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30회 원본초가 관도에서 패전하고 조맹덕이 오소를 쳐서 군량을 불사른다

    한편, 원소가 병력을 일으켜 관도로 출발한다. 하후돈이 글을 보내 급보한다. 조조가 7만 병력을 일으켜 먼저 가서 적을 맞이하고 순욱을 남겨 허도를 지킨다. 원소가 출병할 때 전풍이 옥중에서 글을 올려 간한다.

    "지금 가만히 수비해 천시를 기다려야지 함부로 대병력을 일으켜선 안 됩니다. 이롭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봉기가 모함한다.

    "주공께서 인의의 군을 일으켰습니다. 전풍이 어째서 이렇게 불길한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원소가 노해 전풍을 참하려 한다. 관리들이 사면하라 고한다. 원소가 원망해 말한다.

    "내가 조조를 깨부순 뒤 전풍의 죄를 밝히겠다!"

    병사들을 닥달해 출발한다. 깃발이 들판을 덮고 창칼이 수풀을 이룬다. 양무에 이르러 영채를 세운다. 저수가 말한다.

    "우리 병사들이 많지만 용맹이 적군보다 못합니다. 적군은 비록 정예하지만 식량과 말먹이가 우리보다 못합니다. 적군은 식량이 모자라 급히 싸우는 게 이롭습니다. 아군은 식량이 넉넉해 시일을 끌어 수비해야 합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적군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저절로 무너집니다."

    원소가 노한다.

    "전풍이 군심을 흐트려서 내가 돌아가서 반드시 참하려 한다. 너까지 감히 이럴 수 있냐!"

    좌우에게 꾸짖어 저수를 군중에 가둔다.

    "내가 조조를 깨뜨린 뒤 전풍과 함께 죄를 묻겠다."

    이에 영을 내려 70만 대군을 거느리고 동서남북 빙 둘러 주둔해 잇따라 90리 남짓에 달한다. 세작(간첩)이 허실을 탐지해 관도에 알린다. 조조 군대가 방금 도착해 그 소식을 전해듣고 두려워한다. 조조가 모사들과 상의한다. 순유가 말한다.

    "원소 군대가 비록 많아도 두려울 게 없습니다. 아군 모두 정예해 홀로 열사람을 감당합니다. 단지 속전해야 이롭습니다. 시간이 흘러 식량과 말먹이가 모자라면 큰일입니다."

    조조가 말한다.

    "모두 내뜻과 같소."

    병사들에게 명해 북을 울려 나아가게 한다. 원소군이 맞이해 양군이 포진한다. 심배가 노수(쇠뇌사수) 1만을 뽑아 양날개에 매복하고, 궁전수(궁수) 5천을 문기 門旗(진문에 세우는 큰 깃발) 안쪽에 매복해 신호소리에 맞춰 한꺼번에 쏘게 지시해둔다.

    삼통고三通鼓(진격을 알리는 음악)가 끝나자 원소가 황금투구와 황금갑옷을 입고 비단전포에 옥허리띠를 둘러 진앞에 말타고 선다. 장합, 고람, 한맹, 순우 경 등 여러 장수가 좌우로 늘어선다. 깃발과 절월(부절과 부월. 천자의 명을 받아 출전한 걸 상징하는 물건)이 매우 엄정하다. 조조 진영 에서 문기 門旗를 열어 헤쳐 조조가 출마한다. 허저, 장요, 서황, 이전 등이 각각 무장한 채 앞뒤로 빽빽히 둘러쌌다. 조조가 채찍으로 원 소를 가리켜 말한다.

    "내가 천자께 너를 대장군으로 천거했었다. 이제 어째서 모반하냐?"

    원소가 노해 말한다.

    "네놈이 이름만 한나라 승상이지 참으로 한나라 역적이다! 죄악이 하늘에 닿아 역적 왕망과 동탁보다 심하다. 그런데 도리어 남을 반역 한다 모함하냐!"

    "내 지금 천자의 조서를 받들어 너를 치겠다!"

    "내가 의대의 밀조(동승이 받은 천자의 비밀조서)를 받들어 역적을 치겠다!"

