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69회 관로가 주역으로 점을 쳐서 기미를 알아채고 다섯 충신이 한나라 역적을 토벌하다가 순절한다

    한편 그날 조조는 검은 바람이 불며 시체들이 모두 일어나자 놀라 바닥에 쓰러진다. 잠시 뒤 바람이 멎자 시체들 모두 보이지 않는다. 좌 우 사람들이 조조를 부축해 궁궐로 돌아오지만 놀란 탓에 병이 생긴다. 후대에 누군가 시를 지어 좌자를 기렸다.

    날아올라 구름을 넘어 구주를 두루 돌아
    오로지 둔갑술을 믿고 스스로 *오유하네
    아무렇지 않게 신선의 술법을 펼쳐보여
    조조 놈을 놀래 고개도 못 돌리게 하네

    조조가 병이 들어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다. 마침 태사승 허지가 허창에서 조조를 찾아온다. 조조가 그더러 점을 치게 한다. 허지가 말한 다.

    "대왕께서는 신복 神卜 관로 管輅의 소문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그 명성을 듣긴 하였으나 아직 그 재주를 모르오. 자세히 말해보시오."

    "관로의 자는 공명이온데 평원 사람입니다. 용모는 거칠고 추한데다 술을 좋아해 미친 듯이 마십니다. 그 아버지가 일찍이 낭야군의 구 장이었습니다. 관로가 어려서부터 하늘의 별들을 우러러 보기를 좋아해 밤에 잠잘 생각이 없었으나 아버지가 금지할 수 없습니다. 늘 이 르기를, '집안의 닭이나 들판의 고니도 오히려 스스로 때를 알거늘 하물며 사람이 되어 세상을 살면서이겠습니까?' 라 하였습니다. 이웃 아이들과 놀 적에도 관로는 땅에 천문을 그려 일월성신을 펼쳐놓았습니다. 이윽고 조금 자라자 주역을 깊이 밝히고 풍각 風角(고대 점술 의 하나)을 우러러 살피며 수학은 귀신 같은데다 관상도 잘 보게 되었습니다.

    「瑯琊太守單子春聞其名,召輅相見。時有坐客百餘人,皆能言之士。輅謂子春曰:『輅年少膽氣未堅,先請美酒三升,飲而後言。』 子春奇之,遂與酒三升。

    낭야의 태수, 선자춘이 그 명성을 듣고 관로를 불러 만났습니다. 그때 좌객들이 백여 명이었는데 모두 언변이 뛰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관로가 자춘에게, '제가 어려 담기가 아직 굳세지 못하니 바라건대 먼저 좋은 술 석 되를 주시면 마신 뒤 말씀 드리겠습니다' 라고 했습니 다. 자춘이 기특하게 여겨 곧 술 석 되를 주었습니다.

    다 마시자 관로가 자춘에게, '지금 저와 마주하시려 하심은 부군께서 사방에서 불러모은 인물들의 경우와 같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자춘은, '내 스스로 그대와 기고상당( 실력이 엇비슷함/ 실력을 겨룸)하려 하오' 라고 했습니다. 이에 자춘이 관로와 더불어 역리를 강론 했습니다. 관로가 쉬지 않고 이야기해도 하는 말마다 심오했습니다. 자춘이 어려운 질문을 되풀이했지만 관로의 대답은 물흐르듯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고 마시지 않았습니다. 자춘과 빈객들 가운데 탄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로부터 천하에서 그를 일컬어 신 동이라 하였습니다.

    「後有居民郭恩者,兄弟三人,皆得躄疾,請輅卜之。輅曰:『卦中有君家本墓中女鬼,非君伯母即叔母也。昔饑荒之年,謀數升之米 之利,推之落井,以大石壓破其頭,孤魂痛苦,自訴於天;故君兄弟有此報,不可禳也。』郭恩等涕泣伏罪。」

    뒷날 주민 가운데 곽은이란 이가 있었는데 형제 세 사람 모두 앉은뱅이가 되는 병에 걸려서 관로를 불러 점치게 했습니다. 관로가 말하 기를, '점괘를 보니 그대 집안의 무덤 안에 여자 귀신이 있는데 그대의 백모 아니면 숙모이겠소. 지난 흉년이 들어 몇 되의 쌀을 탐해 우물 안에 그분을 밀어넣고 머리를 큰 돌로 으깨버려 외로운 귀신이 고통스러워 하늘에 호소했소. 그 까닭에 그대 형제가 이런 응보를 받은 것이니 물리칠 수 없소.' 라고 하였습니다. 곽은 등이 눈물흘리며 죄를 빌었습니다.

