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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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八回 定三分隆中決策 戰長江孫氏報讎

제38회 공명이 융중에서 천하를 삼분할 계책을 정하고 손씨가 장강에서 원수를 갚는다

卻說玄德訪孔明兩次不遇,欲再往訪之。關公曰:「兄長兩次親往拜謁,其禮太過矣。想諸葛亮有虛名而無實學,故避而不敢見。兄何惑 於斯人之甚也?」玄德曰:「不然。昔齊桓公欲見東郭野人,五反而方得一面。況吾欲見大賢耶?」張飛曰:「哥哥差矣。量此村夫,何足 為大賢?今番不須哥哥去;他如不來,我只用一條麻繩縛將來!」玄德叱曰:「汝皆不聞周文王謁姜子牙之事乎?文王且如此敬賢,汝何 太無禮!今番汝休去,我自與雲長去。」飛曰:「既兩位哥哥都去,小弟如何落後?」玄德曰:「汝若同往,不可失禮。」

한편 현덕이 공명을 찾아가 두번이나 못 만나 다시 찾아가 만나려 하자 관공이 말한다.

"형장께서 두번이나 몸소 배알하러 찾아가니 예의가 너무 지나치오. 생각하면, 제갈량은 헛된 명성만 있을 뿐 실제 학문은 없어 일부러 피해 감히 만나지 못하는 것이오. 형께서 어찌 보잘것 없는 자에게 미혹되시는 게 이렇게 심하시오?"

"그렇지 않다. 예전에 제나라 환공이 동곽 東郭의 야인 野人을 만나려 해도 다섯번이나 되돌아오고서야 한번 만날 수 있었다. 하물며 내 가 대현 大賢을 만나려 하는데야!"

장비가 말한다.

"형님 틀렸수! 그깟 촌뜨기가 어찌 대현이겠수? 이번에 형님이 가실 것 없이, 그자가 안 오면 내가 삼노끈으로 꽁꽁 묶어 오겠수다!"

현덕이 꾸짖는다.

"너희가 주나라 문왕이 강자아를 만난 일을 듣지 못했냐? 문왕조차도 그렇게 현자를 공경하는데 너희가 어찌 이렇게 무례하냐! 이번에 너는 가지 마라. 내가 운장과 함께 가겠다."

"두 형님이 모두 가시는데 아우가 어찌 뒤에 남겼수?"

"네가 같이 갈 것이면 예를 잃지 말아라."

飛應諾。於是三人乘馬引從者住隆中。離草廬半里之外,玄德便下馬步行,正遇諸葛均。玄德忙施禮,問曰:「令兄在莊否?」均曰:「昨 暮方歸。將軍今日可與相見。」言罷,飄然自去。玄德曰:「今番僥倖,得見先生矣!」張飛曰:「此人無禮!便引我等到莊也不妨!何故 竟自去了!」玄德曰:「彼各有事,豈可相強?」

장비가 응낙한다. 이에 세 사람이 말을 타고 융중으로 간다. 초가집에서 반 리쯤 떨어진 곳에서 현덕이 말에서 내려 걷다 마침 제갈균을 만난다. 현덕이 황망히 인사해 묻는다.

"오늘 형께서 집에 계시지 않습니까?"

"어제 저녁 막 돌아왔습니다. 장군께서 오늘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말을 마쳐 훌훌 떠나간다. 현덕이 말한다.

"이번에 요행히 선생을 만나게 됐구나!"

장비가 말한다.

"저자가 무례하오! 우리를 안내해 집으로 데려가도 괜찮지 않수! 무슨 까닭으로 자기 혼자 가버린단 말이우!"

"각자 사정이 있을텐데 어찌 억지로 하겠냐?"

三人來到莊前叩門,童子開門出問。玄德曰:「有勞仙童轉報,劉備專來拜見先生。」童子曰:「今日先生雖在家,但現在草堂上晝寢未 醒。」玄德曰:「既如此,且休通報。」分付關、張二人,只在門首等著。玄德徐步而入,見先生仰臥於草堂幾席之上。玄德拱立階下。

*幾席 /기석/ 궤석 几席 (안석과 돗자리). 안석은 벽에 세워 몸을 기대는 등받이의 일종. 본문에서는 돗자리 정도로 풀이하면 될듯. 궤 석이라 적으면 알아볼 사람이 거의 없을듯.
*仰臥 /앙와/ 반듯하게 누움.

세 사람이 집앞에 이르러 문을 두들겨 동자가 문을 열고 나와 물어 현덕이 말한다.

"수고스럽겠다만 선동 仙童 (신선을 모시는 동자)이 선생께 가서, 유비가 선생을 만나뵈러 일부러 찾아왔다 말씀드려라."

"오늘 선생께서 비록 집에 계시나 이제 초당 위에서 낮잠을 주무셔 아직 깨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잠시 통보를 멈춰라."

관, 장 두 사람에게, 문앞에서 기다리게 분부한다. 현덕이 천천히 걸어 들어가 바라보니 선생은 돗자리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다. 현덕이 두손 모아 섬돌 아래 선다.

半晌,先生未醒。關、張在外立久,不見動靜,入見玄德,猶然侍立。張飛大怒,謂雲長曰:「這先生如何傲慢!見我哥哥侍立階下,他竟 高臥,推睡不起!等我去屋後放一把火,看他起不起!」雲長再三勸住。玄德仍命二人出門外等候。望堂上時,見先生翻身將起,忽又朝 裡壁睡著。童子欲報。玄德曰:「且勿驚動。」又立了一個時辰,孔明纔醒,口吟詩曰:

*半晌 /반향/ 한참동안. 한나절.
*睡著 /수저/ 잠이 들다. 입수 入睡.

한동안 선생이 잠에서 안 깬다. 관, 장이 밖에서 오래 서 있어 동정을 살필 수 없어 들어가 현덕을 바라보니 여태 지켜 서 있다. 장비가 크 게 노해 운장에게 이른다.

"저놈의 선생이 어찌 저렇게 오만하다 말이우! 보자니까 형님께서 섬돌 아래 지켜 서 계시고 그자는 높이 베고 누워 계속 자면서 일어나 지 않는구려! 우리가 밖으로 나가며 불을 확 질러 그자가 일어나나 안 일어나나 한번 봅시다!"

