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90회 공명이 거수들을 동원하여 오랑캐군대를 여섯번째 격파하고, 등갑군을 불태워 맹획을 일곱번째 사로잡다.

    한편, 공명이 맹획 등 한 무리의 사람을 풀어주고, 양봉 부자에게 모두 관작(벼슬과 작위)을 내리고, 남만 병사들을 크게 호궤한다. 양봉 등이 절을 올려 사례하고 떠난다. 맹획 등이 밤낮없이 은갱동으로 달아난다. 은갱동 밖에 흐르는 강이 셋 있으니, 바로 ‘노수’, ‘감남수’, ‘ 서성수’다. 세 갈래 물이 만나니, 삼강이라 부른다. 은갱동 북쪽 가까이 평야가 3백 리 남짓 펼쳐져, 온갖 산물이 많다. 은갱동 서쪽 2백 리에 염정鹽井(소금을 만드는 염전의 웅덩이)이 있다. 서남쪽 2백 리에서 노수, 감남수가 만난다. 정남쪽 3백 리는 바로 양도동樑都洞인 데, 그곳에 산이 하나 솟아, 양도동을 빙 둘러싸고 있다. 산 위에서 은광석이 나오니 은갱산이라 일컫는다. 산 속에 궁전과 누대를 세워, 만왕(오랑캐 왕)의 소혈巢穴(소굴)로 삼았다. 그 가운데 조묘祖廟(조상을 제사 지내는 묘당)를 하나 세워, ‘가귀家鬼’라 일컫는다. 사시 사철, 소와 말을 잡아 드리는 제사를 ‘복귀卜鬼’라 일컫는다. 해마다 늘 촉나라 사람이나 다른 지역 사람을 제물로 바친다. 사람이 병환에 걸리면, 약을 먹으려 하지 않고, 오로지 기도하며 무당을 섬기니, ‘약귀藥鬼’라 일컫는다. 이곳에는 형법이 따로 없고 죄를 저지르면 즉시 참한다. 딸이 성장하면 계곡에서 목욕하다 남녀가 저절로 어지러이 뒤섞여, 자기 짝을 만나 임신해도 부모가 금하지 않고, ‘학예學藝’라 일컫는다. 해마다 빗물이 균조均調(똑같이 골고름)하니 볍씨를 뿌린다. 벼가 익지 않으면 뱀을 잡아 국을 끓이고 코끼리를 삶아 밥으로 먹는다. 지역마다 상호上戶(부유한 집/ 고급 가게/ 지위가 높은 집안)를 ‘동주洞主’라 일컫고 그 아래를 ‘추장'이라 한다.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모두 삼강의 성 안에서 물건을 팔고 사고, 물물을 교환한다. 그 풍속이 이렇다.

    한편, 맹획은 은갱동에 머물며, 자신의 종당宗黨(종족)을 1천 남짓 불러모아, 그들에게 이른다.

    “내가 여러 차례 촉병에게 치욕을 입어, 지금 당장 이 원한을 갚고야 말겠소. 그대들에게 고견이 있다면 말해 보시오.”

    그 말이 미처 끝나기 앞서, 한 사람이 응답한다.

    “제가 제갈량을 격파할 만한 이를 한 사람 천거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쳐다보니 바로 맹획의 처남이며, 현재 팔번부八番部의 우두머리인데 대래동주帶來洞主(대래동의 우두머리)라고 불린다. 맹획 이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누구를 천거하는지 묻자, 대래동주가 말한다.

    “여기서 서남쪽 ‘팔납동’의 동주 목록대왕木鹿大王은 법술法術(마술)에 심히 통달했습니다. 코끼리를 타고 다니며, 능히 호풍환우(비와 바람을 부름)하고, 늘 곁에 호랑이, 표범, 승냥이, 이리, 독사, 전갈을 데리고 다닙니다. 그의 수하에, 신병神兵(천병/ 하늘이 내린 군대) 3만이 있는데 몹시 영용英勇(영웅스럽고 용맹스러움)합니다. 대왕께서 예의를 차려 글을 써 주시면, 제가 직접 찾아가 요청하겠습니다. 그가 윤허하면, 어찌 촉병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맹획이 흔쾌히, 국구國舅(왕비의 남자 형제 곧 대래동주)에게 영을 내려, 글을 써서 떠나게 한다. 그러면서, 타사대왕에게 영을 내려, 삼 강성三江城을 지키게 하여, 앞쪽의 병장屏障(방어벽)으로 삼는다.

    한편, 공명은 병력을 거느리고 곧장 삼강성에 이르러, 멀리 바라보니 이 성의 3면은 강이 흐르고, 1면만이 육지와 이어졌다. 즉시 위연과 조운을 파견해, 한 무리 군대를 거느리고 육로를 통해 성을 공격하게 한다. 병사들이 성 아래 이르자, 성 위에서 활과 쇠뇌로 일제히 쏘아 댄다. 원래, 은갱동의 사람들은 쇠뇌와 활 쏘기에 능숙한 이가 많고, 쇠뇌 하나로 한꺼번에 화살 열 발을 쏘는데, 화살촉에 모두 독약을 발랐다. 화살에 맞는 이는 피부가 모두 문드러져 오장이 드러난 채 죽는다.

    조운과 위연이 승리를 거둘 수 없어, 돌아와 공명을 만나, 독화살 이야기를 한다. 공명이 스스로 작은 수레를 타고, 싸움터로 와서 허실을 살펴보고, 영채 안으로 되돌아와, 병사들에게 몇 리 후퇴해 영채를 세우게 한다. 오랑캐 병사들은 촉나라 병력이 멀리 후퇴하자, 모두 크 게 웃고 축하하며, 다만 촉병들이 무서워서 달아난 줄로만 안다. 이에 따라, 야간에도 안심하고 잠들어, 초탐哨探(보초와 정탐)하러 가 지 않는다.

    한편, 공명은 후퇴한 뒤 즉시 문을 닫고 출전하지 못하게 한다. 잇달아 닷새를 아무런 호령도 내리지 않는다. 어느날 해질 무렵, 돌연히 바람이 살랑거리자 공명이 명령을 전한다.

