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81회 장비기 형의 복수를 서두르다 살해되고 선주가 아우의 원한을 풀고자 군대를 일으킨다

    한편, 선주가 병력을 일으켜 동오를 정벌하려는데 조운이 간언한다.

    “국적 國賊은 조조이지 손권이 아닙니다. 이제 조비가 한나라를 찬탈하니 신인공노 神人共怒합니다. 폐하께서 조속히 관중을 도모해 위하 상류에 둔병하고 계책을 세워 흉악한 역적을 토벌하시면 관동의 의사들이 밥을 싸고 말을 몰아 왕사 王師(왕의 군대)를 맞이할 것입니다. 위나라를 놔두고 오나라를 치다가 병세 兵勢가 한번 뒤집히면 어찌 급히 해결하겠습니까? 바라건대 폐하께서 살펴주소서.”

    선주가 말한다.

    “손권이 짐의 아우를 해쳤소. 더욱이 부사인, 미방, 반장, 마충 모두 절치부심의 원수들이오. 그들의 고기를 씹고 혈족을 멸해야 짐의 원한을 씻겠는데 경이 어찌 가로막소?“

    “한나라 역적의 복수는 공사 公事요 형제의 복수는 사사 私事입니다. 바라건대 천하를 중히 여기소서.”

    선주가 답한다.

    “짐이 아우의 복수를 못하면 비록 만리강산을 가진들 어찌 족히 귀하겠소?”

    결국 조운의 간언을 듣지 않고 출병해 동오를 칠 것을 하령한다. 우선 사자를 오계五谿로 보내어 번병 番兵 5만을 빌리고 함께 움직이려 한다. 동시에 낭중으로 사자를 보내 장비를 '거기장군 사예교위 서향후'로 임명하고 낭중목을 겸직하도록 한다. 사자가 조서를 가지고 떠난다.

    한편, 낭중에 있던 장비는 관공을 동오가 죽인 것을 듣고 하루종일 울부짖어 옷소매를 피눈물로 적신다. 장수들이 술로써 풀도록 권하나 취하면 노기가 더욱 심하다. 상하를 막론하고 거스르는 이는 즉시 채찍질한다. 이렇게 채찍질로 죽은 이가 많다. 매일 남쪽을 바라보며 이를 갈고 눈을 부릅떠 분노와 원한에 떨며 목놓아 통곡해 마지않는다. 문득 사자가 도착하자 황망히 맞아들여 조지 詔旨를 펼쳐 읽는다. 장비가 작위를 받고 북쪽으로 절하고 술을 내어 사자를 환대한다.

    장비가 말한다.

    “내 형이 피살돼 복수할 마음이 바다처럼 깊소. 묘당의 신하들은 어찌 빨리 출병하라 주청하지 않소?”

    사자가 말한다.

    “많은 이들이 먼저 위를 멸한 뒤 오를 치라 합니다.”

    장비가 노해 말한다.

    “이게 무슨 말이오! 지난날 우리 셋이 도원결의해 생사를 함께하자 다짐했소. 이제 불행히 둘째 형이 도중에 돌아가셨거늘 어찌 나 홀로 부귀를 누리겠소! 마땅히 천자를 면담해 바라건대 앞장서서 선봉으로 상복을 입은 채 오를 정벌해 역적을 사로잡아 둘째 형에게 제사를 올려서 지난날 맹서를 실천하겠소!”

    말을 마치고 사자와 함께 성도로 출발한다.

    한편, 선주는 매일 스스로 교장 教場(훈련장)으로 내려가 군마들을 조련해 기일에 맞춰 출병해 어가를 타고 친히 정벌에 나서려 한다. 이에 공경대신들이 승상부로 찾아와 공명을 만나 말한다.

    “이제 천자께서 대위에 오르시자마자 친히 군대를 통솔하니 사직을 중히 여기지 않아서입니다. 승상께서 나라의 중책을 맡고도 어찌 옳은 도리를 간언하지 않으십니까?”

    “내 수차례 애써 간언했으나 듣지 않으실 뿐이오. 오늘 공경들은 나를 따라 교장으로 간언하러 갑시다.”

    당장 공명이 백관을 인솔해 선주를 만나 주청한다.

