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26회 원본초가 싸움도 지고 장수도 잃고 관운장이 인장과 금은보화를 봉한다

    한편 원소가 현덕을 참하려 하자, 현덕이 조용히 진언한다.

    "명공께서 한쪽의 말만 들으시고 오랜 정리를 끊으려 하십니까? 제가 서주에서 흩어진 뒤 제 아우 운장의 생사를 아직 모릅니다. 천하에 생김새 비슷한 사람이 적지 않은데 어찌 붉은 얼굴, 긴 수염이라고 반드시 관 아무개이겠습니까? 명공께서 어찌 살피지 않으십니까?"

    원소가 원래 자기 주장이 없는 사람이라, 현덕의 말을 듣고 저수를 꾸짖는다.

    "자네 말을 잘못 들었다가 좋은 사람을 죽일 뻔했구나."

    현덕을 상석으로 불러 앉히고 안량의 복수를 의논한다. 아래에서 한 사람이 바로 진언한다.

    "안량은 저와 형제 같습니다. 이제 조조 도적놈에게 죽었으니 제 어찌 원한을 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현덕이 바라보니 신장 8척, 얼굴은 해태 같으니 바로 하북의 명장, 문추다. 원소가 크게 기뻐한다.

    "그대가 아니면 안량의 복수를 할 수 없소. 10만대군을 줄테니 어서 황하를 건너 조조 놈을 쫓아가 죽이시오!"

    저수가 말한다.

    "불가합니다. 지금 마땅히 연진에 주둔하고, 관도에 병력을 분산하는 게 상책입니다. 가볍게 도하해서 혹시 변고가 생기면 우리 모두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원소가 노한다.

    "모든 게 자네가 군심을 해이하게 만들고 시일을 지체하다 대사를 방해해서네! 어찌 용병은 귀신처럼 빠른 게 으뜸이라는 것도 못 들었는가?"

    저수가 나가며 한탄한다.

    "위로 뜻이 교만하고 아래로 공만 탐하는구나. 유유히 흐르는 황하, 내 어찌 건널 수 있으리오!"

    결국 병을 핑계로 사무를 보러 나오지 않는다.

    현덕이 말한다.

    "제가 큰 은혜를 입고도 아무 보답이 없었으니 문장군과 동행하고 싶습니다. 첫째, 명공의 은덕을 갚고, 둘째, 정말 운장이 맞는지 알아 보고자 합니다."

    원소가 기뻐하고 문추를 불러 현덕과 함께 선두부대를 이끌게 한다. 문추가 말한다.

    "현덕은 연전연패한 장수, 군중에 있은들 이롭지 않습니다. 이미 주공께서 그를 보내시겠다니 3만 군을 떼어 후미를 맡기겠습니다."

    문추 스스로 7만군으로 앞서고 현덕더러 3만으로 뒤따르게 한다.

    한편, 운장이 안량을 참하자 조조가 더욱 기뻐하고 높여 조정에 표를 올려 운장을 한수정후에 봉하고, 관인 官印을 주조해 관공에게 수여한다. 원소가 다시 대장 문추를 보내 황하를 건너 이미 연진 상류를 점거했다는 급보가 날아든다. 조조가 먼저 백성을 옮겨 황하 서 쪽에 거주하게 하고 스스로 출병한다. 또한 군령을 내려 후군 後軍과 전군 前軍의 위치를 뒤바꾼다. 양초(식량과 말먹이풀)가 앞서고 군 병이 뒤선다. 여건이 말한다.

    "양초가 앞서고 군병이 뒤서니 무슨 의도입니까?"

    "양초가 뒤서다가 많이 노획될까 걱정해서 앞에 놓게 했소."

    "만약 적군이 빼앗가 가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적군이 오기를 기다려서 조치할 것이오."

    여건의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조조가 양식과 치중을 연진까지 강가를 따라 늘어놓게 한다. 조조가 후군에 있다가 전군에서 함성이 울리 자 급히 살피게 지시한다. 돌아와 보고한다.

    "하북의 대장 문추의 병력이 몰려오자 아군 모두 양초를 버리고 사방으로 달아났습니다. 후군은 멀리 있는데 이제 어찌해야겠습니까?"

