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80회 조비가 황제를 폐하여 한나라를 찬탈하고 한중왕이 정통의 자리에 올라 대통을 잇는다

    한편, 화흠을 비롯한 한무리 문무관료가 들어가 헌제를 만나 화흠이 아뢴다.

    “삼가 살펴보건대 위왕께서 왕위에 오르신 이래 덕을 사방에 베푸시고 어지심이 만물에 미칩니다. 고금古今을 초월해 아무도 비록 당우 唐虞(요임금과 순임금)라도 이것을 넘어서지 못하기에 신들이 모여 의논했습니다. 한조漢祚(한나라의 황제 자리와 국통)가 이미 끝났 으니 바라건대 폐하께서 요순의 도를 따라 산천山川과 사직社稷을 위왕께 넘겨주시면 위로 천심에 맞고 아래로 민의에 맞습니다. 그 러시면 폐하도 청한清閒(청정하고 한적함)한 복을 편안히 누리게 되시니 조종祖宗도 행심 幸甚(몹시 다행)! 생령(백성)도 행심입니다! 신들이 의논해 정해서 일부러 찾아와 주청하나이다.”

    황제가 듣고 크게 놀라 한참 말이 없다 백관들 눈치를 보며 말한다.

    "짐이 생각컨대 고조황제께서 삼척검으로써 흰뱀을 베며 의병을 일으켜 진秦을 평정하고 초楚를 멸해 기업基業을 창조해 세통 世統을 전한지 4백년이오. 짐이 비록 재주 없으나 본래 아무 과오나 죄악도 없이 어찌 차마 조종대업을 함부로 버리겠소? 그대 백관들은 다시한 번 공무를 보며 상의해보시오."

    화흠이 이복李伏과 허지許芝를 끌고 앞으로 다가와 아뢴다.

    "폐하께서 못 믿으시면 이 둘에게 물어보십시오."

    이복이 아뢴다.

    "위욍께서 즉위하신 이래 기린이 강생降生(출생)하고 봉황이 내의來儀(봉황이 나타나 춤을 추는 것)하고 황룡黃龍이 출현하고 가화嘉禾 (큰 벼이삭)가 우거지고 감로甘露가 내렸습니다. 이 모두 상천上天(하늘/ 하느님)이 상서祥瑞를 보임이니 위나라가 마땅히 한나라를 대신할 징조입니다.”

    허지도 아뢴다.

    “신들의 직장職掌(직무)이 사천司天(천문관측)이라 밤에 건상乾象(천문)을살피니 염한 炎漢(한나라)의 기수氣數(운명) 이미 끝났습니다 . 폐하의 제성 帝星(속칭 ‘자미성’으로 황제를 상징하는 별자리로 작은곰자리에 위치)은 은닉隱匿해 희미한데 위나라 건상은 하늘 가득 해 이루 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더욱이 어느 도지圖識(그림으로써 표기한 점괘 같은 것)에 들어맞으니 그에 따르면, 귀鬼가 변邊에 있 고 위委가 붙어서 마땅히 한漢을 대신하니 차마 말할 수 없다. 언言이 동쪽에 있고 우午가 서쪽에 있어 두해(日)가 나란히 빛나며 위아래 로 옮겨가리라, 했사옵니다. 이것을 논하면 폐하는 어서 선위하셔야 합니다. 귀鬼가 변邊에 있고 위委가 붙음은 바로 위 魏자입니다. 언言이 동쪽에 있고 우午가 서쪽에 있음은 바로 허許자입니다. 두 해(日)가 나란히 빛나며 위아래로 옮김은 바로 창昌자입니다. 이는 바 로 위나라가 허창에서 한나라의 선위를 받음입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살펴주소서.”

    헌제가 말한다.

    “상서祥瑞와 도지 모두 허망한 것인데 어찌 허망한 것으로써 갑자기 짐더러 조종기업을 버리라 하오?”

    왕랑 王朗이 아뢴다.

    “자고이래 흥興하는 게 있으면 폐하는 것도 있게 마련이고 성하는 게 있으면 쇠하는 것도 있게 마련입니다. 어찌 망하지 않는 나라가 있 으며 무너지지 않는 가문이 있겠습니까? 한실 漢室은 4백여 년을 전해와 폐하께 이르러 기수가 이미 다하니 어서 물러나야지 늦춰 머뭇 거리면 안 됩니다. 지체하면 곧 변고가 생길 것입니다.”

