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31회 조조가 창정에서 본초를 격파하고 현덕이 형주에서 유표에게 의탁한다

    한편, 조조가 원소의 패배를 틈타 군마들을 정돈해 계속 추격한다. 원소가 복건에 홑옷 차림으로 8백여 기를 이끌어 여양 북쪽 언덕까지 달아나자 대장 장의거가 영채를 나와 영접한다. 원소가 그전 일을 장의거에게 늘어놓자 장의거가 흩어진 병사들을 초유한다. 병사들이 원소의 소재를 듣고 개미떼처럼 몰려들어 군세를 다시 떨쳐 기주로 돌아갈 걸 의논한다. 행군하다 밤이 되어 어느 인적 드문 산 에 야영한다. 원소가 장막 안에 있다가 저멀리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들어 몰래 가서 엿들어본다. 패잔병들이 모여 형제를 잃거나 친지를 잃은 아픔을 늘어놓으며 각각 가슴을 치며 크게 울고 있었다. 모두 말한다.

    "전풍의 말을 귀담아들었다면 우리가 어찌 이런 재앙을 맞았겠소!"

    원소가 크게 뉘우친다.

    "내가 전풍의 말을 듣지 않아 싸움에 지고 장수들을 잃어 지금 돌아가니 무슨 면목으로 그를 만나겠는가?"

    다음날 말을 타 가고 있는데 봉기가 병사들을 이끌고 영접한다. 원소가 봉기를 보고 말한다.

    "내가 전풍의 말을 듣지 않아 이렇게 패했소. 이제 돌아가 그를 만나기 부끄럽소."

    봉기가 모함한다.

    "전풍이 옥중에서 주공의 패전을 듣고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참으로 내 헤아린 것을 벗어나지 못하구나! 라고 말했습니다."

    원소가 크게 노한다.

    "썩은 선비가 어찌 감히 나를 비웃냐! 죽이고 말테다!"

    사자에게 보검을 줘 기주의 옥중으로 먼저 가서 전풍을 죽이라 한다.

    한편, 전풍은 옥중에 있었다. 하루는, 옥리가 찾아와서 전풍에게 말한다.

    "별가께 축하드리옵니다."

    "뭐가 기쁘다고 축하하는가?"

    "원장군께서 대패해 돌아오시니 선생께서 틀림없이 중용되시겠습니다."

    전풍이 웃는다.

    "나는 이제 죽게 될 것이네!"

    "사람들 모두 선생을 위해 기뻐하는데 어찌 죽는다 말씀하십니까?"

    "원 장군은 겉으로 용서해도 속으로 미워하고 충성을 생각해주지 않네. 만약 이겨 기쁘면 오히려 나를 사면해줄지도 모르네. 지금 패전해 치욕스러워 할테니 내가 살기를 바라지 못하네."

    옥리가 믿지 못하다가 느닷없이 사자가 보검을 갖고 와 원소의 명령을 전하고 전풍의 머리를 자르려 해서야 옥리가 놀란다. 전풍이 말한다.

    "내 틀림없이 죽을 줄 알았다."

    옥리들이 모두 눈물흘린다. 전풍이 말한다.

    "대장부가 천지간에 태어나 그 주공을 못 알아보고 섬겼으니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오늘 죽은들 무엇이 애석하겠는가!"

    이에 옥중에서 자살한다. 뒷날 누군가 시를 남겨 기렸다.

    어제 아침 저수가 군중에서 죽고 오늘 전풍이 옥중에서 죽구나
    하북의 동량들 모두 절단나니 원본초 어찌 나라를 잃지 않으리

    전풍이 죽은 걸 듣고 모두 탄식하고 슬퍼한다. 원소가 기주로 돌아와 마음이 번거롭고 뜻이 어지러워 정사를 처리하지 못한다. 그 아내 유 씨가 후사를 세울 걸 권한다. 원소에게 아들이 셋인데 맏아들 원담 '현충'은 청주를 지키고, 둘째 원희 '현혁'은 유주를 지켰다. 셋째 원상 '현보'는 원소의 후처 유씨가 낳아 생김새가 준수하고 영웅스러워 원소가 몹시 사랑해 곁에 두었다. 관도에서 패전하고 돌아와 유씨가 원상을 후사로 세울 걸 권한다. 원소가 심배, 봉기, 신평, 곽도 네 사람과 상의한다. 원래 심배, 봉기 두 사람은 원상을 보필하려 했고, 신평, 곽도 두 사람은 원담을 보필하려 했다. 네 사람 모두 각각 그들 주공을 위했다.

