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9회 여포가 왕사도를 도와 흉악한 자를 없애고 이각이 가후의 조언으로 장안을 침범한다

    동탁과 부딪힌 이는 바로 이유다. 즉시 이유가 부축해 일으키고 서원으로 가서 자리잡는다. 동탁이 말한다.

    "자네가 어찌 여기로 왔어?"

    "제가 마침 승상부 문앞에 갔다가 태사께서 노해 후원에 들어가 여포를 찾는다는 것을 듣고 달려왔지요. 달아나는 여포와 마주쳤는데 '태사께서 절 죽이려 하오!' 하니 제가 후원으로 달려와서 화해를 권하려다가 그만 은상恩相과 부딪혔네요. 죽을 죄!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 역적놈을 이제는 못 참겠다! 내 애첩을 희롱하다니 죽이고야 말테다!"

    "은상, 그러시면 안 돼요. 예전 초나라 장왕이 절영의 모임에서 애첩을 희롱한 장옹을 벌하지 않았기에 그뒤 진나라 군대와 싸워 곤경에 처했을 때 그가 죽기살기로 싸워서 구해주었지요. 이제 초선은 한낱 여자이지만 여포는 태사의 심복 맹장이니, 태사께서 이참에 초선을 여포에게 내리면 여포가 큰 은혜에 감동해 죽을힘을 다해 태사께 보답하겠죠. 태사께서 거듭 생각해보세요."

    동탁이 깊게 신음하고 한참 뒤 말한다.

    "자네 말도 옳구먼. 생각해볼게."

    이유가 사례하고 나간다.

    동탁이 후당에 들어가 초선을 불러 묻는다.

    "네가 어찌 여포와 사통하냐?"

    초선이 운다.

    "소첩이 후원에서 꽃을 보는데 여포가 달려들었지 뭐예요. 소첩이 놀라사 피하니 여포가 '나는 태사의 아들이거늘 어찌 피하냐?' 하더니 극을 쥔 채 봉의정까지 쫓아왔습니다. 소첩이 보니 그가 나쁜마음을 먹었기에 잡힐까 두려워 연못에 투신해 자살하려 했으나 그 종놈이 잡아챘습니다. 생사가 갈라지는 순간에 마침 태사께서 오셔 생명을 구해주셨네요."

    "내가 너를 여포에게 주려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초선이 크게 놀라 흐느낀다.

    "소첩의 몸 이미 귀인을 모셨는데 이제 갑자기 종놈에게 주신다니 죽어도 받들 수 없습니다!"

    벽에 걸린 보검을 뽑아 자살하려 한다. 동탁이 황망히 칼을 빼앗고 안아주며 말한다.

    "내가 널 놀려봤어!"

    초선이 동탁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크게 흐느낀다.

    "이게 모두 이유 놈의 계략이네요! 이유와 여포는 교분이 두터우니 이런 계략을 쓰지요. 태사의 체면이나 소첩의 목숨은 안중에 없지요. 그놈 날고기를 씹고 싶군요!"

    "내가 어찌 차마 너를 버리겠냐?"

    "제가 비록 태사의 사랑을 입었으나 여기서 오래 살 수 없을까 두려워요. 여포 놈이 반드시 해치겠지요."

    "내가 내일 너를 미오 酈塢로 보낼테니 같이 쾌락을 누리자. 부디 걱정하지 마라."

    초선이 눈물을 거두고 절을 올려 사례한다. 이튿날 이유가 들어와 말한다.

    "오늘 길일이니 초선을 여포에게 보내시죠."

    "여포는 나와 부자지간이니 쉽게 줄 수 없네. 다만 그 죄를 묻지 않겠으니 내 뜻을 전하고 좋은 말로 달래면 될 것이야."

    "태사께서 여자에게 미혹돼선 안 되구먼요."

    동탁이 낯빛을 바꿔 말한다.

    "네 마누라도 여포에게 줄래? 초선의 일은 다시 꺼내지 마라. 다시 말하면 목을 벨 테다!"

    이유가 나가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한다.