    헌제가 크게 통곡하며 후전으로 들어간다. 백관들 비웃으며 물러난다.

    다음날 관료들 다시 대전에 모여서 환관을 들여보내 헌제에게 청한다. 헌제가 걱정스럽고 두려워 감히 나오지 못하니 조후 曹後가 말한 다.

    “백관이 폐하께 설조設朝(조정에서 정무를 봄)를 청하는데 무슨 까닭에 추조推阻(거절)하십니까?”

    헌제가 눈물 흘리며 말한다.

    “그대 형이 찬위篡位하려고 백관을 시켜 핍박하니 나갈 수 없소.”

    조후가 크게 노해서 말한다.

    “내 형이 어째서 이렇게도 난역 亂逆(반란)을 저지른단 말이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홍曹洪과 조휴曹休가 검을 차고 들어와 헌제에게 대전 밖으로 나가라 청하자 조후가 크게 꾸짖는다.

    “이 모두 너희가 난적亂賊으로서 부귀를 바라 함께 역모를 저질러서다! 내 부친의 공로가 환구寰區(천하)를 뒤덮고 위세가 천하에 울려 도 감히 신기神器(옥새)를 찬절篡竊하지 않았다. 이제 내 형이 왕위를 잇자마자 한나라를 찬탈하겠다니 황천皇天(하느님)께서 결코 복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말을 마치더니 통곡하며 궁궐로 들어간다. 좌우에서 모시는 이들 모두 한탄하며 눈물흘린다.

    조홍과 조휴가 억지로 헌제에게 밖으로 나가라 청한다. 헌제가 핍박을 못 이겨 옷을 갈아입고 전전 前殿(정전正殿)으로 나간다. 화흠이 상주한다.

    “폐하! 신들의 어제 의논을 따르면 큰 화는 면하십니다.”

    헌제가 소리내 울며 말한다.

    “경들 모두 한나라 녹을 먹은지 오래요. 그 사이 한조漢朝 공신 자손이 많은데 어찌 차마 이런 신하답지 못한 일을 하오?”

    화흠이 말한다.

    “폐하께서 중의를 따르지 않다 단석旦夕(조만간)에 소장지화蕭牆之禍(내부의 변란)가 일어날까 걱정이니 결코 신들이 폐하께 불충한 게 아닙니다. “

    “누가 감히 짐을 시해하겠소?”

    화흠이 소리를 높인다.

    “천하사람 모두 폐하께 인군人君(임금)의 복이 없어 사방 큰 난리가 난 걸 알고 있습니다! 위왕(조조)께서 조정에 계시지 않았다면 폐하 를 시해한 이 어찌 한사람에 그치겠습니까? 폐하께서 아직 은혜를 모르고 그 덕을 갚지 않아 곧 천하사람으로 하여금 힘모아 폐하를 토 벌하게 만들 셈입니까?”

    황제가 크게 놀라 소매를 털며 일어난다. 왕랑이 화흠에게 눈짓하자 화흠이 종종걸음으로 쫓아가 황제의 용포를 붙잡고 낯빛을 고쳐 말 한다.

    “허락인지 불허인지 어서 한마디 하시오!”

    헌제가 벌벌 떨며 답하지 못한다. 조홍과 조휴가 검을 뽑아들고 크게 외친다.

    “부보랑符寶郎(옥새 관리인)은 어디 있냐?”

    조필祖弼이 그 소리에 나오며 말한다.

    “부보랑 여기 있다!”

    조홍이 옥새를 찾아내려 하자 조필이 꾸짖는다.

    “옥새는 천자의 보물이거늘 어찌 멋대로 찾냐!”

    조홍이 무사들에게 소리쳐서 끌어내 베라 한다. 조필이 크게 욕하기를 멎지 않으며 죽는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린다.

    간사한 도적들이 권력을 잡아 한실漢室이 망하니
    선위禪位를 사칭하며 우당虞唐을 본받는다네
    조정 가득한 신하들 모두 위나라를 떠받들고
    충신이라고는 겨우 부보랑만 보이네

    헌제가 덜덜 떨어 마지않는데 섬돌 아래 갑옷 입고 과戈를 든 1백여 사람이 모두 위군이다. 헌제가 눈물흘리며 신하들에게 말한다.

