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25회 관공이 토산에서 세 가지를 약속 받고 백마에서 조조를 구원하여 포위를 푼다

    한편, 정욱이 계책을 바치며 말한다.

    "운장은 혼자서 만인을 대적할 수 있으니 지모가 아니면 취할 수 없습니다. 지금 즉시 유비 수하였던 투항병을 하비성으로 보내서 관공을 만나서 도망쳤다고 말하게 하고, 성중에 숨어 있다가 내응케 하십시오. 관공을 유인해서 성을 나와서 싸우게 하고 거짓으로 패해서 물러나서 다른 곳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러고서 정예병력으로 퇴로를 막고 설득하면 됩니다."

    조조가 그 꾀를 받아들여 즉시 서주의 투항병 수십 명을 하비로 보내서 관공에게 투항케 한다. 관공이 옛 병사들이라서 의심치 않고 머 물게 한다. 이튿날 하후돈이 선봉을 맡아 5천 병력을 이끌고 와서 싸움을 건다. 관공이 나오지 않자 하후돈이 즉시 병사들을 성 밑으로 보내서 놀리고 욕한다. 관공이 크게 노해서 3천 인마를 이끌고 출성해서 하후돈과 교전한다. 교전 10여 합에 하후돈이 말을 돌려서 달아 난다.

    관공이 뒤쫓자 하후돈이 싸우다 달아나다를 되풀이한다. 관공이 약 20 리를 뒤쫓다가 하비를 잃을까 두려워서 병력을 이끌고 돌아간다. 그러나 신호포 소리가 한차례 울리더니 좌측 서황, 우측 허저의 두개 부대가 갈 길을 막아선다. 관공이 길을 뚫어 달리지만 양쪽에서 복 병이 강력한 쇠뇌 100 장을 배치해 쏘아대는 화살이 메뚜기 떼 같다. 관공이 돌파하지 못하고 병력을 이끌고 되돌아가지만 서황, 허저 가 함께 가로막고 교전한다. 관공이 힘껏 두 장수를 무찔러서 쫓아버리지만 다시 하후돈이 가로막고 덮친다.

    관공이 저녁까지 싸우다 돌아갈 길이 없자 어쩔 수 없이 어느 흙산으로 들어가서 병력을 이끌고 산꼭대기에 주둔하고 잠시 쉰다. 조조 병력이 겹겹이 흙산을 에워싼다. 관공이 산 위에서 멀리 바라보니 하비성에서 불빛이 하늘을 찌른다. 어제 거짓으로 항복한 병사들이 성문을 몰래 열자 조조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쇄도한 뒤 불을 질러서 관공의 마음을 흔들도록 지시한 것이다. 관공이 하비성의 불길을 보고서 마음이 놀랍고 두려워서 그날밤 몇번이나 산을 내려가 돌격하지만 번번이 어지럽게 쏟아지는 화살 비에 돌아간다.

    새벽녘까지 기다려서 다시 정돈하고 산 밑으로 충돌하려는데 누군가 말을 달려서 산을 올라온다. 바라보니 바로 장요다. 관공 이 맞이해서 말한다.

    "문원이 싸우러 왔소?"

    "아닙니다. 옛날 사귀던 정을 생각해서 찾아왔을 뿐입니다."

    칼을 버리고 말에서 내려서 관공과 인사를 나누고서 산꼭대기에 앉는다.

    "문원이 틀림없이 관 아무개를 설득하러 왔겠구려."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에 형께서 저를 구해주셨으니 이제 제가 어찌 형을 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문원이 나를 도우러 왔소?"

    "역시 아닙니다."

    "나를 도울 게 아니라면 여기 온 건 무슨 까닭이오?"

    "현덕의 존망을 모르고 익덕의 생사도 모릅니다. 어젯밤 조 공께서 하비성을 이미 깨뜨린 뒤 군민을 아무도 안 해치고 사람을 보내서 현 덕의 식구를 호위하고 놀라지 않게 하셨습니다. 대우가 이러하니 아우가 형께 알려주려 왔을 뿐입니다."

    관공이 노한다.

    "이런 말은 나를 설득하려는 것뿐이오. 내 지금 비록 사지에 처했지만 죽음을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쯤으로 여기오. 그대는 어서 돌아가 시오. 내 즉시 산을 내려가 맞이해서 싸우겠소."

    장요가 크게 웃는다.

