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제4회 동탁이 황제를 폐하여 진류왕을 세우고 조맹덕이 역적을 죽이려다 도리어 칼만 바친다
동탁이 원소를 죽이려 하자 이유가 제지한다.
"대사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는데 함부로 죽일 수 없지요."
원소가 보검을 쥔 채 관리들에게 작별하고 나가 부절을 동문에 걸어놓고 기주로 달아난다. 동탁이 태부 원외에게 말한다.
"자네 조카가 무례하지만 네 얼굴을 봐서 잠시 용서하지. 자네는 폐립을 어찌 생각해?"
"태위께서 말씀하신 바 옳습니다요."
동탁이 말한다.
"감히 대의를 거스르는 자 군법으로 처단하겠다!"
신하들 두려워 떨며 입 모아 말한다.
"존엄한 명령 모두 받들겠습니다."
연회가 끝나자 동탁이 시중 주비와 교위 오경에게 묻는다.
"원소가 이렇게 가버렸는데 어쩌지?"
주비 답한다.
"원소가 크게 노해 가버렸지만 서둘러 회유하면 형세를 바꿀 수 있지요. 원씨 가문이 4대에 걸쳐서 은혜를 베풀고 문하생으로 벼슬한 자 천하에 두루 있습니다. 혹시라도 호걸들을 거둬고 문도들를 모은다면 이참에 영웅이 일어나 산동은 공께서도 어쩔 수 없지요. 차라리 사면하고 일개 고을을 다스리게 하는 것만 못해요 사면하면 원소는 기뻐할 테고 우리는 근심이 없어져요."
오경이 말한다.
"원소는 꾀를 세우는 것은 좋아해도 결단치 못하니 걱정할 것이 못 돼요. 참으로 일개 고을을 줘서 민심을 수습하는 것만 못하지요."
동탁이 옳다 여기고 그날 사자를 보내 원소를 발해태수로 임명한다.
구월 초하루 황제를 가덕전으로 모시고 문무대신을 크게 불러모은다. 동탁이 손에 칼을 뽑아 쥔 채 사람들에게 말한다.
"천자가 어리석고 나약해 천하 주인이 되기에 참으로 모자라요. 오늘 책문을 하나 내어 읽어서 선포하겠소."
이유에게 책문을 읽힌다.
"효령황제 일찍이 신민을 버리고 붕어하셔 금상 황제가 대를 잇자 해내海內(천하) 백성이 기대해 마지않았습니다. 그러나 황제는 천성이 경박하고 위의가 불경스러운데다 효령황제의 상을 치름도 태만했습니다. 황제의 부덕이 이렇게 커서 대위를 더럽혔습니다. 황태후도 국모 자질이 없는데다가 정사를 관여하며 황란을 일으켰습니다. 영락태후께서 갑자기 돌아가시자 누구나 황태후를 의심했습니다. 삼강지도와 천지기강 어찌 궁궐에 있다 하겠습니까? 진류왕 협 전하는 성덕이 위대하고 법도가 숙연하고 상을 치루는데 애도를 다하고 삿된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몸을 드러내지 않아도 아름다움을 천하가 다 들었습니다. 마땅히 홍업을 계승해 만세를 이어야 합니다. 이제 황제를 폐해 홍농왕으로 하고 황태후는 섭정을 그만둬야 합니다. 진류왕 전하께서 황제로 즉위하셔 천명을 받드시고 민심을 따르셔 만백성의 소망을 들어주소서!"
이유가 책문을 다 읽자 동탁이 좌우에 호통쳐 황제를 전각 아래 끌어내린다. 북면해 무릎 꿇고 스스로 신하라 일컫고 명령을 받들게 한다. 하 태후도 옷을 벗겨 칙서를 기다리게 하니 황제와 태후 함께 목놓아 구슬피 운다.신하 모두 비참해한다. 이때 섬돌 아래 어느 대신이 분노를 못 이겨 큰소리로 외친다.
"역신 동탁아! 감히 하늘을 속여! 내 목에 흐르는 피로 땅을 적셔야겠구나!"