    “폐하께서 보위에 오르자마자 북쪽으로 한적을 토벌해 대의를 천하에 펴신다면 친히 육사 六師(천자의 군대)를 통솔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오로지 오를 정벌하실 것이면 상장 上將 한사람에게 명령해 군을 이끌고 정벌하면 되는데 하필이면 친히 어가를 수고롭게 하시겠습니까?”

    선주가 공명의 고간을 듣고 마음이 점차 돌아서는데 장비가 왔다고 알리니 서둘러 불러들인다. 장비가 연무청 演武廳으로 와서 엎드려 절하고 선주의 발을 껴안고 곡한다. 선주도 곡하는데 장비가 말한다.

    “폐하 오늘날 임금이 되더니 벌써 도원의 맹서를 잊으셨소! 둘째 형의 원수를 어째서 갚지 않으시오?”

    “많은 관리가 간언해 말리니 아직 감히 함부로 하지 못했소.”

    “남들이 어찌 지난날의 맹서를 알겠소? 폐하께서 못 가시겠다면 신은 이 한몸 버려서라도 둘째 형의 복수를 할테요! 복수할 수 없다면 신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폐하를 다시는 안 볼 것이오!”

    “짐이 경과 같이 가겠소. 경은 부하 병사를 이끌고 낭중을 통해 나가시오. 짐은 정병을 통솔해 강주에서 만나 함께 동오를 정벌해 원한을 풀어야겠소.”

    장비가 길을 떠날 때 선주가 당부한다.

    “짐은 평소 경이 술만 마시면 화가 나서 건아들을 채찍질하고는 다시 좌우에 불러들이는 것을 알고 있소. 이것은 화를 부르는 길이니 앞으로 힘써 관용을 베푸시오. 예전 같아선 안 되오.”

    장비가 작별인사를 올리고 떠난다.

    다음날 선주가 병력을 정돈해 출발하려는데 학사 진복이 아뢴다.

    “폐하께서 만승의 몸을 돌보지 않고 고작 작은 의리를 지키시니 고인들이 부끄러워하던 것입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다시 생각해주소서.”

    “운장과 짐은 마치 한몸과 같소. 대의가 아직 있거늘 어찌 잊겠소?”

    진복이 땅에 엎드려 일어나지 않으며 말한다.

    “폐하께서 신의 말씀을 듣지 않다가 일을 그르칠까 참으로 두렵습니다.”

    선주가 크게 노해 말한다.

    “짐이 흥병하려는데 너는 어찌 이렇게 불리한 말을 하냐!”

    무사더러 그를 추출해 참하라 소리친다. 진복이 낯빛을 고치지 않고 끌려가며 선주를 되돌아보며 웃으며 말한다.

    “신은 죽어도 아무 한이 없사오나 다만 새로 창업한 것이 곧 전복될까 애석할 따름입니다!”

    관리들 모두 진복을 위해 사면하라 고하니 선주가 말한다.

    “우선 가둬두고 짐이 복수하고 돌아와 결단하겠소.”

    공명이 전해듣고 즉시 진복을 구하는 표를 올린다. 대략 이렇다.

    “신 제갈량 등 저희 신하들이 생각하건대 오나라 도적이 간악한 속임수를 써서 결국 형주가 멸망의 화를 입게 됐습니다. 두우斗牛에서 장성將星(대장을 상징하는 별)을 떨어뜨리고 초지楚地(옛 초나라 땅 곧 형주)에서 천주天柱(하늘을 떠받치는 기둥)를 꺾으니 이 마음이 애통해 참으로 잊을 수 없습니다. 다만 생각컨대 한정漢鼎(한나라의 솥 곧 한나라 종묘사직을 상징)을 옮긴 것은 그 죄악이 조조에게서 비롯하고, 유조劉祚(유 씨의 제위帝位, 황위皇位)를 옮긴 것은 그 과오가 손권에게 있지 않습니다. 생각하오니 위나라 도적을 제거하면 오나라 도적은 곧 저절로 굴복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진복이 올린 금석지언金石之言(황금과 보석 같은 소중한 말씀)을 받아들 여 사졸의 힘을 길러 따로 좋은 계책을 내시면 사직도 행심幸甚(몹시 다행)이요 천하도 행심입니다!”

