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115회 후주가 참소를 믿어서 조서를 내려 군대를 되돌리고, 강유가 둔전을 핑계로 화를 피한다

    한편, 촉한 경요 5년 겨울 10월, 대장군 강유가 사람들을 보내, 밤을 새워가며 잔도를 수리하고, 군량과 병기를 정돈한다. 또한 한중에 서 물길을 따라, 선박을 동원한다. 모두 갖춰지자, 후주에게 표를 올려 아뢴다.

    “신이 여러차례 출병, 아직 대공을 이루지 못했으나, 위인들의 심담을 좌동(꺾고 동요시킴)했습니다. 이제 군대를 기른지 오래, 싸우지 않으면 게을러지고, 게을러지면 병이 생깁니다. 하물며 이제 병사들은 목숨을 버릴 생각이고, 장수들은 황명을 받들 생각입니다. 신이 이기지 못하면, 죽을죄를 받겠습니다.”

    후주가 표를 읽고, 머뭇거리며 결단치 못하자, 초주가 자리에서 나와 아뢴다.

    “신이 밤에 천문을 살피니, 서촉 ‘분야’에 장성이 어두워 밝지 못합니다. 이제 대장군이 다시 출병하려 하나, 이번 일은 몹시 이롭지 못합 니다. 폐하께서 조서를 내려 막으소서.”

    후주가 말한다.

    “일단 이번 일이 어떻게 되는지 봐야겠소. 과연 잘못된다면 그때 막겠소.”

    초주가 두세번 간하지만, 후주가 따르지 않는다. 이에 초주가 귀가해, 탄식해 마지않으며, 병을 핑계로 외출하지 않는다.

    한편, 강유가 출병에 즈음해, 요화에게 묻는다.

    “내 이제 군대를 내어, 맹세코 중원을 회복하려는데, 먼저 어디를 취해야겠소?”

    “해마다 군대를 내어 정벌하니 군민이 안녕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위나라 등애는 지모가 뛰어나, 결코 얕잡아볼 이가 아닙니다. 장군께서 기어코 곤란한 일을 강행하시더라도, 이 요화는 감히 함부로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강유가 버럭 크게 노해 말한다.

    “지난날 승상께서 여섯 차례 기산으로 나감도 나라를 위해서였소. 내 이제 여덟 차례 위나라를 정벌함이 어찌 나 한 사람의 사사로움 때문이겠소? 이제 마땅히 조양을 쳐야겠으니 나를 거스르는 자, 참하겠소!”

    이에 요화를 남겨 한중을 지키라 하고, 강유 스스로 장수들과 병사 3십만을 거느리고, 조양으로 진격한다.

    재빨리 ‘천구’에서 기산 영채로 보고가 들어간다. 이때 등애가 마침 사마망과 담병談兵(군사를 의논함)하고 있다가, 이를 듣고 사람들을 시켜 정탐케 하니, 돌아와서 ‘촉나라 군이 모두 조양으로 나온다’고 알린다. 사마망이 말한다.

    “강유가 계책을 잘 쓰니, 이는 필시 조양을 취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기산을 취하러 옴이 아니겠소?”

    등애가 말한다.

    “이번은 강유가 조양으로 나오려 함이 맞소.”

    “공께서 어떻게 아시오?”

    “지난번 강유가 거듭 군량 저장소를 공격했으나, 이제 조양에 군량이 없소. 강유는 우리가 기산만 지키고, 조양을 지키지 않는다고 여겨, 조양을 취하러 오는 것이오. 조양성을 점령한 뒤, 군량과 말먹이풀을 쌓고, 강인들과 연결, 장기전을 꾀할 따름이오.”

    사마망이 말한다.

    “그럼 어떡해야겠소?”

    “이곳 군대를 모두 거둬, 양쪽으로 나눠, 조양을 구원하러 가야겠소. 조양에서 25 리 떨어진 곳에 ‘후하소성’이라고 있는데, 조양의 목구멍처럼 중요하오. 공께서 1군을 이끌고, 조양에 매복해, 군기를 누이고 북을 쉰 채, 사방 성문을 열어 놓고‘이렇게저렇게’ 하시오. 나는 1군을 이끌고 후하에 매복해, 반드시 대승을 거둘 것이오.”

    계책을 정하고 , 각각 계책대로 길을 떠난다. 다만 편장 사찬을 남겨, 기산 영채를 지킨다.

