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54회: 오국태가 대불사에서 사위를 만나고 유황숙이 신방에서 예쁜 신부를 맞이한다

    한편 공명은 노숙이 온 것을 듣고 현덕과 함께 출성해 영접하고 공청으로 데려가 인사를 마친다. 노숙이 말한다.

    "주공께서 조카 분의 별세를 들으시고 예물을 갖춰 저를 보내 치제 致祭(아랫사람을 제사지냄)하게 하셨습니다. 주 도독도 유황숙과 제 갈 선생께 뜻을 전해달라 거듭 부탁했습니다."

    현덕과 공명이 일어나 사례하고 예물을 거두고 술을 내어 대접한다.

    노숙이 말한다.

    "지난날 황숙께서 말씀하시기를, 공자께서 돌아가시면 즉시 형주를 돌려주겠다 하셨습니다. 이제 공자께서 세상을 뜨셨으니 반드시 돌 려주셔야겠는데 언제 돌려주실지 모르겠습니다."

    현덕이 말한다.

    "공께서 우선 한잔 드시지요. 상의 드릴 일이 있습니다."

    노숙이 억지로 몇잔 마시고 다시 말을 꺼내 묻자 현덕이 회답하지 못하는데 공명이 낯빛을 고쳐 말한다.

    "자경께서 아무래도 이치를 모르시나 보오! 사람들에게 꼭 물어야겠소? 우리 고조황제께서 뱀을 베고 의병을 일으켜 제업을 세운 이래 지금에 이르렀소. 불행히 간웅들이 나란히 일어나 각각 한곳씩 차지하나 천도호환 天道好還(하늘의 도리는 돌고돌아 결국 업보를 치름) 이라 정통으로 복귀하게 되오. 우리 주인께서는 곧 중산정왕의 후예이자 효경황제의 현손이시며 지금 황상의 숙부이시거늘 어찌 분모열 토 分茅裂土(천자가 제후를 봉할 때 그 방면의 흙을 띠풀에 싸주던 것)하지 못하시겠소? 하물며 유경승은 바로 우리 주의 형이시니 동 생이 형의 업을 잇는 게 어찌 순리가 아니겠소? 그대 주인은 전당의 작은 관리의 아들이고 원래 조정에 아무 공덕이 없었소. 이제 세 력에 기대어 여섯 군 열여덟 주를 점거하고도 탐심이 모자라 한실의 땅을 병탄하려 하오. 유씨 천하에서 우리 주의 성이 유씨지만 거꾸 로 아무 지분이 없고 손씨는 오히려 억지로 다퉈 가지려 하오. 게다가 적벽싸움에서 우리 주께서 많은 수고를 하시고 장수들 모두 명령을 수행하였거늘 어찌 오로지 동오의 힘이겠소? 만약 내가 동남풍을 부르지 않았다면 주랑이 어찌 작은 계책이라도 써봤겠소? 강남이 일단 파탄이 났다면, 여러분의 식구라 하더라도 역시 보전할 수 없었소. 얼마 전 주인께서 그 즉시 응답하지 않은 것은, 자경을 고명한 선 비라 여겨, 구구이 말씀하시지 않은 것이오. 공께서 살피지 못하심이 어찌 이렇게 심하시오!"

    한차례 이야기하자, 노자경이 입을 다물고 아무 말이 없다가 한참 지나 말한다.

    "공명의 말씀, 이치에 맞지 않을까 걱정이오. 아무래도 이 노숙의 신상이 몹시 불편하겠소."

    "어디가 불편하겠소?"

    "지난날 황숙께서 당양에서 수난을 당하실 때 제가 공명을 모시고 강을 건너 우리 주공을 뵈었소. 그 뒤 주공근이 출병해 형주를 취하 러 하는 것을 막은 것 역시 이 노숙이오. 공자께서 세상을 떠서 형주를 돌려주기를 기다리라 지극히 설득한 사람 역시 이 노숙이오. 그런 데 이제 와서 지난 말씀에 응하지 않으니, 어떻게 답변할지 저 노숙에게 가르쳐주겠소? 우리 주와 주공근이 필시 죄를 물을 것인데, 제가 죽는 것은 한스럽지 않으나 다만 동오를 성나게 만들어 창칼을 앞세워 쳐들어 온다면, 황숙 역시 형주를 편안히 앉아 지킬 수는 없고, 공 연히 비웃음거리가 될 따름이오."

