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44회 공명이 지혜롭게 주유를 격동시키고 손권이 조조를 격파할 결단을 내린다

    한편, 오국태는 손권이 머뭇거려 결단치 못하자 그에게 이른다.

    "돌아가신 언니께서 유언하시기를, '백부(손책)가 임종하며 말을 남겨, 내사 內事를 결정치 못하겠으면 장소에게 물어보고, 외사 外事를 결단치 못하겠으면 주유에게 물어보라' 하였다. 이제 어찌 공근(주유)에게 물어보지 않느냐?"

    손권이 크게 기뻐해 즉시 사자를 파양호 鄱陽湖 (장강 중류 남쪽의 큰 호수)로 보내 주유에게 의논을 청한다. 원래 주유는 파양호에서 수사 水師 (수군)를 훈련하다가, 조조 대군이 한수 상류에 다다른 것을 듣고 그날밤 시상군으로 돌아가 군의 기밀을 의논하려 했다. 사자 가 아직 출발하기 앞서, 주유가 벌써 먼저 와버렸다. 노숙이 그와 교분이 ���우 두터워 그에게 먼저 가서 그전 일을 세세히 한차례 말해주 자, 그가 말한다.

    "자경께서 걱정하지 마시오. 내게 주장 主張(자기 나름의 생각)이 있소. 이제 어서 공명을 만나게 청해주시오."

    노숙이 말을 타고 떠나, 주유가 그제서야 헐식 歇息 (휴식)한다. 그런데 장소, 고옹, 장굉, 보즐 네 사람이 찾아왔다고 한다. 주유가 안으로 청한다. 자리를 잡고 앉아 서로 문안을 마치자, 장소가 말한다.

    "도독께서 강동의 이해득실을 알고 계시오?"

    "아직 모르오."

    "조조가 백만대군을 거느려 한상에 주둔해 어제 격문을 여기로 보내 주공께 청해서 강하에서 회렵 會獵 (모여서 사냥함. 여기서는 전투. 전쟁) 하고자 하오. 비록 집어삼킬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드러내지 않고 있소. 우리가 주공께 권해 그에게 항복하게 하면 강동은 재앙을 거의 벗어날 것이오. 그러나 뜻밖에, 노자경이 강하에서 유비의 군사 제갈량을 여기로 데려와, 그 자가 설분 雪憤 (원한을 풂) 하고자 일부러 교묘한 말로써 주공을 자극하고 있소. 자경도 고집만 세우고 깨닫지 못하오. 이제 도독께서 일대 결단을 내려주시기 를 기대하오."

    "여러분 견해는 모두 똑같지 않소?"

    고옹 등이 말한다.

    "의견이 모두 같소."

    "나 역시 항복하려 한 지 오래 됐소. 여러분은 청컨대 돌아가시오. 내일 아침 주공을 만나 뵙겠소. 나름대로 생각이 있소."

    장소 등이 작별해 떠난다. 얼마 뒤 다시 정보, 황개, 한당 등 한 무리 전장 戰將들이 찾아 왔다고 보고한다. 주유가 맞아 들여 각각 노고를 위로하고 나자, 정보가 말한다.

    "도독께서 강동이 조만간 타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아시오?"

    "아직 모르오."

    "저희가 손 장군을 따라 토대를 세우고 창업해, 크고 작은 수백 차례 싸움을 통해 여섯 군 郡의 성지들을 싸워 차지한 것이오. 이제 주 공께서 모사들 말에 귀 기울여 조조에게 항복하려 하시니, 이것은 참으로 치욕스럽고 애석한 일이오. 저희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욕되게 살기 싫소. 바라건대 도독께서 주공께 권해서 결단을 내려 흥병 興兵케 하시오. 저희는 죽을 각오로 싸우기를 바라오."

    "장군들 뜻이 모두 같지 않소?"

    황개가 분연히 일어나 손으로 이마를 치며 말한다.

    "제 머리가 잘려도 되지만, 맹세코 조조에게 항복치 않겠소!"

    사람들이 모두 말한다.

    "저희 모두 항복하고 싶지 않소!"

    "저도 조조와 결전할 마음을 먹고 있는데 어찌 투항하겠소? 장군들은 청컨대 돌아가시오. 제가 주공을 만나겠소.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 소."

    정보 등이 작별해 떠난다. 다시 오래지 않아 제갈근과 여범 등 한 무리 문관이 방문한다. 주유가 맞이해 들여 인사를 마치자 제갈근이 말한다.

