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6회 동탁이 궁궐을 불살라 흉악한 짓을 저지르고 손견이 옥새를 은닉하여 배신한다

    장비가 말을 박차 호뢰관 아래로 추격하지만 관문 위에서 화살과 돌이 비오듯 날아와 더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간다. 8로제후 모두가 현덕과 관, 장을 불러서 전공을 축하하고 사람을 원소의 영채로 보내 승리를 알린다. 원소가 손견에게 격문을 급히 보내 진병(진군)을 명하니, 손견이 정보와 황개를 데리고 원술의 영채를 찾아가서 원술을 만난다.

    손견이 막대로 땅에 무엇인가를 그리며 설명한다.

    "동탁과 저는 본래 원수 사이가 아니지요. 그런데도 이제 제 자신을 돌보지 않고 떨쳐일어나 몸소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결사의 각오로 싸우는 것은, 위로는 국가를 위해 도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의 집안을 위한 것인데, 장군께서 참언 讒言을 듣고 군량을 내어주지 않아 제가 패전하면 장군께서 어찌 안전하겠어요?"

    원술이 듣고 쩔쩔매며 아무 말도 못하더니 참언한 사람을 베어서 손견에게 사과한다.

    그런데 누군가 손견에게 보고한다.

    "호뢰관에서 어떤 장수가 말을 타고 영채로 찾아와 장군을 뵙겠다고 합니다."

    손견이 원술에게 인사하고 진지로 돌아가 불러보니 동탁의 심복 이각 李傕이다. 손견이 말한다.

    "네가 어찌 왔어?"

    "승상께서 존경하는 사람 오로지 장군뿐이라서, 이제 특별히 저를 보내 친교를 맺으라 하시네요. 승상께 따님이 있는데 장군 아들에게 시집을 보내시겠답니다."

    손견이 대로하여 꾸짖는다.

    "동탁이 천도를 거스르고 왕실을 함부로 뒤엎으니 구족을 멸해 천하에 보답하고 싶은 참인데 어찌 역적과 친교를 맺는다는 말이야! 너를 베지는 않을테니 속히 돌아가 어서 호뢰관을 바쳐 네놈의 목숨이나 보전하여라! 만약 지체하여 잘못되면 몸과 뼈를 가루로 만들겠어!"

    이각이 머리를 감싸쥐고 쥐새끼처럼 달아나 동탁을 만나서 손견이 그렇게 무례하더라고 말한다. 동탁이 노하여 이유에게 묻자 그가 답한다.

    "여온후가 얼마 전에 패하여 병사들은 전의를 잃었어요. 일단 낙양으로 돌아가 요새 아이들이 노래하듯이 황제를 장안으로 옮겨야겠어요. 요새 거리의 아이들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서쪽에도 한나라가 있고 동쪽에도 한나라가 있으니
    사슴이 장안으로 들어가야 이 곤경을 벗어나리

    제 생각에 '서쪽 한나라'는 고조황제께서 서쪽 도읍 장안에서 흥하여 열두 황제가 이은 것을 말하고, '동쪽 한나라'는 광무제께서 동쪽 도읍 낙양에서 흥하여 이제까지 역시 열두 황제가 이은 것을 말해요. 천운이 맞아 돌아가니 승상께서 다시 장안으로 옮기시면 걱정이 사라지겠지요."

    동탁이 기뻐하며 말한다.

    "자네 말이 아니었으면 깨닫지 못했겠어."

    여포와 함께 그날밤 낙양으로 돌아가서 천도 遷都를 상의한다. 문무 관리를 조당에 불러모아 동탁이 말한다.

    "한나라가 동쪽 낙양에 도읍한 지 2백여 년이 되니 기수 氣數가 쇠했어요. 내가 보니까 왕성한 기운이 이제 장안에 있는지라 어가를 모시고 서쪽으로 천도하고 싶어요. 여러분도 어서 이삿짐을 싸세요."

    사도 양표가 말한다.

    "관중 關中이 모질게 파괴되고 영락했는데 이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종묘와 황릉을 버리면 백성이 요할까 두렵군요. 천하가 동요하기는 지극히 쉬우나 안정되기는 지극히 어려운 법이니 승상께서 살펴주세요."

    동탁이 노해 말한다.

    "자네가 국가 대계를 막을 셈이야?"

    태위 황완이 말한다.

