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114회 조모가 어가를 타고 남궐에서 죽고 강유가 군량을 미끼로 위나라군을 이긴다

    한편, 강유가 철군을 전령하니 요화가 말한다.

    “장수가 바깥에 있을 때, 비록 군명(임금의 명)이라도 받지 않는 수 있다 했습니다. 이제 비록 조서가 왔다 하나, 아직 움직여선 안 됩니 다.”

    장익이 말한다.

    “촉인들은 장군이 해마다 군대를 움직인다고, 모두 원망합니다. 차라리 장군께서 이번 승전한 때, 인마를 거둬 민심을 안정시킨 뒤, 다시 양책을 세움만 못합니다.”

    강유가 말한다.

    “좋소.”

    명령을 내려, 각군은 정해진 대로 퇴각한다. 요화와 장익에게, 후미를 엄호해 위군 추격을 막으라 한다.

    한편, 등애가 군을 이끌고 추격하니, 앞쪽으로 촉군 기치가 정연한 채, 인마가 서서히 퇴각함이 보인다. 등애가 탄식한다.

    “강유가 무후(제갈공명)의 병법을 깊이 알구나!”

    이에 감히 추격치 못하고 진군을 멈춰 기산 영채로 돌아간다.

    한편, 강유가 성도로 후주를 만나러 들어가, 자신을 부른 까닭을 물으니, 후주가 말한다.

    “짐은, 경이 변경에서 오랫동안 군대를 거둬 돌아오지 않으니 병사들이 피로할까 두려워, 조정으로 불러들였지, 다른 뜻은 없소.”

    “신이 기산의 영채를 점령해, 공을 이룰 참이었는데 뜻밖에 도중에 중지했습니다. 이는 필시 등애의 반간계에 빠진 것입니다.”

    후주가 침묵하며 아무 말도 못한다. 강유가 다시 아뢴다.

    “신이 맹세코 역적을 토벌해, 국은을 갚으려 합니다. 폐하께서 소인배의 말을 듣고 의심커나 염려치 마소서.”

    후주가 한참 뒤에야 말한다.

    “짐은 경을 의심하지 않소. 일단 한중으로 돌아가, 위나라에 변고가 생기기를 기다려, 다시 정벌하시오.”

    강유가 탄식하며 조정을 나와 한중으로 떠난다.

    한편, 당균이 기산 영채로 가, 이를 알린다. 등애와 사마망이 말한다.

    “군신이 불화하니 반드시 변고가 생기겠소.”

    이에 당균을 시켜, 낙양으로 들어가 사마소에게 알린다. 사마소가 크게 기뻐하며, 촉나라를 도모할 뜻을 품고, 중호군 가충에게 묻는다.

    “내 이제 촉나라를 정벌함이 어떻겠소?”

    “아직은 정벌할 수 없습니다. 천자께서 주공을 의심하는데, 함부로 밖으로 나가면, 필시 안으로서 곤란한 일이 생깁입니다. 작년에 황룡 이 영릉 우물 안에 두번 나타나, 신하들이 경하하며, 상서祥瑞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천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상서가 아니오. 위로 하늘 에 있지 않고 아래로 풀밭에 있지 않으면서 우물 속에 있으니 유수幽囚( 감옥 따위에 갇힘 )의 징조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더니 천자께서 잠룡사潛龍師라는 시를 한 수 지으셨는데, 그 뜻을 살펴보면 명백히 주공을 언급했습니다. 시는 이렇습니다.”

    슬프구나! 용이 갇혀, 깊은 못에서 날지 못하네
    위로 은하수로 날지 못하고, 아래로 풀밭에 쉬지 못하네
    우물 바닥에 또아리 트니, 미꾸라지 따위가 앞에서 날뛰네
    어금니를 감추고 발톱을 숨기니, 아아! 내 처지와 같구나!

    사마소가 이를 듣고 크게 노해, 가충에게 말한다.

    “이 사람이 조방을 본받으려 하구나! 어서 도모하지 않으면 나를 해치겠구나.”

    “제가 바라옵건대 주공을 위해 조만간 도모하겠습니다.”

    이때 위나라 감로 5년 여름 4월, 사마소가 검을 차고 전각을 올라가니, 조모가 일어나 맞이한다. 신하들 모두 주청한다.

