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64회 공명이 계책을 정하여 장임을 사로잡고 양부는 병력을 빌려 마초를 깬다

    한편, 장비 張飛가 엄안 嚴顏에게 계책을 묻자 그가 말한다.

    "여기서부터 낙성 雒城까지 관애(관문과 요충지)를 지키는 것은 모두 이 노부의 소관이고 관군들 모두 내가 장악하고 있소. 이제 장군의 은혜에 감격해 보답할 길 없으니 노부가 앞장서 이르는 곳마다 모조리 불러내어 투항시키겠소."

    장비가 감사해 마지않는다. 이에 엄안이 앞장서고 장비가 군을 이끌고 뒤따른다. 무릇 다다르는 곳마다 모조리 엄안의 소관이라 불러내어 투항시킨다. 주저하며 결단하지 못하는 이가 있으면 엄안이 말한다.

    "나도 이미 투항하였거늘 하물며 자네가 어찌하겠는가?"

    이에 바람 앞의 풀처럼 귀순하니 한바탕 싸울 일이 없다.

    한편, 공명 孔明은 이미 출발하는 기일을 현덕 玄德에게 알리며 모두 낙성에서 모이자 하니 현덕이 관리들과 상의한다.

    "이제 공명과 익덕 翼德이 양갈래로 나눠 서천을 취하러 와서 낙성에서 모여 함께 성도 成都로 들어가겠다 하오. 수륙으로 배와 수레를 동원해 이미 7월 20일에 출발했으니 이때 그들의 도착을 기다려 진병해야겠소."

    황충 黃忠이 말한다.

    "장임 張任이 날마다 도발하지만 아군이 성중에서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적군이 해이해져 준비를 않고 있을 테니 오늘 야간에 병력을 나 눠 영채를 덮치면 대낮처럼 무찔러 이기겠습니다."

    현덕이 이를 따라 황충에게 일러 병력을 이끌고 왼쪽 길을, 위연에게 일러 병력을 이끌고 오른쪽 길을, 현덕은 가운데 길을 취한다. 그날밤 2경에 세갈래 군마가 일제히 출발한다. 장임이 과연 준비하지 않았는데 한군 漢軍(유비 군대)이 큰 영채로 몰려들어 불을 놓으 니 맹렬한 불꽃이 허공을 찌른다. 촉병이 달아나는 것을 그날밤 낙성까지 뒤쫓자 성중의 병력이 접응해 장임의 병력이 입성한다. 현덕이 가운데 길을 돌아가서 영채를 세운다. 다음날, 병력을 이끌고 곧장 낙성에 다다라서 성을 에워싸 공격한다. 장임이 병력을 움 직이지 않고 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공격 나흘째 현덕 스스로 1군을 거느려 서문을 치고, 황충과 위연에게 명령하여, 동문을 치게 하며 남북의 성문을 남겨 적병들을 달아나게 하려 한다.

    장임이 바라보니 현덕은 서문에서 말을 타고 왕래하며 공성을 지휘하는데 진시부터 미시까지 이르러 사람과 말이 점점 힘이 다한다. 장임이 오란과 뇌동에게 일러, 병력을 이끌고 북문을 나가서 동문을 돌아 황충과 위연을 맞서게 한다. 자기는 군을 이끌고 남문을 나와 서문을 돌아 홀로 현덕을 맞이해 싸운다. 성내에서 모조리 백성과 병사를 동원해 성을 올라 북을 치고 함성을 질러 돕게 한다.

    한편, 현덕은 붉은 해가 서쪽으로 저물자 후군에게 지시해 먼저 물러나게 한다. 병사들이 몸을 돌리자 성 위에서 한차례 함성이 일더니 남문에서 군마들이 돌출한다. 장임이 곧바로 군중으로 달려들어 현덕을 잡으려 하자 현덕의 군중이 크게 어지러워진다. 황충과 위연도 오란과 뇌동이 막아서서 양쪽 다 서로 돕지 못한다. 현덕이 장임을 막지 못해서 말을 몰아 산속 외진 좁은 길로 달아난다. 장임이 뒤쫓아 점점 다가온다. 현덕 홀로 말을 몰지만 장임은 몇 기를 거느려 뒤쫓는다.