    “병사들은 제각기 옷자락 한 폭씩 준비해, 1경 시분時分(시간/ 시각)까지 점검을 받으라. 준비하지 않는 이는 당장 참한다.”

    장수들 모두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병사들은 명령대로 예비한다. 초경 무렵, 다시 전령한다.

    “병사들은 제각기 옷자락 한 폭에 흙을 한 꾸러미씩 담으라. 준비하지 않는 이는 당장 참한다.”

    병사들은 이번에도 그 뜻을 알지 못한 채, 다만 명령대로 예비한다. 공명이 다시 전령한다.

    “병사들은 흙은 담아, 모두 삼강성 아래에 쏟아부으라. 먼저 도착하는 이에게 상을 내리겠다.”

    병사들이 명령을 듣고, 모두 정토淨土(깨끗한 흙)를 담아, 나는 듯이 성 아래로 달린다. 공명이 명령해, 흙을 쌓아 성을 오르는 길을 만 들게 하고, 먼저 성을 오르는 것을 으뜸가는 공으로 친다. 이에 촉병 10만 남짓과 항병(항복한 병사) 1만 남짓이 흙 한 꾸러미씩 가지�� 가서 일제히 성 아래에 쏟아붓는다.

    일삽시一霎時(몹시 짧은 시간)에 흙을 쌓아 산을 만든다. 암호 소리와 함께, 촉병들 모두 성을 오른다. 남만병들이 서둘러 쇠뇌를 쏘려 하지만, 태반이 어느새 붙잡히고 나머지는 성을 버리고 달아난다. 타사대왕은 난군(난전) 중에 죽는다. 촉나라 장수들이 병사들을 독려 해, 길을 나눠 소탕한다. 공명이 삼강성을 점령하고, 노획한 진귀한 보물들 모두를 삼군의 병사들에게 상으로 내린다.

    오랑캐 패잔병들이 달아나 맹획을 만나 이야기한다.

    “타사대왕께서 전사하셨고, 삼강성을 빼앗겼습니다.”

    맹획이 크게 놀란다. 걱정하고 있는데, 누군가 보고하니, 촉병들이 이미 강을 건너, 이제 은갱동 앞에 영채를 세웠다고 한다. 맹획이 몹시 당황해 허둥댄다. 그런데 병풍 뒤에서 한 사람이 크게 웃으며 나와서 말한다.

    “남자로 태어나, 어찌 지혜가 없단 말이오? 내 비록 일개 부인이나, 바라건대 당신과 더불어 출전하고 싶소.”

    맹획이 쳐다보니, 바로 그의 아내 축융부인祝融夫人이다. 부인의 집안은 대대로 남만에 살았으니 바로 축융씨(불을 다스리는 신)의 후 손이다. 비도飛刀(던지는 작은 칼)를 잘 써, 백발백중이다. 맹획이 몸을 일으켜 고마워한다.

    부인이 흔쾌히 말에 올라, 종당(종족)의 용맹한 장수 수백 명과 기력이 펄펄한 동병(남만병사) 5만을 이끌고, 은갱동의 궁궐을 나가, 촉 병과 대적하러 간다. 은갱동 입구를 돌자마자, 1군이 가로막으니, 선두의 촉나라 장수는 바로 장의張嶷다. 남만병이 이를 보고, 재빨리 두 갈래로 전개한다. 축융부인이 등에 비도 다섯 자루를 꽂고, 손에 장팔장창丈八長槍(여덜 길 길이의 긴 창)을 꼬나쥐고, 아래 에 곱슬털 적토마를 탔다. 장의가 이를 보고, 마음 속으로 칭찬한다. 두 사람이 말을 몰아, 교봉(교전)한다. 몇 합을 못 싸워, 부인이 말머 리를 돌려 달아난다. 장의가 쫓아 가는데, 공중에서 한 자루 비도가 날아든다. 장의가 급히 손으로 막지만 왼팔에 명중해, 몸이 뒤집히며 말에서 떨어진다. 남만병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더니 장의를 포박해 끌고 간다.

    장의가 잡혀간 것을, 마충이 듣고 급히 구출하려는데, 어느새 남만병들에게 포위된다. 멀리서 축융부인이 창을 꼬나쥐고 말을 타고 서 있는 것이 보여, 마충이 분노해서 싸우러 달려가다가, 타고 있던 말이 올가미에 걸려 넘어지니, 마충 역시 사로잡힌다. 모두 은갱동으로 압송돼 맹획 앞으로 끌려간다. 맹획이 술자리를 열어 경하한다. 부인이 도부수(칼과 도끼를 든 무사)들에게 호통쳐서 장의와 마충을 끌 어내 목을 베라고 한다. 맹획이 말리며 말한다.

    “제갈량이 나를 다섯 번이나 풀어줬는데, 이번에 그의 장수들을 죽인다면, 의롭지 못하오. 우선 동 안에 가두어, 제갈량을 사로잡은 뒤 죽여도 늦지 않소.”

    부인이 그 말을 따르고, 웃고 마시며 즐거워한다.