    조조가 노해 장요를 출전시킨다. 장합이 채찍을 가해 말달려 맞이한다. 두 장수가 사오십 합을 싸워도 승부를 못 가른다. 조조가 바라 보며 속으로 감탄한다. 허저가 칼을 휘두르며 싸움을 도우러 말을 내달린다. 고람이 창을 꼬나쥐고 막아선다. 네 장수가 쌍쌍이 사납게 싸운다. 조조가 명해 하후돈, 조홍이 각각 3천군을 이끌어 우르르 적진을 쳐들어간다. 조조 병사들이 돌진하자 심배가 명해 호포를 터뜨린다. 양쪽에서 1만 쇠뇌를 한꺼번에 쏘고 중군 안쪽에서 궁전수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와 난사한다. 조조군이 견디지 못하 여남 쪽으로 허겁지겁 달아난다. 원소가 병사들을 휘몰아 덮쳐 조조군이 대패해 모조리 관도까지 물러난다. 원소가 군대를 옮겨 관도 가까이 영채를 세운다. 심배가 말한다.

    "지금 10만 병력을 뽑아 관도를 지키고 조조 영채 앞에 흙산을 쌓아올린 뒤 병사들에게 명해 적군 영채를 내려다보며 사격하십시오. 조조가 여기를 버려 달아나면 우리는 이 요충지를 얻어 능히 허창을 함락할 수 있습니다."

    원소가 그말을 따라 영채마다 튼튼한 군인들을 뽑아 쇠삽으로 흙을 파내어 한꺼번에 조조 영채 둘레에 흙산을 쌓는다. 원소 군대가 흙산을 쌓자 조조 진영에서 치고나가 무너뜨리려 한다. 그러나 심배가 배치한 궁노수들이 길목을 틀어막아 전진할 수 없다. 열흘 안에 오십 개 남짓 토산을 쌓아올려 높이 고노 高櫓(정찰 및 공수에 쓰인 지붕 없는 높은 돈대)를 설치한 위에 궁노수들을 배치해 사격한다. 조조군이 크게 두려워해 모두 머리 위로 화살 막는 방패를 들어올려 막아낸다. 흙산 위에서 딱따기 소리가 한차례 울리면 화살이 비오듯 쏟아진다. 조조군 모두 방패를 뒤집어쓰고 땅에 엎드리자 원소군이 큰소리로 야유하고 비웃는다. 병사들이 놀라고 어지럽자 조조가 모사들을 모아 계책을 물었다. 유엽이 말씀드린다.

    "발석차(돌을 날리는 기구)를 만들어 깨부숴야 합니다."

    조조가 유엽더러 발석차의 도면을 제출하게 해 그날밤 발석차 수백 승을 만들어 영채 담벼락 안쪽에 분포해 흙산 위의 운제(고대공성기 구.구름처럼 높은 사다리란 뜻)를 똑바로 마주보게 한다. 궁전수들이 쏘기를 기다려 조조 영채 안쪽에서 한꺼번에 발석차를 끌고가 쏘아 대니 돌포탄들이 하늘을 뒤덮어 흙산 위를 마구 때린다. 사람들이 피할데 없어 궁전수들이 헤아릴 수 없이 죽는다. 원소군 모두 조조의 발석차를 벽력차(벼락수레)라 일컫는다.

    이에 원소군이 감히 높이 올라 사격할 생각을 못한다. 심배가 다시 계책을 바친다. 군인들에게 명령해 몰래 땅굴을 파서 조조영 채 안쪽으로 곧장 뚫고 들어가게 하는데 굴자군 掘子軍이라 일컫는다. 산뒤의 원소군이 땅굴을 파는 걸 본 조조의 병사들이 조조에게 알린다. 조조가 다시 유엽에게 계책을 물었다. 유엽이 답한다.

    "그 원소군이 드러나게 공격할 수 없어 몰래 공격하는 것입니다. 땅굴을 파내어 땅속으로 우리 영채를 뚫고 들어오려는 것뿐입니다 ."

    "어떻게 막아야겠소?"

    "영채 둘레를 따라 긴 참호를 파면 적들의 땅굴도 쓸데없습니다."

    조조가 그날밤 병사들에게 참호를 파게 한다. 원소군의 땅굴이 참호 둘레에 이르자 과연 진입할 수 없어 전력만 쓸데없이 날린 셈이었 다.

    한편, 조조가 관도를 수비해 8월부터 시작해 9월 하순에 이르러 전력이 점차 떨어지고 식량과 말먹이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는다. 조조가 관도를 포기해 허창으로 물러나려 마음먹는다. 그래도 주저하면서 글을 써서 허창으로 보내어 순욱에게 물었다. 순욱이 답장을 보냈는데 대략 이렇다.