    "사제 舍弟 (자기 아우를 겸손히 이르는 말) 제갈량이 한상 漢上에서 찾아와, 유예주가 동오와 동맹을 맺어 조조를 함께 토벌하고 싶다 는 것을 이야기했소. 문무 관리들이 상의했지만 아직 결론 나지 않소. 사제가 사자로 찾아온지라 제 감히 여러 말씀을 드릴 수 없어 오로 지 도독께서 오셔서 이 일을 결단해 주시기를 기다렸소."

    "공의 생각은 어떻소?"

    "항복하자니 안이하고, 싸우자니 지키기 어렵소."

    주유가 웃는다.

    "제게 생각이 있으니 내일 함께 가서 의논을 정합시다."

    제갈근 등이 인사하고 물러난다. 그런데 다시 여몽과 감녕 등 한 무리가 찾아왔다고 한다. 주유가 들어 오라 해서 역시 그 일을 의논한다. 싸워야 한다는 이도 있고 항복해야 한다는 이도 있어 서로 언쟁한다. 주유가 말한다.

    "여러 말씀 하실 것 없소. 내일 모두 가서 공론을 정합시다."

    이에 사람들이 인사하고 떠난다. 주유가 씁쓸하게 웃는다.

    저녁에 이르러, 노자경이 공명을 이끌고 인사하러 왔다고 보고한다. 주유가 중문을 나가 영접해 들인다. 인사를 마쳐 손님과 주인 자리 에 각각 앉는다. 노숙이 먼저 주유에게 묻는다.

    "이제 조조가 대군을 몰아 남침 南侵하니 화친과 전쟁 두 가지 길이 있소. 주공께서 결단치 못해 장군께 물으려 하시는데 장군 뜻은 어떻 소?"

    "조조가 천자를 명분으로 삼아 그 군대에게 저항할 수 없소. 게다가 그 세력이 강대해 아직 함부로 대적해서는 안 되오. 싸우면 필패이고 항복하면 쉽고 편안하오. 내일 주공을 만나 사자를 보내 항복하겠소."

    노숙이 아연실색해 말한다.

    "그대 말씀이 틀렸소! 강동 기업 基業이 벌써 3대째 이어졌는데 어찌 하루 아침에 타인에게 넘겨 주겠소? 백부(손책)가 유언하기를, 바 깥 일은 장군께 부탁하라 했소. 이제 장군께 의지해 국가를 보전할 것만 태산처럼 믿었는데 어찌 장군마저 유부 懦夫(연약하고 무능한 사내)들 말을 따르시오?"

    "강동 여섯 군에 생령(백성)들이 헤아릴 수 없소. 만약 병혁 兵革 (병기와 갑옷. 전쟁)의 재앙을 입는다면 틀림없이 내게 원망이 돌아올 터, 결단을 내려 항복을 청할 수 밖에요."

    "그렇지 않소. 장군은 영웅이고, 동오는 험고하니 아직 조조가 반드시 그 뜻을 이룬다고는 볼 수 없소."

    두 사람이 논쟁하는데 공명은 수수방관하며 냉소하니, 주유가 말한다.

    "선생은 어째서 비웃는 것이오?"

    "제가 다른 사람을 비웃는 것이 아니라 자경이 시무 時務를 모르는 것을 비웃었을 뿐이오."

    "공명! 그대가 어찌 이렇게 말할 수 있소?"

    "조조는 극히 용병을 잘해 천하 아무도 맞서지 못하오. 일찌기 여포, 원소, 원술, 유표가 감히 그와 대적했소. 이제 그들 모두 조조에게 멸 망돼 천하에 아무도 남아 있지 못하오. 홀로 유예주께서 시무를 모르시고 굳이 그와 쟁형 爭衡 (다퉈 우열을 가림)하고 있소. 지금 외로 이 강하에 있으나, 존망이 아직 확실치 못하오. 장군께서 결단을 내려 조조에게 항복하시면 가히 처자와 부귀를 보전하게 되오. 국조 國 祚 (국운)가 바뀌는 것은 하늘의 뜻에 달렸으니 어찌 족히 애석해 하겠소!"

    노숙이 크게 노해 말한다.

    "그대가 우리 주공더러 국적 (국가의 역적)에게 무릎 꿇고 항복하라 하는 것이오?"