    현덕이 앞만 보고 힘껏 채찍을 가하는데 산길에서 1군이 치고 나오자 현덕이 말 위에서 울부짖는다.

    "앞은 복병! 뒤는 추격병! 하늘이 나를 버리구나!"

    그런데 달려오는 군대의 선두대장은 바로 장비다. 알고보니 장비는 엄안과 더불어 마침 그길을 따라오다가 멀리 먼지구름이 일어나 자 천병과 싸우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장비가 앞장서 오다가 바로 장임과 마주쳐 곧 엉켜 싸운다. 10합 남짓 싸우자 배후에서 엄안이 병력을 이끌고 크게 진격한다. 장임이 부리나케 몸을 돌리자 장비가 성 아래까지 뒤쫓는다. 장임이 성에 들어가서 조교를 거둬 올린다.

    장비가 돌아가 현덕을 만나 말한다.

    "제갈 군사는 강을 거슬러 오느라 아직 도착하지 못해서 도리어 제가 선두의 공을 빼앗았소."

    "산길이 험조하거늘 어찌 아무 군병에도 막히지 않고 먼길을 크게 진격해 선두로 왔다는 거냐?"

    "도중의 관애 45 곳 모두 노장군 엄안의 공으로 통과하니 여기까지 털끝만치도 힘들지 않았소."

    엄안을 의롭게 풀어준 일을 처음부터 한바탕 이야기하고 현덕에게 데려가자 현덕이 고마워한다.

    "노장군이 아니셨으면 제 아우가 어찌 이곳에 왔겠소?"

    즉시 몸에 걸친 황금 쇄자갑(체인 형태의 갑옷)을 벗어 그에게 하사하니 엄안이 삼가 사례한다.

    연회를 기다리는데 초마(정찰기병)가 돌아와 보고한다.

    "황충과 위연이 서천의 장수 오란, 뇌동과 교봉하자 성 안에서 오의와 유괴도 병력을 이끌고 싸움을 도왔습니다. 양쪽에서 협공하자 아군이 막아내지 못해서 위, 황 2장이 패전하여 동쪽으로 갔습니다."

    장비가 듣더니 현덕에게 병력을 양쪽으로 나눠서 어서 구원하자고 한다. 이에 장비는 왼쪽으로, 현덕은 오른쪽으로 달려간다. 오의와 유괴는 뒤에서 함성이 일어나자 황급히 성 안으로 물러난다. 오란과 뇌동은 병력을 이끌고 오로지 황충과 위연을 뒤쫓다가 현덕과 장비에게 퇴로를 끊긴다. 황충과 위연도 말머리를 돌려 공격하니 오란과 뇌동이 대적하기 어렵다고 여겨서 할수없이 부하 병력을 이끌고 투항한다. 현덕이 항복을 받아들여 병력을 거두고 성 가까이 영채를 세운다.

    한편, 장임은 두 장수를 잃어서 속으로 의심하고 염려한다. 오의와 유괴가 말한다.

    "싸움의 형세가 심히 위급하니 죽기로 한바탕 싸우지 않고 어찌 병력을 물리겠소? 사람을 성도로 보내 주공께 위급을 고하면서 계책을 써서 맞서시오."

    장임이 말한다.

    "내가 내일 1군으로 도전해 거짓으로 패해서 성의 북쪽으로 유인하겠소. 성 안에서 다시 1군이 나가서 중간을 끊으면 승리를 거둘 것이오."

    오의가 말한다.

    "유장군께서 공자님을 보좌해 수성하시면 내가 출병하여 돕겠소."