    '명공의 존엄한 명령을 받들어 진격과 퇴각 여부를 판단해봅니다. 원소가 관도에 병력을 총집결해 명공과 승부를 내려 하는데, 명공께서 지극히 약한 것으로 지극히 강한 것을 맞서 만약 원소가 이기지 못하면 반드시 우리가 틈탈 수 있으니 천하의 커다란 기회입니다. 원소군이 비록 많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합니다. 명공의 신묘한 무공과 밝은 지혜로써 무엇이든 성공하지 못하겠습니까? 이제 우리 병 력이 비록 적지만 초나라, 한나라가 형양, 성고에서 싸운 상황보다 낫습니다. 명공께서 명해 구역을 나눠 지키고 길목을 틀어막아 적 군을 진격하지 못하게 하면 참으로 그들 세력이 바닥나 반드시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비상한 수단을 써야 할 때이니 결단을 망 서려선 안 됩니다. 명공께서 판단하시고 살펴주십시오.'

    조조가 답장을 읽고 크게 기뻐해 장사들에게 힘을 다해 사수할 것을 명한다. 원소 군대가 약 30리 물러나자 조조가 장수들을 보내 영채 밖으로 나가 정찰하게 한다. 서황의 부하장수 사환이 원소 군대의 세작(간첩)을 붙잡아 서황에게 끌고간다. 서황이 원소 군중의 허실을 묻자 답한다.

    "조만간 대장 한맹이 식량을 운반해 오겠다고, 먼저 저더러 길을 정찰하게 하였습니다."

    서황이 조조에게 알린다. 순유가 말한다.

    "한맹은 필부(평민/못난놈)의 용맹일 뿐입니다. 한사람이 경기병 수천을 이끌고 가서 도중에 공격해 그들 식량과 말먹이를 끊으면 원소 군대가 저절로 혼란해집니다."

    "누가 가야겠소?"

    "즉시 서황을 보내십시오."

    조조가 명해 서황이 사환을 데리고 휘하 부대를 이끌어 앞서고 장요와 허저가 병력을 이끌어 뒤를 받친다. 그날밤 한맹이 식량수레 수 천량을 이끌어 원소 영채로 간다. 가고 있는데 산골짜기 안쪽에서 서황과 사환이 병사들을 이끌고 앞을 가로막는다. 한맹이 나는듯이 말 달려 싸운다. 서황이 가로막고 마구 무찌르고 사환도 인부들을 죽이고 흩어버리고 불을 놓아 식량수레들을 불사른다. 한맹이 막아내지 못해 말을 돌려 달아난다. 서황이 다그쳐 병사들이 수레와 식량을 모조리 불태운다. 원소 군중에서 서북쪽에서 치솟는 불길을 보고 놀라고 의심하는데 패잔병들이 와서, 식량과 말먹이를 빼앗겼습니다, 라고 알린다.

    원소가 급히 장합과 고람을 보내 큰길을 막아선 것을 식량을 불사르고 오던 서황이 바로 마주친다. 장합이 싸우려는데 그뒤에서 장요와 허저 부대가 다다른다. 양쪽에서 협공해 원소 군대를 쳐부수고 네 장수가 병력을 모아 관도의 영채로 돌아간다. 조조가 크게 기뻐해 상을 크게 내려 위로한다. 또한 병력을 나눠 영채 앞에 주둔해 기각지세(소의 양쪽 뿔처럼 서로 마주보며 돕는 형세)를 이룬다.

    한편, 한맹이 패전해 영채로 돌아와 원소가 크게 노해 베려하자 관리들이 사면을 권한다. 심배가 말한다.

    "군대에서 식량이 중요해 애써 지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소가 식량 저장 기지이니 중무장해서 지켜야 합니다."

    원소가 말한다.

    "내 주책(기획과 계책)을 이미 정했소. 그대는 업도로 돌아가 식량과 말먹이를 감독해 결핍이 없게 하시오."

    심배가 명령을 받들어 떠나간다. 원소가 대장 순우경을 보내 부하장수 휴원진, 한거자, 여위황, 조예 등을 거느리고 2만 인마를 이끌어 오소를 지키게 한다. 순우경은 성품이 억세고 술을 좋아해 병사들이 많이 두려워한다. 오소에 다다르자마자 하루종일 장수들과 모여 음주한다.

    한편, 조조군의 식량이 바닥나자 서둘러 허창으로 사자를 보내 순욱에게 식량과 말먹이를 조달해 그날밤 실어날라 구원할 걸 지시한다. 사자가 서찰을 지니고 30리를 못 가서 원소군에게 잡혀, 포박 당한 채 모사 허유에게 끌려간다. 허유 '자원'은 어려서 조조와 벗했는데 당시 원소 진영에서 모사였다. 사로잡힌 사자가 지닌 서찰에서 조조가 식량 조달을 재촉한 것을 보고 허유가 원소에게 달려가 말한다.

