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8회 왕사도가 교묘히 연환계를 쓰고 동태사가 봉의정에서 크게 싸운다

    ``
    괴량이 말한다.

    "이제 손견도 이미 죽고 그 아들들은 모두 어리니 허약한 시기를 타서 불 같이 진군하면 강동을 한번에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시신을 돌려주고 철군하면 그들이 힘을 길러 나중에는 형주의 우환이 됩니다."

    "황조가 적진에 잡혔는데 어찌 차마 버리냐?"

    "무모한 황조 하나 버리고 강동을 얻는데 어찌 안 된다고 하세요?"

    "황조는 내 심복이야. 버리는 건 의롭지 못하네."

    환계를 보내 손견의 시신과 황조를 바꾸기로 약속한다. 손견이 황조를 보내고 시신을 받아 싸움을 끝내고 강동으로 돌아가 부친을 곡아의 들에 장사지낸다. 장례를 끝내고 강도 江都에 주둔하고 어진 이를 부르고 선비를 받아들이며 스스로 낮추어 사람을 대하니 사방의 호걸들이 점점 몰려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한편 장안에서 동탁이 손견의 죽음을 듣고 말한다.

    "내 제일 큰 걱정거리가 없어!"

    그리고 묻는다.

    "그 아들이 몇살이야?"

    누군가 십칠 세라 답하자 동탁이 신경 쓰지 않는다. 이때부터 더욱 교만방자해져 스스로 '상부 尚父'라 부르게 하고 출입할 때 천자처럼 꾸민다. 아우 동명을 좌장군 운후로 삼고 조카 동황은 금군을 지휘케 한다. 동 씨 집안은 애어른 안 가리고 모두 열후에 봉한다. 장안성 2백5십 리 밖에 백성 25만을 동원해 미오 酈塢를 쌓는데, 성곽의 높낮이와 두께가 장안성과 같고 그 안에 궁실을 두고 창고에 이십 년 치 식량을 쌓는다. 민간에서 나이 어린 미녀 8백 인을 뽑아 채우고 황금과 옥돌, 색색 비단, 진주를 쌓아놓은 것을 헤아릴 수 없다. 동탁 집안의 식구 모두가 그 안에서 산다.

    동탁이 장안에 보름이나 한달에 한번 왕래하면, 공경 대신들과 제후가 횡문 橫門밖에서 배웅하고, 동탁이 늘 길에 장막을 쳐서 공경 대신들과 술을 마신다. 하루는 동탁이 횡문을 나서 백관이 모두 배웅하고 동탁이 주연을 베푸는데, 마침 북쪽 지방에서 항복한 포로 수백 인이 당도한다. 동탁이 즉석에서 명하여 그들의 팔다리를 자르거나 눈동자를 찌르거나 귀를 자르거나 큰 솥에 삶기도 한다. 애처로운 비명 소리가 하늘을 흔드니 백관이 덜덜 떨며 젓가락을 놓치는데 동탁은 먹고 마시고 담소하는 게 태연하다. 또 하루는 동탁이 성대 省台에 백관을 크게 불러모아 두 줄로 세운다. 술이 몇차례 돌자 여포가 달려오더니 동탁 귓가에 몇 마디 속삭인다. 동탁이 웃으며 말한다.

    "원래 그런 거야."

    여포에게 사도 장온을 술자리 아래로 끌어내게 하니 백관이 하얗게 질린다. 얼마 안 돼 시종이 들어와서, 붉은 쟁반에 장온의 머리를 올려서 바친다. 백관이 모두 넋이 나가니, 동탁이 웃으며 말한다.

    "여러분 놀라지 마요. 장온이 원술과 결탁하여 나를 해치는 편지를 부치려고 하다가 내 아들 봉선이가 먼저 손을 써서 실패했소. 그래서 목을 벤 것이고 여러분은 무고하니 놀라서 떨지 마시오."

    관리들이 그저 예, 예 하며 흩어진다.

    사도 왕윤이 부중 府中으로 돌아와 오늘 술자리에서 일어난 사건을 깊이 생각하며 안절부절한다. 밤이 깊어 달이 밝은데 지팡이를 짚고 후원으로 걸어 들어가서 도미(장미과의 식물) 시렁 옆에서 하늘을 우러러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누군가 모란정 근처에서 장탄식을 하고 한숨을 내뱉고 있다. 왕윤이 몰래 걸어가서 훔쳐보니 부중의 가기 歌伎 초선이다. 이 여자는 어려서 부중에 뽑혀 가무를 배워 이제 이팔청춘 십륙 세이고 미모와 재주 모두 뛰어난데 왕윤이 친딸처럼 대한다. 그날밤 왕윤이 한참 듣다가 꾸짖는다.

