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117회 등사재가 음평으로 우회하고 제갈첨이 면죽에서 전사한다

    한편, 보국장군 동궐은 위군이 십여 개 방면으로 국경을 침입하자 병사 2만을 이끌고 검각을 지키고 있었다. 이날 먼지 구름이 크 게 일자 위군이 아닐까 의심해 급히 군을 이끌고 관문 입구를 막아선다. 동궐이 직접 군전軍前(싸움터 / 전초 기지)으로 와서 살피니 바로 강유, 요화, 장익이다. 동궐이 크게 기뻐하며 관문 위로 영접해 들인다. 인사를 마친 뒤 소리내어 울며 후주와 황호의 일을 고하니 강유가 말한다.

    “공께서는 우려치 마시오. 이 강유가 살아 있는 한 결코 위나라가 촉나라를 병탄하는 일은 용납치 않을 것이오. 우선 검각을 지키며 적군을 격퇴할 계책을 천천히 도모해야겠소.”

    동궐이 말한다.

    “이 관은 지킬 수 있더라도 성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적군이 습격하면 대세가 와해될 것입니다.”

    “성도는 산이 가파르고 땅이 험해 쉽게 취할 수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소.”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누군가 제갈서가 군을 이끌고 관문 아래로 몰려온 것을 알린다. 강유가 크게 노해 급히 병사 5천을 이끌고 관문 아래로 달려가 위나라 군중으로 쳐들어가 좌충우돌한다. 제갈서를 크게 무찌르니 수십 리를 달아나서 영채를 세운다. 위군의 전사자가 무수하고 촉군이 마필과 군 장비를 허다하게 빼앗는다. 강유가 군대를 거둬 관문으로 돌아간다.

    한편, 종회가 검각에서 25 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웠는데 제갈서가 직접 찾아와 죄를 청한다. 종회가 노해 말한다.

    “내가 그대에게 음평교 어귀를 지켜서 강유의 귀로를 차단하라 했거늘 어찌 빼앗겼단 말이오. 게다가 이제 또다시 내 군령을 어기고 함 부로 진군해 이런 패배를 당했소!”

    제갈서가 말한다.

    “강유가 속임수를 많이 써서 옹주를 치는 척했습니다. 저는 옹주를 잃을까 두려워 군을 이끌고 구하러 갔습니다. 강유가 그 틈을 타서 탈주하기에 제가 관문 아래까지 추격했지만 뜻밖에 다시 패전하게 됐습니다.”

    종회가 크게 노해 그를 처형하라고 명하니 감군(군대의 감독관) 위관이 말한다.

    “제갈서가 비록 죄를 지었으나 등정서(정서장군 등애)의 사람이니 자칫 장군께서 그를 죽여, 화목한 기운을 깰까 두렵습니다.”

    종회가 말한다.

    “내가 천자의 명조(현명한 조서)와 진공(사마소)의 균명(권위 있는 명령)을 받들어 특별히 촉나라를 정벌하려 왔으니, 설령 등애가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역시 참할 것이오.”

    사람들이 모두 힘써 권하자 종회가 제갈서를 함거에 태워 낙양으로 보내, 진공 사마소의 결정에 맡긴다. 곧 제갈서의 병력을 자신의 휘하로 거둬서 배치한다.

    누군가 이를 등애에게 알리자 등애가 크게 노한다.

    “내가 네놈과 관품(관직의 품계)가 같고 내가 오랫동안 변경에 주둔해 국가를 위해 노고가 많았거늘 네놈이 어찌 감히 내 자존을 이토록 무시하냐 말이다!”

    아들 등충이 권한다.

    “옛말에,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큰 계책이 어긋난다고 했습니다. 부친께서 그와 화목치 못하면 국가 대사를 그르치고 말 것이오니 우선 용인하십시오.”

    등애가 그 말을 따르지만 마음 속에 분노를 품은 채 수십 기를 이끌고 종회를 만나러 간다.

    등애가 온 것을 듣고 종회가 좌우의 측근에게 묻는다.

    “등애가 병사를 얼마나 데려왔소?”

    “불과 수십 기입니다.”

    종회가 이에 군막 안에 가득히 무사 수백 인을 세워놓는다. 등애가 말에서 내려 들어오니 종회가 접견해 장막으로 들어가 인사를 마친 다. 병사들이 몹시 엄숙한 것을 등애가 보고 마음 속이 불안해 말로써 건드려본다.