    조조가 채찍으로 양쪽 언덕을 가리킨다.

    "저리 잠시 피하자."

    조조의 인마가 급히 흙언덕으로 달아난다. 조조가 병사들에게 잠시 갑옷을 풀고 쉬고, 말들을 모조리 풀어놓게 한다. 문추군이 순식간에 몰려온다. 장수들이 말한다.

    "적군이 왔습니다! 어서 말들을 거둬 백마로 물러나야 합니다."

    순유가 급히 제지한다.

    "이게 바로 적에게 던지는 미끼인데, 어째서 퇴각하겠소?"

    조조가 얼른 순유를 쳐다보고 웃는다. 순유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다시 말하지 않는다.

    문추군이 양초와 물자를 얻고서 다시 말들을 노획하러 온다. 대오가 무너지고 무질서하다. 조조가 병사들에게 일제히 언덕 아래로 공격하게 하자 문추군이 크게 혼란하다. 조조 병력이 에워싸고 달려들자 문추가 앞장서서 홀로 싸우지만 병사들이 서로 짓밟으며 달아난다. 문추가 저지해도 안 되자 스스로 말머리를 돌려 달아난다. 조조가 언덕 위에서 문추를 가리켜 말한다.

    "문추는 하북의 명장이오. 누가 잡겠소?"

    장요, 서황이 일제히 말을 내달리며 크게 외친다.

    "문추야! 거기 서라!"

    문추가 고개돌려 두 장수의 추격을 보더니 철창 鐵槍을 내려놓고 활을 들어 화살을 매겨 바로 장요에게 쏜다. 서황이 크게 소리지른다.

    "도적놈아 쏘지마라!"

    장요가 급히 머리를 숙여 피하지만, 화살이 잠영(투구 등의 장식물)을 날려버린다. 장요가 힘을 떨쳐 다시 뒤쫓는데 타고 있던 말이 화 살을 뺨에 맞는다. 말이 말굽을 하늘로 향해 엎어지고 장요도 땅에 떨어진다.

    문추가 말을 돌려 되돌아오자 서황이 급히 큰 도끼를 휘둘러 가로막고 싸운다. 그러나 문추 뒤에 군마들이 일제히 몰려오므로 서황이 못 맞서겠다 여기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난다. 문추가 강가를 따라 뒤쫓는데 갑자가 십여 기마병이 깃발을 펄럭이며 나타난다. 선두에서 장 수 하나가 칼을 움켜쥐고 쏜살같이 내달리니 바로 관운장이다. 크게 외친다.

    "적장은 거기 서라!"

    문추와 3합을 안 싸우고 문추가 겁을 먹고 말머리를 돌려 강을 따라 달아난다. 관공의 적토마가 쾌속이라 문추를 따라잡고 뒷통수에 칼을 휘두르자 문추가 말 아래 베여져 구른다. 관공이 문추를 벤 것을 조조가 언덕 위에서 보고 크게 인마를 몰아 덮친다. 하북 군마 태반이 익사하고 양초와 마필은 조조가 되찾아 돌아간다.

    운장이 수 기를 이끌고 동충서돌(좌충우돌)한다. 무찌르고 있는데 유현덕의 3만 병력이 뒤늦게 도착한다. 앞서 나갔던 초마 哨馬 (정찰 기병)가 현덕에게 보고한다.

    "이번에도 붉은 얼굴에 긴 수염이 문추를 참했습니다."

    현덕이 허둥지중 말을 달려 바라보니 강 건너 멀리 한 떼의 인마가 나는듯 왔다갔다 한다. 깃발에 '한수정후 관운장' 일곱 자 적혀 있다. 현덕이 몰래 천지에 감사드리며 말한다.

    "원래부터 내 아우가 과연 조조 진영에 있었구나!"

    불러 만나보려 하지만 조조 대군이 몰려오므로 할 수 없이 병력을 거둬 돌아간다. 원소가 관도에서 접응해 영채를 세운다. 곽도, 심배 가 들어와 원소에게 이야기한다.

