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116회 종회가 병력을 분산하여 한중을 침입하고 무후의 혼령이 정군산에 나타난다

    한편, 사마소가 서조曹掾의 관리 소제에게 말한다.

    “조정의 신하들 모두 촉을 아직 정벌할 수 없다 함은 마음 속으로 겁을 내서요. 억지로 싸운다면 필패의 길이오. 이제 종회가 촉을 정벌 할 계책을 홀로 세움은 그 마음 속으로 겁을 내지 않아서요. 마음 속으로 겁내지 않으면 반드시 촉을 무너뜨릴 것이니 촉이 무너지면 촉 인들 가슴이 찢어질 것이오. ‘패전한 장수는 용맹을 말할 수 없고 망국의 대부는 생존을 꾀할 수 없다’고 했는데 종회가 다른 뜻을 품은들 촉인들이 어찌 그를 도울 수 있겠소? 더군다나 위나라 사람들도 승리를 거둔 뒤에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뿐이라 결코 종회를 따르지 않고 반대할 것이니, 걱정할 만한 것이 아니오. 내가 이 말로써 그대를 깨우친 것을 결코 누설하지 마시오.”

    소제가 탄복한다.

    한편, 종회가 영채를 세운 뒤 승장升帳(군사를 토의하기 위해 군대의 막사로 들어감)해 장수들을 크게 소집해 호령을 듣게 한다. 이때 감군 위관, 호군 호열, 대장 전속, 방회, 전장, 원정, 구건, 하후감, 왕가, 황보개, 구안 등 8십여 명이 모인다. 종회가 말한다.

    “반드시 대장 하나를 선봉 삼아 ‘산이 앞을 가로막아도 길을 뚫고 물이 가로막아도 다리를 놓아’ 통과해야겠는데 누가 선봉을 맡겠소?”

    한 사람이 응답한다.

    “바라건대 제가 가겠습니다.”

    종회가 바라보니 ‘호랑이 같은 장수’ 허저의 아들 허의다. 모두가 말한다.

    “이 사람이 아니면 선봉을 맡을 수 없습니다.”

    종회가 허의를 불러 말한다.

    “그대는 ‘호랑이 몸에 원숭이 팔을 가진 장수’로서 부자가 모두 이름났소. 이제 뭇 장수도 천거하니 그대가 선봉장을 맡아 ‘마군’(기마병) 5천과 ‘보군’(보병) 1천을 거느리고 곧장 한중을 치시오. 군대를 3로로 나눠 중군을 거느려 야곡으로 나가고 좌군은 낙곡으로 우군은 자 오곡으로 나가시오. 이 모두 기구崎嶇하고 산세가 험준하니 군졸들을 시켜 길을 고르게 메우고 다리를 고치고 산을 뚫고 바위를 깨서라 도 절대 아무 것도 가로막지 못하게 하시오.”

    허의가 명을 받고 군대를 거느려 나아간다. 종회가 뒤따라 십만대군을 이끌고 그날밤 길을 떠난다.

    한편, 등애가 농서에서 촉을 치라는 조서를 받았다. 사마망을 보내 강인들을 막게 하는 동시에 옹주자사 제갈서, 천수태수 왕기, 농서태 수 견홍, 금성태수 양흔에게 각각 부하 병력을 이끌고 와서 군령을 따르게 한다. 곳곳의 군마가 구름처럼 모일 쯤에 등애가 한밤에 꿈을 꾼다. 꿈 속에서 높은 산을 올라 한중을 바라보는데 발 아래에 샘이 하나 분출해 물줄기가 위로 솟는다. 잠시 뒤 놀라서 깨니 온몸에 땀이 흐른다. 앉은 채로 날이 밝기를 기다려 호위護衛 소완을 불러 묻는다. 소완이 평소 주역에 밝은데 등애가 꿈을 자세히 말하니 소완이 답한다.