    "제게 계책이 하나 있소. 수고롭게 양고기와 술을 준비해 대접할 것도, 영토를 바치고 인수를 바칠 것도, 또한 몸소 강을 건너 갈 것도 없 소. 다만 한낱 사자를 보내 조각배에 두 사람을 싣고 강 건너 보내면 되오. 조조가 이 두 사람을 얻으면 백만 대군도 모두 갑옷을 풀고 깃 발을 둘둘 말아 물러가리다."

    주유가 말한다.

    "그 둘이 누군데 병력을 물리겠소?"

    "강동에서 이 두 사람을 떠나보내도 큰 나무에서 이파리 하나 떨어지는 셈이요 큰 창고에서 곡식 한 톨 사라지는 셈일 뿐이지만, 조조가 얻으면 틀림없이 크게 기뻐해 물러갈 것이오."

    주유가 다시 대체 그 두 사람이 누구냐 묻자 공명이 말한다.

    "제가 융중에서 기거할 적에 듣자니, 조조가 장하 漳河에 새로 동작 銅雀이라는 대를 하나 지어 올렸는데 그 모습이 극히 장려하다 했 소. 천하 미녀를 널리 뽑아 그곳에 채워 넣었다 하오. 조조는 본래 호색한인데 오래전부터 강동에 사는 교 공에게 두 딸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오. 큰 딸은 대교 大喬라, 작은 딸은 소교 小喬라 일컬어 그 용모가 침어낙안 沉魚落雁 (여자의 아름다음에 넋이 나가 물고기가 가라앉고 기러기가 내려앉음)이요 폐월수화 閉月羞花 (여자의 아름다음에 부끄러워 달과 꽃이 숨음)라지요. 조조가 일찍이 맹서하기 를, '내 한 가지 소원은 사해(천하)를 소평(평정)해 제업 帝業 (제왕의 공업)을 이루는 것이오. 다른 한 가지 소원은 강동의 이교 二喬 를 얻어 동작대에 두고 만년 晚年을 즐기는 것이니 그렇게만 된다면 비록 죽어도 한이 없으리다.' 라고 했소. 이제 비록 백만 대군을 이 끌고 강남을 호시탐탐 노리지만 기실 其實은 이 두 여인 때문이오. 장군께서는 어찌해서 교 공을 찾아가서 천금을 주고 두 딸을 사서 조 조에게 보내지 않으시오? 조조가 두 여인을 얻으면 칭심만의 稱心滿意 (아주 마음에 흡족함)해서 필히 군을 거두리다. 이것이 범려가 서시를 바친 계책과 같은데, 어찌 서두르지 않겠소?"

    "조조가 이교 二喬를 얻고 싶어 한다니 무슨 증험 證驗이 있소?"

    "조조의 어린 아들 조식 '자건'은 붓을 대기만 하면 글이 완성된다고 하오. 조조가 일찍이 부 賦 한편을 짓 게 했으니 바로 동작대부 銅雀臺賦요. 내용을 보면, 다른 집안이 천자가 될 것이라고 했을 뿐 아니라 이교를 취하겠다는 맹서도 했소."

    "그 내용을 공은 외울 수 있지 않소?"

    "문장이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일찍이 외워 두었소."

    "한번 읊어 주시기를 청하오."

    공명이 즉시 동작대부를 낭송한다.

    어진 임금을 따라 노니다 층층 높은 대를 올라 정취를 즐기네
    태부가 넓게 펼쳐져 있고 살펴보니 성덕 聖德이 넘쳐 흐르네
    높다란 문은 산처럼 솟아 쌍 대궐이 하늘에 떠 있는 듯하네
    하늘 높이 멋진 장관을 짓고 서쪽 성에 비각 飛閣을 이었네
    장수 漳水는 길게 흐르는데 저 멀리 동산에서 과일이 영그네
    좌우에 쌍쌍으로 층대를 세워 올려 그 이름 옥룡과 금봉일세
    동쪽과 남쪽에 두 교 씨를 두고서 아침저녁으로 즐기려 하네
    크고 아름다운 서울을 굽어보니 저녁놀 따라 구름이 떠다니네
    즐겁게 재사들이 몰려오니 훌륭한 신하들을 얻을 길몽이네
    봄바람은 훈훈히 불어오는데 온갖 새들은 구슬피 울어대네
    하늘 높이 구름처럼 우뚝 솟아 있고 바라는대로 번창하겠네
    어진 가르침을 우주에 떨쳐 모두 서울로 와 공경을 다하겠네
    옛 환공과 문공이나 이룰 업적이니 어찌 성명 聖明과 견주리오
    훌륭하도다 아름답도다! 혜택을 멀리 떨치는구나
    우리 황가 皇家를 지키고 도와 저 사방을 안녕케 하리라
    천하의 규량 規量을 같게 해 일월 日月처럼 빛나리라
    영원히 귀중히 해 끝이 없으리니 그대 수명이 동황 東皇과 같으리라
    천자를 모시고 오유 遨遊하고 난가 鸞駕를 돌려 천하를 주유하네
    은택과 교화가 사해에 미치니 물산은 풍부하고 백성은 안락을 기리네
    바라건대 이 층대는 영원히 존속해 언제까지나 끝이 없기를!