    “장군이 한중을 점령했으니 조정의 큰 행운이오. 어서 계책을 정해 조속히 검각을 쳐야겠소.”

    종회가 말한다.

    “장군의 견해는 어떻소?”

    등애가 거듭 스스로 무능하다고 사양하지만 종회가 고집하니 등애가 답한다.

    “제 못난 소견으로 보자면, 한 무리 군을 이끌고 음평의 지름길로 한중의 덕양정으로 나가서 곧바로 성도를 기습해야 하오. 강유가 틀 림없이 병력을 철수해 구하러 갈 것이니 그 틈에 장군이 검각을 치면 전공全功(완벽한 공)을 거둘 수 있소.”

    종회가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장군의 이 계책은 절묘하오! 즉시 군을 이끌고 가시오. 나는 여기에서 첩음(승전의 소식)을 기다리겠소.”

    두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작별한다. 종회가 군막으로 돌아가 여러 장수에게 말한다.

    “사람들 모두가 등애를 유능하다고 말하지만 오늘 살펴보니 그저 용재庸才(평범하거나 능력이 떨어지는 인재)일 뿐이오!”

    뭇 장수가 그 까닭을 물으니 종회가 말한다.

    “음평의 지름길은 모두 고산준령이라 만약에 촉나라가 백여 명으로 그 험요를 수비하고 귀로를 끊는다면 등애의 병사는 모두가 굶어 죽게 되오. 나는 오로지 정도正道로 갈 것이니, 어찌 촉나라를 깨뜨리지 못할까 걱정하겠소!”

    이에 운제雲梯(성을 공격하는 목적으로 만든 사다리 꼴의 기구)와 포가砲架를 가져다가 오로지 검각관을 공격한다.

    한편, 등애가 원문轅門(군대를 지휘하는 장수가 있는 영채의 출입문)을 나와 말에 오르더니 종자從者(수행원)를 돌아보며 말한다.

    “종회가 나를 어찌 대했소?”

    “그의 사색辭色(말과 얼굴빛)을 살펴보니, 장군의 말씀을 진심으로 옳다고 여긴 것이 아니라 단지 입으로 억지로 응한 것입니다.”

    등애가 웃으며 말한다.

    “그는 내가 성도를 점령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기어코 점령하겠소!”

    본채로 돌아가니 사찬, 등충 등 한 무리 장수가 등애를 맞이해 묻는다.

    “오늘 진서장군과 더불어 무슨 고론高論을 나누셨습니까?”

    “내가 진심으로 그에게 고했지만, 그는 나를 별볼 일 없는 인재로 무시했소. 그가 이제 한중을 빼앗은 것을 막대한 공으로 여기고 있으 나, 내가 답중에서 강유를 묶어두지 않았다면 그가 어떻게 공을 이뤘겠소! 내 이제 성도를 점령해, 한중을 점령한 그 공을 넘어서겠소!”

    그날 밤 영을 내려, 영채를 모조리 거둬 음평의 지름길로 진군해, 검각에서 7백 리 떨어진 곳에 진을 친다. 누군가 종회에게 이를 알린다 .

    “등애가 한중을 취하려 합니다.”

    종회가 등애를 지혜롭지 못하다고 비웃는다.

    한편, 등애는 밀서를 써서 사마소에게 급히 알리는 동시에 여러 장수를 군막 안으로 불러모아 묻는다.

    “내가 이제 빈 틈을 노려 성도를 취해 그대들과 더불어 불후의 공명을 세우고자 하는데 그대들이 기꺼이 따르겠소?”

    여러 장수가 응답한다.

    “바라건대 군령을 받들어, 만번 죽더라도 사양치 않겠습니다!”

    이에 등애가 먼저 아들 등충에게 정병(정예 병력) 5천을 이끌고 가게 하는데, 갑옷을 입지 않은 채 각자 도끼와 끌 따위의 도구를 소지한 다. 험준한 지형을 만날 때마다 산을 뚫고 길을 내고, 교각橋閣(험준한 절벽을 따라 나무로 만든 도로)을 만들어, 행군을 편하게 한다. 등 애가 병사 3만을 뽑아, 각자 건조 식량과 승삭繩索(노끈과 새끼줄)을 휴대해, 출발케 한다. 약 1백 리 남짓을 행군해, 병사 3천을 뽑아, 그곳에 영채를 세워 주둔하게 한다. 다시 1백 리 남짓 행군해, 다시 병사 3천을 뽑아 영채를 세운다. 이 해 시월 음평에서 진군해 높은 절 벽과 험한 골짜기까지 도합 2십여 일에 7백여 리를 행군하는데 모두 무인지경이다.