    "형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어찌 천하의 웃음거리가 안 되겠습니까?"

    "내가 충의를 위해서 죽거늘 어찌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겠소?"

    "형께서 지금 죽으면 그 죄가 셋입니다."

    "내게 그 세 가지 죄를 말해보시오."

    "당초, 유 사군깨서 형과 함께 결의하실 때 생사를 같이하기로 맹서하셨습니다. 지금 유 사군께서 패하자마자 형께서 전사하신 뒤, 만약 유 사군께서 다시 나와서 형의 도움을 바란다 하더라도 도움을 얻지 못할테니, 어찌 그때의 맹서를 어기지 않는 것입니까? 첫번째 죄입 니다.

    유 사군께서 가족을 형께 부탁하셨는데 형께서 지금 전사하시면 두 부인께서 아무 의지할 데 없을테니 유 사군의 중대한 부탁을 도리어 저버리시는 겁니다. 두번째 죄입니다.

    형께서 무예가 발군이시고 경사에 두루 통달하셨는데 유 사군과 함께해 한나라 황실을 바로잡을 생각없이 헛되이 부탕도화 (끓는 물에 뛰어들고 불길 속을 걸음)하셔서 한낱 필부의 용기만 드러내신다면 어찌 의롭다 하겠습니까? 세번째 죄입니다.

    형께 이런 세 가지 죄가 있으니 아우가 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관공이 깊이 생각하더니 말한다.

    "그대가 내게 세 가지 죄를 설명했는데, 내가 어찌하길 바라오?"

    "지금 사방이 조 공의 병력입니다. 형께서 투항치 않으시면 반드시 죽고 맙니다. 헛된 죽음은 무익하니, 조 공께 항복한 뒤 유 사군의 소 식을 알아보고 어디라도 계시다면 즉시 그리 가시는 것만 못합니다. 첫째, 두 부인을 지켜드릴 수 있고, 둘째, 도원결의를 어기지 않고, 셋째, 소중한 몸을 살려두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 좋은 점이 있으니 형께서 깊이 헤아리셔야 합니다."

    "형이 세 가지 편리를 말하지만 내게도 세 가지 조건이 있소. 만약 승상께서 들어주실 수 있으면, 내 즉시 갑옷을 풀겠소. 들어주실 수 없 다면 내 차라리 세 가지 죄를 지을지언정 죽고 말겠소."

    "승상께서 매우 관대하신데 어찌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세 가지 조건을 알고 싶습니다."

    "첫째, 나는 유 황숙과 함께 맹서해서 한나라 황실을 함께 바로잡고자 했으니 내 지금 한나라 황제께 투항할 뿐이지 조조에게 투항하는 게 아니오. 둘째, 두 형수께서 유 황숙의 봉록을 받아서 생활하시고, 귀천을 불문하고 아무도 숙소에 접근해선 안 되오. 셋째, 유 황숙의 거처를 아는 즉시 천리 만리 상관않고 사직하고 떠나겠소. 셋 중 하나라도 들어주지 않으면 결코 투항할 수 없소. 문원이 화급히 돌아와 서 알려주시오."

    장요가 응낙하고서 말에 올라 돌아가 조조를 만나 먼저, 한나라에 투항하지 조조에게 투항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한다. 조조가 웃는다.

    "내가 한나라 승상이니 한나라가 나요. 이건 들어줄 수 있소."

    "두 분께 유 황숙의 봉급을 청하고 아울러 귀천을 불문하고 아무도 숙소에 접근치 못하게 해달랍니다."

    "내가 황숙의 봉급에다 다시 갑절을 더 주겠소. 내외를 엄금하는 것이야 가정의 법도인데 무엇을 주저하겠소?"

    "현덕의 소식을 아는 즉시 아무리 멀더라도 반드시 가겠답니다."

    조조가 머리를 흔든다.

    "그러면 내가 운장을 길러서 무엇에 쓰겠소? 이건 받아들이기 어렵소."

    "예양 豫讓이 말한 중인국사지론 眾人國士之論(사람은 대우에 따라 보답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을 어찌 모르십니까? 유현덕이 운장에게 은혜가 두텁다뿐이니 승상께서 다시 두터운 은혜를 베푸셔서 그 마음을 묶는다면 어찌 운장이 따르지 않을까 걱정하시겠습니까?"

    "문원의 말이 매우 옳소. 세 가지 조건을 다 받아들이겠소."