    "이번에도 관 아무개가 문추를 죽였습니다. 유비가 거짓으로 모른 체하고 있습니다."

    원소가 크게 노해서 욕한다.

    "귀 큰 도적놈이 어찌 감히 이러냐!"

    잠시 뒤 현덕이 오자 원소가 끌어내서 참하라 한다. 현덕이 말한다.

    "제가 무슨 죄입니까?"

    "네 고의로 네 아우를 시켜 또 다시 내 대장 하나를 무너뜨렸는데 어떻게 죄가 없겠냐?"

    "한마디만 하고 죽게 해주십시오. 조조가 평소 저를 꺼려서 지금 제가 명공 쪽에 있는 걸 알고 제가 명공을 도울까 두려워 일부러 운장더 러 두 장수를 죽이게 하였습니다. 공께서 아시면 노하실 게 분명해서입니다. 이것은 공의 손을 빌려 유비를 죽이는 것이니 명공께서 살 펴주십시오."

    "현덕의 말씀이 옳소. 너희가 어찌 나더러 어진 이를 죽였다는 악명을 얻게 하려느냐!"

    좌우를 꾸짖어 물리고 현덕을 위로 불러 앉힌다.

    현덕이 사례한다.

    "명공의 관대한 은혜를 입고도 아무 보답을 못했습니다. 이제 제 심복에게 밀서를 주고 운장을 만나 제 소식을 알리면 운장이 틀림없이 한밤에라도 달려와 명공을 보좌해 조조를 함께 처단하고 안량, 문추 두 장수의 복수도 이룰텐데, 어떻습니까?"

    원소가 크게 기뻐한다.

    "운장을 얻는다면 안량, 문추의 열 배를 넘겠소."

    현덕이 서찰을 다듬지만 아직 보낼 사람을 찾지 못한다. 원소가 군을 무양으로 물려서 수십 리에 걸쳐 영채를 세우고 안병부동 按兵不動 (군을 움직이지 않고 정세를 관망함)한다. 그러자 조조가 하후돈더러 병력을 이끌고 주둔해 관도의 길목을 지키게 하고, 자기는 군 사를 이끌고 허도로 돌아와 크게 연회를 열어 관리들을 모아 관운장의 공을 치하한다. 그러면서 여건에게 말한다.

    "지난번 내가 양초를 앞세운 건 적에게 미끼를 던진 것이오. 오로지 순 공(순유)이 내 마음을 꿰뚫어보았소."

    모두 탄복한다.

    연회 중에 급보가 날아드니, 여남 汝南에 황건적 유벽, 공도가 있는데 그 세력이 매우 창궐해서 조홍이 여러번 싸웠지만 불리하므로 구 원병을 간청한다는 것이다. 운장이 듣고 진언한다.

    "제가 견마지로 犬馬之勞를 다해 여남의 도적을 깨고 싶습니다."

    "운장이 큰 공을 세워 아직 크게 포상치 못했는데 어찌 다시 수고롭게 원정을 시키겠소?"

    "제가 오래 한가하면 병이 납니다."

    조조가 장하게 여겨 5만 병력을 뽑아 우금, 악진을 부장으로 삼아 다음날 떠나게 한다. 순욱이 은밀히 조조에게 말한다.

    "운장이 유비에게 돌아갈 마음을 가져 만약 소식을 알면 떠나고 말테니 자주 출정시켜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 공을 세우면 내 다시는 출정시키지 않겠소."

    한편, 운장이 병력을 거느리고 여남 근처에 이르러 영채를 세운다. 그날밤 영채 밖에서 두 명의 세작(간첩)이 잡혀온다. 운장이 보니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바로 손건이다. 관공이 좌우를 급히 물리고 손건에게 묻는다.

    "그대는 패전하고 흩어져서 계속 소식을 못 들었는데 어쩌다 여기 있소?"

    "제가 피난하다 여남까지 흘러왔는데 다행히 유벽이 거둬 머물게 했습니다. 지금 장군께서 무슨 이유로 조조 쪽에 계십니까? 감부인, 미 부인 모두 무양하십니까?"

    관공이 앞의 일을 두루 자세히 이야기한다. 손건이 말한다.

