느 날은 마을에서 벗들을 찾기 도 하고, 어느 날은 동부 洞府 (신선의 거처)에서 거문고나 바둑을 즐깁니다. 오고 가는 게 예측이 불가해 어디 갔는지 알지 못합니다."

    "유비가 이다지도 연분이 천박해 두번이나 대현을 만나지 못하는구려!"

    "잠깐 앉아 계시면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장비가 말한다.

    "그 선생이 없다잖수! 형님 말에 타시지요!"

    "내가 여기 와놓고 어떻게 아무 말 없이 되돌아가겠냐?"

    그래서 제갈균에게 묻는다.

    "듣자니 형님이신 와룡선생께서 육도삼략을 모조리 암기하고, 매일 병법서적을 본다던데 그 소문을 들어보셨습니까?"

    "저는 모르겠습니다."

    장비가 말한다.

    "물어보는 게 지나치오! 눈바람이 몹시 사나우니 어서 돌아가는 것만 못하오!"

    현덕이 꾸짖어 입을 다물게 한다.

    제갈균이 말한다.

    "형님이 여기 안 계셔 장군을 감히 오래 머무시라 못하겠습니다. 뒷날 장군을 찾아가 인사드리라 형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찌 감히 선생께서 왕림해주시기를 바라겠습니까! 며칠 뒤 제가 다시 오겠습니다. 종이와 붓을 빌려 글을 써 형님께 이 유비의 간절한 뜻을 전하겠습니다."

    제갈균이 문방사보(문방사우)를 바쳐 유비가 얼어붙은 붓을 아~ 입김을 불어 녹이고 운전 雲箋 (구름 무늬의 종이/편지지)을 쫙 펼쳐 글을 적는다.

    '제가 높은 명성을 들은지 오래라 두차례 만나뵈러 찾아왔으나 만나지 못해 헛되이 돌아가 그 슬픔을 무엇에 견줄런지요! 곰곰이 생각하 면, 저는 한실의 묘예 (후예)로서 함부로 명성과 벼슬을 탐했습니다. 가만히 엎드려 바라보니, 조정이 기울고 기강이 무너지고 영웅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악의 무리가 임금을 업신여겨 제 마음과 간담이 모두 찢어집니다. 비록 바로잡고 구제할 마음은 간절하나 참으로 경 륜을 펼 계책이 없습니다. 삼가 바라옵니다. 선생께서 인자하시고 충의로우시니 개연히 강태공처럼 큰 재주를 펼치고 장자방처럼 큰 전 략을 베풀어주시면 천하에 행심 幸甚이요! 사직에 행심이겠습니다! 먼저 이렇게 전하오니 다시 재계하고 훈목한 뒤 존안을 뵙고 특별히 인사드리겠습니다. 보잘것 없는 정성이나마 기울이니 널리 양해바랍니다.'

    현덕이 다 적고 제갈균에게 줘 거두게 한 뒤 인사해 문을 나간다. 현덕이 거듭 간절하게 뜻을 전해 작별한다. 막 말에 타려 하는데 동자가 부르는 손짓을 하며 울타리 밖에서 외친다.

    "선생께서 오십니다!"

    현덕이 바라보니 작은 다리 서쪽으로 어느 사람이 난모 煖帽 (방한모자)를 머리에 쓰고 호구 狐裘 (여우털가죽옷)로 몸을 가린 채 당나 귀를 타고 온다.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술이 든 호리병을 들고 뒤따라 눈을 밟아 온다. 작은 다리를 돌아오며 시 한 수를 읊는다. 시는 이 렇다.

    밤새 북풍 차갑더니 만리 붉은 구름 두텁고
    장공에 눈발 어지러워 온 강산을 뒤덮구나
    얼굴 들어 하늘을 살피니 옥룡들이 다퉈서
    용비늘 펄펄 날려 순식간 우주를 채우구나
    나귀로 다리 건느며 지는 매화를 한탄하네

    현덕이 노래를 듣고 말한다.

    "이 사람이 참으로 와룡이구나!"

    미끄러지듯 말에서 내려 앞으로 가 인사한다.

    "선생께서 추위를 무릅쓰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유비 등이 기다린 지 오랩니다!"

    그 사람이 황망히 나귀에서 내려 답례한다. 제갈균이 뒤에서 말한다.

    "이분은 와룡 형님이 아니라 형님의 장인이신 황승언 어르신이십니다."

    현덕이 말한다.

    "제가 마침 들었는데 읊으신 싯귀가 극히 고묘합니다."

    "늙은이가 사위 집에서 «양부음»을 보고 한 편을 암기해 마침 작은 다리를 건너다 울타리에서 매화가 지는 것을 보고 느낀 바 있어 읊었 습니다. 존귀하신 손님께서 들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사위님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늙은이도 사위를 보러 오던 길입니다."

    현덕이 듣고 황승언과 작별해 말에 올라 돌아간다. 마침 눈바람이 다시 크게 일어 와룡의 언덕으로 돌아가는데 걱정이 가라앉지 않는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현덕이 눈보라를 뚫고 공명을 찾아간 것을 읊었다. 시는 이렇다.

    하늘 가득 눈보라 치는데 어진 이 찾았건만 못 만나 헛되이 돌아가는 마음 애달파라
    냇가 다리 얼어붙어 돌이 미끄러지고 추위가 살을 에지만 말을 타고 가는 길 멀구나
    눈앞 조각조각 하얀 배꽃 흩뿌리고 버들개지 펄펄 흩날려 얼굴을 미친듯이 때리누나
    머리 돌려 채찍을 멈춰 저멀리 바라보는 곳 은빛 찬란한 눈 가득 쌓인 와룡의 언덕!

    현덕이 신야로 돌아온 뒤 세월이 덧없이 흘러 어느새 새봄이 찾아온다. 이에 점쟁이에게 점을 치게 해 길일을 골라 사흘을 재계해 목욕 하고 향을 뿌려 옷을 갈아 입고 다시 와룡의 언덕으로 공명을 만나러 간다. 관, 장이 듣고 못마땅스러워 함께 들어와 현덕에게 간언한다.

    고현 高賢이 아직 영웅의 뜻을 따르지 않는데
    몸을 굽혀 모시니 걸사 傑士들은 못마땅스럽네

    무슨 말을 할까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