운장이 거듭 말려 멈춘다. 현덕이 다시 두 사람에게 문밖으로 나가 기다리라 명한다. 초당 위를 올려다보니 선생이 몸을 돌려 일어나는가 싶더니 다시 벽을 보고 잠이 든다. 동자가 알리려 하자 현덕이 말한다.

"놀라게 해선 안 된다."

다시 한 시진 時辰 (오늘날 2시간)을 더 서서 기다려서야 공명이 깨어나 시를 읊는다.

大夢誰先覺?平生我自知。
草堂春睡足,窗外日遲遲。

큰 꿈을 누가 먼저 깨울까? 평소 내 스스로 알았네.
초당에서 봄꿈은 족하고 창밖 해는 느릿느릿하구나.

孔明吟罷,翻身問童子曰:「有俗客來否?」童子曰:「劉皇叔在此,立候多時。」孔明乃起身曰:「何不早報!尚容更衣。」遂轉入後堂 。又半晌,方整衣冠出迎。玄德見孔明身長八尺,面如冠玉,頭戴綸巾,身披鶴氅,飄飄然有神仙之概。玄德下拜曰:「漢室末冑、涿郡 愚夫,久聞先生大名,如雷貫耳。昨兩次晉謁,不得一見,已書賤名於文幾,未審得入覽否?」孔明曰:「南陽野人,疏懶性成,屢蒙將軍 枉臨,不勝愧赧。」

*俗客 /속객/ 승려가 아닌 사람. 고아하지 못하고 평범한 사람.
*文幾 /문기/ 문궤 文几. 글을 쓰는 데 사용하는 작은 탁자. 편지.
*疏懶 /소라/ 나태하고, 구속을 받지 않음. 게으르고 제멋대로임.
*愧赧 /괴난/ 몹시 부끄러워 얼굴을 붉힘.

공명이 읊고나서 몸을 돌려 동자에게 묻는다.

"속객 俗客 이 찾아오지 않았냐?"

"유황숙께서 오셔서 서서 기다리신 지 오랩니다."

이에 공명이 몸을 일으켜 말한다.

"어째서 어서 알리지 않았냐! 일단 옷을 갈아 입어야겠구나."

후당으로 들어가 다시 한참 지나서야 옷과 갓을 차려 나와 맞이한다. 현덕이 바라보니 공명은 키가 8척이요 얼굴은 관옥 같고 머리에 윤건을 쓰고 몸에 학창의를 입어 표표한 게 신선의 기개가 풍긴다. 현덕이 허리 굽혀 인사해 말한다.

"한실의 보잘것없는 후예, 탁군의 어리석은 자가 오래전부터 선생의 큰 명성을 우레처럼 들어왔습니다. 예전에 두 차례 찾아와 만나뵈려 했으나 만나지 못해 벌써 몇자 글을 남겼는데 아직 읽어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남양의 야인이고 천성이 게으르고 제멋대로입니다. 장군께서 거듭 왕림해주시니 몹시 부끄러워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二人敘禮,分賓主而坐。童子獻茶。茶罷,孔明曰:「昨觀書意,足見將軍憂民憂國之心;但恨亮年幼才疏,有誤下問。」玄德曰:「司馬 德操之言,徐元直之語,豈虛談哉?望先生不棄鄙賤,曲賜教誨。」孔明曰:「德操、元直,世之高士。亮乃一耕夫耳,安敢談天下事?二 公謬舉矣。將軍奈何舍美玉而求頑石乎?」玄德曰:「大丈夫抱經世奇才,豈可空老於林泉之下?願先生以天下蒼生為念,開備愚魯而賜 教。」孔明笑曰:「願聞將軍之志。」玄德屏人促席而告曰: 「漢室傾頹,奸臣竊命,備不量力,欲伸大義於天下,而智術淺短,迄無所 就。惟先生開其愚而拯厄,實為萬幸。」

*曲賜 /곡사/ 높임말. 굽어 살펴서 ~를 해주기를 바랍니다 정도의 뜻.
*愚魯 /우노/ 우매하고 노둔함.
*傾頹 /경퇴/ 기울어져 무너짐
*不量力 /불량력/ 자신의 능력을 헤어리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일을 하려 하다.

두 사람이 예를 갖춰 인사하고 손님과 주인 자리로 나눠 앉는다. 동자가 차를 바친다. 차를 마시고 공명이 말한다.

"지난번에 남기신 글의 뜻을 살피오니, 장군께서 백성과 나라를 걱정하시는 마음을 알고도 남았습니다. 다만 제가 어리고 재주가 모자라 잘못 물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마덕조나 서원직의 말이 어찌 허튼 이야기이겠습니까? 저를 비천하다 버리지 마시고 아무쪼록 가르침을 내려주시기 바라옵니다."

"사마덕조나 서원직은 당세의 뛰어난 선비입니다. 저는 밭이나 가는 농부일 뿐이니 어찌 천하의 일을 이야기하겠습니까? 두분께서 잘못 천거하셨습니다. 장군께서 어찌 미옥 (아름다운 구슬)을 버려 완석(쓸모없는 돌)을 구하십니까?"

"대장부가 경세기재(세상을 다스릴 남다른 재주)를 갖고서 어찌 임천 林泉 (수풀과 샘. 숨��지내는 삶을 비유) 속에서 헛되이 늙어가겠 습니까? 바라건대 선생께서 천하창생 (천하의 모든 사람)을 생각하셔 저의 우둔함을 깨우쳐 구해주시기 바랍니다."

공명이 웃는다.

"장군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

"한실이 기울고 무너지고 간신이 국가권력을 빼앗습니다. 제가 제 힘을 헤아리지 못한 채 천하에 대의를 펴기를 바라나 지혜와 책략이 얕고 짧아 결국 아무 것도 이룬 게 없습니다. 선생께서 저의 우매함을 깨우쳐 재앙에서 건져주신다면 참으로 만번 다행이겠습니다."