    "요새 듣자니 현덕 공께서 원소 쪽에 계시다 해서 저도 넘어가려 하지만, 아직 기회가 없었습니다. 지금 유벽, 공도 두 사람이 원소에게 귀순해 조조 공격을 돕고 있습니다. 게다가 마침 장군께서 여기 오시므로 일부러 작은 병력으로 길을 안내해 저를 세작으로 삼아 장군 께 알려드리라 하였습니다. 내일, 유벽, 공도 두 사람이 거짓으로 한바탕 져서 달아날테니 공께서 어서 두 부인을 모시고 원소 쪽으로 넘 어가서 현덕 공과 상봉하십시오."

    "형께서 원소 쪽에 계시다니 내 반드시 한밤이라도 쉬지않고 가겠소. 다만 내가 원소의 두 장수를 참한 탓에 변고가 있을까 두렵소."

    "제가 먼저 그쪽의 허실을 자세히 살펴보고 다시 와서 장군께 보고하겠습니다."

    "형장을 한번이라 볼 수 있다면 만번 죽어도 사양치 않겠소. 이제 허창으로 돌아가는 즉시 조조에게 작별하겠소."

    그날밤 손건을 몰래 내보낸다.

    이튿날, 관공이 병력을 이끌고 나가자 공도가 갑옷을 갖춰 출진한다. 관공이 말한다.

    "너희는 무슨 까닭으로 조정을 배반하냐?"

    "네 바로 주공을 배반한 사람이거늘 어찌 도리어 나를 꾸짖냐?"

    "내 어찌 주공을 배반했냐?"

    "유현덕이 원본초 쪽에 있는데 너는 오히려 조조를 따르니 무슨 까닭이냐?"

    관공이 두말 않고 말 달려 칼을 휘두르며 나온다. 공도가 바로 달아나고 관공이 뒤쫓는다. 공도가 몸을 돌려 관공에게 고한다.

    "옛 주인의 은혜, 잊을 수 없는 것이오. 그대는 어서 진격하시오. 내가 여남을 양보하리다."

    관공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군을 몰아 덮친다. 유, 공 두 사람이 거짓으로 패전해 사방으로 달아난다. 운장이 주현을 빼앗아 백성들을 안심시킨 뒤 군을 거느리고 허창으로 돌아간다. 조조가 성곽을 나와 영접하고 병사들을 포상하고 위로한다.

    연회를 마치고 운장이 귀가해 문 밖에서 두 형수에게 인사한다. 감부인이 말한다.

    "숙숙께서 두번이나 출전하셨으니 황숙의 소식을 듣지 않으셨는지요?"

    "아직입니다."

    관공이 물러나자 두 부인이 문 안에서 통곡하며 말한다.

    "황숙께서 돌아가셨나봅니다! 이숙 二叔께서 저희가 번뇌할까 두려워 숨기고 말씀을 않는구려."

    통곡하고 있는데 부인들의 통곡이 그치지 않자 문 밖에서 수행하는 노병이 고한다.

    "부인들께서 통곡을 멈추십시오. 주인께서 하북 원소 쪽에 계시다 합니다."

    "자네가 어찌 아는가?"

    "관장군을 따라서 출정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이야기하였습니다."

    부인들이 급히 운장을 불러 꾸짖는다.

    "황숙께서 그대를 저버리신 적이 없는데 그대는 이번에 조조의 은혜를 입어 옛날 의리를 순식간에 잊고 사실대로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으니 무슨 까닭이오?"

    운장이 머리를 조아려 말한다.

    "형께서 이번에 정말 하북에 계신다 합니다. 아직 형수들께 감히 알리지 않은 건 누설을 두려워해서입니다. 이 일은 차근차근 도모해야지 섣불리 할 수 없습니다."

    감부인이 말한다.

    "숙숙께서 알아서 처리하셔야겠습니다."

    관공이 물러나서 떠날 계책을 깊이 생각하는데 앉으나서나 불안하다. 원래 우금도 유비가 하북에 있다는 걸 알아채고 조조에게 보고했다. 조조가 장요더러 관공의 뜻을 알아보게 한다.