그가 상아로 만든 서판을 동탁에게 던져서 직격한다. 동탁이 대로해 무사를 시켜 잡아내니 그는 상서 정관이다. 동탁이 그를 끌어내 처형케 한다. 정관이 끌려가면서도 욕을 멈추지 않고 죽는 순간도 낯빛이 바뀌지 않는다. 동탁이 진류왕에게 전각에 오르도록 청하고 신하들이 하례한다. 동탁이 하태후, 홍농왕(소제), 왕비 당씨를 영안궁에 유폐하고 궁문을 봉쇄해 신하의 출입을 엄 금한다. 가련한 소제는 4월에 즉위해 9월에 폐위된다. 동탁이 옹립한 진류왕 협은 '자'가 '백화'이고 영제의 둘째 아들이니 바로 '헌제 '이고 당시 나이 아홉 살이다. 초평 원년으로 개원한다.
동탁은 상국이 되고, 황제를 알현 시 이름을 고하지 않고, 황제 앞에서도 종종걸음을 하지 않고, 황제를 만날 때도 칼으 차고 신을 신은 채 황제를 만날 수 있는 세가지 특권을 누리니 위세가 비할 데 없다. 이유가 동탁에게 권해 명사를 발탁하고 등용해 인망을 얻으라 한다. 채옹을 천거하니 동탁이 받아들인다. 채옹이 응하지 않자 동탁이 노해 사람을 보내 이른다.
"오지 않으면 멸족하겠어."
채옹이 두려워 명령을 응해 온다. 동탁이 그를 보고 크게 기뻐해 한달간 세번 벼슬을 바꿔가며 시중에 임명하여 친후를 몹시 드러낸다.
한편 소제, 하 태후, 당비(왕비 당 씨)는 영안궁에 갇혀 의복과 음식이 점점 모자라고 소제는 눈물 마를 날 없다. 하루는 제비 한 쌍 뜰에 날아들자 소제가 시 한 수 읊는다.
새싹 푸르고 안개 짙은데 제비 짝지어 나네
한 줄기 푸른 낙수 바라보며 길손은 그리워하니
저멀리 푸른 구름 깊은 곳 내 옛 궁전이라
누가 충의를 받들어 내 가슴 원한 씻어줄까!
“汝可先飲!”何太后大罵何進無謀,引賊入京,致有今日之禍。儒催逼帝,帝曰:“容我與太后作別。”乃大慟而作歌,其歌曰:
동탁이 당시 사람을 시켜 늘 엿듣게 하다가 그날 이를 듣고 말한다.
"원망해 이 시를 지었으니 죽일 명분이 생겼어."
이유에게 무사 열 사람과 함께 입궁해 소제를 시해하게 한다. 소제가 하 태후와 당비 와 함께 누각 위에 있다 이유가 온 것을 궁녀가 알 리자 소제가 크게 놀란다. 이유가 독주를 줘 소제가 까닭을 물으니 이유가 말한다.
"봄 기운이 화창하다고 동 상국께서 특별히 수주壽酒(생일이나 장수를 축하하는 술)를 내리셨네요."
하 태후 나선다.
"수주라니 네가 먼저 마셔라."
이유 노한다.
"네가 못 마시겠다고?"
좌우에게 단도와 흰 명주실을 가져오게 한다.
"수주를 못 마시겠다면 두 가지 가운데 골라라."
당비 무릎 꿇고 빈다.
"소첩, 폐하 대신 마실 테니 모자 목숨을 살려주세요."
이유가 꾸짖는다.
"네가 누군데 왕 대신 죽어?"
술을 태후에게 주며 말한다.
"네가 먼저 마셔라."
하 태후가 하진을 크게 저주하며 그가 무모하게 도적을 서울로 불러 오늘의 화를 불렀다 한다. 이유가 소제를 거듭 핍박하자 소제가 말 한다.
"나와 태후가 작별 인사나 나누게 해주오."
크게 통곡하며 노래를 짓는다.
천지 뒤바뀌니 일월 뒤집히구나
만승 버리고 울타리에 갇히구나
신하 핍박하니 죽을까 훌쩍거리네
대세 정해졌는데 헛된 눈물 흐르네
당비도 노래를 지어서 부른다.