孔明曰:「自董卓造逆以來,天下豪傑並起。曹操勢不及袁紹,而竟能克紹者,非惟天時,抑亦人謀也。今操已擁百萬之眾,挾天子以令 諸侯,此誠不可與爭鋒。孫權據有江東,已歷三世,國險而民附,此可用為援,而不可圖也。荊州北據漢沔,利盡南海,東連吳會,西通 巴蜀,此用武之地,非其主不能守。是殆天所以資將軍,將軍豈可棄乎?益州險塞,沃野千里,天府之國,高祖因之以成帝業。今劉璋闇 弱,民殷國富,而不知存恤,智能之士,思得明君。將軍既帝室之冑, 信義著於四海,總攬英雄,思賢如渴,若跨有荊益,保其巖阻,西 和諸戎,南撫彝越,外結孫權,內修政理;待天下有變,則命一上將,將荊州之兵,以向宛洛;將軍身率益州之眾,以出秦川,百姓有不 簞食壼漿以迎將軍者乎?誠如是,則大業可成,漢室可興矣。此亮所以為將軍謀者也。惟將軍圖之。」言罷,命童子取出畫一軸,掛於中 堂,指謂玄德曰:「此西川五十四州之圖也。將軍欲成霸業,北讓曹操占天時,南讓孫權佔地利,將軍可占人和。先取荊州為家,後即取 西川建基業,以成鼎足之勢,然後可圖中原也。」

*吳會 /오회/ 동한 시기의 오군 吳郡과 회계군.
*彝 /이/ 운남, 사천, 귀주 등에 사는 소수민족.

공명이 말한다.

"동탁이 반역한 뒤부터 천하의 호걸들이 우르르 일어났습니다. 조조는 세력이 원소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마침내 원소를 이긴 것은 오로 지 하늘이 도와서만이 아니라 책략에서 이긴 까닭도 있습니다. 이제 조조가 벌써 백만의 무리를 가진데다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니 이것은 참으로 더불어 창칼을 겨눌 수 없습니다. 손권은 강동을 점거한 지 벌써 3대에 이르고 나라는 험준하고 백성이 따르니 이것은 그 가 나를 돕게 할 것이지 그를 도모해서는 안 됩니다.

형주는 북으로 한 漢, 멱 沔의 두 강물이 있어 남쪽 바다에 이르는 이익을 모조리 가지고, 동쪽으로 오군 吳郡 및 회계군과 잇닿고, 서쪽 으로 파촉 지방과 통하니 이것은 용무지지 用武之地 (전쟁하기 좋은 땅)이지 주인이 능히 지킬 곳은 아닙니다. 이것은 하늘이 장군께 내 린 것이나 마찬가진데 장군께서 어찌 버리실 수 있겠습니까?

익주 益州는 지형이 험준해 지키기 쉽고 옥야천리 沃野千里 (기름지고 매우 넓은 땅)라 천부지국 天府之國 (하늘이 내린 땅)입니다. 거 기서 기반해 고조 황제께서 제업 帝業을 이루셨습니다. 오늘날 유장 劉璋이 어리석고 흐립니다. 민은국부 民殷國富 (백성은 충실하고 나 라는 부유함)하지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지능지사 智能之士 (지식과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밝은 군주를 바라고 있습니다.

장군께서 황실의 후예이신데다 신의가 사해에 현저하고 영웅들을 거느리고 어진이를 생각하시기를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하십니 다. 만약 형주와 익주를 얻는다면 그 험난한 땅을 지키고 서융의 오랑캐들과 화친하고 남쪽으로 이월 彝越의 오랑캐들을 달래고 바깥으 로 손권과 맺고, 안으로 정리 政理 (정치)를 갈고 닦아야 합니다.

천하의 변고를 기다려 즉시 뛰어난 장수에게 명해 형주의 병력을 거느려 완락 宛洛 (오늘날 남양과 낙양)으로 향하게 합니다. 장군께서 몸소 익주의 대군을 거느려 진천 秦川 (오늘날 섬서성과 감숙성)으로 나가시면 백성들 가운데 밥을 싸들고 나와 장군을 맞이하지 않을 이 있겠습니까? 참으로 이와 같다면 가히 대업을 이뤄 가히 한실을 중흥하게 됩니다. 이것이 제가 장군을 위해 꾀하는 것입니다. 장군께 서 이것을 도모하십시오."

말을 마쳐 동자에게 명해 책 한 두루마리를 꺼내와 중당 中堂에 걸어 현덕에게 가리켜 말한다.

"이것이 서천 西川 54주의 지도입니다. 장군께서 패업을 이루시려면 북으로 조조에게 천시 天時를 가지도록 양보하고, 남으로 손권에게 지리 地利를 가지도록 양보해, 장군께서는 가히 인화 人和를 가져야 합니다. 먼저 형주를 취해 내 집으로 만든 뒤 즉시 서천을 취해 토대 를 세워 정족지세 鼎足之勢 (옛날 솥의 세다리처럼 각각의 세력이 팽팽함)를 이뤄야 가히 중원을 도모할 만합니다."

玄德聞言,避席拱手謝曰:「先生之言,頓開茅塞,使備如撥雲霧而睹青天;但荊州劉表、益州劉璋,皆漢室宗親,備安忍奪之?」孔明 曰:「亮夜觀天象,劉表不久人世。劉璋非立業之主,久後必歸將軍。」玄德聞言,頓首拜謝。只這一席話,乃孔明未出茅廬,已知三分 天下,真萬古人不及也!後人有詩讚曰:

현덕이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손을 모아 사례해 말한다.

"선생의 말씀으로 돈개모색 頓開茅塞 (갑자기 크게 깨우침)하니 구름과 안개가 걷혀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형주의 유표나 익주의 유장이 모두 한실의 종친이라 제가 어찌 차마 뻬앗겠습니까? "

"제가 밤에 천상 天象을 살피니 유표는 오래지 않아 세상을 뜹니다. 유장은 대업을 이룰 군주가 아닌지라 결국 장군께 넘어오고야 맙니 다."

현덕이 듣고서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려 사례한다. 이 자리의 이야기는 바로 공명이 초가집을 떠나기 전에 벌써 천하를 셋으로 나눌 것을 안 것이니 참으로 만고에 걸쳐 아무도 따르지 못할 것이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렸다.