    “대장군 공덕이 외외巍巍(태산처럼 우뚝 솟음)하니, 진공晉公으로 봉하시고, 구석九錫(황제가 신하에게 내리는 최고의 예우)을 더하소 서.”

    조모가 고개를 떨어뜨린 채 답하지 않으니, 사마소가 성난 소리로 말한다.

    “우리 부자와 형제 세 사람, 위나라에 대공을 세워, 이제 진공이 되는 것이 못마땅하시오?”

    조모가 응답한다.

    “감히 어명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오?”

    “잠룡의 시는 우리를 미꾸라지 따위로 본 것인데, 이런 법이 어딨소?”

    조모가 대답하지 못한다. 사마소가 비웃으며 전각을 내려간다. 뭇 관리가 두려움에 떤다. 조모가 후궁으로 돌아가, 사중 왕심, 상서 왕경, 산기상시 왕업 세 사람을 불러들여 의논한다. 조모가 눈물 흘리며 말한다.

    “사마소가 장차 찬역할 마음을 품었음은 모두가 알고 있소! 짐이 가만히 앉은 채로 폐위되는 치욕을 받을 수 없으니, 경들은 짐을 도와 그를 토벌하시오!”

    왕경이 아뢴다.

    “불가합니다. 지난날 노나라 소공이 계씨의 횡포를 참지 못했지만, 결국 패주하고 나라를 잃었습니다. 이제 막중한 권력이 사마씨에게 넘어간 지 오래라, 내외 공경대신들이 순역順逆(순행과 역행)의 도리를 따르지 않고, 간적에게 아부하는 이들이,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우선 폐하께는 숙위宿衛( 황제의 호위 병력 )가 너무 적어, 명령을 받들 사람이 없습니다. 폐하께서 은인자중하지 못하시면, 그 재앙이 비할 데 없이 클 것입니다. 우선 천천히 도모하셔지, 결코 서두르면 안 되옵니다.”

    조모가 말한다.

    “이 일을 참으라니, 대체 어떤 일이라야, 못 참는 것이오! 짐의 뜻은 이미 정해졌으니, 곧 죽은들 무엇이 두렵겠소!”

    말을 마치고, 태후에게 고하러 들어간다. 왕심과 왕업이 왕경에게 말한다.

    “사태가 위급하니, 우리가 멸족의 화를 자초해서는 안 되오. 당장 사마 공 부중으로 가서 자수해 죽음을 면합시다.”

    왕경이 크게 노한다.

    “군주의 우환, 곧 신하의 치욕이요, 군주가 치욕을 겪으면 신하는 죽어 마땅하거늘, 어찌 감히 두 마음을 품겠소?”

    왕경이 따르지 않자, 왕심과 왕업이 사마소에게 알리러 가버린다.

    얼마 뒤, 위나라 황제 조모가 궁궐을 나와, 호위 초백을 시켜, 궁전 안의 숙위(호위) 창두蒼頭(푸른 두건을 한 군대/ 노비)와 관동官童(일 꾼) 3백여 인을 불러모아, 북을 울리며 나간다. 조모가 검을 지니고 연가輦車(임금이 타는 수레)에 올라, 좌우에게 호통쳐, 남궐(남쪽 궁 궐)로 나간다. 왕경이 연가 앞에 엎드려, 크게 곡하며 간한다.

    “이제 폐하께서 겨우 수백 인을 이끌고, 사마소를 토벌하시겠다니, 이는 양떼를 몰아 호랑이 입으로 들어갈 따름이라, 헛되이 죽을 뿐, 아무 이익이 없사옵니다. 신이 목숨을 아껴서가 아니오라, 참으로 이 일을 결행하지 마소서.”

    조모가 말한다.

    “나의 군대가 결행했으니, 경은 말리지 마시오.”

    마침내 용문으로 간다.

    그런데 가충이 융복을 입고 말을 타고, 왼쪽으로 성졸, 오른쪽으로 성제를 거느리고 있다. 이들이 철갑을 입은 금병 수천을 이끌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자, 조모가 검을 잡고 크게 외친다.

    “내가 천자이니라! 너희가 궁정으로 쳐들어와, 임금을 시해할 셈이냐?”

