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2회 장익덕이 분노하여 독우를 매질하고 하진이 환관들을 주살할 것을 꾀한다

    한편 하동태수 동탁 '중영'은 농서의 임조 출신으로 원래 교만하다. 그날 현덕에게 무례하니 장비가 성나서 죽이려 한다. 현덕이 관공과 함께 급히 말린다.

    "조정에서 임명한 관리를 어찌 함부로 죽이냐?"

    "저 종놈을 못 죽이면 그 밑에서 명령을 받들텐데 정말 그러기는 싫소! 형들이 머물겠다면 나 혼자라도 떠날테요!"

    이에 현덕이 말한다.

    "우리 세 사람이 의리로써 생사를 같이하자 했거늘 어찌 헤어지겠냐? 차라리 모두 다른 데로 가는 게 낫겠구나."

    "그러면 제 한이 조금은 풀리겠소."

    세 사람이 군을 이끌고 밤에도 쉬지않고 주준에게 간다. 주준이 후대하고 병력을 한데모아 장보를 토벌한다. 이때 조조는 곡양에서 황보숭을 도와 장량과 격전하고 있었다. 주준이 장보에게 쳐들어가자 장보는 도적 8, 9만을 이끌고 뒷산에 포진한다. 주준이 현덕을 선봉으로 대적한다. 장보가 부장 고승을 출마시켜 도전하니 현덕이 장비를 보내 싸운다. 장비가 말을 힘껏 내달려 장팔사모를 꼬나잡고 싸우더니 몇합만에 고승을 찔려 낙마시킨다. 현덕이 군을 이끌고 쳐들어가니 장보가 말 위에서 장검 仗劍(의례용 칼)을 뽑아 요술을 부린다. 갑자기 바람과 우뢰 크게 일어나고 한덩이 검은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흑기 黑氣 속에서 무수한 인마가 달려오는 듯한다.

    현덕이 당황하여 회군하니 군중이 대란하여 패퇴한다. 주준과 더불어 계책을 의논하니 주준이 말한다.

    "그놈이 요술을 부리네. 아무래도 내일 돼지와 양과 개를 도살한 뒤에 그 피를 가지고 산꼭대기에 군을 매복하겠네. 도적떼가 추격하기를 기다려 높은 곳에서 피를 뿌리면 요술이 풀릴 것이네."

    현덕이 군령을 듣고 관, 장에게 각각 1천군을 이끌고 산 뒤 높은 언덕 위에 매복하고 돼지, 양, 개의 피와 오물을 잔뜩 준비하라 한다. 이튿날 장보가 깃발을 나부끼고 북을 치며 군을 이끌고 도전하자 현덕이 나가 맞이한다.

    서로 칼날을 부딪히자 장보가 요술을 부린다. 풍뢰가 크게 일고 모래가 날고 돌이 구른다. 흑기가 하늘 가득하고 인마가 끝없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현덕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자 장보가 군을 이끌고 뒤쫓는다. 산머리를 지날 즈음 관, 장의 복병이 호포를 터뜨리고 오물을 일제히 뿌린다. 갑자기 공중에서 내려온 인마가 종이인형과 지푸라기말로 변해 흩날리고 사석 砂石도 날지 않는다. 장보가 요술이 풀리자 서둘러 퇴군한다. 좌우에서 관, 장의 2군이 출격하고 뒤에서 현덕과 주준이 일제히 추격하니 적병이 대패한다.

    현덕이 지공장군 깃발을 발견해 말달려 추격하자 장보가 놀라 달아난다. 유비가 화살로 왼팔을 맞추자 화살이 박힌 채 도주해 양성에 틀어박혀 견고히 수비하며 나오지 않는다. 주준이 병력을 이끌고 양성을 포위하면서 한편으로 황보숭의 소식을 알아본다. 염탐을 갔던 이가 돌아와 자세히 이야기한다.