    「安平太守王基,知輅神卜,延輅至家。 適信都令妻, 常患頭風;其子又患心痛;因請輅卜之。輅曰:『此堂之西角有二死屍。一男 持矛,一男持弓箭。頭在壁內,腳在壁外。持矛者主刺頭,故頭痛;持弓箭者主刺胸腹,故心痛。』乃掘之。入地八尺,果有二棺。一棺中 有矛,一棺中有角弓及箭, 木俱已朽爛。 輅令徙骸骨去城外十里埋之,妻與子遂無恙。」

    안평의 태수, 왕기는 관로가 귀신처럼 점치는 것을 알아 그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마침 신도의 아내가 늘 두통을 앓는데다 그 아들도 가 슴의 병을 앓아 관로를 불러 점치게 하였습니다. 관로가 말하길, '이 집의 서남쪽에 시체가 두 구 있소. 한 사내는 모(무기의 일종)를 지 니고 있고 다른 사내는 활과 화살을 갖고 있소. 모를 가진 이는 머리를 찔려 머리가 아프고 활을 가진 이는 가슴과 배를 찔려 가슴이 아픈 것이오. ' 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발굴해 여덟 자를 파들어 가니 과연 두 개의 관이 있었습니다. 관 하나는 모가, 다른 관 하나는 각궁과 화살이 있었는데 나무 조각은 이미 썩어 이지러져 있었습니다. 관로가 시켜서 해골을 성 밖 십 리에 옮겨 묻어주자 그 아내와 아들이 마 침내 아무 탈이 없게 되었습니다.

    「館陶令諸葛原,遷新興太守,輅往送行。 客言輅能射覆。 諸葛原不信,暗取燕卵,蜂窠, 蜘蛛三物, 分置三盒之中, 令輅卜之。 卦成, 各寫四句於盒上。

    관도령이던 제갈원이 신흥의 태수로 옮겨 가게 되자 관로가 배웅하러 갔습니다. 손님들은 관로가 숨긴 물건을 잘 찾는다고 말했지만 제 갈원이 믿지 않고 몰래 제비알, 벌집, 거미 세 가지를 세 개의 함 속에 넣어 관로더러 점치라 하였습니다. 관로가 점괘를. 완성하더니 함을 각각 네 구절의 글을 함 위에 적었습니다.

    첫째 함에 써놓기를, '기운을 품어 반드시 변하고 집처마에 의지하구나. 암수가 모양을 이뤄 날개가 펴지네. 이것은 제비알이다.' 라 했습 니다. 둘째 함에는 '사는 집이 거꾸로 매달리고 드나드는 문이 많구나. 정기를 쌓아 독을 길러 가을이 되면 모습이 바뀌니 바로 벌집이다.' 라 적었습니다. 셋째 함은 '벌벌 떨며 다리를 펼치고 실을 토해 그물을 만드네. 그물 위에서 먹이를 구해 먹으니 어두운 밤이 좋겠네. 이것은 거미다.' 라 적었습니다. 자리를 메운 사람들 모두 놀라 마지않았습니다.

    「鄉中有老婦失牛,求卜之。輅判曰:『 北溪之濱, 七人宰烹;急往追尋,皮肉尚存。』老婦果往尋之,見七人於茅舍後煮食,皮肉 猶存。 婦告本郡太守劉邠, 捕七人罪之,因問老婦曰:『汝何以知之﹖』

    마을의 늙은 부인이 기르던 소를 잃어 점쳐 달라 하자 관로가 판단해 말하기를, '북쪽 시냇가에서 일곱 사람이 소를 잡아 삶고 있소. 서둘 러 가서 찾으면 아직 가죽과 고기는 남아 있을 것이오.' 라고 했습니다. 노부인이 과연 가서 찾으니 일곱 사람이 움막 뒤에서 끓여 먹는데 가죽과 고기가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부인이 그 고을 태수 유빈에게 고하니 일곱 사람을 붙잡아 벌주고 노부인에게 '어떻게 알아내었소 ?' 라고 물었습니다.

    부인이 관로의 귀신 같은 점술을 고한다. 유빈이 믿지 않고 관로를 부중으로 불러 도장 주머니와 멧닭의 깃털을 함 속에 넣고 점치게 했 습니다. 관로가 첫째 함을 점치기를, '안은 네모지고 바깥은 둥글며 오색으로 글을 이루구나. 보물을 담고 신의를 지키며 나오면 문장을 만드네. 이것은 도장 주머니다.' 라고 했습니다.