    "조조가 백만의 무리를 통솔하여, 천자를 명분 삼아 출동했지만, 나는마음에 두지 않았소! 어찌 한낱 어린 아이 같은 주랑을 두려워 하겠 소! 만약 선생 체면이 서지 않을까 걱정이면, 내가 주인께 권해 문서를 써서, 잠시 형주를 빌리는 게 본심이라 하고, 우리 주께서 따로 성지들을 얻는 시기에, 바로 동오에 돌려주겠다 쓰겠소. 이런 방법이 어떻겠소?"

    "공명은 어디를 빼앗기를 기다려, 우리 동오에게 돌려주겠다 하시오?"

    "중원은 서둘러 도모할 수는 없소. 서천 西川은 유장 劉璋이 암약 闇弱 (유약하고 사리분별을 못함)하니, 우리 주께서 장차 도모할 것이 오. 만약 서천을 얻는다면, 그때 곧 돌려주겠소."

    노숙이 어쩔 도리가 없어 받아들일 뿐이다. 현덕이 친히 문서를 한 장 써서, 서명을 한다. 보증인으로 제갈공명도 서명한다. 공명이 말한 다.

    "저는 황숙의 사람이니, 자가를 위해 보증선 것 아니겠소? 자경 선생도 서명을 한다면, 돌아가 오후를 만나도 보기 좋을 것이오."

    "황숙은 곧 인의지인 仁義之人임을 제가 아는데, 틀림없이 신의를 저버리는 일은 없겠지요."

    곧 서명을 하고, 문서를 받아든다. 연회를 마치고 작별 인사를 한다. 현덕과 공명이 배 타는 곳까지 배웅한다. 공명이 부탁한다.

    "자경께서 돌아가 오후를 만나시거든, 좋은 말로 우리 뜻을 설명하는 것을, 부디 잊지 마시오. 만약 우리 문서를 비준하지 않으면, 내 체 면 차리지 않고, 연달아 81주를 모조리 빼앗겠소. 지금 양가 兩家가 화목해야, 조조 도적이 웃지 못할 것이오."

    노숙이 작별해 배를 타고 돌아가, 먼저 시상군 柴桑郡에 도착해 주유를 만난다. 주유가 묻는다.

    "자경께서 형주를 돌려받는 것은 어찌됐소?"

    "문서를 이렇게 받아왔소."

    문서를 바치자, 주유가 발을 구르며 말한다.

    "자경께서 제갈량의 꾀에 빠졌소! 명분은 빌리는 것이나, 실제는 가로채는 것이오. 그가 서천을 취하면 바로 돌려주겠다 말하지만, 언제 서천을 취할지 알겠소? 10년 동안 서천을 얻지 못하면, 10년간 안 돌려주겠다? 이 따위 문서가 무슨 소용이라고, 그대는 도리어 그들과 함께 보증을 섰소! 그들이 돌려주지 않으면, 결국 족하께 화가 미칠 것이오. 만약 주공께서 죄를 물으면, 어떻게 하겠소?"

    노숙이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말한다.

    "현덕이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리라 생각하오."

    "자경은 성실한 사람이지만, 유비는 효웅 梟雄 (흉악한 호걸. 괴수)이고 공명은 간교하니, 그들이 선생 마음 같지 않을까 두렵소."

    "그렇다면, 어째야겠소?"

    "자경은 나의 은인이요 예전에 곳간을 열어 도와주신 것을 기억하는데, 어찌 구해드리지 않겠소? 마음 놓고 며칠 기다리시오. 강북에서 세작(간첩)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따로 처리하겠소."

    며칠 뒤, 세작이 돌아와 보고한다.

    "형주 성중에 깃발을 내걸고 주호사 做好事(위령제)를 하며, 성 밖에 새 무덤을 만들고, 병사들이 상복을 걸쳤습니다."

    주유가 크게 놀라 묻는다.

    "누가 죽었냐?"