    (두 교 씨가 들어가는 내용 등은, 원래 시에는 없던 것을 공명이 주유를 격동시키기 위해 임의로 집어넣은 것이다.)

    주유가 듣고 나더니 벌컥 크게 노해 자리를 박차고 북쪽을 손가락질하며 욕한다.

    "늙은 도적아! 나를 업신여기는 게 너무 심하구나!"

    공명이 급히 일어나 그를 말리며 말한다.

    "예전에 흉노의 선우가 강계(국경)을 누차 침범하자 한나라 천자께서 공주를 보내 화친을 맺었소. 이제 민간 두 여자를 어찌 아까워 하 겠소?"

    "공은 모르셨겠지만 대교는 손백부 장군의 주부 主婦(정실부인)요 소교는 제 처요."

    공명이 거짓으로 놀란 체하며 말한다.

    "제가 참으로 몰랐소. 실수로 어지럽게 말했으니 죽을 죄! 죽을 죄를 지었소!"

    "내 맹세코 늙은 도적과 양립치 못하겠소!"

    "옛말에 일을 하기 앞서 세 번은 생각해야 후회가 없을 것이라 했소."

    "제가 백부(손책)의 기탁 寄託 (부탁)을 받았거늘 어찌 조조에게 항복할 리가 있겠소? 아까 한 말들은 다만 시험해 본 것뿐이오. 제가 파양호를 떠나 오면서부터 북벌(북쪽을 정벌)할 마음을 가졌소. 비록 머리에 칼과 도끼를 맞을지언정 그 뜻을 바꿀 수 없으리다. 바라건 대 공명께서도 한팔 거들어 주셔서 함께 조조를 쳐부숩시다."

    "저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바라건대 견마지로를 다해 늘 채찍질을 달게 받겠소."

    "내일 들어가 주공을 만나 뵙고, 출병을 의논하겠소."

    공명이 노숙과 함께 작별 인사를 올리고 나와 서로 헤어져 떠난다. 다음날 아침 손권이 승당 升堂(출근)한다. 왼쪽으로 문관들인 장소, 고옹 등 3십여 인이 있고, 오른쪽으로 무관들인 정보, 황개 등 3십여 인이 있다. 그들 옷차림은 번쩍번쩍하고 허리에 찬 검은 쟁쟁 울리 는데 줄을 나눠 시립해 있다.

    잠시 뒤, 주유가 들어온다. 인사를 마치고, 손권이 위로를 마치자, 주유가 말한다.

    "요새 듣자니, 조조가 병력을 이끌고 한상에 주둔해 서찰을 여기로 보냈다 하던데, 주공의 존의 尊意는 어떠하십니까?"

    손권이 즉시 그 글을 주유에게 보여주니, 주유가 보고 나서 웃으며 말한다.

    "늙은 도적이 강동에 사람이 없는 줄 알고서 감히 이렇게 모욕했을 뿐입니다!"

    "그대 뜻은 어떻소?"

    "주공께서 먼저 문무 관리들과 상의하지 않으셨습니까?"

    "날마다 이 일을 의논했으나 항복을 내게 권하는 이도 있고 싸울 것을 권하는 이도 있소. 내 뜻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 공근께서 결정해줄 것을 청하오."

    "누가 항복을 주공께 권했습니까?"

    "장자포 등이 그렇게 주장하오."

    주유가 즉시 장소에게 묻는다.

    "바라건대 선생께서 항복을 주장하는 뜻을 듣고 싶소."