    둘째 함은 '높은 바위마다 어느 몸이 붉은 새가 있구나. 날개는 검고 누렇고 그 울음 아침을 놓치지 않네. 이것은 멧닭의 깃털이다.' 라고 했습니다. 유빈이 크게 놀라 마침내 상빈으로 대했습니다.

    「 一日出郊閒行, 見一少年耕於田中,輅立道傍觀之。良久,問曰:『 少年高姓、 貴庚﹖』 答曰:『姓趙,名顏。年十九歲矣。敢問 先生為誰﹖』

    하루는 성 밖을 나가 한가히 걷는데 어느 소년이 밭을 갈고 있기에 관로가 길가에 서서 살펴보았습니다. 한참 지나 '소년은 이름과 나이가 어찌 되시오?' 라고 물었습니다. 소년이 답하기를, '이름은 조안이며 나이는 열아홉입니다. 감히 묻건대 선생은 누구십니까?' 라고 했습니다.

    '나는 관로요. 내가 보니 그대의 미간에 죽음의 기운이 있어 사흘 안에 죽고 말 것이오. 그대의 용모가 아름다운데 오래 살지 못해 슬프구 려.' 라고 말했습니다. 조안이 집으로 돌아가 급히 아버지에게 고했습니다. 아버지가 듣고서 관로를 뒤따라가 통곡하며 땅에 엎드려, '돌 아가 제 아들을 구해 주시오!' 라고 했습니다.

    관로가 '이것은 천명인데 어찌 피하겠소?' 라고 하자 부친은 '늙은이에게 이 아들 하나뿐이오. 제발 구해주시기 바라오!' 라고 말했습니 다. 조안도 통곡하며 부탁했습니다.

    관로는 그들 부자의 애절한 모습을 보고 마침내 조안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맑은 술 한 병과 사슴 육포 한 덩이를 지니고 내일 남산 속 큰 나무 아래를 찾아가면 반석 위에서 어느 두 사람이 바둑을 두고 있을 것이오. 한 사람은 남쪽을 바라보고 앉아 흰 도포를 입었는데 그 용모가 심히 추할 것이오. 다른 한 사람은 북쪽을 바라보고 앉아 붉은 도포를 입었는데 그 용모가 몹시 아름다울 것이오. 그대는 그 바둑 판이 한창 물 오른 틈을 타서 술과 사슴 육포를 무릎꿇고 바치시오. 그 음식을 다 먹기를 기다려 바로 흐느끼며 엎드려 오래 살게 달라 부 탁하면 반드시 더해 줄 것이오. 다만 절대로 내가 가르쳤다고 말해선 안 되오.' 라고 했습니다.

    노인이 관로를 집에 머물게 하고 다음날 조안이 술과 사슴 육포, 술 쟁반을 를 지니고. 남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약 오, 육 리를 가자 과 연 두 사람이 큰 소나무 아래 반석 위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전혀 돌아보지 않는데 조안이 무릎꿇고 슬과 육포를 바쳤습 니다. 두 사람은 바둑에 열중해 저도 모르게 어느새 술을 다 마셨습니다. 조인이 울며 땅에 엎드려 목숨을 구하니 두 사람이 크게 놀랐습 니다.

    붉은 도포를 입은 이가 말하기를, '이것은 틀림없이 관로가 말한 것이오. 우리 두 사람이 벌써 그의 물건을 받았으니 그를 가련히 여겨야 게소.' 라고 말해습니다. 하얀 도포를 입은 이가 이에 품 속에서 장부를 꺼내어 살피더니 조안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올해 열아홉에 죽어 야 했소. 내 이제 열 십 자에 한 획을 더해 아홉 구 자로 만들 테니 그대의 수명이 아흔 아홉 살에 이를 것이오. 돌아가 관로를 만나거든 다시는 천기를 누설하지 말라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천벌을 받을 것이오.' 라고 했습니다. 붉은 옷을 입은 이가 붓을 꺼내어 한 획을 더하고 한바탕 향기로운 바람이 불더니 두 사람은 백학 두 마리가 되어 하늘로 치솟아 사라졌습니다.

