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63회 제갈량이 방통을 잃어서 통곡하고 장익덕이 의롭게 엄안을 풀어준다

    한편, 법정과 그 사람은 만나더니, 각각 손뼉을 치며 웃는다. 방통이 묻자 법정이 말한다.

    "이 분은 광한 출신의 팽양 '영언'인데 촉중의 호걸이오. 올곧은 말로 유장을 화나게 만든 탓에 사로잡혀 칼이 씌워져 노역하는 죄수가 되어 이렇게 짧은 머리가 됐소."

    방통이 이에 손님을 맞는 예우하며 무슨 일로 왔는가 묻자 팽양이 말한다.

    "내 특별히 수만의 생명을 구하고자 왔소. 유장군을 만나뵙고 말씀드려야겠소."

    법정이 현덕에게 알리자 현덕이 친히 알현하며 까닭을 물으니 팽양이 말한다.

    "장군께서 얼마나 많은 군마를 앞쪽 영채에 두고 계시옵니까?"

    현덕이 바른대로 고한다.

    "황충과 위연이 거기 있소."

    "장수된 도리로서 어찌 지리를 알지 못하십니까? 앞쪽의 영채는 부강을 끼고 있으니 강물을 터뜨리고 앞뒤를 차단하면 한사람도 달아나지 못합니다."

    현덕이 크게 깨닫자 팽양이 말한다.

    " 강성 罡星(북두칠성)이 서쪽에 있고 태백은 이곳에 임하니 불길합니다. 반드시 신중해야 합니다."

    현덕이 팽양을 막빈으로 앉히고 위연과 황충에게 알려 아침저녁으로 세심히 순찰하여 수공을 대비하게 한다. 황충과 위연이 상의한다.

    "두 사람이 각각 하루씩 번갈아 하고, 적군이 도래하면 서로에게 통보합시다."

    한편, 냉포는 밤에 바람이 크게 일자, 5천군을 거느려, 곧 강변을 돌아 진군해 결강(강물을 터뜨림)을 준비하는데, 후면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난다. 냉포가 적군의 준비가 있음을 알아차려, 급급히 회군한다. 후면에서 위연이 군을 거느려 뒤쫓으니 서천의 병사들이 서로 엉켜 짓밟힌다. 냉포가 한창 달아나다 바로 위연과 마주친다. 두 말이 엇갈려 불과 몇합에 위연이 생포해버린다. 오란과 뇌동이 구하러 오지만 역시 황충의 일군이 무찌른다. 위연이 냉포를 압송해 부관에 이르자 현덕이 책망한다.

    "내 인의로써 너를 대하여, 풀어줘 돌려보냈거늘 어찌 배반하냐! 이번은 용서하기 어렵다!"

    냉포를 끌어내 참하고, 위연을 크게 포상한다. 현덕이 연회를 베풀어 팽양을 환대한다. 그런데 형주의 제갈량 군사 軍師가 특별히 마량을 보내어 서신을 전달한다고 한다. 현덕이 부르자 마량이 인사를 마치고 말한다.

    "형주는 평안하오니, 주공께서 우려하시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군사의 서신을 바친다. 현덕이 뜯어 읽으니, 대략 이렇다.

    '제가 밤에 태을수 太乙數 (일종의 점성술)를 보니, 금년 세차가 계해 癸亥인데 강성이 서쪽에 있습니다. 또한 건상 乾象 (천문현상)을 살피니 태백성이 낙성 雒城 쪽에 임하였습니다. 이러므로 주장 主將의 신상에 흉사는 많고 길사는 적겠으니 절대 근신하셔야 합니다.'

    현덕이 서찰을 읽고나서 곧 마량을 먼저 되돌아가라 지시한다. 현덕이 말한다.

    "곧 형주로 되돌아가 이 일을 의논하겠소."

    방통이 가만히 생각한다.

    '공명이 내가 서천을 취해 공을 이룰까 두려워서 고의로 이 서신으로써 가로막는구나.'

    이에 현덕을 마주해 말한다.

