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60회 장영년이 양수를 난처하게 만들고 방사원이 서촉을 빼앗을 것을 의논한다

    한편, 그 자리에서 유장에게 계책을 바친 이는 바로 익주에서 별가 벼슬에 있는 이로서 이름은 장송이고 영년이라 불린다. 생김새가 이마는 호미날처럼 좁고 머리는 뾰죡한데다 코는 납죽하고 이는 드러나 있다. 키도 작아 5척이 못 되고, 말소리는 구리종이 울리듯하다. 유장이 묻는다.

    "별가께서 무슨 고견으로 장로의 위협을 푸시겠소?"

    "제가 듣건대 허도의 조조는 중원을 소탕했다 하옵니다. 여포, 두 원 씨 모두 그에게 멸망됐습니다. 근래 마초를 격파해 천하무적입니다. 주공께서 바칠 예물을 준비하시면 제가 허도로 가서 조조를 설득해 병력을 일으켜 한중의 장로를 도모하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장로는 적을 막느라 여유가 없으니 어찌 촉을 다시 엿보겠습니까?"

    유장이 크게 기뻐하며 황금, 진주, 비단 등으로 조조에게 바칠 제물로 삼고 장송을 사자로 보낸다. 장송이 이에 몰래 사천의 지도를 그려 소장하고, 종인 몇 기를 데리고 길을 따라 허저로 간다. 어느새 누군가 형주의 공명에게 이를 알리자 공명이 사람을 허도에 들여보내 소식을 탐지한다.

    한편, 장송은 허도에 이르러 관역 안에서 머물며 매일 승상부로 가서 기다리며 조조와 만나기를 요청한다. 알고보니 조조는 마초를 격파 한 뒤부터 뜻을 이룬 듯이 오만해져 매일 주연을 베푼다. 태평무사하니 바깥은 잘 나오지 않고, 국정을 모두 승상부에 머물며 상의한다. 장송이 사흘을 기다리고서야 겨우 그 성명을 전해준다. 좌우의 근시들이 먼저 뇌물을 받고서야 그를 안으로 들이니 조조는 당상에 앉아 있다. 장송이 절을 마치자 조조가 묻는다.

    "그대 주인 유장은 해마다 공물을 바치지 않는데 무슨 까닭이오?"

    "오고가는 길이 험난하고 도적들이 발호하니 능히 통행하지 못합니다."

    조조가 꾸짖는다.

    "내가 중원을 청소했거늘 무슨 도적이 있단 말이오?"

    "남쪽은 손권이요 북쪽은 장로요 서쪽은 유비인데 가장 적은 자도 대갑(무장병력)이 십만이 넘거늘 어찌 태평하다 일컫겠습니까?"

    조조가 보니 장송의 인물이 보잘것 없어 전혀 기쁘지 않은데다 말하는 것도 당돌한지라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 후당으로 들어간다. 좌우에서 장송을 책망한다.

    "그대는 사명으로 왔거늘 어찌 예의를 모르고 당돌하기만 하오? 다행히 승상께서 그대가 멀리서 온 사정을 살피셔 견책을 받지 않았으니 어서 돌아가는 게 좋겠소!"

    "우리 서천은 아첨하는 이가 없소이다."

    그런데 섬돌 아래 한 사람이 호통친다.

    "그대의 서천은 첨녕이 없는데 우리 중원은 어찌 첨녕이 있겠소?"

    장송이 그를 보니 눈썹이 성기고 눈이 가늘며 용모가 수려하고 우아하다. 장송이 성명을 물어보니 바로 태위 양표의 아들 양수 '덕조'이다. 현재 승상 밑에서 주부 벼슬을 하고 있다. 박학다식한데다 말솜씨가 뛰어나고 견식이 남다르다. 장송은 양수가 언변이 뛰어난 인물인 것을 알고 속으로 어려워한다. 양수도 스스로 재능을 믿고 천하의 선비들을 업신여기고 있었는데, 그때 장송이 말로써 풍자하는 것을 보고 바깥의 서원으로 불러내어 손님과 주인으로 나눠 앉아 장송에게 말한다.

    "촉에서 오는 길은 기구한데 멀리 오시느라 고생하셨소."

    "주군의 명을 받자와 오는지라 끓는 탕에 뛰어들거나 불을 밟으라 하신들 사양할 수 없소이다."

    "촉의 풍토는 어떠하오?"

    "촉은 서군 西郡인데 예로부터 익주라 불렀소. 그 길은 금강이 흘러 험난하고 땅은 검각의 웅장함이 이어지오. 둘레가 2백 8 정인데 종횡(동서남북)은 3만 리가 넘소.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서로 가까이 들리며 길거리와 마을이 끊이지 않소. 논밭은 기름지고 땅은 빼어나 해마다 홍수와 가뭄 걱정이 없는 곳이오. 나라와 백성이 부유하니 때 맞춰 관현지악 管絃之樂(음악)을 즐기오. 산출되는 물자는 산처럼 풍성하니 천하에서 따라올 수 없소!"

    양수가 또 묻는다.

    "촉의 인물들은 어떠하오?"

    "문 文은 상여 相如 (사마상여)의 부 賦가 있고, 무 武는 복파 伏波(한나라 복파장군 마원) 같은 재목이 있소. 의 醫는 중경 仲景 (고대 중의학의 대가 장중경)의 재능이 있으며 복 卜은 군평 君平(한나라의 이름높은 선비, 엄준)의 신비로움이 있소. 구류삼교 九流三教 (각 종 학술 유파)에 있어서, '출호기류 出乎其類,발호기췌 拔乎其萃 (같은 무리 가운데 우뚝하게 뛰어남)'의 경지에 이른 이들을 가히 모 두 기재할 수 없으니 어찌 능히 다 헤아리겠소!"

    양수가 또 묻는다.

    "지금 현재 유계옥 劉季玉 (유장)의 수하에 그대와 같은 이들은 몇사람이나 있소?"