    "유현덕이 감부인 甘夫人을 잃어, 날을 맞춰 장례를 치뤘습니다."

    주유가 노숙에게 말한다.

    "내 계책이 이뤄지게 됐소. 유비의 손을 꽁꽁 묶어 형주를 되찾을 것이오!"

    "무슨 계책이오?"

    "유비가 상처 喪했으니, 반드시 새 장가를 들겠지요. 주공께 누이동생이 한분 계신데, 극히 굳세고 용맹하며, 거느리는 여종이 수백 명이 요 늘 칼을 차고 다니고, 방안에도 무기가 가득하니, 남자도 따라하지 못할 지경이오. 내 지금 주공께 글을 올려, 사람을 형주로 보내 중 매를 서게 하여, 유비에게 말해 처가를 찾아오게 하는 것이오. 남서 南徐까지 오게 꾀어내면 처자식이 곧 올가미가 되어, 옥중에 갇힌 죄수 꼴이니, 사람을 보내 형주를 빼앗을 때 유비와 맞바꾸는 것이오. 그가 형주 성지들을 넘겨줄 것을 대비하여, 내게 따로 방책이 있소 . 자경은 마음을 놓으시오. 틀림없이 무사하리다."

    노숙이 절을 올려 사례한다. 주유가 서찰을 쓰고, 빠른 배를 골라 노숙을 태워 남서로 보내 손권을 만나, 먼저 형주를 빌려준 일을 말하고 , 관련 문서을 바치게 한다. 손권이 말한다.

    "그대가 이토록 호도 糊塗 (흐리멍텅)할 수 있소! 이 따위 문서가 무슨 쓸모가 있소?"

    "주도독이 따로 서찰을 준 게 있는데, 이 계책을 쓰면, 형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손권이 읽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기뻐하며 깊이 생각한다.

    '누구를 보내야 할까?'

    갑자기 깨달아 말한다.

    "여범 呂範이 아니면 불가하겠구나!"

    곧 여범을 불러 말한다.

    "요새 듣자니 유현덕이 부인을 잃었다 하오. 내게 누이가 하나 있으니, 현덕을 초청해 남편으로 삼아, 앞으로 인친 姻親 (사돈)을 맺어 , 한 마음으로 조조를 격파하여, 한실을 바로잡고자 하오. 자형 子衡(여범)이 아니고는 중매를 설 수 없으니, 바라건대 형주로 찾아가 한 말씀 해주시오."

    여범이 명을 받들어, 그날 선박을 수습하여, 몇 사람을 거느리고 형주로 찾아간다.

    한편 현덕은 감부인을 잃고, 밤낮으로 번뇌한다. 어느 날, 마침 공명과 더불어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동오의 여범이 찾아왔다 한다. 공명 이 웃으며 말한다.

    "이것은 바로 주유의 계책이니 필시 형주 때문입니다. 제가 병풍 뒤에서 엿들어 보겠습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주공께서는 모두 응낙하십시오. 찾아온 사람이 관역에서 쉬게 되면, 따로 상의 드리겠습니다."

    현덕이 여범을 불러들이라 하여, 인사를 마치고 좌정한다. 차를 마시고, 현덕이 묻는다.

    "자형 子衡께서 찾아오셨으니 필시 할 말씀이 있겠군요."

    "제가 요새 듣자니 황숙께서 배우자를 잃으셨다 하기에, 어느 집안에 좋은 신부감이 있어, 염치 불구하고 특별히 중매를 서러 왔습니다. 황숙의 뜻이 어떠신지 모르겠군요."

    "중년의 나이에 처를 잃었으니, 몹시 불행한 것이오. 죽은 이의 골육이 아직 식지 않았는데, 어찌 차마 혼인을 의논하겠소?"

