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제108회 정봉이 눈속에서 단도를 들고 분투하고 손준이 연회에서 비책을 쓴다
한편 강유가 달아나고 있는데 사마사가 군을 이끌고 가로막는다. 원래 강유가 옹주를 공격할 때 곽회가 조정에 급보했다. 이에 위나라 임금이 사마의와 상의한 끝에 사마의가 장자 사마사를 보내 병사 5만을 이끌고 옹주로 가서 싸움을 돕게 했다. 사마사는 곽회가 촉나라 군을 격퇴하자 촉나라 군세를 약하다 여겨 도중에 공격했다. 양평관까지 바로 추격하자 강유가 공명에게서 전수 받은 연노법으로 양쪽에 연노 1백여 장을 매복해 쇠뇌1장으로 화살 10 발을 연사한다. 화살은 모두 독화살이다. 양쪽에서 연노로 일제 사격하자 선두 대열에서 사람과 말이 화살에 맞아 죽은 것이 부지기수다. 사마사가 난군 속에서 겨우 목숨을 구해 되돌아간다.
한편 국산의 성 안에서 촉나라 장수 구안은 구원병이 오지 않자 성문을 열고 위나라에 투항한다. 강유가 병사 수만을 잃고 패잔병을 거 느리고 한중으로 돌아가 주둔한다. 사마사는 낙양으로 돌아간다. 가평 3년 가을 8월에 이르러 사마의가 병이 들어 점점 위중해지자 두 아들을 침상으로 불러 부탁한다.
“내가 위나라를 섬긴 지 여러 해이고 관직이 태부에 이르니 인신의 지위로서 극에 달했다. 사람들 모두 내게 다른 뜻이 있다고 의심하니 나는 늘 두려운 마음을 품었다. 내가 죽은 뒤에도 너희 두 사람은 국정을 잘 처리하거라 신중하고 신중할지어다!”
말을 마치고 사망한다. 장자 사마사, 차자 사마소 두 사람이 위나라 임금 조방에게 이를 알린다. 조방이 두터운 예로써 장례를 치르게 한 다. 또한 크게 포상하고 시호를 추증한다. 사마사를 대장군 ‘총령상서기밀대사’로 봉하고 사마소를 ‘표기상장군’으로 봉한다
한편 오나라 임금 손권에게 먼저 태자 손등이 있었는데 서 부인의 소생이다. 그가 오나라 적오 4년에 사망하자 차자 손화를 태자로 세우 니 낭야 왕 부인의 소생이다. 손화가 금 공주와 화목하지 못해 공주가 참소하니 손권이 그를 폐했다. 손화가 시름하고 한탄하다가 죽 었다. 다시 삼자 손량을 태자로 삼으니 바로 반 부인의 소생이다. 이때 육손과 제갈근이 모두 죽고 일체의 크고 작은 사무는 모두 제갈각 에게 맡겨졌다.
태화 원년 가을 8월 초하루에 갑자기 큰 바람이 불고 강과 바다가 범람해 평지가 수심 8척의 물에 잠긴다. 오나라 군주가 그 전에 계속 심어 놓았던 소나무와 잣나무가 모조리 뿌리뽑혀 건업성의 남문 밖까지 날려와서 길 위에 거꾸로 박힌다. 손권이 이 때문에 놀라서 병이 생긴다. 그해 8월 중에 병세가 위중해져 태부 제갈각과 대사마 여대를 침상으로 불러 뒷일을 부탁한다. 부탁을 마치고 훙서( 임금의 죽음 )한다. 재위한 지 24년 나이 71세다. 촉한 연희 15년의 일이다. 후세에 누군가 시를 지었다
자주빛 수염과 파란 눈의 영웅이라 일컬으니
능히 신하들로 하여금 충성을 다하게 만드네
이십사 년 동안 대업을 일으키니
강동에 용과 호랑이가 터를 잡네
손권이 죽자 제갈각이 손량을 황제로 세우고 천하에 크게 사면을 내린다. 연호를 대흥 원년으로 고친다. 손권에게 대황제의 시호를 바치 고 장릉에 안장한다. 재빨리 세작이 이 일을 탐지해 낙양에 들어가 알린다. 사마사가 손권의 사망을 듣고 군대를 일으켜 오나라를 정 벌할 것을 의논한다. 상서 부가가 말한다.