    "황보숭은 대승하고 동탁은 거듭 패전하므로 조정에서 황보숭으로 하여금 동탁을 대신했습니다. 황보숭이 도착하니 장각은 진작에 죽었고 장량의 무리가 아군을 대적했습니다. 황보숭이 일곱번 잇따라 이겨 마침내 곡양에서 장량의 목을 베었습니다. 장각의 관을 파헤쳐 시체의 목을 베고 머리를 매달아 서울로 보내니 나머지도 항복했습니다. 조정에서 황보숭을 거기장군에 올리고 익주목으로 삼았습니다. 황보숭이 노식에게 공은 있고 무조하다고 조정에 상주하니 노식을 복직시켰습니다. 조조도 공을 세워 제남상에 임명되어 군을 거느리고 부임했습니다."

    주준이 듣고나서 병사들을 독려하여 양성을 친다. 형세가 다급해지자 도적의 장수 엄정이 장보를 찔러죽이고 머리를 바치며 투항한다. 주준이 여러 군현을 평정하고 조정에 승첩을 알린다.

    그때 다시 황건적 잔당 세 사람 조홍, 한충, 손중이 장각의 복수를 외치며 도적떼 수만을 모으니 바람에 불길이 번지는 기세와 같다. 조정에서 승전을 거둔 병력을 주준에게 줘서 토벌케 한다. 주준이 조서를 받들고 진군한다. 그때 황건적이 완성을 점거하고 있었다. 주준군이 공격하자 조홍이 한충을 출전시킨다. 주준이 현덕, 관, 장에게 서남쪽에서 완성을 치게 한다. 한충이 정병을 이끌고 서남에서 막는다. 주준이 몸소 철기 2천으로 동북을 맹공하니 도적이 함락될까봐 서남을 버리고 돌아가는 것을 현덕이 배후에서 엄습한다. 도적이 대패하여 완성으로 도주한다. 주준이 병력을 나눠 사방을 포위하자 성중에서 굶주려 한충이 사람을 보내어 투항하겠다고 한다.

    주준이 허락치 않으니 현덕이 묻는다.

    "옛날 고조께서 항복을 권하고 귀순을 받아서 천하를 얻었습다. 공께서 어찌 투항을 거절하십니까?"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네. 옛날 진나라나 항우의 시절은 천하대란이라 백성에게 따로 정해진 임금이 없으니 고조황제께서 항복을 받고 타일러 포상하여 귀순을 권했네. 그러나 이제 해내 海內(천하)가 일통인데 황건적만 반역했네. 투항을 받아들이면 무엇으로 착한 일을 권하겠나? 도적이 유리하면 멋대로 겁략하다가 불리하면 편한대로 투항치 않겠나? 이러면 나쁜 뜻만 키우니 좋은 방책이 아니네."

    현덕이 말한다.

    "항복을 받지 않는 것이 옳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방을 철통 같이 포위하고 항복요청도 받지 않으면 결사항전하겠지요. 1만 인이 한마음이라도 감당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성중의 수만인이 결사하면 어떻겠습니까? 동남의 병력을 물리고 서북만 치면 도적이 성을 버리고 달아나면서 전의를 잃을테니 그때 잡을 수 있습니다."

    이에 주준이 동남을 철병하고 서북만 친다. 한충이 과연 무리를 이끌고 달아난다. 주준이 현덕, 관, 장과 전군을 거느리고 엄습하여 한충을 사살하니 나머지는 사방으로 달아난다. 이들을 추격하는데 조홍과 손중이 도적을 이끌고 와서 주준과 교전한다. 주준이 조홍의 세력이 큰 것을 보고 잠시 퇴군한다. 이 틈에 조홍이 완성을 수복한다.

    주준이 십리 밖에 영채를 세우고 성을 공격하려는데 정동쪽에서 1군이 몰려온다. 선두장수는 이마가 넓고 얼굴이 큰데 호랑이 몸에 곰의 허리다. 오군의 부춘 출신의 손견 '문태'이고 손무자의 후손이다. 17세에 아버지와 함께 전당에 갔는데 해적 십여 인이 상인의 재물을 약탈해 언덕 위에서 장물을 나누고 있었다. 손견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도적들을 잡아보겠습니다."