    "조조가 천자를 끼고 사방을 정벌하고 조정의 이름으로 움직이는데다 요새 다시 형주를 얻어 위세가 더욱 커졌소. 우리 강동이 조조에게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장강뿐이었소. 이제 조조가 크고 작은 전함을 거느린 게 어찌 천 척이나 백 척에 그치겠소? 수륙으로 나란히 진격해 오면 어찌 당하겠소? 일단 항복해 뒷날을 도모하는 것만 못하리다."

    "이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선비의 이야기요! 강동이 개국한 이래 이제 3대에 이르는데 어찌 차마 하루 아침에 폐기하겠소!"

    손권이 말한다.

    "그렇다면 계책은 무엇이오?"

    "조조가 비록 명목은 한나라 승상이지만 실은 한나라 역적입니다. 장군께서 신무 神武와 웅재 雄才로써 부형의 유업에 기반해 강동에 웅 거해 병력은 정예하고 양식은 넉넉합니다. 이야말로 천하를 주름잡아 국가를 위해 잔폭한 무리를 제거해야 하거늘 어찌 역적에게 항 복하시겠습니까? 게다가 조조가 지금 이렇게 온 것은 여러가지로 병가의 금기를 범한 것입니다. 북쪽 지방이 아직 평정되지 않아 마등과 한수가 배후의 우환인데 조조가 남쪽을 정벌하느라 오래 머무니 첫번째 금기입니다. 북방 병사들은 수전에 서툰데 조조가 안마 鞍馬 ( 안장과 말 곧 기마)를 버리고 주즙 舟楫(배)에 의지해 동오와 싸우려 하니 두번째 금기입니다. 더욱이 이제 마침 융동성한 隆冬盛寒 (엄 동설한)이라 말이 뜯어 먹을 풀이 없으니 세번째 금기입니다. 중국(중원지방)의 사졸들을 휘몰아 멀리 강과 호수를 건너 수토 水土 (풍 토)가 맞지 않아 질병이 많이 생기니 비록 병력이 많은들 필패입니다. 장군께서 조조를 잡을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제가 청컨대 정병 수 천을 얻어 하구 夏口로 진군해서 장군을 위해 그를 깨부수겠습니다!"

    손권이 놀라서 쳐다보고 일어나 말한다.

    "늙은 도적이 한나라를 폐하고 자립하려 한 지 오래 되었소. 그가 두려워 한 이들은 두 원 씨, 여포, 유표 그리고 나였소. 이제 그들 영웅 이 이미 멸망해 오로지 내가 아직 남아 있소. 나와 늙은 도적은 맹세코 양립하지 못하리다! 경의 말씀은 그를 쳐야 한다는 것이니 제 뜻에 심히 들어 맞소. 이야말로 하늘이 경을 내게 내린 것이오."

    "신이 장군을 위해 일대 혈전을 벌여 만번 죽은들 사양치 않겠습니다. 다만 장군께서 호의불결 狐疑不定 (여우처럼 의심이 많아 결단 치 못함)하실까 걱정입니다."

    손권이 패검을 뽑아 그 자리에서 주안 奏案 (탁자의 일종) 한 귀퉁이를 베어버리고 말한다.

    "뭇 관리와 장수 가운데 또다시 조조에게 항복할 것을 말하는 자는 이 탁자처럼 될 것이오!"

    말을 마치자마자 그 검을 주유에게 하사하고 그를 대도독으로 봉하고 정보를 부도독으로, 노숙을 찬군교위 贊軍校尉로 삼는다. 문무 관 리 가운데 호령(명령)을 듣지 않는 자는 즉시 그 검으로 처형하라고 한다.

    주유가 검을 받아 들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내가 주공의 명을 받들어 병력을 이끌고 조조를 격파할 것이오. 뭇 장수와 관리들은 내일 강반 江畔 (강가)에 모두 모여 명령을 들으시 오. 만약 늦게 오는 자는 칠금령 七禁令 오십사참 五十四斬(54가지 중대 위반 사항)에 의거해 참하겠소."

    말을 마쳐 손권에게 작별하고 몸을 일으켜 부중을 나간다. 뭇 문무 관리가 각각 아무 말 없이 흩어져 돌아간다.

    주유가 하처 下處 (나그네가 쉬는 곳)로 돌아가 공명을 청해 의논한다. 공명이 도착하자 주유가 말한다.

    "오늘 부중에서 공의 公議 (공론. 중론)을 정했소. 바라건대 조조를 격파할 좋은 계책을 알려 주시오."