    "조조가 관도에 군대를 주둔해 우리와 대치한 게 오래라 허창이 틀림없이 공허합니다. 1군을 떼어내 오늘밤 허창을 기습해 함락할 수 있다면 조조를 깰 수 있습니다. 이제 조조가 식량과 말먹이가 벌써 바닥났으니 이 틈에 2로로 나눠 공격해야 합니다."

    "조조는 속임수가 엄청 많아 이 서찰도 우리를 꾀어내는 계책이오."

    "지금 취하지 못하면 뒤에 도리어 해를 입습니다."

    이야기하고 있는데 업군에서 사자가 와서 심배의 서찰을 바친다. 서찰에는 먼저 식량 운용을 이야기했다. 그 뒷부분에는, '허유가 기주 에 있을 때 일찍이 백성들의 재물을 멋대로 빼앗고 아들이나 조카들을 풀어 백성들에게서 세금과 재물을 거둬 자기 수중에 넣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 아들과 조카들을 하옥했습니다.' 라고 적었다. 원소가 크게 노해 말한다.

    "제멋대로 구는 필부 놈아! 무슨 낯으로 계책을 올리냐! 네놈이 조조와 구면이라 지금도 그놈에게서 뇌물을 받을 생각으로, 그놈의 세작 이 되어 우리 군대를 농락할 뿐이구나! 목을 베어야 마땅하지만 잠시 네놈 머리를 붙여놓겠다! 썩 꺼져서 다시는 내앞에 나타나나지 마 라!"

    허유가 나가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한다.

    "옛말에, 충언은 귀에 거슬리고, 애송이와 모의할 게 못된다! 하였다. 내 아들과 조카들을 벌써 심배가 해쳤고 내 무슨 낯으로 기주 사람 들을 만나랴!"

    검을 뽑아 자살하려는데 좌우에서 검을 빼앗고 권한다.

    "공께서 이다지도 목숨을 함부로하십니까? 원소가 바른말을 받아들이지 않아 뒷날 틀림없이 조조에게 깨집니다. 공께서 조조와 구면인 데 어째서 암흑을 버려 광명을 선택하지 않습니까?"

    겨우 두마디에 허유가 확실히 깨닫는다. 이에 허유가 넘어간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한탄했다.

    원본초 호걸스런 기운 중화를 뒤덮으나 관도에서 맞서 헛되이 탄식하네
    만약 허유의 꾀가 쓰였다면 산과 들을 어찌 조조 집안이 차지했겠는가?

    한편, 허유가 몰래 영채를 걸어나와 조조 영채로 넘어가다 길가에 매복한 군인에게 잡힌다. 허유가 말한다.

    "내가 조 승상의 옛 벗이네. 어서 나를 데려가 남양 사람 허유가 보러 왔다 말씀드리게."

    병사가 황급히 알리러 영채로 들어간다. 이때 조조는 옷을 벗어 쉬고 있었는데 허유가 몰래 왔다 듣고 크게 기뻐하며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 로 나가 맞이한다. 멀리 허유가 보이자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웃음짓고 서로 손잡고 들어가 조조가 먼저 바닥에서 절한다. 허유가 놀라 일으켜 세워 말한다.

    "공께서 한나라 승상이시고 저는 한낱 포의(평민)인데 어찌 이다지도 겸양하십니까?"

    "공은 내 옛벗인데 어찌 감히 벼슬 따위로 위아래를 따지겠소!"

    "제가 주공을 잘못 골라 원소에게 몸굽혔으나 말을 들어주지 않고 계책을 따라주지 않아 지금 포기해 옛벗을 찾아왔을 뿐입니다. 부디 은혜를 베풀어 거둬주시기 바랍니다."

    "자원이 기꺼이 왔으니 일이 성공하겠소. 어서 내게 원소를 깨뜨릴 계책을 가르쳐주시오."

    "제가 일찍이 원소에게 경기병으로 허도를 습격해 앞뒤로 치라 했었습니다."

    조조가 크게 놀란다.

    "원소가 그대의 말을 받아들였으면 내가 지고말았겠소."

    "지금 공께 군량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일년은 지탱하오."

    허유가 웃는다.

    "그럴 리가요."

    "반년치뿐이오."

    허유가 옷길을 털고 일어나 급히 밖으로 걸어나가며 말한다.