    약속을 마쳐서 다음날 장임이 수천 인마를 거느려 깃발을 흔들고 함성을 지르며 성을 나가 도발한다. 장비가 말에 올라서 아무 말 없이 장임과 교봉한다. 10여합만에 장임이 거짓으로 패해서 성벽을 돌아서 달아난다. 장비가 힘껏 뒤쫓는데 오의의 1군이 막아서고 장임도 군을 이끌고 되돌아오니 장비가 한가운데 갇혀 진퇴양난이다.

    어쩌지 못하는데 1대의 병력이 강변에서 돌출한다. 선두의 대장이 창을 잡고 말달려 오의와 싸워서 겨우 1합에 오의를 사로잡고 적군을 물리쳐 장비를 구한다. 누군가 보니 조운이라 장비가 묻는다.

    "군사께서 어디 계시오?"

    "군사께서 이미 당도하셨소. 벌써 주공과 만나고 계실 게요."

    두 사람이 오의를 사로잡아 영채로 돌아간다. 장임은 동쪽 성문으로 물러나 들어간다. 장비와 조운이 영채로 돌아가 공명을 만난다. 간옹과 장완도 이미 군중에 와 있다. 장비가 하마하여 인사하자 공명이 놀라 묻는다.

    "어떻게 먼저 오셨소?"

    엄안을 의롭게 풀어준 장비의 일을 현덕이 두루 말하자 공명이 축하한다.

    "장장군께서 계책을 쓸 줄 알다니 모두 주공의 홍복입니다."

    조운이 오의를 압송해 현덕에게 보이자 현덕이 말한다.

    "그대는 항복하지 않겠는가?"

    "제가 이미 잡혔는데 어찌 항복치 않겠습니까?"

    현덕이 크게 기뻐하며 몸소 풀어준다. 공명이 묻는다.

    "성 안에 몇이 지키고 있소?"

    "유계옥의 아들, 유순과 그를 보좌하는 장수 유괴와 장임이 있소. 유괴는 굳세게 싸우지 않으나 장임은 촉군 출신으로 극히 담력과 지략이 뛰어나 가볍게 대적할 수 없소."

    "먼저 장임을 잡은 뒤 낙성을 취하겠소."

    그리고 묻는다.

    "성의 동쪽에 있는 다리 이름이 무엇이오?"

    "금안교요."

    공명이 말을 타고 그 다리 주변에 이르러 강물을 한바퀴 돌면서 살피고 영채로 돌아와 황충과 위연을 불러 명령을 듣게 한다.

    "금안교 남쪽 5, 6리 양쪽 강둑 모두 갈대가 우거져 매복할 만하오. 위연은 창수(창을 든 병사) 1천을 거느려 왼쪽에 매복해서 오로지 말 탄 장수를 살륙하시오. 황충은 도수(칼을 든 병사) 1천을 거느려 오른쪽에 매복해서 오로지 그들이 탄 말을 베시오. 적군을 무찌르면 장임은 틀림없이 산의 동쪽 좁은 길로 달아날 것이니 장익덕은 1천군을 거느리고 매복하여 그가 오거든 잡으시오."

    또한 조운을 불러 금안교 북쪽에 매복하게 한다.

    "내가 장임을 유인해 다리를 지나게 할 테니 그대가 다리를 끊으시오. 다리 북쪽에서 병력을 이끌고 멀리서 돕는 형세가 되면 장임이 감히 북쪽으로 달아나지 못할 ��이오. 남쪽으로 달아나다가 결국 내 계책에 빠질 것이오."

    파견을 마쳐 공명 스스로 적군을 유인하러 간다.