    "우리 모두 여자 손에 죽겠구먼!"

    훗날 누군가 여기까지 읽고 시를 지어 읊었다.

    사도의 묘책으로 미인을 쓰니
    무기도 병사도 필요 없네
    쓸데없이 호뢰관에서 세번 싸웠구나
    승전가를 봉의정에서 아뢰네

    동탁이 그날 미오로 돌아간다고 하니 백관 모두가 배웅을 나온다. 초선이 수레 위에서 멀리 살펴보니 여포가 군중 사이에서 수레 안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초선이 일부러 얼굴을 파묻고 통곡하는 척한다. 수레가 이미 멀어졌는데 여포는 언덕 위에서 말 고삐를 늦춰 하염없이 수레가 일으키는 먼지를 보다가 탄식하고 슬퍼하며 통한을 삼킨다.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묻는다.

    "온후께서 어찌 태사를 따라가지 않고 여기서 멀리 바라보며 탄식하세요?"

    사도 왕윤이다. 인사를 마치자 왕윤이 말한다.

    "늙은이 요새 좀 아파서 문밖을 안 나가서 장군을 못 본 지 오래네요. 이제 태사의 수레가 미오로 간다니 몸이 아파도 나와서 배웅하던 참인데 장군을 만나니 참으로 기쁘구려. 그런데 장군은 어찌 여기서 장탄식하시오?"

    "사도의 따님 때문이지요."

    왕윤이 놀라는 척한다.

    "허다한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장군께 안 보냈습니까?"

    "늙은 도적놈이 스스로 총애한 지 오래구먼요!"

    왕윤이 크게 놀라는 척한다.

    "믿을 수 없는 일이군요!"

    여포가 그전에 일어난 일을 낱낱이 고한다. 왕윤이 하늘을 쳐다보며 비틀거리며 한동안 말을 못한다. 한참을 지나 마침내 입을 연다.

    "태사가 이런 짐승같은 짓을 할 줄이야!"

    여포의 손을 잡아끌며 말한다.

    "제 집으로 가 상의합시다."

    여포가 따라간다. 왕윤이 밀실로 데려가 술을 권하며 환대한다. 여포가 봉의정에서 만난 일을 상세히 말하니 왕윤이 말한다.

    "태사가 내 딸을 더럽히고 장군 처가 될 사람을 빼앗으니 정말 천하에 부끄러운 일이고 웃음거리지요. 사람들은 태사를 비웃는 게 아니라 나와 장군을 비웃을 뿐이라오! 나를 늙고 무능한 놈으로 여기는 거야 말할 것도 없겠으나 장군은 천하를 뒤엎을 영웅인데도 이런 오욕을 받다니 참으로 애석하군요!"

    여포 분기탱천해 책상을 탕탕 치며 절규한다. 왕윤이 급히 말한다.

    "늙은이가 실언했습니다. 장군, 화를 삭히세요."

    "맹세코 늙은 도적놈을 죽여 제 치욕을 씻을테요!"

    왕윤이 급히 그 입을 막는다.

    "장군, 그런 말 말아요. 이 늙은이도 어찌 될까 두려워요."

    "대장부가 천지 간에 태어나 어찌 남의 밑에서 억눌린 채 오래 살겠습니까!"

    "장군의 재능은 진실로 동태사도 막을 수 없지요."

    "늙은 도적놈을 죽이고 싶지만 어쩌다 부자의 정을 맺어 훗날 사람들이 뭐라 할까 두렵네요."

    왕윤이 살짝 웃는다.

    "장군의 성은 여씨요 태사는 동씨요. 동태사가 극을 집어던질 때 부자의 정이 어찌 있었겠소?"

    여포가 분연히 말한다.

    "사도의 말씀이 아니었으면 깨닫지 못했겠네요!"

    왕윤이 뜻이 굳어진 것을 보고 말한다.

    "장군께서 한실을 바로잡으면 충신이요 청사에 이름을 전하고 아름다운 명성을 백세에 떨치리다. 장군께서 동탁을 돕는다면 반신 反臣(반역의 신하)으로 역사에 남아 더러운 이름이 만년을 가리다."