    "내 진심으로 넘어왔건만 공이 이토록 속이니 어찌 내 바라는 바이겠소!"

    조조가 만류하며 말한다.

    "자원! 참으시오. 사실대로 고하겠소. 군량이 석달치뿐이오."

    허유가 웃는다.

    "세상사람들이 맹덕은 간웅(간사한 영웅)이다 하더니 지금 과연 그렇소."

    조조도 웃는다.

    "병가에서 속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란 말도 못 들었소?"

    귀에 대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군중에 겨우 이달치 식량뿐이오."

    허유가 큰소리로 말한다.

    "그만 속이시오! 군량은 모조리 바닥났소!"

    조조가 악! 놀라며 묻는다.

    "어떻게 해서 아시오?"

    허유가 순욱에게 보배는 서찰을 꺼내 조조에게 보인다.

    "이 서찰을 누가 썼소?"

    조조가 놀라 묻는다.

    "어디서 얻었소?"

    허유가 사자를 잡은 일을 고하자 그의 손을 잡고 조조가 잡고 말한다.

    "자원이 옛정을 생각해 왔으니 어서 내게 가르쳐 주기 바라오."

    "명공께서 고립무원의 군대로써 강대한 적군에 대항하니 급히 이길 방도를 찾지 않으면 이 상황은 죽고 망하는 길입니다. 제게 계책이 있어 사흘 안에 원소 백만대군을 싸우지 않고도 스스로 무너지게 할 수 있습니다. 명공께서 듣고 싶습니까?"

    "좋은 계책을 들려주시오."

    "원소 군대의 식량과 치중이 죄다 오소에 쌓여 있는 걸 지금 순우경이 수비합니다. 순우경이 술을 좋아해 방비가 허술합니다. 명공께서 정예병력을 골라 원소의 부하장수 장기 蔣奇를 사칭해 그곳까지 식량수송을 호위하고 틈을 타 그곳의 식량과 치중을 모조리 불사르면 원소 군대는 사흘 안에 저절로 어지러워집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허유를 무겁게 대우해 영채에 머물게 한다.

    다음날 조조가 직접 마보군(기병과 보명) 5천을 뽑아 오소로 가서 식량을 털 준비를 한다. 장요가 말한다.

    "원소가 둔량(식량비축)하는 곳에 어찌 방비가 없겠습니까? 승상께서 함부로 가셔서는 안 됩니다. 허유가 속이지 않나 두렵습니다."

    "그렇지 않소. 허유가 이리 온 것은 하늘이 원소를 무찌르는 것이오. 지금 우리 군량이 보급되지 않아 오래 버티기 어렵소. 허유의 계책을 쓰지 않으면 앉은 채 곤궁을 기다리는 것이오. 그가 속인다면 어찌 우리 영채에 머물겠소? 나 역시 그곳 영채를 치려 마음먹은지 오래요. 지금 적의 군량을 치는 건 반드시 실행할 계책이니 그대는 망서리지 마시오."

    "원소가 빈틈을 타 내습하는 것도 방비해야 합니다."

    조조가 웃는다.

    "내 이미 대책을 충분히 마련했소."

    곧 지시해 순유, 가후, 조홍이 허유와 함께 큰 영채를 지키고 하후돈, 하후연이 1군을 거느려 왼쪽에 매복하고, 조인, 이전이 1군을 거느려 오른쪽에 매복해 만일을 대비한다. 장요, 허저를 선두에, 서황, 우금을 후미에 배치하고 조조 스스로 장수들을 이끌고 중군을 맡아 모두 5천 인마다. 원소군의 깃발을 나부끼며 병사들 모두 마른 풀과 장작을 지고 사람들은 입에 젓가락을 물고 말들은 재갈을 물려 해질무렵 오소를 향해 출발한다. 그날밤 별빛이 하늘 가득했다.

    한편, 저수가 원소 군중에 구금돼 있었는데, 그날밤 별들이 무수히 빛나자 감시하는 사람에게 명해 안뜰로 나와 하늘을 우러러 천상 天象(하늘의 변화)을 살핀다. 갑자기 태백(금성)이 역행해 견우성과 북두성 자리를 침범하자 몹시 놀라 말한다.

    "재앙이 닥치겠다!"

    이에 그날밤 원소를 만나려 한다. 당시 원소가 술에 취해 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저수가 은밀히 아뢰어 지시 받을 일이 있다 하므로 불 러들여 물었다. 저수가 답한다.