    장요가 다시 산 위로 가서 관공에게 알려준다. 관공이 말한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잠시 승상께서 군을 물리시고, 내가 입성해 두 형수께 사정을 고하고, 투항하게 해주시기를 청하오."

    장요가 되돌아가서 이 말을 조조에게 보고한다. 조조가 즉시 군을 30리 물리라 전령하자 순욱이 말한다.

    "불가합니다. 속일까 두렵습니다."

    "운장은 의로운 사나이니 실언할 리 없소."

    결국 군을 이끌고 물러난다. 관공이 병력을 이끌고 하비에 들어가서 인민들이 평안하고 동요가 없는 걸 보고서 마침내 부중에 이르러서 두 형수를 뵙는다. 감, 미 두 부인이 관공이 온 걸 듣고서 급히 나와서 맞이한다. 관공이 계단 아래 절하고 말한다.

    "두 형수를 놀라시게 했으니 저의 죄입니다."

    "황숙께서 지금 어디 계십니까?"

    "가신 곳을 모릅니다."

    "이숙 二叔(둘째 삼촌)께서 이제 어찌하시렵니까?"

    "제가 성을 나가서 죽기로 싸우다가 흙산에서 포위되었는데 장요가 투항을 권하기에 제가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조조가 모두 받 아들이고 병력을 물리고서 입성케 하였습니다. 제가 아직 형수들의 뜻을 몰라서 아직 함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두 부인이 세 가지 조건을 묻는다. 관공이 앞의 세 항목을 두루 자세히 말해준다. 감 부인이 말한다.

    "어제 조 공이 입성하기에 우리 모두 틀림없이 죽는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털끝 하나 안 거들리고 병사 하나 문으로 들어오지 않았습 니다. 숙숙 叔叔 (시동생)께서 이미 응낙하셨는데 저희 두 사람에게 물으실 필요 있겠습니까? 다만 훗날 조조가 숙숙께서 황숙을 찾아가시는 걸 용납치 않을까 두렵습니다."

    "형수께서 방심(여기선 안심의 뜻)하십시오.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습니다."

    두 부인이 말한다.

    "숙숙께서 결단해서 처리하시지 모든 일을 저희 여류에게 물으실 필요 없습니다."

    관공이 인사드리고 물러나서 수십 기를 이끌고 조조를 만난다. 조조 스스로 원문 轅門 (진영의 문)을 나와서 맞이한다. 관공이 말에서 내려 들어가 절하자 조조가 황망히 답례한다. 관공이 말한다.

    "싸움에 진 장수, 살려주신 은혜 깊게 입었습니다."

    "평소 운장의 충의를 사모하다가 오늘 다행히 만나니 평생 소원을 이룬 듯하오."

    "문원이 대신 세 가지를 여쭤서 승상의 윤허를 받았으니 부디 식언하지 마십시오."

    "내가 말을 꺼내놓고 어찌 감히 믿음을 저버리겠소?"

    "제가 황숙의 소재를 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가서 모시겠습니다. 그때에 이르러서 미처 작별인사를 드리지 못할까 두려우니 미리 양해하시기를 간청합니다."

    "현덕이 살아있다면 공께서 반드시 찾아가시오. 다만 혼전 중에 사망하지 않았을까 걱정이오. 공께서 안심하고 수소문해보시오."

    관공이 절을 올려 사례한다. 조조가 연회를 베풀어서 대접한다. 이튿날 군을 되돌려서 허창으로 간다. 관공이 수레와 병장기를 수습해서 두 형수를 수레에 모시고 스스로 호위해서 간다.

    길을 가다가 역사에서 쉬게 되자 조조가 군신의 예를 어지럽히려고 관공과 두 형수를 같은 방에 머물게 한다. 관공이 촛불을 밝히고 홀 로 집 밖에서 밤부터 아침까지 서 있는데 털끝만치도 힘겨워하지 않는다. 조조가 관공의 이런 모습을 보고 더욱 존경하고 탄복한다. 허 창에 도착하고 조조가 저택을 하나 내어서 관공더러 살게 한다. 관공이 집을 갈라서 뜰을 두개로 만들더니 내문 內門에 늙은 병사들을 뽑아 지키게 한다. 관공은 바깥 쪽에 거처한다. 조조가 관공을 데리고 조회에서 헌제를 만나자 헌제가 편장군에 임명한다. 관공이 감사 드리고 귀가한다.