    관공이 고민하며 앉아 있는데 장요가 들어와서 축하한다.

    "듣자니 형께서 진중 陣中에서 현덕의 소식을 들으셨다기에 일부러 축하드리러 왔습니다."

    "옛 주인께서 계신다 해도 아직 뵙지 못했는데 어찌 기쁘겠소?"

    "공과 현덕의 사귐을 저와 형의 사귐에 비하면 어떻습니까?"

    "나와 형의 사귐은 붕우(친구) 간의 사귐이오. 나와 현덕은, 붕우이면서 형제요, 형제이면서 군신이오. 어찌 같이 논하겠소?"

    "지금 현덕이 하북에 있다는데 형께서 찾아가시겠습니까?"

    "예전에 했던 말을 어찌 함부로 배신하겠소? 문원이 꼭 나를 위해 승상께 잘 말해주시오."

    장요가 관공의 말을 조조에게 돌아가 알린다. 조조가 말한다.

    "내게 그를 머물게 할 계책이 있소."

    한편, 관공이 깊이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 찾아왔다고 한다. 불러들였는데 누군지 몰라서 관공이 묻는다.

    "그대는 누구요?"

    "저는 원소의 부하, 남양 사람 진진입니다."

    관공이 깜짝 놀라 급히 좌우를 물리고 묻는다.

    "선생께서 여기 오셨으니 틀림없이 목적이 있겠지요?"

    진진이 서찰 하나를 꺼내 관공에게 전한다. 관공이 보니 바로 현덕의 글이다. 대략 이렇다.

    '내가 족하(친구 사이의 경칭)와 더불어 도원에서 체맹(맹약을 맺음)해 같이 죽기를 맹서했소. 이제 와서 어찌 중도에 어기고 은혜를 저버리고 의리를 끊겠소? 그대가 반드시 공명을 성취하고 부귀하기를 바란다면 바라건대 내 수급(자른 머리)을 바쳐서 공적을 완성하게 하고 싶소! 글로써 다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죽더라도 그대의 내명(답신의 높임)을 기다리겠소!'

    관공이 읽고나서 크게 울며 말한다.

    "제가 형을 찾으려 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 소재를 몰랐던 것이오. 어찌 부귀를 바라고 옛 맹서를 저버리겠소?"

    "현덕께서 공을 몹시 간절히 기다리시니 옛 맹서를 저버리시지 않으셨다면 어서 찾아가셔야 합니다."

    "사람이 천지 사이 태어나 종시(일의 끝과 시작)가 없어서는 군자가 아니오. 내가 올 때 명백히 했으니 갈 때도 명백히 하지 않을 수 없소. 내 지금 글을 쓸테니 그대가 번거롭더라도 형장께 전해주시오. 나는 조조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두 형수를 모시고 찾아뵐 것이오."

    "조조가 허락치 않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 차라리 죽을지언정 어찌 여기 오래 머물겠소?"

    "공께서 어서 답신을 써서 현덕의 간절한 소원을 풀어주십시오."

    관공이 답신을 적었는데 이렇다.

    '삼가 듣자니 의리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으며 충절은 죽음을 돌보지 않는다 합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독서해 예의를 그런대로 알지만, 양각애, 좌백도 두 사람의 우정을 읽을 때마다 늘 거듭 탄식하고 눈물 흘렸습니다. 예전에 하비성을 지키는데 안으로 식량이 다하고 밖 으로 구원병이 없었습니다. 죽기살기로 싸우려 했으나 두 형수께서 소중하신지라 감히 몸 바쳐 죽을 수 없어 위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 므로 이렇게 잠시 몸을 두었다가 나중에 만날 것을 바랐습니다. 근래 여남에 가서야 형의 소식을 알았습니다. 즉시 조조를 만나 작별하 고 두 형수를 모시겠습니다. 제가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신인공륙 神人共戮(귀신과 사람이 함께 죽임)할 것입니다. 저의 피간력담 披肝瀝膽(간담을 쪼개서라도 충절을 나타냄)을 글로써 나타내기 어렵습니다. 만날 날을 우러르며, 조람 照鑒(밝게 살핌)을 엎드려 비옵니다 .'