    "양 사도의 말씀이 옳아요. 예전 왕분이 찬역 篡逆하고 적미적이 난을 일으켜 장안을 불태워 결국 기왓장만 남았고 인민을 유랑하게 만들어 백개 중 한두개도 남지 않았지요. 이제 궁궐을 버리고 폐허로 가겠다니 옳지 못하군요."

    동탁이 말한다.

    "관동에 도적이 봉기하니 천하가 대란에 빠졌어. 장안은 산으로 둘러싼 험지인데다 농우 隴右에서 가까워 나무, 돌, 벽돌을 때 맞춰 조달할 수 있으니 궁궐을 짓는데 불과 한달이 넘지 않을 것이야. 자네들은 다시는 난언亂言을 꺼내지 말게나."

    사도 순상이 말한다.

    "승상께서 천도하시면 백성에게 소동이 일어나 안녕치 못해요."

    동탁 대로해 말한다.

    "내가 천하를 위해 계획하는데 어찌 하찮은 백성을 애석하게 여기겠어?"

    즉시 양표, 황완, 순상을 파직하여 서민으로 만든다. 동탁이 나가서 수레를 타는데 두 사람이 수레쪽으로 인사한다. 상서 주비 周毖와 성문교위 오경 伍瓊이다.

    동탁이 무슨 일인지 묻자 주비가 말한다.

    "이제 승상께서 장안으로 천도하신다 듣고서 간언을 드리러 왔네요."

    동탁이 대로하여 말한다.

    "내가 처음에 너희 말을 듣고 원소를 썼지만 원소가 결국 배반했으니 너희도 일당이야!"

    무사에게 호통쳐서 그들을 성문 밖으로 끌고 나가 참수하게 한다. 마침내 천도를 명하고 이튿날까지 바로 떠나라고 한다. 이유가 말한다.

    "이제 전량錢糧(돈과 양식)이 모자란데 낙양에는 부호들이 지극히 많으니 적몰籍沒(가산을 등록 몰수함)하여 궁궐로 들이세요. 그리고 원소 등의 문하門下도 그 종당宗黨(가문의 사람들)을 죽이고 가화家貲(가산)를 빼앗으면 엄청난 부를 거머쥘 수가 있어요."

    동탁이 즉시 철기鐵騎(철갑을 두른 기병/ 정예한 기병) 5천을 보내 곳곳을 돌며 낙양의 부호들을 사로잡으니 수천 가호에 이른다. 그들 머리에 깃발을 꽂고 “반신역당 反臣逆黨”이라 크게 적고 모조리 성밖에서 참하고 재물을 빼앗는다. 이각과 곽사가 낙양 백성 수백만을 몰아 세워서 장안으로 간다. 백성 한 줄마다 병사 한 줄을 끼워넣어 백성을 끌고간다. 길을 가다가 죽어서 도랑에 버려진 이들이 헤아릴 수 없다. 또한 병사들이 부녀자를 겁탈하고 양식을 빼앗는다. 울부짖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늦게 걸어가면 뒤에서 3천군이 윽박지르면서 시퍼런 칼날을 휘둘러 길 위에서 죽인다.

    동탁이 낙양을 떠나면서 성문마다 불을 놓고, 민가를 불사르고 종묘, 궁궐, 관청에도 불을 놓아 태우게 한다. 남북 양쪽 궁궐에서 치솟은 불길이 서로 만나니 장락궁도 모조리 잿더미가 된다. 여포를 시켜 선대 황제와 후비 들의 능묘를 ‘발굴發掘’ 해 금은보화를 거둔다. 병사들도 이 틈을 타서 관리와 백성의 무덤을 거의 다 파헤친다. 동탁이 진주, 비단, 각종 귀중품을 실은 수레가 수천 량을 넘는다. 천자와 후비 등을 겁박해 마침내 장안으로 떠난다.

    한편, 동탁의 장수 조잠은 동탁이 낙양을 버리는 것을 보고 사수관을 바치며 항복한다. 손견이 군을 이끌고 사수관으로 들어간다. 현덕과 관, 장도 호뢰관으로 들어가고 제후도 각각 군을 이끌고 들어간다.