    여포가 자리에서 일어나 절하며 말한다.

    "제 뜻이 이미 정해졌으니 사도께서 의심하지 마세요."

    "다만 일이 실패해 도리어 큰 화를 부를까 걱정이군요."

    여포가 차고 있던 칼로 팔을 찔러 피를 내어 맹서한다. 왕윤이 무릎 꿇고 사례하며 말한다.

    "한나라 사직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모두 장군 덕이네요. 절대 새어 나가선 안 돼요! 계책이 세워지면 알려주겠습니다."

    여포가 씩씩하게 응락하고 떠난다. 왕윤이 복야 사손서와 사예교위 황완을 불러 상의한다. 사손서가 말한다.

    "방금 주상께서 병이 나았으니 말 잘하는 사람 하나를 미오로 보내 동탁에게 의논할 게 있다고 하세요. 한편으로 천자의 밀조를 여포에게 주고 조문 안에 갑병 甲兵을 매복해 동탁을 유인해 죽이는 게 상책이지요."

    황완이 말한다.

    "누가 감히 갈 수 있겠습니까?"

    사손서가 말한다.

    "여포와 동향인 기도위 이숙이 동탁이 벼슬을 높여주지 않자 깊이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을 보내면 동탁도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왕윤이 "좋소"라 말하고 여포를 불러 상의하니 여포가 말한다.

    "예전에 제게 정건양을 죽이도록 권한 자도 그 잡니다. 이번에 안 간다고 하면 제가 먼저 베어버리지요."

    몰래 사람을 보내 이숙을 오게 하고 여포가 말한다.

    "예전에 공께서 제로 하여금 정건양을 죽이게 하고 동탁에게 넘어오게 하였지요. 이제 동탁은 위로 천자를 업신여기고 아래로 생령 生靈을 학대하여 그 죄악이 가득하니 인신 人神이 공분합니다. 공께서 천자의 조서를 들고 미오로 가서 동탁을 입조시키고 복병으로써 죽여 한실을 힘껏 섬긴다면 모두 충신이 되는 것인데 공의 뜻은 어때요?"

    "저도 역적놈을 제거하고 싶은 지 오래이나 마음을 같이 할 이 없는 게 한스러웠을 따름이지요. 이제 장군께서 이러시니 하늘이 내려준 기회인데 제게 어찌 다른마음이 있겠습니까!"

    이숙이 화살을 꺾어 맹서한다. 왕윤이 말한다.

    "공께서 이번 일을 성사시키면 어찌 현관 顯官(높은 벼슬)을 못 얻을까 걱정하겠소?"

    이튿날 이숙이 십수 기를 이끌고 미오에 당도한다. 천자의 조서가 왔다고 알리자 동탁이 불러들인다. 이숙이 들어가 절하니 동탁이 말한다.

    "천자께서 무슨 조서를 내리셨나?"

    "천자께서 병이 이제 나으셔서 미앙전에 문무 관리를 불러모은 뒤 태사께 선위하고자 하신다고 조서를 보내셨네요."

    "왕윤의 뜻은 어때?"

    "왕 사도도 이미 '수선대 受禪台'(선위를 받는 대)를 세우게 하고 주공께서 당도하시기만 기다리고 있지요."

    동탁이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내 어젯밤 꿈에서 용 한 마리가 내 몸을 감싸던데 과연 이런 기쁨 소식을 듣는구먼. 놓칠 수 없는 기회야!"

    심복 이각, 곽사, 장제, 번조 등 넷에게 비웅군 飛熊軍 3천을 이끌고 미오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그날 수레를 준비해 서울로 가려한다. 고개를 돌려 이숙에게 말한다.

    "내가 황제가 되면 너는 집금오를 시켜주마."

    이숙이 절을 올려 사례하며 스스로를 '신하'라 칭한다.

    동탁이 모친을 만나 작별 인사를 한다. 모친이 구십이 넘었다.

    "우리 아가 어디 가냐?"