    “주역에 이르기를, ‘산 위에 물이 있는 것을‘건蹇’이라 일컫고‘건괘’는 서남쪽이 유리하고 동남쪽이 불리하다’고 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건괘는 서남쪽이 이로우니 가면 공을 이룰 것이요 동남쪽이 불리하니 그 길이 궁할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장군께서 이 길을 가시면 필연코 촉을 이길 것이지만 애석하게도 곤경에 빠져서 결국 귀환하지 못할 것입니다.”

    등애가 이 말을 듣고 낯빛이 바뀌며 불안해 한다. 그런데 종회가 보낸 격문이 도착해 등애에게 군대를 일으켜 한중에서 집결하자 한다. 등애가 이에 옹주자사 제갈서에게 병사 1만5천을 이끌고 먼저 강유의 귀로를 차단케 한다. 이어서 천수태수 왕기에게 왼쪽에서 답중을 치게 하고 농서태수 견홍에게 병사 1만5천을 이끌고 오른쪽에서 답중을 치게 한다. 또한 금성태수 양흔에게 병사 1만5천을 이끌고 감송 에서 강유의 배후를 차단하게 한다. 등애 스스로 병사 3만을 이끌고 오가며 지원하기로 한다.

    한편, 종회가 출병할 때 문무백관이 성 밖으로 환송하러 나와서 바라보니 온갖 깃발이 하늘의 해를 가리고 장졸들의 갑옷이 서릿발과 같다. 병사들은 강하고 말들은 튼튼하다. 위풍이 늠름하니 모든 사람이 칭송하는데 오로지 상국참군 유실만 냉소할 뿐 아무 말이 없다. 유실이 비웃는 것을 보고 태위 왕상이 말 위에서 손을 잡고 묻는다.

    “종회와 등애 두 사람이 이번에 촉을 평정하겠소?”

    “촉을 틀림없이 무너뜨릴 것입니다. 다만 아무도 살아서 도읍으로 돌아오지 못할까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왕상이 까닭을 물어도 유실은 웃기만 할 뿐 답하지 않으므로 왕상이 더 묻지 않는다.

    한편, 위군이 출발하자 재빨리 세작이 답중으로 들어가 강유에게 알린다. 강유가 곧 표를 써서 후주에게 아뢴다. 어서 조서를 내려 좌거기장군 장익을 보내 군대를 거느리고 양평관을 수호하고 우거기장군 요화를 보내 군대를 거느리고 음평교를 지켜야 한다고 청한다.

    ‘이 두 곳이 가장 중요합니다. 두 곳을 잃으면 한중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동시에 사자를 동오로 보내 구원병을 요청하소서. 신이 동시에 답중의 군대를 일으켜 적을 막겠나이다.’

    당시 후주가 경요 5년을 염흥 원년으로 개원했다. 어느 날 환관 황호과 더불어 궁중에서 놀고 즐기다가 강유의 표를 받자 황호를 불러 묻 는다.

    “이제 위나라가 종회와 등애를 보내 인마를 크게 일으켜 길을 나눠 쳐들어오는데 어찌해야겠소?”

    “이는 강유가 공명을 세우고 싶어 이 같은 표를 올린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마음 놓으시고 절대 우려하지 마소서. 신이 듣자오니 성 안에 여자 무당이 한 사람 있사온데 신神을 모시며 능히 길흉을 알아맞춘다 하옵니다. 불러들여 물어보소서.”

    후주가 그 말을 따라 향, 꽃, 지전, 초 따위의 제물을 후전에 벌여놓는다. 황호를 시켜 작은 수레에 무당을 태워서 궁중으로 불러들여 용 상 위에 앉힌다. 후주가 향을 사르고 제사를 마치자 무당이 갑자기 머리를 풀어헤치고 맨발로 전각 위로 수십 차례 뛰어오르더니 탁자 위에서 빙빙 돈다. 황호가 말한다.

    “이것은 신인神人이 강림한 것입니다. 폐하께서 좌우(가까이에서 모시는 사람들)를 내보내고 친히 기도를 올리소서.”

    후주가 측근 신하들을 모두 내보내고 거듭 절하며 축원하니 무당이 크게 외친다.