    한편, 유장은 탁응과 장익 2장을 낙성으로 먼저 보내어 전투를 지원한다. 장임이 장익과 유괴에게 성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 탁응과 더불어 앞뒤 2대로 나눠서 장임은 앞쪽 대오를, 탁응은 뒤쪽 대오를 맡아 적을 물리치러 출성한다. 공명이 1대의 무질서한 병력을 거느리고 금안교를 건너서 장임과 대진한다. 공명이 사륜거를 타고 윤건을 쓰고 깃털부채를 든 채 앞으로 나온다. 그 양쪽으로 1백여 기마병이 빽빽히 호위하는데 멀리 장임을 가리켜 말한다.

    "조조가 백만대군을 거느려도 내 이름만 들으면 줄행랑치거늘 지금 네가 뭐라고 감히 투항하지 않냐?"

    장임이 보자니 공명군의 대오가 가지런하지 못하므로 말 위에서 비웃으며 말한다.

    "남들은 제갈량은 용병이 귀신 같다더니 알고보니 유명무실이구나!"

    장임이 창을 들어 부르자 병사들이 일제히 쳐들어간다. 공명이 사륜거를 버리고 말을 타고 달아나 다리를 넘어간다. 장임이 뒤쫓아 금안교를 건너자 좌우로 현덕군과 엄안군이 덤빈다. 장임이 계책에 빠진 걸 깨닫고 서둘러 퇴군하나 다리는 이미 끊겨 북쪽으로 가려 한다. 그러나 조운의 1군이 강건너 전개하니 감히 북행하지 못하고 남쪽으로 강을 따라 도주한다.

    불과 5, 6리를 달아나서 어느새 갈대가 빽빽한 곳에 다다르자 위연의 1군이 홀연히 갈대숲에서 튀어나와 모조리 긴 창으로 마구 죽인다. 황충의 1군도 갈대숲에 숨어 있다가 긴 칼로 말밥굽을 자른다. 말들이 모조리 쓰러지고 병사들 모두 결박되니 보병들이 감히 오겠는가? 장임이 수십 기마병을 거느려 산길로 달아나다가 장비와 마주친다. 장임이 달아나려 하지만 장비가 크게 호통치자 병사들이 우루루 달려 들어 장임을 사로잡는다. 알고보니 탁응은 장임이 계책에 빠진 것을 보고 벌써 조운에게 투항해서 한꺼번에 큰 영채가 적군에게 넘어간 것이다.

    현덕이 탁응에게 상을 내리는데 장비가 장임을 압송해 온다. 공명도 막사 안에 앉아 있다. 현덕이 장임에게 말한다.

    "촉장들이 바람 앞의 풀처럼 투항하는데 자네는 어찌 어서 투항치 않았는가?"

    장임이 눈을 부릅뜨고 노해 외친다.

    "충신이 어찌 기꺼이 두 주님을 섬기랴!"

    "자네가 천시를 모를 뿐이네. 항복하는 즉시 죽음을 면하리라."

    "오늘 항복하더라도 뒷날은 항복하지 않을 테니 어서 죽여라!"

    현덕이 차마 그를 죽이지 못하지만 장임이 소리높여 크게 욕한다. 공명이 그를 참하라고 하령하여 이름을 남기게 한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찬했다.

    열사가 어찌 두 주님을 따르리? 장임은 충용해 죽음도 삶과 한가지
    그 높고 밝음은 바로 하늘의 달과 같아서 밤마다 찬란히 낙성을 비추네

    현덕이 감탄해 마지않도 하령하여 시수를 거둬 금안교 옆에 묻어서 충의를 드러낸다. 다음날 엄안과 오의 등 한무리 촉의 항장들에게 앞장서게 하니 곧바로 낙성에 이르러 크게 외친다.

    "어서 문을 열고 투항해서 성 안 가득한 생령들의 고초를 면하라!"

    유괴가 성 안에서 크게 욕하자 엄안이 화살을 뽑아들어 그를 쏘려는데 성 위에서 1장이 발검하여 유괴를 베어 쓰러뜨려서 문을 열고 투항한다. 현덕군아 낙성으로 들어가자 유순은 서문으로 빠져나가 성도로 달아난다. 현덕이 방을 붙여 백성을 안심시킨다. 유괴를 죽인 이는 무양 출신의 장익이다.