    "제가 한나라의 선위를 받으니 엄마는 조만간 태후가 되는 거죠!"

    "내가 요새 살이 떨리고 가슴이 뛰는 게 아무래도 길조가 아닌 것 같아 두렵구먼."

    "국모가 되실테니 어찌 미리 떨리는 게 없을 턱이 있나요!"

    모친에게 인사하고 떠난다. 떠날 때 초선에게 말한다.

    "내가 천자가 되면 너는 당연히 귀비 貴妃가 되지."

    초선이 눈치 채고 거짓으로 매우 기뻐하며 절을 올려 사례한다. 동탁이 미오를 나와 수레에 타고 앞뒤로 빽빽히 호위병력을 붙여 장안으로 향 한다. 삼십 리를 못 가서 수레 바퀴 하나가 갑자기 부러지니 동탁이 수레에서 내려 말을 탄다. 다시 십 리를 못 가서 말이 울부짖으며 머리를 치켜들어 고삐를 끊는다. 동탁이 이숙에게 묻는다.

    "수레 바퀴가 부러지고 말은 고삐를 끊으니 무슨 징조야?"

    "이건 바로 태사께서 한나라에서 선위를 받아 낡은 걸 버리고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이라 장차 옥가마와 황금안장을 탈 것이란 징조지요."

    동탁이 기뻐하며 그 말을 믿는다.

    이튿날 가는 도중에 갑자기 광풍이 몰아치고 안개가 짙어 하늘을 가린다. 동탁이 이숙에게 묻는다.

    "이건 또 무슨 징조냐?"

    "주공께서 용상에 오르시니 틀림없이 붉은 빛과 보라 안개가 나타나 하늘 같은 위엄을 떨치게 하는 게지요."

    동탁이 다시 기뻐하며 의심하지 않는다. 성밖에 닿자 백관이 모두 나와 영접한다. 오로지 이유만이 병이 있어 집 안에서 나오지 못했다. 동탁이 승상부에 이르자 여포가 들어와 하례한다. 동탁이 말한다.

    "내가 구오 九五(천자를 뜻하는 주역 周易의 괘)의 자리에 오르면 너는 천하의 병마를 총독하겠구나."

    여포가 절을 올려 사례하고 장막 앞에서 헐숙 歇宿(쉬고 묵음)한다. 이날 밤 십수 명 어린이가 교외에서 노래를 지어 부르는데 바람을 타고 장막까지 들려온다. 노래는 이렇다.

    "천리 풀(千里草 = 董)이 무성하더니 십리 점쟁이(十里卜=卓) 살 수 없구나!"

    노랫소리 애절하다. 동탁이 듣고 이숙에게 묻는다.

    "이 동요는 길흉이 어때?"

    "이것 역시 유 씨가 망하고 동 씨가 흥한다는 뜻이네요."

    이튿날 이른 새벽 동탁이 의종 儀從 행렬과 함께 입조하는데 어느 도인이 푸른 도포에 흰 두건을 쓰고 손에 긴 대나무 지팡이를 짚었는데 그 꼭대기에 한 길짜리 베(포 布)를 묶고 위아래 끝에 각각 입 구 口자(口口= 여 呂)를 썼다. 동탁이 이숙에게 묻는다.

    "저 도인은 무슨 뜻으로 저래?"

    "미친 놈이군요."

    이숙이 병사를 불러 쫓아버린다. 동탁이 조정에 들어가는데 뭇 신하가 조복을 차려 입고 길에 마중 나왔다. 이숙이 손에 보검을 쥐고 수레를 인도한다. 북액문 北掖門에 당도하자 군병이 모두 문밖에 머물고 수레와 이십여 명만 함께 들어간다.

    동탁이 멀리 바라보니 왕윤 등이 각각 보검을 쥐고 전문 殿門 앞에 서 있다. 놀라서 이숙에게 묻는다.

    "칼을 쥔 건 무슨 까닭이냐?"

    이숙이 응답하지 않고 수레를 밀고 들어가자 왕윤이 크게 외친다.