    위군이 길을 따라 여러 곳에 영채를 세워, 단지 병사 2천만 남는다. 어느 고개에 이르니, 이름해 마천령이다. 말이 갈 수 없어, 등애가 걸어서 고개를 오른다. 그런데 등충과 길을 내던 병사 모두가 소리내어 울고 있다. 등애가 그 까닭을 묻자 등충이 고한다.

    “이 고개의 서쪽 뒤는 가파르고 높은 절벽이라, 길을 뚫을 수 없어, 앞의 노고가 소용 없게 되었으니, 이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등애가 말한다.

    “아군이 여기까지 오면서 이미 7백 리를 행군해, 이 곳만 지나면 바로 강유江油( 사천 분지의 서북부 지명)인데 어찌 다시 물러나겠냐?”

    이에 병사들을 불러 말한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찌 호랑이 새끼를 얻겠냐? 나와 너희가 여기까지 왔으니 만약 성공하면 부귀를 함께 하겠다.”

    사람들 모두 응한다.

    “장군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등애가 앞장서서 군기軍器(군용 기계, 장비)를 내던지고 간다. 등애가 모포로 몸을 감싸고 먼저 굴러 내려간다. 부장들도 모포를 가진 이 들은 몸을 감싸 굴러 내려가고, 모포가 없는 이들은 밧줄로 허리를 묶어 나무를 잡고 매달려 마치 물고기들을 줄로 꿰듯이 나아간다. 등 애, 등충과 아울러 산길을 뚫는 장사들이 모두 마천령을 넘는다. 이제 갑옷과 기계器械를 정돈해 행군하대 곧 길가에서 비석을 발견한다 . 비석 위에 “승상 제갈 무후가 적었다.”라고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이화초흥二火初興( 당시 촉의 연호이던 염흥炎興 원년)에 누군가 이곳을 넘으리라. 두 장수가 다투다가, 머지않아 스스로 죽으리라.”

    등애가 읽고나서 크게 놀라, 황망히 비석을 향해 거듭 절하며 말한다.

    무후는 참으로 신인神人이시구나! 내가 스승으로 모시지 못한 것이 애석하구나!”

    뒷날 누군가 시를 짓는다.

    음평의 높은 고개와 *천제는, 검은 학도 떠돌다가 겁 먹고 날아가는 곳.
    등애가 모포를 감고 이곳을 내려가지만 제갈공명 선견지명을 누가 알랴.

    등애가 몰래 음평을 지나며 군을 이끌고 가다가 텅 빈 커다란 영채와 마주친다. 가까이 따르던 사람이 고한다.

    “듣자니, 제갈 무후가 살아 있을 때, 일찍이 병사 2천을 뽑아 이 험애險隘(험준한 관문)을 지키게 했으나, 근래에 촉나라 임금 유선이 폐 했습니다.”

    등애가 아! 감탄해 마지않으며, 사람들에게 말한다.

    “우리가 오는 길은 있으나 돌아갈 길은 없게 됐소. 앞의 강유성 안에 양식이 넉넉히 있으니 그대들이 전진하면 살 것이나 후퇴하면 곧 죽을 것이오. 반드시 힘을 모아 공격하시오.”

    사람들 모두 응답한다.

    “바라건대 이곳에서 죽을 각오로 싸우겠습니다!”

    등애가 걸어가며 2천여 사람을 이끌고, 그날밤 길을 재촉해 강유성을 치러 간다.

    한편, 강유성을 지키는 장수는 마막이다. 동천을 이미 잃은 것을 듣고, 비록 준비를 하지만, 단지 큰길을 막을 뿐이다. 또한 마막은 강유가 군대를 보전해 검각의 관문을 지키는 것만 믿고 군정(군사정세)을 엄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날 인마를 조련하고 집으로 돌아가 그 아내 이 씨와 더불어 화롯가에서 술을 마신다. 그 아내가 묻는다.

