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34회 채부인이 병풍 뒤에서 밀담을 엿듣고 유황숙이 말을 타고 단계를 뛰어넘는다

    한편 금빛이 나던 곳에서 동작 銅雀 (구리로 만든 참새) 하나를 파내어 바치자 조조 曹操가 순유 荀攸에게 묻는다.

    "이것은 무슨 징조요?"

    "예전에 순 舜 임금 모친의 꿈에서 옥작 玉雀 (옥으로 만든 참새)이 품을 파고 들었습니다. 그러고서 순 임금을 낳았습니다. 지금 동작을 얻은 것도 길조입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해 사람들에게, 높은 대를 지어 그것을 경축하라 명한다. 이에 즉시 땅을 파헤치고 나무를 잘라, 기와를 굽고 벽돌을 연 마해 동작대 銅雀臺를 장하 漳河 위에 건축한다. 대략 1년이 걸려 공사를 마친다. 어린 아들 조식 曹植이 말씀을 올린다.

    "층대 層臺(여러 층으로 높은 대)를 만들 것이면, 반드시 3개를 만드는 게 좋습니다. 가운데 높은 1대를 '동작'이라 이름짓고, 왼쪽 1대는 옥룡 玉龍, 오른쪽 1대는 금봉 金鳳이라 이름짓는 겁니다. 거기다 비교(높은 다리)를 두 개 놓아 허공을 가로지르면 장관이겠습니다."

    "내 아들 말이 몹시 훌륭하구나. 뒷날 대를 완성하면 내 노년을 즐길 만하겠다."

    원래, 조조에게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오로지 조식이 성품이 민혜(민첩하고 총명)하고 문장이 훌륭해 조조가 평소 가장 사랑했다.

    이에 조식과 조비 曹丕를 업군 鄴郡에 남겨 동작대를 짓게 하고, 장연 張燕에게, 북새(북쪽 변경)를 지키라 한다. 조조가 원소 袁紹의 병 력을 거둬 모두 5, 6십만이다. 군을 거느려 허도 許都로 돌아가 공신들을 크게 봉한다. 또한 표를 올려 곽가 郭嘉를 정후로 추증하고 그 아들 곽혁 郭奕을 조조 부중에서 기른다. 다시 모사들을 모아 상의해 남쪽으로 유표 劉表를 정벌하려 한다. 순욱 荀彧이 말한다.

    "대군이 지금 북쪽을 정벌하고 돌아와 아직 다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반년쯤 기다려 정예병력을 양성하면 유표, 손권 孫權을 한차례 북을 쳐(한번 싸움으로, 한꺼번에) 잡을 수 있습니다."

    조조가 그 말을 따라 병력을 나눠 둔전하고 출전을 대비한다.

    한편 현덕 玄德이 형주 荊州를 찾아온 뒤 유표가 그를 몹시 후하게 대우한다. 하루는, 둘이 음주하는데, 항장(귀순한 장수) 장무 張武와 진손 陳孫이 강하 江夏에서 인민을 노략하고 함께 반란을 꾀한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유표가 놀란다.

    "두 도적놈이 다시 반란해 그 재앙이 적지 않겠소!"

    현덕이 말한다.

    "형장께서 우려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가서 그들을 토벌하기를 청합니다."

    유표가 크게 기뻐해 즉시 3만 군을 뽑아 그에게 줘 보낸다. 그가 명을 받아 즉시 출발해 하루가 못 돼 강하에 다다른다. 장무와 진손이 병력을 이끌어 맞이한다. 현덕이 관, 장, 조운 趙雲과 더불어 문기 門旗 아래 출마한다. 멀리 바라보니 장무가 타고 있는 말이 극히 훌륭 하다. 현덕이 말한다.

    "저건 틀림없이 천리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운이 창을 꼬나잡아 튀어나가 적진으로 돌격한다. 장무가 말을 내달려 맞서지만 3합이 못 돼 조운이 한 창에 찔 러 낙마시킨다. 이어서 그가 장무의 말을 잡아 끌고 돌아온다. 진손이 보더니 그 말을 빼앗으러 뒤쫓는다. 장비가 고함을 질러 장팔사모를 움켜쥐어 곧장 튀어나가 진손을 찔러 죽인다. 그 무리가 모조리 무너져 흩어진다. 현덕이 잔당을 초안(항복을 권하고 달램)하고 강하의 여러 고을을 되찾아 안정시킨 뒤 군을 거느려 돌아간다. 유표가 성밖을 나와 영접해 성에 들어가 연회를 베풀어 그 공적을 치 하한다. 술이 거나해지자 유표가 말한다.