    "사람에게 처가 없으면, 마치 집에 대들보가 없는 것과 같으니 어찌 중년의 나이에 인륜을 폐하겠습니까? 저희 주, 오후께 누이 동생이 한분 계시니 아름답고 어질며, 기추 箕帚 (청소도구)를 기꺼이 잡습니다. 만약 양가가 결혼으로써 진진지호 秦晉之好 (춘추시대 두 나 라가 혼인으로써 우호를 맺은 것)를 맺는다면, 조조 역적도 감히 동남을 노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 일은 집안과 나라에 모두 좋은 것 이니, 청컨대 황숙께서 망서리지 마십시오. 다만 저희 국태 國太 (임금의 모친) 오부인 吳夫人께서 어린 딸을 몹시 사랑하시는지라, 멀 리 시집을 보내시지 않으려 하시니, 부탁 드리건대 반드시 황숙께서 동오로 가셔서 혼인을 맺으주셔야만 합니다."

    "이 일을 오후께서 알지 않으시오?"

    "오후께 먼저 여쭈지 않고서, 어찌 감히 경솔히 와서 말씀 드리겠습니까?"

    "내 나이 이미 반백 半百이라, 빈발 鬢髮 (귀밑머리의 머리털)이 희끗희끗하오. 오후의 누이 동생이라면 필시 묘령 妙齡일텐데 배우자로 알맞지 않을까 두렵소. "

    "오후의 누이, 비록 몸은 여자이나, 뜻은 남아를 넘어섭니다. 늘 말씀하시기를, '천하의 영웅이 아니면, 나는 모실 수 없소.'라고 하셨습니 다. 이제 황숙의 명성, 사해에 들리니 참으로 숙녀의 배필이 될 군자이시거늘, 어찌 연치 年齒 (연령)의 많고 적음으로써 마다하시겠습 니까?"

    "공께서 우선 머물러 계시오. 내일 알려드리겠소."

    현덕이 그날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고, 관사에 머물게 하고, 밤에 이르러 공명과 더불어 상의하니, 공명이 말한다.

    "찾아온 뜻은 제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방금 점을 쳐보니 크게 길하고 크게 이로운 징조를 얻었습니다. 주공께서 응낙하셔도 되겠습니 다. 먼저 손건 孫乾에게 지시해 여범과 함께 돌아가 오후를 만나게 하십시오. 오후 앞에서 허락을 받고 나서, 날을 골라 찾아가 혼인하 십시오."

    "주유가 계책을 정해 이 유비를 해치려 하는데, 어찌 몸을 함부로 해 위험한 곳에 들어가겠습니까?"

    공명이 크게 웃으며 말한다.

    "주유가 비록 계책을 잘 쓰나, 어찌 능히 저 제갈량의 헤아림을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작은 계책을 써서, 주유로 하여금 반주부전 半籌不 展 (작은 꾀도 부리지 못함)하게 만들겠습니다. 더구나 오후의 누이는 주공을 모시게 하고, 형주는 만에 하나도 잃지 않게 하겠습니다."

    현덕이 머뭇거리며 아직 결심하지 못한다. 공명이 손건에게 지시해 강남 江南으로 가서 혼인 문제를 말하게 한다. 손건이 그 말을 따 라, 여범과 더불어 강남에 도착하여, 손권 孫權을 만난다. 손권이 말한다.

    "곧 내 누이를 현덕과 혼인시키기를 바랄 뿐, 아무 다른 마음이 없소."

    손건이 절을 올려 사례하고, 형주로 돌아가 현덕을 만나, 오후가 주공께서 와서 결혼하기만을 기다린다고 말한다. 현덕이 머뭇거리며 감히 가지 못한다. 공명이 말한다.

    "제가 이미 세가지 계책을 정해 놓았는데, 자룡이 아니면 수행할 수 없습니다."

    곧 조운을 가까이 불러, 귀에 속삭인다.

    "그대는 주공을 보호해 동오에 들어가되, 이 세 개의 비단주머니를 가져 가시오. 주머니에 세 가지 묘계 妙計가 들어 있으니, 차례대로 행하시오."

    즉시 세 개의 비단주머니를 조운에게 주어 몸에 단단히 지니게 한다. 공명이 먼저 사람을 동오에 보내 혼인 날짜를 받게 하고, 모든 것을 완비한다.

    때는 건안 14년 (서기 209년) 겨울 10월이다. 현덕이 조운, 손건과 더불어 쾌속선 10척을 취하여 수행하는 5백인을 거느리고 형주를 떠나 남서로 출발한다. 형주의 일은 모두 공명의 재가를 받도록 한다. 현덕이 마음 속으로 앙앙 怏怏(불만스러운 모습) 불안하다. 남서에 도착하여, 강기슭에 배를 대자, 조운이 말한다.