    "변경의 정세가 심히 위급하다고 몇번을 전해들었는데 장군께서는 아무 걱정하는 기색이 없으니 무슨 까닭이시오?"

    “대사는 원래 강백약(강유)이 장악하고 있으니 나와 무슨 상관이겠소?"

    "그렇다 하더라도 장군께서 이곳 성지를 지키는 소임을 받았으니 가볍게 여기지 마시오."

    "천자께서 황호의 말만 믿고 주색에 빠졌으니 재앙이 멀지 않았소. 위군이 오면 항복하는 것이 상책인데 더 무엇을 걱정하겠소?"

    그 아내가 크게 노해 마막의 얼굴에 침을 뱉으�� 말한다.

    "당신이 사내가 돼서 먼저 불충불의한 마음을 품은 채 국가의 작록을 헛되이 받다니 내가 무슨 면목으로 당신을 보겠소!"

    마막이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한다. 그런데 가인家人(가족 / 하인)이 황급히 들어와 말한다.

    "어디로 왔는지 모르겠지만 위나라 장수 등애가 병사 2천을 이끌고 성 안으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마막이 크게 놀라 황급히 나가서 투항한다. 공당公堂(관리가 공무를 보는 건물)아래에 엎드려 눈물 흘리며 고한다.

    "제가 투항할 마음을 품은 지 오래입니다. 이제 바라건대 성 안의 백성들과 제 밑의 인마들을 불러모아 다함께 장군께 항복하겠습니다."

    등애가 항복을 받아들여 강유성의 군마를 거둬 들여서 배치하고 마막을 향도관(길을 안내하는 관리)으로 삼는다. 그런데 누군가 마막의 부인이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은 것을 알린다. 등애가 그 까닭을 물으니 마막이 실토한다. 등애가 그 부인이 어진 것에 감동해 두터 운 예를 갖춰 장례를 치르라 명하고 친히 가서 제사를 올린다. 위나라 사람들이 듣고서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짓는 다.

    후주가 혼미해 한나라가 쓰러지고
    하늘이 등애를 보내 서천을 빼앗네
    가련타! 파촉에 명장들이 많다지만
    강유성의 이 씨 부인보다 못하구나!

    등애가 강유성을 취한 뒤 곧 음평의 지름길로 접어든다. 병사들이 모두 강유성으로 와서 합류하고 곧바로 부성을 공략하러 간다. 부장 전속이 말한다.

    "우리 병사들이 험로를 지나서 온지라 몹시 피로합니다. 일단 며칠 쉬면서 힘을 길러 진병하는 것이 좋습니다."

    등애가 크게 노한다.

    "병귀신속(용병에서는 재빠른 대처가 귀중하다는 뜻 / 손자병법)이거늘 네놈이 감히 우리의 군심을 어지럽히냐!"

    좌우의 사람들에게 그를 끌어내 베라고 소리친다. 뭇 장수가 간곡히 말리자 그제서야 살려준다. 등애가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부성에 이른 다. 성 안의 관리, 병사, 백성들이, 갑자기 나타난 이들을 하늘에서라도 내려온 줄 알고 놀라서 모두 나와서 항복한다. 촉나라 사람들이 성도로 들어가 급보를 전하니 후주가 이를 듣고 황망히 황호를 불러 묻는다. 황호가 아뢴다.

    "이것은 잘못 전해진 것입니다. 신인神人이 폐하를 그르칠 리가 없습니다."

    후주가 다시 사파師婆(여자 무당)를 부르려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이때 멀거나 가까운 여러 곳에서 급보를 전하는 표문들 이 마치 눈송이가 휘날리듯 날아든다. 후주가 조회를 열어 토의하려 하자 많은 관료가 서로 눈치만 살필 뿐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그 런데 각정이 자리에서 나와 아뢴다.

    "사세가 이미 급박하오니 폐하께서 무후(제갈공명)의 아들에게 하교하시어 적병을 물리칠 계책을 상의하소서."