    힘껏 칼을 들고 언덕을 올라가 소리지르며 이리저리 병사들을 지휘하는 척했다. 도적은 관병이 오나 싶어 재물을 버린 채 도주하고 손견이 추격하여 한 명을 죽였다. 이것으로 군현에 이름을 떨쳐 교위로 천거됐다.

    그뒤 회계에서 요사스런 도적 허창이 반역해 양명황제라 자칭하고 무리 수만을 모았다. 손견이 고을의 사마(군사담당)와 더불어 용사 1천여를 초모하여 여러 주군에서 반란군을 쳐부수고 허창과 아들 허소를 참했다. 자사 장호가 조정에 공을 아뢰니 손견이 염두, 우이, 하비의 승 丞을 역임했다.

    이제 황건적이 봉기하자 고을의 젊은이와 상인, 나그네를 초모하고 아울러 회사 淮泗의 정병 1천5백여를 더하여 달려온 것이다. 주준이 크게 기뻐하고 손견에게 남문을, 현덕에게 북문을 치게 하고 스스로 서문을 치고 동문을 남겨 도적이 도주케 한다. 손견이 선두에서 성을 올라 도적을 벤 게 스물 남짓이니 도적이 흩어져 달아난다. 조홍이 말달려 삭을 들고 달려들자 손견이 성벽에서 몸을 날려 삭을 빼앗아 조홍을 찔러 낙마시킨다. 손견이 조홍의 말을 타고 재빨리 오가며 도적을 무찌른다.

    손중이 도적떼를 이끌고 북문으로 뚫고 나가다가 현덕과 마주치지만 전의를 잃고 달아날 뿐이다. 현덕이 활을 쏘자 손중이 맞아 거꾸로 낙마한다. 주준의 대군이 뒤따라 덮치니 참수가 수만 급이고 투항자는 무수하다. 남양 일대 십수개 고을을 모두 평정한다.

    주준이 군을 거느리고 귀경하자 황제가 조서를 내려 '거기장군 하남윤'에 임명한다. 주준이 표를 올려 손견, 유비 등의 공을 아뢴다. 손견은 아는 사람이 있어 별군사마로 부임한다. 유비는 오랫동안 기다리지만 벼슬을 받지 못한다.

    삼형제가 답답하고 괴로워 거리를 서성이는데 낭중 장균의 수레가 다가온다. 현덕이 자신의 공적을 이야기하며 한탄하자 장균이 깜짝 놀라 입궁해 황제에게 아뢴다.

    "지난번 황건적의 난은 기원을 따지면 모두 십상시가 벼슬을 사고팔고 그들과 친하지 않으면 등용치 않고 그들과 원수가 아니면 죄를지어도 주살하지 않아 천하대란이 온 것입니다. 이제 십상시를 참하여 그들의 목을 남교 南郊에 매다십시오. 그리고 사자를 보내어 유공자를 크게 포상한다고 천하에 포고하면 사해가 저절로 맑아지고 평안해질 것입니다."

    십상시가 황제에게 아뢴다.

    "장균이 임금을 속입니다."

    황제가 무사들에게 장균을 끌어내라 한다. 십상시가 함께 의논한다.

    "이것은 황건을 치며 전공을 세운 이들이 벼슬을 못 받자 원망해서요. 일단 관청에서 심사하여 하찮은 벼슬이라도 주고 나중에 다시 따져도 늦지 않아요."

    덕분에 현덕이 정주 중산부 안희의 현위 縣尉(치안담당)로 부임한다. 현덕이 군대를 해산하여 귀향시키고 스물 남짓만 거느리고 관, 장과 함께 안희현으로 간다. 현청사무를 본 지 한달간 백성을 추호도 괴롭히지 않자 백성이 모두 감동한다. 부임한 뒤 관, 장과 같은 탁자에서 먹고 같은 침대에서 잔다. 현덕이 사람들 가운데 앉으면 관, 장이 지켜서서 하루종일 게을리하지 않는다.

