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3회 동탁이 온명원에서 정원을 질타하고 이숙에게 금은보화를 줘서 여포를 꾀어낸다

    조조가 하진에게 말한다.

    "환관이 부른 화는 고금에 모두 있었습니다. 임금께서 부당하게 권력과 총애를 환관들에게 주어서 이 꼴이지요. 죄를 다스리겠다면 원흉을 제거하면 되고 옥리 한 사람으로 족한데 하필 외부의 병력을 부르다뇨? 몰살하려다가 필시 누설돼서 실패할 것입니다."

    하진이 노한다.

    "맹덕도 사사로운 뜻을 품은 것이야?"

    조조가 물러가며 말한다.

    "천하를 어지럽힐 놈은 필시 하진이겠구나."

    하진이 은밀히 사자에게 비밀 조서를 줘서 그날밤 각지의 군진으로 보낸다.

    한편, 전장군 오향후 서량자사 동탁은 앞서 황건적과 싸우면서 공을 세우지 못해 조정에서 죄를 다스리려 했으나 십상시에게 뇌물을 줘서 요행히 면했다. 그뒤 조정의 권신과 결탁하여 도리어 큰 벼슬을 받아 서주의 2십만 대군을 통솔하자 평소 신하답지 못한 마음을 품는다. 하진의 조서가 당도하자 크게 기뻐하고 군마를 달려간다.

    사위인 중랑장 우보를 남겨서 섬서를 지키고 자신은 이각, 곽사, 번조 등을 데리고 낙양으로 출발한다. 사위인 모사 이유가 말한다.

    "비록 조서를 받았으나 글 속에 애매한 점이 많군요. 조정에 표를 올려 명분을 바로세워야 대사를 꾀하겠지요."

    동탁이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글을 올리니 대략 이렇다.

    "제가 가만히 듣자니 천하에 난리와 반역이 그치지 않는 것은 모두 내시 장양 등이 늘 천상 天常(천도)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신이 또한 듣자니, 뜨거운 국을 끓지 못하게 하려면 국을 들어올리느니 장작불을 치움이 낫고, 종기를 째어냄이 비록 아프나 독을 기르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신이 징과 북을 울리며 낙양에 입성하려는 것은 장양 등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직 社稷에 행심 幸甚(큰 다행)이요 천하에 행심입니다!"

    하진이 읽고 대신들에게 보이자 시어사 정태가 간한다.

    "동탁은 승냥이나 이리와 같아 서울에 들어오면 사람을 해쳐요."

    하진이 말한다.

    "자네는 의심이 많아 대사를 도모하기 부족하군."

    노식도 간한다.

    "제가 평소 동탁의 사람됨을 아는데 겉으로 착한 척해도 속은 사납기 그지없지요. 입궁하면 재앙을 부릅니다. 오지 못하게 막아서 난리를 면함만 못하지요."

    하진이 고집을 부리며 들어주지 않자 정태와 노식이 사직하고 조정대신도 태반이 떠난다. 하진이 사람을 보내 동탁을 민지에서 맞이하지만 동탁은 안병부동 按兵不動(병력을 움직이지 않고 정세를 관망함)한다.

    장양 등이 외부의 병력이 오는 것을 알고서 의논한다.

    "이건 하진의 음모야. 먼저 손을 쓰지 않으면 우리는 멸족이네."

    칼잡이 5십 인을 장락궁의 가덕문 안에 매복하고 하태후를 만나 말한다.

    "이제 대장군께서 조서를 꾸며 외병을 서울로 불러 저희를 죽이려 하네요. 낭랑께서 불쌍히 여겨서 살려주세요!"

    "대장군부 大將軍府에 출두해 사죄하지 그러냐."

    "저희가 출두하면 뼈와 살이 다져지고 가루가 되겠지요. 낭랑께서 대장군께 입궁하라 분부해주세요. 안 그러시면 저희는 낭랑 앞에서 죽어버리겠습니다."

    태후가 조서를 내려 하진을 오라 하니 하진이 가려 한다. 주부 진림이 말린다.

    "십상시의 음모이니 절대 가서는 안 돼요. 필시 화를 입습니다."

    "태후께서 부르시는데 무슨 화란 말이야?"