    현덕이 낙성을 얻어 장수들을 크게 포상한다. 공명이 말한다.

    "낙성을 깨뜨려서 이제 성도도 단지 눈앞이나 오로지 걱정거리는 바깥 고을들의 불안정이오. 장익과 오의는 조운과 함께 외수를 위무하고 강양과 건위 등의 소속 주군들을 평정하시오. 또한 엄안과 탁응은 장비와 함께 파서와 덕양의 소속 주군들을 평정하시오. 관리를 위임하여 다스리고 즉시 병력을 이끌고 성도로 합류하시오."

    이에 장비와 조운이 각각 병력을 이끌고 떠난다. 공명이 묻는다.

    "앞으로 어디에 요새가 있소?"

    촉의 항장들이 말한다.

    "면죽을 대군이 지키는데 면죽을 얻으면 성도도 손에 침뱉듯 얻습니다."

    공명이 진격을 상의하자 법정이 말한다.

    "낙성이 이미 무너져 촉이 위태롭습니다. 주공께서 인의로써 사람들을 복종시키려면 일단 진병하지 마소서. 제가 서찰을 써서 유장에게 이해득실을 두루 말하면 자연히 항복할 것입니다."

    공명이 말한다.

    "효직(법정의 자)의 말씀이 최선입니다."

    글을 써서 성도에 사람을 보내라 한다.

    한편, 유순이 달아나 부친을 만나서 낙성이 함락됐다고 말한다. 유장이 놀라서 관리들을 불러모아 상의한다. 종사 정탁이 계책을 바친다.

    "지금 유비가 비록 성을 공격하고 땅을 빼앗는다 하지만 병력이 그리 많지 않을 뿐더러 선비들도 아직 그에게 붙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들판의 곡식으로 먹고 그 군대에 치중(군수품)이 없습니다. 파서와 재동의 백성들을 모조리 몰아서 부수를 건너서 서쪽으로 옮기는 게 좋겠습니다. 곳간과 들판의 곡식을 불사르며 도랑을 깊게 파고 보루를 높게 쌓아서 그들의 군랴이 바닥나기를 기다리십시오. 그들이 도전해도 절대로 응하지 않으면 나날이 물자가 떨어질 테니 백일을 못 버티고 적병이 자퇴하겠지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하면 유비를 잡습니다."

    유장이 말한다.

    "그렇지 않소. 적병을 막아 백성을 편안히 해주는 것은 들었어도 백성을 수고롭게 움직여 적병을 방비한다는 것은 아직 듣지 못했으니 이 말씀은 보전할 계책이 아니오."

    의논하고 있는데 법정이 서찰을 보냈다는 보고가 올라와 유장이 사자를 불러들인다. 그가 글을 바치자 유장이 뜯어서 읽는데 대략 이렇 다.

    "지난날 저를 보내시며 형주와 우호를 맺으라 하셨으나 뜻밖에 주공 좌우에 올바른 사람이 없어 이렇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형주는 옛정을 살펴서 친족의 우의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주공께서 번연히 깨닫고 귀순하시면 박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거듭 생각하시고 결단하셔서 알려주십시오."

    유장이 발끈하여 서찰을 찢어버리며 크게 욕한다.

    "법정이 주인을 팔아 부귀영화를 구하다니 은혜외 의리를 저버린 도적이로다!"

    결국 사자를 성 밖으로 내치고 자신의 매제 비관에게 병력을 이끌고 가서 면죽을 지키게 한다. 비관이 남양 출신의 이엄 '정방'을 천거하여 함께 병력을 거느린다. 이때 비관과 이엄이 병력 3만을 뽑아서 면죽으로 온다. 익주태수 동화 '유재'는 남군의 기강 출신인데 유장에게 글을 올려 한중의 병력을 빌리라고 한다. 유장이 말한다.