    "천한 계집이 사사로운 정이라도 있냐?"

    초선이 놀라 무릎 꿇고 답한다.

    "천첩이 어찌 감히 사사로운 정이 있겠습니까!"

    "사사로운 정도 없는데 어찌 한밤에 이처럼 장탄식하냐?"

    "소첩이 어르신 은혜로 길러지고 춤과 노래를 배우고 예우를 받으니 분골쇄신해도 그 은혜를 만분의 일도 못 갚아요. 그런데 이제 어르신의 양 미간에 수심이 가득한 것을 보고 반드시 나라의 큰 일 때문이라 여겼으나 감히 묻지 못했습니다. 오늘 저녁도 다시 안절부절하심을 보고 장탄식했습니다. 어르신이 엿보시는 줄은 몰랐네요. 소첩을 쓰실 데 있다면 만번 죽어도 사양치 않겠습니다!"

    왕윤이 지팡이로 땅을 친다.

    "누가 한나라 천하가 네 손에 달린 줄 알았겠냐? 나를 따라 서각 畫閣으로 들어가자꾸나.”

    초선이 왕윤을 따라 서각에 들어오자 왕윤이 아내와 첩을 모조리 내보내고 초선을 앉힌 뒤 머리를 조아려 절한다. 초선이 놀라 땅에 엎드려 말한다.

    "어르신 왜 이러세요?”

    "네가 한나라 천하 백성을 가엾게 여겨라!”

    말을 마치니 눈물이 샘솟는다. 초선이 말한다.

    "아까 천첩이 말했다시피 시킬 일이 계시면 만번 죽어도 사양치 않겠습니다.”

    왕윤이 무릎 꿇고 말한다.

    "백성은 도현지위 倒懸之危(거꾸로 매달린, 매우 절박한 위기)요 군신은 누란지급 累卵之急(알이 쌓인 듯 위급함)이니 네가 아니면 구할 수 없겠구나. 역적 동탁이 장차 황제의 자리도 넘보는데도 조정 문무 대신들 가운데 아무 계책 못 쓰구나. 동탁에게 양자가 하나 있으니 이름이 여포인데 용맹이 비상하지. 내가 살펴보니 둘 다 호색한이라 이제 연환계 連環計를 쓰고 싶어. 먼저 여포에게 시집간다고 말하고서 동탁에게 너를 바치겠다. 네가 거기에서 취편 取便(상황을 활용함)하고 그들 부자 사이에서 첩간 諜間(간첩 활동)하여 서로 얼굴을 돌리게 하면 여포를 시켜 동탁을 죽여 큰 악당을 없앨 수 있어. 종묘사직을 크게 바로잡고 강산을 다시 세우는 것 모두 네 힘에 달렸구나. 네 뜻은 어떻냐?"

    "소첩이 어르신을 위해 만번 죽어도 사양치 않겠으니 소첩을 바치세요. 소첩이 알아서 처신할게요.”

    "일이 새어나가면 우리 집안은 멸족된다."

    "어르신 걱정 마세요. 제가 대의를 어기면 만번 찔려 죽을 거예요!”

    왕윤이 절을 올려 사례한다.

    이튿날 집안에 소장한 명주 明珠 여러 알을 뛰어난 장인에게 주어 금관을 하나 만들어 여포에게 몰래 보낸다. 여포가 크게 기뻐하며 몸소 왕윤 집을 찾아와 사례한다. 왕윤이 미리 맛좋은 안주와 음식을 준비한다. 여포가 오자 왕윤이 문밖에서 맞이해 후당으로 데려가 상석에 앉힌다. 여포가 말한다.

    "저는 승상부의 한낱 장수요 사도께서 조정 대신이신데 어찌 이리 높이세요?”

    "지금 천하 영웅이 따로 없고 오로지 장군뿐이지요. 제가 장군의 벼슬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장군의 재능을 공경하는 거요.”