    원소가 말한다.

    "이제 누설되어 거사가 탄로났는데 장군께서 입궁하시게요?"

    조조도 말한다.

    "십상시를 나오게 한 뒤 입궁하시지요."

    하진이 웃는다.

    "다 어린 아이 같은 소리구먼! 내가 천하의 권력을 쥐고 있는데 십상시가 감히 어찌하겠어? "

    원소가 말한다.

    "공께서 기어코 가시겠다면 저희가 갑사 甲士를 이끌고 호위해 만일을 대비하겠습니다요."

    원소와 조조가 각각 정병 오백을 뽑아 원소의 동생 원술로 하여금 지휘하게 한다. 원술이 전신갑옷을 갖추고 병사를 청쇄문 밖에 배치한다. 원소와 조조가 칼을 차고 하진을 호위해 장락궁 앞에 당도하자 황문 전의가 알린다.

    "태후께서 대장군만 들라고 하시니 다른 이는 들어오지 말아라. "

    원소와 조조가 궁문 밖에 멈추고 하진이 으스대며 들어간다. 가덕전 밖에 이르자 장양과 단규가 맞이한다. 좌우를 시켜서 하진을 둘러싸니 하진이 크게 놀란다. 장양이 성난 목소리로 하진을 꾸짖는다.

    "동태후께 무슨 죄가 있어서 함부로 독살했냐! 또한 국모의 장례도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지! 네놈은 본래 돼지나 잡던 천한 놈이야! 우리가 천자께 천거해 부귀를 누렸거늘 보은할 생각은 않고 도리어 해칠 궁리만 하냐! 네놈이 우리더러 심히 썩었다고 하지만 깨끗한 놈이 누구냐?"

    하진이 허겁지겁 달아날 길을 찾으나 궁문이 모두 닫혔고 복병이 일제히 뛰쳐나와 순식간에 하진을 베어 두동강낸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탄식한다.

    한나라 황실이 기울어 천수가 다하니
    무모한 하진이 삼공 벼슬을 맡았구나
    몇번이나 충신의 간언을 듣지 않으니
    궁중에서 칼날을 피하기가 어렵겠구나

    장양 등에게 벌써 하진이 죽은 줄 모르고 원소가 하진을 오래도록 기다리다 문 밖에서 크게 외친다.

    "장군! 어서 수레에 타시지요!"

    장양 등이 하진의 머리를 담장 위에서 집어던지며 선유한다.

    "하진이 모반해 잡아죽였어. 나머지는 협박을 받아 따랐으니 너그러이 용서하마."

    원소가 성난 목소리로 절규한다.

    "고자 놈이 멋대로 대신을 죽였구나! 악당을 쳐죽일 자들은 앞으로 나서라!"

    하진의 부장 오광이 청쇄문 밖을 불지른다. 원술이 군을 이끌고 궁정으로 돌입해 환관을 눈에 띄는대로 대소大小 따지지 않고 모조리 죽인다. 원소와 조조도 빗장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간다.

    조충, 정광, 하훈, 곽승 넷이 달아나다가 취화루 앞에서 붙잡혀서 난자 당해 육젓이 된다. 궁중에서 화염이 충천하고 장양, 단규 , 조절, 후람이 태후, 태자, 진류왕을 협박해 내성으로 끌고갔다가 뒷길로 빠져나가 북궁으로 달아난다. 그때 노식이 아직 길을 떠나지 않고 있다가 궁중에서 사변이 일어나자 갑옷을 입고 과를 들고 전각 아래 서 있었다. 노식이 멀리 바라보니 단규가 하태후를 핍박해 온다. 노식이 크게 소리친다.

    "단규 역적놈아! 어찌 태후를 겁박하냐!"

    단규가 몸을 돌려 달아난다. 태후가 창문에서 뛰어내리자 노식이 급히 구한다. 오광이 내정에 달려들어가다가 마침 검을 들고 나오는 하묘와 마주친다. 오광이 크게 외친다.

    "하묘가 공모하여 형을 해쳤으니 죽어 마땅하다!"

    사람들이 입을 모은다.

    "형을 죽게 만든 도적놈을 베자!"