    그 자리에서 원소가 네 사람에게 말한다.

    "지금 바깥으로 걱정거리가 남아 안으로 일을 어서 정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후사를 세울 걸 의논하려 하오. 맏아들 담은 사람됨이 성질이 거칠고 죽이기를 좋아하오. 둘째 희는 사람됨이 유약하고 성취하기 어렵소. 셋째 상은 영웅스러운 생김새에 현명한 사람들을 예우하고 선비들을 공경해 내가 그를 후사로 세우고 싶소. 그대들 뜻은 어떻소?"

    곽도가 말한다.

    "세 아드님 가운데 담이 맏이인데다 지금 오랫동안 밖에 나가 있습니다. 주공께서 맏이를 폐해 어린 아들을 세우면 이것은 난리를 싹 트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군대가 몹시 꺾여 적병들이 영토를 압박하는데 어찌 다시 부자형제 사이에 다퉈 어지럽게 하겠습니까? 주공께서 우선 적병들을 막을 방책을 처리하시고 후사를 세우는 것은 나중에 의논해도 됩니다."

    원소가 망서려 매듭짓지 못하는데 보고가 올라온다. 원희가 병력 6만을 이끌어 유주에서 오고, 원담이 병력 5만을 이끌어 청주에서 오고 , 원소의 생질(누이의 아들) 고간이 병력 5만을 이끌어 병주에서 와서 각각 기주에 도착해 싸움을 도우려 한다는 것이다. 원소가 기뻐해 인마들을 재정비해 조조와 싸우러 간다.

    그때 조조가 승전한 병력을 이끌어 하상 河上에 진을 펼치자 주민들이 음식을 싸들고 나와 맞이한다. 조조가 부로(노인의 존칭) 몇사람을 만나는데 다들 수염이며 머리카락이 새하야므로 조조가 안으로 불러 자리를 내어주고 묻는다.

    "노인장은 연세가 몇이오?"

    "모두 백살 가깝습니다."

    "우리 병사들이 그대들 고을을 놀라게 했을까 몹시 불안하오."

    "환제 시절, 황성 黃星이 초, 송 별자리에 있었습니다. 요동사람 은규 殷馗가 천문을 잘 봤는데 밤에 여기 머물어 이 늙은이들에게, '황성 이 천상에 나타나 여기를 바로 비추고 있소. 50년 뒤에 진인 真人이 양, 패 사이에 나타날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햇수로 계산 해보니 꼭 50년째입니다. 본초가 백성들을 크게 수탈해 백성들 모두 원망합니다. 승상께서 인의의 군을 일으켜 백성들을 어루만지 시고 죄인을 토벌하러 관도에서 크게 싸워 원소 백만대군을 격파해 예전 은규가 한 말 그대로입니다. 만백성이 태평성대를 바라볼 수 있게 됐습니다."

    조조가 웃는다.

    "노인장 말씀을 어찌 감당하겠소?"

    술과 음식, 비단을 노인들에게 내려 떠나보낸다. 삼군에게 호령한다.

    "촌락에 들어가 백성들 집에서 닭이나 개를 죽인 것도 살인죄와 같다."

    이에 군민들이 두려워하며 복종한다. 원소가 4개 주의 병력 2, 3십만을 모아 먼저 창정 倉亭에 야영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조조가 속으 로 기뻐한다. 조조가 군대를 거느려 전진해 야영했다. 다음날 양쪽 군대가 대치해 포진을 마쳤다. 조조가 장수들을 이끌어 출진하고 원소 역시 세 아들, 생질 하나, 문관과 무장들을 이끌어 진앞에 나간다. 조조가 말한다.

    "본초는 꾀도 힘도 다했거늘 어찌 투항할 생각을 하지 않는가? 머리에 칼 맞은 뒤에 후회하면 늦을 것이네!"

    원소가 크게 노해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한다.