    조조가 다음날 크게 연회를 베풀어 여러 모신과 무사를 모아서 귀빈의 예를 갖추어 대접하고 상석에 불런 앉힌다. 또한 비단옷과 금은그릇을 구비해 보낸다. 관공이 모두 가져다 두 형수에게 줘서 거두게 한다. 관공이 허창에 오고나서 조조가 매우 후대하는데 작은 연회를 3일마다, 큰 연회를 5일마다 연다. 또한 미녀 10 인을 보내서 관공을 모시게 한다. 관공이 모조리 내문으로 보내서 두 형수를 모시게 한다. 또한 3일에 한번 내문에서 몸을 숙여 예를 표하고 두 형수의 안부를 묻는다. 두 부인이 유 황숙의 일을 묻고나서 "숙숙 께서 알아서 처리하십시오." 라고 말하면 관공은 그제서야 감히 물러나 돌아간다. 조조가 듣고 다시 관공을 탄복해 마지않는다.

    하루는, 조조가 관공이 입은 녹색 비단 전포가 이미 낡은 걸 보고 즉시 몸의 칫수를 재어 진귀한 비단으로 전포 한 벌을 짓게 해서 관공에 게 준다. 관공이 받고서 옷 아래 바쳐입고 위에 헌 전포를 다시 입어서 가린다. 조조가 웃는다.

    "운장은 어째서 이렇게 아껴 입으시오?"

    "제가 아껴 입는 게 아닙니다. 헌 옷은 유 황숙께서 주신 것이라 입고 있으면 형 얼굴을 보는 듯합니다. 감히 승상의 새 하사품으로 형장 의 옛 하사품을 잊을 수 없으므로 위에 입었습니다."

    조조가 탄식한다.

    "진실로 의로운 사나이요!"

    그렇게 입으로 크게 칭찬하지만 마음은 실로 기쁘지 않다. 하루는, 관공이 부중에 있는데 누군가 알린다.

    "내원의 두 부인께서 통곡하시다 땅으로 쓰러지셨는데,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으니, 장군께서 어서 들어가보시기를 청합니다."

    관공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내문 밖에 무릎꿇고 두 형수에게 무슨 까닭으로 슬피 우는지 묻자 감 부인이 말한다.

    "제 어젯밤 꿈에 황숙의 몸이 흙구덩이 속에 있었는데, 깨어나서 미 부인과 의논하니, 돌아가셔서 구천 아래 계신 것으로 생각되어 울고 있었습니다."

    "꿈 속의 일이란, 믿고 의지할 게 못 됩니다. 이 꿈은 형수께서 그리워하셔서입니다. 절대 근심치 마시기 바랍니다."

    이야기하고 있는데 조조가 사람을 보내 관공을 연회에 초대한다. 관공이 두 형수에게 인사하고 조조를 만나러 간다. 조조가 관공의 눈물 자욱을 보고서 까닭을 묻자 관공이 말한다.

    "두 형수께서 형을 그리워하시며 통곡하신지라 제가 슬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조가 웃으며 다독이고 술을 자주 권한다. 관공이 취해서 그 수염을 만지며 말한다.

    "살아서 국가에 보답치 못하고 그 형을 저버렸으니, 쓸모없는 인간입니다!"

    조조가 묻는다.

    "운장의 수염을 헤아릴 수 있소?"

    "대략 수백 가닥입니다. 가을에는 달마다 몇가닥 빠집니다. 겨울에는 달마다 많아져서 검은 비단 주머니에 넣어두고 혹시 끊어질까 걱정 합니다."

    조조가 얇은 비단으로 주머니를 만들게 해서 관공에게 줘서 수염을 보호하게 한다. 이튿날, 이른 아침 황제를 뵙는다. 황제가 관공의 가 슴에 걸린 얇은 비단 주머니를 보고서 물었다. 관공이 아뢴다.

    "제 수염이 제법 길다고 승상께서 주머니를 하사해 넣게 하였습니다."

    황제가 명해 그 자리에서 꺼내어보니, 수염이 배 밑까지 내려온다. 황제가 말한다.

    "참으로 미염공 美髯公 (수염이 아름다운 사람)이오!"

    이로부터 모두 관공을 미염공이라 부른다.