    부임 넉달이 못 되어 조정에서, 전공으로 관리에 임명된 이들을 크게 줄이겠다 한다. 현덕도 대상에 오르니 독우(감찰)가 순시하다 안희현에 당도한다. 현덕이 성곽을 나가 영접하고 독우를 예우한다. 독우는 말 위에 앉아 채찍으로 가리키며 답할 뿐이니 관, 장이 모두 노한다. 관역에서 독우가 남면 南面하고 현덕은 계단 아래 시립한다. 한참 뒤 독우가 묻는다.

    "유 현위는 출신이 어떻게 되나?"

    "저는 중산정왕 후예입니다. 탁군에서부터 황건적을 무찔러 대소 3십여 싸움에서 작은 공을 세워 벼슬을 받았습니다."

    독우가 큰소리로 꾸짖는다.

    "네가 황손을 사칭하고 공적을 거짓으로 보고했구나! 이제 조정에서 조서를 내려서 너 같은 탐관오리를 내쫓을 참이다!"

    현덕이 예, 예 소리만 내며 물러나서 현청으로 돌아와 관리와 상의하니 관리가 말한다.

    "독우가 뇌물만 바라고 일부러 사납게 굽니다."

    "내가 백성을 추호도 건드리지 않는데 무슨 재물을 모아서 주겠소?"

    이튿날 독우가 현청의 관리를 잡아다가 현위가 백성을 해친다고 억지로 자백하게 한다. 현덕이 몇번 찾아가 해명하려고 하지만 문지기가 막아서 들어갈 수 없다.

    한편, 장비가 답답해서 술을 몇잔 하고 말타고 관역 앞을 지나는데 노인 5, 6십이 문 앞에서 통곡한다. 장비가 까닭을 물으니 그들이 대답한다.

    "독우가 현리를 핍박하여 유공을 해치려 하기에, 저희가 몰려와 간청하지만 들여보내지 않고 도리어 문지기가 때립니다!"

    장비가 분노하여 고리눈 부릅뜨고 이빨을 갈며 말안장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서 관역으로 쳐들어간다. 문지기가 가로막지만 뿌리치고 후당으로 달려간다. 독우가 마루 위에 앉아 있고 현리는 밧줄에 묶여 쓰러져 있다.

    장비가 크게 꾸짖는다.

    "백성을 해치는 도적 놈아!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냐?"

    독우가 미처 입을 열지 못하는데 장비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밖으로 질질 끌고간다. 현청 앞 말뚝에 묶고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서 독우의 허벅지를 벗겨 통타한다. 가지가 꺾이도록 몰아서 때리는데 그렇게 꺾인 가지가 열몇 개다.

    현덕이 걱정하다 현청 앞이 시끄러워 좌우에게 물으니 답한다.

    "장장군께서 누군가를 현청 앞에 묶어놓고 통타하십니다."

    현덕이 달려가보니 묶인 사람은 독우다. 현덕이 까닭을 물으니 장비가 말한다.

    "이 놈은 백성을 해치는 도적놈이니 때려죽여야죠!"

    독우가 사정한다.

    "현덕공,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현덕이 본래 인자하므로 장비에게 매질을 멈추라 소리친다.

    관공이 근처를 지나다 찾아와 말한다.

    "형장께서 공적이 다대하건만 현위에 불과하고 독우에게 모욕까지 당하셨습니다. 제 생각에 가시덤불은 난새나 봉황이 깃들 데가 아닙니다. 독우를 죽이고 사직한 뒤 귀향하여 따로 원대한 계책을 도모합시다."

    현덕이 도장끈를 벗어 독우의 목에 걸고 꾸짖는다.

    "백성을 해친 것을 생각하면 두번 죽여야겠지만 잠시 살려주마. 인수를 돌려주니 가지고 돌아가라."