    “나는 바로 서천土神의 토신이오. 폐하께서 태평성대를 즐겁게 누리시거늘 무엇 때문에 다른 일을 구문求問하시오? 몇년 뒤 위나라의 강토도 폐하게 넘어오니 폐하께서 절대 걱정하지 마시오.”

    말을 마치고 혼절해 바닥에 쓰러져 한참 뒤에야 깨어난다. 후주가 크게 기뻐하며 재물을 크게 내린다. 이로부터 무당의 말을 깊게 믿고 강유의 말을 듣지 않는 채 매일 궁중에서 주연을 열어 환락에 빠진다. 강유가 누차 사세가 급박하다고 표를 올리지만 모두 황호가 가로 채 숨기니 이로써 대사를 그르친다.

    한편, 종회가 대군을 결집해 줄줄이 한중으로 출발한다. 전군선봉(선두부대의 선봉장) 허의가 두공頭功(최고 공로)을 세우고자 먼저 군을 이끌고 남정관에 이른다. 허의가 부장들에게 말한다.

    “이 관문을 지나면 바로 한중이오. 관문 위에 인마가 많지 않으니 힘을 내서 점령하겠소.”

    뭇 장수가 명령을 받고 일제히 힘을 모아 전진한다. 알고 보니, 관문을 지키는 촉나라 장수 노손이 위군이 올 것을 벌써 알고 관문 앞 나무다리의 좌우에 병사를 매복하고 무후(제갈공명)가 남겨준 십시연노(십연발 쇠뇌)를 배치했다. 허의의 군대가 관문으로 몰려오자 ‘딱딱이’ 소리가 한바탕 나더니 시석(화살과 돌)이 빗발친다. 허의가 급히 물러나지만 어느새 수십 기(기마병)가 화살을 맞고 쓰러지고 위군이 대패한다.

    허의가 돌아가 종회에게 보고하니 종회가 직접 휘하의 갑사 1백여 기를 이끌고 와서 살핀다. 과연 화살과 쇠노로 일제히 사격한다. 종회 가 말머리를 돌려 돌아가자 관문 위에 있던 노손이 병사 5백을 이끌고 추격한다. 종회가 말을 몰아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 위의 흙이 무너 지며 말발굽이 빠져 말이 고꾸라진다. 말이 끝내 일어서지 못하자 종회가 말을 버리고 간다. 종회가 다리 위를 달리자 노손이 뒤따라 창 으로 찌르려는데 위나라 군중에서 순개가 몸을 돌려 화살을 한 발 쏘니 노손이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진다. 종회가 무리를 지휘해 그 틈에 관문을 공격한다. 관 위의 병사들이 촉나라 군이 관 앞에 아직 있으므로 감히 화살을 쏘지 못한다. 종회가 촉나라 군을 무찔러 산관 山關(산에 의지해 만든 요새)을 빼앗고 순개를 호군으로 임명해 말안장과 갑옷 일체를 하사한다.

    종회가 허의를 군막으로 불러들여 책망한다.

    “네가 선봉장이니 산을 만나면 길을 뚫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으며 오로지 다리와 길을 수리해 행군을 순조롭게 해야 한다. 그런데 내 가 다리에 가자마자 말발굽이 빠져 하마터면 다리에서 떨어질 뻔했다. 순개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피살됐을 것이다! 네가 군령을 어 겼으니 군법대로 처단하겠다!”

    좌우의 사람에게 소리쳐 허의를 끌어내 참하라고 한다. 여러 장수가 고한다.

    “그 부친 허저가 공로를 조정에 세웠으니 도독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종회가 노해 말한다.

    “군법이 분명치 못하면 어찌 무리를 통솔하겠소?”

    결국 허의의 목을 잘라 사람들에게 보이라고 명하니 뭇 장수 가운데 깜짝 놀라지 않는 이가 없다.

    이때 촉나라 장수 왕함이 낙성을 지키고 장빈이 한성을 지키고 있었다. 위나라의 군세가 대단하자 감히 싸우러 나오지 못하고 문을 닫고 지킬 따름이다. 종회가 군령을 내린다.

    “병귀신속兵貴神速(군사 작전은 신속함을 귀중히 여긴다)이니 조금도 멈춰서는 아니 되오.”