    "반적 反賊 놈이 여기 있구나. 무사들은 어딨냐?"

    양쪽에서 백여 인이 돌아나와서 극과 삭으로 찔러댄다. 동탁이 갑옷을 받쳐 입어 뚫리지 않고 팔을 다쳐 수레에서 떨어지며 크게 소리친다.

    "내 아들 봉선아! 어디 있니?"

    여포가 수레 뒤에서 성난 목소리를 외치며 나온다.

    "황제의 조서로 역적을 토벌하노라!"

    방천화극으로 한번에 목구멍을 바로 찌르자 이숙이 재빨리 머리를 베어 손에 든다. 여포가 왼손으로 극을 쥐고 오른손으로 조서를 꺼내 크게 외친다.

    "조서를 받들어 역적 동탁을 토벌하니 그 나머지는 죄를 묻지 않겠다!"

    장리 將吏(문무 관리) 모두 만세를 부른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동탁을 한탄했다.

    천하를 거머쥐어 성공하면 제왕이 되고
    실패해도 부자는 될 줄 알았지만
    하늘이 용서치 않을 줄 누가 알았으리
    미오성을 쌓자마자 멸망하구나

    그 자리에서 여포가 크게 외친다.

    "동탁이 모질게 굴도록 만든 것은 모두 이유가 한 짓이다! 누가 잡아오겠냐?"

    이숙이 듣자마자 잡으러 가겠다고 하는데 조문 밖에서 함성이 들린다. 이유의 노비들이 이미 이유를 사로잡아 포박해 바쳤다는 것이다. 왕윤이 명을 내려 포박한 채 저잣거리로 끌고가서 목을 벤다. 동탁의 머리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에 호령 號令한다. 동탁의 시체가 비만하기에 지키던 병사가 배꼽 가운데에 심지를 꽂아 불을 붙이니 기름이 흘러 땅에 퍼진다. 지나가는 백성마다 동탁의 머리를 집어던지고 시신을 발로 걷어찬다. 왕윤이 여포에게 황보숭, 이숙과 함께 병력 5만을 이끌고 미오성으로 가서 동탁의 가산을 몰수하고 집안 사람을 잡아들인다.

    이각, 곽사, 장제,번조는 동탁이 이미 죽고 여포가 들이닥친다는 소식을 듣고 비웅군을 이끌고 그날밤 양주로 달아난다. 여포가 미오성에 당도해 먼저 초선을 취한다. 황보숭이 명령해 미오성 안에 잡혀 있던 양갓집 여자를 모조리 석방한다. 다만 동탁의 친척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죽인다. 동탁의 모친도 피살된다. 동탁의 아우 동명과 조카 동황도 목이 잘려 호령된다. 미오성 안의 재산을 몰수하 니 황금 수십만, 백금 수백만, 기라 綺羅(고운 비단), 진주와 보석, 기명 器皿(각종 그릇), 양식이 셀 수 없다. 돌아와서 왕윤에게 알리니 왕윤이 군을 호궤하고 도당에서 연회를 베풀어 관리들을 불러모아 술을 나누며 축하한다. 주연 중에 누군가 알린다.

    "동탁의 시체를 거리에 내두었는데 누군가 와서 엎드려 크게 곡하고 있네요."

    왕윤이 노해 말한다.

    "동탁이 복주 伏誅(벌 받아 죽음)하니 사민 士民 누구나 축하하는데 누가 감히 곡을 하는 게야?"

    무사를 불러 "내 앞으로 잡아와라!" 하니 잠시 뒤 잡아 온다. 뭇 관리가 보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는 딴 사람도 아닌 시중 채옹이다. 왕윤이 꾸짖는다.

    "동탁은 역적이다! 이제 복주하니 나라의 큰 다행이야. 너는 한나라 신하로서 나라를 위해 축하하지 않고 도리어 역적을 위해 곡을 하다니 어찌된 거냐?"

    채옹이 복죄(죽을 죄로 벌 받음)를 빈다.