    한편, 손견이 낙양으로 달려가니 멀리 불꽃이 하늘을 찌르고 검은 연기가 땅을 뒤덮어 2, 3백 리를 가도 닭이나 개조차 볼 수가 없고 사람의 기척도 전혀 없다. 손견이 병사들을 보내어 진화하고 제후에게 폐허 위에 각각 주둔하도록 요청한다. 조조가 원소를 만나 말한다.

    "이제 역적 동탁이 서쪽으로 가니 이 기세를 타고 추격해야지요. 그런데 본초께서 진군치 않고 관망하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병사들이 피곤하니 진격해도 아무 이득이 없을까 두렵군요."

    "역적 동탁이 궁궐을 불사르고 천자를 겁박해 끌고 가니 해내가 진동하고 의지할 데 모르고 있어요. 이때야말로 천벌로 멸망시킬 때이니 일대결전으로 천하를 평정할 수 있어요. 여러분 무엇 때문에 주저하며 진군하지 않는 것입니까?"

    뭇 제후가 모두 가볍게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하자 조조가 대로한다.

    "고자놈들과 함께 도모할 수 없겠구먼!"

    마침내 스스로 1만군을 이끌고 하후돈, 하후연, 조인, 조홍, 이전, 악진을 거느리고 그날밤 동탁을 추격한다.

    한편, 동탁이 영양 지방애 이르니 태수 서영이 영접한다. 이유가 말한다.

    "승상께서 낙양을 버린 지 얼마 안 됐으니 추격병을 막을 방도를 세워야지요. 서영을 시켜 영양성 밖 산속 고개에 복병하게 하세요. 적병이 추격해 오면 일단은 그냥 보내고 아군이 여기서 무찌르기를 기다린 뒤 퇴로를 끊고 엄습하세요. 이렇게 된다면 뒤따르는 자들이 감히 다시는 추격하지 못해요."

    동탁이 계책을 따라 여포에게 정병을 이끌고 후방을 맡으라 한다. 여포가 가다가 조조의 1군이 추격해오는 것을 본다. 여포가 크게 웃으며 "이유가 헤아린 것을 벗어나지 못하구나!" 라 말하고 군마를 전개한다. 조조가 말을 몰아 나오며 크게 외친다.

    "역적놈아! 천자를 겁박해 파천하고 백성을 떠돌게 만들어 장차 어디 갈 셈이냐!"

    여포가 욕한다.

    "주인을 버린 못난아! 어찌 망언하냐!"

    하후돈이 창을 꼬나쥐고 여포에게 달려든다. 몇합 싸우지도 않았는데 이각이 1군을 거느리고 좌측으로 쇄도하니 조조가 급히 하후연을 시켜 요격한다. 우측에서도 함성이 일며 곽사가 1군을 이끌고 달려드니 조인을 시켜 영적하지만 3로 군마의 기세를 당할 수 없다. 하후돈이 여포를 못 이겨 급히 말머리를 돌려 군진으로 달아난다. 여포가 철기를 이끌고 엄습하니 조조군이 대패한다. 영양 쪽으로 달아나다가 어느 황량한 산 아래에 이르는데 시각은 2경 쯤이고 달이 대낮처럼 밝다. 이제야 패잔병을 수습해 솥을 놓고 밥을 지으려는데 사방을 에워싸고 함성이 일더니 서영의 복병이 우루루 뛰쳐나온다. 조조가 황망히 말을 몰아 길을 찾아 도주하다가 바로 서영을 마주치자 몸을 돌려 달아난다.

    서영이 화살을 메겨 쏜 것이 조조의 어깻죽지에 명중한다. 조조가 화살이 박힌 채 달아나 산비탈을 지나자 병사 두 사람이 풀숲에 매복해 있다가 조조가 말 타고 오는 것을 보고 창을 일제히 던지니 조조의 말이 창에 맞아 쓰러진다. 조조가 거꾸로 떨어지니 두 병사가 잡는다. 그러나 한 장수가 나는듯이 말을 몰아와서 칼을 휘둘러 두 병사를 베고 말에서 내려 조조를 일으키니 바로 조홍이다. 조조가 말한다.

    "나는 여기서 죽을 것이니 아우는 어서 가게!"

    "어서 말을 타세요! 저는 걷겠어요."

    "적병이 뒤쫓는데 자네는 어쩌려고?"

    "저 없이 천하는 돌아가나 공이 없이는 안 돼요."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자네 덕이야."