    “짐이 천하를 위왕에게 선양하겠으니 부디 잔천殘喘(쇠잔한 목숨)을 살려주면 이로써 한실 천년天年을 끝내겠소.”

    가후가 말한다.

    “위왕께서 절대 폐하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어서 조서를 내려 중심眾心(사람들 마음)을 안정시키십시오.”

    헌제가 마지못해 진군더러 나라를 넘기는 조서를 기초하게 하고 화흠더러 조서와 옥새를 받들어 위왕 궁전으로 가서 헌납하게 한다. 조 비가 크게 기뻐하며 조서를 펼쳐 읽으니 이렇다.

    ‘짐이 재위한지 3십년 동안 천하가 탕복蕩覆(흔들리고 뒤집힘)했으나 다행히 조종祖宗의 혼령 덕분에 위기를 벗어나 다시 존립했소. 그러나 이제 천상天象을 우러르고 민심을 굽어 살피니 화정炎精의 기수 이미 끝나고 행운行運(운세)이 조씨에게 있소. 이에 전왕前王(조조 )은 이미 신무 神武의 공을 세우고 금왕今王(조비)도 명덕을 비춰 그 기대에 응했소. 역수曆數가 이렇게 분명하니 믿어 알 수 있소. 무릇 대도지행大道之行(대도가 행해짐)이면 천하위공天下為公(천하를 모두 향유하게 됨)이라 했소. 당요唐堯(요임금)는 아들을 위해서 삿되 지 아니해 이름을 무궁히 전하소. 짐도 남몰래 이를 우러러 본받고자 했소. 이제 마땅히 요임금의 모범을 따라 승상 위왕에게 선위하니 위왕은 사양치 마시오!’

    조비가 다 읽자마자 조서를 받아들이려 한다. 사마의가 간언한다.

    “불가합니다. 비록 조서와 옥새가 왔으나 전하께서 우선 표를 올려 겸손히 사양해 천하의 비방을 끊으십시오.”

    조비가 이를 따라 왕랑에게 표를 짓게 시켜, 스스로 덕이 모자라니 따로 대현大賢을 구해 천자자리를 잇도록 청한다. 황제가 표를 읽더 니 속으로 몹시 놀라고 의심스러워 신하들에게 말한다.

    “위왕이 이렇게 겸손한데 어찌해야겠소?”

    화흠이 말한다.

    “지난날 위무왕(조조)이 왕의 작위를 받을 때 세번 사양했지만 조서로써 불허하자 비로소 받았습니다. 이제 폐하께서 다시 조서를 내리 면 위왕이 마땅히 윤종允從합니다.”

    헌제가 부득이하게 다시 환계桓階더러 조서를 기초하게 시키고 고묘사高廟使 장음張音더러 부절(증표)을 지니고 옥새를 가지고 위나라 왕궁으로 가게 한다. 조비가 조서를 개봉해 읽으니 이렇다.

    ‘아아! 위왕이여! 글을 올려 겸양하셨구려. 짐이 속으로 한나라의 도道가 능지陵遲(점차 쇠퇴함)한다 여긴지 오래요. 다행히 무왕 조操가 그 덕망으로써 부운符運을 받고 신무神武를 떨쳐 흉폭한 무리를 삼제芟除(제거)해 구하區夏(중원)를 청정清定했소. 금왕今王 비丕가 전서前緒(유업)를 계승해 지극한 덕이 빛나고 명성과 교화가 사해에 미치고 인풍仁風이 팔구八區(천하)에 세차게 불었소. 하늘의 역수 曆數가 참으로 그대에게 있소. 지난날 우순虞舜(순임금)에게 큰 공훈이 스무 개 있어 방훈放勳(요임금)이 그에게 천하를 넘겼소. 대우大 禹(우임금)에게 소도疏導(소통/ 개발)가 쌓이자 중화重華(순임금)가 제위를 선양했소. 한나라는 요임금의 운運(오행의 유전)을 이어받 아 익선전성翼善傳聖(요임금)의 도리가 있으니 영지靈祇(신령/ 천지신명)를 따르고 밝은 천명을 받아 어사대부 장음을 시켜 절부를 지 니고 새수를 가져가게 하니 왕은 부디 받아주오!’