    "내 아우가 이렇게 훌륭하니 이곳 형주가 의지할 것이 있는 것이오. 다만 걱정은, 남월이 불시에 쳐들어오는 것인데 장로와 손권 또한 우려할 만하오."

    "제게 세 장수가 있는데 맡겨볼 만합니다. 장비에게, 남월을 돌아보게 하고, 운장에게 자성을 굳게 지켜 장로를 누르게 하고 , 조운에게 삼강을 지켜 손권을 막게 하십시오. 걱정할 게 무엇이겠습니까?"

    유표가 기뻐해 그 말을 따르려 한다. 채모가 누나 채부인에게 고한다.

    "유비가 세 장수를 바깥으로 파견하고 자신은 형주에 머무니 뒷날 틀림없이 재앙이 될 것입니다."

    채부인이 그날밤 유표에게 말한다.

    "제가 듣자니 형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유비와 왕래한답니다. 대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그를 성안에 머물게 하는 것은 이롭지 않으니 그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만 못합니다."

    "현덕은 어진 사람이오."

    "다만 그 사람이 당신 마음 같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유표가 나지막히 신음하며 대답하지 않는다. 그가 다음날 성을 나와 현덕이 탄 말이 극히 훌륭한 것을 본다. 그에게 물어 장무가 타던 말 인 것을 알고 유표가 칭찬을 그치지 않는다. 현덕이 그 말을 유표에게 준다. 그가 크게 기뻐해 그 말을 타 성안으로 돌아간다. 채월이 보고 묻자 그가 말한다.

    "이 말은 현덕이 준 것이오."

    "예전에 돌아가신 형, 채량이 상마 相馬(말이 뛰어난지 살펴봄)를 아주 잘했습니다. 저 또한 제법 합니다. 이 말은 눈밑에 눈물구멍 이 있고 이마 둘레에 하얀 점이 있어 '노 盧'라고 부릅니다. 이런 말을 타면 주인을 해칩니다. 장무가 이 말 탓에 죽었습니다. 주공께서 이 말을 타선 안 됩니다."

    유표가 그 말을 받아들인다. 다음날 현덕을 불러 주연을 베풀어 이야기한다.

    "어제 좋은 말을 줘 깊이 감사하오. 그러나 아우께서 언제 싸우러 나갈지 모르니, 그 말을 타시는 게 좋겠소. 내 마땅히 돌려드리겠소."

    현덕이 일어나 사례한다. 유표가 다시 말한다.

    "아우께서 여기 오래 머물다가 무사 武事(군사)를 폐할까 두렵소. 양양에 속한 신야현은 전량 錢糧(토지에서 나오는 세금)이 제법 되오. 아우께서 휘하 군마들을 이끌어 그 고을에 주둔하는 것이 어떻겠소?"

    현덕이 응낙한다. 다음날 유표와 헤어져 휘하 군마들을 이끌어 곧장 신야로 간다. 성문을 나서는데 어떤 사람이 말 앞에서 두손모아 인사한다.

    "공께서 지금 그 말을 타선 안 됩니다."

    현덕이 바라보니 바로 형주의 막빈인 이적 '기백'이고 산양 출신의 사람이다. 현덕이 놀라 말에서 내려 묻자 그가 말한다.

    "어제 듣자니 괴이도(괴월)가 유형주께 '이 말은 노 盧라 이름하는데, 주인을 해칩니다' 라고 일러 공께 돌려준 것입 니다. 공께서 어찌 다시 타시겠습니까?"

    "선생께서 저를 이리 아껴주시니 매우 감사합니다. 그러나 무릇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려 어찌 말 따위가 해치겠습니까!"

    이적이 그러한 고견에 깊이 탄복해 이로부터 늘 현덕과 왕래한다.

    현덕이 신야에 오자 병사들과 백성들 모두 기뻐하고 정치가 아주 새로워진다. 건안 12년 봄, 감부인이 유선을 낳는다. 그날밤 백학 한쌍이 관아의 옥상에 날아와 마흔 번이 넘게 크게 울고 서쪽으로 날아간다. 분만에 임할 때 특이한 향기가 방안 가득했다. 감부인이 일찍이 꿈에서 북두를 바라보다가 삼켰다고 아명을 아두 阿斗라 한다.

    이때가 조조가 한창 병력을 이끌고 북쪽을 정벌할 때다. 이에 현덕이 형주로 가서 유표를 설득한다.