豫州當日歎孤窮,何幸南陽有臥龍。
欲識他年分鼎處,先生笑指畫圖中。

유예주 당시 고궁한 걸 한탄하는데
다행히 남양에 와룡선생 있었네
언제 정족지세를 이룰지 알고 싶거늘
선생은 웃기만 하며 지도를 가리키네

玄德拜請孔明曰:「備雖名微德薄,願先生不棄鄙賤,出山相助。備當拱聽明誨。」孔明曰:「亮久樂耕鋤,懶於應世,不能奉命。」玄德 泣曰:「先生不出,如蒼生何?」言畢,淚沾袍袖,衣襟盡濕。孔明見其意甚誠,乃曰:「將軍既不相棄,願效犬馬之勞。」

현덕이 절해 공명에게 청한다.

"제가 비록 명성도 미미하고 덕도 박하지만 바라건대 선생께서 비천한 저를 버리지 않고 산을 나와 도와 주십시오."

"저는 오랫동안 밭갈고 김매기를 즐기고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몰라 능히 명을 받들지 못합니다."

현덕이 눈물흘려 말한다.

"선생께서 나오지 않으시면 창생 (백성)은 어찌합니까?"

말을 마쳐 눈물이 옷소매를 적셔 옷깃이 온통 젖는다. 공명이 그 뜻이 지극한 것을 보고 말한다.

"장군께서 버리시지 않으신다면 바라건대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玄德大喜,遂命關、張入拜獻金帛禮物。孔明固辭不受。玄德曰:「此非聘大賢之禮,但表劉備寸心耳。」孔明方受。於是玄德等在莊中 共宿一宵。次 日,諸葛均回,孔明囑付曰:「吾受劉皇叔三顧之恩,不容不出。汝可躬耕於此,勿得荒蕪田畝。待吾功成之日,即當歸隱 。」後人有詩歎曰:

현덕이 크게 기뻐하며 명을 내려 관, 장이 들어와 절하고 금과 비단을 예물로 바친다. 공명이 고사해 받지 않자 현덕이 말한다.

"이것은 대현을 초빙하는 예물이 아니라 다만 유비의 촌심 寸心을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

공명이 그제서야 받는다. 이에 현덕이 그 집에서 함께 하룻밤 묵는다. 이튿날 제갈균이 돌아와 공명이 부탁한다.

"내가 유황숙의 은혜를 받아 나가지 않을 수 없겠다. 너는 여기서 가히 농사를 짓되 절대 논밭을 버려 거칠게 하지 말라. 내가 뜻을 이룬 뒤 여기 되돌아와 은거하겠다. "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렸다.

身未升騰思退步,功成應憶去時言。
只因先主丁寧後,星落秋風五丈原。

*先主 /선주/ 촉한의 초대 황제 유비 현덕. 후주 後主는 유선.

그몸이 날아오르기 앞서 물러남을 생각했으니
뜻을 이뤘으면 그때 말씀을 잊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선주께서 돌아가시며 간절히 부탁한 뒤
별은 떨어지고 가을바람은 쓸쓸하던 오장원!

又有古風一篇曰:

다시 고풍 古風 한 편으로 기렸다.

高皇手提三尺雪,芒碭白蛇夜流血。
平秦滅楚入咸陽,二百年前幾斷絕。
大哉光武興洛陽,傳至桓靈又崩裂。
獻帝遷都幸許昌,紛紛四海生豪傑。
曹操專權得天時,江東孫氏開鴻業。
孤窮玄德走天下,獨居新野愁民危。
南陽臥龍有大志,腹內雄兵分正奇。
只因徐庶臨行語,茅廬三顧心相知。
先生爾時年三九,收拾琴書離隴畝。
先取荊州後取川,大展經綸補天手。
縱橫舌上鼓風雷,談笑胸中換星斗。
龍驤虎視安乾坤,萬古千秋名不朽。

*鴻業 /홍업/ 대업.
*雄兵 /웅병/ 강력한 군대.
*正奇 /정기/ 병법에서 말하는 정은 통상적 방법, 기는 변칙적 방법이다.
*隴畝 /농무/ 밭이랑. 논밭.
*補天手 /보천수/ 세상의 운명을 바꿀 능력을 가진 사람.
*龍驤虎視 /용양호시/ 용마가 머리를 들고 달리고, 호랑이가 노려봄

고조께서 눈처럼 하얀 칼 빼어들고
망탕에서 흰 뱀 베어내 피가 흐르네
진과 초를 멸해서 함양에 들어가나
이백년 전 거의 왕업 끊어질 뻔하네
크도다! 광무께서 낙양을 중흥하나
환제 영제 이르러 무너져 갈라지네
헌제께서 천도해 허창으로 가지만
줄줄이 사해에서 호걸들 일어나네
조조가 권력을 장악해 천시를 얻고
강동에서 손 씨는 홍업을 여는데
고궁한 현덕은 천하를 떠돌아 다녀
홀로 신야성에서 백성을 걱정하네
남양의 와룡선생이 커다란 뜻 가져
웅대한 전략 품고 병법에 능통하네
서서가 현덕을 떠나가며 말을 남겨
초가집을 세번 찾아온 마음을 아네
선생이 이때 나이 스물일곱 살인데
거문고와 책을 챙겨 논밭을 떠나네
먼저 형주를 취한 뒤에 서천을 취해
경륜을 크게 펼쳐 세상을 바꾸리라
종횡무진! 세치 혀에 풍뢰가 일고
담소하지만 속으로 우주를 바꾸네
용양호시! 천지사방을 안정시키니
만고천추 그 이름 바래지 않으리라

玄德等三人別了諸葛均,與孔明同歸新野。玄德待孔明如師,食則同桌,寢則同榻,終日共論天下之事。孔明曰:「曹操於冀州作玄武池 以練水軍,必有侵江南之意,可密令人過江探聽虛實。」玄德從之,使人往江東探聽。

현덕 등 세 사람이 제갈균과 작별해 공명과 더불어 함께 신야로 돌아간다. 현덕이 공명을 스승같이 대해 같은 식탁에서 먹고 같은 침상 에서 자며 하루내내 천하의 일들을 함께 의논한다. 공명이 말한다.