    한편, 패잔병들이 돌아와 공명을 만나 그 일을 고지한다. 공명이 즉시 마대, 조운, 위연 세 사람을 불러 계책을 주니, 제각기 군대를 이끌 고 떠난다. 다음날, 남만병들이 은갱동 안으로 들어가, 조운이 싸움을 건다고 알린다. 축융부인이 즉시 말에 올라, 맞이하러 나간다. 두 사람이 몇 합을 못 싸워, 조운이 말머리를 반대쪽으로 돌려 달아난다. 매복이 있을까 두려워, 부인이 병사들을 거느리고 돌아간다. 위연 도 군을 이끌고 싸움을 거니, 부인이 말을 몰아, 맞이한다. 긴급히 싸우다가, 위연이 패한 척 달아나지만, 부인이 뒤쫓지 않는다. 다음 날, 조운이 또다시 군을 이끌고 싸운을 거니, 부인이 동병들을 거느리고, 맞이하러 나간다. 두 사람이 몇 합을 못 싸워, 조운이 패한 척 달아나지만, 부인은 창을 든 채 뒤쫓지 않는다. 병력을 거둬 은갱동으로 돌아가려는데, 위연이 군을 이끌고 일제히 소리지르며 모욕을 주고 꾸짖으니, 부인이 급히 창을 꼬나쥐고 위연에게 달려든다. 위연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난다. 부인이 분노해 뒤쫓아 오는데, 위연이 말을 몰아 산 속 외진 길로 달아난다. 그런데 등 뒤에서 한바탕 요란한 소리가 나기에 위연이 고개를 돌려 보니, 부인이 말안장에서 뒤집 혀 낙마한다. 알고보니, 마대가 이곳에 매복해, 반마삭絆馬索(지면에 설치해 적군이 타는 말이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노끈)으로 걸려 넘 어지게 만든 것이다. 부인을 사로잡아 대채(큰 영채)로 압송해 온다. 남만 장수와 병사들이 모두 구원하려 오지만, 조운이 한바탕 무찔 러 쫓아버린다.

    공명이 위에 반듯이 앉았는데, 마대가 축융부인을 압송해 오자, 공명이 급히 무사들에게 명령해, 부인의 포박을 풀게 한다. 부인을 다른 군막에 머물게 하고, 술을 내려 그 놀란 마음을 가라앉힌다. 사자를 맹획에게 보내 이를 알리고, 부인을 장의, 마충 두 장수와 교환하자 고 한다. 맹획이 응낙해, 즉시 장의와 마충을 방출해, 공명에게 돌려보낸다. 공명이 곧 축융부인을 은갱동으로 들여보낸다. 맹획이 부인을 맞이해 들이지만, 기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 그런데 누군가 알리기를, 팔납동의 동주가 왔다고 한다. 맹획이 은갱동을 나가 영접 하는데, 그 사람은 하얀 코끼리를 타고, 몸을 황금, 진주, 옥돌로 장식하고, 허리에 큰 칼 두 자루를 차고, 한 무리의 호랑이, 표범, 승냥이 , 이리와 같은 맹수들을 부리는 사람들을 거느렸다. 그들이 빽빽히 밀려든다. 맹획이 거듭 절하고, 지난 일들을 애달프게 하소연한다. 목 록대왕이 함께 복수할 것을 승낙하자, 맹획이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어 대접한다.

    다음날, 목록대왕이 팔납동의 병력을 이끌고 맹획과 함께 출전한다. 조운과 위연이 오랑캐의 출병을 듣고, 곧 군마를 거느리고 포진한다 . 두 장수가 군진 앞에 말고삐를 잡고 서서 바라보니, 남만병들의 깃발들과 기계器械(무기/ 군사장비)가 모두 다르다. 많은 이들이 옷이 나 갑옷을 입지 않고, 모조리 알몸뚱이 벌거숭이고, 얼굴 생김새가 더럽고 지저분하다. 몸에는 네 자루의 뾰죡한 칼을 가지고, 군중에서 북을 치거나 나팔을 불지 않고,다만 징을 쳐서 신호로 삼는다. 목록대왕이 허리에 두 자루 보도寶刀를 차고, 손으로 체종蒂鐘(꼭지가 달 린 종)을 잡고, 하얀 코끼리에 올라타, 큰 깃발 사이로 나온다.

    조운이 보더니 위연에게 말한다.

    “우리가 싸움터에서 일생을 보냈지만, 아직까지 이와 같은 인물은 못 봤소.”

    두 사람이 머뭇거리는데, 목록대왕이 그 입으로 알아차릴 수 없게 주문을 잔뜩 외고, 손으로 체종을 흔든다. 갑자기 미친 듯이 바람이 크 게 불고, 모래가 날고 돌이 굴러 마치 소나기와 같다. 화각(화려한 무늬의 나팔) 소리가 한바탕 울리더니, 호랑이, 표범, 승냥이, 이리 등 맹수들과 독사가 바람을 타고 나타나, 쳐들어온다. 촉병들이 어떻게 해서도 막아내지 못하고, 뒷쪽으로 달아난다. 남만병들이 추격하다 가 삼강성 길목에 이르러서야 되돌아간다.

    조운과 위연이 패병(패잔병)들을 거둬 모아서, 공명의 군막 앞으로 가서 죄를 청하며, 이 일을 자세히 이야기한다. 공명이 웃으며 말한 다.

    “그대 두 사람의 죄가 아니오. 내가 아직 움막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남만에 호랑이와 표범을 부리는 술법이 있음을 이미 알았소. 내가 촉나라에 있을 때부터 이미 이러한 군진을 깨뜨릴 물건을 준비했소. 병사들을 뒤따라 스무 량의 수레가 있는데, 모두 밀봉해 적어놨소. 오늘 우선 그 절반을 쓰고, 나머지 절반은 남겨, 훗날 따로 쓸 것이오.”

    곧 좌우의 사람들에게 명령해, 붉은 상자를 실은 수레 열 량을 가져오게 하고, 검은 상자를 실은 수레 열 량을 뒷쪽에 남겨두게 한다. 사 람들 모두 그 뜻을 알지 못한다. 공명이 상자를 여니, 모두 나무를 깎아 색칠한 큰 짐승들로, 모두 다섯 색깔 털실로 털옷을 만들고, 강철 로 이빨과 발톱을 만들었는데, 한 개에 열 사람이 올라탈 수 있다. 공명이 튼튼한 병사를 1천 남짓 가려뽑고, 연화煙火(불과 연기)를 일 으키는 물건 1백 개를 수령해, 군중에 숨기게 한다.

    다음날, 공명이 병력을 이끌고 크게 진격해, 은갱동 입구에 포진한다. 남만병들이 탐지해, 은갱동으로 들어가 남만왕에게 알린다. 목록 대왕이 스스로 무적이라 여기고, 즉시 맹획과 더불어 동병들을 이끌고 출격한다. 공명이 머리에 윤건을 쓰고 손에 우선(깃털부채)을 들 고, 몸에 도포를 입은 채, 수레 위에 반듯하게 앉았다. 맹획이 이를 가리켜 말한다.