    "장로와 대대로 원수인데 기꺼이 도와주겠소?"

    "비록 원수라 하지만 유비군이 낙성이 있어서 형세가 위급하니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운 격입니다. 이해득실로써 설득하면 기꺼이 따르겠지요."

    유장이 글을 써서 한중으로 사자를 보낸다.

    한편, 마초는 패전하고 강족의 땅으로 들어가서 2년 남짓에 강족의 군대와 우호를 맺어서 농서의 주군들을 공격하다. 이르는 곳마다 모조리 귀순하고 항복하는데 오로지 기성을 함락하지 못한다. 양주자사 위강이 거듭 하후연에게 사람을 보내 구원을 청하지만 하후연은 조조의 허락을 얻지 못해 감히 출병하지 못한다. 구원병이 오지 않자, 위강이 무리와 상의한다.

    "차라리 마초에게 투항해야겠소."

    참군 양부가 곡하며 간언한다.

    "마초 등은 반역도당이온데 어찌 항복하겠습니까?"

    "사세가 이러하니 항복하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겠소?"

    양부가 간언하며 따르지 않지만 위강이 성문을 활짝 열고 마초에게 투항한다. 그런데 마초가 크게 성내며 말한다.

    "사세가 위급해 항복하니 진심이 아니다!"

    위강 등 4십여 인을 모조리 참해 한사람도 남기지 않는다. 누군가 말한다.

    "양부가 위강더러 항복하지 말라 권했으니 참하십시오."

    "의리를 지킨 것이라 참할 수 없소."

    또한 양부를 참군으로 등용한다. 양부가 양관과 조구를 추천하자 마초가 그들을 군관으로 쓴다. 양부가 마초에게 고한다.

    "처가 임조에서 죽었습니다. 두달 남짓 쉬게 해주시면 처의 장례를 치루는대로 돌아오겠습니다."

    마초가 따른다. 양부가 역성을 지나서 무이장군 강서를 찾아가 만난다. 강서는 양부의 고종사촌이다. 강서의 어머니가 양부의 고모인데 이때 이미 82세다. 그날 양부가 강서의 집으로 들어가서 고모에게 절하고 울며 고한다.

    "제가 성을 수비했으나 능히 지키지 못하고 주공은 죽었건만 따라죽지 못하니 부끄러워 고모님을 뵙지 못하겠습니다. 마초는 임금에게 반역하며 함부로 군수를 죽이니 모든 사민들 가운데 그를 미워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이제 형님께서 역성에 주둔하시지만 결국 역적을 토벌할 마음이 없습니다. 이 어찌 인신 人臣의 도리이겠습니까?"

    말을 마치고 피눈물을 흘린다.

    강서의 모친이 듣기를 마치고 강서를 불러들여 꾸짖는다.

    "위사군께서 피살된 것도 네 죄다."

    또한 양부에게 말한다.

    "너는 이미 항복한 사람으로서 그 녹을 먹으며 무슨 까닭으로 그를 토벌할 마음을 먹냐?"

    "제가 도적을 따른 것은 남은 목숨을 이어 주공의 원수를 갚고자 함입니다."

    강서가 말한다.

    "마초는 영용하니 쉽게 도모하기 어렵다."

    양부가 말한다.

    "용맹은 있으나 지모가 없으니 도모하기 쉽습니다. 제가 이미 양관, 조구와 은밀히 약속해 두었습니다. 형님께서 출병하시면 그 두 사람 이 반드시 내응할 것입니다."

    강서의 모친이 말한다.

    "네가 어서 도모하지 않고 또 언제까지 기다릴테냐? 누군들 죽지 않냐? 충의를 위해 죽으면 죽을 자리를 찾은 것이다. 내 걱정은 말거라. 네놈이 의산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내 먼저 죽어 네 염려를 끊겠다!"