    "누가 감히 출마하겠는가?"

    원상이 아버지 앞에서 뽐내러 쌍칼을 춤추듯 휘두르며 말을 몰아 출진해 쏜살같이 달려든다. 조조가 그를 가리키며 장수들에게 묻는 다.

    "저자는 누군가?"

    아는 사람이 답한다.

    "원소의 셋째 아들 원상입니다."

    말을 미처 마치기도 전에 한 장수가 창을 꼬나잡고 벌써 나섰다. 조조가 바라보니 서황의 부하장수 사환이다. 둘이 맞붙어 3합이 못 돼 원상이 말머리를 옆으로 돌려 달아난다. 사환이 뒤쫓자 원상이 활을 들어 화살 매겨 몸 돌려 뒤로 쏜다. 사환이 왼눈을 바로맞아 낙마해 죽는다. 원소가 아들이 이긴 걸 보고 채찍을 휘둘러 지시하자 많은 인마들이 장수를 호위해 몰려와 혼전한다. 한바탕 크게 싸운 뒤 각각 징을 쳐 병사들을 거둬 영채로 돌아간다.

    조조가 장수들과 함께 원소를 깰 계책을 상의한다. 정욱이 십면매복 十面埋伏(온통 복병을 두는 것. 겹겹이 에워싸는 것)의 계책을 바치 는데 조조에게 하상으로 퇴각하되 10개 부대를 매복해 원소를 하상까지 유인할 것을 권한다. 아군에게 퇴로가 없어지면 틀림없이 죽을 각오로 싸울테니 원소에게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조조가 그 계책을 그럴 듯하다 여긴다. 왼쪽 1대는 하후돈, 2대는 장요, 3대는 이전, 4대는 악진, 5대는 하후연이다. 오른쪽 1대는 조홍, 2 대는 장합, 3대는 서황, 4대는 우금, 5대는 고람이다. 다음날 10개 부대가 먼저 가서 좌우에 매복을 마친다. 한밤중에 조조가 허저에게 병력을 이끌어 전진해 거짓으로 적진을 공격하는 척했다. 원소의 다섯개 영채에서 인마들이 우르르 일어나자 허저가 회군하여 도주한다. 원소가 군을 이끌고 뒤쫓아 함성이 그치지 않는다. 새벽에 이르러 하상까지 뒤쫓아 조조군이 달아날 길이 없다. 조조가 크게 외친다.

    "우리 앞에 달아날 길이 없다. 병사들아! 어찌 죽을 각오로 싸우지 않겠는가?"

    병사들이 몸을 돌려 힘껏 전진한다. 허저가 말을 내달리며 앞장서 적장 열몇을 참한다. 원소군이 크게 흔들린다. 원소가 퇴각해 급히 돌아가는데 배후에서 조조군이 뒤쫓는다.

    달아나고 있는데 북소리 한바탕 울리더니 왼쪽에서 하후연, 오른쪽에서 고람이 이끄는 2군이 치고 들어온다. 원소가 세 아들, 생질과 함 께 죽기살기로 혈로 血路를 뚫어 달아난다. 다시 10리를 못 가 왼쪽에서 악진, 오른쪽에서 우금이 쏜살같이 튀어나와 원소 군대를 무찔 러 시체가 들판 가득하고 피가 흘러 도랑을 이룬다. 다시 몇리를 못 가 왼쪽에서 이전, 오른쪽에서 서황의 2군이 가로막고 한바탕 무찌른 다.

    원소 부자가 간이 오그라들고 가슴이 놀라 영채로 도망쳐 들어가 삼군에게 밥을 지으라 한다. 밥을 기다리고 있는데 왼쪽에서 장요, 오 른쪽에서 장합이 내달려와 영채를 공격한다. 원소가 황급히 말에 올라 창정으로 먼저 달아난다. 인마들이 기진맥진해 쉬려 하는 참에 뒤 쪽에서 조조의 대군이 뒤쫓아와 원소가 죽기살기로 달아난다.

    한창 달아나고 있는데 왼쪽에서 조홍, 오른쪽에서 하후돈이 갈 길을 막아선다. 원소가 크게 외친다.