    "제가 못난 놈이지만 대의를 모르지 않으니 어찌 나라를 배반하고 동탁을 따르겠나이까? 단지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저도 모르는 사이 한번 곡을 한 것이지만 죄가 큽니다. 공께서 거듭 살펴주소서. 경수월족 黥首刖足(죄인의 얼굴에 죄명을 문신하고 발을 자르는 형벌)의 벌을 내리시고 한나라 사서 史書를 마저 완성해 죄를 씻게만 해주신다면 다행으로 알겠나이다."

    뭇 관리가 채옹의 재주를 아껴 모두 힘써 구하려고 한다.

    태부 마일단도 은밀히 왕윤에게 말한다.

    "백개(채옹)는 광세일재曠世逸才(아주 뛰어난 재주)이니 한나라 사서를 이어 완성토록 한다면 진실로 성사 盛事지요. 또한 그는 효행 이 평소 널리 알려졌으니 함부로 죽이면 인망을 잃을까 두렵군요."

    왕윤이 말한다.

    "예전에 효무제께서 사마천을 죽이지 않고 뒤에 사서를 쓰게 하니 후세까지 방서 謗書(비방하는 책/거짓으로 가득한 책)가 돌아다니게 됐습니다. 이제 국운이 쇠미하고 조정이 어지러운데 영신 佞臣(간신)을 살려둠으로써 어린 임금의 좌우에서 붓을 들어 우리를 헐뜯게 만들 수는 없지요."

    마일단이 말없이 물러나 뭇 관리와 사담을 나누며 말한다.

    "왕윤은 후손을 남기지 못하리다! 착한 사람은 국가의 기강이요 사서의 제작은 국가의 전범이지요. 그런데 기강을 멸하고 전범을 폐지하니 어찌 오래 갈 수 있겠소?"

    그 자리에서 왕윤이 마일단의 말을 듣지 않고 채옹을 하옥해 목졸라 죽인다. 당시 사대부들이 듣고 모두 눈물흘린다. 훗날 사람들이 의논하기를, 채옹이 동탁에게 곡한 건 역시 옳지 않지만 왕윤이 죽인 건 너무 심하다고 하였다. 누군가 시를 지어 탄식했다.

    동탁이 권세를 쥐고 방자해 어질지 못했는데
    시중 채옹은 어찌 이렇게까지 스스로 망치는가
    당시에 제갈량은 융중에 누워 있었으니
    어찌 경거망동으로 난신을 섬기겠는가

    한편, 이각, 곽사, 장제, 번조는 섬서로 도망가고 사람을 장안에 보내 글을 올려 사면을 구한다. 왕윤이 말한다.

    "동탁이 발호한 건 모두 이들 넷이 도운 탓이오. 이제 천하를 크게 사면하더라도 이들 넷만은 사면할 수 없소."

    사자가 돌아가 이각에게 알리니 이각이 말한다.

    "사면을 구하는 것도 실패했으니 각자도생을 해야겠구나."

    모사 가후가 말한다.

    "여러분이 군대를 버리고 홀로 움직이면 일개 정장 亭長도 포박할 수 있소. 차라리 섬서 사람들을 꾀어서 휘하의 군마와 합쳐 장안으로 몰려가 동탁의 복수를 함만 못해요. 성공하면 조정을 받들어 천하를 바로잡고, 실패하면 그때 달아나도 늦지 않지요."

    이각 들이 옳다고 여기고 서량주에 유언비어를 퍼뜨린다.

    "왕윤이 이곳 사람을 모조리 죽일 셈이라네!"

    모두가 놀라고 당황하니 다시 말을 퍼뜨린다.

    "헛되이 죽을 바에야 차라리 함께 반란을 일으키자!"

    모두가 따른다.

    이에 십만여의 무리를 모아 4로로 나눠 장안성으로 몰려간다. 도중에 동탁의 사위 우보가 5천인을 이끌고 장인의 복수를 꾀하니 이각이 병력을 합치고 그를 선봉으로 삼는다. 네 사람이 쉬지 않고 진격한다. 왕윤이 서량병의 진격을 듣고 여포와 상의한다. 여포가 말한다.