    하묘가 달아나려 하나 사방으로 둘러싸여 잘게 토막난다.

    원소가 다시 병력을 나눠 십상시 가족을 남녀노소 모조리 죽인다. 수염이 없어 내시로 오인되어 죽은 이도 많다. 조조는 궁중의 화재를 끄고 하태후에게 대사를 임시로 맡을 것을 청하고 군을 보내어 장양 등을 추격하고 어린 황제를 찾는다.

    한편, 장양과 단규가 소황제와 진류왕을 끌고 연기와 불길을 뚫고 그날밤 북망산으로 달아난다. 약 2경 무렵 뒤에서 함성이 일고 인마가 뒤쫓아 온다. 선두에서 하남 중부의 연리 민공이 크게 소리친다.

    "역적놈아! 거기 서라!"

    장양이 위급하자 강물에 뛰어들어 죽는다. 황제와 진류왕이 허실을 아직 몰라서 감히 크게 소리내지 못하고 강가 우거진 풀숲에 숨는다. 병사들이 사방을 수색하지만 황제를 찾지 못한다. 황제와 왕이 4경까지 숨어있자니 이슬이 맺히고 배고파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한다. 그러다가 다시 들킬까 두려워 우거진 풀숲 가운데에서 울음소리를 삼킨다.

    진류왕이 말한다.

    "여기는 오래 있을 곳이 못 되니 따로 살 길을 찾아야 해요."

    이래서 둘이 옷을 서로 잡아당기며 언덕을 기어오른다. 사방 가시덤불이고 캄캄해 길이 보이지 않는다. 어쩔 줄 모르는데 반딧불이 수천 수백 마리 떼지어 비추며 황제 앞에서 날아다닌다. 진류왕이 말한다.

    "하늘이 우리 형제를 돕네요."

    반딧불을 따라가니 점차 길이 보인다. 5경이 되자 발이 아파서 더는 갈 수 없는데 산등성이에서 풀무더기를 발견해 황제와 왕이 그 가장자리에 눕는다.

    그 앞에 장원이 있다. 그 주인이 그날밤 꿈 속에서 붉은 해 두 개가 장원 뒤에 떨어지므로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나 옷을 걸치고 집을 나와 사방 살핀다. 장원 뒤 풀무더기에서 붉은 빛이 하늘을 찌르는 것이 보여 황망히 달려가 살피니 두 소년이 가장자리에 누워 있다. 장원 주인이 묻는다.

    "두 소년은 어느 집 자제요?"

    황제는 감히 응답하지 못하고 진류왕이 황제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분께서 당금 當今(현재)의 황제이신데 십상시의 난을 맞아 여기로 피난 오셨소. 나는 아우 진류왕이오."

    장원 주인이 크게 놀라 거듭 절하고 말한다.

    "소신은 선대 황제 시절의 사도 최열의 아우 최의입니다. 십상시가 벼슬을 팔아먹고 어진 이를 미워하기에 여기 은거하고 있습니다."

    황제를 부축해 장원에 들이고 무릎을 꿇고 술과 밥을 바친다.

    한편, 민공은 단규를 추격 끝에 붙잡아 묻는다.

    "천자는 어디 계시냐?"

    "도중에 이미 서로 잃어버려 어디 계신지 알 수 없습니다."

    민공이 단규를 베어 머리를 말 목에 걸고 병력을 나눠 사방으로 흩어져 찾게 한다. 홀로 말 타고 길을 따라 수색하다 최의의 장원에 우연히 이른다. 최의가 단규의 머리를 보고 물으니 민공이 상세히 설명한다. 최의가 민공을 데리고 황제를 만나 군신이 모두 통곡한다. 민공이 말한다.

    "나라에 하루도 임금이 없을 수 없습니다요. 폐하, 도성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장원에 비쩍 마른 말 한 필뿐이라 황제를 태우고 진류왕은 민공의 말을 같이 탄다. 떠난 지 삼 리가 안 되어 사도 왕윤, 태위 양표, 좌군 교위 순우경, 우군교위 조음, 후군교위 포신, 중군교위 원소 등 수백 인마가 황제의 수레를 영접하고 군신이 모두 통곡한다.