    "저 역시 태을수를 헤아리니, 이미 강성이 서쪽에 있음은 주공께서 서천을 아울러 가질 징조이지, 따로 흉사와 무관합니다. 저 역시 천문을 살펴 점치니, 태백성이 낙성에 임한 것은 먼저 촉의 장수 냉포를 참한지라, 이미 흉한 징조에 응한 것입니다. 주공께서 의심치 마시고 서둘러 진병하소서."

    현덕이 방통의 거듭된 재촉을 받아 진군하자 황충과 위연이 영채 안으로 모신다. 방통이 법정에게 묻는다.

    "낙성으로 앞서가려면, 어떤 길이 있겠소?"

    법정이 땅에 지도를 그린다. 현덕이 장송이 남긴 도본을 가져와 대조하니 전혀 착오가 없다. 법정이 말한다.

    "산의 북쪽에 한갈래 큰 길이 있는데 낙성의 동문으로 통합니다. 산의 남쪽에 작은 길은 낙성의 서문으로 통합니다. 양쪽 길 모두 진병할 수 있습니다."

    방통이 현덕에게 말한다.

    "제가 위연을 선봉 삼아, 남쪽 좁은 길로 진군하겠습니다. 주공께서는 황충을 선봉으로 삼으셔 산의 북쪽 큰 길로 진군하십시오. 함께 낙성에 당도해 일제히 취해야겠습니다."

    현덕이 말한다.

    "나는 젊어서부터 궁마(활쏘기와 말타기)에 익숙하고, 좁은 길도 많이 다녔으니 군사께서 대로를 따라 동문을 취하러 가시지요."

    "대로는 틀림없이 적병들이 요격할 테니, 주공께서 병력을 이끌고 맞서야 하십니다. 저는 좁은 길을 취하겠습니다."

    "군사, 그것은 불가합니다. 내 한밤 꿈속에서 신인이 철봉으로 내 오른팔을 내리쳐서 깨어나서도 팔이 아팠는데 아무래도 길조는 아닙니다."

    "장사가 임진(전장에 나섬)하여 불사대상 不死帶傷 (죽지 않더라도 부상을 입음)은 자연스런 이치이옵니다. 어찌 꿈속의 일로써 의심하겠습니까?"

    "내가 주저하는 것은 공명의 서찰 때문입니다. 군사께서 부관 涪關 (부수관)으로 되돌아가 수비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방통이 껄껄 웃으며 말한다.

    "주공께서 공명 때문에 주저하시는군요. 제가 홀로 큰 공을 크게 세우는게 싫어서 이런 말로 주공의 마음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의심이 생기니 그런 꿈을 꾼 것이지 무슨 흉사가 있겠습니까? 저는 간뇌도지 肝腦塗地(싸우다 간과 뇌가 터져 땅을 뒤덮음)하더라도 참으로 흡족할 것이옵입니다. 주공께서 더 이상 말씀하시지 마시옵소서. 내일 아침 어김없이 떠나겠습니다."

    그날 하령하여 병사들은 5경에 밥을 지어 해뜰무렵 승마한다. 황충과 위연이 진병한다. 현덕이 다시 방통과 약정하는데 방통이 타는 말이 갑자기 낯을 가리며 눈앞에서 앞으로 고꾸라져 방통이 번쩍 치솟더니 떨어진다. 현덕이 하마하여 그 말을 낚아채고 말한다.

    "군사께서 어찌 이리도 열등한 말을 타십니까?"

    "이 말을 탄지 오래이오나 이런 적은 없었습니다."

    "전장에 나가는 말이 낯을 가려 사람의 생명을 그르치겠습니다. 내 타던 백마는 성미가 극히 순하고 길들여져 있으니 군사께서 타시더라도 만에 하나도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저 못난 말은 내 스스로 타겠습니다."

    결국 방통에게 자신이 타던 말을 바꿔준다. 방통이 사례한다.

    "주공의 두터운 은혜, 심히 감사드립니다. 비록 만번 죽어도 갚지 못하겠습니다."