    "지금 조조가 북쪽을 정벌해 허창 許昌이 공허합니다. 형양의 사람들을 이끌어 이틈에 그곳을 습격하면 대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내가 앉아서 형주를 점거한 것도 충분한데 어찌 따로 도모하겠소?"

    현덕이 침묵한다. 유표가 후당으로 불러 음주한다. 술이 거나해지자 유표가 갑자기 길게 탄식한다. 현덕이 묻는다.

    "형장께서 어째서 장탄식하십니까?"

    "내게 고민이 있는데 아직 내놓고 말하기 어렵소."

    현덕이 다시 물으려는데 채부인이 병풍 뒤로 출입한다. 이에 유표가 고개를 떨구고 침묵한다.

    잠시 뒤 자리를 마치고 현덕이 신야로 돌아간다. 이해 겨울에 이르러, 현덕이 조조가 유성에서 돌아옴을 전해듣고 앞서 유표가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은 걸 몹시 한탄한다. 그런데 어느날, 유표가 사자를 보내어 현덕을 형주로 초대한다. 현덕이 사자를 따라가자 유표가 맞이하여 인사를 마치고 후당으로 불러들여 음주한다. 그가 현덕에게 말한다.

    "요새 듣자니 조조가 허도로 회군해 세력이 나날이 강성해지니 결국은 형양을 삼키려 하겠소. 앞서 아우의 말씀을 듣지 않아 호기를 잃은 것을 뉘우치오!"

    "지금 천하가 분열돼 무기를 날마다 드는데 어찌 기회가 없겠습니까? 뒷날 기회를 놓치지만 않는다면야 아직 안타까워할 것은 없습니다."

    "아우 말씀이 심히 옳소."

    서로 마주보고 음주한다.

    술이 거나해지자 그가 갑자기 비오듯 눈물흘린다. 현덕이 그 까닭을 묻자 그가 말한다.

    "내게 고민이 있어 예전에 아우께 털어놓으려다 기회를 얻지 못했소."

    "형장께 무슨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제가 도와드릴 수 있다면 죽을지언정 사양치 않겠습니다."

    "전처 진씨가 낳은 맏아들 기는 사람이 비록 어질지만 유약해 대사를 세우기 부족하오. 후처 채씨가 낳은 어린 아들 종은 제법 총명하오. 내 맏아들을 폐하고 어린 아들을 세우려 하나 예법에 어긋날까 두렵소. 맏아들을 세우고 싶어도, 어쩌다보니 채씨 집안에서 군사의 일을 장악해 뒷날 난리가 날 것이오. 이래서 머뭇거려 결정치 못하오."

    "예로부터 맏아들을 폐하고 어린 아들을 세움은 난리를 일으키는 길입니다. 채씨의 권력이 큰 게 두려우면 서서히 그것을 줄이면 됩니다. 사랑에 빠져 어린 아들을 세워선 안 됩니다."

    유표가 말이 없다. 원래, 채부인이 평소 현덕을 의심해 현덕이 유표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엿들었다. 이때도 병풍 뒤에서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몹시 원망한다.

    현덕이 스스로 실언을 깨달아 일어나 측간으로 간다. 거기서 자기의 넓적다리가 다시 살찐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비오듯 눈물흘린다. 잠시 뒤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유표가 그 눈물흘린 기색을 보고 이상히 여겨 묻자 현덕이 길게 탄식해 말한다.

    "제가 예전에 늘 말안장을 떠날 일이 없어 넓적다리 살이 찔 틈이 없었습니다. 이제 오래 말을 몰지 않은 탓에 넓적다리에 살이 쪘습니다. 세월은 쏜살같아 곧 늙을텐데 공업을 세우지 못해 슬플 뿐입니다!"

    "내 듣자니 아우께서 허창에 있을 때 조조와 더불어 푸른 매실과 데운 술을 함께하며 영웅을 논했소. 아우께서 당세의 명사들을 모조리 거론해도 조조가 수긍하지 않고 '천하영웅은 오로지 사군과 저뿐이오'라 했소. 조조의 권력으로도 오히려 그대보다 앞에 놓지 못하였는데 어찌 공업을 세우지 못할까 걱정하시오?"

    현덕이 술기운에 실언한다.

    "제게 기본만 있다면 천하의 녹록 碌碌(평범)한 인간들이야 참으로 걱정거리도 못 되고 말고요."