    조조가 말 타고 조홍은 갑옷을 벗은 채 칼을 들고 뒤따라 달린다. 4경 무렵까지 달리니 앞으로는 큰 강이 흘러 갈 길이 막고 뒤로는 함성이 점점 커지니 조조가 말한다.

    "내 명이 여기까지인가 보구먼. 다시 살아날 수 없겠어!"

    조홍이 급히 조조를 부축해 말에서 내리고 갑옷을 벗기더니 조조를 등에 업고 물을 건넌다. 건너편에 닿자 추격병이 쫓아와서 강물을 사이에 두고 화살을 날린다.

    조조가 강을 따라 달아난다. 날이 밝자 다시 삼십 리 남짓 달아나 언덕 아래에서 잠시 쉰다. 갑자기 함성 소리 드높더니 한 무리 인마가 쫓아온다. 서영이 상류에서 물을 건너 추격한 것이다. 조조가 황급히 달아나려는데 하후연이 몇 기를 이끌고 달려와 크게 꾸짖는다.

    "서영 이놈아 우리 주군을 해치지 마라!"

    서영이 하후돈에게 달려들고 하후돈도 창을 꼬나잡고 싸운다. 두 사람이 탄 말이 몇 차례 엇갈리더니 하후돈이 서영을 찔러 낙마시키고 서영의 병사들을 쫓아버린다. 뒤따라 조인, 이전, 악진이 각각 군을 이끌고 와서 조조를 보니 슬픔과 기쁨이 교차한다. 5백여 패잔병을 수습해 하내로 돌아가고 동탁군도 장안으로 간다.

    한편, 뭇 제후가 낙양에서 제각각 지역을 나눠 주둔한다. 손견은 궁궐의 잔불을 다 끄고 성 안에 주둔하고 건장전 建章殿 터 위에 막사를 세운다. 손견이 궁전의 깨진 기와 조각을 치우게 하고 파헤쳐진 능묘를 모두 다시 덮어서 막는다. 태묘 太廟의 터 위에 전옥을 세 칸 새로 짓고 뭇 제후를 불러서 열성列聖(역대의 성인과 현자들)의 신위를 세운 뒤 태뢰太牢(큰 제사에 제물로 바치는 소, 돼지, 양)를 잡아 제사를 지낸다. 제례가 끝나고 모두 해산한다. 손견이 진지로 돌아오니 이날밤 별과 달이 함께 밝게 빛나고 있어 칼을 매만지며 바깥에 앉아 천문 天文을 살핀다. 자미원 紫微垣 자리에 하얀 기운이 가득찬 것을 보더니 손견이 탄식한다.

    "제성帝星이 밝지 못하니 역적이 나라를 어지럽혀 만백성이 도탄에 빠지고 경성(서울)이 텅 비었구먼!"

    말을 마치고 저도 모르게 눈물 흘린다.

    그때 곁에 있던 병사가 무엇인가를 가리키며 말한다.

    "전각 남쪽의 우물 안에서 오색 호광 毫光이 뿜어져 올라옵니다요."

    손견이 병사들을 불러서 횃불을 밝혀 우물을 내려가 건져올리게 한다. 결국 한 여인의 주검을 건져올리는데 비록 오래돼 보이지만 아직 썩지는 않았다. 궁녀의 차림새이고 목 아래에 비단주머니가 걸려 있다. 열어보니 안에 주홍색의 작은 상자가 금줄로 잠겨 있다. 다시 열어 살피니 천자의 옥새이다. 둘레가 4촌이고, 위에 다섯 마리의 용이 휘감은 모습이 조각됐다. 모서리 하나가 떨어진 것을 황금으로 때워놓았다. 옥새 위에 전서 여덟 자 '수명우천기수영창 受命于天既壽永昌( 하늘에서 명을 받아 수명이 영원하고 번창하리 )' 이 적혔다. 손견이 옥새를 얻고 정보에게 묻는다.

    이에 정보가 말한다.