    여포가 좋아 어쩔 줄 모른다. 왕윤이 은근하게 술을 따라주며 입으로 동 태사와 여포의 덕을 쉬지 않고 칭찬한다. 여포가 크게 웃으며 실컷 마신다. 왕윤이 좌우를 물리고 계집종 몇만 술을 따르게 한다. 술이 어느 정도 거나해지자 왕윤이 말한다.

    "그 아이를 불러라."

    잠시 뒤 청의 青衣(하인, 하녀) 두 사람이 곱게 단장한 초선을 이끌고 나온다. 여포가 놀라 누구냐 물으니 왕윤이 말한다.

    "제 딸 초선이오. 장군께서 이토록 저를 생각해주시니 가까운 친척과 같아서 제 딸을 장군께 보여요.”

    초선이 명을 받아 여포에게 술을 따른다. 초선이 여포에게 술을 따르며 추파를 던진다. 왕윤이 술 취한 척 말한다.

    "이 애가 장군께 몇잔이고 드리고 싶나 보네요. 우리 집안 모두 장군만 믿어요.”

    여포가 초선에게 앉으라 하지만 초선은 짐짓 돌아가고 싶은 척하니 왕윤이 말한다.

    "장군께서는 내 친한 벗과 같으니 여기 앉아도 괜찮아.”

    초선이 왕윤 곁에 앉는다. 여포가 시선을 고정한 채 바라본다. 다시 술 몇 잔 하고 초선을 가리키며 여포에게 왕윤이 말한다.

    "제가 이 딸아이를 장군께 시집보내고 싶은데 어때요?”

    여포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마워한다.

    "제 그렇게만 된다면 견마지로 犬馬之勞를 다해 갚아얍죠!”

    "조만간 좋은 날을 골라 부중 府中에 보내지요.”

    여포가 기쁘기 한이 없어 자꾸 초선을 쳐다본다. 초선도 추파를 던져 정을 준다. 잠시 뒤 술자리를 마칠 때 왕윤이 말한다.

    "제 본심은 장군께 하룻밤 주무시라 하고 싶지만 태사께서 의심할까 두려워요.”

    여포가 고맙다고 거듭 절을 올려 사례하며 떠난다.

    며칠 안 돼 왕윤이 조당에서 동탁을 만나서 여포가 없는 틈에 땅에 엎드려 절하며 청한다.

    "태사 거기 車騎(상관에 대한 경칭)를 제 누추한 집의 연회에 모시고 싶은데 뜻이 어떠신지요?”

    "사도가 초청하면 당장 가야지요.”

    왕윤이 절을 올려 사례하고 귀가해 온갖 산해진미를 준비한다. 현관 쪽 정중앙에 자리를 마련해 비단으로 땅을 덮고 안팍으로 휘장을 두른다. 이튿날 정오 동탁이 찾아온다. 왕윤이 조복을 갖춰 입고 나가서 두번 절하며 맞이한다. 동탁이 수레에서 내리자 극을 든 갑사 백여 명이 좌우에서 빽빽이 호위하고 들어가 양쪽으로 늘어선다. 왕윤이 마루 아래에서 두번 절하니 동탁이 마루 위로 부축해 올라와 옆에 앉으라 명한다. 왕윤이 말한다.

    "태사께서 성덕이 외외 巍巍(우뚝 솟음)하시니 이윤이나 주공도 못 따라올 거요.”

    동탁이 크게 기뻐한다. 술을 권하고 풍악을 울리며 왕윤이 극진히 떠받든다. 날이 저물고 술이 거나해지자 왕윤이 동탁을 후당으로 모신다.

    동탁이 무사들을 물린다. 왕윤이 술잔을 들고 축하한다.

    "제가 어려서부터 천문을 좀 배웠는데 요새 밤하늘을 살펴보니 한나라의 기운이 쇠했습니다. 태사께서 공덕을 하늘까지 떨치니 순임금이 요임금에게서 물려받고 우임금이 순임금에게서 이어받아 하늘과 백성의 뜻에 부합한 것과 같군요."

    "내가 감히 어찌 그런 것을 바라겠소!"

    "예로부터 '도가 있는 자가 도가 없는 자를 치고 덕이 없는 자가 덕이 있는 자에게 양보하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어찌 분수에 넘치겠습니까!"

    동탁 웃는다.

    "정말 천명이 내게 온다면 사도께서 일등 공신이오."

    왕윤이 절을 올려 사례한다. 후당에 화촉을 밝히고 계집을 앉혀 술을 따르고 식사를 대접한다. 왕윤이 말한다.