    한편, 강유는 하후패를 선봉 삼아, 1군을 이끌고, 조양을 치게 한다. 하후패가 군을 이끌고 전진, 조양에 다가가자, 멀리 성 위에 깃발 하나 보이지 않고, 성문 네 개가 활짝 열렸다. 하후패가 의심해, 성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장수들을 돌아본다.

    “속임수가 틀림없지 않소?”

    장수들이 말한다.

    “빈 성이 분명합니다. 얼마 안 되는 백성이 있다가, 대장군께서 군을 이끌고 오자, 성을 버리고 모두 떠난 것뿐입니다.”

    하후패가 아직 믿지 못해, 스스로 말을 몰고 성 남쪽을 살피러 가니, 남녀노소 백성이 무수히 모두 서북으로 달아나고 있다. 하후패가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과연 빈 성이로구나.”

    이에 선두에서 돌입하고 나머지 병사도 뒤따른다. 그런데 옹성 瓮城(큰 성 밖 방어용 작은 성) 가까이 이르자, 갑자기 한바탕 포성이 터진다. 성벽 위 북과 피리 소리가 일제히 울리며, 온갖 깃발 사방에 일어서고, 조교(해자 위로 올리고 내리는 다리)가 끌어 올려진다. 하후 패, 크게 놀란다.

    “아뿔싸! 계책에 걸려들었구나!”

    황망히 퇴각하려는데, 성 위에서 화살과 돌, 비처럼 쏟아진다. 가련하게도 하후패가 병사 5백과 함께 모두 성벽 아래에서 전사한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탄식한다.

    대담한 강유, 묘책을 잘 내지만
    등애가 몰래 방비할줄 누가 알랴
    가련타! 한나라로 귀순한 하후패!
    불시에 성 아래에서 화살 맞아 죽네

    사마망의 군대가 성 안에서 몰려나오자, 촉군이 대패해 달아난다. 뒤따라 강유가 구원병을 이끌고 와서, 사마망을 격퇴, 성 가까이 영채를 세운다. 하후패가 사살됐음을 강유가 듣고, 슬퍼해 마지않는다. 이날밤 2경 등애가 하후소성을 나와, 몰래 1군을 이끌고, 촉군 영채로 잠 입한다. 촉군이 대란에 빠져, 강유도 막지 못한다. 성 위에서 북과 피리 소리 하늘을 울리며, 사마망이 군을 이끌고 달려든다. 양쪽에서 협공하자, 촉군이 대패한다. 강유가 좌충우돌 죽기살기로 싸워, 겨우 탈출, 2십여 리를 달아나 영채를 세운다.

    촉군이 두 차례나 패주, 동요하자 강유가 여러 장수에게 말한다.

    “승패는 병가의 상사. 이제 병사와 장수를 잃었으나, 우려할 건 못 되오. 성공과 실패, 이번 일거一舉에 달렸으니 그대들은 시종 변함 없도록 하시오. 퇴각을 입에 올리는 자, 당장 참하겠소.”

    장익이 진언한다.

    “위군이 모두 여기 있으므로 기산은 필시 공허할 테니 장군께서 군대를 정돈해 등애와 싸우며 조양과 후하를 치십시오. 그 사이 제가 1군을 이끌고 기산을 치겠습니다. 기산을 점령하면, 위군을 장안까지 내몰 수 있으니, 이것이 상책입니다.”

    이에 강유가 장익에게 후군을 이끌고 기산을 치라 한다. 강유 스스로 군을 이끌고 '후하'로 가서 등애에게 도전하니, 등애가 군대를 이끌고 출전한다. 양군이 대치하자, 둘이 수십 합을 싸우나, 승부를 가르지 못해, 각각 군대를 거둬, 영채로 돌아간다. 다음날도 강유가 군을 이끌고 도전하나, 등애가 군대를 움직이지 않고 출전치 않는다. 강유가 병사를 시켜 욕설을 퍼붓는데, 등애가 깊이 생각한다.

    ‘촉인들이 우리에게 한바탕 대패하고도 전혀 물러서지 않고, 되려 날마다 싸움을 거니, 필시 군대를 나눠 기산 영채를 치러 갔구나. 그곳 영채를 지키는 장수 사찬은 병사도 적고 지모도 모자라서 반드시 패주할 것이니, 내가 구원하러 가야겠다.’

    아들 등충을 불러, 분부한다.

    “신중히 이곳을 수비하며, 강유가 싸움을 걸도록 놔두고, 함부로 출전치 말라. 내 오늘밤 군을 이끌고, 기산을 구하러 갈 것이다.”