    유표가 듣고 침묵한다. 현덕이 실언을 깨달아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일어나 관사로 돌아가서 쉰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현덕을 기렸다.

    조맹덕이 손가락을 구부려가며 머릿수를 세워도 천하영웅은 오로지 유사군뿐.
    넓적다리가 다시 살쪄도 오히려 한탄하니 어찌 천하를 삼분하라 하지 않으리

    한편, 유표가 현덕의 말을 듣고서 겉으로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 불쾌하여 현덕과 작별하고 내택으로 들어간다. 채부인이 말한다.

    "제가 병풍 뒤에 있다가 유비가 말하는 것을 듣자니 함부로 남을 넘보네요. 형주를 집어삼킬 뜻을 알만하네요 . 지금 없애지 않으면 후환이 되겠네요."

    유표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저을 뿐이다. 이에 채씨가 몰래 채모를 불러들여 상의하니 채모가 말한다.

    "먼저 관사에서 유비를 죽여버린 뒤 주공께 알리시죠."

    채씨가 그말을 받아들인다. 채모가 그날밤 군을 점고한다.

    한편, 현덕이 관사에서 촛불을 밝히고 앉아서 3경이 지나자 잠자리에 들려고 한다. 그런데 누군가 문을 두드려 들어오니 바로 이적이다. 알보고니 그가 채모가 현덕을 죽이려는 것을 탐지하여 한밤중에 알리러 온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러한 음모를 현덕에게 알리며 어서 떠나라 재촉한다. 현덕이 말한다.

    "유경승께 작별인사 없이 어떻게 떠나겠소?"

    "인사를 챙기다가 채모에게 해를 입습니다."

    이에 현덕이 이적과 작별하고 서둘러 종자들을 불러 일제히 말에 오른다. 날이 발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날밤 신야로 달린다. 채모가 병사들을 거느려 관사에 다다르지만 현덕은 멀리 사라졌진다. 채모가 안타깝고 한스럽기 그지없어 시 한수를 벽에 적고 유표를 만나 말한다.

    "유비가 배반할 뜻을 가지고 벽에다가 반역의 시를 적어놓고 인사도 없이 가버렸습니다."

    유표가 믿지 않아 몸소 관사로 가서 살피니 과연 싯귀 4구가 있다. 시는 이렇다.

    몇년간 헛되이 빈곤에 젖어 쓸데없이 옛 산천을 마주했네
    용이 어찌 못 속에 살쏘냐! 번개를 타고 하늘을 오르련다!

    유표가 시를 보고 크게 노해 검을 뽑아 말한다.

    "이 의리없는 놈을 죽이고 말테다!"

    몇발 걷다 갑자기 깨닫는다.

    '내가 현덕과 허다한 시간을 보냈지만 여태 그가 시를 짓는 걸 못 봤다. 이것은 필시 다른 사람이 이간하는 계략이구나.'

    관사로 다시 걸어들어가 칼로 그 싯구를 긁어내더니 칼을 버리고 말을 탄다. 채모가 청한다.

    "병사들을 출동시킨 김에 신야로 달려가 유비를 잡아야지요."

    "아직 그럴 수 없으니 서서히 도모하겠소."

    유표가 주저하자 채모가 채부인과 몰래 상의한다. 관리들을 양양에 집결시켜 거기서 도모하자는 것이다. 다음날 채모가 유포에게 여쭌다.

    "요 몇년 풍년이라서 관리들을 양양에 불러모아 위무하는 마음을 보이고자 합니다. 주공께 같이 가시기를 청합니다."

    "내 요새 기질 氣疾(호흡기 질병)을 앓아 정말 못 가겠소. 두 아들에게 손님들을 맞이하라 명하겠소."

    "공자들께서 어려서 예절에 실수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신야로 찾아가 현덕에게 손님들을 맞이해달라 청하시오."

    채모가 마음속으로 계략이 적중했다고 기뻐하며 사람을 보내 현덕에게 양양으로 와달라 청한다.

    한편, 현덕이 신야로 돌아왔지만 스스로 실언으로 재앙을 부른 걸 깨달아 아직 사람들에게 그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자가 찾아와 그에게 양양으로 갈 것을 청한다. 손건이 말한다.

    "어제 보니 주공께서 황급히 돌아오시는데 마음이 몹시 언짢아 보였습니다. 제가 헤아려보니 형주에서 필시 사고가 있었습니다. 지금 갑 자기 모임에 오라 청하다니 함부로 가셔선 안 됩니다."