    진진이 서찰을 얻어서 돌아간다. 관공이 안에 들어가 두 형수에게 고하고 즉시 승상부로 가서 조조에게 절하고 작별하려 한다. 찾아온 뜻을 알고 조조가 문에 회피패 迴避牌(손님을 맞이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걸어놓는 패 牌)를 걸어놓는다. 관공이 앙앙 怏怏(기쁘지 않음 )하게 돌아간 뒤, 옛부터 따르던 일꾼들에게 명해서 수레와 말을 수습하고 아침저녁으로 대기하게 한다. 집안의 하사받은 물건들 모두 남겨두고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게 분부한다.

    이튿날 다시 승상부에 인사하러 가지만 문지기가 또 회피패를 걸어둔다. 관공이 잇따라 몇번을 찾아가지만 번번이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장요의 집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려 하지만 장요도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는다. 관공이 생각한다.

    '이것은 조 승상이 내 가려는 뜻을 용납치 않는 것이다. 내가 떠날 뜻을 정했는데 어찌 다시 머물겠는가?'

    즉시 서찰 1 봉을 써서 조조에게 삼가 작별한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제가 젊어서부터 황숙을 모셔 생사를 함께하기로 맹서했습니다. 황천후토 皇天后土(천지신명)께서도 진실로 이 맹서를 들으셨습니다. 예전에 하비성을 잃은 뒤 제가 요청드린 세 가지를 들어주신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제 옛 주공께서 원소 군중에 계신 것을 알고서 옛날 맹서를 회상하니 어찌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새로 받은 은혜 비록 두터우나 옛 의리를 잊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특별히 글을 바쳐서 작 별을 고하니 명찰을 삼가 바랍니다. 미처 다 갚지 못한 은혜, 훗날을 기약하고 싶습니다.'

    서찰을 쓰고 봉해서 사람을 시켜 승상부에 보낸다. 한편으로 예전에 여러번 받은 금은보화를 하나하나 창고에 봉하고, 한수정후의 관인( 관직을 나타내는 도장)을 당상堂上에 걸어놓고서 두 부인에게 수레를 타도록 청한다. 관공이 적토마를 타고 청룡도를 쥐고 옛부터 따르던 일꾼들을 이끌고 수레를 호송해 북문으로 질러간다. 문리들이 막아서지만 관공이 눈을 치켜뜨고 칼을 비껴들어 크게 고함치자 모두 물러나 피한다. 관공이 문을 나선 뒤 종자들에게 말한다.

    "너희는 수레를 호위해서 먼저 가라. 뒤쫓는 자들은 내가 막겠다. 절대 두 분 부인을 놀라게 해선 안 된다."

    종자들이 수레를 밀고 큰길 쪽으로 출발한다.

    한편, 조조가 관공의 일을 매듭짓지 못해서 의논하고 있는데, 좌우에서 관공이 글을 바쳤다 보고한다. 조조가 즉시 읽고서 깜짤 놀라 말 한다.

    "운장이 떠났구나!"

    북문을 지키던 장수가 급보한다.

    "관공이 북문을 돌파해서 수레와 말, 종자 2십여 인을 이끌고 북쪽으로 갔습니다."

    또한 관공의 저택에서 일하던 사람이 와서 알린다.

    "관공이 하사받은 금은보화 등을 모조리 봉하고 갔습니다. 미녀 10 인은 내실에 따로 두고 갔습니다. 한수정후의 관인은 당상에 걸어두었습니다. 승상께서 보내주신 일꾼들은 전혀 데려가지 않고 원래 데려왔던 종자들과 짐만 챙겨 북문을 나갔습니다."

    모두가 경악한다. 한 장수가 일어나 앞으로 나와 말한다.

    "제게 철기 鐵騎 (철갑기병/정예기병) 3천을 주시면 관 아무개를 사로잡아 승상께 바치겠습니다!"

    모두 바라보니 장군 채양이다.

    만 길이나 되는 교룡의 소굴을 벗어나려다가
    3천의 호랑이 같은 병사들을 만나겠구나

    채양이 관공을 뒤쫓겠다는데 과연 어떻게 될까?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