"조조가 기주에서 현무지를 만들어 수군을 조련하니 필시 강남을 침범할 뜻을 가졌습니다. 몰래 사람을 장강 너머로 보내 허실을 정탐해 야 합니다."

현덕이 그 말을 따라 사람을 강동으로 보내 정탐시킨다.

卻說孫權自孫策死後,據住江東,承父兄基業,廣納賢士,開賓館於吳會,命顧雍、張紘延接四方賓客。連年以來,你我相薦。時有會稽 闞澤,字德潤; 彭城嚴畯,字曼才;沛縣薛綜,字敬文;汝南程秉,字德樞;吳郡朱桓,字休穆;陸績,字公紀;吳人張溫,字惠恕;會 稽凌統,字公續;烏程吳粲,字孔休:此數 人皆至江東。孫權敬禮甚厚。又得良將數人,乃汝陽呂蒙,字子明,吳郡陸遜,字伯言,瑯琊 徐盛,字文嚮,東郡潘璋,字文珪,廬江丁奉,字承淵。文武諸人,共 相輔佐。由此江東稱得人之盛。

한편, 손권이 손책의 사후, 강동에 뿌리박아 부형의 기업을 이어받아 널리 현사를 받아들이고 오회에 빈관을 열어 고옹과 장굉을 시켜서 사방의 빈객을 접견케 한다. 해마다 너도나도 추천한다. 당시에,

회계 출신의 감택 '덕윤'
팽성 출신의 엄준 '만재'
패현 출신의 설종 '경문'
여남 출신의 정병 '덕조'
오군 출신의 주환 '휴목', 육적 '공기'
오인 출신의 장온 '혜서'
회계 출신의 능통 '공속'
오정 출신의 오찬 '공휴'

이들이 모두 강동으로 온다. 손권이 그들을 공경하는 예의가 몹시 후했다. 게다가 뛰어난 장수를 몇몇 얻는다. 바로,

여양 출신의 여몽 '자명'
오군 출신의 육손 '백언'
낭야 출신의 서성 '문향'
동군 출신의 반장 '문규'
여강 출신의 정봉 '승연'

문무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보좌한다. 이리해 강동에서 득인지성 得人之盛(인재를 많이 얻음)이라고 일컫는다.

建安七年,曹操破袁紹,遣使往江東,命孫權遣子入朝隨駕。權猶豫未決。吳太夫人命周瑜、張昭等面議。張昭曰:「操欲令我遣子入朝 ,是牽制諸侯之 法也。然若不令去,恐其興兵下江東,勢必危矣。」周瑜曰:「將軍承父兄遣業,兼六郡之眾,兵精糧足,將士用命,有 何逼迫而欲送質於人?質一入,不得不與曹氏連和;彼有命召,不得不往;如此則見制於人也。不如勿遣,徐觀其變,別以良策禦之。」 吳太夫人曰:「公瑾之言是也。」權遂從其言,謝使者,不遣子。自此曹操有下江南之意。但正值北方未寧,無暇南征。

건안 7년 조조가 원소를 격파하고 사자를 강동에 보내어 손권에게 아들을 입조시켜 임금을 곁에서 모시라고 한다. 손권이 주저하니 오태부인이 주유와 장소 등과 의논한다. 장소가 말한다.

"조조가 아드님을 입조시키라 함은 제후를 견제하는 방법이지요. 그러나 거스르면 강동으로 출병하여 형세가 위태로울까 걱정입니다."

주유가 말한다.

"장군께서 부형의 유업을 이어받아 6군의 사람들을 거느려 병사는 정예하고 식량은 넉넉하고 장사들은 명령을 받듭니다. 어째서 핍박을 받아 인질을 보내야겠습니까? 인질을 보내면 조씨와 동맹하지 않을 수 없어 그가 부르면 가지 않을 수 없으니 이렇게 남에게 통제를 받습니다. 인질을 보내지 말고 천천히 변화를 살펴 따로 좋은 계책으로 막으십시오."

오태부인이 말한다.

"공근의 말씀이 옳소."

손권이 결국 그 말을 따라 사자는 돌려보내고 아들은 보내지 않는다. 이때부터 조조가 강남을 정벌할 마음을 가진다. 다만 북방이 아직 안정되지 않아 남쪽을 정벌할 틈이 없었다.

建安八年十一月,孫權引兵伐黃祖,戰於大江之中。祖軍敗績。權部將凌操,輕舟當先,殺人夏口,被黃祖部將甘寧一箭射死。凌操子凌 統,時年方十五歲,奮力往奪父屍而歸。權見風色不利,收軍還東吳。

건안 8년 11월 손권이 병력을 이끌고 황조를 정벌하기 위해 대강에서 싸운다. 황조군이 거듭 패한다. 손권의 부장 능조가 앞장서서 작은배를 타고 하구에서 적을 무찌르다가 황조의 부장 감녕의 화살에 죽는다. 능조의 여 열다섯살 아들 능통이 분투하여 시신을 찾아온다. 손권이 보니 형세가 불리하므로 동오로 회군한다.

卻說孫權弟孫翊為丹陽太守。翊性剛好酒,醉後嘗鞭撻士卒。丹陽督將媯覽、郡丞戴員二人,常有殺翊之心,乃與翊從人邊洪結為心腹, 共謀殺翊。時諸將縣令,皆集丹陽。翊設宴相待。翊妻徐氏美而慧,極善卜易;是日卜一卦,其象大凶,勸翊勿出會客。翊不從,遂與眾 大會。

한편, 손권의 아우 손익이 단양태수가 된다. 손익은 굳세고 술을 좋아하여 취하면 사졸들을 채찍질다. 단양의 독장 규람과 군승 대원이 늘 손익을 살해할 마음을 먹더니 손익의 하인 변홍을 심복으로 삼아서 손익을 죽이려 한다. 이때 손익이 장수들과 현령들을 집결시켜 연회를 베푼다. 손익의 아내 서씨가 아름다운데다 지혜로와 점을 잘 쳤다. 그날 점괘가 융하므로 손익에게 외출하지 말 것을 권한다. 손익이 따르지 않고 사람들과 크게 모임을 갖는다.