    조비가 조서를 접하고 흔희欣喜(환희)해 가후에게 말한다.

    “두 차례 조서를 받았��나 끝내 천하후세天下後世에 찬절篡竊(찬탈)의 오명을 벗지 못할까 두렵소.”

    “이런 일은 매우 쉽습니다. 다시 장음더러 새수를 갖고 돌아가라 하면서 화흠을 시켜 한제漢帝로 하여금 대를 하나 쌓되 수선대受禪臺라 이름짓게 하십시오. 길일과 양진良辰(좋은 시기)을 택해 대소공경大小公卿을 모조리 수선대 아래 오게 한 뒤 천자를 시켜 친히 새수를 받들어 천하를 대왕께 넘기게 하면 이로써 사람들의 의혹을 풀고 이런저런 말들을 근절시킬 수 있습니다.”

    조비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장음더러 새수를 갖고 돌아가라 하고 황제에게 표를 지어 겸사한다. 장음이 돌아가 헌제에게 아뢰니 헌제가 신하 들에게 묻는다.

    “위왕이 다시 사양하니 그 뜻이 어떤 것이오?”

    화흠이 아뢴다.

    “폐하께서 대를 하나 쌓되 수선대라 이름짓고 공경서민을 불러 선위를 밝히십시오. 그러시면 폐하의 자자손손 위나라의 은택을 입습니 다.”

    헌제가 이를 따라 태상원관太常院官을 파견해서 번양繁陽에 복지卜地(터를 정함)해서 3층 높은 대를 쌓고 10월 경오일庚午日 인시寅時( 오전 3시에서 5시)에 선양하기로 한다.

    기일이 되어, 헌제가 위왕 조비에게 대를 올라 선양 받으라 청한다. 대 아래에 대소관료 4백과 어림호분금군御林虎賁禁軍(수도 방위 친위대) 3십만 남짓을 모아 놓고 헌제가 친히 옥새를 받들고 조비에게 봉헌하니 조비가 받는다. 수선대 아래 떼지은 신하들 꿇어앉아 책冊 (칙서)을 들으니 이렇다.

    “아아! 위왕이여! 지난날 당요는 우순에게 선위하고 순도 그렇게 우에게 명했소. 천명은 영원히 머물지 않고 오로지 유덕한 이에게 돌아 가오. 한도漢道가 능지陵遲하니 세상은 질서를 잃었소. 짐의 대에 이르자 대란大亂으로 더욱 어지럽고 군흉群兇이 방자히 반역하니 우 내宇內가 전복顛覆됐소. 무왕武王이 신무神武로써 사방에서 이 난리를 구원하고 구하區夏를 깨끗이해 종묘를 지켜 편안케 했소. 어찌 나 홀로 획예獲乂해 구복九服에서 그 은덕을 누리게 했겠소? 금왕今王은 삼가 전서前緒를 계승해 그 덕이 빛나오. 문무文武 대업大 業을 갖추고 선친의 홍렬弘烈을 밝히는구려. 황령皇靈(신령)이 길조를 내리고 인신人神이 상서로운 징조를 고했소. 크게 정사를 보좌하 던 여럿이 짐의 명운을 입모아 말하니 다들, 그대가 우순(순임금)보다 더욱 적합하니 나로 하여금 도당씨의 전범을 따라 삼가 그대에게 양위하라 하오. 아아! 하늘의 역수 그대 몸에 있으니 그대 마땅히 대례大禮를 따라 만국萬國을 향유해 삼가 천명을 받드오!”

    책서를 다 읽자 위왕 조비가 즉시 팔반대례八般大禮(고대 제왕의 각종 대례)를 받으며 제위에 오른다. 가후가 대소관료를 이끌고 수선대 아래 배알한다. 연호는 연강延康 원년을 황초 원년으로, 국호는 대위大魏로 고친다. 조비가 교지로써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리고 부친 조 조에게 태조 무황제의 시호를 올린다. 화흠이 상주한다.