    각각 승마하여 길을 따라 나아간다. 현덕이 방통을 떠나보내고 마음속으로 몹시 편치 않아 앙앙불락 길을 간다.

    한편, 낙성 안에서 오의와 유괴는 냉포를 잃은 것을 듣고 사람들과 상의한다. 장임이 말한다.

    "성의 동남쪽 산골에 좁은길이 중요한 곳이라 제가 1군을 거느려 지키겠습니다. 여러분은 낙성을 견고히 수비하여 실수 없도록 하십시오."

    그런데 한병 漢兵이 양면으로 나눠 낙성을 치러 온다고 한다. 장임이 급히 3천군을 거느려 좁은길에 매복한다. 위연군이 지나가자 장임이 모조리 지나가게 놔두고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하령한다. 그뒤에 방통의 병력이 오자, 장임의 어느 병사가 멀리 군중의 대장을 가리켜 말한다.

    "백마를 탄 사람은 틀림없이 유비입니다."

    장임이 크게 기뻐하며 지시한다.

    한편, 방통은 쉬지않고 전진하다가 머리를 들어보니 양쪽의 산이 협착한데다 수목이 빽빽하다. 게다가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로 접어들어 나뭇잎이 무성하다. 방통이 몹시 의심스러워 말을 잡아세워 묻는다.

    "이곳의 지명은 무엇인가?"

    병사들 가운데 새로 항복한 병사가 가리켜 말한다.

    "이곳의 지명은 낙봉파 落鳳坡이옵니다."

    방통이 놀라 말한다.

    "내 도호 道號가 봉추인데 이곳의 이름이 낙봉파라니 내게 불리하겠구나!"

    병사들에게 급히 후퇴를 명한다. 그러나 산비탈 앞에서 한차례 포성 울리더니 화살이 메뚜기떼처럼 쏟아져 오로지 백마 탄 사람에게만 집중된다. 가련하도다! 방통은 결국 어지러운 화살비 속에 죽고만다. 이때 나이 36세다. 후인이 시를 지어 기렸다.

    옛고개 잇달아 첩첩이 불그락푸르락한데, 방사원 무덤, 산모통이 가까이 있구나.
    아동들도, 그의 비둘기 부르는 노래 잘 알고, *여항에서도 그 기재 펼침을 들었네.
    천하를 삼분해 *각삭을 편평히 하고, 만리를 내달려 홀로 휘저어다녔지만,
    누가 알았으리! *천구가 유성을 떨어뜨려, 장군의 금의환향을 막아버릴 줄을!

    이에 앞서 동남쪽에 이런 동요가 있었다.

    봉황 하나와 용 하나, 장차 함께 촉으로 오더니,
    얼마 못가 도중에, 봉황은 낙봉파 동쪽에서 죽네.
    바람은 비를, 비는 바람을 부르며,
    한나라 흥륭할 때 촉으로 가는 길 열리더니,
    촉으로 가는 길 열리자 와룡만 남는구나.

    이날 장임이 방통을 사살하고 한군은 가로막혀 진퇴하지 못하니 죽은 이들이 태반이다. 선두부대가 위연에게 급보하자, 위연이 황망히 물러나려 하지만 산길이 협착하여 제대로 싸울 수 없다. 게다가 장임이 퇴로를 끊고 높은 언덕에서 강궁과 경노로 사격하니 위연이 당황한다. 얼마전 항복한 촉병이 말한다.

    "차라리 낙성 아래로 달려가서 대로를 취하는 게 낫겠습니다."

    이에 위연이 선두에서 길을 개척하여 낙성 아래로 달려가니 먼지구름 일면서 앞에서 1군이 쇄도한다. 바로 낙성의 수장, 오란과 뇌동이다. 뒤에서도 장임이 병력을 이끌고 추격하여 앞뒤로 협공하니 위연이 포위된다. 위연이 결사로 싸우나 탈출하지 못한다. 그런데 오란과 뇌동의 후미가 혼란하니 2장이 급히 말머리를 돌린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위연이 추격한다. 선두의 장수가 말에 박차를 가하며 외친다.