    "마침 천상을 관찰하니 태백이 유 柳와 귀 鬼 별자리 사이로 역행하고 그 빛이 견우성과 북두성 자리를 침범합니다. 적병이 약탈해 해칠 까 두렵습니다. 오소는 둔량하는 곳이니 방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서 정예병력과 용맹한 장수를 보내 샛길과 산길을 순찰해 조조의 음모를 막아야 합니다."

    원소가 발끈해 꾸짖는다.

    "네놈은 죄인 주제에 어찌 감히 망언해 사람들을 어지럽히냐?"

    그리고 감시하던 사람을 꾸짖는다.

    "내가 네게 그를 구금하라 했는데 어찌 감히 방출하냐!"

    감시하던 사람을 참하라 하고 따로 사람을 불러 저수를 감독해 압송토록 한다. 저수가 나가 빰에 눈물을 흘리며 탄식한다.

    "아군이 조만간 망하겠구나! 내 죽어 시체가 어디를 뒹굴지 모르겠구나!"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렸다.

    귀에 거슬리는 충언으로 원한을 사게 되니 못난 원소는 꾀가 모자라구나
    오소의 군량 모조리 뿌리뽑힐텐데 오히려 구차하게 기주 땅이나 지킬 셈이네

    한편, 조조가 병력을 이끌고 야간에 행군해 원소 군대의 다른 영채를 지나가자 영채의 병사가 어디서 오는 군마들인지 물었다. 조조가 사람을 시켜 응답한다.

    "장기가 명을 받들어 식량을 호송해 오소로 가고 있소."

    원소군의 병사가 바라보니 자기편 깃발이라 의혹하지 않는다. 여러곳을 지나며 모두 장기의 병력이라 속여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는다. 오소 에 이르니 벌써 4경이 거의 지났다. 조조가 하명하니 병사들이 마른풀 따위로 에워싸 불지르고 장교들이 북소리와 함께 돌입한다. 이때 순우경은 장수들과 음주한 뒤 장막에 취해 누워 있었다. 북소리를 듣고 황급히 튀어올라, 왜 이렇게 시끄럽냐, 라고 묻는다. 그러나 말을 미처 마치기도 전에 갈고리가 날라들어 그를 잡아채어 꼬꾸라뜨린다.

    이제 휴원진과 조예가 군량을 운반해 돌아오다 오소에서 불길이 치솟자 급히 구원하러 온다. 조조의 병사들이 급히, 적병들이 뒤에 있으니 병사들을 나눠 막게 해주십시오, 라고 말하자 조조가 호통친다.

    "장수들은 힘을 떨쳐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라! 적병이 후미를 따라붙기를 기다렸다가 돌아서서 싸우겠다!"

    이에 병사들 모두 앞다퉈 적진을 맹공격한다. 순식간에 불꽃이 사방 치솟아 연기가 하늘에 가득하다. 휴원진과 조예 두 장수가 병사들을 몰아와서 구원하자 조조가 말고삐를 잡아당겨 돌아서서 교전한다. 두 장수가 이겨내지 못해 모조리 조조군에게 죽고 식량과 말 먹이가 남김없이 불살라진다. 순우경이 사로잡혀 조조에게 끌려오자 조조가 명해 그 귀, 코, 손가락을 잘라 말위에 결박해 원소 영채로 쫓아보내어 욕보인다.

    한편, 원소가 장막 안에 있는데 정북쪽에 불빛이 하늘 가득하다고 병사들이 아뢰자 오소를 잃은 걸 알아차린다. 급히 문무관리들을 불러 모아 관리들이 구원군을 보낼 것을 상의한다. 장합이 말한다.

    "제가 고람과 함께 가서 구원하겠습니다."

    곽도가 말한다.

    "아니 되오. 조조 병사들이 식량을 약탈하니 틀림없이 조조가 직접 갔소. 조조가 직접 나가서 지금 조조 본영은 텅 비었을 거요. 병력을 총동원해 조조 영채를 먼저 쳐야 하오. 조조가 듣고 분명 서둘러 돌아올 것이오. 이것이 바로 손빈의 위주구조 圍魏救趙 (제나라 손빈이 위나라 병사들로부터 조나라를 구원할 때 위나라 국내가 텅빈 것을 공격해 결국 조나라를 구한 것)의 계략이오."

    "그렇지 않소. 조조는 꾀가 많아 바깥으로 출정하면서 반드시 안으로 방비해 만일을 대비했소. 만약 지금 조조 본영을 쳐서 함락치 못하면 이미 순우경 등이 잡힌 마당에 우리들은 모조리 격파될 것이오."