“오나라는 장강이 험준해 선제께서 누차 정벌하셨으나 모두 뜻을 이루지 못하셨습니다. 제각기 변경을 지키는 것을 상책으로 삼는 것 만 못합니다.”
사마사가 말한다.
“하늘의 도는 삼십년에 한번씩 변한다 했소. 어찌 황제들이 ( 삼국에 ) 정립할 수 있겠소? 나는 오나라를 정벌하겠소.”
사마소가 말한다.
“이제 손권이 죽은 지 얼마 안 되고 손량은 어리고 나약하니 이 틈을 타야 하오.”
마침내 정남대장군 왕길에게 명해 병사 십만을 이끌고 동흥을 치게 하고 관구검( 본문의 한자는 모구검이지만 우리나라에는 관구검으 로 알려짐. ‘모’와 ‘관’의 글자 모양이 매우 비슷해 생기는 혼동. )에게 명해 병사 십만을 이끌고 무창을 치게 한다. 3로( 3개 방면 )로 진 발한다. 또한 아우 사마소를 대도독으로 삼아 3로의 군마를 총지휘하게 한다.
이해 겨울 시월에 사마소의 군대가 동오의 변경에 이르러 인마를 주둔하고 사마소가 왕욱, 호준, 관구검을 군막으로 불러들여 토의하며 말한다.
“동오에서 가장 긴요한 곳은 동흥군뿐이오. 이제 그들이 큰 둑을 쌓고 좌우에도 큰 성을 쌓아서 소호의 후면을 치는 것을 방비하고 있 으니 공들께서 신중하게 작전하시오.”
곧 왕길과 관구검에게 명해 각각 병사 1만을 이끌고 좌우에 포진하게 한다. 우선은 진발하지 말고 동흥군을 함락하기를 기다려 그때 일제히 진군하게 한다. 왕길과 관구검 두 사람이 명령을 받고 떠난다. 사마소가 또한 호준을 선봉으로 세우고 3로의 병마를 총지휘해 진군한다. 먼저 부교를 놓아 동흥군의 큰 둑을 점령하려 한다. 좌우의 두 성을 탈취하면 큰 공이 된다. 호준이 군대를 거느리고 부교를 놓 으러 간다.
한편 오나라의 태부 제갈각이 위군이 3로로 나눠 오는 것을 듣고 사람들을 불러모아 상의하니 평북장군 정봉이 말한다
“동흥은 동오의 긴요한 처소이니 만약 잃는다면 곧 남창과 무장이 위태롭습니다.”
제갈각이 말한다
“이 말씀이 내 생각과 같소. 공께서 수병 3천을 거느리고 강물을 따라가시오. 뒤따라 여거, 당자, 유찬에게 각각 보군( 보병 ) 1만을 거느 리고 3로로 나눠 도우러 가라 하겠소. 연주포 소리가 들리거든 일제히 진격하시오. 내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뒤따라 가겠소.”
정봉이 명령을 듣고 즉시 수병 3천을 이끌고 3십 척의 배에 나눠 타고 동흥으로 간다.
한편 호준은 부교를 건너서 둑 위에 군대를 주둔하고 환가와 한종을 보내 두 성을 치게 한다. 왼쪽 성은 오나라 장수 전역이, 오른쪽 성 은 오나라 장수 유략이 지킨다. 이 두 성은 높고 험준한데다 견고해 거세게 공격해도 함락시키지 못한다. 전, 유 두 사람은 위나라 군세 가 큰 것을 보고 감히 나가서 싸우지 못하고 성을 사수한다.
한편, 호준은 서주에 영채를 세운다. 이때 날씨가 몹시 춥고 하늘에서 대설이 내려 호준이 뭇 장수와 성대한 연회를 연다. 그런데 누군가 보고하기를, 강물 위로 3십 척의 배가 다가온다는 것이다. 호준이 영채를 나가서 바라보니 그 배들이 점점 강둑으로 접근하는데, 배마다 약 백 사람이 탔다. 곧 군막으로 들어와 여러 장수에게 이른다.
“고작 3천 인에 불과하니 무엇이 두렵겠소!”