    "손 장군 마음이 아직 확고하지 않아 계책을 결정할 수 없소."

    "어찌해 마음이 확고하지 않다 하시오?"

    "마음으로 조조 병력이 많은 것을 겁내어, 소수 병력으로 대군을 맞서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계시오. 장군께서 병력 숫자의 허실을 설명 해서 명료하게 해야 대사를 이룰 수 있소. "

    "선생 말씀이 참 훌륭하오."

    이에 다시 들어가 손권을 만나자 손권이 말한다.

    "공근께서 밤 늦게 오시다니 필시 무슨 까닭이 있겠구려."

    "내일 군마를 동원할 것인데 주공께서 마음에 주저는 없으신지요?"

    "다만 걱정은 조조 병력이 많아 소수 병력으로 대군을 맞서지 못할까 하는 것이지, 다른 의혹은 없소."

    주유가 웃으며 말한다.

    "제가 마침 그것 때문에 의혹을 풀어드리고자 일부러 찾아왔습니다. 주공께서는 조조가 격문에서 수륙 대군이 백만이라 언급해 의구심을 가지셨겠지만 그 허실을 헤아리지 못하셨습니다. 그가 중국(중원)의 병력을 이끌고 온 것은 15, 6만을 넘지 못한데다 오래도록 지쳐 있습니다. 원 씨 병력을 더한 것도 7, 8만에 불과할 뿐이고 아직 다수가 머뭇거리며 복종하지 않습니다. 오래도록 지친 무리와 여우처럼 의심을 품은 무리는 비록 그 숫자가 많아도 족히 두려울 게 못 됩니다. 제가 병력 5만이면 그들을 격파하기에 넉넉합니다. 바라건대 주공 께서 우려하지 마십시오."

    손권이 주유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한다.

    "공긍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제 의혹이 풀리고도 남소. 자포(장소)는 무모 無謀(꾀가 없음)해 내 기대를 크게 저버렸소. 오로지 경과 자경(노숙)이 내 마음과 같을 뿐이오. 경은 가히 자경, 정보와 더불어 날을 잡아 군을 뽑아 전진하시오. 나는 뒤따라 군을 출발시켜 물자와 양곡을 가득 싣고 경을 뒷받침해주겠소. 경이 진군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내게 돌아와 합류하시오. 내 마땅히 조조 도적과 더 불어 결전할 것이니 달리 주저하는 것은 없으리다."

    주유가 사례하고 나가며 곰곰이 생각한다.

    "공명이 벌써 오후(손권)의 마음을 헤아리는데다 그 계획(계책) 또한 나를 한참 넘어서구나. 나중에 필시 강동의 우환이 될테니 그를 죽이느니만 못하리다."

    이에 사람을 시켜 그날밤 노숙을 불러들여 공명을 죽일 결심을 이야기하자 노숙이 말한다.

    "불가하오. 아직 조조 도적놈을 격파하지 못했는데 먼저 어진 선비를 죽인다면, 이것은 도와줄 사람을 스스로 없애는 것이오. "

    "그가 유비를 도와 필시 강동의 우환이 될 것이오."

    "제갈근이 그 친형이니 그에게 시켜 공명을 설득해 동오를 받들게 하는 것이 어찌 묘하지 않겠소?"

    주유가 그 말을 훌륭히 여긴다. 다음날 평명 平明 (해뜰무렵)에 주유가 군영 軍營에 도착한다. 중군 中軍으로 가서 장막 안에 높이 앉는 다. 좌우에 도부수들을 세워 문관과 무장들을 소집해 명령을 듣게 한다. 원래, 정보는 주유보다 나이가 많은데 이제 주유의 벼슬이 더 높 자 마음이 불쾌하다. 그래서 이날 병을 핑계로 출석하지 않고, 맏아들 정자 程咨를 대신 보냈다. 주유가 장수들에게 명령한다.

    "왕법 王法 (국법)은 무친 無親 (친하다고 봐주지 않음)이오. 여러분은 각각 직분에 충실하시오. 지금 한창, 조조가 권력을 농단해 심 지어 동탁처럼 천자를 허창에 가둬 두고, 폭병(난폭한 군대)을 국경에 주둔했소. 내 이제 명령을 받들어 그를 토벌할 터, 여러분은 아무 쪼록 모두 노력해 전진하시오. 행군 시에 백성들을 괴롭혀서는 안 될 것이오. 수고한 자 포상하고, 죄지은 자 징벌할 것이니 아울러 제 멋대로 행동하지 마시오."