    “수레 위에 앉은 이가 바로 제갈량이오! 저 사람을 잡으면 대사大事가 정해질 것이오!”

    목록대왕이 입 속에서 주문을 외며, 손으로 체종을 흔든다. 눈깜짝할 새에, 미친 바람이 크게 불고, 맹수들이 튀어나온다. 공명이 깃털부 채를 한번 흔들자, 그 바람이 적진으로 되돌아서 불고, 촉나라 진영에서 가짜 맹수들이 몰려나온다. 오랑캐의 진짜 맹수들에게 촉나라 진영의 거대 맹수들이 입에서 화염을 뿜고, 코에서 검은 연기를 내고, 몸에 달린 구리방울들이 요동치는 가운데,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휘드르며 달려든다. 오랑캐의 흉악한 맹수들이 감히 전진하지 못하고, 모조리 오랑캐 쪽으로 달아나, 오히려 오랑캐 병사들이 무수히 부딪혀 쓰러진다. 공명이 병력을 이끌고 크게 진격하니, 북과 피리 소리 일제히 울리며, 앞으로 나아가 뒤쫓아 죽인다. 목록대왕이 난전 중에 죽는다. 은갱동 안의 맹획의 종당(종족)이 궁궐을 버리고 산과 고개를 넘어 달아난다. 공명의 대군이 은갱동을 점령한다.

    다음날, 공명이 병력을 나눠 맹획을 잡으려는데, 누군가 보고한다.

    “남만왕 맹획의 처남 대래동주가 맹획에게 거듭 투항을 권했으나 맹획이 따르지 않자, 이제 맹획과 아울러 축융부인을 비롯한 종당 수백 사람을 모조리 사로잡아 와서, 승상께 바치겠다고 합니다.”

    공명이 이를 듣고, 즉시 장의와 마충을 불러, 이렇게저렇게 분부한다. 두 장수가 계책을 받고, 건장한 병력 2천을 이끌고 양쪽 군막에 매 복한다. 공명이 곧 수문장에게 명령해, 문을 모두 열어서 들여보내게 한다. 대래동주가 도부수들을 이끌고 맹획 등 수백 사람을 압송해 오더니, 전하殿下(계단 아래)에서 절을 올린다. 공명이 호통친다.

    “이놈들을 붙잡아라!”

    양쪽 군막에서 건장한 병사들이 일제히 나와서, 두 사람이 한 사람씩 붙잡아, 모조리 포박한다.

    공명이 크게 웃으며 말한다.

    “네 하찮은 꾀로, 어찌 나를 속여 넘기랴! 너도 보았다시피, 너희 고을 사람들이 두번이나 너를 잡아서 투항해 왔지만, 나는 해치지 않았 다. 너는 내가 깊이 믿는 줄만 여기고, 항복한 척 찾아와 나를 여기서 죽이려 한 것이다!”

    무사들에게 소리쳐, 그 몸을 뒤지니, 과연 제각기 예리한 칼을 지녔다. 공명이 맹획에게 묻는다.

    “너는 원래 네 집에서 사로잡히면 비로소 진심으로 복종하겠다고 말했다. 오늘 어떡하겠냐?”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 죽을 길을 찾아온 것이지, 그대가 잘해서가 아니오. 나는 아직은 마음으로 복종할 수 없소.”

    “내게 여섯 번이나 사로잡히고도, 아직도 복종하지 않겠다면, 언제까지 기다리란 것이냐?”

    “그대가 일곱 번째로 사로잡으면 나는 비로소 마음을 기울여 귀복歸服(귀순)하고 맹세코 배반하지 않겠소!”

    “소혈(소굴)을 이미 깨뜨렸거늘, 내가 무엇을 걱정하랴!”

    무사들을 시켜 그들의 포박을 모조리 제거하고, 꾸짖는다.

    “이번에 붙잡히고도 다시 항거한다면 결코 가볍게 용서하지 않겠다!”

    맹획 등이 머리를 감싸쥐고 놀란 쥐새끼처럼 달아난다.

    한편, 싸움에 지고 살아남은 남만병이 천 명 남짓인데, 태반이 부상을 입고 달아나다가, 마침 남만왕 맹획과 마주친다. 맹획이 패병(패잔 병)들을 거둬, 마음 속으로 자못 기뻐하며, 대래동주와 상의한다.

    “내 이제 동부洞府(신선이 거주하는 곳/ 여기서는 ‘남만 고을')를 촉병들에게 빼앗겼으니 이제 어디로 가서 안신安身(정착/ 몸과 마음을 편히 쉼)하겠소?”

    대래동주가 말한다.

    “촉나라를 격파할 나라가 꼭 하나 있사옵니다.”

    맹획이 기뻐하며 말한다.

    “어디로 가면 되겠소?”

    “여기서 동남쪽 칠백 리에 한 나라가 있으니 이름해 오과국烏戈國입니다. 국왕 올돌골兀突骨은 키가 2 장丈(1 장이 보통 어른의 키)으 로, 오곡을 먹지 않고, 살아 있는 뱀과 악수惡獸(흉악한 짐승)를 밥으로 먹습니다. 몸에는 갑옷처럼 단단한 비늘이 나 있어, 칼이나 화살 로 뚫을 수 없습니다. 그 수하 병사들은 모두 등갑籐甲(등나무 갑옷)을 입습니다. 그 등나무는 산골짜기에서 자라서, 암벽 위로 감아 올 라갑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채취해, 기름 속에 담가, 반년이 지나면 꺼내어 햇볕에 말립니다. 건조하고 다시 기름 속에 담기를 무 릇 열 번 남짓 한 뒤에야 그것으로 갑옷을 만듭니다. 그것을 몸 위에 걸치면, 강을 건너도 가라앉지 않고, 물 속을 지나가도 젖지 않으며, 칼이나 화살로 뚫을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이름해 등갑군籐甲軍이라 합니다. 이제 대왕께서 가서 요청하시면 될 것입니다. 만약 그가 도와준다면, 제갈량을 사로잡음은 마치 날카로운 칼로써 대나무를 쪼갬과 같사옵니다.”