    "조조는 식량을 터는 데 정신이 팔렸는데 어찌 영채에 병력을 남겼겠소?"

    곽도가 거듭 조조 본영을 치자고 조른다. 원소가 이에 장합과 고람에게 5천 군을 이끌어 관도로 가서 조조 본영을 치게 한다. 또한 장기에게 1만 군을 줘 오소를 구원하게 한다.

    한편, 조조가 순우경의 부하 병졸들을 무찔러 흩어버리고 그들 갑옷과 깃발을 모두 빼앗아 손우경의 부하 패잔병들로 가장해서 돌아오다가 외딴 산속 좁은 길에 이르러 장기가 이끄는 군마들과 마주친다. 장기 병사들의 물음에, 오소에서 달아난 패잔병들이라 사칭한다. 장기가 의심하지 않고 말을 몰아 곧장 지나간다. 갑자기 장요, 허저가 나타나 호통친다.

    "장기는 거기 서라!"

    장기가 미처 손쓰지 못해 장요에게 베여 낙마한다. 장기의 병력이 모조리 깨부숴진다. 다시 사람을 앞서 보내 거짓으로 알린다.

    "장기가 이미 오소에서 적병들을 물리쳤습니다."

    이에 원소가 오소에 구원병력을 증파하지 않고 오로지 관도에 병력을 더욱 쏟아붓는다.

    한편, 장합과 고람이 조조의 영채를 공격하자 왼쪽에서 하후돈, 오른쪽에서 조인, 가운데 조홍이 우루르 치고나와 3로로 공격해 원소군이 대패한다. 이어서 증원군이 몰려오고, 게다가 조조가 배후에서 달려들어 사방을 포위해 공격한다. 장합과 고람이 길을 뚫어 달아 난다. 오소의 패잔병들이 원소 영채로 돌아왔는데 손우경이 귀와 코가 없고 손발도 몽땅 잘려나갔다. 원소가 묻는다.

    "너희가 어쩌다 오소를 잃었냐?"

    패잔병들이 고한다.

    "순우경이 술에 취해 누워 있어 적들에게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원소가 노해 순우경을 참한다. 장합과 고람이 영채로 돌아와 시비를 따질까 두려워 곽도가 모함한다.

    "장합과 고람이 주공의 패전을 보고 속으로 분명 기뻐할 겁니다."

    "어째서 그런 말을 꺼내오?"

    "두 사람은 평소 조조에게 넘어갈 뜻을 품어 지금 적진을 치라 보냈지만 일부러 힘을 다하지 않아 사졸들을 잃고 말았습니다."

    원소가 크게 노해 사자를 보내 두 사람을 영채로 불러 죄를 물으려 한다. 곽도가 먼저 사람을 보내 두 사람에게 이른다.

    "주공께서 그대들을 죽이고 말 것이오."

    이어서 원소의 사자가 오자 고람이 묻는다.

    "주공께서 우리를 왜 부르시는가?"

    "무슨 까닭인지 모릅니다."

    고람이 바로 검을 뽑아 사자를 참한다. 장합이 크게 놀라자 고람이 말한다.

    "원소는 참언을 듣고 믿어 틀림없이 조조에게 깨질 것이오. 우리가 어째서 앉은 채 죽기를 바라겠소? 조조에게 넘어가는 것만 못하오."

    "나 역시 그런 마음인지 오래요."

    두 사람이 휘하 병마들을 이끌어 조조 영채로 가서 투항한다. 하후돈이 말한다.

    "장합, 고람 두사람이 투항해 왔지만 아직 허실을 알 수 없습니다."

    조조가 말한다.

    "내가 은혜로써 저들을 대우한다면 비록 다른 마음을 품었더라도 역시 바뀔 수 있소."

    영문을 열어 두 사람을 들라 한다. 두 사람이 무기를 거꾸로 잡고 갑옷을 벗어 바닥에 엎드려 절한다. 조조가 말한다.

    "만약 원소가 두 장군의 말씀을 들었다면 이렇게 패하지는 않았소. 이제 두 장군이 기꺼이 넘어왔으니 옛 미자가 은나라로 가고, 한신이 한나라에 귀순한 것과 같소."

    장합을 편장군 도정후로 봉하고 고람은 편장군 동래후로 봉한다. 두 사람이 크게 기뻐한다.