    선주가 표를 읽고나서 땅에 내던지며 말한다.

    “짐의 뜻은 이미 정했소. 다시는 간언하지 마오!”

    마침내 명령을 내려 승상 제갈량은 태자를 보호하며 양천 兩川을 지키게 하고, 표기장군 마초는 아우 마대와 함께 진북장군 위연을 도와 한중을 수비해 위병을 막도록 한다. 호위장군 조운은 후방을 맡아 양초(식량과 말먹이풀)의 감독을 겸하게 한다. 황권과 정기는 참모가 되고, 마량과 진진은 문서를 관리한다. 황충이 선봉을 맡고 풍습과 장남이 부장이 된다. 부동과 장익이 중군호위가 되고 조융과 요순은 후미를 를 맡는다. 서천과 동천의 장수들 수백 명과 아울러 오계의 번장들을 비롯해 모두 75만의 병력이다. 장무 원년 7월 병인일에 출병할 것을 택정한다.

    한편, 장비는 낭중으로 돌아와 군중에 하령하기를, 사흘 안에 백기와 백갑(흰갑옷)을 만들어 3군이 상복을 입고 동오를 치겠다 한다. 다음날 범강과 장달이 들어와 고한다.

    “백기와 백갑은 일시에 마련할 수 없으니 기한을 넉넉히 주셔야 합니다.”

    장비가 크게 노해 말한다.

    “내 서둘러 복수하고자 내일이라도 역적의 경계에 도달하지 못해 한스럽거늘 너희가 감히 내 장령을 어길 셈이냐!”

    무사들에게 소리쳐 나무에 매달아 각각 등에다 5십 차례의 채찍질을 가한다. 채찍질을 마쳐 손가락질하며 말한다.

    “내일까지 모두 완비하라! 기한을 어기면 너희 두 사람을 죽여 군중에 보이겠다!”

    얻어맞은 두 사람은 입안 가득 출혈하며 영채로 돌아가 상의한다.

    범강이 말한다.

    “오늘 형벌을 받고 내일까지 무슨 수로 변통하겠냐? 내일까지 완비하지 못하면 너나 나나 죽겠구나 !”

    장달이 말한다.

    “그가 우리를 죽이길 기다리느니 우리가 그를 죽임만 못하겠네.”

    “어찌해도 접근할 수 없을 것이네.”

    “우리 둘이 마땅히 죽지 않을 팔자라면 그가 침상에 취해 있을 것이요 우리가 마땅히 죽을 것이면 그가 취해 있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이 상의를 마친다.

    한편, 장비는 장중에서 정신이 어지럽고 행동거지가 불안하여 부장에게 묻는다.

    “내 지금 가슴이 놀라고 살이 떨려 앉거나 누워도 불안한데 이게 무슨 까닭이겠냐?”

    “이것은 바로 군후께서 관공을 사념하시니 이렇게 된 것입니다.”

    장비가 술을 갖게 오게 해 부장과 함께 마시더니 어느새 크게 취해 장중에 눕는다. 범, 장 두 도적이 소식을 탐지해 초경 무렵에 각각 단 도를 숨겨 몰래 장중에 들어가 기밀 중대사를 아뢰겠다 거짓말을 해 곧장 침상 앞으로 간다. 원래, 장비는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다. 그 날밤 장중의 침삼에서 두 도적은 그의 수염이 곤두서고 눈이 떠진 걸 보고 감히 손을 놀리지 못한다. 그런데 코 고는 소리가 우레 같아 비 로소 감히 근접해 단도로 장비의 배를 찌른다. 장비가 외마디 비명을 크게 지르고 사망한다. 이때 나이 55세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렸다.