    독우가 돌아가서 정주태수에게 고하니 태수가 관청에 널리 알려 현덕의 무리를 체포케 한다. 현덕, 관, 장 세 사람이 대주의 유회를 찾아간다. 유회가 현덕이 한실종친임을 알고 집에 숨겨준다.

    한편, 십상시가 중권 重權을 장악하고 상의하며 단지 저들을 따르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벌준다. 조충과 장량이 사람을 보내어 황건적을 격파한 장사 將士들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불응하면 황제에게 표를 올려 파직한다. 황보숭과 주준도 뇌물을 주지 않자 조충 등이 표를 올려 파직한다. 황제가 다시 조충 등을 거기장군으로 삼고 장량 등 13인 모두 열후 列侯로 봉한다. 조정이 더욱 엉망으로 무너지니 인민이 탄식하고 원망한다. 이에 장사에서 도적 구성이 반란하고 어양에서 장거와 장순이 반역하여 장거는 천자를, 장순은 대장군을 자칭한다. 지방에서 눈발이 쏟아지듯이 표를 올려서 급보하지만 십상시가 모조리 숨기고 황제에게 알리지 않는다.

    어느날 황제가 후원에서 십상시에게 연회를 열어 음주하는데 간의대부 유도가 달려와 통곡한다. 황제가 까닭을 묻자 유도가 말한다.

    "천하가 몹시 위태로워 아침저녁에 어찌될지 모르거늘 한가로이 환관과 술이나 드십니까."

    "국가가 태평한데 어찌 위급하다고 하는가?"

    "사방에서 도적떼가 일어나 고을들을 노략하고 있습니다. 모든 재앙은 십상시가 벼슬을 팔아먹고 백성을 해치고 임금을 속이고 업신여긴 데에서 비롯합니다. 조정에서 올바른 사람이 모두 사라졌으니 큰 재앙이 눈앞에 닥쳤습니다!"

    십상시가 모두 관을 벗어 엎드려 말한다.

    "조정대신이 저희를 용납하지 않으니 살 수가 없네요. 목숨만 부지해 낙향하고 가산은 군자금으로 바치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울어재끼자 황제가 노해서 유도에게 이른다.

    "네 집에도 가까이 시중드는 사람이 있을텐데 어찌 짐은 안 되냐?"

    무사를 불러서 유도를 참하라 하자 유도가 울부짖는다.

    "제가 죽는 것은 슬프지 않습니다만 가련하도다! 한나라 천하 4백년 이제 하루아침에 끝이 나는구나!"

    무사들이 묶어서 끌고나가 베려는데 어느 대신이 멈추라고 외친다.

    "칼을 멈춰라! 황제께 간할테니 기다려봐라!"

    모두 바라보니 사도 진탐이다. 그가 바로 입궐하여 황제에게 간한다.

    "유간의를 무슨 죄로 죽이시나이까?"

    "나를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을 헐뜯고 짐을 모독했네."

    "천하인민 모두가 십상시의 고기를 씹고 싶은데도 폐하께서 부모처럼 공경하고 촌공 寸功도 없건만 열후에 책봉하셨습니다. 하물며 봉서 등은 황건적과 연결하여 내란을 꾀하지 않았습니까? 폐하께서 이제 자성하지 않으시면 사직이 무너집니다!"

    "봉서의 반란도 확실하지 않아. 십상시 가운데 어찌 충신이 한둘 없겠나?"

    진탐이 계단을 머리로 찧어대며 간언하니 황제가 노해서 그를 끌어내어 유도와 함께 하옥하게 한다. 그날밤 십상시가 옥중에서 두 사람을 암살하고 황제의 조서를 꾸며 손견을 장사태수에 앉혀 구성을 토벌케 하자 손견이 불과 오십일만에 강하를 평정했다고 승첩을 올린다.