다만 부장에게 명해 계속 초탐하게 하고, 자신은 그대로 음주한다. 정봉이 선단을 1자 형태로 강물 위에 전개하더니 부장들에게 이른 다.
“대장부가 공명을 세우겠다면 바로 오늘이 그 기회요!”
곧 병사들에게 옷과 갑옷을 벗고 투구를 벗은 뒤, 긴 창이나 큰 극도 쓰지 말고 오로지 단도를 휴대하라 한다. 위군이 이를 보고 크게 웃으며 더욱 대비하지 않는다.
갑자기 연주포가 세 차례 울리자 정봉이 칼을 쥐고 앞장서 강둑 위로 한번에 펄쩍 뛰어 오른다. 병사들이 모두 단도를 뽑아들고 정봉을 따라서 강둑을 올라서 위나라 영채로 돌입한다. 위군이 미처 손 쓰지 못하는데 한종이 급히 군막 앞의 대극( 큰 창의 일종 )을 들 고 맞서다가, 깊숙히 침입한 정봉이 휘두른 칼에 베여서 땅에 꼬꾸라진다. 환가가 왼쪽에서 돌아나와 황망히 창을 들고 정봉을 찌르려 하지만 정봉이 창 자루를 낚아채서 막는다. 환가가 창을 버리고 달아나다가 정봉이 던진 칼이 왼쪽 어깨에 명중해 환가가 뒤로 넘어진 다. 정봉이 뒤쫓아서 창으로 찌른다. 오나라 병사 3천이 위나라 영채에서 좌충우돌한다. 호준이 급히 말을 타고 길을 뚫어 달아난다. 위 군이 우루루 부교 위로 몰려가지만 부교는 이미 끊어져 있어 태반이 물에 빠져 죽는다. 눈 위에 죽어 쓰러진 이들이 부지기수다. 수레, 말, 무기 등을 모조리 오군이 노획한다. 사마소, 왕길, 관구검이 동흥의 패전을 듣고 군대를 끌고 퇴각한다.
한편, 제갈각이 군을 이끌고 동흥에 이르러 군대를 거두어 호궤한 뒤 여러 장수를 불러모아 말한다.
“사마소가 패전해 북쪽으로 돌아가니 이제야말로 이 기세를 타고 중원으로 진격할 좋은 때요.”
곧 사람을 촉나라로 보내 강유에게 진군해 북쪽을 공격하라 요청한다. 그리해 천하를 같이 나눠갖자는 것이다. 동시에 2십만 대군을 일으켜 중원을 정벌하러 간다.
출발할 때에 갑자기 한줄기 하얀 기운이 땅에서 일어나서 3군( 전체 군대 )을 차단하니 옆 사람의 얼굴도 못 알아본다. 장연이 말한다.
“이 기운은 백홍白虹( 햇무리 )인데 군대를 잃을 징조입니다. 태부께서 조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위나라 정벌은 불가합니다.”
제갈각이 크게 노해 말한다.
“네가 감히 불리한 말을 내뱉어 우리 군심을 흐트리냐!”
무사들에게 호통쳐서 처형하라 한다. 모두가 그의 목숨을 살려달라 하니 제갈각이 장연을 서인으로 폐하고 병사들을 전진하라 더욱 다 그친다. 정봉이 말한다.
“위나라에서 신성이 가장 중요한 관문이니 이 성을 선취하면 사마소의 간담이 깨질 것입니다.”
제갈각이 크게 기뻐하며 병사들을 재촉해 신성으로 직행한다. 신성을 지키는 아문장군 장특은 오나라 대군이 오자 성문을 닫고 굳게 지킨다. 제갈각이 병사들에게 사면을 포위하라 한다. 재빨리 유성마( ‘별똥처럼 빠르게 달리는 말’이란 뜻으로, 고대의 통신병을 지칭 )가 낙양으로 보고하러 달려간다. 주부 우송이 사마사에게 고한다.
“이제 제갈각이 신성을 포위했으나 아직은 싸워서는 안 됩니다. 오군이 멀리서 오니 사람은 많고 양식은 적어 양식이 바닥나면 저절로 물러날 것입니다. 그들이 퇴각하기를 기다린 뒤 공격하면 완전한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그러나 촉군이 국경을 침범하는 것은 방비해야만 합니다.”