至晚席散,邊洪帶刀跟出門外,即抽刀砍死孫翊。媯覽、戴員乃歸罪邊洪,斬之於市。二人乘勢擄翊家資侍妾。媯覽見徐氏美貌,乃謂之 曰:「吾為汝夫報仇,汝當從我;不從則死。」徐氏曰:「夫死未幾,不忍便相從。可待至晦日,設祭除服,然後成親未遲。」

*未幾 /미기/ 오래지 않음. 많지 않음.

저녁에 자리를 파하자 변홍이 문 밖으로 따라나와 칼을 뽑아 손익을 죽인다. 규람과 대원이 변홍에게 뒤집어 씌우고 저잣거리에서 처형한다. 이 틈에 그들이 손익의 재산과 시첩들을 빼앗는다. 규람이 서씨의 미모를 보고 그녀에게 이른다.

"내가 네 남편의 원수를 갚았으니 마땅히 나를 따르라. 따르지 않으면 죽인다."

"남편이 얼마전에 죽어서 바로 따르지는 못하오. 회일 晦日(음력말일)에 제사를 올려서 탈상한 뒤 성친 成親 (결혼)해도 늦지 않소."

覽從之。徐氏乃密召孫翊心腹舊將孫高、傅嬰二人入府,泣告曰:「先夫在日,常言二公忠義。今媯、戴二賊,謀殺我夫,只歸罪邊洪, 將我家資童婢盡皆分去。媯覽又欲強占妾身,妾已詐許之,以安其心。二將軍可差人星夜報知吳侯,一面設密計以圖二賊,雪此仇辱,生 死啣恩!」言畢再拜。孫高、傅嬰皆泣曰: 「我等平日感府君恩遇,今日所以不即死難者,正欲為復仇計耳。夫人所命,敢不效力?」

규람이 받아들인다. 서씨가 손익의 심복 장수였던 손고와 부영을 부중으로 불러들여 눈물흘리며 고한다.

"선부가 생전에 늘 두 분을 충의롭다 하셨소. 이제 규람과 대원 두 도적놈이 남편을 죽이고도 변홍에게 모함하고 우리의 재산과 하인을 모조리 나눠 가졌소. 게다가 규람이 저를 강제로 욕보이려 하기에 허락하는 척ㅎ해서 안심시켰소. 두 장군께서 어서 사람을 보내어 오후(손권)께 알리고, 몰래 두 도적을 도모하여 원수와 치욕을 갚아주신다면 죽어도 은혜를 잊지 않겠소!"

말을 마치고 거듭 절하니 두 사람이 눈물흘리며 말한다.

"저희가 평소 부군의 은혜를 크게 입었습니다. 즉시 따라죽지 못한 까닭은 원수를 갚고자 해서였습니다. 부인께서 명하시데 어찌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於是密遣心腹使者往報孫權。至晦日,徐氏先召孫、傅二人,伏於密室幃幕之中,然後設祭於堂上。祭畢,即除去孝服,沐浴薰香,濃妝 豔裹,言笑自若。

이에 은밀히 심복을 손권에게 보내어 알린다. 말일에 이르러 서씨가 손고와 부영을 불러 밀실의 휘장에 숨기고 당상에서 제사를 올린다. 제사를 마치고 상복을 벗어서 목욕하고 향을 뿌리고 화장하는데 웃고 말하는 것이 태연하다.

媯覽聞之甚喜。至夜,徐氏遣婢妾請覽入府。設席堂中飲酒。飲既醉,徐氏乃邀覽入密室。覽喜,乘醉而入。徐氏大呼曰:「孫、傅二將 軍何在?」二人 即從幃幕中持刀躍出。媯覽措手不及,被傅嬰一刀砍倒在地,孫高再復一刀,登時殺死。徐氏復傳請戴員赴宴。員入府來 ,至堂中,亦被孫、傳二將所殺。一面使人 誅戮二賊家小,及其餘黨。徐氏遂重穿孝服,將媯覽、戴員首級,祭於孫翊靈前。不一日,孫 權自領軍馬至丹陽,見徐氏已殺媯、戴二賊,乃封孫高、傅嬰為牙門將,令守丹陽,取徐氏歸家養老。江東人無不稱徐氏之德。後人有詩 讚曰:

*養老 /양로/ 늙어 집에서 쉼. 늙은 부모를 부양함.

규람이 듣더니 몹시 기뻐한다. 그날밤 서씨가 비첩을 보내어 규람을 부중으로 부른다. 대청에 술자리를 차려 음주한다. 서씨가 취한 규람을 밀실로 데려간다. 규람이 기뻐서 취한 채 들어가니 서씨가 크게 외친다.

"손, 부 두 장군은 어디 계시오!"

두 사람이 칼을 들고 튀어나온다. 규람이 손 쓰지 못하는 틈에 부영이 한칼에 베고 손고가 한칼을 찔러 죽인다. 서씨가 다시 대원을 연회에 부른다. 대원이 부중에 들어와서 대청에서 역시 손, 부에게 살해된다. 한편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두 도적의 식구와 잔당을 죽여서 다스린다. 서씨가 다시 상복을 입고 규람과 대원의 머리를 손익의 영전에 올려서 제사지낸 다. 하루가 안 돼 손권이 몸소 군마를 거느리고 단양에 이른다. 그가 서씨가 이미 규람과 대원을 죽인 것을 보고 손고와 부영을 아문장으로 삼아 단양을 지키게 하고 서씨를 귀가시켜 양로한다. 강동사람치고 서씨의 덕을 칭송치 않는 이 없었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렸다.

才節雙全世所無,姦回一旦受摧鋤。
庸臣從賊忠臣死,不及東吳女丈夫。

*摧鋤 /최서/ 없애다.
*姦回 /간회/ 간악. 사악.
*庸臣 /용신/ 평범한 신하.