    이에 전군前軍(선두부대) 이보에게 낙성을, 호군 순개에게 한성을 포위하라 하고 종회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양평관을 친다. 양평관을 지키는 촉나라 장수 부첨이 부장 장서와 함께 싸워 지킬 계책을 상의하니 장서가 말한다.

    “위군이 몹시 많아 그 세력을 당할 수 없습니다. 견고히 지키는 것이 상책입니다.”

    부첨이 말한다.

    “그렇지 않소. 위나라 군이 멀리서 와서 틀림없이 피로할 테니 비록 그 수가 많아도 두려워할 것 없소. 관문을 나가 싸우지 않으면 한성 과 낙성 두 성도 끝장이오.”

    장서가 침묵하며 답하지 않는다.

    그런데 누군가 위나라의 대군이 이미 관문 앞에 다다랐음을 알린다. 장서와 부첨 두 사람이 관문 위로 가서 살피니 종회가 채찍을 휘두 르며 외친다.

    “내 이제 십만 대군을 이끌고 여기 왔으니 어서어서 나와서 항복하면 각각 품급에 따라 승진시킬 것이니라. 만약 고집을 부리며 항복하 지 않는다면 관애를 깨부순 뒤 옥석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불사르겠다!”

    부첨이 크게 노해 장서에게 관문을 지키라 하고 스스로 3천 군을 이끌고 관문 밖으로 돌격한다. 종회가 곧 달아나니 위군이 모 조리 퇴각한다. 부첨이 기세를 타고 뒤쫓자 위군이 다시 싸운다. 부첨이 관문으로 물러나 들어가려는데 관문 위에 이미 위나라의 깃발이 세워져 있다. 장서가 외친다.

    “나는 이미 위나라에 투항했소!”

    부첨이 크게 노해 성난 목소리로 꾸짖는다.

    “은혜를 잊고 의리를 저버린 역적 놈아! 무슨 면목으로 천자를 뵙겠냐!”

    말머리를 돌려 다시 위군과 접전한다. 위군이 사방에서 몰려와 부첨을 해심垓心(겹겹이 포위된 한 가운데)에 몰아넣는다. 부첨이 좌충우돌 이리저리 왔다갔다 죽기살기로 싸우지만 결국 탈출하지 못한다. 부첨이 이끌던 촉군도 열에 여덟아홉이 죽거나 다친다. 이에 부첨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한다.

    “내가 살아서 촉나라 신하가 되었으니 죽어서도 촉나라 귀신이 되겠다!”

    이에 다시 말을 몰아 돌격해 몸에 몇 군데나 창에 찔려 피가 전포와 갑옷을 적시고 타고 있던 말이 쓰러지니 부첨이 스스로 목을 베어 죽 는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탄식한다.

    어느 날 하루 충의를 떨치고 격분하니
    천추에 걸쳐 그 의로운 이름 떠받드네
    차라리 부첨처럼 죽을지언정
    어찌 장서처럼 살기를 꾀하겠는가

    종회가 양평관을 점령한 뒤 양평관 안에 쌓인 군량, 말먹이풀, 무기 등이 극히 많은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3군(전체 군대)을 호궤한다. 이날밤 위나라 군이 양평성 안에서 자는데 갑자기 서남쪽에서 함성이 크게 울린다. 종회가 황망히 군막을 나와 살펴보니 아무런 동정이 없다. 위나라 병사들이 밤새 감히 잠들지 못한다. 다음날 밤 2경에 서남쪽에서 또 함성이 인다. 종회가 놀라고 불안해 새벽에 사람들을 시켜 정탐하게 하니 돌아와 알린다.

    “멀리 십여 리까지 수색했으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종회가 놀라움이 가라앉지 않아 스스로 수백 기를 이끌고 무장을 완전히 갖춘 채 서남쪽을 순초한다. 어느 산에 이르니 살기가 사면에서 치솟고 먹구름이 몰려오며 안개가 산꼭대기를 뒤덮는다. 종회가 말을 멈춰 세우고 향도관( 길을 안내하는 관리 )에게 묻는다.