    조안이 돌아가 관로에게 묻자 관로가 말하기를, '붉은 옷을 입은 이는 남두성이요 흰 돗을 입은 이는 북두성이오.' 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조안이 '제가 듣기에 북두는 아홉 개의 별이라던데 어찌 겨우 한 사람이었습니까?' 라고 물느니 관로는 '흩어지면 아홉이 되고 합치면 하 나가 되오. 북두는 죽음을 맡고 남두는 생명을 맡고 있소
    이제 이미 수명을 늘려 주었는데 그대는 또 무엇을 걱정하겠소?' 라고 했습니다. 부자는 절을 올리며 고마워했습니다. 이로부터 관로는 천기를 누설할까 두려워 다시는 함부로 남을 위해 점을 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현재 평원 고을에 사는데 대왕께서 휴구 休咎 (길흉)을 아시고자 하신다면 어찌 그를 부르지 않겠습니까?"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사람을 평원으로 보내 관로를 부른다. 관로가 도착해 인사를 마치자 조조가 점을 치라 명한다. 관로가 답한다.

    "이것은 환술(사람의 눈을 속이는 마술)일 뿐인데 무엇을 걱정하시겠습니까?"

    조조가 안심하더니 병이 점점 낫는다. 조조가 천하의 일을 점치라 명한다. 관로가 점을 쳐 말한다.

    "삼팔(3*8 즉 건안 24년)에 이리저리 종횡하다가 누런 멧돼지가 범을 만나겠군요. 정군산의 남쪽에서 고굉지신(몹시 소중한 신하)을 잃 겠습니다. "

    조조가 또한 앞으로 자손들의 운수가 어떨지 점치게 명한다.

    관로가 점을 쳐 말한다.

    "사자궁 안에 신위를 놓게 되니 자손이 극히 귀한 신분에 오르겠습니다."

    조조가 자세한 것을 묻자 관로가 말한다.

    "망망한 천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뒷날을 기다리면 저절로 드러날 것입니다."

    조조가 관로를 태사 벼슬에 봉하려 하자 관로가 말한다.

    "제 명운이 박하고 생김새가 궁해서 이런 벼슬이 알맞지 않아 감히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

    조조가 그 까닭을 묻자 관로가 답한다.

    "제 이마는 생골 生骨(장수할 골상)이 없고 제 눈은 수정 守睛(눈에서 드러나는 정신적 면모)이 없으며 제 코는 콧대가 없고 다리는 천근 天根(발꿈치)이 없습니다. 등에는 삼갑 三甲(장수할 징표)이 없고 배에는 삼임 三壬(장수할 징표)이 없습니다. 다만 태산에서 귀신을 다 스릴 수는 있으나 산 사람을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그대가 보기에 내 관상은 어떻소?"

    "지위가 이미 신하로서 지극하시거늘 어찌 꼭 관상을 보시려 하십니까?"

    거듭 묻지만 관로는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는다. 조조가 문무관리들의 관상을 두루 보도록 시키자 관로가 말한다.

    "모두 세상을 다스릴 만한 신하들입니다."

    조조가 길흉을 묻지만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으려 한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관로를 기렸다.

    해뜰 무렵에도 신복 神卜 관공명은
    능히 남진 南辰과 북두성을 헤아렸네
    팔괘로써 깊이 귀신과도 통하고
    육효로써 하늘의 뜻을 밝혔네
    관상을 보면 징조와 단명을 예지하고
    스스로 깨달아 마음 속에 신령을 갖췄네
    애석하다! 그때 기이한 술법을 펼쳤지만
    뒷날 사람들은 그 경전을 얻지 못했네

    조조가 명해 동오와 서촉 두 곳을 점치게 한다. 관로가 점괘를 이야기한다.

    "동오의 군주는 대장 하나를 잃겠고, 서촉은 병력을 동원해 경계를 침범하겠습니다."

    조조가 믿지 않는데 합비에서 보고가 들어온다.

    "동오의 육구를 수비하던 장수, 노숙이 죽었습니다."

    조조가 크게 놀라 곧 사람을 한중으로 보내 소식을 듣게 한다. 며칠 안 돼, 급보가 날라든다.

    "유비가 장비와 마초를 보내 하판에 병력을 주둔해 관문을 점령하려 합니다."

    조조가 크게 노해 곧 스스로 병력을 이끌고 한중으로 들어가려 하며 관로에게 이를 점치게 하니 관로가 말한다.

    "대왕께서 아직 함부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오는 봄에 반드시 허도에 화재가 있겠습니다."

    조조가 보니 관로의 말이 여러차례 맞아떨어져 감히 가벼이 움직이지 못하고. 업군에 머물며 조홍에게 명해 병력 5만을 거느려 하후연 과 장합을 도와 함께 동천을 지키라 한다. 또한 하후돈을 보내 허도에서 병력 3만을 거느려 와서 순찰을 돌며 미리 불우 以虞(뜻밖의 일) 를 대비하게 한다.