    "죽은 각오로 싸우지 않으면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힘을 떨쳐 충돌해 두터운 포위를 뚫어 탈출한다. 원희와 고간 둘다 화살을 맞아 다쳤다. 군마들이 거의 다 사망했다. 원소가 세 아들을 껴 안아 한바탕 통곡하다 어느새 혼절해 쓰러진다. 사람들이 급히 구하자 원소가 입에서 붉은 피를 토해 그치지 않는다. 원소가 탄식한다.

    "내가 여태 수십차례 싸웠지만 오늘 이다지도 낭패를 볼 줄은 생각치 못했다! 이것은 하늘이 나를 버리는 것이다! 너희는 각각 근거지로 돌아가 맹세코 조조 도적놈과 자웅을 겨뤄라!"

    신평, 곽도에게 화급히 원담을 따라 먼저 청주로 가서 정돈해 조조의 침공에 대비케 한다. 원희도 다시 유주로 돌아가고, 고간도 다시 병 주로 돌아가 각각 군마들을 수습해 대비하게 한다. 원소가 원상 등을 이끌어 기주로 들어가 요양하고 잠시 심배와 봉기에게 군대사무를 처리케 한다.

    한편, 조조가 창정에서 대승한 뒤 삼군을 크게 포상하고 사람을 시켜 기주의 허실을 알아보게 한다. 세작이 돌아와 알린다.

    "원소는 와병 중이고, 원상, 심배가 성지(도시)를 굳게 지킵니다. 원담, 원희, 고간은 모두 근거지로 돌아갔습니다."

    사람들 모두 조조에게 서둘러 공격하라 권한다. 조조가 말한다.

    "기주는 식량이 극히 많고 심배 또한 기모(책략)가 있어 아직 급히 함락할 수 없소. 지금 살펴보면, 곡식이 자라고 있어 백성들의 생업을 해칠까 두려우니 잠시 가을걷이까지 기다려 공격해도 늦지 않소."

    의논하고 있는데 순욱의 서찰이 도착한다. 내용은 이렇다.

    "유비가 여남에서 유벽과 공도의 무리 수만명을 얻었습니다. 승상께서 군을 거느려 하북으로 출정한 것을 들은 유비가 유벽에게 여남을 지키게 하는 한편, 스스로 병력을 이끌어 빈틈을 타서 허창을 공격하려 합니다. 승상께서 어서 회군해 막으십시오."

    조조가 크게 놀라 조홍을 남겨 하상에 주둔해 허장성세를 부리게 한다. 조조 스스로 대병력을 이끌어 여남으로 유비를 맞으러 간다.

    한편, 현덕이 관, 장, 조운 등과 함께 병력을 이끌어 허도를 습격하려 한다. 양산 가까이 이르러 조조군이 들이닥쳐 현덕이 양산에 야영한다. 병사들을 3개 부대로 나눠 운장이 동남쪽에 주둔하고 장비가 서남쪽에 주둔하고 현덕과 조운이 정남쪽에 진지를 세운다. 조조군이 이르자 현덕이 북소리 울리며 출격한다. 조조가 포진하자 현덕을 불러내어 이야기한다. 현덕이 군문의 깃발 아래에서 출마한다. 조조가 채찍으로 가리켜며 욕한다.

    "내 너를 상빈으로 대했거늘 너는 어찌 의리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었냐?"

    "네가 이름은 한나라 승상이나 참으로 국가역적이다! 내가 한실종친으로 천자의 밀조를 받들어 반적을 토벌하러 왔다!"

    말 위에서 의대의 밀조(천자가 동승에게 내린 허리띠 속의 비밀조서)를 낭송한다.

    조조가 크게 노해 허저더러 싸우러 나가라 한다. 현덕 뒤에서 조운이 창을 꼬나잡아 출마한다. 두 장수가 붙어 30합이 되도록 승부가 나지 않는다. 홀연히 함성이 크게 일더니 동남쪽에서 운장이 충돌해온다. 서남쪽에서는 장비가 병사들을 이끌어 충돌해온다. 세 군데에서 우르르 덮친다. 조조군이 멀리 와서 피곤해 막아내지 못해 대패해 달아난다. 현덕이 이겨 진지로 돌아온다.