하늘 무너지려 하니 땅도 무너지구나
황제 여인이 되니 목숨도 여의치 않네
생사 갈라져서 여기서 끝나는구나
어찌해 화를 불렀는지 마음 아프네
노래 마치고 서로 안고 통곡하니 이유가 꾸짖는다.
"동 상국께서 목빠지게 보고를 기다리는데 질질 끌구나. 누가 구해주기라도 바라냐?"
태후 크게 욕한다.
"동탁 도적놈이 우리 모자를 핍박하니 하늘이 돕지 않으리라! 너희도 악행을 도우니 반드시 멸족될 것이야!"
이유가 대로해 두 손으로 태후를 끌고가 누각 밑으로 떨어뜨리고 무사를 시켜서 당비를 목졸라 죽이고 억지로 독주를 소제 입에 들이부어 시해한다. 이유가 동탁에게 돌아가 보고하자 동탁이 성밖에 파묻게 한다. 이때부터 동탁이 밤마다 입궁해 궁녀를 간음하고 용상에 누워잔다.
성밖을 나간 동탁의 행렬이 양성에 당도한 적이 있었다. 마침 2월이라 촌민들이 사새 社賽(토지 신을 기리는 축제)를 행하고자 남녀 모두 모였는데 동탁이 병사들로 에워싸고 모조리 죽인다. 부녀자와 재물을 약탈해 수레 위에 싣고 베어낸 백성의 머리 천여 개를 수레에 달아 수레가 꼬리에 꼬리를 문 채 서울로 돌아온다. 도적을 무찔러 대승을 거두었다고 떠들고 성밖에 백성들의 머리를 쌓아 불태우고 부녀자와 재물은 병사들에게 나눠준다.
월기교위 오부 '맹유'는 동탁의 잔인하고 흉포함을 보고 분노와 원한이 가라앉지 않았다. 조복 속에 작은 갑옷을 받쳐입고 단도를 숨겨 죽일 기회를 엿본다. 어느날 동탁이 입조하자 오부가 전각 아래에서 달려들어 단도를 뽑아 동탁을 찌른다. 동탁의 힘이 대단해 양손으로 받아내고 여포가 뛰어들어 오부를 넘어뜨린다. 동탁이 묻는다.
"누가 시켜 반역하냐?"
오부가 눈을 부릅뜨고 크게 소리지른다.
"네가 내 임금 아니고 내가 네 신하 아닌데 어찌 반역이냐? 네 죄 하늘까지 가득하니 누구나 네놈을 죽이고 싶어할 따름이다! 네놈을 거 열형에 처해 천하에 보답하지 못함이 한스러울 뿐이구나!"
동탁이 대로해 오부를 끌고가 토막내 죽이라 명한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오부가 욕을 멈추지 않는다. 동탁이 이때부터 출입할 때마다 갑사를 대동해 호위한다.
이때 발해에 머물던 원소가 동탁이 권력을 농단함을 듣고 왕윤에게 사람을 보내 서찰을 전하니 대략 이렇다.
'역적 동탁 하늘을 속이고 임금을 폐하니 사람으로 차마 언급하지 못할 짓이네요. 그러나 공께서 발호를 방치하고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하듯하니 어찌 나라에 보답하는 충신이라 하지요? 저는 모병하고 훈련해 왕실을 청소하려 하지만 아직은 가벼이 움직일 수 없네요. 공에게 마음이 있다면 기회를 봐 도모하세요. 제게 시킬 일이 있다면 즉시 명을 받들지요.'
왕윤이 서찰을 받고 골똘히 생각하지만 아무 계책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날 궁궐에서 옛 신하 모두 한곳에 모이자 왕윤이 말한다.
"오늘이 이 늙은이 생일이오. 저녁에 모시고 술이나 한잔 했으면 하오."
신하들 입 모아 답한다.
"반드시 가서 축하 드려야지요."
그날밤 왕윤이 후당에서 연회를 베풀어 공경대신 모두 왔다. 술이 몇순 돌자 왕윤이 갑자기 얼굴 가리고 우니 관리들 놀라 묻는다.