사마사가 그 말을 받아들여 곧 사마소는 곽회를 도와 촉나라의 강유를 막게 하고 관구검과 호준은 오나라의 군대를 막게 한다.
한편, 제갈각은 몇달에 걸쳐 신성을 공격해도 함락하지 못하자, 뭇 장수에게 명해 힘을 모아 신성을 치라 하고, 태만한 이는 당장 참하 겠다 한다. 이에 여러 장수가 힘을 내어 공격하니 신성의 동북쪽이 곧 함락되려 한다. 장특이 성 안에서 꾀를 내어 언변이 뛰어난 사람을 시켜 문서들을 가지고 오나라 진영으로 가서 제갈각을 만나서 고하게 한다.
“위나라의 법에 따르면, 적인들이 성을 포위했을 때 성을 지키는 장수가 1백 일을 굳게 지키고 아무 구원병이 오지 않아서 성을 나가 적 에게 항복하면, 그 가족에게 죄를 연좌하지 않습니다. 이제 장군께서 성을 포위한 지 벌써 9십여 일이니, 바라옵건대 며칠만 사정을 봐주 시면 저희 주장께서 병사와 백성을 모두 이끌고 성을 나와 투항하겠습니다. 이제 먼저 이 문서들을 바칩니다.”
제갈각이 이를 깊이 믿어 군대를 거둬들이고 성을 공격하지 않는다. 알고보니, 장특이 완병지계 ( 적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계책 )로써 속 여서 오군을 물러나게 만든 것이다. 곧 성 안의 가옥의 일부를 떼어내어 성벽의 파손된 부분을 보수하더니 성 위로 올라가 크게 꾸짖는다.
“우리 성 안에 아직도 반년 치 식량이 있거늘 어찌 배반해 오나라의 개가 되겠냐! 끝까지 싸우는데 이제 거칠 것이 없구나!”
제갈각이 크게 노해 병사들을 다그쳐 공성한다. 성 아래로 어지러이 화살이 날아드는데 제갈각의 얼굴에 한 발이 명중해 말에서 꼬꾸라져 떨어진다. 여러 장수가 구원해 일으켜 영채로 돌아가지만 금창( 무기에 의해 생긴 상처 )이 터진다. 병사들이 모두 아무 싸울 마음이 없다. 게다가 날씨가 몹시 더워 병사들에게 병이 많다. 제갈각이 금창이 조금 낫자 병사들을 다그쳐 공성하려 한다. 영채를 관리하는 벼슬아치가 고한다.
“사람들마다 모두 병이 들었는데 어찌 능히 싸우겠습니까?”
제갈각이 크게 노해 말한다.
“병사들이 병 들었다고 다시 입에 올리는 이는 처형하겠다!”
뭇 군병가 이를 듣고 도주하는 이가 무수하다.
그런데 도독 채림이 휘하의 군을 이끌고 위나라로 귀순한다. 제갈각이 크게 놀라 직접 말을 타고 각 영채를 둘러보니 과연 병사들의 얼굴색이 누렇게 떠 있고 사람마다 병색이 완연하다. 마침내 군을 이끌고 오나라로 돌아간다. 재빨리 세작이 관구검에게 알린다. 제갈각이 몹시 부끄러워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는다. 오나라 군주 손량이 직접 그 집으로 거둥해 문안하니 문무 관료가 모두 와서 알현한다. 제갈각은 사람들의 의논을 두려워해 먼저 뭇 관리의 과실을 캐내어 과실이 가벼우면 변방으로 유배하고 무거우면 목을 잘라 뭇 사람에게 보인다. 이에 내외 관료들이 벌벌 떨지 않는 이가 없다. 또한 심복 장수 장약과 주은을 시켜 어림군을 통제하게 해 아조 牙爪( 어금니와 발톱 / 용감한 장수 )로 삼는다.
한편, 손준은 자원이라 불리고 손견의 아우 손정의 증손자 손공의 아들이다. 손권이 생전에 그를 몹시 아껴 어림군마를 장악하게 했 었다. 이제 듣자니 제갈각이 장약과 주은더러 어림군을 장악하게 해 그의 권한을 빼앗아 마음 속으로 크게 노한다. 태상경 등윤이 평 소에 제갈각과 사이가 벌어져 있었는데 그 틈을 타서 손준에게 말한다.