    또한 장사 벼슬의 왕필로 하여금 어림군을 총독하게 한다. 주부 벼슬의 사마의가 말한다.

    "왕필은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성미가 느긋해 이러한 직무를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왕필은 고(제후가 스스로를 가리키는 말)가 가시밭길을 걷고 어렵던 때에 따르던 사람인데다 충성스럽고 근면하며 마음이 철석 같아 가 장 알맞은 사람이오."

    마침내 왕필에게 지시해 어림군을 총독해 허도의 동화문 밖에 주둔하게 한다. 이때 한 사람이 있었으니 경기 '계행'이고 낙양 출신이다. 예전에 승상부의 관리를 지내다 시중소부로 자리를 옮겼는데 사직 위황과 매우 친하다. 그는 조조가 왕위에 오르고 출입할 때 천자의 복장을 하자 마음 속으로 몹시 불평하였다.

    건안23년 봄 정월에 경기가 위황과 몰래 의논한다.

    "조조 놈이 날이 갈수록 간악해지니 찬역을 저지르겠소. 한나라 신하로서 어찌 악당을 돕겠소?"

    위황이 말한다.

    "내게 심복이 있으니 이름이 김위인데 한나라 재상 김일제의 후예요. 늘 조조를 토벌할 마음을 갖고 있소. 게다가 왕필과 교분이 몹시 두텁소. 만약 함께 모의할 수 있다면 대사가 이뤄질 것이오."

    "그가 이미 왕필과 교분이 두터운데 어찌 우리와 기꺼이 공모하겠소?"

    "일단 찾아가서 말해보고 어쩌나 봅시다."

    이에 두 시람이 함께 김위의 집을 찾아간다. 김위가 후당으로 맞아들여 자리잡는다. 위황이 말한다.

    "덕위께서 왕 장사와 몹시 교분이 두텁다 하기에 우리 세 사람이 특별히 부탁드리러 왔소."

    "부탁하실 일은 무엇이오?"

    위황이 말한다.

    "듣자니 위왕께서 조만간 선위를 받으셔 장차 대보(황제의 자리)에 오르신다면 공께서 왕 장사와 더불어 틀림없이 높은 벼슬로 옮기시겠 지요. 바라건대 저희를 버리지 마시고 손을 내밀어 주시면 은덕을 결코 잊지 않겠소!"

    김위가 옷소매를 털며 일어선다.

    마침 하인이 차를 내어 온 것을 곧바로 바닥에 내던져 버린다. 위황이 놀란 척하며 말한다.

    "덕위께서 아는 사람에게 어찌 박정하시오?"

    "내가 그대와 친분을 쌓은 것은 그대가 한나라 신하의 후예이기 때문이었소. 이제 보답할 생각은 않고 반역자를 도우려 하니 내 무슨 면 목으로 그대와 벗하겠소?"

    경기가 말한다.

    "아무래도 하늘의 뜻이 이러하거늘 어쩔 수 없지 않겠소!"

    이 말에 김위가 크게 노하자 경기와 위황은 김위에게 과연 충의로운 마음이 있음을 알아 비로소 참뜻을 알린다.

    "우리는 본래 역적을 토벌할 마음을 가져 족하께 부탁하러 온 것이오. 앞서 한 말들은 일부러 떠본 것이오."

    "우리 집안은 대대로 한나라 신하이거늘 어찌 역적을 따르겠소? 공들께서 한실을 바로잡고자 하신다니 무슨 고견이 있소?"

    위황이 말한다.

    "비록 나라에 보답할 마음은 있으나 아직 역적을 토벌할 계책은 없소이다."

    "안팎으로 힘을 합쳐 왕필을 죽이고 그 병권을 빼앗아 난여(임금이 타는 가마)를 부조하고 더욱이 유 황숙과 연결해 외부에서 돕게 하면 조조 도적놈을 없앨 수 있겠소."

    두 사람이 듣더니 손뼉을 치며 칭찬한다. 김위가 말한다.

    "내게 심복 두 사람이 있는데 조조 놈과는 부친을 죽인 원수를 지고 현재 성 밖에 머물고 있으니 우익(날개)으로 삼을 수 있소."

    그가 누구인지 경기가 묻는다.