    조정에서 조서를 내려 손견을 오정후 烏程侯로 책봉한다. 또한 유우를 유주목으로 삼아 어양에서 장거와 장순을 토벌하니 유회가 글을 써서 현덕을 천거한다. 유우가 현덕을 만나자 크게 기뻐하며 현덕을 도위로 삼아 도적의 소굴을 친다. 도적과 크게 싸워서 며칠만에 예봉을 꺾는다. 장순이 흉포하기만 하므로 사졸이 변심한다. 그에게 매맞은 두목이 장순을 찔러 죽이고 머리를 바치며 도적을 이끌고 항복한다. 이에 장거가 세력이 다한 줄 알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니 어양이 모두 평정된다. 유우가 표를 올려 유비의 큰 공을 아뢰자 조정에서 독우를 때린 죄를 사면하고 하밀의 승으로 임명했다가 다시 고당의 위 尉(장교)로 임명한다. 공손찬이 다시 표를 올려 현덕이 이전에 세운 전공도 아뢰니 별부사마로 천거되고 평원현령에 임명된다. 이제 재물, 양식, 군마를 제법 거느려 지난날의 기상을 되찾는다. 유우는 도적을 토벌한 공으로 태위에 봉해진다.

    중평 6년 4월 하순, 영제의 병세가 위독하자 대장군 하진을 궁궐로 불러들여 후사를 상의한다. 하진은 도가 백정 출신이다. 누이가 입궁하여 귀인이 되어 황자 변을 낳고 황후가 되자 하진이 중임을 맡게 됐다. 황제가 왕미인을 총애하여 황자 협을 낳자 하황후가 질투하여 왕미인을 독살하므로 황자 협은 동태후의 궁궐에서 양육됐다. 동태후는 영제의 어머니로서 해독정후 유장의 아내였다. 원래 환제가 아들이 없어 해독정후의 아들을 입양해 그뒤 영제가 됐는데 영제가 대통을 이은 뒤 모친을 입궁시켜 태후로 높인 것이다.

    동태후가 황제에게 황자 협을 태자로 권한 적이 있다. 황제도 협을 편애하여 태자로 세우려 했다. 당시 병세가 위독하니 중상시 건석이 아뢴다.

    "협을 옹립하시려면 하진을 주살해 후환을 없애세요."

    이에 황제가 하진에게 입궁하라 하교한다. 하진이 궁문에 다다르자 사마 반은이 하진에게 이른다 .

    "입궁하지 마세요. 건석이 공을 주살할 겁니다."

    하진이 크게 놀라 귀가하여 환관을 몰살할 것을 대신들과 모의하니 좌중에서 누군가 일어나 말한다.

    "환관세력이 커진 것은 이미 중제와 질제의 시대부터죠. 조정에서 점점 불어나서 이제 세력이 지극히 강대하니 어찌 쉽게 몰살하겠습니까? 누설되면 멸족의 화를 입으니 만전을 기하십시오."

    하진이 바라보니 전군교위 조조다.

    하진이 꾸짖는다.

    "소인배가 어찌 조정 대사를 알겠냐!"

    하진이 주저하는데 반은이 와서 말한다.

    "황제께서 이미 붕어하셨습니다. 이제 건석이 십상시와 상의하여 상을 숨기고 조서를 꾸며 하국구를 입궁시켜 후환을 없애고 황자 협을 책립하려 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자가 와서 하진에게 입궁하여 후사를 정하라 한다. 조조가 말한다.

    "오늘 필요한 계책은 먼저 황위를 바로세우고 그뒤 도적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하진이 말한다.

    "누가 나와 더불어 황제를 바로세우고 도적을 토벌하겠소?"

    누군가 일어난다.

    "정병 5천을 주시면 빗장을 부수고 입궁하여 고자놈을 몰살하여 조정을 청소하고 천하를 편안케 하겠습니다."

    하진이 바라보니 사도 원봉의 아들이자 원외의 조카인 사예교위 원소 '본초'이다. 하진이 크게 기뻐하며 어림군 5천을 뽑아준다. 원소가 전신에 갑옷을 갖춰 입는다. 하진이 하우, 순유, 정태 등 대신 삼십여 명과 함께 입궁하여 환제의 영구 앞으로 가서 태자 변을 황제로 옹립한다.