    “하늘에 두 해 없고 백성에 두 임금 없다 하였습니다. 한제가 천하를 넘겼으니 마땅히 번복藩服(지방)으로 물러나야 합니다. 아무쪼록 명 지明旨를 내려 유씨를 다른 곳에 안치하소서.”

    말을 마치고 헌제를 끌어다 대 아래 무릎꿇려 교지를 듣게 한다. 조비가 교지를 내려 헌제를 산양공山陽公으로 낮춰 그날 바로 떠나보낸 다. 화흠이 검을 잡으며 헌제를 가리켜 소리높여 말한다.

    “새 황제를 세우면 옛 황제는 폐함이 옛부터 상도요! 금상께서 인자하셔 차마 해치지 못하고 산양공으로 삼으니 오늘 바로 떠나고 황제 의 조서가 없으면 입조入朝를 불허하오!”

    헌제가 눈물을 머금고 삼가 사례하며 말타고 떠난다. 대 아래 병사와 백성들이 보고 상감傷感해 마지않는다. 조비가 신하들에게 말한다 .

    “순우지사舜禹之事(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양위한 것)를 짐도 알겠구려!”

    신하들 모두 만세를 부른다. 훗날 누군가 수선대의 일을 살펴보고 시를 지어 한탄한다.

    양한兩漢의 경영이 자못 어려웠거늘
    하루아침에 옛 강산을 잃어버리구나
    황초원년 당우의 옛일를 배운다지만
    사마씨가 장래에 본받으려 보고 있네

    천지에 답사答謝할 것을 백관百官이 조비에게 청한다. 조비가 막 하배下拜(무릎꿇고 절함)하는데 홀연히 대 앞에서 한바탕 괴풍怪風이 휘몰아쳐 모래 날고 돌 구르고 갑자기 소나기 내려 서로 얼굴을 못 알아볼 지경이다. 대 위가 불붙더니 모조리 불살라진다. 조비가 대 위 에 쓰러져 백관이 급히 구해 대 아래로 내려온다. 조비가 한참 뒤 깨어나 시신侍臣(근신)이 부축해 궁중으로 들어가 며칠간 조회를 못 연한다. 그 뒤 병이 조금 낫자 비로소 대전으로 나아가 신하들의 조하朝賀(신하들이 조정에서 하례를 올림)를 받는다. 화흠을 사도司徒 로, 왕랑을 사공司空으로 봉한다. 대소관료 모두 일일이 승진하고 상 받는다. 조비의 병환이 낫지 않자 허창의 궁실에 요사한 것이 많은 가 의심해 허창에서 낙양으로 행차해 크게 궁실을 짓는다.

    어느새 누군가 성도에 다다라 조비가 대위황제에 즉위해 낙양에 궁전을 축조함을 알린다. 또한 한제가 이미 우해遇害(피살)됐 전한다. 한중왕이 듣고 종일 통곡하고 백관에게 상복을 입으라 한다. 멀리 바라보며 제를 올려 효민황제孝愍皇帝로 추존한다. 이에 현덕이 병에 걸려 정사를 살피지 못해 정무를 모두 공명에게 맡긴다. 공명이 태부 허정許靖, 광록대부 초주와 상의해, 천하에 하루도 임금이 없을 수 없다 말하며 한중왕을 황제로 높이려 한다. 초주가 말한다.

    “요새 상풍경운祥風慶雲(상서로운 바람과 구름)의 길조가 있어 성도 서북쪽에 누런 기운 수십 길이 하늘로 치솟고 또한 제성帝星이 필畢 , 위胃, 묘昴(모두 별이름)의 자리에 보이며 달처럼 황황煌煌합니다. 이는 곧 한중왕이 제위에 올라 한통漢統을 계승할 징조이니 무엇을 더 머뭇거리겠습니까?”

    이에 공명이 허정과 대소관료를 이끌고 표를 올려 한중왕에게 제위에 오르라 청한다. 한중왕이 표를 다 읽고 크게 놀라 말한다.

    “경들이 고를 불충불의不忠不義한 사람으로 만들 셈이오?”

    공명이 상주한다.

    “아닙니다. 조비가 대한을 찬탈해 자립했습니다. 왕상께서 곧 한실의 묘예(후예)라 한통을 계승해 한사漢祀(한나라의 제사 곧 한나라의 종묘사직)를 이어나가야 하십니다.”