    "문무를 두루 갖추고, 지혜와 용기를 족히 구비하며 충의롭고 기개 있는 선비가 적어도 백수십이오. 저 같은 재주 없는 무리야 수레에 싣 고 말(斗)로 헤아릴 수 있어 모두 다 기재하지 못하오."

    "공께서 요새 무슨 직위에 머무시오?"

    "외람되이 별가의 임무를 맡고 있으나 직무를 맡을 만한 재주가 못 되오. 감히 공께서 조정에서 무슨 벼슬이신지 물어도 되겠소?"

    "현재 승상부에서 주부를 맡고 있소."

    "오래전부터 공의 집안은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하셨다 들었거늘 어찌해 묘당에 서서 천자를 보좌하지 못하시고, 구차히 승상부에서 일 개 관리를 하시오?"

    양수가 듣더니 얼굴가득 처참해져(부끄러워져) 억지로 웃으며 말한다.

    "제 비록 하급 관료이나 승상께서 군정과 전량(재물)의 막중한 임무를 맡기시니 조만간 승상의 가르침을 받아 극히 피어날 것인지라 이 렇게 취직했소."

    장송이 웃는다.

    "제가 듣자니 승상께서 문 文은 공맹의 도리를 밝히시지 못하는데다 무 武는 손오(손자와 오자)의 요체에 이르지 못하면서, 오로지 무력 으로 패업에 힘써 높은 자리에 머무시거늘 어찌 능히 가르칠 게 있어 명공을 개발해드리겠소?"

    "공께서 외딴 지방에 머무시며 어찌 승상의 큰 재주를 아시겠소? 공으로 하여금 그 재주를 살피시게 해보겠소."

    좌우를 불러 어느 상자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장송에게 보인다. 장송이 제목을 읽으니, '맹덕신서 孟德新書'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쭉 읽어 보니 모두 13편인데 모두 용병하는 중요한 방법을 다루고 있다.

    장송이 다 읽고 묻는다.

    "공께서 이것을 무슨 책이라 여기시오?"

    "이것은 승상께서 고금을 참작하시고 손자의 13편을 본받아 지으신 게요. 공께서 승상을 재주없다 깔보시지만 이 책은 후세에 전할 만 하지 않소?"

    장송이 크게 웃는다.

    "이 책은 촉의 삼척소동(삼척동자)이라도 능히 암송하거늘 어떻게 '신서'라 하겠소? 이것은 전국시대 무명씨의 저작인데 조 승상께 서 베껴 자기 것으로 삼아, 다만 족하를 기만했을 뿐이오!"

    "승상께서 비장하신 책이라 비록 이미 한 질 帙을 만들었으나 아직 세상에 전하지 않았소. 공께서 촉의 소아들도 줄줄이 암송한다 말 씀하시다니 어찌 속이려 하시오?"

    "공께서 믿지 못하시겠다니 내가 암송해보리다."

    곧 맹덕신서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쭈욱 낭송하는데 한 자도 틀리지 않는다. 양수가 크게 놀라 말한다.

    "공께서 과목불망 過目不忘 (한번 보면 잊지 않음)하시니 참으로 천하의 기재이시오!"

    훗날 시가 지어져 기렸다.

    기이하고 생김새가 이상하니 청아한 이를 예우함이 드무나
    그 말은 삼협의 물을 쏟는 듯하고, 한눈에 책 열 줄을 보네
    담력은 서촉에서 으뜸이요 문장은 태허를 가로지르고
    제자백가를 아울러 일람하고도 빠뜨리는 것이 없구나

    그 자리에서 장송이 작별하려 하자 양수가 말한다.

    "공께서 잠시 관사에 머무시면, 제가 다시 승상께 아뢰어, 공으로 하여금 면군(임금을 만남)하게 하리다."

    장송이 고마워하며 물러난다. 양수가 들어가 조조를 만나 말한다.

    "방금 승상께서 어째서 장송을 홀대하셨습니까?"

    "그 언어가 불손한지라 내 일부러 홀대했소."

    "승상께서 일찍이 예형도 용납하셨거늘 어찌 장송을 받아들이지 못하시겠습니까?"

    "예형은 문장이 당금 當今에 떨치니 내 차마 죽이지 못했소. 장송이 유능하오?"

    "우선 그 입이 현하(급히 흐르는 하천) 같을 뿐더러 그 변재도 거침이 없사옵니다. 방금 제가 승상께서 지으신 맹덕신서를 보여주자 그 가 한번만 보고도 즉시 능숙히 암송하였습니다. 이토록 박문강기(박식하고 기억력이 뛰어남)한 이는 세상에 드뭅니다. 장송이 말하기를 이 책은 전국시대 무명씨가 지었으며 촉의 소아들도 모두 능숙히 암기한다 하였습니다."

    "옛사람과 내가 암합(우연이 맞아떨어짐)하지 않으란 법 있소?"

    명을 내려 그 책을 발기발기 찢어 불사르라 한다. 양수가 말한다.

    "이 사람으로 하여금 면군시켜 천조 天朝의 기상을 보게 해야 합니다."

    "내일 내가 서쪽 교장(군사훈련장)에서 점군(열병)할테니 그대가 먼저 그를 데리고 와서 아군의 강성함을 보게 하고, 되돌아가 '내가 날을 정해 강남을 함락하고 곧 서천을 거두겠다'라고 전하게 하시오."

    양수가 명을 받들어 다음날 장송과 더불어 서쪽 교장으로 간다. 조조가 호위웅병 (조조의 친위대) 5만을 점군하니 과연 투구며 갑옷이 선명하고 몸에 걸친 전포가 찬란하다. 북소리 징소리 하늘을 뒤흔들고, 과모 戈矛 (창)가 햇빛에 번쩍이며 사방팔방 5대로 나눠 서 있다. 깃발들은 바람에 나부끼며 다채롭고, 인마들은 하늘이라도 뛰어오를 듯하다. 장송이 곁눈질하며 바라본다. 한참 지나 조조가 장송을 불 러 가리켜 보이며 말한다.