    "이것은 전국옥새 傳國玉璽네요. 이 옥은 옛날 변화가 형산 밑에서 봉황이 돌 위에 깃든 것을 보고 돌을 초나라 문왕에게 가져갔지요. 돌을 쪼개니 과연 옥이 나왔습니다. 진나라 26년 초나라에서 뛰어난 장인을 시켜 그 옥으로 옥새를 만들고 이사가 이 8자를 전서로 썼지요. 28년 진시황이 천하를 순수 巡狩하다 화음에 이르렀는데 누군가 이 옥새를 지니고 있다가 길을 막고 종자에게 옥새를 건네주며 '이것을 가지고 조룡 祖龍(진시황)에게 돌아가라' 라고 말하고 사라졌네요. 이로써 옥새는 진나라 로 되돌아갔고 다음해 진시황이 붕어했구요. 그 뒤 자영이 옥새를 한고조에게 바쳤고 그뒤 왕분이 찬역하자 효원황태후가 옥새로 왕심과 소헌을 때리다가 모서리 하나가 떨어지니 금으로 때웠다네요. 광무제가 이 보물을 의양에서 얻어 이제까지 물려준 것인데, 요새 듣자니 십상시가 난을 일으켜 소제를 겁박해 북방으로 갔다가 궁궐로 되돌아오면서 이 보물을 잃었다고 하네요. 이제 하늘이 주공에게 내려주니 반드시 구오 九五(군주)의 자리에 등극하시겠습니다. 여기는 오래 머물 수 없으니 어서 강동으로 돌아가 따로 대사를 도모하세요."

    손견이 말한다.

    "자네 말이 내 뜻과 일치하는군. 내일 병을 핑계로 돌아가겠다고 하겠네."

    상의를 마치고 병사들에게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조용히 타이른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어느 병사가 원소의 고향사람이었다. 이것을 출세의 기회로 삼고자 그날밤 영채를 빠져나와 원소에게 달려가 알려준다. 원소가 그에게 상을 내리고 군중에 숨겨둔다. 이튿날 손견이 원소를 찾아와 작별 인사를 올린다.

    "제게 병이 있어 장사로 돌아가야 하기에 공께 작별을 고하러 왔습니다."

    원소가 웃는다.

    "내가 어떤 병인지 알고 있소. 전국옥새 탓이겠지."

    손견이 놀라서 낯빛이 바뀌며 말한다.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이제 군을 일으켜 토적하고 국가를 위해 해악을 제거할 참이오. 옥새는 조정의 보물. 공께서 그것을 획득했다면 사람들에게 보이고 맹주의 거처에 보관해 동탁을 죽인 뒤 조정에 돌려줘야지요. 이제 그것을 숨기고 떠나다니 도대체 무슨 마음이오?"

    "무슨 근거로 옥새가 내게 있다는 거요?"

    "어서 내놓는 것이 화를 면하는 길이오."

    손견이 하늘을 가리키며 맹서한다.

    "내가 그 보물을 얻고 사사로이 숨겼다면 훗날 좋은 꼴로 죽지 못하고 칼과 화살을 맞고 죽을 것입니다!"

    뭇 제후가 말한다.

    "문태께서 이렇게 맹서하니 옥새가 없는 것이 분명하군요."

    원소가 그 병사를 불러 말한다.

    "건져올릴 때 이 사람이 있지 않았소?"

    손견이 크게 노하여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병사를 베려 한다. 원소도 검을 뽑으며 말한다.

    "내 군인을 벤다면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야."

    원소 뒤 안량과 문추도 칼집에서 검을 뽑고 손견 뒤 정보, 황개, 한당도 칼을 뽑아 손에 쥔다.

    제후가 일제히 말리니 손견이 즉시 말을 타고 떠나고 진지를 거둬 낙양으로 떠난다. 원소가 크게 노하여 편지를 1봉 써서 심복에게 주고 그날밤 형주로 보내 형주자사 유표에게 손견을 가로막고 옥새를 빼앗으라 한다.

    이튿날 조조가 동탁을 쫓다가 영양에서 대패해 돌아온 것을 사람들이 알린다. 원소가 사람을 보내 조조를 진중으로 부르고 사람들을 불러모아 술자리를 마련해 조조와 함께 답답한 마음을 달랜다. 술을 마시다 조조 탄식한다.