    "문장! 내가 구하러 왔소!"

    누군지 바라보니 노장 황충이다. 양쪽에서 협공하여 오, 뇌 2장을 추격하여 낙성 아래로 쳐들어간다. 유괴가 병력을 이끌고 튀어나오지만 현덕이 뒤에서 돕는다. 황충과 위연이 몸을 돌려 되돌아간다.

    현덕군이 영채 안으로 달려가자 장임군이 좁은길에서 나와서 차단한다. 유괴, 오란, 뇌동이 앞장서 추격하자 현덕이 두 영채를 지켜내지 못하고, 전투와 후퇴를 반복하며 부관까지 달아난다. 촉병이 승리를 거둬 쉬지않고 뒤쫓는다. 현덕의 인마들이 지치고 힘이 다하니, 마음은 싸우고 싶어도 오로지 달아날 뿐이다. 부관 가까이 이르러 장임의 1군이 급박하게 추격하는데, 다행히 좌변에서 유봉, 우변에서 관평, 2장이 3만명의 힘이 생생한 병력을 이끌고 나와, 장임을 격퇴하고 도리어 20리를 추격하여 빼앗은 전마(싸움에 쓰는 마필)가 극히 많다.

    현덕이 거느리는 군마가 다시 부관으로 들어간다. 방통의 소식을 물으니 낙봉파에서 달아나 목숨을 건진 병사가 보고한다.

    "군사께서 타신 말과 함께, 무수한 화살을 맞아 낙봉파 앞에서 숨지셨습니다."

    이에 현덕이 서쪽을 바라보며 통곡해 마지않더니, 멀리 그의 혼을 부르며 제사를 지낸다. 장수들 모두 통곡한다. 황충이 말한다.

    "금번에 방통 군사를 잃고 장임은 반드시 부관을 치러 올 것인데 어찌하시겠습니까? 사람을 형주로 보내 제갈 군사를 청해, 서천을 얻을 계책을 상의함만 못합니다."

    이야기 중에 누군가 알린다.

    "장인이 군을 이끌고 성 아래에서 도전합니다."

    황충과 위연이 출전하려 하자 현덕이 말한다.

    "아군의 예기가 방금 꺾였으니 견고히 수비하며 제갈 군사가 당도하기를 기다려야겠소."

    이에 황충과 위연이 성지를 굳게 지킬 따름이다. 현덕이 1봉의 서신을 적어 관평에게 분부한다.

    "너는 나를 위해 형주로 가서 군사께 청하라."

    관평이 서신을 받아, 그날밤 형주로 찾아온다. 현덕이 부관을 굳게 지킬 뿐, 밖으로 나가 싸우지 않는다.

    한편, 공명은 형주에서 이때 칠석칠석 명절을 맞이하여 관리들을 크게 모아 야간연회를 베풀며 다함께 서천을 얻는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서쪽에 북두성처럼 큰 별이 추락하여 휘황한 빛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공명이 깜짝 놀라 술잔을 던지더니 얼굴을 가려 통곡한다.

    "슬프구나! 비통하구나!"

    관리들이 황망히 까닭을 묻자 공명이 말한다.

    "내 지난번에 헤아리니 금년에 강성이 서쪽에 있어 방군사께 불리하다 여겼소. 천구 天狗 (하늘의 못된 괴물)가 아군을 범하고 태백이 낙성에 임하기에 주공께 조심하며 방비하시라 하였소. 누가 상상이나 했겠소! 오늘저녁 서쪽에서 별이 떨어진 것을 보니 방사원께서 틀림없이 숨지셨소!"

    말을 마치고 통곡하며 말한다.

    "우리 주께서 한팔을 잃으신 것이오!"

    관리들 모두 놀라 아직 믿지 못한다. 공명이 말한다.

    "며칠 안에 반드시 소식이 있을 것이오."