    "그대 서천에서는 이토록 영웅스런 인물들을 본 적이 없지 않소?"

    "저희 촉에서는 이러한 병혁 兵革 (군사)을 본 적이 없사옵고 다만 인의로써 다스릴 뿐입니다."

    조조가 낯빛을 바꿔 노려보나 장송은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자 양수가 걸어가 그에게 눈짓한다. 조조가 장송에게 말한다.

    "나는 천하의 쥐떼(소인배)를 초개(잡초)처럼 볼 뿐이오. 대군이 이르는 곳마다 싸워 이기지 못함이 없고, 공격해 취하지 못함이 없소. 나를 따르는 이는 살고, 거스르는 이는 죽은 것을 그대는 아시오?"

    "승상께서 병력을 거느려 이르는 곳마다 싸우면 필승이고 공격하면 반드시 취한 것을 저 역시 평소 알고 있습니다. 지난날 복양에서 여 포를 칠 때, 완성에서 장수와 싸울 때, 적벽에서 주랑을 만났을 때, 화용에서 관우와 마주쳤을 때, 동관에서 수염을 자르고 전포를 버린 것, 위수에서 배를 빼앗아 타고 화살을 피하던 것, 이 모두 천하무적이겠습니다."

    조조가 크게 노해 말한다.

    "천한 선비놈이 감히 내 단처(결점)을 들추냐!"

    좌우에 호통쳐 끌어내 베라 하자 양수가 간언한다.

    "장송은 베여 마땅하나 촉에서 공물을 바치러 온 것을 만약 벤다면 원인(변방지대의 사람)들의 마음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조조의 노기가 아직 가라앉지 않는데 순욱 역시 간언해서야 그 죽음을 면해주고, 곤장으로 난타해 쫓아내도록 명한다. 장송이 관사로 돌 아와 그날밤 성을 나가 서천으로 돌아가려 짐을 챙긴다. 장송이 생각한다.

    '내 원래 서천의 주현들을 조조에게 헌납하려 했으나 이토록 오만한 사람인 줄 누가 알았으랴! 내 올 때 유장 앞에서 큰 소리쳤으니 오늘 앙앙히 빈손으로 돌아가면 틀림없이 촉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겠구나. 내 듣자니 형주 유현덕은 인의를 널리 떨친 지 오래라 하니, 차라리 당장 그리 감만 못하겠다. 이 사람이 어떤지 살펴보고 내 주견대로 하리라.'

    이에 말을 타고 복종(수행원)들을 거느려 형주 경계로 찾아온다. 영주 郢州 입구에 이르러 1대의 군마가 약 5백여 기인데 선두에 1원(1명) 대장이 가볍게 차려입고 말을 세우더니 다가와 묻는다.

    "오시는 분은 장별가 아니시오?"

    "그렇소."

    그 장수가 황망히 하마해 예를 갖춰 말한다.

    "조운 등이 기다린 지 오랩니다."

    장송도 하마해 답례한다.

    "상산 조자룡 아니시오?"

    "그렇습니다. 제가 주공 유현덕의 명을 받들어 왔습니다. 대부께서 먼 길을 지나 말을 몰아오시니 특별히 저 조운에게 명하시어 애오라 지(부족하나마) 술과 식사를 바치라 하셨습니다."

    말을 마치자 병사들이 술과 식사를 무릎꿇어 바치고 조운이 공손히 진상한다. 장송이 생각한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유현덕은 너그럽고 인자하게 객들을 아낀다 하더니, 과연 이렇구나.'

    곧 조운과 몇잔을 마시고, 말에 올라 동행한다. 형주 입구에 이르러 저녁이 되어 관역으로 가니 문 밖에 1백 남짓 사람이 시립하여, 북을 울리며 맞이한다. 한 장수가 말 앞에서 예를 차려 말한다.

    "형장의 장령(군령)을 받들어 왔습니다. 대부께서 멀리서 풍진을 무릅써 오시는지라 저 관모에게 명해 관역의 뜰을 청소하여, 쉬어가 시기를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장송이 하마해 운장, 조운과 함께 관사로 들어가 인사를 나누며 자리잡는다. 잠시 뒤, 술과 식사를 차려, 두 사람이 은근히 권한다. 밤 이 깊도록 마시고서야 자리를 마쳐 하룻밤 숙박한다.

    다음날 아침밥을 먹고 말에 올라 3, 5리를 못 가서 한 떼의 인마가 보인다. 바로 현덕이 복룡, 봉추를 데리고 친히 맞이하러 온 것이다. 멀 리 장송이 보이자 재빨리 먼저 하마해 기다리니, 장송도 황망히 하마해 만난다. 현덕이 말한다.

    "대부의 높으신 명성을 우레처럼 들은 지 오래입니다. 구름과 산으로 가로막혀 머나먼지라 가르침을 듣지 못해 한스러웠습니다. 이제 듣 자니 서울에서 돌아오신다기에 오로지 이렇게 맞이할 따름입니다. 만약 저를 버리시지 않으신다면 저희 보잘것없는 고을이나마 방문하 셔서 잠시 쉬어가십시오. 저의 갈앙 渴仰 (목마르게 동경함)하는 마음을 풀어주신다면, 참으로 천만다행이겠습니다!"

    장송이 크게 기뻐하며 곧 말에 올라 말고삐를 나란히 성으로 들어간다. 부중의 당상에 이르러 각각 예를 베풀고, 손님과 주인으로 나눠 차례 대로 앉아 연회를 열어 환대한다.

    음주하는 사이, 현덕이 오로지 한가한 이야기만 하며, 서천 이야기는 제기하지 않는다. 장송이 건드려본다.