    “이 산이 무슨 산이오?”

    “이곳이 바로 정군산이니 지난날 하후연이 이곳에서 전사했습니다.”

    종회가 이를 듣고 갑자기 불안해져 말머리를 돌린다.

    산기슭을 돌아가는데 홀연히 광풍이 크게 불며 뒤에서 수천 기마병이 어디선가 솟아나와 바람을 타고 달려온다. 종회가 크게 놀라 무리 를 이끌고 말을 달려 달아난다. 여러 장수 가운데 말에서 떨어진 이들이 무수하다. 양평관까지 겨우 달아나서 보니 사람 하나 말 하나도 잃지는 않았지만 말에서 굴러떨어져 얼굴과 눈을 다치고 투구를 잃어버린 채 모두가 말한다.

    “먹구름 속에서 인마들이 몸 가까이까지 달려들었지만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니 이것은 한바탕 돌개바람일 따름입니다.”

    종회가 항장(항복한 장수) 장서에게 묻는다.

    “정군산에 신묘神廟(신이나 부처를 모신 묘당 / 제왕의 종묘 / 불교사찰)가 있소?”

    “신묘는 없고 제갈 무후(제갈공명)의 묘가 있을 뿐입니다.”

    종회가 놀라 말한다.

    “이것은 무후가 현성顯聖(신성한 사람이 죽은 뒤 그 존재나 힘을 드러냄)한 것이오. 내가 친히 찾아서 제사를 올려야겠소.”

    다음날 종회가 제례를 준비하고 태뢰太牢(소, 양, 돼지의 세가지 희생 제물)를 잡아 직접 무후의 묘 앞으로 가서 거듭 절하며 제사를 드 린다. 제사가 끝나자 광풍이 갑자기 멈추고 먹구름도 사방으로 흩어진다. 홀연히 맑은 바람이 솔솔 불고 가랑비가 분분히 내린다. 이렇 게 한바탕 지나가자 하늘이 맑게 개인다. 위군이 크게 기뻐하며 모두 절을 올려 고마워하고 영채로 돌아간다. 이날밤 종회가 군 막 안에서 탁자에 엎드려 자는데 갑자기 한바탕 청풍이 불더니 누군가 나타난다. 그는 윤건을 머리에 쓰고 깃털 부채를 손에 쥔 채 학창 의를 몸에 입고 흰 신을 신고 검은 끈으로 묶었다. 얼굴은 마치 관옥冠玉(머리에 쓰는 관을 장식하는 옥돌)과 같고 입술은 주사를 바른 듯 붉다. 눈썹이 깨끗하고 눈이 빛나고 그 키가 8척에 달하는데 표표한 모습 속에 신선의 풍모가 있다. 그 사람이 군막 안으로 걸어 들어 오는 것을 종회가 몸을 일으켜 맞이하며 묻는다.

    “공은 누구십니까?”

    “오늘 아침 찾아와준 것이 고마워 내가 한 마디 고하려 하오. 비록 한조漢祚(한나라의 황제 자리와 국가의 정통)가 이미 쇠망하고 천명을 어기기 어렵지만 양천(촉나라)의 생령(백성/인민)들이 급작스레 병혁兵革(무기와 갑옷)에 짓밟히게 됐으니 참으로 가련하오. 그대가 국경을 침입한 뒤에 만에 하나라도 생령들을 함부로 해치지 마시오.”

    말을 마치더니 소매를 떨치고 떠난다. 종회가 만류하려다가 갑자기 놀라서 깨어나니 한바탕 꿈이었다. 이것이 무후의 영혼임을 종회가 깨닫고 놀라워 마지않는다. 이에 선두 부대에 전령해 하얀 깃발에 ‘보국안민 保國安民’ 넉 자를 쓰게 하고 군대가 이르는 곳마다 한 사람 이라도 함부로 죽이면 목숨으로 죄값을 치르게 한다. 이에 한중의 인민들이 모두 성 밖으로 나와서 절하며 맞이하고 종회가 일일이 위무 하며 추호도 범하지 않는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찬한다.