    한편, 원소 진영에서 허유가 이미 떠난데다 다시 장합과 고람이 가버리고 게다가 오소의 식량도 잃어 병사들이 뒤숭숭하다. 허유가 다시 조조에게 어서 진격할 것을 권하고 장합과 고람이 선봉을 청한다. 조조가 그말을 받아들인다. 즉시 명해 장합과 고람이 병력을 이끌고 원소 영채를 치러 간다. 그날밤 3경 무렵 3로로 출병하여 영채를 공격한다. 동틀 때까지 뒤엉켜 싸워 각각 병력을 거뒀는데 원소 군대 태반이 꺾였다. 순유가 계책을 낸다.

    "지금 헛소문을 내어 1로는 산조를 취해 업군을 공격하고, 다른 1로는 여양을 취해 원소의 퇴로를 끊겠다 하십시오. 원소가 듣고 틀림없이 놀라고 당황해 병력을 나눠 막으려 할 겁니다. 그들 병력이 움직이는 틈을 공격하면 원소를 깨부술 수 있습니다."

    조조가 그 계책을 써서 병사들을 사방으로 보내어 헛소문을 낸다. 원소 병사들이 소문을 듣고 영채로 돌아와 보고한다.

    "조조가 병력을 2로로 나눠 1로는 업군을 취하고 1로는 여영을 취한다 합니다."

    원소가 크게 놀라 급히 원상에게 5만 병력을 줘 업군을 구원하게 하고, 신명에게 역시 5만 병력을 줘 여양을 구원하러 그날밤 출발하게 한다. 조조가 원상 병력의 움직임을 탐지해 군마를 크게 나눠 8로로 우르르 출격해 원소 영채를 치고들어간다. 원소군 모두 투지를 상실해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난다. 원소가 갑옷도 못 갖춰 홑옷에 복건 幅巾 (도복에 맞춰 쓰던 두건)만 걸친 채 말을 탄다. 어린 아들 원담이 뒤따른다. 장요, 허저, 서황, 우금 네명의 장수가 병사들을 이끌고 원소를 뒤쫓는다. 원소가 급히 강을 건너느라 도서, 수레, 비단 따위를 모조리 버리고 겨우 8백여 기만 데리고 달아난다.

    조조군이 따라잡지 못하고 원소가 버리고 간 물건들을 모두 노획한다. 죽은 사람이 8만 남짓인데 피가 흘러 도랑에 넘치고 물에 빠져 죽은 자들은 헤아릴 수 없다. 조조가 완전한 승리를 거둬 노획한 금은보화와 비단으로 병사들을 포상한다. 노획한 도서들 가운데 서신이 한다발 나왔는데 허도와 조조군의 사람들이 원소와 밀통하던 서신들이다. 좌우에서 말한다.

    "일일이 성명을 알아내어 죽여야 합니다."

    조조가 말한다.

    "원소가 강성해 나 역시 내몸을 보전하기 어려웠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겠소?"

    모조리 불사르게 해 다시 묻지 않는다.

    한편, 원소가 패전해 달아날 때 저수가 여전히 갇혀 있었다. 급히 달아나다 벗어나지 못해 조조군에게 잡혀 조조에게 끌려간다. 조조가 평소 저수와 알고지냈다. 저수가 조조를 보고 크게 외친다.

    "나는 항복하지 않겠소!"

    "본초가 무모해 그대 말을 들어주지 않았는데 그대는 어찌 고집하시오? 내 일찍 그대를 얻었으면 천하에 걱정할 게 없었겠소."

    그래서 저수를 후대해 군중에 둔다. 저수가 이에 영채 안에서 말을 훔쳐타서 원씨에게 돌아가려한다. 조조가 노해서 죽인다. 저수가 죽 음에 이르러서도 신색(낯빛)이 불변한다. 조조가 한탄한다.

    "내가 잘못해 충의로운 사나이를 죽였구나!"

    명해 두터운 예로써 장례해 황하 나루에 무덤을 마련해 안장하고 묘비에, 충렬저군지묘 忠烈沮君之墓 (충성스러운 저수 선생의 무 덤)이라 하였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렸다.

    황하 북쪽 이름난 사내들 많다지만 충정한 사람 오직 저수 뿐
    뚫어져라 바라보아 진법을 알아내고 얼굴을 들어 천문을 알았네
    죽더라도 마음은 무쇠 같고 위기에 몰려도 기세는 구름을 닮았다
    조맹덕 공 그 의열한 마음 흠모해 외로운 무덤 하나 마련해주네

    조조가 공격명령을 하달한다.

    세력이 약해도 단지 꾀가 많아 이기고
    전력이 강해도 도리어 꾀가 모자라 망하구나

    승부가 어찌될지 아직 모르겠구나. 다음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