    안희현에서 일찍이 독우를 채찍질하고
    황건적을 소탕해 염유*를 보좌하네
    호뢰관에서 명성이 우레보다 크고
    장판교에서 전세를 역류 시키네
    촉땅에서 의롭게 엄안을 풀어주고
    습기롭게 장합을 속여 중주*를 평정하네
    동오를 정벌하기 앞서
    스스로를 이기지 못해 먼저 살해되니
    쓸쓸한 가을풀 낭중의 슬픔을 길이 전하네

    한편, 두 도적이 그날밤 장비의 수급(잘린 머리)을 베어 곧 수십 기를 이끌고 그날밤 동오로 투항하러 간다. 다음날 군중에서 이를 알고 병력을 일으켜 쫓지만 잡지 못한다. 이때 장비의 부장 오반이 지난번에 형주에서 선주를 찾아왔을 때 오반에게 장비를 보좌해 낭중을 지키라 했었다. 이때 오반이 먼저 표장을 써서 천자에게 올려 아뢰도록 한다. 그런 뒤 장비의 맏아들 장포를 시켜 관곽을 구비해 사체를 넣어 보내고 아우 장소를 시켜 낭중을 지키게 하니 장포가 직접 선주에게 알리러 온다. 이때 선주는 이미 기일을 골라 출병하려던 참이다. 대소관료들이 공명을 따라 10리까지 배웅하고서야 돌아온다. 공명이 성도로 되돌아와 심기가 불편하여 관리들을 돌아보며 말한다.

    “법효직(법정)이 살아 있었다면 반드시 주상이 동쪽으로 가는 것을 말렸을 것이오.”

    한편, 선주는 이날밤 가슴이 놀라고 살이 떨려 침상에 누워도 불안하다. 장막을 나가 고개들어 천문을 관측하니 서북쪽에서 북두성처럼 커다란 별이 홀연히 땅으로 떨어진다. 선주가 몹시 의심스러워 그날밤 사람을 보내 공명에게 묻게 하니 공명이 회답한다.

    “상장 한사람을 잃을 징조입니다. 사흘 안에 반드시 깜짝놀랄 보고가 있겠습니다.”

    선주가 이에 병력을 움직이지 않고 형세를 관망한다. 그런데 곁에서 모시는 신하가 아뢴다.

    “낭중에서 장거기장군의 부장 오반이 사람을 보내어 표를 올렸습니다.”

    선주가 발을 구르며 말한다.

    “아! 셋째가 죽었구나!”

    이윽고 표를 읽어보니 과연 장비의 흉한 소식이다. 선주가 목놓아 통곡하다가 울다가 쓰러진다. 관리들이 구해서 깨운다.

    다음날 한무리 군마가 질풍처럼 달려온다는 보고에 선주가 영채를 나가 바라본다. 잠시 뒤에 젊은 장수 한 사람이 하얀 전포에 은색 갑옷을 입고 말안장에서 미끄러지듯 내려 땅에 엎드려 통곡하니 바로 장포다. 장포가 말한다.

    “범강과 장달이 신의 부친을 살해해 수급을 가지고 동오로 넘어갔습니다!”

    선주가 지극히 심하게 애통해 음식을 먹지 않는다. 신하들이 애타게 간한다.

    “폐하께서 바야흐로 두 아우의 복수를 하시려는데 어찌 스스로 먼저 용체를 쇠잔하게 만드십니까?”

    선주가 비로소 음식을 먹는다. 마침내 장포에게 말한다.

    “경이 오반과 더불어 부하 병사를 이끌고 선봉에 서서 경의 부친의 복수를 하지 않겠는가?”

    “나라를 위하고 부친을 위해 만번 죽는들 사양치 않겠습니다!”

    선주가 장포에게 맡겨 병력을 일으키려는데 1군이 몰려온다는 보고에 선주가 시신을 시켜 이를 알아보게 한다. 잠시 뒤 시신이 소장 한사람을 이끌고 오니 역시 하얀 전포에 은색 갑옷을 입고 영채로 들어와 엎드려 통곡한다. 선주가 보니 바로 관흥이다. 선주가 관흥을 보더니 관공이 떠올라 다시 목놓아 크게 통곡한다. 관리들이 애써 권하자 선주가 말한다.

    “짐은 포의 布衣 시절에 관, 장과 결의해 생사를 같이하자 다짐했소. 짐이 이제 천자가 돼 이제 두 아우와 더불어 부귀를 누리려는데 불행히 모두 비명에 갔소! 두 조카를 보니 어찌 창자가 끊어지지 않겠소!”

    말을 마치고 다시 곡한다. 관리들이 말한다.

    “두 소장은 일단 물러나 성상께서 용체를 쉬게 하시오.”