"사도께서 생일에 어찌 우십니까?"
"사실 오늘 생일이 아니오. 여러분과 술자리를 하나 가져도 동탁이 의심할까 두려워 핑계 댔을 뿐이오. 동탁이 임금을 업신여겨 권력을 농단하니 종묘사직 아침저녁을 기약하기 어렵소. 예전 고조황제께서 진나라를 토벌하고 초나라를 멸해 천하 통일하였소. 오늘까지 이 어지던 한나라가 동탁 손에 망할줄 누가 알았겠소. 이것이 흐느끼는 이유요."
이 말에 관리 모두 흐느낀다.
그런데 좌중 한 사람 손뼉 치고 크게 웃으며 말한다.
"조정 가득한 공경대신들께서 밤새 울다 아침 되고 다시 종일 울다 밤이 되면 동탁이 죽기라도 해요?"
왕윤이 바라보니 효기교위 조조다. 왕윤 노한다.
"자네 조상도 한나라 녹을 먹었는데 이제 나라에 보답할 생각을 않고 도리어 웃는가?"
"제가 다른 일로 웃은 것이 아니라 이 많은 사람이 동탁을 죽일 아무 계책도 내지 못하므로 웃었네요. 제가 비록 재주 없으나 동탁 머리를 잘라 서울 성문에 매달아 천하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왕윤이 자리를 옮겨 묻는다.
"맹덕에게 어떤 고견이 있는가?"
"요새 제 몸을 굽혀서 동탁을 받듦은 기회를 봐 도모하기 위한 것. 이제 동탁이 제법 믿으므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듣자니 사도님께 칠보도七寶刀 한 자루 있다지요. 제게 내어주시면 승상부에 들어가 그를 찌르고 비록 제 몸이 죽더라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맹덕은 과연 뜻있는 사람이구먼. 천하에 큰 다행이네!"
몸소 술을 내어 조조에게 권하자 조조가 술을 부어 맹세한다. 왕윤이 칠보도를 꺼내 준다. 조조가 칼을 넣고 술 마시고 일어나 관리들에게 작별하고 떠나니 관리들도 한번 앉았다가 결국 해산한다.
이튿날 조조가 칠보도를 지니고 승상부에 가서 묻는다.
"승상은 어디 계신가?"
종자가 말한다.
"소각 小閣에 계셔요."
조조가 들어가니 동탁이 침대에 앉았고 여포는 옆에 지켜섰다. 동탁이 말한다.
"맹덕 어찌 늦었어?"
"말이 허약해서 늦었네요."
동탁이 여포를 돌아보며 말한다.
"내게 서량에서 가져온 좋은 말이 있으니 봉선(여포)이가 가서 하나를 골라 맹덕에게 줘라."
여포가 명령을 따라 나가니 조조 생각한다.
'도적놈을 죽일 좋은 기회네!'
칼을 뽑아 찌르려 하나 동탁이 힘이 센 것을 두려워해 함부로 손쓰지 못한다.
동탁이 비대해 오래 앉기 힘들므로 몸을 눕혀 얼굴을 안쪽으로 돌린다. 조조 다시 생각한다.
'이 도적놈도 끝장이군!'
서둘러 칠보도를 뽑아 쥐고 찌르려는데 뜻밖에도 동탁이 벽의 옷거울을 올려보다가 거울에 비친 조조를 보니 등 뒤에서 칼을 뽑아들고 있지 않은가! 급히 몸을 돌려 묻는다.
"맹덕 뭐하나?"
이때 여포가 말을 끌고 밖에서 들어온다. 조조가 황급히 칠보도를 무릎 아래 놓으며 말한다.
"제가 보도를 하나 가졌기에 상국께 바치려 합니다."
동탁이 살펴보니 칼 길이 한 척 정도, 칠보를 아로새기고 칼끝이 매우 날카로워 과연 보도다. 여포에게 줘서 거두라고 하니 조조가 칼집을 풀어 여포에게 준다. 여포가 조조를 데리고 나가 말을 보여주자 조조가 사례하며 말한다.