    한중왕이 발연히 변색해 말한다.

    “고가 어찌 역적질을 본받겠소!”

    소매를 떨쳐 일어나 후궁으로 들어간다. 관리들 모두 해산한다. 사흘 뒤 공명이 또 관리들과 입조해 한중왕에게 나올 것을 청한다. 모두 앞에 엎드려 절한다. 허정이 상주한다.

    “이미 한천자漢天子는 조비에게 살해돼 왕상께서 제위에 올라 군대를 거느려 역적을 치지 않으면 충의롭다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천하에 왕상께서 즉위해 효민황제의 씻기를 바라지 않는 이 없습니다. 신들의 의논을 따르지 않으면 바로 백성의 바람을 잃게 됩니다.”

    한중왕이 말한다.

    “고가 비록 경제의 후손이나 아직 백성에게 덕택을 베풀지 못했소. 이제 하루아침에 황제로 자립하면 찬절과 무엇이 다르오?”

    공명이 애써 수차 권해도 한중왕이 고집하며 따르지 않는다. 공명이 이윽고 한가지 꾀를 내 관리들에게 여차여차如此如此 지시한다. 이에 공명이 병을 핑계로 외출하지 않는다.

    한중왕은 공명의 병세 위독하다 듣고 친히 부중에 이르러 곧바로 들어가 와탑臥榻(침상) 가에서 묻는다.

    “군사께서 걸린 질환은 무엇이오?”

    “걱정으로 가슴이 타는 듯해 목숨이 오래가지 못하겠습니다.”

    “군사의 걱정은 무슨 일이오?”

    잇달아 수차 물어도 공명은 병세가 위중하다 핑계댈 뿐 눈감은 채 답하지 않는다. 한중왕이 거듭 답을 청하자 공명이 한숨을 쉬며 크게 탄식한다.

    “신臣이 모려茅廬(초가집)를 나와서 대왕을 만나 지금껏 모셔 대왕께서 제 말은 들어주고 제 꾀는 따르셨습니다. 다행히 대왕께서 양천 兩川을 점유하고 신의 말을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조비가 제위를 찬탈해 한사漢祀가 곧 끊어질 터라 문무관 료 모두(咸) 대왕을 황제로 받들어 위나라를 멸하고 유씨를 부흥해 함께 공명功名을 도모하려 합니다. 뜻밖에 대왕께서 고집하며 수긍하 지 않으니 관리들 모두 속으로 원망하다 머지않아 모조리 흩어지고 맙니다. 문무 모두 흩어지면 오나라와 위나라가 침공해 와서 양천을 보전하기 어려운데 신이 어찌 우려치 않겠습니까?”

    “내가 추조推阻하는 게 아니라 천하인들의 말이 무서울 따름이오.”

    “성인께서,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하기도 쉽지 않다, 이르셨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명분도 바르고 말하기도 쉬운데 사람들이 의논할 게 무엇이겠습니까?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받는다, 하는 말도 듣지 못하셨습니까?”

    “군사의 병이 낫기를 기다려 행해도 늦지 않소.”

    공명이 듣자마자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병풍을 한번 치니 바깥에서 문무관료 모두 들어와 바닥에 엎드려 절하며 말한다.

    “왕상께서 윤허하셨으니 바로 날을 골라 대례를 행하기를 청합니다.”

    한중왕이 쳐다보니 이들은 바로 태부 허정許靖, 안한장군 미축糜竺, 청의후 상거尚舉, 양천후 유표劉豹, 별가 조조趙祚, 치중 양홍楊洪, 의조 두경杜瓊, 종사 장상張爽, 태상경 뇌공賴恭, 광록경 황권黃權, 제주 하종何宗, 학사 윤묵尹默, 사업 초주譙周, 대사마 은순殷純, 편 장군 장예張裔, 소부 왕모王謀, 소문박사 이적伊籍, 종사랑 진복秦宓 등의 무리다.

    한중왕이 놀라 말한다.

    “고를 불의에 빠뜨린 건 모두 경들이오.”

    공명이 말한다.

    “왕상께서 이미 소청을 윤허하셨으니 어서 대를 쌓고 길일을 골라 삼가 대례를 행해야 합니다.”