    금병들이 조모를 보고, 모두 감히 움직이지 못한다. 가충이 성제를 불러 말한다.

    “사마 공께서 너를 무엇에 쓰려 기르셨냐? 오늘과 같은 일 때문이다.”

    성제가 극戟(창의 일종)을 손에 움켜쥐고, 가충을 돌아보며 말한다.

    “죽일까요? 사로잡아 묶을까요?”

    “사마 공께서 반드시 죽이라 하셨다.”

    성제가 극을 꼬나쥐고, 연가 앞으로 달려드니, 조모가 크게 꾸짖는다.

    “필부놈아! 감히 무례하구나!”

    그 말이 미처 끝나기 전, 성제가 극으로 한번에 조모 앞가슴을 찌르니, 조모가 연가 밖으로 나뒹군다. 다시 한번 극으로 찌르니, 극이 조 모 등을 꿰뚫고 나가, 조모가 연가 옆에서 죽는다.

    초백이 창을 꼬나쥐고 덤비지만, 성제가 극으로 한번에 찔러 죽인다. 나머지 모두 도주하는데, 왕경은 물러서지 않고 와서, 가충을 크게 꾸짖는다.

    “역적놈아! 어찌 감히 임금을 시해하냐!”

    가충이 크게 노해, 좌우에게 호통쳐, 왕경을 포박해, 사마소에게 알린다. 사마소가 입궐해, 조모의 주검을을 보고, 크게 놀란 척, 머리를 연가에 부딪히며 곡한다. 사람들을 시켜 각부 대신에게 알리게 한다. 이때 태부 사마부가 궁궐로 들어와 조모의 주검을 보고, 조모 머리 를 자신 다리에 올려놓고 곡한다.

    “폐하가 시해된 것은 신의 죄입니다!”

    조모의 시신을 관과 널을 갖춰 입관한 뒤, 편전 서쪽에 놓는다. 사마소가 궁전으로 들어와, 신하들을 불러 의논한다. 신하들 모두 오는데, 상서복야尚書僕射 진태만 오지 않는다.

    사마소가 진태 외숙인 상서 손의를 시켜 진태를 부른다. 진태가 크게 곡하며 말한다.

    “공론을 일삼는 이들은, 저를 외숙과 나란히 여기지만, 이제 외숙은 참으로 저와 다릅니다.”

    이에 상복을 입고 들어와, 조모 영전에 곡하며 절한다. 사마소도 곡하는 척하며 묻는다.

    “오늘 일은 어떤 방법으로 처리해야겠소?”

    “가충만 참해서는 천하에 사죄하기에 모자랍니다.”

    사마소가 한참을 생각하다가가 다시 묻는다.

    “차선을 생각해 보시오.”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마소가 말한다.

    “성제가 대역무도하니, 그를 능지처참하고 삼족을 멸해야겠소.”

    성제가 사마소를 크게 욕한다.

    “내 죄가 아니다. 이는 가충이 네놈 명령을 전한 것이다!”

    사마소가 먼저 혀를 자르게 한다. 성제가 죽을 때까지 억울하다 외친다. 성제 아우 성졸도 저자에서 참하고, 삼족을 모조리 멸한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탄식한다.

    사마소가 그해 가충을 시켜, 임금을 남궐에서 죽이니, 홍포 붉게 물드네
    그리고 도리어 성제 삼족을 멸하니, 병사와 백성을 귀머거리로 아는구나

    사마소가 또한 사람들을 시켜 왕경 일가를 하옥한다. 왕경이 정위廷尉(형벌과 투옥을 맡은 관리)의 관청에 있다가, 모친이 결박돼 온 것을 본다. 왕경이 고개를 떨구고, 크게 곡하며 말한다.

    “불효자가 잘못해서 어머니께서 이렇게 되셨습니다.”

    모친이 크게 웃으며 말한다.

    “죽지 않는 사람이 있겠냐? 죽을 자리를 못 찾을까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목숨을 버린들 무슨 한이 있겠냐?”

    다음날, 왕경 일가가 동시(처형장)로 압송된다. 왕경 모자가 웃음을 머금고 형을 받는다. 성 안의 사서士庶(사대부와 서민) 모두가 눈물 흘리지 않는 이 없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짓는다.