    백관이 만세를 부르고 절을 마치자 원소가 입궁해 건석을 찾는다. 건석이 황망히 궁궐 정원에 숨으나 꽃그늘 밑에서 중상시 곽승에게 잡혀죽는다. 건석이 원래 금군을 지휘하지만 모두 투항한다. 원소가 하진에게 말한다.

    "내시들이 도당을 결성할 것이니 이참에 오늘 모두 죽이세요."

    장양 등이 위급하자 하태후에게 달려가서 고한다.

    "애초 대장군을 해치려 꾸민 이는 건석 한 사람뿐이고 저희는 모르는 일이지요. 대장군께서 원소의 말만 듣고 저희 모두를 죽이시려 하시네요. 제발 낭랑께서 불쌍히 여기세요."

    "자네들은 걱정 말게나. 내가 지켜줄게."

    태후가 교지를 전해 하진을 불러들인다. 태후가 은밀하게 이른다.

    "나나 너나 출신이 한미한데 장양 등이 아니면 어찌 부귀를 누리겠어? 이제 건석이 어질지 못하여 처형했는데 남의 말만 듣고 모조리 죽일 셈이야?"

    하진이 듣고 나가 여러 관리에게 이른다.

    "건석이 나를 해치려 했으니 멸족이 마땅하지만 나머지는 함부로 죽일 것까지는 아니지."

    원소가 말한다.

    "풀을 베면서 뿌리를 안 뽑으면 몸을 망치는 근원이 됩니다."

    "결심했으니 여러 말 하지 말게나."

    여러 관리가 모두 물러간다.

    이튿날 태후가 하진에게 녹상서사를 겸임게 하하고 나머지도 모두 관직을 받는다. 동태후가 장양 등을 궁궐로 불러들여 상의한다.

    "하진의 누이는 처음에 내가 높여주었지. 이제 어린 애는 황제에 즉위하고 궁궐 내외의 신료들이 모두 그의 심복이야. 그 권위가 태중하니 내가 장차 어찌되겠냐?"

    장양 등이 말한다.

    "낭랑께서 조정에 납셔서 수렴청정을 하세요. 황자 협을 왕으로 삼고 국구 동중에게 큰 벼슬을 내려 군권을 장악하고 저희를 중용하면 대사를 도모하실 수 있지요."

    동태후가 크게 기뻐한다.

    이튿날 조정에서 동태후가 교지를 내려 황자 협을 진류왕으로 책봉하고 동중을 표기장군에 임명하고 장양 등을 함께 조정에 참여시킨다. 동태후가 권력을 휘어잡자 하태후가 궁중연회에 동태후를 초대한다. 술을 마시고 제법 취할 때 하태후가 일어나 거듭 절하며 말한다.

    "저희 부녀자가 정사에 참여함은 옳지 않아요. 옛날 여태후가 중권을 장악했다가 일족 천명이 도륙됐잖아요. 저희는 구중궁궐 깊숙히 거처하며 원로대신에게 맡기면 국가의 다행이지요.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동태후가 노한다.

    "너는 왕미인을 독살하며 질투했지. 아들과 오라비의 위세를 믿고 망언하는구나. 내가 표기장군에게 칙서를 내려 네 오라비를 참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야!"

    하태후도 노한다.

    "좋은말로 권하는데 어찌 화를 내요?"

    "너희 집안은 돼지나 잡던 천민이니 아는 것이 있겠냐?"

    두 태후가 다투자 장양 등이 말려서 각자 궁으로 돌아간다. 하태후가 그날밤 하진을 불러 그날 일을 알려준다. 하진이 나가서 3공과 의논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조회를 열어 신하를 시켜 '동태후는 원래 제후의 아내라 궁중에 오래 머물 수 없으니 동 태후를 하간으로 안치하고 기한을 정해 국문 밖으로 내보내시라' 고 상주한다.