    그날 저녁 술자리를 다 즐기지 못하고 해산한다.

    며칠 뒤, 공명이 관운장 등과 앉아 있는데, 관평이 왔다고 하니 관리들 모두 놀란다. 관평이 현덕의 서신을 바친 것을 공명이 읽으니 내용은 이렇다.

    '본년 7월 초이레, 방군사께서 낙봉파 앞에서 장임에게 사살되셨소.'

    공명이 통곡하고 관리들 가운데 눈물흘리지 않는 이 없다. 공명이 말한다.

    "주공께서 부관에서 진퇴양난이니 내가 가지 않을 수 없소."

    운장이 말한다.

    "군사께서 가시면 누가 형주를 지키겠소? 형주는 중요한 곳이라 책임이 가볍지 않소이다."

    "주공께서 서신에 그 사람을 분명히 적지 않으셨으나 내 이미 그 뜻을 알고 있소."

    이에 현덕의 서신을 관리들에게 보이며 말한다.

    "주공께서 서신에서, 형주를 이 몸에 맡기시며 내 스스로 사람의 재능을 헤아려 위임하라 하셨소.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에 관평에게 서신을 줘서 보내신 것은 운장공에게 중임을 맡기시려 하시는 뜻이오. 운장께서 도원결의의 정을 생각하셔 힘써 이곳을 지켜주시오. 책임이 가볍지 않으니 공께서 힘써주시오."

    운장이 사양하지 않고 개연히 승낙한다. 공명이 연회를 베풀어 관인과 끈을 넘겨주니 운장이 두손으로 받는다. 공명이 관인을 들어 말한다.

    "이러한 중책이 모두 장군 한몸에 달렸소."

    "대장부가 중임을 맡았으니 죽어서야 쉬겠소이다."

    공명은, 운장이 말한 '죽을 사 死' 자가 마음속으로 내키지 않는다. 관인을 넘겨주고 싶지 않으나 이미 말이 나온지라 이른다.

    "만약 조조가 병력을 이끌고 침범하면 어찌 대처하시겠소?"

    "무력으로 막아내겠소."

    공명이 다시 말한다.

    "만약 조조와 손권이 일제히 병력을 일으켜 온다면 어찌하시겠소?"

    "병력을 나눠 막겠소."

    "그러면, 형주는 위태롭소. 내게 8자가 장군께서 명심하시면 형주를 지켜내실 수 있소."

    운장이 그 8자를 묻자 공명이 말한다.

    "북거조조 北拒曹操 (북쪽으로 조조를 막고),동화손권 東和孫權 (동쪽으로 손권과 화친하라)"

    "군사의 말씀, 마땅히 폐부에 새기겠소."

    공명이 결국 관인을 넘겨주고 문관으로 마량, 이적, 향랑, 미축을, 으로무장 미방, 요화, 주창을 한무리로 운장을 보좌해 함께 형주를 수비하게 한다. 한편으로 친히 병력을 통솔해, 서천으로 들어간다. 정병 1만을 먼저 떼어내 장비가 큰길을 따라 파주, 낙성의 서쪽으로 급행한다. 선두로 도착하는 것을 수훈으로 한다. 다시 1군을 떼어내어 조운이 선봉으로 강을 거슬러 낙성에서 합류하게 한다. 공명이 뒤따라 간옹과 장완등을 거느 리고 길을 나선다. 장완의 '자'는 공염으로 영릉의 상향 출신이다. 형주의 명사인데 지금은 서기를 맡고 있다.

    그날 공명이 1만 5천의 병력을 이끌고 장비와 더불어 같은 날 출발한다. 장비가 떠날 때 공명이 당부한다.

    "서천에 호걸이 몹시 많으니 가볍게 대적하지 마시오. 도중에 삼군을 타이르고 단속하여 백성을 노략질하는 것으로 민심을 잃어선 아니 되오. 도처에서 군을 위로하고 구휼하지 절대 사졸들을 채찍질하지 마시오. 장군을 어서 낙성에서 만나기를 바라니 실수가 없도록 하시오."