    이날밤 2경, 강유가 영채 안에서 계책을 짜는데, 영채 밖에서 함성이 땅을 울리고, 북과 피리 소리가 하늘을 뒤흔든다. 사람들이 ‘등애가 정병 3천을 이끌고 야습했다’고 알린다. 장수들이 싸우러 나가려는데, 강유가 막으며 말한다.

    “함부로 움직이지 마시오.”

    원래, 등애가 군을 이끌고, 촉군 영채 앞으로 와, 둘레를 정찰한 뒤 빈틈을 노려, 기산을 구원하러 가려던 것이다. 등충은 이미 성 안으 로 들어가 있다. 강유가 장수들을 불러 말한다.

    “등애가 야습하는 척하면서, 필시 기산 영채를 구하러 갈 것이오.”

    이에 부첨을 불러 분부한다.

    “이곳을 수비하되, 함부로 대적하지 마시오.”

    부탁을 마친 뒤, 강유가 스스로 병사 3천을 이끌고, 장익을 도우러 간다.

    한편, 이때 장익이 기산을 공격하자, 영채를 지키는 장수 사찬이 병력이 적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려는데, 홀연히 등애가 군대를 이끌고 나타나 한바탕 쳐부수니, 촉군이 대패한다. 장익이 기산 뒤에서 가로막혀, 귀로가 끊긴다.

    황급한 순간, 홀연히 함성이 크게 울리고 북과 피리 소리 하늘을 뒤흔드는데, 위군이 거꾸로 분분히 달아난다. 좌우에서 보고한다.

    “강백약 대장군께서 달려오셨습니다.”

    장익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군대를 이끌고 접응한다. 양쪽에서 협공하자, 등애가 한바탕 꺾여, 급히 기산 영채로 퇴각해, 싸우러 나오지 않는다. 강유가 군대를 지휘해 사방을 포위해 공격한다.

    한편, 후주는 성도에서 환관 황호의 말을 믿고, 주색에 빠져 조정을 돌보지 않는다. 이때 대신 유염의 처 ‘호 씨가 미모가 아주 뛰어났다 . 그 때문에 궁궐로 들어가, 황후를 알현하면 황후가 붙잡아두고 한달은 지나서야 내보내곤 했다. 유엽이 그 처와 후주가 사통한다고 의심하고 휘하 군졸 5백 인을 불러, 앞에 세운 뒤, 그 처를 꽁꽁 묶어놓고, 병사 하나하나를 시켜 처의 얼굴을 수십 차례 밟고 때리니 그 처가 거의 죽었다가 깨어난다. 후주가 이를 듣고 크게 노해, 유사(형을 집행하는 관리)를 시켜, 유염의 죄를 논의한다. 유사가 논의하길, ‘군졸들은 유염의 처를 때린 사람이 아니고, 얼굴은 형을 받을 데가 아니니, 유염을 저자에서 처형함이 합당하다’라고 한다. 이에 유염을 처형하고 이로부터 그 처를 조정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관료들이 후주를 황음무도하다고 여기고, 후주를 의심하고 원망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이에 현인들이 점점 물러나고 소인배들이 나날이 세력을 키운다.

    이때, 우장군 염우는 촌공(아주 작은 공)도 세우지 못한 몸이지만, 단지 황호에게 아부해, 큰 벼슬을 얻었다. 강유가 기산에서 군대를 거느림을 염우가 듣고 황호를 설득해, 후주에게 아뢰게 한다.

    “강유가 누차 싸우고도, 아무 전공도 없으니, 염우로 대신하게 하소서.”

    후주가 그 말을 따라, 사자에게 조서를 줘서 보내, 강유를 불러들인다. 강유가 마침 기산에서 위나라 영채를 공격하고 있는데, 하루에 세 번이나 천자의 조서가 날아와서 강유에게 군대를 거두라고 선유한다. 강유가 어쩔 수 없이 황명을 따라, 먼저 조양의 병력을 퇴각시키고, 장익과 더불어 서서히 퇴각한다. 등애가 영채 안에 있다가, 한밤에 북과 피리 소리가 하늘을 뒤흔듦을 듣지만, 무슨 의도인지 알지 못 한다. 새벽에 이르러, 사람들이 보고하길, ‘촉군이 모조리 퇴각해 촉군 영채가 텅 비었다’고 하지만, 등애는 적의 계책이 있을까 의심, 감 히 추격치 않는다.