    "태의를 지낸 길평의 아들들인데 장남은 이름이 길막, 자가 문연이요 차남은 이름이 길목, 자가 사연이오. 조조가 지난 날 동승의 의대 속 밀조 사건에 연루해 그 부친을 죽였소. 두 아들은 멀리 달아나 겨우 어려움을 벗어났다가 몰래 허도로 돌아와 있소. 만약 그들에게 역적을 토벌하는 것을 도우라 하면 따르지 않을 리 없소."

    경기와 위황이 크게 기뻐한다. 김위가 즉시 사람을 시켜 길막과 길목 두 사람을 부른다. 잠시 뒤 두 사람이 도착하자 김위가 그 일을 자세 히 말한다. 두 사람이 분노에 떨어 눈물 흘리며 원한이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 국적(나라의 역적)을 죽일 것을 맹서한다.

    김위가 말한다.

    "정월 보름날 야간에 성 안에서 크게 등불을 밝히고 대보름을 축하할 것이오. 경 소부, 위 사직 두 분께서 각각 가동(하인)들을 거느리고 왕필의 군영 앞으로 달려가시오. 군영 안에서 불이 치솟거든 양 갈래로 나눠 돌입하시오. 왕필을 죽이고 바로 나와 함께 궁궐 안으로 들 어가 천자를 모시고 오봉루에 올라 문무백관을 불러 역적을 토벌하라 그들 앞에서 지시할 것이오. 길문연 형제는 성 밖에서 돌입해 불을 놓아 신호로 삼고 곳곳에서 함성을 지르며 백성을 규합해 나라의 역적을 주살하자 해서 성 안의 구원 병력을 가로막으시오. 천자께서 조 서를 내려 백성을 안정시키고 나서 바로 업군으로 진병해 조조를 사로잡고 즉시 사자를 보내 천자의 조서를 전달해 유황숙을 불러 들일 것이오. 오늘 약속을 정해 이 경에 거사할 때까지 절대로 동승이 화를 자초한 것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오."

    다섯 사람이 하늘에 서약하고 피를 나눠 마셔 다짐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군마와 무기를 정돈해 거사를 기다린다.

    한편 경기와 위황 두 사람은 각각 집안에 가동들 삼, 사백이 있어 무기를 예비한다. 길막 형제도 역시 삼, 사백 인을 모우고 사냥 몰이꾼 이라고 핑계를 댄다. 이렇게 안배를 마친다.

    김위가 미리 왕필을 찾아가 말한다.

    "이제 막 해우(천하)가 조금 안정되고 위왕께서 위엄을 천하에 떨치십니다. 이제 대보름 영절(명절)을 맞이하니 등불을 밝혀 천하태평의 기상을 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왕필이 그 말을 따라 성 안 주민들에게 일러 등불을 밝히고 색색으로 장식해 명절을 축하하라 한다. 정월 대보름에 이르러 하늘은 맑고 별들과 달이 나란히 빛난다. 육가삼시(번화가) 거리마다 꽃등을 다투어 달았다. 참으로 금오(치안관리)가 금지하지 않으니 옥루(물시계) 도 재촉하지 않는구나!

    왕필이 어림군의 여러 장수들과 군영 안에서 주연을 갖는다. 이 경이 지나 "영채 뒤에서 불길이 치솟습니다!' 라고 보고하기에 왕필 이 황망히 막사를 나가 바라보지만 불빛이 마구 넘실거릴 뿐이다.

    또한 함성 소리 하늘을 찌르니 영채 안에 무슨 변고가 있음을 알아 급히 말에 올라 남문을 나가다 바로 경기와 마주쳐 화살 한 발읗 어깨 에 맞아 자칫 말에서 떨어질 뻔한다. 곧 서문 쪽으로 달아난다.

    그 배후를 어느 수레가 뒤쫓아 온다. 왕필이 다급해 말을 버리고 걸어가 김위의 문 앞에 이르러 황급히 문을 열라 외친다. 알고보니 김위 는 사람을 시켜 영채 안에 방화하는 한편, 몸소 가동들을 데리고 뒤따라 싸움을 돕느라 부녀자들만 집안에 남겨 놓고 있었다.

    그때 집안 사람들은 왕필이 문 밖에서 문을 열라 외치자 김위가 돌아온 줄만 안다. 김위의 처가 문을 사이에 두고 바로 묻는다.

    "왕필을 그러면 죽이셨수?"

    왕필이 크게 놀라며 비로소 김위가 공모한 것을 깨달아 곧장 조휴의 집으로 달려가 김위와 경기 등이 함께 반란을 모의한 것을 알린다.