    이에 강서가 통병교위 윤봉과 조앙을 만나 상의한다. 알고보니 조앙의 아들 조월이 현재 마초를 따르는 비장이다. 조앙이 그날 응낙하고 집으로 돌아가 아내 왕씨를 만나 말한다.

    "오늘 강서, 양부, 윤봉과 함께 상의해서 위강의 복수를 하고자 하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 아들 조월이 지금 마초를 따르고 있소. 이제 출병하면 마초가 필시 우리 아들을 먼저 죽일 텐데 어찌해야겠소?"

    그 처가 소리높여 말한다.

    "군부 君父의 큰 치욕을 씻는데 비록 제 몸을 버려도 애석하지 않거늘 하물며 한낱 아들 하나이겠소? 당신이 아들을 살펴 떠나지 않으시 겠다면 내 앞장서 죽고 말겠소!"

    조앙이 마침내 결단해 다음날 함께 병력을 일으킨다. 강서와 양부는 역성에 주둔하고 윤봉과 조앙은 기산에 주둔한다. 왕씨가 머리장식과 재물을 모조리 가지고 몸소 기산의 군중으로 찾아가 군을 포상하고 격려한다.

    마초는 강서와 양부가 윤봉, 조앙과 회합해 병력을 일으켜 거사한다는 것을 듣고 크게 노해 즉시 조월을 끌어내 참한다. 방덕과 마대에 게 명령해서 군마를 모조리 일으켜서 역성으로 쇄도한다. 강서와 양부가 병력을 이끌고 나가서 양쪽이 진영을 갖추자 양부와 강서가 하얀 전포를 입고 나와서 크게 욕한다.

    "임금에 반역하는 의롭지 못한 도적들아!"

    마초가 크게 노해 쳐들어가자 양쪽 군대가 혼전한다. 강서와 양부가 어찌해도 마초를 막아내지 못해 대패해 달아난다. 마초가 병력을 휘몰아 뒤쫓는데 배후에서 함성이 일더니 윤봉과 조앙이 달려든다. 마초가 급히 되돌리나 양쪽에서 협공하니 머리와 꼬리가 서로 돌보 지 못한다.

    싸우고 있는데 측면에서 대군이 몰려온다. 알고보니 하후연이 조조의 군령을 얻어서 마침 병력을 이끌고 마초를 치러 온 것이다. 마초가 어찌해도 3로 군마를 막지 못하는지라 대패해 밤새 달아난다. 해뜰 무렵, 기성에 당도해 문을 열라 외치지만 성 위에서 화살을 난사한다. 양관과 조구가 성 위에 서서 마초를 크게 욕하고 마초의 아내 양씨를 성 위에서 한칼에 베어서 그 머리를 내던진다. 또한 마초의 어린 아들 셋과 아울러 가까운 친적 십여 명을 모조리 성 위로 끌어다 한칼에 한사람씩 베어 쓰러뜨린다.

    마초가 목이 메이고 가슴이 막혀서 말 위에서 굴러떨어질 뻔한다. 배후에서 하후연이 병력이 이끌고 오니 그 세력이 큰 것을 본 마초는 감히 싸우고 싶지 않아 방덕과 마대와 더불어 급히 한줄기 도주로를 뚫는다. 달아나다 앞쪽에서 강서와 양부와 마주쳐 한바탕 무찌른다. 그곳을 뚫고 나오다 윤봉과 조앙과 마주쳐 다시 한바탕 무찌른다. 병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겨우 5, 6기만 남아서 그날밤 달아난다. 4경 전후에 역성 아래까지 달아나자 문지기가 강서의 병력이 돌아온 줄만 알고 성문을 크게 열어 맞이한다. 마초가 남쪽 성문에서 급습해 성 안 백성 모두에게 앙갚음한다. 강서의 집에 이르러 그 노모를 끌어내나 노모는 아무 두려운 기색이 없이 마초를 가리켜 크게 욕한다. 마초가 크게 노해서 몸소 검을 뽑아 죽인다. 윤봉과 조앙의 집안 남녀노소 역시 모조리 마초에게 죽는다. 조앙의 아내 왕씨는 군중에 있어서 그 난리를 모면한다.