    "이런 교방 教坊(가무를 가르치던 곳 또는 창녀촌)의 음악은 태사를 모시기 부족하지요. 저희 집에 가기 家伎가 하나 있는데 감히 시켜 볼까 하네요."

    "그거 좋지요."

    왕윤이 난간에 주렴을 치게 하고 생황 소리 휘감아 도는 가운데 초선을 부축해 주렴 뒤에서 춤추게 한다. 누군가 글을 지어 기렸다.

    원래는 소양궁에 살던 사람이라네
    놀란 기러기처럼 몸을 돌려 춤추고
    동정호의 봄기운 위로 날아 가구나
    양주령 반주에 걸음걸음 연꽃이 피고
    꽃바람에 새로 난 가지가 휘어지네
    화당에 향기 그윽하니 춘심을 못 이기리

    또 누가 시를 지었다.

    홍아 빠른 박자에 제비가 놀라 날아가고 한조각 구름이 화당에 왔네
    눈가에는 나그네의 한이 서리고 얼굴에는 옛 사람 생각이 애절하구나
    천금의 미소 돈으로 살 수 없고 버들가지는 보물로도 더 꾸밀 게 없네
    춤을 마치고 주렴 사이로 훔쳐보니 누가 초나라 양왕인지 모르겠구나

    춤이 끝나자 동탁이 가까이 부른다. 초선이 주렴 안으로 돌아들어 공손히 재배를 올린다. 얼굴이 미려한 것을 보고 동탁이 묻는다.

    "이 여인은 누구요?"

    "가기 歌伎 초선입니다."

    "노래도 하오?"

    왕윤이 초선에게 단판 檀板으로 박자 맞춰 나직이 노래 부르게 하니 이와 같구나.

    한 점 앵두 붉은 입술 벌리니 두 줄 하얀 이로 양춘 陽春을 노래하네
    정향 향기 속에 형강검을 숨겨, 나라를 어지럽힌 간사한 역적 죽이려네

    동탁의 칭찬이 끝이 없다. 왕윤이 초선에게 술을 따르게 하니 동탁이 잔을 들고 묻는다.

    "몇살 청춘이냐?"

    "천첩 이제 열여섯입니다."

    동탁이 웃는다.

    "정말 선녀구나!"

    왕윤이 일어나며 말한다.

    "제가 이 애를 태사께 바치고 싶은데 뜻이 어떠신지요?"

    "이렇게 베푸시는데 무엇으로 갚아야지요?"

    "이 애가 태사를 모실 수 있다면 그 복이 적은 것이 아니지요."

    동탁이 연거푸 칭찬하며 사례한다. 왕윤이 전거 氈車(천으로 두껑을 덮은 수레)를 준비해 초선을 먼저 승상부에 보낸다. 동탁도 일어나 작별 인사를 하니 왕윤이 몸소 동탁을 승상부까지 모신 뒤 인사하고 돌아온다.

    말을 타고 반쯤 왔을까 두 줄기 붉은 등불이 길을 밝히는데 여포가 말을 몰고 방천화극을 쥐고 오더니 보자마자 급히 말을 세우고 왕윤의 옷을 잡아당기며 성난 목소리로 묻는다.

    "사도께서 초선을 이미 제게 주고서 이제 다시 태사께 바치다니 사람을 어찌 이렇게 놀리세요?"

    왕윤이 급히 제지하며 말한다.

    "여기서 말할 게 못 되니 제 집으로 갑시다."

    여포가 왕윤과 함께 집에 도착하자 말에서 내려 후당으로 들어간다. 예의를 갖춰 왕윤이 말한다.

    "장군이 무슨 일로 늙은이를 의심해요?"

    "누군가 제게 그러는데 초선을 전거에 태워 승상부에 보냈다고 하데요. 대체 무슨 까닭이죠?"

    "장군께서 알지 못했었군요! 어제 태사께서 조당에서 이 늙은이에게 '볼일이 있으니 내일 자네 집을 방문하겠다' 라고 말씀하시기에 작은 술자리를 마련하고 기다렸소. 태사께서 술을 드시다 '듣자니 초선이란 딸아이가 하나 있어 내 아들 봉선이에게 먼저 허락했다지. 네 말을 지키는지 걱정이 돼서 일부러 찾아와서 한번 보려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니 이 늙은이 감히 거절할 수 없어 초선을 불러 공공 公公(양아 버지)께 인사 시켰소. 태사께서 '오늘 길일이니 이 애를 데리고 가서 봉선과 짝 지어주겠다' 라고 말씀하셨소. 장군 한번 생각해보세요. 태사께서 친히 오셨는데 늙은이가 어찌 감히 거절해요?"