    무후의 아들 제갈첨 '사원'의 모친 황씨는 황승언의 딸이다. 모친은 몹시 못 생겼지만 비범한 재주를 지녀 위로는 천문에 통달하고 아래로는 지리를 살필 수 있었다. 무릇 도략과 둔갑 등 여러 서적을 깨우치지 못한 것이 없었다. 무후가 남양에 있을 때 그 훌륭 함을 듣고 아내로 맞아들였다. 무후의 학문도 부인이 도운 바가 많았다. 무후의 사후에 부인이 따라 죽었는데 임종 시에 가르침을 남겨 아들 제갈첨에게 오로지 충효에 힘쓸 것을 당부했다. 제갈첨은 어려서부터 총명해 후주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부마도위(임금의 사 위에게 내리는 관직)가 됐다. 그 뒤 부친이 가졌던 무후의 작위를 이어받았다. 경요 4년에 행군호위장군이 됐으나 이때 황호가 권력을 잡 자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

    후주가 그 자리에서 각정의 말을 따라 즉시 잇달아 세번이나 조서를 내려 제갈첨을 궁전으로 부른다. 후주가 눈물 흘리며 호소한다.

    "등애가 이끄는 군이 이미 부성에 주둔했으니 이곳 성도가 위태롭게 됐소. 경이 선군(돌아가신 부친)의 얼굴을 봐서라도 짐의 목숨을 구해주오!"

    제갈첨도 눈물 흘리며 아뢴다.

    "신의 부자가 선제(돌아가신 황제 곧 유현덕)의 두터운 은혜와 이제 폐하의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니 비록 저의 간과 뇌를 땅바닥에 뿌리 는 한이 있어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할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성도의 전 병력을 뽑아서 신에게 주시면 이들을 거느리고 가서 죽음을 각오한 일전을 벌이겠습니다."

    후주가 즉시 성도의 병력을 뽑아 7만을 제갈첨에게 준다. 제갈첨이 후주에게 작별하고 군마를 정돈하며 여러 장수를 불러모아 묻는다.

    "누가 선봉에 서겠소?"

    그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어느 소년 장수가 나서며 말한다.

    "부친께서 대권을 잡으셨으니 소자가 선봉을 맡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바라보니 바로 제갈첨의 장자 제갈상이다. 제갈상은 이때 열이홉 살인데 병서(병법 서적)를 두루 읽고 무예를 많이 익혔다. 제 갈첨이 크게 기뻐하며 제갈상을 선봉으로 세운다. 이날 대군이 성도를 떠나 위군을 영격하러 간다.

    한편, 등애는 마막이 바친 지도를 한 본 얻는데 거기에는 부성에서 성도까지 160 리에 걸쳐 산천과 도로, 관애(관문 / 요새 )와 험준한 지 리를 하나하나 또렷하고 자세하게 묘사했다. 등에가 지도를 보고나서 크게 놀라 말한다.

    "내가 부성을 지키고만 있는데 만약 촉군이 앞산에 진을 치고 막는다면 어찌 성공하겠는가? 여기서 오랫동안 머뭇거리다가 강유 의 병력이 온다면 아군이 위태로울 것이다."

    속히 사찬과 아들 등충을 불러 분부한다.

    "너희가 1군을 이끌고 오늘밤 면죽으로 달려가 촉군을 막아라. 내가 뒤따라 갈 것이니 절대 태만히 하지 마라. 만일 남에게 험요 를 먼저 빼앗기면 너희를 참수할 것이니라!"

    사찬과 등충 두 사람이 군을 이끌고 면죽에 곧 닿을 즈음에 촉군과 마주친다. 양군이 각각 포진하자 사찬과 등충 두 사람이 문 기 아래에 말을 멈춰 세우고 바라보는데 촉군이 팔진八陣(제갈공명이 창안했다는 진법)을 펼쳐 있다. 세 차례 북소리가 울리며 문기가 양 옆으로 열리고 수십 명의 장수가 수레 1량을 빽빽히 에워쌌는데 그 수레에 단정히 한 사람이 앉아 있다. 그는 머리에 윤건을 쓰고 손에 깃털 부채를 쥐었으며 몸에 학창의를 걸쳤고 그 소매가 네모지다( 학창의를 펼치면 그 소매의 모양이 정사각에 가깝다). 수레 위에는 누런 깃발을 세우고 그 위에 "한나라 승상 제갈 무후"라고 적었다. 헉! 놀란 사찬과 등충 두 사람이 식은땀을 온몸에 흘리며 고개 돌려 병사들에게 말한다.

    "제갈량이 아직도 살아 있다니 우리는 이제 끝이구나!"