    "군사께서 세 가지 묘계를 차례대로 행하라 하셨습니다. 이제 이곳에 당도했으니, 우선 첫번째 비단주머니를 열어보겠습니다."

    이에 주머니를 열어 계책을 보더니, 5백 수행병을 불러 일일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분부한다. 병사들이 명을 받아 떠나자, 현덕더러 먼저 교국로를 찾아가 만나라 한다. 교국로는 바로 두 교씨의 부친으로 남서에 살고 있다. 현덕이 견양담주 牽羊擔酒 (양을 끌고 술동이를 메고 간다는 뜻으로 공경하는 예물을 갖춤을 뜻함)해 먼저 찾아가 절을 올리고, 여범의 중매 로 부인을 얻게 된 일을 이야기한다. 수행하는 5백 병사 모두 (경축 행사에 입는) 붉은 비단옷을 입고 남군으로 들어가 물건들을 사들이며 현덕이 동오에 장가온다고 퍼트려, 성안 사람들 모두 그 일을 알게 된다. 손권은 현덕이 도착한 것을 알고 여범에게 그를 맞이하여 우선 관사로 가서 쉬도록 한다.

    한편 교국로는 현덕을 보더니, 오국태 吳國太를 불러 들여 축하한다. 오국태가 말한다.

    "무슨 일이오?"

    "영애 令愛 (딸을 높여 부르는 말)가 이미 유현덕의 부인이 되기로 허락하여, 이제 현덕이 도착했는데, 무슨 까닭으로 모른 체하시오?"

    "이 늙은이는 모르는 일이오!"

    사인 使人(심부름꾼)을 보내 오후에게 그 허실을 묻게 하는 한편, 먼저 사람들을 성 안으로 보내 소식을 알아보게 한다. 사람들 모두 돌 아와 보고한다.

    "과연 그렇습니다. 여서 女婿 (사위)가 이미 관역에서 쉬고 계십니다. 5백 수행병사 모두가 성 안에서 돼지와 양을 사들이고 과품 果品 (생과일과 말린 과일)을 잔뜩 마련하여, 성친 成親(혼인)을 준비합니다. 여자 집안에서 중매를 선 이는 여범이고, 남자 집안에서는 손건 인데, 모두 관역에서 모시고 있습니다."

    오국태가 화들짝 놀란다.

    잠시 뒤, 손권이 후당에 들어와 모친을 만나자, 오국태가 가슴을 치며 크게 운다. 손권이 말한다.

    "모친께서 무슨 까닭으로 번뇌하십니까?"

    "네가 정말 이렇게 나를 하찮게 여기다니! 내 저저 姐姐 (언니)가 임종하실 때, 네게 뭐라 분부하셨냐?"

    손권이 실경 失驚(놀람)해 말한다.

    "모친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면 바로 말씀하시지, 어찌 이토록 괴로워하십니까?"

    "남자는 자라면 장가를 가야 하고, 여자는 자라면 시집을 가야 함은, 고금의 상리 常理다. 내가 네 모친이니, 그런 일은 마땅히 내게 품명 稟命을 받아야 할 것이다. 네가 현덕을 불러 내 사위로 삼으면서, 어째서 나를 속이냐? 그 딸은 분명 내 딸이다!"

    손권이 깜짝 놀라, 묻는다.

    "어디서 그런 말씀을 들으셨습니까?"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성 안의 온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모르는 줄 아냐? 네가 정말 나를 속일테냐!"

    교국로가 말한다.

    "이 늙은이도 진작에 알고서, 지금 일부러 축하하러 왔소."

    손권이 말한다.

    "아닙니다. 이것은 주유의 계책입니다. 형주를 취하러, 이것을 명분으로 유비를 유인해 여기에 붙잡아, 그와 형주를 맞바꾸려 합니다. 그가 따르지 않으면, 먼저 유비를 참할 것입니다. 이것은 계책일 뿐, 저의 참 뜻은 아닙니다."

    오국태가 크게 노하여, 주유를 욕한다.