    "이제 황숙께서 형주를 지키시는데 군현이 몇이나 됩니까?"

    공명이 말한다.

    "형주는 바로 동오에게 빌린 것이라 그들이 늘 사람을 보내 돌려달라 독촉합니다. 이제 우리 주께서 동오의 사위이신지라 잠시 여기 안 신 安身하고 계시오."

    장송이 말한다.

    "동오는 6군 81주를 ��거하여백성은 강성하고 나라는 부유하거늘, 아직도 만족을 모른단 말씀이오?"

    방통이 말한다.

    "우리 주께서는 한조의 황숙이시지만 오히려 주군을 점거하지 못하고 계시오. 나머지 모두는 한조의 모적 蟊賊 (탐관오리/역적)으로서 모조리 강한 세력을 믿고 토지를 빼앗았으나 오로지 슬기로운 이들만 그것을 못마땅해 하오."

    현덕이 말한다.

    "두 분은 말씀을 멈추십시오. 제가 무슨 덕이 있어서 감히 많은 것을 바라겠습니까?"

    장송이 말한다.

    "그렇지 않습니다. 명공께서는 곧 한실의 종친이시며 인의를 사해 가득 떨치시고 계십니다. 여러 고을을 점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 니와 곧 정통을 이어서 제위에 오르셔도 역시 분외(본분을 벗어남)가 아니옵니다."

    현덕이 두손 모아 사례한다.

    "공의 말씀이 너무나 과분하시니 제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이로부터 잇달아 장송에게 주연을 베풀기를 사흘이지만 서천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장송이 작별해 가려 하자 현덕이 십리장정(십리 마다 설치한 역참)에서 연회를 베풀어 배웅한다. 현덕이 술잔을 들어 장송에게 말한다.

    "대부께서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사흘을 머물러 주시는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오늘 서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나 가르침을 들을지 모 르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줄줄 눈물을 흘리자 장송이 생각한다.

    '현덕이 이토록 너그럽고 인자하게 선비를 아끼거늘 어찌 그를 버리리오?'

    이에 말한다.

    "저 역시 아침저녁으로 따라다니며 모셔드리고 싶사오나, 아직 방편이 없어 한스럽습니다. 제가 형주를 살펴보니, 동쪽은 손권이 있어 늘 호랑이처럼 웅크리고 있고, 북쪽은 조조가 있어 늘 고래처럼 집어삼키려 합니다. 아무래도 오래 연연할 곳은 못 되옵니다."

    현덕이 말한다.

    "전부터 이렇게 알고 있사오나, 다만 아직 안적 安跡(안정)할 곳이 없습니다."

    "익주는 험새 (지형이 험준해 지키기 쉬운 곳)요 옥야천리(기름진 들이 천리에 걸침)이며 백성은 강성하고 나라는 부유합니다. 지능(학 식과 재능) 있는 선비들이 오래전부터 황숙의 덕을 사모해왔습니다. 만약 형, 양의 무리를 일으켜 서쪽으로 몰아쳐 온다면 패업을 이뤄 한실을 중흥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유 익주께서도 제실의 종친이신데다 은택을 촉에 베푸신지 오래입니다. 어찌 다른 이가 빼앗으려 한들 흔들리겠습니까?"

    "주인을 팔아 영예를 구하고자 함이 아니옵니다. 이제 명공을 만나 감히 제 간담을 피력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유계옥께서 비록 익주를 가지고 계시나 품성이 어둡고 나약한데다 어진 이를 뽑거나 유능한 이를 쓸 줄을 모릅니다. 게다가 장로가 북쪽에서 늘 침범할 생각이니 인심이 흩어져 밝은 주공을 바라고 있사옵니다. 제가 이렇게 길을 떠난 것은 조조를 참으로 따르고자 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적이 방자한 간웅으로서 오현만사 傲賢慢士 (어진 이를 태만히 업신여김)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명공께서 서천을 선취하 여 기반으로 삼고 그 뒤 북쪽으로 한중을 도모하시고 중원을 거둬들여 천조를 바로잡아 그 이름을 청사에 드리우시면 공적이 비할 데 없 이 크게 되옵니다. 명공께 과연 서천을 취할 뜻이 있다면 제가 바라건대 견마지로를 다해 내응하겠사옵니다. 균의(의견의 높임말)는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군의 후의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유계옥은 저와 같은 종친이라 만약 그를 친다면 천하가 저를 침뱉고 욕할까 두렵습니다."

    "대장부가 처세함에 있어, 마땅히 노력해 공업을 건립하자면 먼저 채찍을 들어야 합니다. 이제 취하지 못하면 타인이 취했을 때 뉘우 쳐도 늦습니다."

    "제가 듣자니 촉으로 가는 길이 기구하여, 천산만수(산과 강이 첩첩하게 험난함)라서 두 수레가 나란히 갈 수 없고, 말들은 말고삐를 잇 달아 갈 수없다 합니다. 비록 취하려 한들 무슨 양책을 쓰겠습니까?"

    장송이 옷소매에서 한 장의 지도를 꺼내 현덕에게 건네주며 말한다.

    "제가 명공의 성덕을 느껴 감히 이 지도를 바칩니다. 곧 촉의 도로를 알 수 있습니다."

    현덕이 펼쳐서 보니 위에는 지리, 행정(노정/길), 멀고 가까움과 넓고 좁음, 산천의 험준한 요충지, 부고( 국가의 창고)와 전량( 재물과 양식)을 일일이 명백히 적었다. 장송이 말한다.

    "명공께서 어서 도모하십시오. 제게 심복 계우 두 사람이 있사온데, 법정 法正과 맹달 孟達입니다. 이 두 사람이 반드시 도와줄 것입니다 . 두 사람이 형주에 도착하면 심사를 함께 의논하실 수 있습니다. "

    현덕이 두 손 모아 사례한다.