    급히 군대를 되돌리려는데 촉군이 덮치니 위군이 크게 패주한다. 촉군이 2십 리 넘게 추격하다가 등애가 이끄는 구 원병과 마주친다. 양쪽이 각각 병력을 거둔다. 등애가 승장升帳(장수가 군막으로 부하들을 소집해 회의를 하거나 명령을 내림)해, 사찬과 등충을 불러 책망한다.

    “너희 두 사람이 싸우지 않고 퇴각하다니 무슨 까닭이냐?”

    등충이 말한다.

    “촉나라 진중에서 제갈공명이 군대를 지휘하는 것이 보여, 황급히 물러난 것입니다.”

    등애가 노해 말한다.

    “비록 공명이 다시 살아난들 내가 어찌 두려워하겠냐! 너희가 함부로 물러나 이렇게 패했으니 속히 목을 베어 군법을 바로 세워야겠다!”

    사람들 모두 간곡히 권하니 등애가 그제서야 노여움을 삭힌다. 사람들을 시켜 정탐하게 하니, 돌아와 보고하기를, 공명의 아들 제갈첨이 대장이고, 제갈첨의 아들 제갈상이 선봉이며, 수레 위에 앉았던 이는 바로 나무로 깎아 만든 공명의 유상遺像(죽은 이의 초상화나 조각 상)이라고 한다.

    등애가 이를 듣고, 사찬과 등충을 불러 말한다.

    "승패의 기회는 이번 거사에 달렸다. 너희 두 사람이 또다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반드시 목을 베겠다!"

    사찬과 등충 두 사람이 다시 병사 2만을 이끌고 싸우러 간다. 제갈상이 홀로 말을 몰고 창을 쥔 채 정신을 모아 두 사람을 격퇴한다. 제갈첨이 양 옆의 병사를 지휘하고 위나라 진중으로 돌입해 좌충우돌하며 수십 차례 오가니 위군이 대패해 죽은 이를 헤아릴 수 없다. 사찬과 등충이 부상을 입고 달아난다. 제갈첨이 군대를 이끌고 2십여 리를 추격해 영채를 세워 대치한다. 사찬과 등충이 등애를 만나러 간다. 두 사람 모두 부상을 입은 것이 보이자 등애가 두 사람을 선뜻 책망하지 못하고 뭇 장수를 불러모아 상의하며 말한다.

    "촉나라에서 제갈첨이 부친의 뜻을 잘 계승해, 두 번에 걸쳐 우리 인마 1만여를 죽였소. 이제 만약 속히 격파하지 못하면 뒤에 반드시 화 근이 될 것이오!"

    감군 구본이 말한다.

    "서신을 써서 보내 그를 유인해 보시지요."

    등애가 그 말을 따라 서신을 1봉 작성해 사자에게 쥐어줘 촉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전하게 한다. 수문장이 사자를 이끌고 군막으로 들어 가 서신을 바치니 제갈첨이 뜯어서 읽는다. 내용은 이렇다.

    '정서장군 등애가 행군호위장군 제갈첨에게 글을 보내오. 근대의 뛰어난 인재를 살펴보건대 공의 존부만 한 분이 아직 없소. 지난날 초 려에서 나온 이래, 고금를 통틀어 그분만 한 분이 드물었소. 뒤에 여섯 차례 기산으로 나갔으나 그 지혜와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천 수(하늘이 정한 운수)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을 따름이오. 이제 후주가 어리석고 나약한데다 왕기王氣(제왕의 기상)가 이미 끝난지라 내가 천자의 명을 받들어 중병重兵(강대한 군대)을 이끌고 촉나라를 정벌하는 것인데 이미 촉나라를 모두 점령하고 성도도 위급함이 이제 단석旦夕에 이르렀거늘 공께서 어찌 천명에 응하고 민심을 따라 귀순하지 않으시오? 내 마땅히 천자께 표를 올려 공을 낭야왕으로 세워 공의 조종祖宗(선조/조상/ 특히 제왕의 선조)를을 빛내게 해줄 것이니 이는 결코 허언이 아니오. 부디 조감照鑒(밝게 살핌)해주시 기 바라오. '

    제갈첨이 읽고나서 버럭 크게 화를 내며 서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등애의 사자를 당장 끌어내어 처형하게 한다. 사자를 수행한 사람 에게 사자의 목을 가지고 위나라 영채로 돌아가 등애에게 전하라 한다. 등애가 크게 노해 즉시 출전하려는데 구본이 간한다.