    "네놈이 6군 81주의 대도독을 맡고서도, 이토록 형주를 취할 아무 계책을 못 세우고, 도리어 내 딸을 이용해 미인계를 쓰다니! 유비를 죽이면, 내 딸은 과부가 될 테니, 장래에 누가 와서 혼담을 꺼내겠냐? 결국 내 딸 한평생을 그르치겠구나! 너희들 정말 잘 하는 짓이다!"

    교국로가 말한다.

    "이런 계책으로 형주를 얻은들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이런 일을 어찌하겠소!"

    손권은 잠자코 아무 말이 없다. 오국태가 입을 멈추지 않고 주유를 욕하니, 교국로가 권한다.

    "일이 이왕 이렇게 됐지만, 유 황숙은 곧 한실의 종친이니, 그를 정말로 사위로 맞아들여 출추 出醜 (체면을 잃음)를 면하는 것만 못하겠 소."

    손권이 말한다.

    "서로 연기 年紀 (연령)가 맞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교국로가 말한다.

    "유 황숙은 당세의 호걸이니, 그를 사위로 삼아도, 영매 令妹 (남의 누이동생을 높이는 말)가 욕되지 않소."

    오국태가 말한다.

    "내 아직 유 황숙을 알지 못하니, 내일 감로사 甘露寺에서 만나도록 약속을 잡아라.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희 하는 대로 따르겠다. 내 마음에 든다면, 내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겠다."

    손권은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라, 모친이 이렇게 말하니, 곧 응낙하고, 밖으로 나가 여범을 불러, 내일 감로사 방장 方丈(주지. 여기서는 주지가 머무는 장소)에서 연회를 베풀게 하라고 분부하고, 오국태가 유비를 만날 것이라 말한다. 여범이 말한다.

    "가화 賈華에게 명해 도부수 3백을 거느리고, 양쪽 행랑에 매복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국태께서 별로 마음에 들어하시지 않으 시면, 신호 소리에 맞춰, 양쪽에서 일제히 몰려나와 그를 잡게 하십시오."

    손권이 곧 가화에게 분부해 준비를 마치게 하고 오국태의 거동만 살핀다.

    한편 교국로는 오국태에게 작별하고 돌아가, 사람을 보내 현덕에게 알려, 내일 오후와 오국태가 친히 만날 것이니 각별히 주의하라 한다 . 현덕이 손건, 조운과 상의하자, 조운이 말한다.

    "내일 모임은 다흉소길 多凶少吉 (흉한 일이 많지 좋은 일을 드묾. 극도로 위험함)이니, 제가 5백 군을 거느리고 보호하겠습니다."

    다음날, 오국태, 교국로가 먼저 감로사 방장 方丈 (여기서는 주지가 아니라 주지가 머누는 곳을 뜻함)에 좌정한다. 손권이 한 무리 모사 를 거느리고, 뒤이어 도착하여, 여범에게 지시해 관역으로 가서 현덕을 초청하게 한다. 현덕이 속에 갑옷을 받쳐 입고, 비단 도포를 입 는다. 종인들이 검을 등에 매고 바짝 붙어 수행하고, 말을 타고 감로사로 간다. 조운이 완전무장해 5백 군을 거느려 수행한다. 절 앞 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먼저 손권을 만난다. 손권이 현덕의 의표 儀表(용모와 행동거지)가 비범한 것을 보고, 마음 속으로 두려워한다.

    두 사람이 인사를 마치고, 곧 방장으로 들어가 오국태를 만난다. 오국태가 현덕을 보더니, 크게 기뻐, 교국로에게 말한다.

    "참으로 내 사윗감이오!"

    "현덕은 용봉지자 龍鳳之姿(용이나 봉황같은 모습)와 천일지표 天日之表(하늘의 해와 같은 모습)을 가졌소. 아울러 인덕을 천하에 떨치 오. 국태께서 이런 훌륭한 사위를 얻다니, 참으로 경하드릴 일이오."

    잠시 뒤, 조자룡이 검을 차고 들어와, 현덕 곁에 시립한다. 오국태가 묻는다.

    "이 사람은 누구요?"

    현덕이 답한다.

    "상산 조자룡입니다."