    "청산은 늙지 않고, 푸른 물은 오래 머무는 것처럼 잊지 않고, 뒷날 성사되면 반드시 후하게 보답하겠습니다."

    "제가 밝은 주군을 만나 마음을 다해 고해드리는 것이지 어찌 보답을 바라겠습니까?"

    이야기를 마치고 작별한다. 공명이 운장 등에게 명해 수십 리를 호송하고 돌아오게 한다.

    장송이 익주로 돌아와 먼저 우인(친구) 법정을 만난다. 법정의 자는 효직 孝直이요 우부풍군 右扶風郡 사람이며 현사(어진 선비) 법진 法真의 아들이다. 장송이 법정을 만나 준비한 것을 말한다.

    "조조는 어진 이들을 업신여기고 오만하니 함께 동고동락할 수 없소. 내 이미 익주를 유황숙께 허하였는데 오로지 형과 더불어 의논하고 자 하오."

    "내가 헤아리기에도 유장은 무능하여, 이미 마음 속으로 유황숙을 바라본지 오래요. 이토록 마음이 같은데 어찌 머뭇거리겠소?"

    잠시 뒤 맹달이 도착한다. 맹달의 자는 자경 子慶인데 법정과 동향이다. 맹달이 들어와, 법정과 장송이 밀어를 나누는 것을 본다. 맹달이 말한다.

    "내 이미 두 분의 뜻을 아오. 장차 익주를 바치려 할 따름이지요?"

    장송이 말한다.

    "바로 그렇게 하고자 하오. 형께서 한번 헤아려보시오. 누구에게 바쳐야 합당하겠소?"

    "유현덕이 아니면 불가하오."

    세 사람이 손뼉을 치며 크게 웃는다. 법정이 장송에게 말한다.

    "형께서 명일 유장을 만나 어떻게 하시겠소?"

    "내 두분을 사자로 천거해 형주로 가시게 하겠소."

    두 사람이 응낙한다.

    다음날, 장송이 유장을 만나니 유장이 묻는다.

    "맡긴 일은 어찌되었소?"

    "조조는 바로 한나라 역적이라 천하를 찬탈하고자 하니 말할 게 못됩니다. 그는 이미 이곳 서천을 취할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렇다면 어찌해야겠소?"

    "제게 한가지 꾀가 있사오니 틀림없이 장로 張魯와 조조로 하여금 감히 함부로 서천을 범할 수 없게 만들 것입니다."

    "어떠한 계책이오?"

    "형주 유황숙께서는 주공과 같은 종친이신데 인자하시고 너그러워 장자 長者의 풍모가 있습니다. 적벽오병(적벽대전) 뒤에 조조가 듣기 만 해도 간담이 쪼개진다는데 하물며 어찌 장로 따위겠습니까? 주공께서 어찌 사자를 보내 동맹을 맺어 외원(외부의 지원군)으로 삼지 않으시겠습니까?"

    "나 역시 그런 마음을 가진 지 오래요. 누가 사자가 돼야겠소?"

    "법정과 맹달이 가지 않으면 불가합니다."

    유장이 즉시 두 사람을 불러 서찰을 1봉 다듬어 쓴다. 법정을 사자로 보내 먼저 우호를 맺게 하고, 맹달에게 정병 5천을 줘서, 서천을 도 우러 오는 현덕을 영접하라고 명한다.

    한창 상의하고 있는데 누군가 바깥에서 뛰어들어 얼굴 가득히 땀을 흘리며 외친다.

    "주공께서 만약 장송의 말을 들으신다면 41 주군이 타인에게 넘어갑니다!"

    장송이 크게 놀라 바라보니 서랑 중파 출신의 황권 '공형'이다. 현재 유장 밑에서 주부 벼슬을 하고 있다. 유장이 묻는다.

    "현덕은 나와 동종 同宗이라 그와 맺어서 지원군으로 삼고자 하거늘, 그대는 어찌 이렇게 말하오?"

    "제가 평소 알기에 유비는 너그럽게 사람을 대하고, 부드러움으로써 굳셈을 이기니 영웅들도 그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멀리 인심을 얻고 가까이 백성의 믿음을 얻고 있습니다. 게다가 제갈량, 방통의 지모가 있고, 관, 장, 조운, 황충, 위연은 날개처럼 돕고 있습 니다. 촉으로 불러들여 그를 한낱 부곡의 우두머리로 대하면, 유비가 어찌 기꺼이 납작 업드려 지내기만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그를 객례로써 대하면 또한 한 나라에 두 주군이 있을 수 없는 법입니다. 이제 신의 간언을 들어주시면 서촉은 태산처럼 안정될 것이옵니다. 장송은 어제 형주에서 왔으니 틀림없이 유비와 공모했습니다. 먼저 장송을 참한 뒤 유비를 절멸시키면 서천은 천만다행입니다."

    유장이 말한다.

    "조조와 장로가 도래하는데 어찌 막아내겠소?"

    "국경과 요새를 걸어잠그고 해자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게 쌓아 시절이 좋아지기를 기다림만 못하옵니다."

    "적병이 범계(경계를 침범함)하면 눈썹에 불붙은듯 다급해지는데 시절이 좋아지기를 기다림은 안일한 대책이오."

    결국 그 말을 따르지 않고 법정을 파견하려 하는데 다시 누군가 저지하며 말한다.

    "불가! 불가합니다!"

    유장이 바라보니 장전종사관 왕루다. 왕루가 머리를 조아려 말한다.

    "주공께서 이제 장송의 말을 들어주시면 스스로 화를 불러들이게 됩니다."

    "그렇지 않소. 나는 유현덕과 좋게 맺어, 참으로 장로를 막아내고 싶소."