    "장군께서 성급히 나갈 것이 아니라 기병奇兵(기습 병력)을 써서 이겨야 합니다."

    등애가 그 말을 따라 천수태수 왕기와 농서태수 견홍에게 군을 이끌고 후방에 매복하라 명한다. 등애가 직접 군을 이끌고 가니 이때 마침 제갈첨도 싸움을 걸려던 참이다. 등애가 직접 군을 이끌고 왔다고 하자 제갈참이 크게 노해, 병력을 이끌고 나가서 위나라 진중 으로 쳐들어간다. 등애가 패주하자 제갈첨이 추격하는데 양쪽에서 복병이 튀어나와 촉나라 군이 크게 패해 면죽으로 퇴각해 들어간다. 등애가 포위를 명하자 위나라 군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면죽성을 철통처럼 에워싼다.

    제갈첨이 성 안에서 사세가 이미 궁핍함을 보고, 평화에게 명하여, 서신을 갖고 탈출해 동오로 가서 구원을 청하게 한다. 팽화가 동오에 이르러 오나라 임금 손휴를 만나, 촉나라의 위급을 고하는 서신을 바친다. 오나라 임금이 읽고나서 신하들과 더불어 의논한다.

    "촉나라가 위급한데 고孤가 어찌 좌시하며 구웜하지 않겠소?"

    즉시 노장 정봉丁奉을 주장으로, 정봉丁封과 손이를 부장으로 삼아 병사 5만을 이끌고 촉나라를 구원하러 가게 한다. 정봉이 교지를 받 들어 출전하며 정봉丁封과 손이에게 병사 2만을 나눠 주어 면중으로 가라 하고, 자신은 병사 3만을 이끌고 수춘으로 진군하며 3로로 병력을 나눠 구원한다.

    한편, 제갈첨은 구원병이 오지 않자 뭇 장수에게 말한다.

    “오래 지키는 것은 양책(좋은 계책)이 아니오.”

    이에 아들 제갈상과 상서 장준을 남겨 성을 지키라 하고, 3군을 이끌고 3개 성문을 활짝 열고 달려나간다. 촉군이 나오자 등애가 군을 거둬 퇴각한다. 제갈첨이 힘을 내어 추격하는데 갑자기 한 차례 포성이 울리더니 사방에서 병사가 몰려나와 제갈첨을 겹겹이 포 위한다. 제갈첨이 군을 이끌고 좌충우돌하며 수백 명을 죽인다. 등애가 뭇 병사에게 지시해 화살을 쏘게 하니 촉나라 군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제갈첨이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지며 크게 소리친다.

    "나의 힘이 다했구나! 내가 죽음으로써 나라에 보답하겠다!"

    이에 검을 뽑아 자결한다.

    아버지가 전사하는 것을 아들 제갈상이 성 위에서 보고 벌컥 크게 노해, 갑옷을 걸치고 말에 오른다. 장준이 간한다.

    "소장군, 절대 함부로 나가지 마시오."

    제갈상이 탄식한다.

    "우리 부자와 조손祖孫(할아버지와 손자)은 국가의 두터운 은혜을 입었소. 이제 부친께서 적에게 살해되셨는데 내가 살아 무엇하겠소!"

    이에 말을 몰고 돌격해 진중에서 죽는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제갈첨과 제갈상 부자를 기린다.

    충신에게 지모만 모자랐던 것이 아니라
    창천蒼天이 염유炎劉(유 씨의 한나라)를 멸망시킬 뜻이 가졌음이라
    그해 제갈공명의 훌륭한 자손들이 있어
    절의를 지켜 제갈 무후를 기꺼이 계승했구나

    등애가 그들의 충의를 가련하게 여겨 그들 부자를 합장하고 빈틈을 타서 면죽을 공격하니 장준, 황숭, 이구 세 사람이 각각 1군을 이끌고 몰려나온다. 촉군은 적고 위군은 많아 세 사람 모두 전사한다. 등애가 이로써 면죽을 빼앗는다. 병사들을 호궤한 뒤 성도 를 치러 간다.

    후주에게 위기가 닥친 날을 보면
    지난날 유장이 핍박 받던 때와 같네

    성도를 어떻게 지킬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