    "바로 당양 장판에서 아두를 품고 구한 사람 아니오?"

    "그렇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장군이오!"

    곧 술을 내리자, 조운이 현덕에게 말한다.

    "방금 제가 행랑 쪽을 순시해보니, 방안에 도부수들이 매복해 있어, 아무래도 좋은 뜻은 아닙니다. 국태께 고하십시오."

    현덕이 이에 오국태 면전에 꿇어앉아, 눈물 흘려 울며 고한다.

    "유비를 죽이시려거든 이 자리에서 죽여주시기를 청하옵니다."

    "어째서 이런 말씀을 하시오?"

    "행랑에 도부수들을 몰래 숨겨두었으니, 저를 죽일 게 아니면 무엇입니까?"

    오국태가 크게 노하여, 손권을 꾸짖는다.

    "오늘 현덕이 내 사위가 되니, 곧 나의 자식인 셈이다. 무슨 까닭으로 도부수들을 행랑에 매복했냐?"

    손권이 모르는 일이라 하며, 여범을 불러 묻는다. 여범이 가화에게 미룬다. 오국태가 가화를 불러 꾸짖자, 가화가 묵묵히 말이 없다. 오 국태가 호통을 쳐 그를 참하라 하자, 현덕이 고한다.

    "만약 대장을 참하면, 혼인에 불리합니다. 제가 가까이 머물기 어렵게 됩니다."

    교국로도 권하자, 오국태가 비로소 가화를 꾸짖어 물린다. 도부수들 모두 머리를 감싸쥐고 놀란 쥐처럼 달아난다. 현덕이 옷을 고쳐 입 고 전각 아래 나가니, 마당에 돌덩이 하나가 있다. 종자가 차고 있던 검을 현덕이 뽑아들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한다.

    "만약 이 유비가 형주로 되돌아가, 왕패지업 王霸之業을 이룰 운명이라면, 이 검을 내리쳐 돌이 두조각 나리다. 여기서 죽을 것이라면, 검으로 돌을 쳐도 쪼개지지 않으리라."

    말을 마치고, 손을 들어 검으로 내리치자, 불꽃이 튀며 돌이 베여져 두 조각 난다.

    손권이 뒤에서 보고, 묻는다.

    "현덕 공께서 어째서 이 돌을 원망하시오?"

    "제 나이 5십에 가까우나, 국가를 위해 도적의 무리를 뿌리뽑지 못하여, 마음이 늘 한스럽소. 이제 국태께서 저를 불러 사위로 삼아 주시 니, 이는 평생에 드문 기회입니다. 방금 문천매괴 問天買卦 (하늘에 물어 길흉화복을 점침)하며, 조조를 깨뜨리고 한실을 중흥할 것이 면, 이 돌이 베여 갈라지리라 했소. 이제 과연 이러하군요."

    손권이 생각한다.

    '유비가 이런 말로써 나를 속이는 것 아니겠는가?'

    역시 검을 잡아빼며 현덕에게 말한다.

    "저 역시 문천매괘하겠소. 만약 조조 역적을 격파할 것이라면, 역시 이 돌이 절단될 것이오."

    속으로 몰래 기도한다.

    '다시 형주를 되찾아, 동오를 흥왕 興旺시킬 것이라면, 돌이 잘라져 조각날 것이다!"

    손을 들어 검으로 내리쳐, 역시 큰 돌이 쪼개진다. 지금도 그 당시 10자를 새긴 흔적이 있는 돌이 상존한다. 뒷날 누군가 이런 유적을 보 고, 시를 지어 찬했다.

    보검으로 내려치자 돌이 갈라져, 쇳소리 울려 퍼지며 불꽃이 튀는구나
    두 왕조의 왕성함은 모두 하늘의 뜻이니 이로부터 솥발처럼 나눠 서네

    두 사람이 검을 버리고, 서로 이끌고 자리로 들어간다. 다시 몇차례 술이 돌자 손건이 현덕에게 눈짓하자, 현덕이 작별을 고한다.

    "제가 술기운을 이기지 못해 물러 가고자 합니다."

    손권이 절 앞까지 환송을 나와, 두 사람이 나란히 서, 강산의 경치를 바라본다. 현덕이 말한다.