    장비가 흔쾌히 응낙하고 승마하여 출발하고 쉬지않고 진군한다. 도처에서 항복하는 이들을 추호도 범하지 않는다. 곧장 한천의 길을 따라 파군에 이르자 세작이 보고한다.

    "파군태수 엄안은 촉의 명장으로 비록 연로하나 정력이 아직 쇠하지 않았습니다. 강궁을 잘 쏘고 큰칼을 쓰는데 만명의 사내도 당하지 못할 용맹을 가졌습니다. 성곽에서 아직 항복의 깃발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장비가 성 밖 10리에 영채를 세우고 사람을 성으로 들여보내며 말한다.

    "늙은 필부에게 이렇게 말하라. 어서 항복하면, 너희 성안 가득한 백성의 목숨을 살려주마! 만약 귀순하지 않으면, 즉시 성곽을 밟아서 편평하게 하여 늙은이나 어린이도 남겨두지 않겠다!"

    한편, 파군에서 엄안은 '유장이 법정을 보내어 현덕을 서천으로 불러들인 것'을 듣고 가슴을 치며 한탄했다.

    "이른바 외진 산속에 홀로 앉아 호랑이를 불러들여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격이구나!"

    그뒤 현덕이 부관을 점거하자 대노해 수차례 병력을 이끌고 싸우고자 했으나 이쪽 길로 적병이 올까 두려워했 다. 그날 장비가 병력을 이끌고 오자 부하 인마 5, 6천을 거느리고 대적할 준비를 한다. 누군가 계책을 바친다.

    "장비는 당양의 장판에서 대갈일성으로 조조의 백만대군을 쫓아냈습니다. 조조도 그의 풍문만 듣고도 피한다니 가볍게 맞설 수 없습니다. 이제 해자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아 견고히 수비해야지 출전하지 마십시오. 적군은 군량이 없어 한달만에 자연히 퇴거합니다. 게다가 장비는 성미가 열화 같아 오로지 사졸들을 매질할 뿐입니다. 싸우지 않으면 반드시 노할 것이고 노하면 난폭한 기운으로 병사들을 대할 터입니다. 군심이 일변할 때 기회를 잡아서 친다면 장비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에 엄안이 병사들에게 모조리 성 위에서 수비하도록 한다. 그런데 어느 병사가 크게 외친다.

    "개문 開門하시오!"

    엄안이 그를 불러들여 묻는다. 그가 고하기를, 장장군께서 보냈다면서 장비의 언어를 그대로 이야기한다. 엄안이 대노해 욕한다.

    "필부 놈이 어찌 감히 무례하냐! 나 엄장군이 어찌 도적에게 항복할 사람이겠냐!"

    무사를 불러 그의 귀와 코를 잘라 장비의 영채로 돌려보낸다.

    병사가 돌아와 장비를 만나 통곡하며 엄안이 이렇게 신체를 훼손하고 욕했다고 한다. 장비가 대노해 이를 갈고 눈을 부릅뜨고 갑옷을 걸치고 승마하여 수백 기를 거느려 파군성 아래로 달려가 도전한다. 성 위에서 병사들이 온갖 욕을 다한다. 장비가 성급하여 몇번이나 조교(해자 위에 놓여 있다가 유사시 들어올려 성문을 수비하는 다리) 쪽으로 달려가지만 성의 해자가 가로막고 화살이 빗발치니 돌아선다. 저녁이 되도록 아무도 나오지 않자 장비가 뱃속의 노기를 억누르고 영채로 돌아간다. 이튿날 이른 아침 다시 병사를 이끌고 도전한다. 엄안이 성의 망루 위에서 화살 한발로 장비의 투구를 맞힌다. 장비가 손가락질하며 미워한다.

    "늙은 네놈을 사로잡아 네 고기를 씹어주마!"