    곧 한중왕을 궁을 돌려보내고 박사 허자와 간의랑 맹광에게 예식을 맡겨 성도 무담의 남쪽에 대를 쌓는다. 모든 것이 갖춰져 많은 관리 가 연가鑾駕(임금의 수레)를 가져와 한중왕을 맞이해 단에 올라 치제致祭할 것을 청한다. 초주가 단상에서 큰 소리로 제문을 낭독한다.

    “건안 26년 4월 병오삭丙午朔(삭朔은 초하루)에서 12일 지나 정사丁巳 일에 황제 비備는 황천후토(천지신명)에 감히 소고昭告(명백히 알림)합니다. 한나라는 천하를 가지고 역수曆數는 무강했습니다. 지난날 왕망王莽이 찬탈하자 광무황제께서 진노해서 그를 주살하고 사 직을 부흥했니다. 근래에 조조가 무력을 믿고 잔인하게 주후主后(황후)를 육살해 죄악이 도천滔天(하늘까지 차오름)하고 그 아들 조비 는 방자하게 흉역凶逆을 꾸몄습니다. 제 부하 장사將士들은 한사가 타폐墮廢(황폐)하므로 제가 마땅히 이어받아 고조와 광무제를 계승 해 몸소 천벌을 내려야 한다 생각합니다. 저는 덕망도 없이 제위를 더럽힐까 두려워 서민들과 밖으로 먼 곳의 군장들에게도 물어보니 다들 천명은 답하지 않을 수 없고 조업 祖業(선조의 유업)은 오래 폐할 수 없고 사해(천하)는 임금이 없을 수 없다 했습니다. 나라 안에 서 엎드려 바라는 것이 오로지 저 한사람에게 있습니다. 저는 하늘의 밝은 명을 경외하며 또한 고조와 광무제의 유업이 장차 땅에 추락 할까 두려워 삼가 길일을 골라서 제단에 올라 고합니다. 황제의 새수를 받아 사방을 어루만지며 다스리고자 합니다. 신이시여 한가漢家 (한나라왕조)를 향조饗祚(축복)하셔 역복歷服(나라의 큰일/ 왕위)을 영원히 편안히 하소서!”

    제문을 다 낭독하고 공명이 관리들을 인솔해 삼가 옥새를 바친다. 한중왕이 받더니 단상에서 붙들고 거듭 추양推讓(남에게 미루고 사양) 한다.

    “나는 재주도 덕도 없으니 청컨대 재주와 덕을 갖춘 이를 찾아 받게 하시오.”

    공명이 아뢴다.

    “왕상께서 사해를 평정하고 공덕을 천하에 비춘데다 바로 대한종파大漢宗派(한나라 종친)이시니 마땅히 정위正位(바른 자리)에 오르십 시오. 이미 천신에게 제를 올려 고했는데 어찌 또 사양하십니까?”

    이때 문무관리 모두 만세를 부른다. 배무拜舞(절하고 춤추는 궁정예식)의 예를 마치고 장무원년章武元年으로 개원한다. 왕비 오씨를 황 후로, 맏아들 유선을 태자로 세운다. 유봉의 둘째아들 유영은 노왕으로, 유리는 양왕으로 봉한다. 제갈량을 승상으로, 허정을 사도로 봉 하고 대소관료 하나하나 벼슬을 올리고 포상한다.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린다. 양천兩川의 군민들 가운데 기뻐하며 날뛰지 않는 이 없다.

    다음날 조회를 열어 문무관료가 절을 마쳐 양쪽으로 자리잡는다. 선주先主(유비)가 조서를 내린다.

    “짐은 도원에서 관, 장과 결의하며 생사를 함께하자 다짐했소. 불행히 둘째 운장이 동오 손권에게 살해됐소. 복수하지 않으면 맹서를 저 버림이오. 짐은 경국지병(전국의 병력)을 일으켜 동오를 공벌하고 역적을 사로잡아 원한을 씻겠소.”

    말을 미처 마치기 앞서 자리에서 한사람이 나와 섬돌 아래 엎드려 간언한다.

    “불가하옵니다.”

    선주가 쳐다보니 바로 호위장군 조운이다.

    군주가 미처 천토天討를 하지도 못하는데
    신하가 벌써 다 알아듣고 직언하러 나서구나

    자룡이 어떻게 간언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