    "이야말로 천하 제일의 강산이오!"

    지금도 감로사 비석에 '천하제일강산'이라 적혀 있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찬했다.

    강산에 비가 개이자 푸른 산들 드러나니, 아무 근심도 없이 기쁘기 그지 없었네.
    옛날 영웅들이 응시하던 곳, 바위 벼랑만이 옛날 그대로 풍파를 견디고 있구나 .

    두 사람이 함께 둘러볼 때, 강바람이 거세게 불어, 파도가 큰 눈덩이가 구르듯 넘실대니, 하얀 물결이 치솟아 하늘에 닿을 것 같다. 그런데 파도 위에 작은 배가 강물 위를 가는데, 평지를 가는 듯하다. 현덕이 찬탄한다.

    "남인들은 배를 타고, 북인들은 말을 탄다는 것을, 과연 믿을 만하구나."

    손권이 그 말을 듣고 생각한다.

    '유비가 이렇게 말함은, 내가 말을 잘 타지 못할 것이라 희롱할 뿐이구나.'

    이에 좌우에 명해 말을 끌고 오게 하여, 몸을 날려 말에 올라, 산 아래로 내달리더니, 다시 채찍을 가해 고개를 넘어, 웃으며 현덕에 게 말한다.

    "남인들은 능히 말을 타지 못하오?"

    현덕이 듣더니 옷을 털고 뛰어올라 말 등에 타고 나는듯이 산 아래로 달려, 다시 말을 내달려 올라온다. 두 사람이 산 비탈에 말을 세워, 채찍을 들고 크게 웃는다. 지금도 이곳 지명이 '주마파 駐馬坡 (말을 세운 비탈, 언덕)'다. 뒷날 시를 지어 찬했다.

    용 같은 말을 내달려 기개가 대단한데, 두 사람 말고삐 나란히 산하를 바라봤네.
    동오와 서촉이 왕패를 이뤘지만 천고의 세월이 흘러간 뒤 주마파만 남아 있구나.

    그날 두 사람이 말고삐를 나란히 해 돌아온다. 남서 백성들 가운데 칭하(축하)하지 않는 이 없다. 현덕은 관역으로 돌아가, 손건과 상 의한다. 손건이 말한다.

    "주공께서는 오로지 교국로에게 간절히 요청하여, 어서어서 혼인을 마쳐야, 변고를 면할 수 있습니다."

    다음날, 현덕이 다시 교국로의 저택을 찾아가 말에서 내린다. 교국로가 맞이해 들여, 인사를 마치고 차를 마신 뒤, 현덕이 고한다.

    "강좌 江左(강동) 사람들 가운데 저 유비를 해치려는 자가 많으니, 오래 머물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현덕께서 마음 놓으십시오. 제가 공을 위해 국태께 고하여, 지켜드리라 하겠습니다."

    현덕이 절을 올려 사례하고 돌아간다. 교국로는 오국태를 만나, 사람들이 해칠까 두려운 현덕이 부랴부랴 돌아가려 한다고 말한다. 오국 태가 크게 노해 말한다.

    "내 딸의 남편을 누가 감히 해치려 하는가!"

    즉시 (현덕을) 서원으로 들어가 잠시 머물게 하고, 날을 골라 혼인을 올리라 지시한다. 현덕이 들어가 오국태에게 고한다.

    "조운은 바깥에 있으니 제가 불편하고, 이곳 병사들은 아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오국태가 모두 부중으로 들어와 쉬도록 지시하고, 관역 안에는 머물지 못하게 하여,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한다.

    현덕이 크게 기뻐한다. 며칠 안 가, 크게 잔치를 열어, 손부인 孫夫人이 현덕과 결혼한다. 밤이 되자 손님들이 흩어지고, 두 줄로 붉은 등 불을 들고 현덕을 맞이해 방으로 들어가니 등불 아래 창칼만 빼곡하다. 시중 드는 여종들 모두 검과 칼을 차고 양쪽으로 서 있다. 현덕이 헉! 하며 크게 놀라 넋이 나간다.

    놀라 바라보니 시녀들이 칼을 비껴들고 서 있네
    동오에서 복병을 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구나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