    저녁에 이르러 헛되이 돌아간다. 제3일에 장비가 군을 이끌고 성벽을 따라 돌며 욕한다. 원래 이 성은 산성이라 둘레는 모조리 험 준한 산이다. 장비가 몸소 말을 타고 산을 올라서 성 안을 내려다보니 성 안 병사들 모두 갑옷을 걸치고 5대로 나눠 서서 매복하고 나오지 않고 있다. 백성들이 오가며 벽돌과 돌을 나르며 상조하여 성을 지킨다. 장비가 기마병은 하마하고 보병은 모두 앉게 하령하여 적군을 유인하지만 적군은 미동도 없다. 다시 하루종일 욕하다가 지난번처럼 헛되이 돌아간다. 장비가 영채 안에서 생각에 잠긴다.

    '종일 크게 욕해도 나오지 않으니 어찌해야겠냐?'

    돌연히 1계를 떠올려 병사들에게 도전하러 나가지 말고 모두 한데 모여서 영채 안에서 전투를 대기하라고 한다. 그리고 3, 5십 인의 병사에게 성아래에서 크게 욕하여 엄안군을 유인해 싸우라고 한다. 장비가 주먹을 문지르고 손을 비비며 오로지 적군이 오기를 기다린다. 병사들이 연사흘 욕하지만 적들은 꿈쩍도 않는다. 장비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1계를 짜내어 병사들에게 사방으로 흩어져 땔감을 베고 주변의 길을 수색하되 싸움을 걸지는 말라고 한다. 엄안이 성중에서 살피니 몇일째 장비의 동정이 없어 심중으로 의혹이 인다. 십수 명의 병를 장비의 땔감을 모으는 병사로 위장시킨다. 몰래 성을 나가 적군에 섞여들어 산속에서 탐청하게 한다.

    그날 병사들이 귀대하자 장비가 영채 가운데 앉아 발을 구르며 크게 욕한다.

    "엄안 늙은 필부가 내 분통을 터뜨려 죽이겠구나!"

    그런데 군중에서 3, 4명의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장군! 노심초사 하실 것 없습니다. 요며칠 찾아보니 좁은길이 하나 있어 파군으로 암행하면 되겠습니다."

    장비가 고의로 크게 외친다.

    "그런 곳을 어찌 빨리 말하지 않았냐?"

    모두 응답한다.

    "요며칠 사이 겨우 알아낸 것입니다."

    "일을 지체할 수 없으니 오늘밤 2경에 밥을 지어 3경에 달 밝을 때 영채를 거두고 모두 일어나 사람은 입에 나뭇가지를 물고 말방울을 제거해 은밀히 진군하겠다. 내 친히 전면에서 개척할테니 너희는 차례대로 따르라."

    전군에 하령한다.

    세작으로 들어온 졸병이 소식을 듣고 성으로 돌아가 엄안에게 보고하자 엄안이 크게 기뻐한다.

    "나는 필부놈이 못 견딜 줄 알고 있었다! 네놈이 좁은길을 몰래 지난다고 하지만 군량과 기물을 후미에 둘테니 내가 뒷길을 끊으면 네놈이 어찌 지나가겠냐? 무모한 필부놈이 내 계책에 빠졌구나!"

    병사들에게 전령하여 전투준비를 갖추라 한다.

    "오늘밤 2경에 밥을 지어 3경에 출성하여 수풀 우거진 데에 매복하겠다. 장비가 길목의 좁은길을 지나게 하고, 그뒤 수레와 짐이 올 때 일제히 돌진하라."

    호령을 전하고 점점 밤이 되자 엄안의 전군이 모조리 포식하고 갑옷을 걸치고 준비를 마쳐 은밀히 출성하여 오로지 북소리만 기다린다 . 엄안은 몸소 십수 기의 비장 裨將(수행원)을 거느려, 말에서 내려 숲속에 매복한다. 대략 3경이 지나 멀리 장비가 선두에서 장팔사모를 빗겨든 채 말을 타고 은밀히 진군한다. 3리를 못 가서 후미에서 수레와 인마가 속속 진발한다. 엄안이 확신하고 일제히 북을 울리니 사방에서 복병이 모조리 일어난다. 수레와 짐을 빼앗는데 배후에서 한바탕 징소리 울리더니 1군이 기습하면서 호통친다.