    수만 음병이 정군산을 포위하자
    종회가 신령에게 절을 올리네
    살아서 계책을 내어 유 씨를 돕고
    죽어서 말씀을 남겨 촉나라 백성 지키네

    한편, 강유가 답중에 있는데 위군이 크게 몰려온 것을 듣고 요화, 장익, 동궐에게 군을 거느리고 도우라고 한다. 동시에 스스로 병사를 배치하고 장수들을 거느려 기다리는데 위군이 왔다는 보고가 날아든다. 강유가 군을 이끌고 나가 맞이하니 위군의 우두머리는 천수태수 왕기다. 왕기가 큰소리를 친다.

    “우리가 이제 병사 1백만, 상장上將(고위 장군 / 뛰어난 장수) 1천으로 2십로에 걸쳐서 진군해 이미 성도에 다다랐다. 네놈이 어서 항복할 생각을 않고 아직도 항거하려 들다니 어찌 천명을 모른단 말이냐!”

    강유가 크게 노해 창을 꼬나쥐고 말을 몰아 왕기에게 달려든다. 불과 3합을 못 싸우고 왕기가 크게 져서 달아난다. 강유가 군대를 이끌고 2 십 리까지 추격하자 징소리 북소리 일제히 울리며 1군이 전개한다. 그 깃발에 크게 “농서태수 견홍”이라고 적었다. 강유가 비웃 는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들이 어찌 내 적수이겠냐!”

    병사들을 다그쳐서 추격한다. 다시 2십 리를 가자 등애가 군대를 거느리고 몰려와 양군이 혼전을 벌인다. 강유가 정신을 집중해 등애와 십여 합을 싸우나 승부를 가르지 못하는데 뒷쪽에서 징 소리와 북 소리가 다시 울린다. 강유가 급히 물러날 때 후군에서 보고한다.

    “감송의 여러 영채를 모두 금성태수 양흔이 불살랐습니다.”

    강유가 크게 놀라 급히 부장에게 자신의 깃발을 대신 들고 등애와 맞서게 명령하고 스스로 후군을 철수해 한밤에 감송을 구하러 간다. 마침 양흔과 마주치자 양흔이 감히 교전치 못하고 산길로 달아난다. 강유가 뒤따라 추격해 어느 산의 바위 아래 이르자 바위 위에서 나 무와 돌이 빗발쳐 강유가 나아가지 못한다. 이에 되돌아가다가 이미 등애에게 격파된 촉군을 만난다. 뒤따라 위나라 대군이 몰려 와서 강유를 포위한다. 강유가 기마병들을 이끌고 두터운 포위를 뚫고 대채大寨(큰 영채/ 본진)로 달아나 굳게 지키며 구원병을 기다린 다. 그런데 유성마(통신병)가 달려와 알린다.

    “종화가 양평관을 격파했습니다. 수장(수비하는 장수) 장서는 투항하고 부첨은 전사했습니다. 한중이 벌써 위나라에 떨어졌습니다. 낙성 의 수장 왕함, 한성의 수장 장빈도 한중을 이미 빼앗긴 것을 알고 역시 성문을 열고 투항했습니다. 호제가 적군을 막을 수 없어 성도로 구 원병을 청하러 달아났습니다.”

    강유가 크게 놀라 즉시 영채를 거두라 전령한다. 이날밤 강천의 어귀에 이르자 1군이 가로막으니 우두머리는 위나라 장수, 금 성태수 양흔이다. 강유가 크게 노해 말을 몰아 교봉(교전)하니 단지 1합만에 양흔이 패주한다. 강유가 활을 집어들어 잇달아 화살 세 발을 쏘지만 모조리 명중하지 않는다. 강유가 더욱 노해 활을 부러뜨리고 창을 꼬나쥐고 뒤쫓다가 전마(군용 마필)가 앞발을 헛디뎌 강유가 땅 위로 거꾸러진다. 양흔이 말을 몰아 강유를 죽이려 달려오는데 강유가 벌떡 일어나 단번에 창으로 찔러 양흔이 탄 말의 뇌를 꿰뚫 는다. 뒤에서 위군이 몰려와 양흔을 구출해 간다.