    맹획이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오과국으로 올돌골을 만나러 온다. 이곳에는 집이 따로 없고, 모두 토혈土穴(흙 동굴)에 거주한다. 맹획이 오과국으로 들어가 거듭 절하고, 지난 일을 하소연한다. 올돌골이 말한다.

    “본동의 병력을 일으켜, 그대의 복수를 해주겠소.”

    맹획이 기뻐하며 고개숙여 고마워한다. 이에 병력을 이끌 부장俘長(장수) 두 사람을 올돌골이 부르니, 한 사람은 이름이 토안土安이고 또 한 사람은 이름이 해니奚泥다. 3만 병력을 일으키는데 모두 등갑을 걸치고, 오과국을 떠나 동북쪽으로 간다. 어느 강에 이르니 이름하 여 도화수桃花水로 양쪽 물가에 복숭아 나무가 있어, 해마다 물 속에 그 잎이 떨어진다. 다른 나라 사람이 강물을 마시면 죽지만, 다만 오 과국 사람이 마시면 오히려 기력이 갑절로 늘어난다. 올돌골의 병사들이 도화수 나루에 이르러 영채를 세우고 촉병을 기다린다.

    한편, 공명이 남만인을 시켜 맹획의 소식을 초탐哨探(정탐/ 정찰)하니, 돌아와 알린다.

    “맹획이 오과국의 군주에게 요청해, 등갑군 3만을 이끌고, 현재 도화수 나루에 주둔했습니다. 맹획이 또한 번국마다 오랑캐 군대를 불러 모아, 힘을 합쳐 거전拒戰(적군을 막아 싸움)합니다.”

    공명이 듣고, 병력을 거느리고 크게 나아가, 곧바로 도화수 나루에 이른다. 강 건너 오랑캐 병력을 바라보니, 사람 꼴 같지 않고, 몹시 추 악하다. 또한 토인(원주민)에게 물으니, 이 날 복숭아 나뭇잎이 강물에 떨어지고 있어, 물을 마실 수 없다고 한다. 공명이 5 리 물러 영채 를 세우게 하고, 위연을 남겨 영채를 지키게 한다.

    다음날, 오과국 군주가 한 무리의 등갑군을 이끌고 강을 건너오니, 징소리와 북소리가 크게 진동한다. 위연이 병력을 이끌고 맞이하러 나간다. 남만병들이 땅을 뒤덮으며 몰려온다. 촉병들이 쏜 노전弩箭(쇠노로 쏘는 화살)이 등갑 위에 이르지만 모두 등갑을 뚫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진다. 칼로 베고 창으로 찔러도 역시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 남만병들이 모두 예리한 칼과 강차鋼叉(강철로 만든 세 갈래 작 살이 달린 무기)를 쓰니 촉병들이 어떻게 막아내지 못해 모조리 패주한다. 남만병들이 뒤쫓지 않고 되돌아간다. 위연이 다시 돌아와, 도 화수 나루에 가보니, 남만병들이 갑옷을 입고 물을 건너간다. 그들 가운데 피곤한 이들은 갑옷을 벗어 물 위에 띄우고 그 위에 앉아 강을 건넌다.

    위연이 서둘러 대채로 돌아와 공명에게 여쭈며 그 일을 자세히 말한다. 공명이 여개와 토인을 불러 물으니 여개가 말한다.

    “제가 평소 듣자니, 남만에 오과국이라고 있는데 인륜人倫(인간다운 도리)이 없다고 합니다. 또한 등나무 갑옷으로 몸을 지키니 쉽사리 살상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도화수의 나쁜 물은, 그 나라 사람이 마시면 도리어 기력이 더욱 솟지만 다른 나라 사람이 마시면 곧바로 죽 습니다. 이러한 오랑캐 나라는 비록 완전히 이긴들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병사들 거둬 어서 돌아감만 못합니다.”

    공명이 웃으며 말한다.

    “내가 어렵게 이곳까지 왔는데 어찌 바로 돌아가겠소! 내게 내일 오랑캐를 평정할 계책이 있소.”

    이에 조운과 위연에게 영채를 지키라 명령하고, 우선 함부로 출전하지 못하게 한다.

    다음날, 공명이 토인을 길앞잡이 삼아, 스스로 작은 수레를 타고 도화수 나루 북쪽 물가의 산 속 외진 곳으로 가서, 지리를 두루 살핀다. 산과 고개가 험한 곳에서 수레가 갈 수 없어, 공명이 수레에서 내려 걷는다. 그런데 어느 산에 이르러, 골짜기를 바라보니, 생김새가 마치 긴 뱀과 같고, 모두 번쩍이는 가파른 암벽에 수목이 전혀 없는데, 중간에 한 줄기 큰 길이 나 있다. 공명이 토인에게 묻는다.

    “이 골짜기의 이름이 무엇인가?”

    “이곳은 이름해 반사곡盤蛇谷(뱀처럼 구불구불한 골짜기)이라 합니다. 골짜기를 나가면 삼강성의 큰 길이 나옵니다. 골짜기 앞을 탑 랑구塔郎甸라고 부릅니다.”

    공명이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이것은 바로 하늘이 나로 하여금 이곳에서 공을 이루라는 것이다!”

    곧 왔던 길로 되돌아가 수레를 타고 영채로 돌아와 마대를 불러, 검은 상자를 실은 수레 열 량을 줄 테니, 반드시 죽간竹竿(대나무 장대) 천 개로 상자 안의 물건으로, 공명이 지시하는 대로 하라고 분부한다.

    “휘하 병력을 이끌고 반사곡 양쪽 입구를 차단하고 알려준 대로 실행하시오. 보름의 시한을 주겠으니 모두 완비하시오. 그때까지 알려준 대로 시설하시오. 준비가 모자라면 군법에 따라 벌하겠소.”