    강유가 한중에 이르러, 인마를 쉬게 하고, 스스로 천자의 사명(사자)과 더불어 성도로 들어가, 후주를 만나려 하지만, 잇달아 열흘 동안 후주를 알현하지 못하니, 의심이 생긴다. 어느날 동화문에 이르러, 비서랑 각정과 마주쳐, 강유가 묻는다.

    “천자께서 저를 부르며 군대를 거두라 하셨는데 공께서 까닭을 아시오?”

    각정이 웃으며 말한다.

    “대장군께서 아직도 모르시오? 황호가 염우로 하여금 공을 세우게 하려고, 조정에 주청해, 조서를 내려 장군을 불러들였소. 이제 듣자니, 등애가 용병에 뛰어나 감당할 수 없자, 그 일을 중지하게 됐소.”

    강유가 크게 노해 말한다.

    “내 이 환관 놈을 죽여버리겠다!”

    각정이 제지한다.

    “대장군께서 무후(제갈공명)의 일을 계승해, 책임이 크고 직무가 막중한데, 어찌 경솔히 움직이려 하시오? 그러다 천자께서 용납하지 않 으시면, 되려 불미스러울 것이오.”

    강유가 고마워한다.

    “선생 말씀이 옳소.”

    다음날, 후주가 황호와 더불어 후원에서 주연을 여는데, 강유가 몇 사람을 데리고 돌입한다. 재빨리 누군가 황호에게 알리니, 황호가 급 히 호산湖山(연못에 인공으로 조성한 가짜 산) 옆으로 피신한다. 강유가 정자 아래에 이르러, 후주에게 절하고, 눈물 흘리며 말한다.

    “신이 기산에서 등애를 포위하고 있을 때, 폐하께서 잇달아 세 차례 조서를 내려, 신을 조정으로 불러 들이셨으나, 아직 성의(천자의 의 중)가 무엇인지 짐작치 못하겠습니다.”

    후주가 묵묵히 말이 없자, 강유 다시 아뢴다.

    “황호가 간교히 권력을 휘두르니, 마치 영제 시대의 십상시와 같습니다. 폐하께서는 가까이 장양, 멀리 조고의 일을 거울 삼으소서. 어서 이 자를 죽여야, 조정이 저절로 청평清平(태평)해지고, 중원을 비로소 되찾을 수 있습니다.”

    후주가 웃으며 말한다.

    “황호는 추주趨走(윗 사람 앞에서 고개 숙이고 종종 걸음을 함)하는 소인배일 뿐, 비록 권력을 휘두른다지만, 역시 아무 것도 못할 것이 오. 지난날 동윤이 매번 이를 갈며 황호를 미워하기에, 짐이 몹시 괴이하게 여겼소. 경은 대체 무엇을 개의介意하오?”

    강유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폐하께서 오늘 황호를 죽이지 않으시면, 머지않아 재앙이 될 것입니다.”

    후주가 말한다.

    “옛말에,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가 살기를 바라고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가 죽기를 바란다고 하였소. 경이 어찌 일개 환관을 용서치 못하 오?”

    근시를 시켜서, 호산 옆에서 황호를 정자 아래로 불러, 강유를 향해 절하고 복죄伏罪케 한다. 황호가 소리내어 울며, 강유에게 절하고 말 한다.

    “제가 조만간 성상(천자)을 모시기만 할 뿐, 결코 국정에 간섭치 않겠습니다. 장군께서 다른 사람 말만 듣고, 저를 죽이려 하십니다. 제 목숨은 장군께 달렸으니, 부디 장군께서 불쌍히 여기소서.”

    말을 늘어놓으며,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린다.

    강유가 분노한 모습으로 나가, 각정을 찾아가, 자세히 이 일을 고하니, 각정이 말한다.

    “장군께 머지않아 재앙이 닥치겠소. 장군이 위태로우면 국가도 뒤따라 멸망하오.”

    “선생께서 제게, 국가를 보전하고 일신을 안전케 할 계책을 알려주시오.”

    “농서에 갈 만한 곳이 한 군데 있는데, 이름해 답중입니다. 그곳이라면, 첫째, 익은 보리를 수확해, 군실軍實(군대의 무기와 식량)에 보 태고, 둘째, 농우의 여러 고을을 모두 도모하고, 셋째, 위나라 사람들이 감히 한중을 노리지 못하고, 넷째, 장군이 밖에서 병권을 장악할 수 있으니, 남들이 장군을 도모할 수 없어, 가히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야말로 나라를 보전하고, 일신을 안전케 할 계책이니, 서둘러 실행하십시오.”