    한나라 초기에 왕릉 어머니가 기꺼이 목숨을 끊더니
    한나라 말기에 왕경 어머니가 목숨을 끊는구나
    참으로 열심烈心이 다르지 않으니 그 마음 굳세고 맑네
    절개가 태산과 화산처럼 무겁고 목숨은 깃털처럼 가볍우니
    모자의 명성이 길이 남아서 마땅히 천지와 함께 영원하리라

    태부 사마부가 왕의 예로써 조모의 장례를 치를 것을 청하니, 사마소가 허락한다. 가충 들이 사마소에게 위나라로부터 제위를 선양 받아 오를 것을 권한다. 사마소가 말한다.

    “지난날 주나라 문왕이 천하의 3분의 2를 가졌으나, 여전히 은나라를 따르며 섬겨, 성인께서 ‘지극한 덕’이라 칭하셨소. 위나라 무제(조 조/조맹덕)도 한나라로부터 선위를 받지 않으려 했으니, 내가 위나라로부터 선위를 받지 않으려는 것과 같소.”

    가충 들은 사마소가 아들 사마염에게 넘겨줄 뜻을 품었음을 알고, 더는 권하지 않는다. 이해 6월, 사마소가 상도향공 조향을 황제로 세 우고 연호를 경원원년으로 고친다. 조황이 조환으로 개명한다. 조환 '경소'는 위문제 조조의 손자이자 연왕 조우의 아 들이다. 조환이 사마소를 승상 겸 '진공’으로 봉하고 10만전과 1만필의 비단을 하사한다. 그밖의 많은 문무관료가 각각 작위와 포상을 받는다.

    재빨리 세작이 촉나라에 보고한다. 사마소가 조모를 시해하고 조환을 세웠다니 강유가 기뻐하며 말한다.

    “오늘 위나라를 정벌하여 공명을 세우겠소.”

    이에 오나라로 서신을 보내어 군대를 일으켜 사마의에게 임금을 시해한 죄를 같이 묻자고 한다. 동시에 후주에게 주청해 병사 15만을 일으키고, 수레 수천 량을 동원하며 수레마다 판상(나무상자/ 나무로 만든 객실)을 설치한다. 요화와 장익을 선봉으로 삼아 요화는 자오곡으로 , 장익은 낙곡으로, 강유는 야곡으로 진군한다. 모두 기산의 앞으로 나가서 함께 진군하는 계획이다. 3로군을 일제히 일으켜 기산으로 돌진한다.

    이때 등애가 산채에 머물며 인마를 훈련하다가, 촉군이 3로에 걸쳐서 쇄도함을 듣고, 장수들을 불러 토의한다. 참군 왕관이 말한다.

    “제게 계책이 하나 있는데, 드러내놓고 말씀 드릴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 써서 장군께 바치오니, 태람台覽(살펴봄)하십시오.”

    등애가 다가와서 왕관이 쓴 것을 펼쳐 읽고나서 웃으며 말한다.

    “이 계책이 비록 절묘하지만, 강유를 속여넘기지 못할까 걱정이오.”

    왕관이 말한다.

    “제가 목숨을 걸고 가보겠습니다.”

    “공의 뜻이 굳세니 반드시 성하겠구려.”

    이에 병사 5천을 뽑아 왕관에게 준다. 왕관이 그날 밤 야곡으로 오다가, 촉군 선두부대의 초마哨馬(정찰병)와 마주쳐, 왕관이 외친다.

    “우리는 위나라의 항복하는 병사들이니 주수主帥(최고 지휘관)께 보고하라.”

    초마가 이를 강유에게 알리니, 강유가 병사들은 가로막게 하고, 수장만 접견한다. 왕관이 바닥에서 절하고 엎드린 채 말한다.

    “저는 왕경 조카 왕관입니다. 근자에 사마소가 임금을 시해하고, 저희 숙부 일가를 몰살하니, 제가 통한이 뼛속까지 사무칩니다. 이제 다 행히 장군께서 출병해, 그 죄를 물으신다기에 제 휘하 병력 5천을 이끌고 투항하러 왔습니다. 장군의 지휘를 따라 저 간사한 무리를 소 탕해 숙부의 한을 갚고자 합니다.”

    강유가 크게 기뻐하며 왕관에게 말한다.