    어느날 조조가 관공을 연회에 부른다. 헤어질 때, 배웅하러 나왔다가 관공의 말이 마른 걸 보고 조조가 말한다.

    "공의 말이 어째서 말랐소?"

    "못난 몸이 제법 무거워서 말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늘 말랐습니다."

    조조가 좌우더러 말 한 필을 준비하게 한다. 잠시 뒤 끌고 왔는데, 그 말의 몸이 불붙은 숯 같고 생김새가 매우 늠름하다. 조조가 가리키 며 말한다.

    "공께서 이 말을 모르오?"

    "바로 여포가 타던 적토마 아닙니까?"

    "그렇소."

    안장과 고삐를 마련해서 관공에게 준다. 관공이 거듭 절하며 칭송하고 사례한다. 조조가 기쁘지 않다.

    "내 여러차례 미녀와 재물을 보냈지만 공께서 몸을 굽혀 절한 적이 없소. 지금 내가 말을 내리자 기뻐하며 거듭 절하니 어찌 사람을 천하 게 보고 짐승을 귀하게 여기오?"

    "이 말이 하루에 천 리를 간다고 들었는데 지금 다행히 얻었으니, 만약 형장께서 어디쯤 계신지 안다면 하룻만에 찾아뵐 수 있게 됐습니 다."

    조조가 속으로 악! 하며 놀라고 후회한다. 관공이 인사하고 떠난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서 기렸다.

    위엄이 삼국을 기울일 뛰어난 영웅호걸
    집 하나도 나눠서 거처하니 의기 드높구나
    간사한 승상이 헛된 예의로 대접하지만
    어찌 관우는 조조에게 투항한 게 아닌 걸 알겠는가?

    조조가 장요에게 묻는다.

    "내가 운장을 박하지 않게 대우하는데, 그는 늘 떠날 마음을 품고 있으니 무슨 까닭이오?"

    "제가 그 속마음을 알아보겠습니다."

    이튿날 운장을 찾아간다. 인사를 마치고 장요가 말한다.

    "제가 형을 승상께 추천했습니다만 대접이 소홀하지 않던가요?"

    "승상의 깊은 후의에 매우 감동했소. 다만 내 몸이 여기 있더라도 마음은 황숙을 생각해 아직 잊은 적이 없소."

    "형 말씀이 틀렸습니다. 처세하는데 경중을 가리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닙니다. 현덕께서 형을 대우하신 게 틀림없이 승상보다 못할텐데 무슨 까닭으로 떠날 뜻을 품고 계십니까?"

    "승상께서 참으로 나를 매우 후대하시는 걸 알고 있소. 그러나 유 황숙의 깊은 은혜를 입어서 같이 죽기로 맹서한지라 배신할 수 없소. 결 국 여기 머물지 못할 것이오. 반드시 공을 세워서 조 공께 보답하고서야 떠나겠소."

    "만약 현덕께서 이미 세상을 떠났다면 어디로 돌아가시겠습니까?"

    "땅속이라도 따라가겠소."

    장요가 관공은 결국 머물 수 없다는 걸 알고서 물러가겠다 고한다. 돌아가 조조에게 사실대로 아뢴다. 조조가 탄식한다.

    "주공을 섬기면서 그 근본을 잊지 않다니 정말 천하의 의로운 사나이요!"

    순욱이 말한다.

    "그가 공을 세워야 떠난다 말했으니 공을 세우지 못하게 하면 쉽게 떠나지 못할 겁니다."

    조조가 그렇다 여긴다.

    한편, 현덕이 원소의 거처에 머물면서 늘 번뇌한다. 원소가 말한다.

    "현덕은 어째서 늘 우울하오?"

    "두 아우는 소식을 모르고 처자식은 조조 도적놈에게 잡혀 있습니다. 위로 나라에 보답하지 못하고 아래로 집안을 지키지 못했으니 어찌 우울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허도로 진군하려 한지 오래요. 지금 한창 따뜻한 봄날이니 군을 일으키기 알맞소."

    조조를 격파할 계책을 상의한다. 전풍이 간언한다.

    "예전에 조조가 서주를 공격해 허도가 공허하였는데, 그때 진병해야 했습니다. 지금 서주가 이미 함락돼서 조조 병력이 한창 날카로 우니 가볍게 맞설 수 없습니다. 오래 끌어서 틈이 생기길 기다린 뒤 움직이는 게 낫습니다."