    "사도 방심 放心하세요. 이 쥐새끼 같은 놈들 많아봤자 대수일까요?"

    이숙과 더불어 군을 이끌고 나가서 대적한다. 이숙이 선봉으로 우보와 붙어 한바탕 크게 물리친다. 우보가 맞서지 못하고 진을 물려 달아난다. 이날 밤 이 경에 우보가 이숙의 무방비를 틈타 도리어 진지를 들이친다. 이숙의 병사가 놀란 쥐떼처럼 3십여 리를 패주하니 태반이 꺾여 여포를 찾아간다. 여포가 대로해 말한다.

    "네가 어찌 나의 예기를 꺾냐!"

    이숙을 참하고 그 머리를 군문에 건다.

    이튿날 여포가 진군해 우보와 맞선다. 우보 따위가 어찌 여포에게 대적하겠는가? 거듭 대패해 달아난다. 이날밤 우보가 심복 호적아와 상의하며 말한다.

    "여포가 용맹하니 1만인도 대적할 수 없지. 이각을 비롯한 네 사람을 속여 금은보화를 숨겨서 서너 명만 데리고 군을 버리고 달아나는 게 낫겠어."

    호적아가 응낙한다. 이날 밤 금은보화를 챙겨 군영을 버리고 달아나니 따르는 자 서넛이다. 강을 건너려는데 호적아가 금은보화를 탐내어 우보를 죽이고 여포를 찾아가 그 머리를 바친다. 여포가 사유를 묻자 하인이 고한다.

    "호적아가 우보를 모살하고 금은보화를 빼앗았습니다."

    여포가 크게 노하여 호적아를 주살하고 진군하다가 이각군과 마주친다.

    다른 이들이 미처 포진하기도 전에 여포가 방천화극을 꼬나잡고 말달려 군을 이끌고 달려든다. 이각군이 견디지 못하고 5십여 리를 달아나 산 아래 영채를 세우고 곽사, 장제, 번조를 불러 함께 의논한다.

    "여포가 용맹하지만 무모하니 걱정이 없소. 내 병력으로 계곡의 입구를 막고 매일 도발하겠소. 곽장군이 군을 배후에서 기습하는데 팽월이 초군을 동요시킨 법을 본받아 징치면 진군하고 북치면 퇴군하시오. 장제와 번제 두 분은 병력을 나눠 2로로 달려가서 장안을 함락하시오. 그들의 머리와 꼬리가 서로 도울 수 없으니 반드시 대패하리다."

    모두 이 계책을 따른다.

    여포가 군을 이끌고 산 아래 이르자 이각이 군을 이끌고 싸움을 건다. 여포가 분노해 달려들자 이각이 산 위로 달아난다. 산 위에서 시석이 빗발치자 여포군이 전진할 수 없다. 그런데 곽사가 뒤에서 기습함을 알리니 여포가 급히 되돌아가 싸운다. 북소리 크게 울리자 곽사군이 달아나고 없다. 여포가 군을 거두는데 징소리 메아리치더니 이각군이 되돌아온다. 미처 대처하기 전에 뒤에서 곽사군이 달려든다. 여포에게 달려오는가 싶더니 다시 북을 울리고 퇴군한다 . 여포가 잔뜩 화나고 답답하다.

    이렇게 며칠을 싸우고 싶어도 뜻대로 안 되고 멈추려 해도 안 된다. 걱정스럽고 화가 나는데 갑자기 누군가 말을 달려와서 알린다. 장제와 번조의 2로 군마가 마침내 장안을 침범해 서울이 위급하다고 한다. 여포 급히 회군하는데 배후에서 이각과 곽사가 달려 든다. 여포가 전의를 잃고 달아날 뿐이라 수많은 병력을 잃는다. 장안성 아래에 당도하니 적병이 구름처럼 비처럼 몰려들어 성 둘레의 해자를 둘러싸니 여포군이 싸워도 불리하다. 여포가 난폭하고 무자비하므로 많은 병사가 적에게 항복하자 여포가 몹시 걱정한다.