    "늙은 도적아! 달아나지 마라! 내 마침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안이 급히 고개를 돌리니 앞장선 대장은 표범머리, 고리눈, 제비턱, 호랑이수염에 장팔사모를 들고 새까만 말을 탄 장비다. 사방에서 징소리 진동하고 병사들이 달려든다. 엄안이 장비를 발견하고 당황해 어찌 손쓸지 모른다. 교전 1합만에 장비가 일부러 실수하는 척한다. 엄안이 한칼에 베러 오자 장비가 슬쩍 피하며 엄안의 갑옷 솔기를 잡아채어 사로잡는다. 그를 땅바닥에 내던지니 병사들이 달려와 밧줄로 묶는다. 알고보니 앞서 지나간 사람은 가짜 장비다. 또한 엄안이 북소리를 신호로 삼을 것을 헤아린 장비가 도리어 징소리를 신호로 삼은 것이다. 징소리에 병사들이 일제히 몰려오니 서천병 태반이 갑옷을 버리고 창을 거꾸로 잡고 항복한다.

    장비가 파군성 아래 쇄도하니, 후군은 이미 스스로 성에 들어가 있다. 장비가 소리쳐 백성을 살륙하지 말라 하며, 방문을 붙여 백성을 안심시킨다. 도부수들이 엄안을 끌고 온다. 장비가 대청 위에 앉아 있는데, 엄안은 무릎 꿇으려 하지 않아, 장비가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며 크게 꾸짖는다.

    "대장께서 오셨거늘 어찌 항복하지 않고 감히 맞서냐?"

    엄안이 전혀 두려운 빛 없이 되받아 장비를 꾸짖는다.

    "너희가 의롭지 못하게 우리 고을을 침범했다! 목이 잘린 장군은 있을지언정, 항복하는 장군은 없을 것이다!"

    장비가 크게 노해 좌우에 호통쳐 참하라 한다. 엄안이 소리친다.

    "도적 필부놈아! 베려면 벨 것이지, 왜 화를 내냐!"

    엄안의 성음(목소리)이 웅장하고, 얼굴빛이 전혀 바뀌지 않는 것을 본 장비가 화진작희 回嗔作喜 (화를 내다 기뻐함), 계단을 내려가 좌 우를 꾸짖어 물리고, 친히 그 포박을 풀어주고, 옷을 가져다 입힌다. 그를 부축해 가운데 높은 자리에 앉혀 머리 숙여 절하며 말한다.

    "방금 제 언어가 모독한 것을, 아무쪼록 책망하지 마시오. 내 본래 장군께서 호걸스런 인물인 것을 알고 있었소."

    엄안이 그 은의에 감격해 항복한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엄안을 기렸다.

    백발이 되어 서촉에 머물며 그 맑은 이름 큰 나라에 떨치네
    충성스런 마음은 밝은 해 같고 호기는 장강을 감아도네
    차라리 목이 잘려 죽을지언정, 어찌 무릎꿇어 항복하리?
    파주의 연로한 장수, 천하에 다시는 그 같은 이 없으리!

    또한 장비를 기리는 시가 있었다.

    엄안을 생포하니 용맹은 절륜하고, 오로지 의기로써 군민을 복종시키네
    지금도 그 *묘모가 파촉에 남아, 해마다 봄제사에 술과 고기 바친다네

    장비가 서천으로 들어갈 계책을 묻자 엄안이 말한다.

    "패군지장이 두터운 은혜를 입었는데 보답할 길이 없으니 개나 말의 수고로움이라도 다하겠소. 활을 당겨 화살 한촉 쏠 것 없이 성도를 취할 수 있소."

    한 장수 마음을 기울이자, 여러 성들이 잇달아 손에 침뱉듯 쉽게 항복하게 만들구나.

    그 계책이 무엇인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