    단규의 수급 首級을 서울로 보내 호령 號令하고 좋은 말을 가져와 황제와 왕을 태우고 황제를 호위해 서울로 간다. 예전에 낙양 아이 들이 이렇게 노래했다.

    황제는 황제가 아니고
    왕은 왕이 아니네
    수레 천 대, 기병 만 기
    북망산으로 달려가네

    과연 노래대로다. 어가가 몇 리를 못 가 갑자기 수많은 깃발이 해를 가리고 먼지가 하늘을 덮으며 한떼의 인마가 몰려온다. 백관이 모두 실색 失色한다. 원소가 말 달려가 묻는다.

    "누구요?"

    비단 깃발 아래에서 장수 하나가 튀어나오며 큰 소리로 묻는다.

    "천자는 어딨냐?"

    황제가 벌벌 떨며 아무 말도 못한다.

    진류왕이 말 몰아 가서 꾸짖는다.

    "누가 왔는가?"

    "서량 자사 동탁이오만."

    "자네는 어가를 보위하러 왔는가? 겁박하러 왔는가?"

    "천자를 보위하러 왔을 뿐이오."

    "천자를 보위하러 왔다면 천자가 여기 계신데 어찌 말에서 내리지 않는가?"

    동탁이 크게 놀라 황망히 말에서 내려 길가에서 절한다. 진류왕이 동탁을 위무하는데 끝까지 허튼 말이 없으니 동탁이 속으로 기특하게 여기고 폐립廢立(임금을 쫓아내고 새 임금을 옹립함)의 뜻을 품는다.

    그날 황제 일행이 입궁해 하 태후를 뵙고 모두 통곡한다. 궁중을 점검하니 전국옥새가 사라지고 없다. 동탁이 성밖에 주둔하고 날마다 철갑鐵甲을 두른 마군(기병)들을 거느리고 입성해 거리를 횡행橫行하니 백성이 놀라고 불안하다. 동탁이 궁정을 출입할 때도 아무 꺼리낌이 없다. 후군교위 포신이 원소를 찾아가서 '동탁이 필시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고 말하니 원소가 말한다.

    "조정이 안정된지 얼마 안 됐는데 가볍게 움직일 수 없습니다."

    포신이 왕윤을 만나 역시 그리 하니 왕윤이 말한다.

    "나중에 다시 상의하지요."

    포신이 휘하 군마를 이끌고 태산으로 가버린다. 동탁이 하진 형제의 부하들을 회유해 모두 거둬들여 장악한다. 동탁이 이유에게 은밀히 말한다.

    "황제를 폐하고 진류왕을 옹립하고 싶은데 어때?"

    "이제 조정에 따로 주인이 없으니 이제 거사하지 않고 지체하면 변고가 생겨요. 내일 온명원에 백관을 불러모아 폐립을 공포公布하세요. 이제 따르지 않는 이를 베고 권위를 세워야 해요."

    동탁이 기뻐하고 이튿날 연회를 크게 열어 공경대신을 두루 초청하니 공경대신이 모두 동탁을 두려워해 감히 불참하지 못한다. 동탁이 백관이 오기를 기다린 뒤 천천히 온명원 문 앞으로 가서 말에서 내려 칼을 차고 입장한다. 술잔이 몇 차례 돌자 동탁이 술과 음악을 멈추고 큰소리로 말한다.

    "내 할 말이 있으니 관리들은 가만히 들어봐요."

    모두 귀를 기울인다.

    "천자는 만백성의 주인으로 위의威儀가 없으면 종묘사직을 보전할 수 없지요. 금상은 나약하기 짝이 없지만 진류왕은 총명하고 배우기를 즐기니 진류왕이 대위를 잇는 것만 못하겠습니다. 내가 황제를 폐하고 진류왕을 옹립하려는데 여러 대신은 어찌 생각들 하십니까?"

    관리들이 듣고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다. 그런데 자리에서 누군가 술상을 밀치며 뛰쳐나와 술자리 앞에서 크게 외친다.

    "불가하구나! 불가해! 네놈이 누구라고 큰 소리를 치냐! 천자께서는 선제의 적자이시고 애초 아무 잘못도 없으신데 함부로 폐립을 논하다니 네가 정녕 찬역 篡逆이라도 할셈이냐?"