    "사도! 용서해주세요! 제 잠시 잘못 생각했네요. 사죄드립니다."

    "딸아이를 위한 장렴 妝奩(혼수나 화장품)이 제법 있으니 장군부에 들를 때 드리지요."

    여포가 사례하며 떠난다.

    이튿날 여포가 부중에서 알아보나 일체 소식을 들을 수 없다. 동탁의 거처 안으로 들어가 여러 시첩 侍妾에게 물으니 어느 시첩이 말한다.

    "밤에 태사께서 처음 보는 여자와 함께 잠자리에 드시고 아직 일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여포가 크게 노해 동탁의 뒷 방에 몰래 들어가 훔쳐본다. 이때 초선이 창문 아래 머리를 빗다가 창밖에 누군가 그림자가 비치는 데 극히 몸집이 크고 머리에 관을 쓰고 있다. 훔쳐보니 여포다. 초선이 일부러 양 눈썹을 찡그리고 우수에 잠겨 슬픈 척하고 비단으로 눈물을 닦는다. 여포가 한참 훔쳐보고 나갔다가 잠시 뒤 다시 들어온다. 동탁이 중당 中堂에 앉아 있다가 여포가 온 것을 보고 묻는다.

    "밖에 별일 없어?"

    "별일 없네요."

    여포가 동탁 옆에 지켜선다. 동탁이 밥을 먹을 때 여포가 훔쳐보니 수렴 繡帘 안에 어느 여자가 왔다갔다 살펴보다가 살짝 내밀고 눈으로 정을 준다. 초선인 것을 알고 여포는 넋을 잃는다.

    동탁이 이런 광경을 보고 의심스럽고 꺼림칙해 말한다.

    "봉선아 별일 없으면 나가."

    여포가 앙심을 품고 나간다. 동탁이 초선을 들인 뒤 여색에 사로 잡혀 한달이 넘도록 출근하지 않는다. 동탁이 마침 가벼운 병에 걸리자 초선이 돌보며 헌신하고 비위를 잘 맞춰주니 동탁이 속으로 더욱 기뻐한다. 여포가 들어와 문안 인사 올리려는데 마침 동탁이 자고 있다. 초선이 침대 뒤에서 몸을 반쯤 드러내 여포를 바라보며 손으로 가슴을 가리키고 동탁을 가리키며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치지 않으니 여포의 마음이 부서진다. 동탁이 두 눈이 몽롱한 상태로 바라보니 여포가 침대 뒤를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몸을 돌려 바라보니 초선이 침대 뒤에 서 있다. 동탁이 대로해 여포를 꾸짖는다.

    "네가 감히 내 애첩을 희롱해!"

    좌우를 불러 쫓아내게 한다.

    "이제부터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여포가 노해 돌아가다가 길에서 이유와 마주쳐 그간의 사연을 들려준다. 이유가 급히 들어가 동탁에게 말한다.

    "태사께서 천하를 얻고자 하시는데 어찌 작은 잘못으로 온후를 책망하세요? 그가 변심하면 대사를 그르쳐요."

    "어찌해야겠어?"

    "다시 불러들여 금과 비단을 내리시고 좋은 말로 달래면 자연히 별 탈 없지요."

    동탁이 따른다. 이튿날 여포를 불러들여 달랜다.

    "내 지난번에 병중이라 정신이 흐릿해 잘못 말해 네 마음을 상하게 했구먼.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라."

    이어서 금 열 근과 비단 스무 필을 내린다. 여포가 사례하고 돌아가지만 몸은 동탁 곁이라도 마음은 몽땅 초선 생각뿐이다.

    동탁의 병이 낫자 조정에 출근한다. 여포가 방천화극을 들고 수행하다가 동탁이 헌제와 함께 이야기하는 틈에 극을 들고 내문 內門을 나와 말을 타고 승상부로 간다. 말을 승상부 앞에 묶어두고 극을 쥔 채 후당으로 들어가 초선을 찾으니 초선이 말한다.