    현덕이 이제야 그전 일을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운장이 말한다.

    "형 스스로 실언했을까 걱정하는 것이오. 게다가 유 형주께서 성내어 꾸짖는 뜻도 없었소. 바깥 사람의 말이란 함부로 믿을 건 못 되오. 양양이 여기서 멀지 않은데 가지 않으면 형주에서 도리어 의심을 하겠소."

    "운장이 말하는 게 말이 맞구나."

    장비가 말한다.

    "술자리치고 좋은 술자리 없고, 모임치고 좋은 모임 없수. 가지 않는 게 낫겠수."

    조운이 말한다.

    "제가 마보군 3백을 거느리고 함께 가서 주공을 무사히 지키겠습니다."

    "그렇다면 심히 좋겠소."

    조운과 더불어 그날 바로 양양으로 간다. 채모가 성곽을 나와 영접해 심히 공손하고 삼간다. 이어서 유기 劉琦, 유종 劉琮 두 아들이 문무 관료들을 줄줄이 이끌어 나와 맞이한다. 현덕이 두 아들 모두 있는 걸 보고 더욱 의심하지 않는다. 이날 현덕에게 관사에서 잠시 쉴 것을 청한다. 조운이 3백 군을 이끌어 빙 둘러싸 보호한다. 조운이 갑옷을 갖춰 검을 차고 유비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유기가 현덕에게 고한다.

    "부친께서 기질을 앓아 움직이지 못하십니다. 일부러 숙부께 손님들을 맞고 곳곳을 다스리는 관리들을 위무할 것을 청하였습니다."

    "내 본래 감히 이런 일을 맡을 수 없으나 형께서 명령하시니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네."

    다음날 9군 42주의 관원들이 모두 도착해 있다. 채모가 미리 괴월 蒯越을 불러 토의한다.

    "유비는 세상의 효웅이라 여기 오래 머물게 하면 뒷날 반드시 해롭소. 오늘 제거해야 하오."

    "사민 士民들의 기대를 저버릴까 두렵소."

    "내 이미 은밀히 유 형주의 말씀을 받들어 여기 왔소."

    "그렇다면 미리 준비해야겠소."

    "동문 밖 현산 峴山 큰길에 벌써 내 아우 채화 蔡和에게, 병력을 이끌고 지키고 있으라 시켰소. 남문 밖에도 이미 채중 蔡中에게, 지키라 시켰소. 북문 밖에도 이미 채훈 蔡勳에게, 지키라 시켰소. 서문은 지킬 필요가 없는 게, 단계 檀溪가 가로막아 비록 수만 명이라도 쉽게 지날 수 없소."

    "내가 보니 조운이 현덕 곁을 떠나지 않아 손쓰기 어려울까 걱정이오."

    "내가 5백 군을 성안에 매복해 준비했소."

    "문빙 文聘과 왕위 王威 두 사람에게 따라 외청 外廳에 술자리를 마련해 무장들을 대접하시오. 먼저 조운을 거기에 불러 앉힌 뒤 거사해 야 하오."

    채모가 그 말을 따른다. 그날 소와 말을 도살해 크게 연회를 베푼다. 현덕이 타고 온 노마 盧馬를 주아 州衙(고을의 관청 건물)에 이르러 후당으로 끌고가 묶어놓는다. 관리들이 모두 당 堂 안으로 들어온다. 현덕이 주인 자리에 앉고 두 공자 公子가 양쪽에 나눠 앉는다. 나머 지도 차례대로 앉는다. 조운이 검을 차고 현덕 곁에 선다. 문빙과 왕위가 들어와 그에게 따로 술자리에 갈 것을 청한다. 사양하고 가지 않 자 현덕이 그에게 그리 가라 명한다. 할 수 없이 명령에 응해 나간다. 채모가 바깥에 조치한 게 철통 같아 현덕이 이끌고 온 3백 병사 모두 관사로 돌아간다. 이제 술이 거나해지기를 기다려 신호가 떨어지면 손을 쓸 것이다.

    술이 세차례 돌자 이적이 일어나 술잔을 잡고 현덕에게 다가와 눈짓을 하며 나지막히 말한다.

    "뒷간으로 가시지요."

    현덕이 알아차려 바로 일어나 뒷간으로 간다. 이적이 술잔을 비우고 뒷뜰로 서둘러 들어가 현덕을 만나 귓속말로 알린다.

    "채모가 계략을 꾸며 군 君을 해치려 합니다. 성밖 동, 남, 북 세곳은 모두 군마들이 지킵니다. 오로지 서문으로 피할 수 있으니 어서 달아 나십시오!"