    "장로의 침범은 옴이나 종기 같은 가벼운 질병이오나 유비가 서천으로 들어옴은 심복의 큰 질환입니다. 하물며 유비는 일세의 효웅으로서 먼저 조조를 섬기다 해칠 궁리를 했으며, 그뒤 손권을 따르다 형주를 빼앗았습니다. 그 속셈이 그러하니 어찌 함께하겠습니까? 이제 불러들이시면 서천은 끝장입니다!"

    유장이 꾸짖는다.

    "다시는 어지러운 말을 마시오! 현덕은 나와 동종이거늘 그가 어찌 내 기반을 빼앗는단 말이오!"

    두 사람을 끌어내라 지시한다. 법정이 바로 떠나간다. 법정이 익주를 벗어나 형주로 가서 현덕을 만난다. 현덕에게 참배를 마치고 서신을 바치자 현덕이 봉투를 뜯어 살핀다. 편지는 이렇다.

    "족제(같은 집안의 어린 사람) 유장이 재배 드리오며 현덕 종형 장군 휘하에 편지를 바치옵니다. 우레 같으신 명성을 들은 지 오래이나, 촉도가 기구하여 여태 공물을 드리지 못한 점, 몹시 황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제가 듣기에, '길흉사에는 서로 구하 고, 어려움이 닥치면 서로 돕는다'라고 합니다. 붕우들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같은 종족 사이겠습니까? 이제 장로가 북쪽에서 조만간 흥병해 저희 땅을 침범할 것이라 몹시 불안합니다. 특별히 사람을 보내 척서 尺書(서신)를 바치오니 아무쪼록 잘 들어주시기 바라옵니 다. 동종 사이의 정을 생각하시고, 수족의 의리를 다하시려 하신다면 즉시 군을 일으켜 저 미친 도적들을 뿌리뽑아 주십시오. 영원히 순치(입술과 이처럼 서로 의지가 되는 사이)가 되면 제 스스로 크게 사례하겠습니다. 글로 미처 말씀을 다 드리지 못하오니, 오로지 거기 車騎 (대오를 갖춘 차마)를 기다리겠나이다."

    현덕이 읽고나서 크게 기뻐하며 연회를 베풀어 법정을 접대한다. 술이 몇차례 돌자 현덕이 좌우를 물리고 은밀히 법정에게 말한다.

    "오래전부터 효직(법정의 자)의 영명함을 우러렀습니다. 장 별가께서 성덕을 많이 이야기하셨습니다. 이제 가르침을 받으면 평생 몹시 위안이 되겠습니다."

    법정이 사례한다.

    "촉의 작은 관리일뿐데 어찌 족히 말씀드리겠습니까? 무릇 듣건대 말은 백락 伯樂 (말을 잘 감정하던 사람)을 만나야 울며, 사람은 지 기를 만나야 죽을 수 있다 합니다. 장 별가께서 지난번에 드린 말씀에 장군께서는 뜻이 계신지요?"

    "제 한몸은 기객(남의 집에 기대어 얻어먹고는 사람)일 뿐이라 여태 마음이 상하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생각컨대 초료(뱁새) 는 가지 하나면 충분하나, 교토(교활한 토끼)는 몸을 숨길 굴이 세개나 된다는데 하물며 사람의 경우이겠습니까? 촉은 풍성하고 넘 치는 땅이라니 취하고자 하지 않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유계옥께서는 저와 같은 종친이시라 차마 도모할 수 없습니다."

    "익주는 천부지국 (하늘이 내린 땅/ 지형은 험준하고 물산은 많은 땅)이라 난을 다스릴 주군이 아니시면 머물지 못할 곳입니다. 이제 유 계옥은 어진 선비를 쓸 줄 모르니 그 기업은 머지않아 반드시 타인에게 속할 것입니다. 오늘날 스스로 장군께 기탁하니 놓치셔선 아니 되옵니다. 어찌 듣지 못하셨습니까? 축토선득 逐兔先得 (토끼를 쫓아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다)이라 하였습니다. 장군께서 익주를 취하 시겠다면 저는 효사 效死 (목숨을 바쳐 보답함)하겠나이다."

    현덕이 두손 모아 사례한다.

    "상의해보겠습니다."

    그날 연회가 끝나자 법정이 관사로 돌아가는 것을 공명이 몸소 배웅한다. 현덕이 홀로 앉아 생각에 잠겨 있자 방통이 진언한다.

    "결단해야 할 일을 결단치 못하는 이야말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주공께서 고명하신데 어찌 많이 머뭇거리십니까?"

    현덕이 묻는다.

    "공의 생각하기에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형주는 동쪽으로 손권이 있고 북쪽으로 조조가 있어 뜻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익주는 호구가 백만이요 인물이 많고 부유하니 가히 대업을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다행히 장송과 법정이 내조하겠다니 이는 하늘이 주신 기회인데 어찌 머무거리겠습니까?"

    "이제 나와 수화 水火(물불처럼 서로 용납치 못하는 사이)처럼 대적하는 자는 조조입니다. 조조는 엄격한데 저는 너그러우며, 조조는 난폭한데 저는 인자하며, 조조는 속이는데 저는 충심을 다합니다. 늘 조조와 상반되게 행동해 일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제 작은 이 익 때문에 천하에서 대의를 잃는 것을 저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방통이 웃으며 말한다.

    "주공의 말씀은 비록 천리에 합당하긴 하오나 이산지시 離亂之時 (이합집산하고 분란하는 시기)에 병력을 동원해 다투는데 한가지 길만 있지 않습니다. 상리 常理 (상식)에 사로잡히면 한발짝도 가지 못합니다. 마땅히 권변 權變 (임기웅변)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겸약공매 兼弱攻昧 (약한 나라를 합병하고 어지러운 나라를 공격함)하며, 역취순수 逆取順守 (정도가 아닌 것으로써 취해, 정도로써 지킴)하는 것이 곧 탕왕과 무왕의 길입니다. 평정된 뒤에 그를 의로써 보답하고 큰 나라에 봉해준다면 어찌 신의를 저버린 것이겠습니까? 오늘날 취하지 못하면 결국 타인이 취할 따름입니다. 주공께서 아무쪼록 깊이 생각하소서."