    마대가 계책을 받아 떠난다. 다시 조운을 불러, 반사곡 뒤의 삼강대로의 입구로 가서, 역시 공명이 지시하는 대로 지키며, 필요한 것들을 당일까지 완비하라고 분부한다. 조운이 계책을 받고 떠난다.

    다시 위연을 불러 분부한다.

    “그대는 휘하 병력을 이끌고 도화수 나루로 가서 영채를 세우시오. 남만병이 물을 건너 쳐들어오면 그대는 바로 영채를 버리고, 백기가 펄럭이는 쪽으로 달아나시오. 보름 안에 잇달아 열다섯 번을 패전하고 일곱 개 채책寨柵(사방에 울타리를 친 방어진지)을 포기해야겠소 . 열네 번 패전하더라도 나를 찾아오지 마시오.”

    위연이 명령을 받들고 앙앙怏怏(불만족스런 모습)하게 떠난다. 공명이 다시 장익을 불러, 따로 한 무리 군을 이끌고 공명이 알려준 곳 으로 가서 채책을 세우라고 한다. 다시 장의와 마충을 불러, 항복한 남만병 천 명을 이끌고, 공명이 알려주는 대로 실행하라고 명한다. 제 각기 계책에 따라 실행한다.

    한편, 맹획은 오과국 군주 올돌골에게 말한다.

    “제갈량은 교묘한 꾀가 많으니 이것은 매복작전이 틀림없소. 이제부터 교전 시에, 삼군(전체 군대)에 분부하여, 산골짜기 안이나 수풀이 많은 곳은 함부로 진군하지 못하게 하시오.”

    “대왕의 말씀이 일리가 있소. 나 역시 중국인들이 속임수를 많이 부림을 알고 있소. 이제부터 대왕의 말씀을 따르겠소. 내가 앞에서 쳐부 술 테니 대왕은 배후에서 교도教導(교육지도/ 안내)하시오.”

    두 사람이 상의를 마치는데 갑자기 누군가 촉병들이 도화수 나루 북쪽 물가에 영채를 세웠다고 알린다. 올돌골이 즉시 부장 두 사람을 보내 등갑군을 이끌고 강을 건너 촉병과 싸우게 한다. 몇 합 안 싸우고, 위연이 패주한다. 남만병들이 매복이 있을까 두려워 뒤쫓지 않 고 스스로 돌아간다. 다음날, 위연이 다시 가서 영채를 세웠다. 남만병들이 이를 알아채고 다시 대군을 이끌고 강을 건너 싸우러 온다. 위 연이 나가서 맞이하나 몇 합 안 싸우고 패주한다. 남만병들이 십여 리를 추격하더니 사방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촉나라 영채에 주둔한 다.

    다음날, 부장 둘이 올돌골을 영채로 모셔 이 일을 이야기한다. 올돌골이 즉시 병력을 이끌고 크게 나아가 위연을 한바탕 추격한다. 촉병 들 모두 갑옷을 버리고 무기를 내던지고 달아나는데 앞쪽에 백기가 펄럭인다. 위연이 패잔병들을 이끌고 급히 백기가 있는 곳으로 달려 가니 벌써 영채가 하나 있어, 영채 안에 주둔한다. 올돌골이 병력을 이끌고 뒤쫓아 오자, 위연이 병력을 이끌고 영채를 포기하고 달아난 다. 오랑캐 병사들이 촉나라 영채를 차지한다. 다음날, 다시 앞으로 추격한다. 위연이 병력을 되돌려 교전하고, 3 합을 못 싸우고 패주한 다. 다시 백기가 있는 곳으로 달아나니 역시 영채가 하나 있어, 위연이 영채 안에 주둔한다. 다음날 다시 남만병들이 몰려오니, 위연이 조 금 싸우다가 다시 달아난다. 남만병들이 촉나라 영채를 점령한다.

    지루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위연은 또 싸우고 또 달아나기를 되풀이해, 벌써 열다섯 차례 패전하고 잇달아 일곱 개 영채를 잃는다. 오랑캐 군대가 크게 진군해 추격한다. 올돌골이 스스로 병사들 선두에서 적군을 격파하는데, 도중에 수풀이 무성한 곳이 나타나, 감히 전진 하지 못한다. 사람을 시켜 멀리 정찰하게 하니, 과연 수풀 그늘 아래 깃발들이 움직인다. 올돌골이 맹획에게 말한다.

    “과연 대왕께서 헤아리신 대로요.”

    맹획이 크게 웃으며 말한다.

    “제갈량이 이번에 나에게 간파됐소! 대왕께서 날마다 열다섯 번을 이기고 입곱 개 영채를 빼앗으니 촉병들이 우리의 소리만 듣고도 놀라 서 달아나오. 제갈량이 이미 계책이 궁하니, 이렇게 한번만 진격하면 큰 일이 이뤄질 것이오!”

    올돌골이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촉병을 조심하지 않는다.

    열엿새 째 되는 날, 위연이 패잔병을 이끌고, 등갑군과 싸우러 오니, 올돌골이 코끼르)리를 타고 선두에 서서, 머리에 일월랑수모日月狼 須帽를 쓰고, 몸을 금주영락金珠纓絡(황금, 진주, 옥돌)으로 꾸몄는데, 양쪽 갈빗대에 갑옷처럼 단단한 비늘이 드러나고, 눈동자에서 빛 줄기를 뿜는 듯하다. 올돌골이 위연을 가리키며 크게 욕을 하니 위연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고 그 뒤를 남만병들이 크게 진격한다. 위 연이 병력을 이끌고 반사곡을 돌아서, 백기가 있는 쪽으로 달아난다. 올돌골이 병사들을 모두 이끌고 그 뒤를 추격한다. 올돌골이 멀리 바라보니 산 위에 아무런 초목도 없어, 매복이 없다고 여기고, 마음놓고 추격한다. 골짜기 안에 이르니, 수십 량의 검은 상자를 실은 수레 가 길을 막고 있다. 오랑캐 병사가 보고한다.