    조휴가 급히 갑옷을 걸치고 말에 올라 천여 명을 거느려 성 안에서 맞서 싸운다. 성 안 사방에서 불길이 일어 오봉루마저 불타자 황제가 깊은 궁궐로 대피한다. 조 씨의 심복과 조아(손톱과 어금니처럼 쓸모 있는 사람)들이 죽기살기로 궁문을 지킨다. 성 안에서 사람들이 외 치는 소리는 오로지 이렇다.

    "조적(조 씨 역적)들을 모조리 죽여 한실을 바로잡자!"

    원래 하후돈은 조조의 명령을 받들어 허창(허도)을 순찰하고 경계하며 삼만 군을 거느려 성 밖 오 리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날 밤 멀리 성중에서 불길이 치솟자 곧 대군을 거느려 먼저 달려와 허도를 에워싸고 1개 지대를 성 안으로 들여서 돕는다.

    조휴가 해뜰 녘까지 혼전하지만 경기와 위황 등 아무도 돕지 않는다. 누군가 김위에게 알리기를, 길 씨 형제 두 사람 모두 벌 써 살해됐다는 것이다. 경기와 위황이 길을 뚫고 성문을 서둘러 빠져나가다 때마침 하후돈의 대군과 마주쳐 사로잡혀 끌려간다.

    그들의 수하 백여 명도 모조리 살해된다. 하후돈이 입성해 잔불을 끄고, 주동자 다섯의 남녀노소 종족을 모두 잡아들이고, 사람을 보내 조조에게 급보한다. 조조가 명령을 전하기를, 경기, 위황 두 사람과 그들의 노소 종족을 모두 저잣거리에서 참하고, 조정의 대소 백관(지 위가 높고 낮은 여러 관리들)을 모조리 업군으로 압송해 발락(처분)을 기다리라 한다.

    하후돈이 경기와 위황 두 사람을 압송해 시조(상업밀집지역)에 이르자 경기가 성난 목소리로 크게 외친다.

    "조아만(조조를 멸시해 부르는 말)아! 내 살아서 네놈을 죽이지 못하나 죽어서 마땅히 여귀(악귀)가 돼서라도 역적놈을 쳐죽이고야 말겠 다!"

    회자수(사형을 집행하는 망나니)가 그 입을 도려내어 피가 흘러 땅을 가득 적셔도 크게 욕하기를 멈추지 않다가 죽는다. 위황이 이마(원 문의 면협은 뺨을 뜻하지만)로 땅을 찧으며 말한다.

    "참으로 한스럽구나! 참으로 한스럽구나!"

    이를 박박 갈아 모두 부숴져 숨을 거둔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렸다.

    경기는 참으로 충성스럽고 위황은 어질어
    각각 맨손으로 하늘을 떠받치려 하였구나
    누가 알았으리! 한나라 운수가 다하여
    마음 가득 한을 품고 구천을 헤매게 될 줄을!

    하후돈이 다섯 집안의 남녀노소 종족(일가친척)을 모조리 죽인 뒤 대소 백관을 업군으로 압송해 온다. 조조가 교장(군대를 조련하고 검 열하는 곳)의 왼쪽에 붉은 깃발을 세우고, 오른쪽에 하얀 깃발을 세워 명령을 내린다.

    "경기와 위황 등이 조반(반역을 저지름)해 불을 놓아 허도를 불사를 때 너희 가운데 밖으로 나와서 불을 끈 자가 있는가 하면, 문을 닫은 채 나오지 않은 자도 있다. 일찍이 불을 끄러 나온 자는 홍기 아래 설 것이요 일찍이 불을 끄지 않은 자는 백기 아래 서야 할 것이다."

    관리들이 생각해보니 불을 끈 자는 필시 죄가 없을 터라 많은 이들이 홍기 아래로 몰려간다. 겨우 삼분의 일만이 백기 아래 선다. 그런데 조조가 홍기 아래 선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라 하자 관리들이 제각기 무죄를 말한다.

    조조가 말한다.

    "너희들의 그때 마음은 불을 끄러 나온 게 아니라 실은 역적을 도우러 나온 것이다. "

    장하의 물가로 모조리 끌고가서 처형하게 하니 죽은 자가 삼백여 명이다. 그때 백기 아래 선 자들에게 모두 상을 내리고 허도로 돌아갈 것을 명한다.