재주와 절개 모두 갖춤은 세상에 드문데
간악한 무리가 하루아침에 제거되는구나
용신은 도적을 따르고 충신은 죽을 뿐이니
살아서 복수한 동오의 여장부만 못하구나

且說東吳各處山賊,盡皆平復。大江之中,有戰船七千餘隻。孫權拜周瑜為大都督,總統江東水陸軍馬。建安十二年,冬十月,權母吳太 夫人病危,召周瑜、張昭二人至,謂曰:「吾本吳人,幼亡父母,與弟吳景徙居越中。後嫁與孫氏,生四子。長子策生時,吾夢月入懷。後 生次子權,又夢日入懷。卜者云:『夢日 月入懷者,其子必貴。』不幸策早喪,今將江東基業付權。望公等同心助之,吾死不朽矣!」又 囑權曰:「汝事子布、公瑾以師傅之禮,不可怠慢。吾妹與我共嫁汝 父,則亦汝之母也,吾死之後,事吾妹如事我。汝妹亦當恩養,擇佳 婿以嫁之。」

한편, 동오 곳곳에서 산적들이 모조리 평정된다. 대강에 전선 7천여 척을 보유한다. 손권이 주유를 대도독으러 삼아 강동의 육군과 수군을 모두 총통하게 한다. 건안 12년 겨울 10월 손권의 어머니 오태부인이 위독해져 주유와 장소를 불러 이른다.

"나 오태부인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동생 오경과 더불어 월중에 옮겨와 살게 됐소. 뒤에 손씨 집안으로 시집와서 네 아들을 낳았소. 맏아들 손책을 낳을 때 꿈속에서 달이 내품에 안겼소. 뒤에 차남 손권을 낳을 때도 꿈서속에 달이 들어와 안겼소. 점쟁이가, 꿈에서 달이 들어와 안기면 아들이 귀해질 운명이라고 했소. 불행히 손책이 요절해 지금 강동의 기업은 손권에게 넘어갔소. 바라건대 여러분이 한마음으로 그를 도와준다면 내가 죽어도 한이 없겠소!"

다시 손권에게 부탁한다.

"너는 자포와 공근을 사부의 예로써 섬기는데 태만해선 안 된다. 내 동생은 나와 함께 네 부친께 시집왔으니 역시 네 모친이다. 내 죽은 뒤 내 동생 섬기기를 나를 섬기듯하라. 네 누이도 마땅히 아끼고 좋은 사위를 골라 시집보내라."

言訖遂終。孫權哀哭,具喪葬之禮,自不必說。至來年春,孫權商議欲伐黃祖。張昭曰:「居喪未及期年,不可動兵.」周瑜曰:「報仇雪 恨,何待期 年?」權猶豫未決。適北平都尉呂蒙入見,告權曰:「某把龍湫水口,忽有黃祖部將甘寧來降。某細詢之。寧字興霸,巴郡臨 江人也;頗通書史,有氣力,好游俠; 嘗招合亡命,縱橫於江湖之中;腰懸銅鈴,人聽鈴聲,盡皆避之。又嘗以西川錦作帆幔,時人皆稱 為『錦帆賊』。後悔前非,改行從善,引眾投劉表。見表不能成事,即欲來投東吳,卻被黃祖留住在夏口。

*亡命 /망명/ 도망자를 뜻하기도.

말을 마쳐 마침내 숨을 거둔다. 손권이 애달피 곡하고 예를 갖춰 장례를 치름이야 말할 필요도 없겠다. 이듬해 봄이 되자 손권이 상의해 황조를 치려 한다. 장소가 말한다.

"상을 치뤄 아직 기년 期年이 안 된지라 출병은 불가합니다."

주유가 말한다.

"원수를 갚는데 어찌 기년을 기다리겠습니까?"

손권이 주저한다. 마침 북평의 도위 여몽이 들어와 손권에게 고한다.

"제가 용추 龍湫(큰 폭포)의 길목을 지키는데 황조의 부장 감녕이 귀순했습니다. 제가 심문하니 감녕의 자는 흥패이고 파군의 임강 출신입니다. 제법 경전과 역사에 통달하고 기력이 있고 유협을 좋아합니다. 그가 일찍이 도망자들을 모아 강호를 주름잡았습니다. 허리에 구리방울을 달고 다니니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으면 모조리 달아났습니다. 또한 서천의 비단으로 돛을 만드니 사람들이 '금범적 錦帆賊 (비단돛을 단 도적)'이라 일컬었습니다. 그뒤에 개과천선하여 무리를 이끌고 유표에게 귀순했습니다. 그러나 유표는 큰일을 이룰 인물이 아니라고 보고서 동오로 넘어오려 했으나 도중에 황조가 붙들어 하구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前東吳破祖時,祖得甘寧之力,救回夏口;乃待寧甚薄。都督蘇飛屢薦寧於祖。祖曰:『寧乃劫江之賊,豈可重用?』寧因此懷恨。蘇飛 知其意,乃置 酒邀寧到家,謂之曰:『吾薦公數次,奈主公不能用。日月逾邁,人生幾何;宜自遠圖。吾當保公為鄂縣長,自作去就之計 。』寧因此得過夏口,欲投江東,恐江東 恨其救黃祖殺凌操之事。某具言主公求賢若渴,不記舊恨;況各為其主,又何恨焉?寧欣然引眾 渡江,來見主公。乞鈞旨定奪。」

"예전에 동오가 황조를 격파하자 감녕의 힘으로 하구를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몹시 박대했습니다. 도독 소비가 거듭 감녕을 황조에게 천거했습니다만 황조는 '감녕은 강물에서 노략질하던 도적인데 어찌 중용하겠소?'라 했습니다. 이에 감녕이 한을 품었습니다. 소비가 눈치채고 술을 마련하고 집으로 불러 이르길, '내 그대를 거듭 천거했으나 왠지 주공이 쓰지 않소. 일월이 빠르게 지나가니 인생이 얼마나 되겠소. 스스로 멀리 도모하시오. 그대를 악현의 장으로 추천할테니 스스로 거취를 정하시오'라고 했습니다. 감녕이 이에 하구를 벗어나 강동으로 넘어오려 했으나 지난날 황조를 구할 때 능조를 죽인 것을 걱정합니다. 제가 그에게, 주공께서 목마른 듯이 현자를 구하시고 옛 원한은 잊어버리신다고 잘 말했습니다. 게다가 각각 주인을 위하는 법인데 어찌 더욱 원망하겠습니까? 감녕이 흔쾌히 무리를 이끌고 강을 건너 주공을 만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균지 鈞旨(명령이나 지시의 높임말)로써 잘 판단해주십시오."