    “이곳은 바로 촉병의 군량을 나르는 길인데, 대왕께서 오시자, 군량 수레를 내던져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올돌골이 크게 기뻐하며 병사들을 재촉해 추격한다. 곧 골짜기 입구를 나오려는데 촉병들이 보이지 않고, 다만 횡목橫木(가로질러 놓는 나무)과 온갖 암석이 굴러떨어져, 골짜기 입구를 겹겹이 차단한다. 올돌골이 병사들에게 길을 뚫고 나아가라 명한다. 그런데 앞쪽의 크 고 작은 수레에 마른 불쏘시개가 잔뜩 실려 있고 모조리 불길이 치솟는다.

    올돌골이 황망히 병사들에게 후퇴하라 명하는데,후군(뒷쪽 군대)에서 함성이 들려온다. 누군가 알리기를, 골짜기 입구도 벌써 마른 불 쏘시개로 겹겹히 차단됐고, 알고보니 수레에 실린 것도 모두 화약으로 일제히 불붙는다. 올돌골이 보니 (불이 옮겨 붙을) 초목이 전혀 없 어 마음 속으로 당황하지 않고 길을 찾아 달아나라 명령한다. 그런데 산 위 양쪽 가에서 횃불을 마구 던지고 횃불이 떨어지는 곳마다 땅 속의 약선藥線(폭탄에 점화하는 실)이 불붙어 곧 땅에서 철포鐵炮(여기서는 대포가 아니라 철제 폭탄/ 폭죽)가 날아오른다. 골짜기 가 득히 불빛이 난무하니 등갑에 닿은 대로 불붙는다. 곧 올돌골과 3만 등갑군이 불에 타서 서로 껴안은 채 반사곡 안에서 죽는다. 공명이 산 위에서 내려와 살펴보니, 오랑캐 병사들이 불붙어 주먹과 다리를 펼친 채 죽었고 태반이 철포를 맞아 머리와 얼굴이 분쇄됐다. 모조 리 골짜기 안에서 죽어 그 악취를 견딜 수 없다. 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탄식한다.

    “내 비록 종묘사직에 공을 세웠지만 내 수명이 줄어들겠구나!”

    좌우의 장졸들 가운데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다.

    한편, 맹획은 영채 안에 머물며 오랑캐 병사들이 돌아와 보고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1천여 사람이 영채 앞에서 웃으며 절을 올 리고 말한다.

    “오과국 병력이 촉병과 크게 싸워 제갈량을 반사곡에서 포위했습니다. 대왕께서 도우러 가시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저희 모두 원래 이곳 사람이지만 부득이하게 촉나라에 항복했었습니다. 이제 대왕께서 오신 것을 알고 싸움을 도우러 왔을 뿐입니다.”

    맹획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종당宗黨(종족/ 일가친척)과 불러모은 번인番人(오랑캐/ 소수민족/ 외국인)을 이끌고 그날밤 말을 탄다. 오랑캐 병사에게 길을 안내하게 명해, 반사곡에 도착해보니, 불빛이 몹시 치솟고, 악취를 견디기 어렵다. 맹획이 계략에 빠진 것을 알 고, 급히 군대를 물리려는데, 왼쪽에서 장의, 오른쪽에서 마충, 양쪽에서 병사들이 몰려나온다. 맹획이 맞서려는데, 한바탕 함성이 인다. 알고보니 오랑캐 병사 가운데 태반이 촉군이다. 이들이 남만왕의 종당과 소집한 번인들을 모조리 사로잡는다.

    맹획이 필마단기로 촉병의 두꺼운 포위를 뚫고, 산 속 지름길 쪽으로 달아난다. 막 달아나고 있는데 산요山凹(산 속의 우묵 들어간 곳) 에서 한 무리 인마가 작은 수레 하나를 호위해 나온다. 수레에 단좌한 사람은 머리에 윤건을 쓰고 손에 우선(깃털부채)을 들고 몸에 도 포를 입은 바로 공명이다. 공명이 크게 꾸짖는다.

    “반적(역적) 맹획아! 이번에는 어쩔 셈이냐?”

    맹획이 황급히 말머리를 돌려 달아난다. 그런데 옆에서 어느 장수가 번쩍 나타나, 갈 길을 가로막으니 바로 마대다. 맹획이 미처 손쓰지 못하고, 마대에게 사로잡힌다. 이때 왕평과 장익이 벌써 한 무리 군을 이끌고 남만 영채에 이르러, 축융부인과 남녀노소 모두를 사로 잡아 온다.

    공명이 영채 안으로 돌아온다. 승장升帳(지휘하는 장군이 군막에 들어와 군사정세를 듣고 명령을 내림)하고 앉아서 장수들에게 이른다.

    “내 이번의 계책은 부득이하게 쓴 것이지만 나의 음덕陰德(숨은 덕행)을 크게 해쳤소. 내 생각에, 적인(적)들은 틀림없이 수풀이 우거진 곳에 아군이 매복할 것이라 예상했소. 내가 오히려 깃발들만 꽂고, 실은 아무 병마도 배치하지 않은 것은 저들을 현혹시키기 위해서였소 . 내가 위문장(위연)더러 열다섯 번을 잇달아 패전하라 명령한 것은, 그들의 의심을 거두기 위해서였소. 내가 보니, 반사곡은 오로지 한 줄기 길만 있고 양쪽은 모두 반짝이는 암석인데다 수풀이 전혀 없고 아래쪽은 모두 모래흙이었소. 이에 마대에게 명령해, 검은 상자를 골짜기 안에 안배하고, 수레의 상자 안에, 미리 만들어둔 화포火炮(여기서는 대포가 아니라 일종의 폭탄/ 폭죽)를 잔뜩 채웠소. 이 화포 는 이름해 ‘지뢰'인데, 한 포炮 안에 작은 포 아홉 개를 넣은 것을, 3십 보마다 파묻고, 속이 빈 대나무 안으로 약선을 넣었소. 한번 터지 면 산이 무너지고 돌이 깨지오. 나는 또한 조자룡에게 명하여, 미리 마른 풀을 실은 수레를 준비해 골짜기 안에 놓아두게 하였소. 또한 산 위에 미리 큰 나무와 난석亂石(잡다한 돌덩이)을 준비했소. 위연에게 명해 올돌골을과 등갑군을 골짜기로 꾀어내어, 위연을 내보내고 즉시 그 길을 차단하고, 뒤따라 불살랐소. 내가 듣기에, ‘물에 유리한 것은 반드시 불에 불리하다’라고 했소. 등갑은 비록 칼이나 화살로 뚫을 수 없으나 기름에 적신 것이라 불붙기 마련이오. 오랑캐 병사들이 이렇게 단단한 갑옷을 입었으니 화공이 아니며 어찌 승리하겠소? 그러나 오과국 사람들을 씨도 남기지 못하게 멸절시킨 것은 나의 큰 죄요!”