“제갈각이 권력을 전횡해 방자하고 모질어 공경들을 살해하니 장차 신하답지 못한 마음을 품을 것이오. 공께서 종실에 속하셨는데 어 찌 조속히 그를 도모하지 않으시오?”
“내가 그런 마음을 품은 지 오래요. 이제 당장 천자께 상주해 교지를 내려 그를 주살하라 하겠소.”
이에 손준과 등윤이 오나라 군주 손량을 만나러 들어가 몰래 그 일을 상주한다. 손량이 말한다.
“짐이 그 사람을 볼 때도 몹시 공포스럽소. 늘 그를 제거할 마음을 품고 있으나 아직 좋은 기회를 잡지 못했소. 이제 경들이 참으로 충위 를 가졌으니 은밀히 그를 도모하시오.”
등윤이 말한다.
“폐하께서 자리를 마련해 제갈각을 부르고 몰래 무사들을 장막 뒤에 두십시오. 술잔을 던지는 것을 신호로 그 자리에서 죽여서 후환을 근절하소서.”
손량이 이를 따른다.
한편, 제갈각은 패전해 조정을 돌아온 뒤 병을 핑계로 집안에 머무는데 심신이 황홀恍惚( 정신이 멍함 / 흐릿함 )하다. 어느 날, 중당을 마침 나서는데 한 사람이 상복을 입고 들어온다. 제갈각이 그에게 호통을 치니 그가 크게 놀라 어쩔 줄 모른다 제갈각이 그를 붙잡아 고 문하니 그가 고한다.
“저는 이제 막 부친상을 당해 성으로 들어가 중을 불러 명복을 빌려 하였습니다. 처음에 이곳이 절인 줄 알고 들어온 것이지 태부의 부 중일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갈각이 노해 문을 지키는 병사를 불러 물으니 그 병사가 고한다.
“저를 비롯해 수십 인이 모두 문을 지키는 일을 맡아 여태 잠시도 자리를 비운 적이 없었지만 한 사람도 들어오는 것을 못 보았습니다. ”
제갈각이 노해 모조리 처형한다. 이날 밤 제갈각이 잠자리에 누워도 불안한데 홀연히 정당正堂( 집의 본채 ) 안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들린다. 제갈각이 직접 나가서 바라보니 대들보가 두동강났다. 제갈각이 놀라서 침실로 돌아오니 갑가기 한바탕 음산한 바람이 불어오 면서 그가 죽인 성문 수비 병사들 수십 인이 베옷을 입고 그들의 잘린 머리를 손이 들고 목숨을 살려내라 한다. 제갈각이 놀라서 바닥으 로 쓰러졌다가 한참 지나서야 깨어난다. 다음날 이른 아침, 얼굴을 씻는데 물에서 피비린 내가 몹시 난다. 제갈각이 몸종을 꾸짖어 연거 푸 물동이를 수십 차례 바꾸지만 모두 다름없이 냄새가 난다.
제갈각이 놀라고 의심하고 있는데 천자의 사자가 와서 천자가 태부 제갈각을 연회에 부른다 전한다. 제갈각이 수레를 준비하라 명해 부중을 나가려 하는 참에 누런 개 한 마리가 나타나 옷을 물고 앵앵 소리를 내니 마치 곡하는 듯하다. 제갈각이 노해 말한다.
“이놈의 개가 나를 놀리냐?”
좌우의 사람들을 꾸짖어 개를 내쫓더니 마침내 수레를 타고 부중을 나간다. 그런데 몇 걸음 못 가서 수레 앞에 한줄기 하얀 기운이 땅에 서 솟아나와 마치 하얀 비단이 하늘을 찌르는 듯이 날아간다. 제갈각이 몹시 놀라고 괴이하게 여긴다. 심복 장수 장약이 수레 앞으로 나 와서 은밀히 고한다.
“오늘 궁중에서 열리는 연회가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아직 알 수 없으니 주공께서 함부로 들어가지 마십시오.”
제갈각이 이 말을 듣고 수레를 돌리라 명하는데 열 걸음 남짓을 못 가서 손준과 등윤이 말을 타고 수레 앞으로 와서 말한다.
“태부께서 무슨 까닭으로 돌아가시오?”