    강유가 크게 기뻐하며 사례한다.

    “선생 말씀이 금옥과 같습니다.”

    다음날, 강유가 후주에게 표를 올려 아뢰며, 답중에 둔전을 마련해, 무후의 사업을 본받겠다고 하니, 후주가 이를 따른다. 강유가 한중으 로 돌아가, 장수들을 불러 말한다.

    “내가 누차 출병했으나 군량이 부족, 아직 성공치 못했소. 내 이제 병사 8만을 거느리고, 답중으로 가서 보리를 심어 둔전을 행하며 천천히 진취를 도모하겠소. 우리가 오랜 기간 싸우느라 지쳤으니, 오늘 군대를 거두고 곡식을 모아, 한중으로 물러나 수비하겠소. 위군이 천리에 걸쳐 군량을 운반하고, 산과 고개를 넘어야 하니, 자연히 피곤하고, 피곤하면 결국 퇴각할 테니, 그 때 빈틈을 노려 추격하면, 이기지 못할 게 없소.”

    이에 호제에게 한수성을, 왕함에게 낙성을, 장빈에게 한성을, 장서와 부첨에게 함께 관애(험준하고 중요한 길목)를 지키라 명한다. 이렇게 배치를 마치고, 강유 스스로 병사 8만을 이끌고, 답중으로 보리를 심으러 가서, 장구한 계책으로 삼는다.

    한편, 등애는 ‘강유가 담중에서 둔전을 행하며, 길을 따라 4십여 개 영채를 세워, 끊임없이 이어진 것이 마치 긴 뱀과 같은 형세를 이룸'을 듣는다. 등애가 세작을 시켜, 지형을 파악한 뒤, 도본을 그려, 표를 써서 아뢰니, 진공 사마소가 이를 보고, 크게 노해 말한다.

    “강유가 누차 중원을 범하는데, 이를 소탕치 못하니, 내 가슴 속 큰 우환이오.”

    가충이 말한다.

    “강유가 공명에게 깊이 전수 받아, 쉽게 격퇴하기 어렵습니다. 지혜와 용맹을 두루 갖춘 장수를 보내, 그를 암살하면, 출병하는 수고를 덜 수 있습니다.”

    종사중랑 순욱荀勗이 말한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촉나라 군주 유선이 주색에 빠져, 황호를 믿고 쓰니, 대신들 모두 그 화를 피할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강유가 답 중에서 둔전을 행함도 바로 그 화를 피하려는 속셈입니다. 대장을 시켜 정벌하면, 이기지 못할 게 없는데, 하필 자객을 보내야겠습니까?”

    사마소가 크게 웃으며 말한다.

    “이 말씀이 최선이오. 내가 촉나라를 정벌하려면, 누구를 장수로 삼아야겠소?”

    순욱이 말한다.

    “등애는 천하의 양재입니다. 거기다 종회를 부장으로 삼는다면, 대사를 이룰 것입니다.”

    사마소가 크게 기뻐하면 말한다.

    “이 말씀이 바로 내 뜻과 맞소.”

    이에 종회를 불러들여 묻는다.

    “내, 그대를 대장 삼아, 오나라를 치러 보내려는데, 어떻소?”

    “주공의 뜻은, 본래 오나나를 치려는 게 아니라, 실은 촉나라를 치려는 것입니다.”

    사마소가 크게 웃으며 말한다.

    “그대가 참으로 내 마음을 아는구려. 경이 촉나라를 치러 간다면, 무슨 계책을 쓰겠소?”

    종회가 말한다.

    “제가 주공께서 촉나라를 치시려는 것을 헤아려, 이미 도본을 만들어 여기 가져왔습니다.”

    사마소가 ‘전개’해 살펴보니 도본에는 상세히, 길을 따라 영채를 세우고 군량과 마초를 저장한 곳과 어디로 전진하고 어디로 퇴각할지 그 렸는데, 하나하나 모두 ‘법도’가 잡혀 있다. 사마소가 보고나서,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참으로 훌륭한 장수요! 경이 등애와 더불어, 군대를 합쳐 촉나라를 취함이 어떻겠소?”

    “촉천蜀川(촉나라 땅)은 길이 넓어 진격로가 하나뿐이 아닙니다. 등애와 함께 군대를 나눠 각각 진군함이 옳습니다.”