    다음날, 하후연의 대군이 몰려오자 마초는 성을 포기하고 급히 나와 서쪽으로 달아난다. 불과 20 리를 못 가서 그 앞쪽에 1군이 막아서니 앞장선 이는 바로 양부다. 마초가 이를 갈며 그를 증오해 말에 박차를 가해 창을 꼬나잡고 찔러 죽이려 한다. 양부의 형제 7인이 일제히 몰려와 싸움을 돕는다. 마대와 방덕이 그들 뒤의 병사들을 막아 세우고 양부의 7형제는 모조리 마초에게 살해된다. 양부는 몸 다섯군 데를 창에 찔리고도 오히려 죽기로 싸웠다. 뒤에서 하후연의 대군이 추격하자 마초가 마침내 달아난다. 오로지 방덕과 마대 등 6, 7기가 뒤따라 간다.

    하후연이 몸소 여러 고을의 인민을 어루만지고 강서 등에게 곳곳을 나눠 지키게 하고 양부를 수레에 태워 허도로 보낸다. 조조가 양부를 관내후로 봉하지만 양부는 사양한다.

    "저는 간난지공 捍難之功 (외적을 막아낸 공로)도 없을 뿐더러 사난지절 死難之節 (재난을 맞아 순직하는 절개)도 없사오니 법에 따라 주살돼야 마땅하지 무슨 낯으로 직위를 받겠사옵니까?"

    조조가 그를 기려서 기어이 작위를 주고 만다.

    한편, 마초는 방덕, 마대와 더불어 상의하더니 한중으로 장로를 찾아간다. 장로가 크게 기뻐하며 마초를 얻었으니 서쪽으로 익주를 병탄하고 동쪽으로 조조에게 맞설 만하다고 여긴다. 이에 딸을 마초에게 줘 사위로 삼을 것을 상의하자 대장 양백 楊 柏이 간언한다.

    "마초의 처자식이 참화를 맞은 것은 모두 마초가 남에게 해를 끼쳤기 때문이지요. 어찌 따님을 주려고 하십니까?"

    이에 장로가 마초를 사위로 맞이하려던 의논을 그만둔다. 누군가 양백의 말을 마초에게 알리자 마초가 대노해 양백을 죽일 마음을 품는다. 양백도 이를 알고 형 양송과 상의해 역시 마초를 도모할 마음을 갖는다.

    그때 유장의 사자가 장로에게 구원을 청하지만 장로가 거부한다. 유장이 다시 황권을 사자로 보냈다고 한다. 황권이 먼저 양송을 설득한다.

    "동천과 서천, 양천은 참으로 입술과 이빨 같은 관계요. 서천이 깨지면 동천도 보전하기 어렵소. 기꺼이 구원해준다면 20주를 떼어주리다."

    양송이 크게 기뻐하며 황권을 장로에게 데려가서 순망치한의 이해와 더불어 20주를 할양하여 보답할 것이라 말하니 장로가 기뻐하며 따른다. 파서 출신의 염포가 간언한다.

    "유장은 주공과 대대로 원수입니다. 지금 형세가 위급하자 구원을 구하며 거짓으로 땅을 떼어준다는 것이니 따르지 마십시오."

    그런데 계단 아래에서 누군가 나오며 말한다.

    "비록 재주 없으나 1군을 이끌고 가서 유비를 생포하고 영토를 할양하도록 만들겠습니다."

    바야흐로 참된 주인이 서촉으로 왔건만 또다시 정예병이 한중으로 출격하겠구나.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