    강유가 말을 다시 타고 추격하려는 때에 누군가 급히 알리니, 뒷쪽에서 등애가 이끄는 군이 몰려왔다는 것이다. 강유가 앞뒤로 서로 도울 수 없는 형세에 처하자 군대를 거두고 한중을 탈환하려고 한다. 그런데 초마(정찰병)가 알린다.

    “옹주자사 제갈서가 이미 귀로를 끊었습니다.”

    강유가 산세가 험준한 곳에 영채를 세우고 위군은 음평교 어귀에 주둔한다. 강유가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게 되자 장탄식한다.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부장 영수가 말한다.

    “위군이 비록 음평교를 차단했다고 하나 옹주의 병사는 수가 많지 않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장군께서 공함곡을 따라 옹주를 습격 하면 제갈서는 음평에서 철군해 옹주를 구하러 갈 것입니다. 그 틈에 장군께서 군을 이끌고 검각으로 달려가 지키면 한중을 수복할 수 있습니다.”

    강유가 그 말을 따라 즉시 군대를 내어 공함곡으로 들어가 옹주를 습격하는 척한다. 세작(첩자)이 제갈서에게 알리자 제갈서가 크게 놀 란다.

    “옹주는 내가 군대를 모으는 곳인데 만일 잘못되면 조정에서 틀림없이 죄를 물을 것이다.”

    급히 대군을 철수해 남쪽 길을 따라 옹주를 구하러 가고 1군만 남겨 음평교 어귀를 지키게 한다.

    강유가 북쪽 길로 들어가 약 3십 리를 가다가 위군이 떠난 것을 알아차리고 회군한다. 후대(후미 대열)가 전대(선두 대열)가 되어 음평교 어귀로 달려가니 과연 위나라 대군이 이미 떠나고 소수 병력만 남아서 지키고 있다. 강유가 한바탕 무찔러 쫓아내고 목책을 모조 리 불사른다. 음평교 어귀에서 불길이 치솟자 제갈서가 다시 군을 이끌고 되돌아온다. 그러나 강유가 군을 이끌고 떠난 지 반나절이 지난지라 제갈서가 감히 추격하지 못한다.

    한편, 강유가 군을 이끌고 음평교 어귀를 지나서 행군하는데 앞쪽에서 1군이 몰려온다. 바로 좌장군 장익과 우장군 요화다. 강유가 물으니 장익이 말한다.

    “황호가 무당의 말을 믿고 군대를 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한중이 위기에 처한 것을 전해 듣고 직접 군대를 일으켜 왔습니다만 양평관은 이미 종회가 빼앗은 뒤였습니다. 이제 장군께서 곤경에 처한 것을 듣고 도우러 온 것입니다.”

    이에 병사들을 한데 모은다. 요화가 말한다.

    “이제 사방에서 적군이 쳐들어오니 양도(군량 수송로)가 불통입니다. 차라리 검각으로 퇴각해 지키면서 다시 좋은 계책을 내는 것만 못 합니다.”

    강유가 주저하며 결단하지 못하는데 누군가 급히 알리기를, 종회와 등애가 군대를 나눠 십여 개 방면으로 몰려온다고 한다. 강유가 장익, 요화와 더불어 군대를 나눠서 적군을 맞으려 하자 요화가 말한다.

    “백수는 땅이 좁고 길이 많아 싸움을 펼칠 장소가 못 되니 차라리 우선 퇴각해 검각을 구하러 가는 것이 옳습니다. 검각을 잃어버리면 아 무데도 갈 수 없게 됩니다.”

    강유가 이를 따라 군을 이끌고 검각으로 달려간다. 관문 앞으로 접근하자 누군가 급보한다. 북과 피리 소리가 일제히 울리고 함성이 크게 이는 가운데 온갖 깃발이 가득 일어서고 1개 지대가 관문의 입구를 막아섰다고 한다.

    한중이 험준하나 이제 아무 것도 없는데
    검각에 갑자기 풍파가 일어나는구나

    어디에서 오는 병사들일까?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