    시신이 아뢴다.

    “폐하께서 육순을 넘으신지라 애통하심이 지나치면 아니 되옵니다.”

    “두 아우가 모두 죽었는데 짐이 어찌 차마 홀로 살겠소!”

    말을 마치고 머리로 땅을 찧으며 곡한다. 많은 관리가 상의한다.

    “지금 천자께서 이토록 번뇌하시니 장차 어떻게 마음을 푸시라 권하겠소?”

    마량이 말한다.

    “주상께서 친히 대병을 통솔해 동오를 정벌하시려는데 하루종일 소리내어 우시니 군사에 불리하오.”

    진진이 말한다.

    “제가 듣기에 성도 청성산 서쪽에 은자 한분이 계시는데 이름이 이의요. 세상 사람들이 전하기를 이 노인은 이미 3백여 세인데 능히 사람의 생사길흉을 알 수 있다 하니 바로 당세의 신선이오. 어찌 천자께 아뢰어 이 노인을 불러 길흉을 묻지 않겠소? 우 리들이 말씀드리는 것보다 나을 것이오.”

    들어가 선주에게 주청하니 선주가 즉시 진진을 청성산으로 보내어 임금의 부름을 전한다.

    진진이 한밤중에 청성산에 도착해 시골사람을 길잡이로 삼아 산골짜기로 찾아간다. 멀리 신선이 사는 집이 보이는데 푸른구름이 은은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비범하다. 작은 동자가 맞이하며 말한다.

    “오신 분은 진효기 아니십니까?”

    진진이 크게 놀라 말한다.

    “선동은 어찌 내 이름을 아는가?”

    “제 스승께서 지난 밤에 오늘 틀림없이 황제의 조명이 올 것인데 필시 진효기일 것이라 하셨습니다.”

    “참으로 신선이구나!”

    작은 동자와 함께 신선이 사는 집으로 들어가 이의를 만나서 천자의 조명을 전한다. 이의가 늙은 몸을 핑계로 가려 하지 않는다. 진진이 말 한다.

    “천자께서 서둘러 선옹仙翁(늙은 신선)을 한번 만나고자 하시니 아무쪼록 학가鶴駕(신선의 행차)를 아끼지 마십시오.”

    거듭 간곡히 청하자 이의가 비로소 길을 나서 이윽고 어영 御營에 이르러 선주를 만나러 들어간다. 선주가 보니 이의는 학발 鶴髮(백발)에 동안이고 파란눈에 네모난 눈동자가 또렷하게 빛나고 몸은 늙은 잣나무 같은지라 이인 異人인 것을 알 수 있어 그를 크게 예우한다. 이의가 말한다.

    “이 늙은이는 거친 산속에 사는 촌로라서 무학무식합니다. 황공하옵게도 폐하께서 부르셨으나 무슨 하실 말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짐은 관, 장 두 아우와 생사지교 生死之交를 맺은지 3십 년이 넘었소. 이제 두 아우가 해를 입어 친히 대군을 통솔해 복수하려는데 아직 길흉화복을 모르겠소. 오래전부터 듣건대 선옹께서 깊은 이치를 통달하셨다니 아무쪼로 가르쳐주시오.”

    “이것은 하늘의 운수이니 제가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선주가 거듭 가르침을 구하자 이의가 마침내 종이와 붓을 찾아 병마 兵馬와 기계器械(무기)를 4십여 장 그리더니 곧 일일이 찢어버린다. 다시 땅 위에 큰 사람이 반듯하게 누운 것을 그 옆에서 한 사람이 흙을 파서 묻고 그 위에 크게‘백白’자를 쓴 것을 그리더니 고개숙여 인사하고 떠난다. 선주가 기쁘지 않아 신하들에게 말한다.

    “이 미친 늙은이는 믿을 게 못 되오!”

    즉시 그림을 불사르고 병사들을 전진하라 독려한다.

    장포가 들어와 아뢴다.

    “오반의 군마가 왔습니다. 소신이 선봉에 서게 해주십시오.”

    선주가 그 뜻을 장하게 여겨 선봉의 관인 官印을 장포에게 내린다. 장포가 관인을 걸려는데 어느 소년 장수가 분연히 나오며 말한다.