    “그대가 진심으로 투항하러 왔는데, 나는 진심으로 대하지 못했소. 아군의 걱정은 군량뿐인데, 이제 군량이 천구에 있으니, 그대가 기산으로 운반해주시오. 나는 기산의 위나라 영채를 치러 가야겠소.”

    왕관이 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계략이 적중했다 여겨, 기꺼이 응낙한다. 강유가 말한다.

    “그대가 군량을 운반하는데, 5천이 다 필요하지는 않을 테니, 3천만 거느리고 가시오. 나머지 2천은 남겨, 길을 인도하게 해서, 기산을 치 러 가야겠소.”

    왕관은 강유가 의심할까 두려워, 병사 3천만 거느리고 떠난다. 강유가 부첨에게, 항복한 위나라 병사 2천을 거느리고, 출정하는 군대를 따라오며 지휘를 받게 한다. 그런데 하후패가 찾아와서 말한다.

    “도독께서 무슨 까닭으로 왕관의 말을 믿으십니까? 제가 위나라에 있을 때, 비록 상세한 사정은 몰랐지만, 왕관이 왕경의 조카란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 말 속에 속임수가 많을 것이니, 청컨대 장군께서 살피십시오.”

    강유가 크게 웃으며 말한다.

    “내 이미 왕관의 속임수를 간파해, 그 병력을 분산하고, 장계취계將計就計(적의 계책을 역이용함)한 것이오.”

    하후패가 말한다.

    “어찌된 까닭인지 말씀해보십시오.”

    “사마소는 조조와 비교되는 간웅이오. 이미 왕경을 죽이고 삼족을 멸했는데, 어찌 친조카를 살려, 관외에서 군대를 거느리게 하겠소? 그 래서 속임수를 알아차렸소. 중권(하후패의 자)의 견해가 나와 꼭 같구려.”

    이에 강유가 야곡으로 나가지 않고, 도리어 길에 병력을 매복하고, 왕관의 간세奸細(간첩 행위)를 방비한다. 열흘이 안 돼서 과연 왕관이 사람을 시켜, 등애에게 문서를 전달하는데, 복병이 그를 잡아온다. 강유가 정황을 캐물은 뒤 ,사서私書(비밀 문서)를 압수한다. 왕관이 사서에서, 8월20일 지름길로 군량을 대채(큰 영채)로 운반하니, 등애가 군대를 단산 골짜기 안으로 보내서 접응하라 해놓았다.

    서신을 전하는 사람을 강유가 죽이고, 내용을 고쳐서 8월 15일, 등애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단산 골짜기로 와서 접응하라 한다. 위나라 병사로 변장시킨 사람을, 위나라 영채로 보내 서신을 전한다. 동시에 사람들을 시켜, 군량을 운반하는 수레 수백 량에서 군량미를 내리고, 대신에 섶과 띠 같은 인화물을 적재하고, 푸른 베로 덮는다. 부첨을 시켜, 앞서 항복한 위나라 병사 2천을 이끌고, 군량 운반을 표시 하는 깃발을 들고 가게 한다. 강유가 하후패와 더불어, 각각 1군을 이끌고 산골짜기로 매복하러 가고, 장서는 야곡으로 나가고, 요화와 장익은 각각 진군하여, 기산을 치게 한다.

    한편, 등애는 왕관의 서신을 받고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답신을 쓴다. 서신을 가져온 이에게 답신을 줘서, 돌아가 보고하라 한다. 8월15 일, 등애가 정병 5만을 이끌고, 단산 골짜기로 온다. 멀리멀리 사람들을 시켜 높은곳을 올라, 널리 살펴보니, 무수한 군량 수레가 끊임없 이 이어져, 산요山凹(산 사이의 낮은 고개)를 따라 가고 있다. 등애가 말을 멈춰 바라보니, 과연 모두가 위군이다. 좌우에서 말한다.

    “이미 해가 저무니, 어서 왕관과 접응하도록 골짜기 어귀로 나가야 합니다.”

    등애가 말한다.

    “앞쪽 산세가 그늘져서, 복병이 있다면 쉽게 퇴각하기 어렵겠소. 일단 여기서 기다려야겠소.”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기병 두 사람이 달려와 보고한다.