    며칠 뒤 동탁의 잔당 이몽과 왕방이 성 안에서 도적과 내응해 몰래 성문을 여니 사방에서 역적의 군대가 일제히 들이친다. 여포가 좌충우돌하나 막지 못하고 수백 기를 이끌고 청쇄문 밖에서 왕윤을 부른다.

    "형세가 위급하니 사도께서 말 타시고 함께 관 밖으로 나가 따로 좋은 계책을 냅시다!"

    "사직을 지키는 영들의 도움으로 국가를 안정시키는 게 내 소원이오. 그럴 수 없다면 내 목숨을 바치겠소. 어려움에 처해 구차하게 모면하는 것은 내가 할 짓이 아니오. 나를 대신해 관동 關東의 제후에게 사례하고 국가를 우해 노력하시오!"

    여포가 거듭 권하지만 왕윤은 가려 하지 않는다.

    잠시 뒤 문마다 불꽃이 하늘을 찌르니 여포가 어쩔 수 없이 처자식도 버리고 백여 기만 이끌고 급히 관문을 나가 원술을 찾아간다. 이각과 곽사가 병사들을 풀어 크게 약탈한다. 태상경 종불, 태복 노규, 대홍로 주앙, 성문교위 최열, 월기교위 왕흔이 모두 국난 중에 죽는다. 적병이 내정을 포위하여 위급하자 모시는 신하들이 천자에게 선평문에 올라가 난리를 그치도록 타이르라고 청한다. 이각 등이 멀리서 천자의 수레덮개를 보고 진군을 멈추고 "만세"를 부른다. 헌제가 누각의 문에 기대어 말한다.

    "경들이 주청을 기다리지 않고 함부로 장안에 들어오니 어찌된 까닭이오?"

    이각과 곽사가 우러러 보며 아뢴다.

    "동태사는 폐하의 사직을 지키는 중신이거늘 함부로 왕윤이 모살하니 신들이 복수하러 온 것이지 감히 반역할 뜻은 없습니다. 왕윤만 만나면 신들은 철군하겠습니다."

    왕윤이 황제 곁에 있다가 이 말을 듣고 아뢴다.

    "신은 본래 사직을 위해 계책을 내었습니다. 일이 이 지경이니 폐하께서 신을 애석히 여기다가 국가를 그르쳐선 안 됩니다. 신이 내 려가 두 도적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황제가 배회 徘徊(여기서는 주저의 뜻)하며 차마 보내지 못하니 왕윤이 선평문 망루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크게 외친다.

    "왕윤이 여깄다!"

    이각과 곽사가 칼을 뽑아 꾸짖는다.

    "동 태사께 무슨 죄가 있다고 살해했어?"

    "동탁의 죄는 미천선지 彌天亙地(하늘과 땅에 가득)하니 말로 다 할 수 없지! 벌 받아 죽는 날에 장안의 사민 士民 모두 축하한 걸 너 혼자 못 들었냐?"

    이각과 곽사가 말한다.

    "태사께서 죄가 있다한들 우리는 무슨 죄가 있다고 사면하지 않았냐?"

    왕윤이 크게 욕한다.

    "이 역적 놈들이 쓸데없이 말이 많구나! 나 왕윤, 오늘 죽을 뿐이야."

    두 도적의 손에 왕윤이 망루 밑에서 죽는다.

    도적 무리가 왕윤을 죽이면서, 병사들을 보내어 왕윤의 종족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조리 살해한다. 사민들이 눈물 흘리지 않는 이 없 다. 그 자리에서 이각과 곽사가 깊이 생각한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이때 천자를 안 죽이면 언제 또 대사를 꾀하겠냐?"

    칼을 쥔 채 크게 외치며 안으로 달려들어온다.

    악당 두목이 벌 받아 죽어 재앙이 그치지마자
    잔당이 종횡으로 날뛰니 재앙이 다시 찾아오네

    헌제의 생명 어찌 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편에서 풀릴 것이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