    현덕이 번쩍 깨닫는다.

    "금석 같은 말씀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이에 공명을 불러, 병력을 일으켜 서쪽으로 갈 것을 함께 의논하자 공명이 말한다.

    "형주는 중요한 곳이라 반드시 병력을 나눠 지켜야 합니다."

    현덕이 말한다.

    "제가 방사원, 황충, 위연과 더불어 서천으로 먼저 갈 테니, 군사께서 관운장, 장익덕, 조자룡과 더불어 형주를 지키십시오."

    공명이 응낙한다. 이에 공명이 형주 수비를 총괄한다. 관공(관운장)은 양양 襄陽의 요로를 지키며 청니 青泥의 애구(좁고 험한 산의 길 목)를 맡는다. 조운은 강릉에 주둔하며 공안을 지킨다. 현덕이 명해 황충이 전부 前部(선두)를 맡고 위연은 후군 後軍을 맡는다. 현덕 스스로 유봉, 관평과 더불어 중군에 머물며 방통을 군사로 삼아 마보군(기병과 보병) 5만을 이끌고 서쪽으로 길을 떠난다.

    출발에 즈음해 요화 廖化가 1군을 거느리고 귀순한다. 현덕이 요화더러 운장을 보좌해 조조를 막게 한다. 이해 동월 冬月 (음력 11월)에 병력을 이끌고 서천으로 출발한다. 얼마 못 가, 맹달이 맞이해 현덕을 찾아뵙고 유익주께서 자신더러 5천 병력을 이끌고 멀 리 와서 영접하라 하셨다고 말한다. 현덕이 사자를 익주로 들여보내 먼저 유장에게 보고하게 한다. 유장이 글을 써서 현덕의 행군 경로 에 있는 주군들더러 전량 錢糧(재물과 식량)을 공급하게 명한다. 유장이 스스로 부성 涪城을 나와서 몸소 현덕을 영접하고자, 즉시 명을 내려 수레, 장막, 깃발, 갑옷을 준비하되 일을 선명히(명백히/확실히) 하라 한다. 주부 황권이 들어와 간언한다.

    "주공께서 이렇게 가시면 반드시 유비에게 해침을 당하십니다. 제가 식록을 다년간 받아온지라 차마 주공께서 타인의 간계에 빠지심을 볼 수 없사오니 바라건대 거듭 살펴주소서."

    장송이 말한다.

    "황권의 이런 말은, 종족 사이의 의리를 멀어지게 하고, 도적들의 위세를 북돋는 것이니 참으로 주공께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이에 유장이 황권을 꾸짖는다.

    "내 뜻이 이미 정해졌거늘 네가 어찌 거스르냐!"

    황권이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리며 가까이 유장의 옷을 입으로 문 채 간언한다. 유장이 크게 노해 옷을 찢고 일어나지만 황권이 놓아주지 않아 앞니 두개가 갑자기 빠진다. 유장이 좌우에 소리쳐 황권을 끌어내니 황권이 크게 울며 돌아간다.

    유장이 가려 하는 또 누군가 외친다.

    "주공께서 황공형의 충언을 받아들이시지 않으시다니 곧 스스로 사지 死地로 가시려 하십니까?"

    섬돌 앞에 엎드려 간언한다. 유장이 누군가 보니 바로 건녕유원 建寧愈元 사람으로 이름이 이회이다. 그가 머리를 땅에 조아려 간언한다.

    "제가 듣건대, '임금에겐 잘못을 간언하는 신하가 있고 아버지에겐 잘못을 아뢰는 아들이 있다' 하였습니다. 황공형의 충의로운 말은 당연히 듣고 따르셔야 할 것입니다. 유비의 서천에 진입하는 것을 용인하신다면 호랑이를 문으로 맞이함과 같사옵니다."

    "현덕은 나의 종형이신데 어찌 나를 해치시겠냐? 다시 말하는 자 참하고 말테다! "

    좌우에 소리쳐 이회를 끌어낸다. 장송이 말한다.

    "이제 촉의 문관들이 각자 처자식만 생각하지, 주공을 위해 힘을 다하지 않습니다. 장수들도 공적을 믿고 오만하여, 각자 다른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유황숙을 얻지 않으면 바깥에서 적들이 공격하고, 안에서 백성들이 공격할 테니, 반드시 패하는 길입니다."

    "공께서 나를 깊이 생각해 도와주시는구려."

    다음날, 말에 올라 유교문 榆橋門을 나가는데, 보고가 올라온다.

    "종사 왕루가 스스로 동아줄로 묶어 성문 위에 거꾸로 매달려 한손은 간장 諫章(간언의 글)을 쥐고 한손은 검을 쥔 채 말하기를, 간언을 따르시지 않으면, 그 동아줄을 스스로 끊어 땅에 부딪혀 죽겠다 하옵니다."

    유장이 간장을 가져 오도록 해 살피니 대략 이렇다.

    '익주의 종사, 신 왕루, 피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아룁니다. 제가 듣건대 '양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동에 이롭다.' 하였나이다. 그 옛날 초나라 회왕은 굴원의 말을 듣지 않아, 무관에서 회맹하여, 진나라에게 사로 잡혔습니다. 이제 주공께서 가벼이 큰 고을을 벗어나 부성에서 유비를 맞이하려 하시나, 가는 길은 있어도 돌아올 길을 없을까 두렵나이 다. 장송을 저자에서 참하시고 유비와의 약속을 끊으신다면, 촉의 백성들도 행심 幸甚이요 주공의 기업도 행심이옵니다!"

    유장이 읽고나서 크게 노해 말한다.

    "내가 어진 이와 만나 지란 芝蘭처럼 가까이 하고자 하거늘 어찌 수차례나 나를 업신여기냐!"