    사마소가 이에 종회를 “진서장군”으로 임명해, 황제의 절월을 지니고, 관중의 인마를 통솔하고, 청주, 서주, 연주, 예주, 형주, 양주 등을 관할하게 한다. 한편으로, 등애에게 황제의 절월을 보내, “정서장군”으로 제수하고 ‘관외 농상’의 인마를 지휘하게 하고, 날을 정해 촉을 정벌하라고 한다.

    다음날, 사마소가 조정에서 이 일을 토의하니, 전장군 등돈이 말한다.

    “강유가 누차 중원을 침범해, 아군 사상자가 극히 많습니다. 이제 오로지 수비할 뿐 아직 스스로 보전하지도 못하는데 어찌 산천의 위험한 곳으로 깊이 들어가 ‘화란’을 자초한단 말입니까?”

    사마소가 노해, 말한다.

    “내, 인의의 군대를 일으켜 무도한 군주를 벌하고자 하거늘, 너 따위가 어찌 감히 내 뜻을 거스르냐?”

    무사들에게 호통치니 무사들이 등돈을 끌어내어 베고 잠시 뒤, 등돈의 머리를 섬돌 아래에 바친다. 사람들이 모두 대경실색하자, 사마소가 말한 다.

    “내가 직접 동쪽을 정벌한 이래, 6년을 쉬며 군대를 훈련하고 칼날을 갈았소. 이미 모두 완비되어 오와 촉을 정벌하려 한 지 오래요. 이 제 먼저 서촉을 평정한 뒤 순류의 기세를 타고 수륙양면으로 진격하여 동오를 병탄할 것이니 이야말로 '멸괵취우滅虢取虞'의 방도요. 내가 헤아려보니 서촉 장졸 중에 성도를 지키는 자 8, 9만이고 변경을 지키는 자 불과 4, 5만이며 강유가 이끌고 둔전을 행하는 자도 불과 6, 7만이오. 이제 내가 등애를 시켜 관외 농우의 병력 십만여를 이끌고 가서 답중에서 강유를 묶어놓아 동쪽을 돌보지 못하게 만들겠소. 또한 종회를 보내어 관중의 정병 2, 3십만을 이끌고 낙곡을 쳐서 3로에 걸쳐 한중을 습격하겠소. 촉주 유선은 혼암昏暗(어리석고 못남)하니 밖으로 변경의 성을 격파하면 안으로 사녀士女(인민/ 백성)가 흔들려 반드시 멸망할 것이오.”

    모두 탄복한다.

    한편, 종회가 진서장군에 임명돼, 촉을 정벌하러 출병한다. 종회가 기밀이 혹시 누설될까 두려워, 동오를 정벌한다는 핑계로, 청주, 연주, 예주, 형주, 양주 등 다섯 곳에서 각각 대선(큰 배)을 건조한다. 또한 당자를 등주와 내주 등 해안 지역으로 보내, 해선海船(바다를 항해 하는 큰 배)을 끌어모은다. 사마소가 그 뜻을 알지 못해, 종회를 불러 묻는다.

    “그대가 육로로 서천을 정벌할 것인데, 배를 만들어 무엇에 쓰려 하오?”

    “아군이 크게 진격하면, 촉은 반드시 동오에 구원을 청합니다. 그러므로 허장성세를 펼쳐, 동오를 정벌하는 척하면, 동오는 감히 망동하 지 못합니다. 1년 안에, 촉을 무너뜨린 뒤, 배가 이미 완성돼 있을 터이니, 동오 정벌이 어찌 순탄치 않겠습니까?”

    사마소가 크게 기뻐하며 날짜를 정해 출병케 한다. 위나라 경원 4년, 가을 7월 초3일, 종회가 출병한다. 사마소가 성 밖 십 리까지 나와 배웅하고 돌아간다. ‘서조西曹의 관리’ 소제가 은밀히 사마소에게 말한다.

    “이제 주공께서 종회에게 십만 대군을 줘서 촉을 정벌케 하시지만, 제 생각에, 종회가 야심을 가진 듯합니다. 그가 홀로 대권을 장악케 하심은 불가합니다.”

    사마소가 웃으며 말한다.

    “내 어찌 그것을 모르겠소?”

    “주공께서 이미 아시면서, 어찌 그 직위를 다른 사람에게 함께 맡기시지 않습니까?”

    이에 사마소가 한두 마디 말하니, 소제의 의문이 순식간에 풀린다.

    군대를 일으키려는 날에, 사마소가 벌써 장군이 발호할 것을 알았구나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