    다음날 다시 조운을 내보내 싸움을 건다. 조조군이 열흘간 나오지 않는다. 현덕이 다시 장비를 보내 싸움을 걸지만 조조군이 역시 나오지 않는다. 현덕이 더욱 의심한다. 공도가 군량을 운반하다 조조군에게 포위됐다는 급보가 들어와 현덕이 장비더러 급히 구원하라 명한다. 또한 하후돈이 군을 이끌고 배후를 공격해 곧장 여남을 취한다는 급보가 전해져 현덕이 크게 놀라 말한다.'

    "이렇다면 우리 앞뒤로 적병을 맞아 돌아갈 곳이 없게 된다!"

    급히 운장더러 구원하게 한다. 양쪽 부대가 모두 떠났다.

    하루가 안 지나 말을 내달려 급보를 전하는데, 하후돈이 벌써 여남에서 격파해 유벽이 성을 버려 달아나고 운장은 지금 포위돼 있다는 것이다. 현덕이 크게 놀란다. 다시 공도를 구하러 간 장비 역시 포위돼 있다는 급보가 전해진다. 현덕이 서둘러 군대를 돌리려 하지만 조조군이 배후를 습격할까 두렵다. 영채 밖에 허저가 와서 싸움을 걸지만 현덕이 감히 출마하지 못한다. 새벽이 되기를 기다려 병사들을 배불리 먹인 뒤 보병을 앞서 가게 해 기병을 뒤따르게 하고 영채 안에서는 거짓으로 점호하는 척한다. 현덕 등이 영채를 떠나 몇리 를 가서 흙산을 돌아지나는데 횃불이 한꺼번에 타오르고 산꼭대기에서 크게 외친다.

    "유비는 거기 멈춰라! 승상께서 여기서 기다리고 계셨다!"

    유비가 황급히 달아날 길을 찾는다. 조운이 말한다.

    "주공! 걱정 마십시오! 제게 바짝 붙으십시오!"

    조운이 창을 꼬나쥐어 말을 내달려 쳐나가며 한줄기 길을 뚫고 현덕이 쌍고검을 쥐어 뒤따른다.

    싸우는데 허저가 따라붙어 조운과 한바탕 싸운다. 뒤에서 우금과 악전도 당도한다. 사세가 위급하자 현덕이 황망히 달아난다. 뒤에서 들 리는 함성이 점점 멀어지고 현덕은 깊은 산속 외딴 길로 달아나 홀로 말을 몰아 목숨을 건지려 한다. 간신히 새벽이 되었는데 옆에서 1군이 튀어나온다. 현덕이 크게 놀라 바라보니 다름아닌 유벽이 패잔군 1천여 기를 이끌고 현덕의 식구를 호송해 오고 있다. 손건, 간옹, 미방도 도착해 이야기한다.

    "하후돈의 군세가 매우 날카로워 저희가 성을 버려 달아났습니다. 조조 병력이 뒤쫓는 걸 다행히 운장이 가로막아 벗어나게 됐습니다."

    "운장이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오?"

    유벽이 말한다.

    "장군께서 우선 출발하십시오. 그건 다시 알아보겠습니다."

    몇리를 가자 북소리 한차례 울리더니 앞쪽에 한떼의 인마가 밀어닥친다. 앞장선 대장은 바로 장합, 크게 외친다.

    "유비! 어서 말에서 내려 투항하라!"

    유비가 뒤로 물러서려는데 산꼭대기 위에서 붉은 깃발이 나부끼고 1군이 산속 으슥한 데에서 들이닥친다. 앞장선 대장은 바로 고람이다. 현덕이 양쪽 모두 막히자 하늘을 우러러 크게 외친다.

    "하늘은 어찌해 이다지도 나를 궁지에 몰아넣는가? 사세가 이렇다면 죽는 것만 못하리라!"

    검을 뽑아 자살하려 한다. 유벽이 급히 말려 말한다.

    "제가 죽기로 싸워 길을 뚫어 사군을 구하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달려가 고람과 창칼을 섞는다. 3합을 못 넘겨 고람에게 한칼에 베여 낙마한다.