    "내가 생각해보겠소."

    그래서 현덕에게 묻는다.

    "전풍이 나더러 수비를 굳히라는데 어떻소?"

    "조조는 임금을 업신여기는 역적인데 명공께서 토벌치 않으시면 천하 대의를 잃으실까 두렵습니다."

    "현덕의 말이 심히 훌륭하오."

    결국 출병하려 하자 전풍이 다시 간언한다. 원소가 노해서 말한다.

    "너희가 문무 文武를 농락해서 나더러 대의를 잃어버리게 할 셈이냐!"

    전풍이 머리를 크게 숙이며 말한다.

    "저의 조언을 듣지 않으시면 출병해서 이롭지 못합니다."

    원소가 크게 노해서 참하려 한다. 현덕이 힘써 말려서 옥중에 가둔다. 저수가 전풍의 하옥을 보고 종족을 모아 집안 재물을 모조리 나눠 주고 이별하며 말한다.

    "내가 군을 따라가서 이긴다면 위엄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진다면 내 한 몸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네!"

    모두 눈물 흘리며 배웅한다.

    원소가 대장 안량을 선봉으로 삼아 백마 白馬로 진공케 한다. 저수가 간언한다.

    "안량은 속이 좁아서 비록 용맹스럽지만 홀로 맡겨서는 안 됩니다."

    "나의 상장 上將을 그대들이 헤아릴 수 없소."

    대군이 출발해서 여양에 이르자 동군태수 유연이 급히 허창에 고한다. 조조가 급히 출병과 대응을 의논한다. 관공이 듣자마자 승상부로 들어가서 조조에게 말한다.

    "승상께서 출병하신다니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아직 장군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소. 조만간 사정을 봐서 부르겠소."

    관공이 물러간다. 조조가 15만 병력을 일으켜서 3로로 나눠 행군한다. 행군 도중 다시 유연의 급보가 잇따르자 조조가 우선 5만 병력 으로 친히 백마로 가서 흙산을 끼고 주둔한다. 멀리 바라보니 산 앞으로 평탄하고 드넓은 들판인데 안량의 선두 정예 병력 1십만이 진세 를 펼쳤다. 조조가 놀라서 고개 돌려 여포의 옛 장수 송헌에게 말한다.

    "그대가 여포 부하 중에서 맹장이라 들었는데 지금 안량과 한번 싸워보시오."

    송헌이 예! 하고서 창을 쥐고 말을 타더니 진 앞으로 곧장 내닫는다. 안량이 칼을 비껴든 채 문기 門旗 아래 말을 세워 있다가 송현이 다 가오자 천둥처럼 외치고 말을 내달려 맞이한다. 3 합이 못 돼서 칼로 찍어내려 송헌을 진 앞에서 참한다. 조조가 크게 놀라 말한다.

    "참으로 용맹스런 장수다!"

    위속이 말한다.

    "제 동료를 죽였으니 복수하고 싶습니다."

    조조가 허락하자 위속이 말 타고 모 矛를 움켜쥐고 진 앞으로 질러나가서 인량을 크게 욕한다. 안량이 대꾸하지 않고 달려들어 1 합에 칼 날이 번쩍하더니 위속을 쪼개서 낙마시킨다. 조조가 말한다.

    "이제 누가 감히 누가 맞서겠소?"

    듣자마자 서황이 출격해서 안량과 20 합을 싸우다 본진으로 도망치자 장수들이 두려워한다. 조조가 군을 거두고 안량도 군을 이끌고 물 러난다.

    조조가 잇따라 두 장수를 잃고서 마음이 답답하고 괴롭다. 정욱이 말한다.

    "제가 안량을 맞설 한 사람을 천거하겠습니다."

    조조가 누구냐 묻자 정욱이 말한다.

    "관공이 아니면 안 됩니다."

    "공을 세우고 바로 떠날까 두렵소."

    "유비가 살아 있다면 반드시 원소에게 갔을 겁니다. 지금 운장더러 원소 병력을 쳐부수게 하면 원소가 분명 유비를 의심해서 죽이고 말 겁니다. 유비가 죽고 없다면 운장인들 어디로 가겠습니까?"

    조조가 크게 기뻐하고 사람을 보내 관공을 청한다. 관공이 즉시 들어가 두 형수께 작별인사를 올린다. 두 형수가 말한다.

    "이제 가시거든 황숙의 소식을 알아보십시오."