    동탁이 바라보니 형주자사 정원이다. 동탁이 노해 꾸짖는다.

    "나를 따르면 살지만 거스르면 죽는다구!"

    검을 들어 정원을 베려고 한다.

    이때 이유가 정원의 배후에 서 있는 이를 보니 생김새가 헌앙軒昂하고 위풍당당하다. 방천화극을 손에 쥐고 성난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 이유가 급히 진언한다.

    "오늘은 술자리이니 국정을 의논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내일 도당都堂에서 의논해도 늦지 않습니다요."

    모두가 말리자 정원은 말을 타고 가버린다.

    동탁이 백관에게 묻는다.

    "내 말이 도리에 맞지 않아요?"

    노식이 답한다.

    "명공이 틀렸네요. 예전에 상나라의 임금 태갑이 영명하지 않으므로 이윤이 그를 동궁에 가둔 일이 있었고, 또한 창읍왕이 제위에 오른 지 이 십칠 일만에 악행을 삼천 가지나 저지르자 곽광이 태묘에 고하고 폐위한 일이 있었지요. 그러나 금상은 비록 어리지만 총명하고 인자하고 지혜롭고 털끝만큼도 잘못이 없어요. 그리고 공이 한낱 지방의 자사로서 평소 국정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이윤이나 곽광 같은 큰 재주도 없는데 어찌해 폐립을 강변합니까? 성인께서도 '이윤 같은 뜻이 있다면 옳지만 그렇지 않다면 찬탈이다' 하셨지요."

    동탁이 크게 노해 칼을 뽑아 노식을 죽이려하니 시중 侍中 채옹과 의랑 팽백이 간한다.

    "노 상서尚書는 천하의 인망이 두텁습니다. 이제 그를 해치시면 천하가 성내고 놀라지 않을까 두렵습니다요."

    동탁이 마침내 그치니 사도 왕윤이 말한다.

    "폐립은 술을 마시고 상의할 것이 못 돼요. 따로 날을 잡아 재론하지요."

    그래서 백관이 해산하고 동탁이 후원의 문에서 칼을 만지며 서 있는데 한 사내가 극을 가지고 말을 달리는 것이 보여서 이유에 게 묻는다.

    "저 자는 누구야?"

    "저 자가 정원의 의붓아들 여포 '봉선'입니다. 주공께서 일단 피하세요."

    동탁이 뜰 안으로 들어가 숨는다.

    이튿날 정원이 성 밖에서 군을 이끌고 싸움을 건다고 한다. 동탁이 노하여 이유와 함께 군을 이끌고 나가 맞이한다. 양쪽이 포진하자 여포가 금관을 쓰고 백화전포 百花戰袍를 입고 당예개갑 唐猊鎧甲을 두르고 허리에 사만보대 獅蠻寶帶를 찬 채 말 달리며 손에 방천화극을 쥐고 정건양(정원)을 따라 진 앞으로 나온다. 정건양이 동탁을 가리키며 욕한다.

    "국가가 불행하니 환관이 권력을 농단하고 만백성이 도탄에 빠졌어. 네놈은 손톱만치도 공이 없으면서 함부로 폐립을 떠들어 조정을 어지럽히는구나!"

    동탁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여포가 나는 듯이 말을 몰아 곧장 달려든다. 동탁이 황망히 도주하는 것을 정건양이 군을 이끌고 덮친다. 동탁 군이 대패해 삼십여 리를 퇴각하고 사람들을 불러모아 상의한다. 동탁이 말한다.

    "내가 보니 여포는 보통 사람이 아니구만. 이런 사람을 얻는다면 천하에 무엇이 두렵겠냐!"

    장막 앞에서 한 사람 나와 말한다.

    "주공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여포와 동향인데 그는 용맹하지만 무모하고 이익을 바라며 의리를 저버리는 자입니다요. 제 보잘 것 없는 세치 혀로 여포를 설득해 두손 모아서 이리로 넘어오게 하지요."

    。須得此馬,再用金珠,以利結其心。某更進說詞,呂布必反丁原,來投主公矣。”卓問李儒曰:“此言可乎?”儒曰:“主公欲取天下,何惜 一馬!”