    한편으로 사람을 보내어 동태후를 압송하고 금군을 동원해 표기장군 동중의 저택을 포위하여 인수를 빼앗는다. 동중이 사태가 급박하자 후당에서 자결한다. 집안사람이 장례를 치르자 군인이 물러간다. 동태후 일파가 한번에 무너지자 장양과 단규가 뇌물을 들고 하진의 동생 하묘와 어머니 무양군에게 달려간다. 그들에게 저녁에 하태후 거처로 들어가서 자신들을 지켜주라고 부탁한다. 이에 십상시가 다시 황제 곁에서 총애를 받는다.

    그해 6월 하진이 몰래 하간역에서 동태후를 독살하고 서울로 운구하여 문릉에 묻는다. 하진이 병을 핑계로 외출하지 않자 사예교위 원소가 찾아가 하진에게 말한다.

    "장양과 단규 등이 공께서 동태후를 독살하고 대사를 도모한다고 밖에서 유언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이 기회에 환관을 죽이지 않으면 커다란 화가 됩니다. 옛날 두무가 환관들을 죽이려다가 누설되어 화를 입었습니다. 이제 공의 형제께서 거느린 부곡(군대)의 장수나 관리 모두가 영준한 인재들입니다. 그들이 진력하면 사태를 장악할 수 있습니다. 하늘이 내린 기회니 놓치면 안 됩니다."

    하진이 말한다.

    "다시 상의해볼게."

    좌우에서 장양에게 은밀히 알려주니 장양 등이 하묘에게 알리고 많은 뇌물을 바친다. 하묘가 하태후를 만나 아뢴다.

    "대장군께서 새 황제를 보좌하며 자비를 베풀지 않고 오로지 살벌할 뿐이네요. 아무 이유도 없이 다시 십상시를 죽이려 하는 것은 난리를 자초하는 길이지요."

    태후도 받아들인다. 잠시 뒤 하진이 입궁하여 환관을 죽이겠다 아뢰니 하 태후가 말한다.

    "중관이 금성(황제의 거처)을 관리하는 것은 한나라 전통이야. 선제께서 세상을 뜨자마자 옛 신하를 죽이려 하니 종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지."

    하진이 본래 결단력이 없어서 태후의 말에 그저 예, 예 하며 물러나므로 원소가 묻는다.

    "대사는 어찌 돼갑니까?"

    "태후께서 허락치 않으니 어쩔 수 있겠어?"

    "사방의 영웅들을 불러 서울로 진군시켜 환관을 몰살하세요. 사태가 급박하니 태후께서 따르지 않아도 상관치 마시고요."

    "이 계책이 절묘하군!"

    즉시 격문을 각지 군진으로 보내 서울로 진군하도록 한다.

    주부 진림이 말한다.

    "불가합니다요! 속담에 '눈 가리고 새 잡기'라 하듯이 제 꾀에 넘어가는 것이지요. 이제 장군께서 황제 권위에 기대어 병권을 잡고 용과 호랑이처럼 당당하게 나아가면 만사를 뜻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환관을 주살하는 것도 이것도 화로에서 머리카락 태우듯이 쉬운 일이지요. 다만 그러려면 벼락처럼 신속하고 단호히 움직여야 하늘도 사람이 따라요. 그러지 않고 도리어 밖에서 대신을 불러들여서 서울을 범하면 영웅들이 모여들어 제각기 야심을 품지요. 이야말로 무기를 거꾸로 잡는 격이요 남에 칼자루를 넘겨주는 격이니 반드시 실패하고 대란이 나겠지요."

    하진이 웃는다.

    "겁쟁이 같은 말이구나!"

    곁에서 한 사람이 손뼉 치고 웃으며 말한다.

    "이 일은 손바닥 뒤집기처럼 쉬우니 여러 말씀이 필요없지요!"

    바라보니 조조다.

    임금 곁의 간사한 무리의 난을 제압하려면 조정의 지혜로운 선비의 계책을 반드시 들어야 하리라.

    조조가 과연 무슨 말을 할까?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