    명령을 마치고, 즉시 한당, 황개를 선봉으로 삼아 휘하 전선을 거느려 즉시 출발해 삼강구 三江口 (현재 강소성 오강현 북쪽에서 오송강, 누강, 동강이 나뉘는 곳)로 먼저 가 주둔해 따로 명령을 기다리게 한다. 장흠, 주태는 제2대, 능통, 반장은 제3대, 태사자, 여몽은 제4대, 육손, 동습은 제5대가 된다. 여범, 주치는 사방을 순찰하고 경계하는 직무를 맡는다. 주유가 이들 여섯 개 부대를 독려해 수륙병진 水陸 並進 (물과 뭍으로 동시에 진군)해 날을 정해 모이게 한다.

    출동 명령을 마치자 장수들이 각자 선박과 군기를 수습해 출발한다. 정자가 돌아가 부친 정보를 만나, 주유가 병력을 운용하는데 행동 거지에 법도가 있는 것을 이야기하자 그가 크게 놀라 말한다.

    "내 평소 주랑(주유)은 유약해서 장수로서 부족하다 업신여겼다. 이제 그토록 능숙하다니 참으로 장수 재목이다! 내 어찌 불복하겠냐?"

    친히 군영으로 찾아가 사죄한다. 주유도 손사 遜謝 (겸손히 자책하며 사죄함)한다.

    다음날 주유가 제갈근을 청해 말한다.

    "영제 令弟 (남의 아우를 높인 말) 공명에게 왕좌지재 王佐之才 (왕을 보좌할 재주)가 있는데 어찌해서 몸을 낮춰 유비를 섬기는 것이오 ? 이제 다행히 강동에 왔으니, 선생께서 번거로우시더라도 몸소 좋은 말로 달래어, 영제로 하여금 유비를 버리고 동오를 받들게 하시면, 주공은 훌륭한 보좌를 얻게 되고, 선생은 형제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소? 선생께서 아무쪼록 한번 가주시오."

    "제가 강동에 오고서 촌공 寸功도 없어 부끄럽소. 이제 도독께서 명하시는데 제가 감히 힘을 다하지 않겠소?"

    즉시 말에 올라 역정 驛亭으로 질러 가서 공명을 만난다. 공명이 맞이해 들여서 곡하며 절하고, 서로 오래 만나지 못했던 정을 나눈다.

    제갈근이 눈물흘리며 말한다.

    "아우는 백이, 숙제를 아는가?"

    공명이 속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필시 주랑이 시켜서 나를 설득하러 오신 것이다.'

    답한다.

    "백이와 숙제는 옛날 성현들이지요."

    "백이, 숙제는 수양산에서 굶어 죽게 되어도, 형제 두 사람이 역시 한 곳에 있었네. 내 이제 너와 한 어머니 밑에서 젖을 먹고 자랐는데, 각각 다른 주인을 섬겨 아침저녁으로 만나지 못하니, 백이, 숙제의 사람됨을 볼 때 능히 부끄럽지 않겠는가?"

    "형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정입니다. 아우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의입니다. 저와 형님 모두 한나라 사람입니다. 지금 유황숙은 한실의 후 예이니, 형님이 동오를 능히 떠날 수만 있다면, 저와 더불어 유황숙을 함께 모시는 것이, 위로는 한나라 신하로서 부끄럽지 않고, 골육끼 리 서로 만나게도 되니, 이야말로 정과 의를 둘다 보전할 계책입니다. 형님 뜻이 어떨는지 궁금합니다."

    제갈근이 생각한다.

    "내가 설득하려 왔다가 도리어 설득 당하겠구나.'

    마침내 아무 대답할 말이 없어 일어나 작별하고, 되돌아가 주유를 만나 공명의 말을 자세히 이야기하자, 주유가 말한다.

    "공의 뜻은 어떻소?"

    "제가 손 장군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어찌 배반하겠소?"

    "공께서 이미 충심으로 주공을 섬기시니 더 말씀하지 마시오. 내게 공명을 굴복시킬 계책이 있소."

    슬기와 슬기가 만나 마땅히 합쳐야 할 것이나, 재주와 재주가 다퉈 용납하기 어렵구나.

    과연 주유가 무슨 계책으로 공명을 굴복시키려 할까?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