    동탁이 크게 기뻐하며 바라보니 호분중랑장虎賁中郎將 이숙이다. 동탁이 말한다.

    "자네가 무엇으로 설득하겠냐?"

    "제가 듣자 하니 주공께 명마가 한 필 있는데 이름하여 '적토' 하루에 천리를 간다지요. 이런 명마에다 금은보화를 더하면 그의 마음을 이익으로 사로잡을 수 있고 말고요. 제가 설득하면 여포는 반드시 정원을 배반하고 주공께 넘어올 것이옵니다."

    동탁이 이유에게 묻는다.

    "이 자의 말이 어떠냐?"

    "주공께서 천하를 얻고자 하시는데 말 한 필이 아깝습니까?"

    동탁이 기꺼이 적토마를 내어주고 황금 1천 냥, 명주 明珠 수십 알, 옥대 玉帶 하나를 더해준다. 이숙이 예물을 가지고 여포의 군영을 찾아간다. 길가에 매복해 있던 군인이 붙잡으니 이숙이 말한다.

    "어서 여 장군께 아는 사람이 왔다고 전하게."

    군인이 알리자 여포가 불러들여 만난다. 이숙이 여포를 만나 말한다.

    "아우님 그간 잘 계셨소?"

    여포가 두 손 모아 인사한다.

    "오랫만이오. 지금은 어디 계시오?"

    "현재 호분중랑장인데 아우님이 종묘사직을 구한다기에 기쁨을 주체할 수 없소. 좋은 말이 한 필 있는데 하루 천리를 달리고 물을 건너고 산을 넘는 것이 마치 평지를 가는 듯하고 이름하여 적토요. 아우에게 선물하여 호랑이 같은 위엄을 더욱 빛내주고 싶을 뿐이라오."

    여포가 적토마를 끌고 오게 해 살핀다. 과연 이 말은 온몸이 불타듯이 붉고 잡털 하나 안 섞였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이가 한 길이고 발굽부터 정수리까지 높이가 여덟 척이다. 힘껏 포효하니 마치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가 바다로 뛰어드는 듯하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적토마를 바로 말한다.

    천리를 날아올라 먼지를 헤치고
    물 건너고 산 오르니 보라안개 흩어지네
    고삐 끊고 내달리며 옥재갈 흔드니
    화룡이 구천에서 내려온 듯하구나

    여포가 크게 기뻐하며 이숙에게 사례한다.

    "형님께서 좋은 말을 주시는데 저는 뭐로 보답하지요?"

    "내가 의리 때문에 온 것인데 어찌 보답을 바라겠소!"

    여포가 술을 내어 대접한다. 술이 거나해지자 이숙이 말한다.

    "아우를 이렇게 잠깐 만나지만 춘부장 어르신은 도리어 늘 만나뵙소."

    "형께서 취하셨소. 돌아가신 지 몇해인데 어찌 형께서 만나신단 말씀이시오?"

    이숙이 크게 웃는다.

    "아니오! 오늘 뵌 정 자사를 말한 것뿐이오."

    여포가 당황한다.

    "정건양에게 붙어 있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라오."

    "아우님께서 천지를 떠받칠 재주를 가졌으니 사해四海(천하)의 누구라도 우러르지 않겠소? 부귀공명을 얻는 것이 마치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이 쉬울텐데 어찌 부득이하게 남 밑에 있다 하시오?"

    "제 주인 되실 분을 못 만난 것이 한스러울 뿐이라오."

    이숙이 웃는다.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 머물고 훌륭한 신하는 임금을 가려서 모시는 법이오. 기회를 빨리 잡지 않으면 뒷날 뉘우친들 이미 늦지요."

    "형께서 조정에 계신데 그간 살펴보니 누가 일세의 영웅이오?"

    "내가 신하를 두루 살펴보니 모두 동탁만 못해요. 동탁은 사람됨이 어진 이를 공경하고 선비를 예우하며 상벌이 분명한 것이 틀림없이 대업을 이룰 것이오."

    "저도 따르고 싶지만 방도가 없어 한스럽군요."