    “관인을 내려 내게 건네라!”

    바라보니 바로 관흥이라 장포가 말한다.

    “내 이미 조서를 받들었다.”

    “네가 무슨 재주로 감히 이런 임무를 맡겠냐?”

    “나는 어려서부터 무예를 배워 활을 쏘아 못 맞히는 게 없다.”

    선주가 말한다.

    “짐이 조카들의 무예를 살펴 우열을 정하겠다.”

    장포가 병사를 시켜 백보 밖에 깃발을 세워 그 위에 빨간 과녁을 그리게 한다. 장포가 활을 집어 화살을 메겨 잇달아 세발을 쏴서 모두 명중하니 모두가 칭찬한다. 관흥이 활을 잡아채서 손에 들고 말한다.

    “과녁을 쏴맞히는 게 뭐 그리 신기한가!”

    이렇게 말하는데 머리 바로 위로 한무리 기러기가 지나니 관흥이 가리켜 말한다.

    “내 저 날아가는 기러기 중에서 세번째를 맞히겠다.”

    한 발이 날아가자 그 기러기가 활시위 소리와 함께 떨어진다. 문무관료들이 일제히 소리 지르며 갈채를 보낸다. 장포가 크게 노해 부친이 쓰던 장팔점강모 丈八點鋼矛를 꼬나들고 크게 외친다.

    “네가 감히 나와 무예를 겨루겠냐!”

    관흥도 말에 올라 집안에 전해내려온 대감도 大砍刀(큰 칼의 일종)를 움켜쥐고 말을 몰아 나오며 말한다.

    “너만 모矛를 능히 다루냐! 내 어찌 칼을쓰지 못하랴!”

    두 장수가 이제 막 싸우려는데 선주가 소리친다.

    “두 조카는 무례한 짓을 그만두라!”

    관흥, 장포 두 사람이 황망히 말에서 내려 병기를 각각 버리고 엎드려 절하며 죄를 청한다. 선주가 말한다.

    “짐은 탁군에서 경들의 부친과 이성지교異姓之交를 맺어 골육처럼 친했다. 이제 너희 두 사람도 곤중지분 昆仲之分(형제의 정분)이니 마 땅히 한마음으로 협력해 부친의 복수를 함께해야 하거늘 어찌 서로 다퉈 대의를 그르치려 하는가! 부친이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이 런데 하물며 훗날에는 어찌하겠는가?”

    두 사람이 다시 절하며 복죄 伏罪하니 선주가 묻는다.

    “경들 두 사람은 누가 연장인가?”

    장포가 말한다.

    “신이 관흥보다 한살 많습니다.”

    선주가 즉시 관흥더러 장포를 형으로 섬기라 한다. 두 사람이 장막 앞으로 가 화살을 꺾어 맹서하며 영원히 서로 구호할 것을 다짐한다. 선주가 조서를 내려 오반을 선봉으로 삼고 장포, 관흥은 어가(임금의 수레)를 호위토록 한다. 수륙 양면으로 나란히 진격해 전선들과 기 병들이 함께 간다. 호호탕탕浩浩蕩蕩하게 오나라로 쇄도한다.

    한편, 범강과 장달은 장비의 수급을 갖고 오나라로 가서 바치며 지난 일을 자세히 고한다. 손권이 듣고나서 두 사람을 거둬 백관에게 말 한다.

    “이제 유현덕이 제위帝位에 올라 정병 7십여 만을 이끌고 어가를 타고 친정親征하니 그 기세가 몹시 대단한데 어찌해야겠소?”

    백관 모두 새파랗게 질려 서로 눈치만 살피는데 제갈근이 나와 말한다.

    “제가 군후의 녹을 먹은지 오래인데 아무 보효報效(보은/ 보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바라건대 남은 목숨을 버려서라도 촉주(촉나라 군주 )를 만나 이해득실로써 설득해 양국을 화해시켜 함께 조비의 죄를 토벌하도록 하겠습니다.”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제갈근을 사자로 보내 선주가 철병하도록 설득하게 한다.

    두 나라가 서로 다투는데 사명*을 보내니
    한마디 말로써 해결함은 그에게 달렸네

    제갈근이 이렇게 가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다음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