    “왕 장군이 군량을 가지고 경계를 넘는데, 촉나라 인마가 추격하니, 어서 구해주시기 바랍니다.”

    등애가 크게 놀라, 서둘러 군대를 다그쳐 전진한다. 시각이 초경(오후 7-9시)에 이르자, 달빛이 대낮처럼 밝다. 그런데 산 뒤에서 함성이 울려, 왕관이 산 뒤에서 치르는 격전을 알려주는 듯하다. 등애가 산 뒤로 달려가자, 수풀 속에서 1군이 튀어나오는데 선두 장수는 부첨이다. 그가 크게 외친다.

    “등애 필부놈아! 우리 주장의 계책에 빠졌구나! 어찌 어서 말에서 내려 목숨을 내놓지 않냐!”

    등애가 크게 놀라 말머리를 돌려 달아난다. 군량 수레 위가 불 붙는 것을 화호號火(봉화)로 삼아, 양쪽 산에서 촉군이 몰려나와 위나라 병사를, 열에 일고여덟을 베어넘긴다. 산 위와 아래에서 모두 외친다.

    “등애를 사로잡으면 1천 금을 포상하고 ,1만 호의 ‘후’로 봉한다!”

    놀란 등애가 갑옷과 투구를 내던지고, 타고 있던 말을 때려서 달아나게 한 뒤, 보졸들 틈에 섞여, 산을 기어오르고 고개를 넘어 달아난다. 강유와 하후패는 말 위에 적장이 탄 줄만 알고 사로잡으려 달려오지만, 등애가 걸어서 달아난 줄을 모른다. 강유가 승리를 거둔 군대를 이끌고, 왕관의 군량 수레들을 맞이하러 간다.

    한편, 왕관은 등애와 밀약을 마치고, 먼저 군량 수레를 정비한 채, 거사를 기다린다. 그런데 심복이 알린다.

    “일이 누설돼, 등 장군께서 대패했는데, 목숨이 어찌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왕관이 크게 놀라 사람을 시켜 초탐하니, 돌아와서 아뢰기를, '3로에 걸쳐 병사들이 몰려오고, 그 뒤로 먼지 구름이 크게 이는데, 사방으 로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한다. 왕관이 좌우에게 소리쳐, 군량 수레를 모두 불사르라 한다. 삽시간에 불빛이 치솟고, 맹렬한 불길이 하늘을 물들인다. 왕관이 크게 외친다.

    “사세가 위급하구나! 모두 죽을 각오로 싸워라!”

    이에 군을 이끌고, 서쪽으로 탈출한다. 배후에서 강유의 군대가 3로에 걸쳐 뒤쫓는다. 강유는 왕관이 목숨을 걸고 위나라로 후퇴하는 줄 알았으나, 뜻밖에도 왕관은 도리어 한중으로 쳐들어간다. 병사가 적어 추격병이 따라붙을까 두려운 왕관은 잔도(절벽을 따라 나무로 만 든 길)와 관애(험준하고 중요한 길목)를 모조리 불태운다. 한중을 잃을까 우려한 강유가, 등애를 추격하지 않고, 군대를 거느리고, 그날 밤 지름길을 따라 왕관을 추격한다. 사방에서 촉나라 군이 공격하자, 왕관이 흑룡강에 몸을 던져 죽는다. 나머지 병사 모두를 강유가 생매장한다.

    강유가 등애를 이겼지만, 도리어 허다한 군량과 마초를 잃은데다, 잔도가 훼손돼 군을 이끌고 한중으로 돌아간다. 등애가 부하 패잔병을 이끌고, 기산 영채로 달아나 조정에 표를 올려, 죄를 청하고, 스스로 그 직위를 강등한다. 사마소는 등애가 수차례 큰 공을 세운 것을 감안해, 강등을 허락치 않고, 다시 두터운 상을 내린다. 등애가 받은 재물을 모조리 피해장병들 가족에게 나눠준다. 사마소는 촉나라 군 이 다시 나올까 두려워, 병사 5만을 등애에게 더 주어 방어하게 한다. 강유가 밤낮없이 잔도를 수리하고, 다시 출병을 의논한다.

    잇달아 잔도를 수리해 잇달아 군대를 내니
    중원을 정벌하지 못하면 죽어도 쉬지 못하리

    아직 승부가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