    장수들이 절을 올려 엎드려 말한다.

    “승상의 천기天機는 귀신도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공명이 맹획을 압송해 오도록 명한다. 맹획이 군막 안에서 무릎꿇는다. 공명이 그 포박을 풀어주라 명하고, 우선 다른 군막에 머물게 하 고 술과 밥을 주어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게 한다. 술과 밥을 담당하는 관리를 공명이 불러, 무엇인가 분부를 내린 뒤 보낸다.

    한편, 맹획은 축융부인, 맹우, 대래동주 등 모든 종당(종족/ 일가친척)과 함께 다른 군막에서 술을 마신다. 그런데 한 사람이 군막으로 들어와 맹획에게 말한다.

    “승상께서 부끄러워하시면서, 공을 만나려 하시지 않습니다. 특별히 저를 시켜, 공을 풀어주고, 다시 인마를 불러모아 승부를 내자고 하 셨습니다. 공은 이제 어서 떠나시오.”

    맹획이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칠금칠종七擒七縱(또는 칠종칠금/ 일곱 번 잡고 일곱 번 풀어줌)은 옛부터 이제까지 없었소. 내 비록 화외지인(왕화를 받지 못한 오랑 캐)이나 예의는 자못 알거늘, 어찌 이런데도 수치를 모르겠소?”

    곧 형제, 처자, 종당 등과 함께, 모두 땅을 기어서 가더니 군막 아래에서 무릎꿇고, 웃옷을 벗어 상체를 드러낸 채 사죄한다.

    “승상의 위엄이 하늘 같으니, 남쪽 사람들이 다시는 반역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명이 말한다.

    “공이 지금 복종하겠다는 것이오?”

    맹획이 눈물흘리며 사죄한다.

    “저의 자자손손 모두 거듭 목숨을 살려주신 은혜에 감격하는데, 어찌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공명이 이에 맹획을 위로 불러서 연회를 베풀어 경하하고, 언제까지나 남만의 군주로 있게 한다. 빼앗은 땅은 모두 돌려준다. 맹획의 종 당과 남만 병사들 가운데 감격해서 우러러 받들지 않는 이 없고, 모두 기뻐하며 껑충껑충 뛰며 떠난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공명을 기 렸다.

    깃털부채를 들고 윤건을 쓰고 푸른 군막 아래에서,
    일곱 번이나 묘책을 내어서 오랑캐 왕을 붙잡았네.
    지금도 그 위엄과 은덕이 *계동에 전해지니,
    그를 위해 높은 땅을 골라 묘당을 세웠구나.

    장사長史(참모/ 보좌관) 비위가 들어와 간언한다.

    “이제 승상께서 몸소 사졸들을 이끌고 불모의 땅 깊숙히 들어와 오랑캐 나라를 복속시켰습니다. 지금 남만왕이 귀복했는데, 어찌 관리를 두어서 맹획과 함께 지키게 하지 않으십니까?”

    공명이 말한다.

    “이러한 경우, 쉽지 않은 게 셋 있소. 외인外人을 남기려면 병사들도 남겨야겠지만 병사들이 먹을 것이 없음이 첫번째 쉽지 않음이오. 오 랑캐들이 다치고 깨져서, 부모형제가 사망했는데, 외인을 남기면서 병력을 주둔하지 않으면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이니 두번째 쉽지 않 음이오. 오랑캐들이 여러 차례 폐살廢殺(없애고 죽임)의 죄를 저질러, 스스로 혐의嫌疑가 있는데, 외인을 남기면 서로 믿지 못하니, 세 번째 쉽지 않음이오. 이제 내가 사람을 남겨두지 않고 군량을 운반하지 않는 것이 서로 화평하고 무사히 지내는 길일 따름이오.”

    사람들 모두 탄복한다. 이에 오랑캐 땅의 사람들이 모두 공명의 은덕에 감격해,공명을 위해 생사生祠(살아있는 사람을 모시는 사당)를 세우고 사시사철 제사를 올리며 모두들 그를 자비로운 아버지라고 부른다. 제각기 진주와 금은보화, 단칠丹漆(붉은 옻칠 재료), 각종 약 재, 농사짓는 소, 전투용 말 등을 보내 군용으로 쓰게 하고, 다시는 반역하지 않겠다고 맹서한다. 남방이 이렇게 평정된다.

    한편, 공명이 병사들을 호궤한 뒤, 군대를 거두어 촉나라로 돌아가며, 위연에게 명하여, 휘하 병력을 이끌고 선봉을 맡게 한다. 위연이 병 력을 이꿀고 노수 물가에 이르자, 갑자기 먹구름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물 위에서 한바탕 미친 바람이 불어오니, 모래가 날고 돌이 굴러 병사들이 전진할 수 없다. 위연이 병력을 되돌려 공명에게 돌아가 알린다. 공명이 곧 맹획을 불러 이 일을 물어본다.

    변경 너머 오랑캐들이 이제서야 굴복했는데,
    물가의 귀신이 갑자기 또 미쳐서 날뛰는구나.

    맹획이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