"한번 말을 몰아보고 싶네요."
동탁이 안장과 고삐를 갖추게 한다. 조조가 말을 끌고 승상부를 나와 채찍을 때려 동남쪽으로 달린다. 여포가 동탁에게 말한다.
"제가 들어오니 조조가 칼로 찌를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들킬 것 같자 칼을 바친 듯합니다."
"나도 그런 의심이 드는구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이유가 오므로 동탁이 알리자 이유가 말한다.
"조조가 서울에 처자도 없이 홀로 여관에 머물지요. 이제 사람을 보내 부르세요. 아무 의혹이 없다면 올 테니 칼을 바치려 한 것이 맞고 핑계를 대고 오지 않는다면 찌르려 한 것이니 붙잡아 심문하세요."
동탁이 그렇다 여기고 옥졸 네 사람에게 조조를 불러오게 하지만 한참 뒤 돌아와 보고한다.
"조조는 여관으로 오지 않고 말 타고 동문으로 나갔다 합니다. 문지기가 물으니 조조는 ‘승상이 급한 공무로 나를 보내신다'라 답하고 말을 몰았다 합니다."
이유가 말한다.
"조조 놈이 허겁지겁 쥐새끼처럼 달아났네요. 찌르려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동탁이 크게 노한다.
"내 이렇게 중용하는데 도리어 나를 해치냐!"
이유가 말한다.
"필시 공모자가 있겠네요. 조조를 붙잡아야 알 수 있지요."
동탁이 조조를 수배하는 문서를 사방으로 보내고 조조 얼굴을 그린 것을 돌려 잡아들이게 다그친다. 잡아오는 자에게 천금을 포상하고 일만 호의 열후에 봉하겠다 하고 숨기는 자는 조조와 같은 죄로 다스리겠다 한다.
한편, 조조는 성밖으로 달아나 곧장 초군으로 향한다. 그러나 중모현에서 관문의 병사에게 잡혀 현령 앞으로 끌려간다. 조조가 말한다.
"저는 떠돌이 장사꾼으로 복성(두 글자로 이뤄진 성씨)이 황보입니다요."
현령이 자세히 살피더니 잠시 신음하고 말한다.
"내가 예전 낙양에서 벼슬을 구해봐서 네가 조조란 것을 알았어. 어찌 속이려 들어! 끌고가 하옥하고 내일 서울로 보내 포상을 청하겠구나."
관문의 병사는 술과 밥을 받고 물러간다. 그날밤 현령이 측근을 시켜 몰래 조조를 끄집어낸다. 그를 후원으로 데려가 심문한다.
"듣자니 승상이 너를 박대하지 않았다는데 무슨 까닭에 화를 자초하지?"
"제비와 참새가 어찌 기러기와 고니의 큰뜻을 알겠어! 이미 사로잡았으니 끌고가 상이나 받지 어찌 이렇게 묻는 말이 많아!"
현령이 좌우를 물리치고 조조에게 말한다.
"나를 업신여기지 마시오. 나도 평범한 관리가 아니라 다만 제 주인을 못 만났을 뿐이라오."
조조가 말한다.
"내 조상은 대대로 한나라 녹을 먹었습니다. 나라에 보답할 생각 없다면 금수와 무엇이 다르지요? 내 몸을 굽혀 동탁을 섬김은 기회를 봐서 그놈을 도모해 나라를 위하고 역적을 없애려 했던 것뿐이라오. 이제 성공하지 못한 것도 하늘의 뜻이구나!"
현령이 말한다.
"맹덕께서 이제 어디로 가려 하지요?"
"귀향해 천자의 조서를 빌어서 천하의 제후를 불러모아 함께 병력을 일으켜 동탁을 같이 죽이는 것이 소원이라오."
현령이 듣더니 몸소 포박을 풀고 부축해 상석에 모시고 두 번 절한다.
"공께서 참으로 천하 충의지사요!"
조조도 절하며 성명을 물으니 현령이 말한다.