    현덕이 황급해 직접 싸우려는데 고람의 후군이 갑자기 어지러워진다. 한 장수가 쳐들어오는데 창을 휘두르자 고람이 고꾸라져 낙마한다. 바라보니 바로 조운이다. 현덕이 크게 기뻐한다. 조운이 말을 내달려 창을 꼬나쥐어 후군을 무찌르고 앞으로 내달려 홀로 장합과 싸운다. 장합이 조운과 30합 남짓 싸워 말머리를 돌려 패주한다. 조운이 기세를 타서 쳐부수다가 장합군이 산속 길목을 가로막는데 길이 좁아 탈출할 수 없다.

    길을 뚫고 있는데 운장, 관평, 주창이 3백 군마를 이끌어 도착한다. 양쪽에서 협공해 장합을 무찔러 쫓아버린다. 각각 애구(산을 오가는 좁고 거친 입구)를 빠져나와 산험(산세가 험난한 곳)에 자리잡아 야영한다. 현덕이 운장에게 장비를 찾아보게 한다. 원래 장비는 공도 를 구하러 갔지만 공도를 하후연이 이미 죽인 뒤였다. 장비가 힘을 떨쳐 하후연을 무찔러 계속 뒤쫓다가 도리어 악진군에게 포위당 했다. 운장이 길에서 패잔병들을 만나 그곳을 물어 찾아가 악진을 무찔러 내쫓고 장비와 함께 돌아와 현덕을 만난다.

    조조 대군이 뒤쫓는다는 보고가 들어오므로 현덕이 손건 등에게 식구를 데리고 선행하게 한다. 현덕이 관, 장, 조운과 함께 뒤를 맡아 싸 우다 달아나다를 되풀이한다. 현덕이 멀리 달아난 걸 보고 조조가 군을 거둬 더 이상 뒤쫓지 않는다. 현덕의 패잔병이 1천이 못 돼 허겁지겁 달아난다. 어느 강에 이르러 토인(지역주민)을 불러 물으니 바로 한강이다. 현덕이 잠시 주둔한다. 토인들이 현덕을 알아봐 양고기와 술을 바쳐 강가 모래밭에서 모여 음주한다. 현덕이 탄식해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대들 모두 왕좌지재(왕을 모실 큰 벼슬을 할 재주)인데 불행히 이 사람 유비를 따라다니고 있소. 내 운명이 군색해 그대들에게도 누를 끼치오. 오늘날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어 참으로 그대들을 그르칠까 두렵소. 그대들은 어찌 나를 버려 밝은 주공을 찾아 공명을 세우려 하지 않소?"

    모두 얼굴을 가리고 운다. 운장이 말한다.

    "형장 말씀이 틀렸소. 옛날 고조 황제께서 항우와 천하를 다퉈 몇번이나 항우에게 패하지만 뒷날 구리산 싸움에서 한번 성공해 사백년 토대를 여셨소. 이기고 지는 건 병가에서 흔한 일인데 어찌 스스로 뜻을 꺾겠소?"

    손건이 말한다.

    "성공과 실패에 때가 있으니 상심하실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 형주까지 멀지 않습니다. 유경승께서 9주를 장악해 병력이 강하고 식량이 넉넉한데다 주공과 함께 한실종친인데 어찌 그를 찾아가시지 않습니까?"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이오."

    "제가 먼저 가서 유세해 유경승으로 하여금 출경(나라, 고을 등의 경계를 넘음)해 주공을 영접하게 하겠습니다."

    현덕이 크게 기뻐해 손건에게 그날밤 형주로 가게 한다. 손건이 고을에 도착해 유표를 만나 인사를 마쳐 유표가 묻는다.

    "그대는 현덕을 따르는데 무슨 까닭으로 여기 왔소?"

    "유사군께서 천하영웅이십니다. 비록 병력은 미미하고 따르는 장수는 적더라도 그 뜻은 종묘사직을 바로잡는 데 있습니다. 여남의 유벽과 공도가 평소 친하지 않았는데도 죽음으로써 그에게 보답하였습니다. 명공과 사군 모두 한실의 후예이십니다. 지금 사군께서 방금 패하시고 강동의 손중모를 찾아가려 하였습니다. 제가 '친지를 버리고 남을 찾아가는 건 옳지 않습니다. 형주의 유장군께서 어진 이를 예 우하고 몸을 낮춰 선비들을 사귀어 선비들이 물이 동쪽으로 흐르듯 그에게 의지하고 있는데 하물며 같은 종친을 어찌 대우하지 않겠습 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군께서 특별히 저를 먼저 보내 인사드리오니 명공께서 명을 내려주십시오."