    현덕이 크게 놀라 노마를 묶은 끈을 급히 풀어 뒷뜰 문을 열고 끌고 나가 번개같이 말에 올라 종자들을 찾아보지 않고 홀로 말달려 서문 쪽으로 달아난다. 문지기가 묻지만 현덕이 답하지 않고 채찍을 가해 나간다. 문지기가 막지 못해 채모에게 급보한다. 채모가 바로 말에 올라 5백 군을 이끌어 뒤쫓는다.

    한편, 현덕이 서문을 튀어나가 몇리 못 가 앞에 큰 냇물이 갈 길을 가로막는다. 이곳 단계 檀溪는 너비가 몇 길이고 양강 襄江으로 흐르는 데 물살이 몹시 거세다. 현덕이 냇물가에 이르러 넘지 못할 것 같아 말고삐를 잡아 되돌아가나 저멀리 성 서쪽으로 먼지구름이 크게 이 는 게 추격병이 닥치겠다. 현덕이 말한다.

    "이번에 죽겠구나!"

    말을 돌려 냇물가로 되돌아간다. 머리를 돌려 바라보니 추격병이 이미 가깝다. 현덕이 몹시 황급해 냇물로 말을 내달린다. 몇발 못 가 앞 말발굽이 갑자기 물에 푹 빠져 옷이 젖는다. 현덕이 채찍을 가해 크게 외친다.

    "적로 的盧(불길한 말)야! 적로야! 오늘 나를 해칠테냐!"

    말을 마치자 노마가 갑자기 물속에서 치솟아오르는데 한번에 세 길을 뛰어 날아가 서쪽 물가에 다다른다.

    현덕이 마치 구름과 안개를 뚫고 솟아오르는 듯하다. 뒷날 소학사 蘇學士 (소동파)가 고풍 古風 한편을 지어 현덕이 말을 타고 단계를 뛰어넘은 일을 읊었다. 시는 이렇다.

    늙어 꽃이 지던 봄날 저녁, 부임하러 가다 단계 檀溪 를 지나게 되었지
    말을 세워 멀리 바라보며 홀로 떠도니 눈앞에 흩날리는 붉은 낙엽들!
    함양 咸陽에서 화덕 火德이 쇠해 용과 호랑이 맞붙어 싸운 일 생각나네
    양양 襄陽에서 왕손들 모여 마시는데 그 자리 현덕 玄德 목숨 위태로워
    살길을 찾아 홀로 서문 西門으로 달아나나 뒤쫓는 병사들 따라붙겠네
    물보라 자욱하게 출렁이는 단계 檀溪! 서둘러 고함쳐 싸움말 내달린다
    말발굽 닿자 파란 유리처럼 깨지는 물살! 바람을 가르는 쇠채찍 소리!
    귓가에 들리는 1천 기병 뒤쫓는 소리! 물결 가운데 한 쌍의 용이 날구나
    서천 西川을 홀로 제패할 참 영주 英主, 그가 탄 용구 龍駒, 서로 만났네
    단계 냇물 동쪽으로 흐르건만 용구와 영주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흐르는 물 보고 거듭 탄식하고 마음은 고달픈데 석양은 쓸쓸히 빈 산을 비추네
    세 나라로 나눠 솥발처럼 맞선 것 온통 꿈 같고 그 발자취만 덧없이 남았구나!

    현덕이 냇물 서쪽으로 뛰어넘어 고개 돌려 동쪽 물가를 바라보니 채모가 벌써 병사들을 이끌어 냇물가에 다다라 크게 외친다.

    "사군께서 무슨 까닭으로 술자리를 벗어나 가십니까?"

    "내 너와 원수진 일이 없는 무슨 까닭으로 해치려 하냐?"

    "제가 그런 마음을 품겠습니까? 사군께서 남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현덕이 보니 채모 부하장수가 활을 집어들어 화살을 매긴다. 이에 서둘러 말머리를 탁! 돌려 서쪽으로 달아나버린다. 채모가 좌우에게 말한다.

    "이것은 정말 귀신이 돕는구나!"

    이제 군을 거둬 성으로 돌아가려는데, 서문 안에서 조운 趙雲이 3백 군을 거느려 뒤쫓아온다.

    뛰어오른 용구가 주공을 구했는데 뒤쫓아 온 호랑이 같은 장수 복수를 하려 하네.

    채모 목숨이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