    왕루가 크게 외마디를 지르더니 스스로 동아줄을 끊어 땅에 부딪혀 죽는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렸다.

    성문에 거꾸로 매달려서 간언의 글을 바치니
    서슴없이 목숨을 바쳐서 유장에게 보답하네
    황권은 이를 부러뜨렸지만 결국 유비에게 가서
    절개를 잃었으니 어찌 왕루처럼 강직하겠는가!

    유장이 3만의 인마를 거느려 부성으로 온다. 후군 後軍이 재물, 양식, 비단 등을 1천량이 넘는 수레에 싣고 현덕을 맞이하러 온다.

    한편, 현덕의 선두 부대는 벌써 숙저 塾沮에 이르고, 이르는 곳마다 첫째, 서천에서 공급하고, 둘째 현덕이 엄명하게 호령하여, 만약 함부로 백성의 재물을 하나라도 취하는 자는 참하겠다 하니, 이에 이르는 곳마다 털끝 하나 범하지 않는다. 백성들이 노인을 부축하고 어린이들을 이끌고 길을 가득 메워 우러러보며, 향을 사르고 절을 드린다. 현덕이 모두 좋은 말로써 다독인다.

    한편, 법정은 은밀히 방통에게 말한다.

    "얼마전 장송이 밀서를 여기 보내 이르기를, 부성에서 유장을 만나면 바로 그를 도모하라 했소. 이 기회를 절대 놓쳐선 안 되오."

    "이 생각을 절대 드러내 말하지 마시오. 두 사람이 만나는 틈에 바로 도모해야 하지, 만약 미리 누설되면 도중에 변고가 있을 것이오."

    이에 법정이 비밀로 하고 말하지 않는다. 부성에서 성도까지 360리인데 유장이 벌써 도착해 사람을 보내 현덕을 영접하게 한다. 양쪽 군 대가 부강 상류에 주둔하고, 현덕이 입성해 유장과 만나 각각 형제의 정을 나누며 눈물을 흘려 충정을 드러내며 말한다.

    연회가 끝나자 각각 영채로 돌아가 쉰다. 유장이 관리들에게 말한다.

    "황권과 왕루 같은 무리가 가소롭게도 종형의 마음을 모르고 망녕되게 시기하고 질투하였소. 오늘 그분을 만나뵈니 참으로 인의지인 仁 義之人이시오. 내 이제 그분에게서 도움을 받으니 조조, 장로를 어찌 걱정하겠소? 장송이 아니었으면 실패할 뻔했소."

    이에 입고 있던 녹색 겉옷을 벗어 주고, 아울러 황금 5백냥을 주어, 사람을 시켜 성도로 가서 장송에게 주도록 한다.

    이때 유장의 부하 장좌(고위 장교) 유괴, 냉포, 장임, 등현 등 한무리 문무관리들이 말한다.

    "주공께서는 환희하지 마옵소서. 유비는 부드러운 듯 보여도 굳세니 그 마음을 아직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라도 방비해야 합니다."

    유장이 웃으며 말한다.

    "그대들 모두 너무 걱정이 많구려. 내 형께 어찌 두 마음이 있으리오!"

    모두 탄식하며 물러난다.

    한편, 현덕이 영채 안으로 돌아오자 방통이 들어와 말한다.

    "주공께서 오늘 연회에서 유계옥의 동정을 살펴보셨습니까?"

    "계옥은 참으로 성실한 사람입니다."

    "계옥이 비록 선하지만, 그 신하인 유괴, 장임 등은 불평하는 기색이 있으니 그 사이 길흉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제 꾀를 쓰시 는 것만 못합니다. 내일 연회를 베풀어 계옥을 자리로 부르십시오. 벽의(실내에 치는 커튼 같은 것) 속에 도부수 1백 인을 매복해 주공 께서 술잔을 던지는 것을 신호로 술자리에서 그를 죽이십시오. 그리고 성도로 밀고 들어가면, 칼을 칼집에서 뽑을 것도, 활시위를 잡아 당길 것도 없이 편안히 평정할 수 있습니다. "

    "계옥은 바로 나와 같은 종친이고, 성심으로 나를 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나는 촉에 처음 들어와 아직 은신(은혜와 신의)를 세우지 못했는데 이런 짓을 한다면, 위로는 하늘이 용납하지 않고, 아래로는 백성들도 미워할 것입니다. 공의 이러한 꾀는 비록 패자 霸者라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제 꾀가 아니라, 법효직과 장송이 밀서에서 이른 것인데, 일을 늦춰선 안 되며, 조만간 도모해야 한다고만 했습니다."

    그 말이 미처 못 끝나, 법정이 들어와 말한다.

    "저희가 자기를 위해서 아니오라 천명을 따름입니다."

    현덕이 말한다.

    "유계옥은 나와 같은 종친이라 차마 취할 수 없습니다."

    "명공께서 틀리셨습니다. 이렇게 하시지 않으시면, 장로는 이미 촉에 그 모친을 죽인 원수가 있는지라 반드시 취하고자 공격해 올 것입 니다. 명공께서 멀리 산과 강을 지나, 병사와 말을 몰아 기왕에 이곳에 오셨으니 나아가시면 공이 있겠으나 물러나면 아무 이익이 없습 니다. 여우처럼 의심만 많고, 날을 질질 끌면, 계책이 크게 실패합니다. 게다가 기밀이 한번 누설되면 도리어 타인에게 당합니다. 이렇게 하늘과 사람이 따르는 시기를 살려 출기불의 出其不意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로서, 상대가 뜻하지 않은 쪽으로 행동함)로 어서 기업을 세움만 못하오니, 이것이 참으로 상책이옵니다."

    방통 역시 거듭 권한다.

    사람이 살며 몇차례나 지극한 도를 지키겠는가?
    재주 있는 신하들이 한 뜻으로 계책을 권하네

    현덕의 마음이 어떨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