    이때 왕필은 이미 화살 맞은 상처가 도져 죽어 조조가 명해 후하게 장례를 지낸다. 조조의 명으로, 조휴는 어림군을 총독하고 종요는 상국을 맡고, 화흠은 어사대부가 된다. 결국 후작(고대 5등급 작위 가운데 제2 등급)을 6등 18급으로 정하고 관서의 후작도 17급으로 정 해 모두에게 황금 도장과 자주색 인수(관리의 인감을 매는 줄)를 내린다.

    또한 관내외후 16급을 두어 은 도장과 구조묵수(거북 장식의 검은 색 인수)를 내린다. 다섯 대부 15급을 두어 구리 도장과 고리 달린 인 수를 내린다. 작위를 정하고 벼슬을 봉하고 조정에서도 인물들을 한바탕 바꾼다. 조조가 비로소 관로가 말했던 화재 이야기를 깨달아 관 로에게 크게 상을 내리지만 관로는 받지 않는다.

    한편 조홍은 병력을 이끌고 한중에 이르러 장합과 하후연에게 명령해 제각기 험요(험준한 요충지)를 점거하게 한다. 조홍이 친히 진병해 적병과 맞선다. 이때 장비 스스로 뇌동과 더불어 파서를 지키고 있었다. 마병(기병)이 하판에 이르자 오란에게 선봉을 맡겨 병사를 이끌고 정찰에 나서게 명한다. 때마침 조홍의 병사들과 마주치자 오란이 물러나려 한다.

    아장(하급군관) 임기 任夔가 말한다.

    "적병이 오자마자 그 예기를 먼저 꺾지 못하면 무슨 낯으로 맹기(마초)를 만나뵙겠습니까?"

    이에 말을 내달려 창을 꼬나잡고 조홍에게 싸움을 건다. 조홍이 친히 칼을 들고 말을 내몰아 나온다.

    교봉(교전)해 세 번 붙어 조홍이 임기를 베어 말 아래 나뒹굴게 하고 기세를 타고 마구 무찌른다. 오란이 크게 패해 돌아가 마초를 만 난다. 마초가 꾸짖는다.

    "그대는 내 명령도 없이 무슨 까닭에 함부로 대적해 패전하게 되었소?"

    "임기가 제 말을 듣지 않아 이렇게 패전했습니다."

    "애구(요충지)를 견고히 지킬 것이지 절대로 교봉하지 마시오."

    한편으로 성도에 신보(고해 알림)해 어찌 행동할지 듣게 한다.

    조홍은 마초가 연일 출전하지 않자 음모가 있을까 두려워 군을 이끌고 남정으로 돌아간다. 장합이 와서 조홍을 만나 묻는다.

    "장군께서 이미 적장을 참하고도 어찌 병력을 물리시오?"

    "내가 보니 마초가 츨전하지 않아 따로 무슨 음모가 있을까 걱정이오. 게다가 내가 업군에 있을 때 들으니 신복(신통한 점술가)이라는 관 로가 말하기를, 이곳에서 한 사람의 대장을 잃게 된다 했소. 장차 관로의 말이 들어맞으면 그 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 될지 저 사람이 될지 누가 될지 누가 알겠소? 내 이 말이 의심스러워 감히 함부로 진군하지 못하겠소."

    장합이 크게 웃으며 말한다.

    "장군께서 행병(병력 운용/ 용병)하신지 반생(반평생)이신데 이제 어찌 복자(점쟁이)의 말을 믿어 마음을 어지럽히시오! 점술을 믿지 않 아야 역시 호걸이라 할 것이오. 제 비록 재주 없으나 바라건대 부하 병력을 이끌고 파서를 취하겠나이다. 파서를 얻게 되면 촉군도 쉬울 따름이오."

    "파서를 지키는 장수인 장비는 얕볼 이가 아니니 함부로 대적할 수 없소."

    "사람들 모두 장비를 두려워하나 제가 보기엔 그저 어린 애 같소. 그도 장부이고 나 또한 장부라면 장군의 말씀이 맞소만, 내가 장부이고 그가 어린 애인데도 단지 그깟 늙은 장비를 무서워해 저 늙은 장비를 제대로 못 알아보냐 말이오. 이번에 가면 반드시 그 자를 잡아버리 겠소!"

    "만약 잘못되면 어쩔 셈이오?"

    "마땅히 달게 군령을 받겠소!"

    조홍이 문장(군령장)을 받아낸 뒤 장합이 진병(진군)한다.

    예로부터 교만한 군대는 패배가 많고
    지금까지 적을 업신여기면 성공이 적었다

    승부가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