    이숙이 금은, 진주, 옥대를 꺼내 여포 앞에 벌리니 여포가 놀란다.

    "이게 다 뭐요?"

    이숙이 좌우를 꾸짖어 물리고 여포에게 고한다.

    "이것들은 동공께서 아우의 큰 명성을 사모한 지 오래라서 특별히 바치라 하신 것이고 적토마도 바로 동공께서 주셨소이다."

    "동공께서 이토록 저를 아끼시는데 뭐로 보답하지요?"

    "나처럼 못난 재주도 호분중랑장으로 쓰시니 공께서 가시면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야 말할 필요 있겠소?"

    "찾아뵐 때 안겨드릴 티끌 만한 공도 없으니 한스럽구먼요."

    "공이란 눈 깜짝할 새 이룰 수도 있지요. 공께서 기꺼이 하지 않으려 할 뿐이지..."

    여포가 한동안 망설이다가 말한다.

    "정원을 죽이고 군을 이끌고 동탁에게 귀순하고 싶은데 어떻겠소?"

    "아우께서 그렇게만 한다면 그보다 큰 공이 어디 있겠나요! 지체하지 말고 빨리 매듭지으세요."

    여포가 이튿날 투항하러 가겠다 약속하니 이숙이 작별하고 떠난다.

    그날 밤 이 경 무렵 여포가 칼을 들고 정건양의 막사로 들어간다. 정건양이 촛불을 밝혀 독서하다 여포를 보고 말한다.

    "내 아들아 무슨 일이야?"

    "나는 당당한 장부인데 어찌 네 아들이냐!"

    "봉선아 어찌 변심한 거냐?"

    여포가 다가가 한칼에 정건양을 베고 좌우에 크게 외친다.

    "정원이 어질지 못해 내가 베었노라. 나를 따를 자 여기 남고 따르지 않을 자 떠나라!"

    병사 태반이 흩어진다.

    이튿날 여포가 정건양의 잘린머리를 들고 이숙을 만난다. 이숙이 데리고 동탁을 만나자 동탁이 크게 기뻐하며 술을 내어 대접한다. 동탁이 먼저 절하며 말한다.

    "제가 이제 장군을 얻으니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린 것 같구만요."

    여포가 동탁을 앉도록 청하고 절하며 말한다.

    "공께서 저를 버리시지 않는다면 제 의부가 돼주십시오."

    동탁이 황금갑옷과 비단전포를 여포에게 내리고 실컷 술을 마시고 헤어진다. 동탁이 이로부터 위세가 더욱 커져 스스로 전장군을 맡고 아우 동명을 '좌장군 곽후'로 봉하고 여포를 '기도위 중랑장 도정후'로 봉한다. 이유가 동탁에게 폐립을 빨리 매듭지으라 권하니 동탁이 궁궐에서 연회를 열어 공경대신을 소집하고 여포에게 갑사甲士 1천여로 좌우에서 호위하게 한다.

    이날 태부 원외를 비롯해 관리들이 모두 온다. 술이 몇번 돌자 동탁이 칼을 매만지며 말한다.

    "금상은 어리석고 나약해 종묘를 받들 수 없네요. 내가 이윤과 곽광의 고사를 본받아 황제를 폐히여 홍농왕으로 하고 진류왕을 새 황제로 옹립하겠소. 따르지 않는 자는 참할 것이오!"

    신하들이 두려워 감히 맞서지 못한다.

    중군교위 원소가 일어나 나와 말한다.

    "금상은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시고 실덕도 전혀 없는데 네가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세우겠다니 이것이 반역이 아니고 무엇이겠냐?"

    동탁이 노한다.

    "천하 대사가 나에게 달려 있어! 내가 이제 폐립하겠다는데 누가 감히 따르지 않겠냐! 네놈은 이 날카로운 검이 보이지 않아?"

    원소 역시 검을 뽑아들고 말한다.

    "네 검만 날카롭냐? 내 검도 무디지 않아!"

    두 사람이 술자리에서 대적한다.

    정원은 양아들을 믿다가 먼저 죽고
    원소도 칼을 들고 다투는데 위태롭구나

    과연 원소의 목숨은 어찌될까? 다음 편을 보면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