孫權大喜曰:「吾得興霸,破黃祖必矣。」遂命呂蒙引甘寧入見。參拜已畢,權曰:「興霸來此,大獲我心,豈有記恨之理?請無懷疑。願 教我以破黃祖 之策。」寧曰:「今漢祚日危,曹操終必纂竊。荊南之地,操所必爭也。劉表無遠慮,其子又愚劣,不能承業傳基。明公宜 早圖之。若遲,則操先圖之矣。今宜先取 黃祖。祖今年老昏邁,務於貨利;侵刻吏民,人心皆怨;戰具不修,軍無法律。明公若往攻之, 其勢必破。既破祖軍,鼓行而西,據楚關而圖巴蜀,霸業可定也。」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내가 감흥패를 얻었으니 황조를 격파하겠구나!"

여몽에게 명해 감녕을 데려오게 해 만난다. 인사를 마치고 손권이 말한다.

"흥패가 여기로 찾아와서 내 마음을 빼앗았거늘 어찌 원한을 품겠소? 아무 의심도 하지 마시오. 내게 황조를 격파할 계책을 가르쳐주시오."

"지금 한조 漢祚 (한나라의 황위와 국통)가 나날이 기울어 조조가 결국 찬탈할 것입니다. 형남 荊南도 조조가 반드시 쳐들어 오겠지요. 유표는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아들들도 우둔하고 열등하니 기반을 계승하지 못합니다. 명공께서 어서 그곳을 도모하십시오. 지체하면 조조가 먼저 도모합니다. 이제 먼저 황조를 취하십시오. 황조는 늙고 혼미하여 재물에 눈멀어 관리와 백성을 착취하니 모두가 원망합니다. 무기는 수리하지 않고 군대는 기강이 없습니다. 명공께서 쳐들어가시면 그 세력을 깰 것입니다. 황조를 격파한 뒤 북을 울려 서쪽으로 진군해 초관을 장악하고 파촉을 도모하시면 패업을 이루실 겁니다."

孫權曰:「此金玉之論也!」遂命周瑜為大都督,總水陸軍兵;呂蒙為前部先鋒;董襲與甘寧為副將;權自領大軍十萬,征討黃祖。細作 探知,報至江夏。黃祖急聚眾商議,令蘇飛為大將,陳就、鄧龍為先鋒,盡起江夏之兵迎敵。陳就、鄧龍各引一隊艨艟截住沔口,艨艟上 各設強弓硬弩千餘張,將大索繫定艨艟於水面上。東吳兵至,艨艟上鼓響,弓弩齊發,兵不敢進,約退數里水面。甘寧謂董襲曰:「事已 至此,不得不進。」乃選小船百餘隻,每船用精兵五十人。──二十 人撐船,三十人各披衣甲,手執鋼刀,──不避矢石,直至艨艟傍邊 ,砍斷大索,艨艟遂橫。

손권이 말한다.

"이것은 참으로 금옥 같은 이야기요!"

마침내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아 수륙의 군병을 총통하고 여몽을 선봉으로 삼는다. 동습은 감녕과 더불어 부장 副將이 된다. 손권 스스로 십만대군을 거느려 황조를 토벌한다. 세작이 탐지하여 강하에 알린다. 황조가 급히 무리를 모아서 상의한다. 소비를 대장으로, 진취와 등룡을 선봉으로 삼아서 강하병력을 총동원해 대적한다. 진취와 등룡이 몽동 艨艟 (쇠가죽으로 방호하는 싸움배) 선단을 각각 이끌고 면구에 정박하고 몽동마다 강궁과 쇠뇌를 1천여 장씩 배치하고 큰 밧줄로 몽동들을 물 위에 묶어둔다.

동오군이 다다르자 몽동들에서 북소리와 함께 일제히 사격하니 동오군이 진격치 못하고 몇리를 물러나려 한다. 감녕이 동습에게 말한다.

"이렇게 됐으니 진군하지 않을 수 없소."

이에 작은배 1백여 척을 골라서 배마다 정병 50인을 싣는다. 20인은 노를 젓고 30인은 갑옷을 입고 쇠칼을 지니고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몽동선단에 달라붙어 밧줄을 끊으니 몽동들이 뒤엉킨다.

甘寧飛上艨艟,將鄧龍砍死。陳就棄船而走。呂蒙見了,跳下小船,自舉櫓棹,直入船隊,放火燒船。陳就急待上岸,呂蒙捨命趕到跟前 ,當胸一刀砍翻。比及蘇飛引軍於岸上接應時,吳軍一齊上岸,勢不可當。祖軍大敗。蘇飛落荒而走,正遇東吳大將潘璋。兩馬相交,戰 不數合,被璋生擒過去,逕至船中來見孫 權。權命左右以檻車囚之,待活捉了黃祖,一併誅戮;催動三軍,不分晝夜,攻打夏口。正是: 只因不用錦帆賊,至令衝開大索船。

감녕이 몽동 위로 날아올라 등룡을 베어죽인다. 진취가 배를 버리고 달아난다. 여몽이 작은 배로 뛰어내려 스스로 노를 잡고 적군의 선단으로 쳐들어가서 불을 놓아 적선을 불사른다. 진취가 강둑으로 달아나지만 여몽이 죽기살기로 따라붙어 한칼에 가슴을 찔러 고꾸라뜨린다. 소비가 강둑에서 군을 이끌고 맞서지만 동오군이 우르르 상륙하니 막지 못한다. 황조군이 대패하고 소비가 풀숲으로 달아나다가 동오의 대장 반장과 마주친다. 몇합만에 반장이 사로잡아 배 위로 끌고가 손권을 만난다. 손권이 소비를 함거에 가두고 황조를 사로잡으면 함께 처형하려 한다. 삼군을 재촉해 밤낮없이 하구를 공격한다.

황조가 금번적을 쓰지지 않더니
배를 묶은 밧줄을 끊게 만드네

不知黃祖勝負如何,且看下文分解。

황조의 승부가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회에 풀리리라.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