    유표가 크게 기뻐한다.

    "현덕은 내 아우 같소. 오래전부터 만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소. 지금 왕림한다니 참으로 행심(매우 행운)이오."

    채모가 모함한다.

    "옳지 않습니다. 유비는 먼저 여포를 따르다 그뒤 조조를 따랐고 요새 원소에게 갔지만 모두 끝까지 있지 않았으니 그 사람됨을 알고도 남습니다. 지금 그를 받아들이면 조조가 우리에게 병력을 동원해 부질없이 전쟁이 벌어집니다. 손건의 머리를 베어 조조에게 바쳐 조 조가 주공을 무겁게 대우하게 만드는 것만 못합니다."

    손건이 정색해 말한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유사군께서 충심으로 나라를 위하시니 조조, 원소, 여포 같은 무리가 아니다. 예전에 그들과 상 종한 건 부득이해서다. 지금 유장군을 한나라 묘예(후손)라 듣고 같은 종친이라 여기는 마음이 절실해 천릿길을 찾아왔다. 너는 어찌 이다지도 어진이를 모함하고 시기하냐!"

    유표가 듣고 채모를 꾸짖는다.

    "내 뜻은 정해졌으니 여러말 하지마라."

    채모가 부끄럽고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나간다. 유표가 손건더러 먼저 가서 현덕에게 알리게 하는 한편, 스스로 성곽 밖으로 30리를 나 가 영접한다. 현덕이 유표를 만나 예절을 갖춰 몹시 공손하다. 유표 역시 대우가 몹시 두텁다. 현덕이 관, 장 등을 이끌어 유표에게 인사 시킨다. 유표가 현덕과 함께 형주로 들어가 집을 내어줘 살게 한다.

    한편, 현덕이 형주로 가서 유표에게 의탁한 것을 탐지한 조조가 병력을 이끌어 공격하려 한다. 정욱이 말한다.

    "원소를 아직 없애지 못한 채 서둘러 형양을 치다가 만약 원소가 북쪽에서 군을 일으키면 승부를 알 수 없게 됩니다. 허도로 철군 해 병력을 기르고 갈고닦아 내년 봄날, 병력을 이끌어 먼저 원소를 격파한 뒤 형양을 취하는 것만 못합니다. 남북에서 승리를 한번에 거둘 수 있습니다."

    조조가 그렇게 여겨 허도로 철군한다. 건안 8년 봄, 음력 정월, 조조가 다시 출병을 상의한다. 먼저 하후돈과 만총을 보내 여남을 수비해 유표를 막게 한다. 조인과 순욱을 남겨 허도를 지키게 한다. 조조 스스로 대군을 통솔해 관도로 가서 주둔한다.

    한편, 원소가 지난해 감모(감기증상), 토혈 등의 증후에서 이제 조금씩 낫자 상의해서 허도를 공격하려 한다. 심배가 간언한다.

    "지난해 관도와 창정에서 패해 아직 군심 軍心이 부진하니 지금은 마땅히 해자를 깊게 파고 보루를 높여 군대와 백성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의논하고 있는데 급보가 날아든다. 조조가 관도로 진군해 익주를 치러 온다는 것이다. 원소가 말한다.

    "만약 적병을 성밑에 오도록 기다려 적병이 황하 강가에 다다른 뒤 막으려 한다면, 일이 이미 늦게 될 것이오. 내 몸소 대군을 거느려 나 가서 맞이해야겠소."

    원상이 말한다.

    "부친께서 병든 몸이 아직 낫지 않으셔 멀리 출정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병력을 거느려 먼저 가서 적병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원소가 허락해 사람을 보내 청주에서 원담, 유주에서 원희, 병주에서 고간을 취해 4로에서 동시에 조조를 격파하려 한다.

    방금 여남에서 전쟁의 북소리 그치자 다시 기북에서 싸움의 북소리 울리구나

    승부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