“갑자기 복통이 생겨서 천자를 알현할 수 없겠소.”
등윤이 말한다.
“조정에서는 태부께서 전장에서 돌아온 뒤 여태 얼굴을 본 적이 없어 일부러 연회를 열어 초대하고 아울러 대사를 의논하러 한 것이오. 태부께서 좀 불편하시더라도 참고 함께 갑시다.”
제갈각이 그 말을 따라 마침내 손준 등윤과 함께 궁궐로 들어가고 장약도 따라 들어간다. 제갈각이 오나라 군주 손량을 만나 인사를 마 치고 자리로 가서 앉는다. 손량이 술을 권하자 제갈각이 의심해 사양한다.
“병든 몸이라 술을 견디지 못합니다.”
손준이 말한다.
“태부의 부중에서 날마다 복용하는 약주를 가져다가 마시면 되지 않겠소?”
“그러면 되겠소.”
곧 종인을 부중으로 돌려보내 직접 담근 약주를 가져오니 제갈각이 비로소 방심하고 마신다
술잔이 몇차례 돌자 오나라 군주 손량은 일을 핑계로 먼저 일어난다. 손준은 전각을 내려가 긴 옷을 벗고 짧은 옷으로 갈아입고 그 안에 갑옷을 두르고 손에 날카로운 칼을 들고 전각을 올라가 크게 외친다.
“천자께서 역적을 주살하라 조서를 내리셨다!”
제갈각이 크게 놀라 술잔을 바닥에 던지고 검을 뽑아 맞서려 하지만 머리가 벌써 잘려 바닥에 떨어진다. 손준이 제갈각을 참하는 것을 보고 장약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든다. 손준이 민첩하게 칼끝을 피하지만 왼쪽 손가락을 다친다. 손준이 몸을 돌려 한칼에 장약의 오른쪽 어깨를 벤다. 무사들이 우루루 몰려나와 장약을 베어 넘어뜨려 조각내어 다진고기처럼 만든다. 손준이 무사들을 시켜 제갈각의 가족을 잡아들이는 한편, 사람들을 시켜 장약과 제갈각의 시신을 돗자리에 둘둘 말아서 작은 수레에 싣고 나가 남문 밖 석자강石子崗의 어느 버 려진 무덤 구덩이 속에 버리게 한다.
한편 제갈각의 처가 방 안에 있는데 심신이 어지럽고 움직임이 편치 못하다. 갑자기 여종 하나가 방으로 들어오니 제갈각의 처가 묻는다 .
“네 온몸에서 어찌 피비린 내가 나냐?”
그 여종이 돌연 노려보고 이를 갈며 몸을 날려 뛰어올라 머리를 기둥에 부딪혀 절규한다.
“나는 바로 제갈각이오! 간사한 역적 손준에게 모살 당했소!”
제갈각의 온 집안의 남녀노소가 놀라서 어쩔 줄 모르며 목놓아 슬피 운다. 잠시 뒤 병사들이 몰려와 저택을 포위하고 온 집안의 남녀노 소를 모두 포박해 저자거리로 끌고가서 참수한다. 이때가 오나라 건흥 2년 겨울 시월이다. 지난날 제갈근은 생전에 제갈각이 총명하 고 남들보다 몹시 뛰어나자 탄식했다.
“이 아이는 집안을 보전할 인물은 못 되겠구나!”
또한 위나라 광록대부 장집이 일찍이 사마사를 만나 말했다.
“제갈각은 머지않아 죽게 될 것입니다!”
사마사가 그 까닭을 물으니 장집이 말했다.
“위세가 그 주공을 뒤흔드는데 어찌 오래 가겠습니까?”
한편 손준이 제갈각을 죽이자 오나라 군주 손량이 손준을 ‘승상 대장군 부춘후’로 봉해 내외의 병사들을 총지휘하게 한다. 이로부터 권 력이 모두 손준에게 돌아간다. 한편, 강유는 성도에서 제갈각의 서신을 접하자 오나라를 도와서 위나라를 정벌하려 한다. 곧 조정으로 들어가 후주에게 다시 대군을 일으켜 북쪽으로 중원을 정벌할 것을 주청한다.
첫째 번에 출병해 공적을 세우지 못하니
둘째 번에 역적을 토벌해 공을 이루려 하네
승부가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