    "후원 가운데 봉의정 옆에서 기다려주세요."

    여포가 극을 쥐고 달려가 봉의정 아래 난간 옆에 서서 기다린다. 한참 뒤 초선이 꽃을 헤치고 버들가지 사이로 나타나니 과연 달나라 선녀다. 울며 여포에게 말한다.

    "제 비록 왕 사도의 친딸은 아니나 기출 己出(친 자식)처럼 대하셨죠. 스스로 장군을 뵙고 곁에 모시게 된다고 생각하니 제 평생의 소원을 이미 이룬 듯 했습니다. 그러나 태사께서 나쁜 마음으로 제 몸을 더럽히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바로 죽지 못한 게 한이지만 다만 장군과 작별 인사라도 나누려고 치욕을 견디며 목숨을 이어오다가 이제 장군을 만났으니 제 소원은 이뤄졌군요! 이미 더럽혀진 몸으로 영웅을 다시 모실 수 없어 낭군 앞에 서서 죽기를 바라니 그것으로 제 뜻을 밝힐테요!"

    말을 마치자 난간을 올라가 연못으로 뛰어내리려 한다. 여포가 황망히 붙잡아 멈추고 울며 말한다.

    "내가 네 마음을 안 지 오래야! 다만 함께 이야기하지 못해 한스럽구나!"

    초선이 여포를 끌어안으며 말한다.

    "소첩이 이번 생에서 낭군의 처가 되지 못하니 다음 생을 기약해요."

    "내가 이번 생에서 너를 처로 삼지 못하면 영웅이 아니구만!"

    "소첩은 하루하루가 일 년 같으니 낭군께서 불쌍히 여겨 구해주세요."

    "내가 이제 잠깐 틈을 봐서 찾아온 것이라 늙은 도적놈이 의심할까 두려우니 빨리 돌아가야겠어."

    초선이 옷깃을 잡아끌며 말한다.

    "낭군께서 늙은 도적놈을 이토록 무서워하시니 소첩이 뜻을 이룰 날은 없겠구나!"

    여포가 멈춰 서서 말한다.

    "내 차근차근 좋은 계책을 세울테니 기다려봐라."

    여포가 말을 마치고 가려고 하니 초선이 말한다.

    "제가 심규 深閨(여인의 거처)에서 장군의 우뢰 같은 명성을 듣고 이제 세상에 오직 한 분뿐이라 생각했는데 도리어 다른 사람에게 꼼짝 못하는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말을 마치고 눈물을 비오듯 흘린다. 여포가 얼굴 가득히 참으로 부끄러워 극을 짚고 몸을 돌려 초선을 안고 좋은 말로 달랜다. 이렇게 둘이 달라붙어 차마 헤어지지 못한다.

    한편 동탁이 전각 위에 있다가 고개를 돌리니 여포가 안 보인다. 마음 속으로 의심이 일어 황급히 헌제에게 인사를 올리고 수레를 타고 승상부로 돌아온다. 여포의 말이 앞에 묶여 있는 걸 보고 문지기에게 물으니 문지기가 답한다.

    "온후께서 후궁으로 들어가셨습니다요."

    동탁이 좌우를 꾸짖어 물리치고 후당으로 달려들어가 찾아봐도 안 보인다. 초선을 불러도 초선 역시 안 보인다. 급히 시첩에게 물으니 시첩이 말한다.

    "초선이 후원에서 꽃을 보고 있었습니다."

    동탁이 후원에 들어가서 찾아보니 여포와 초선이 봉의정 아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방천화극은 옆에 세웠다. 동탁이 노해 크게 소리쳐 꾸짖는다. 동탁이 온 것을 보고 여포가 크게 놀라 몸을 돌려 달아난다. 동탁이 방천화극을 집어들고 쫓아간다. 여포가 빨리 달리고 동탁이 뚱뚱해 따라잡지 못하자 여포에게 극을 던진다. 여포가 극을 받아쳐 땅에 떨어뜨린다. 동탁이 극을 다시 집어서 쫓지만 여포는 이미 멀리 달아났다. 동탁이 후원 문을 나서는 누군가 앞으로 달려와 동탁 가슴에 부딪혀 동탁이 넘어진다.

    하늘을 찌르는 노기 怒氣는 천길 높이요 땅에 넘어진 뚱보는 언덕 같구나.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구나. 다음 편을 보면 풀릴 게요.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