    "내 처음에 대의를 일으켜 나라를 위해 역적을 제거하려 했소. 여러분이 의를 받들어 왔을 때 내 원래 뜻은, 원본초께서 하내의 병력을 이끌고 맹진에 이르고, 산조의 제장이 성고를 고수하고, 오창을 점거하고 현원과 대곡에 영채를 세워 길목을 제압하는 것이었지요. 또한 원공로께서 남양의 병력을 이끌고 단석에 주둔하고 무관으로 들어가 삼보 三輔(장안을 중심으로 하는 3개 지역)를 뒤흔드는 것이었소. 모두 해자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인 채 교전을 피하고 의병 疑兵(허장성세를 펼쳐 적군을 속이는 군대)을 늘려가면서 천하의 형세를 저들에게 보여주면 순리로써 역도를 치는 것이니 곧바로 평정할 수가 있었소. 그런데 이제 꾸물거리고 주저하며 진군하지 않는 것은 천하의 소망을 크게 저버리는 것이니 내 마음속으로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소!"

    원소 등이 대꾸할 말이 없다. 자리를 파한 뒤에 조조는 원소 등이 제각각 이심異心을 품었음을 보고 대사가 이뤄질 수 없다고 판단해 군을 이끌고 양주로 떠난다. 공손찬이 유, 관, 장에게 말한다.

    "원소가 무능하니 오래 있으면 반드시 변고가 생길 것이네. 우리도 일단 돌아가세."

    영채를 거둬 북쪽으로 간다. 평원에 이르자 공손찬이 현덕을 다시 평원의 상에 앉히고 자신은 근거지로 돌아가 땅을 지키고 병력을 기른다. 연주태수 유대가 동군태수 교모에게 군량을 빌려달라 한다. 교모가 거절하며 주지않자 유대가 교모의 영채로 군을 이끌고 돌입해 교모를 살해하고 무리를 항복시킨다. 이렇게 제각각 갈라서고 흩어지는 것을 보고 원소가 영채를 거둬 낙양을 떠나 관동으로 떠난다.

    한편 형주자사 유표 '경승'은 산양 고평 출신으로 한실종친이다. 어려서부터 교제를 좋아해 명사 일곱 사람과 벗하며 당시 강릉팔준 江夏八俊이라 일컬었다. 일곱 사람은 다음과 같다.

    여남의 진상 '중린'
    동군의 범방 '맹박'
    노국의 공욱 '세원'
    발해의 범강 '중진'
    산양의 단오 '문우'
    동군의 장검 '원절'
    남양의 잠질 '공효'

    유표가 일곱 사람과 벗하고 연평 출신의 괴량, 괴월과 양양 출신의 채모가 보필한다. 당시 원소 편지를 받고 괴월과 채모에게 1만군으로 손견을 막으라고 한다. 손견군이 오자 괴월이 포진하고 선두를 맡아 말 몰아나온다. 손견이 묻는다.

    "괴이도가 무슨 까닭으로 군을 이끌고 갈길을 가로막는가?"

    "자네는 한나라 신하로서 어찌 사사로이 ‘전국傳國의 보물’을 숨기는가? 당장 내려놓으면 귀로를 터주겠네!"

    손견이 대로해 황개를 출전시킨다. 채모가 칼춤을 추듯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나와 맞이한다. 싸운지 몇 합에 황개가 교모에게 채찍을 휘둘러 교모의 호심경(가슴 방어구)을 명중한다. 교모가 말머리 돌려서 달아나자 손견이 기세를 타고 빠르게 경계를 통과한다. 그런데 산 뒤에서 징소리가 일제히 울리더니 유표가 친히 군을 이끌고 달려온다. 손견이 말 위에서 예를 갖추며 묻는다.

    "유경승께서 어찌 원소의 서찰만 믿고 여기까지 와서 저를 핍박하시나요?"

    "자네가 전국옥새를 숨겨 장차반역할 셈인가?"

    "제가 그런 보물을 갖고 있다면 칼과 화살을 맞아 죽게 될 것입니다!"

    "자네 말을 믿게 하려면 자네 군대의 행리 行李(짐)를 내가 뒤져보게 하라."

    손견이 노해 말한다.

    "네가 무슨 힘으로 감히 나를 업신여겨!"

    달려들자마자 유표가 달아난다. 손견이 말 몰고 뒤쫓는데 양쪽 산 뒤에서 복병이 일제히 튀어나오고 배후에서 채모와 괴월이 쫓아와 손견을 해심 垓心(포위의 한가운데)에 몰아넣는다.

    옥새를 얻어도 아무 쓸데도 없고
    도리어 보물 탓에 싸움만 나구나

    결국 손견은 어찌 탈출할까? 다음 편에서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