    관공이 응낙하고 청룡도를 들고 적토마를 올라 종자 몇을 이끌고 바로 백마로 가서 조조를 만난다. 조조가, 안량이 연달아 두 장수를 죽 였고 용맹해서 당할 수 없다고 늘어놓는다. 관공이 말한다.

    "제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조조가 술을 내서 대접한다. 안량이 싸움을 건다는 급보가 날라들자 조조가 관공과 함께 흙산을 올라 관찰한다. 조조가 관공과 앉고 장 수들이 둘러섰다. 조조가 산 아래 안량이 펼친 진세를 가리키는데, 깃발들이 선명하고 창칼이 수풀처럼 빽빽하고 엄정한 게 위풍당당하 다. 관공에게 이른다.

    "하북의 인마가 이토록 웅장하구려!"

    "제가 보기엔 진흙으로 만든 닭이나 개들로밖에 안 보입니다!"

    조조가 다시 가리킨다.

    "저 휘개 (장수의 깃발과 덮개) 아래 수놓은 전포에 금빛 갑옷을 입고 칼을 들고 말 탄 자가 바로 안량이오."

    관공이 눈을 들어 한번 바라보더니 조조에게 말한다.

    "안량이 표를 꽂고 자기 머리를 팔겠다는 것으로밖에 안 보입니다."

    "가볍게 봐서는 안 되오."

    관공이 몸을 일으킨다.

    "제가 재주 없으나 만군 萬軍 가운데 뛰어들어 그 머리를 베어 와서 승상께 바치겠습니다."

    장요가 말한다.

    "군중에 농담이 없다는 걸 운장께서 잊지 마십시오."

    관공이 불끈하고 말을 타더니 청룡도를 거꾸로 쥐고 산 밑으로 내달리는데 봉황 눈을 부릅뜨고 누에눈썹을 치켜세우고 곧장 적진으로 부딪힌다. 하북 병사들이 파도가 갈라지듯한다. 관공이 안량에게 질러간다. 안량이 휘개 아래 앉아 있다가 관공이 치고들어 오는 것을 보고서 물어보려는데 관공의 적토마가 쏜살같이 벌써 눈앞에 당도한다. 안량이 미처 손도 놀리기 전에 운장의 한칼에 죽어서 말 아래 뒹 군다. 운장이 순식간에 말에서 내리더니 안량의 머리를 잘라 말 목 아래 매단다. 몸을 날려 말 타고 칼 쥐고 적진을 벗어나는데 무인지경 無人之境 같다.

    하북의 장병이 크게 놀라서 싸우지 않고 저절로 혼란하다. 조조 병사들이 기세를 잡고 공격하니 죽은 자를 헤어릴 수 없다. 마필, 기계, 창칼의 노획이 극히 많다. 관공이 말을 내달려 산을 오르자 장수들 모두 칭송하고 축하한다. 관공이 안량의 머리를 조조 앞에 바친다. 조조가 말한다.

    "장군은 진실로 신인 神人이오!"

    "저 따위야 말할 만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제 아우 장익덕은 백만대군 가운데 상장 上將의 머리 취하기를 주머니 속 물건 꺼내듯할 뿐입 니다."

    조조가 크게 놀라서 좌우를 돌아보며 말한다.

    "오늘부터 장익덕을 만나거든 가볍게 맞서지 마시오."

    영을 내려서 옷깃에 적어서 기억케 한다.

    한편, 안량의 패잔병이 달아나다 도중에 원소를 만나서 보고한다. 붉은 얼굴, 긴 수염에 큰 칼을 든 어떤 용맹스런 장수가 필마로 아군 진 영에 뛰어들어 안량을 참하고 가는 바람에 크게 졌다는 것이다. 원소가 놀라 묻는다.

    "그 자가 누구요?"

    저수가 말한다.

    "틀림없이 유현덕의 아우 관운장입니다."

    원소가 크게 노해 현덕을 가리켜 말한다.

    "네 아우가 내 아끼는 장수를 베었으니 네가 통모 通謀한 게 틀림없구나. 너를 살려둬서 뭐하겠냐!"

    도부수를 불러 현덕을 끌어내 참하려 한다.

    처음에 윗자리에 앉혀 대접하더니
    오늘은 어찌 계단 아래 죄수 취급이냐!

    현덕의 목숨이 어찌될까?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