"저는 진궁 '공태'요. 노모와 처자식 모두 동군에 있습니다. 이제 공의 충의에 감동해 벼슬을 버리고 따라가고 싶군요."
조조가 몹시 기뻐한다. 그날 밤 진궁은 노자를 마련해 조조와 함께 옷을 갈아입고 각각 등에 칼 한 자루 매고 말 타고 고향으로 떠난다.
길 가다 사흘째 이르러 성고 지방 다다르니 벌써 저녁이다. 조조가 채찍으로 숲속 깊은 데 가리키며 진궁에게 말한다.
"여기 사시는 분은 이름이 여백사인데 부친과 의형제요. 들어가 집안 소식 여쭈고 하룻밤 잘까 하는데 어때요?"
"좋고 말고요."
두사람이 집 앞에서 말에서 내려 들어가 여백사를 만나니 그가 말한다.
"듣자니 조정에서 너를 수배해 어서 붙잡으라 한다더라. 네 부친께서 벌써 진류로 피하셨단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어?"
조조가 그간의 일을 고한다.
"진 현령 아니었으면 이 몸은 벌써 가루가 되고 뼈가 부서졌네요."
여백사가 진궁에게 절한다.
"제 조카가 선생을 못 만났다면 조 씨가 멸족될 뻔했군요. 선생께서 부디 편히 쉬고 오늘밤 누추한 집이나마 하룻밤 묵으세요."
그가 말을 마치고 일어나 안으로 들어간다. 한참 뒤 나와 진궁에게 말한다.
"이 늙은이 집에 좋은 술이 없으니 서촌의 술장수를 찾아가 한 통 사올 테니까 기다려주세요."
말을 마치고 바쁘게 나귀를 타고 떠난다.
조조와 진궁이 오래 앉아 있는데 집 뒤에서 칼 가는 소리가 들려 조조가 말한다.
"여백사가 지친至親(부자, 형제처럼 아주 가까운 친척 )은 아닌데 아까 떠난 것도 의심스럽군요. 무슨 일인가엿들어봐야겠지요."
두사람이 몰래 초당 뒤로 들어가 들으니 누군가 이리 말한다.
"묶어 죽이는 게 어때?"
조조가 말한다.
"틀림없군요! 지금 먼저 손쓰지 않으면 반드시 잡혀 죽어요."
진궁과 함께 칼 뽑고 들어가 남녀 가리지 않고 모조리 잇달아 여덟을 죽인다. 그런데 부엌에 잡아죽이려고 돼지 한 마리를 묶어 놓은 것 이 보인다. 진궁이 말한다.
"맹덕이 의심 많은 바람에 좋은 사람들을 잘못 죽였어요!"
서둘러 집을 나와 말 타고 이 리쯤 가는데 여백사가 나귀에 술 두병 달고 과일을 들고 오다 부른다.
"조카와 선생께서 어찌 이리 빨리 가세요?"
조조가 말했다.
"죄인 된 몸이라 감히 오래 머물 수가 없네요."
"내가 벌써 집안사람에게 돼지를 잡아 정성껏 준비하라 했는데 조카와 선생은 하룻밤 묵기도 싫어요? 어서 말을 돌려 가자구요."
조조가 돌아보지 않고 말 몰아 간다. 몇 보를 가다 갑자기 칼 뽑고 되돌아가 여백사를 부른다.
"저기 오는 이가 누구지요?"
여백사가 고개 돌리자 조조가 칼을 휘둘러 베어서 나귀 아래로 떨군다. 진궁이 크게 놀란다.
"아까는 잘못 알아 그렇다 치고 이제는 뭔 짓이란 말이오?"
"여백사가 집에 가서 많은 이가 살해된 것을 알고 어찌 가만 있겠어요? 사람을 모아 추격하면 반드시 화를 입어요."
"알고도 일부러 죽이다니 정말 의롭지 못하군요!"
"차라리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저버지리지 못하게 할테요!"
진궁이 암연黯然(침울하고 슬픔)한다. 그날밤 몇 리를 더 가서 밝은 달빛 아래 여관 문을 두드려 투숙한다. 말을 배불리 먹이고 조조가 먼저 잠든다. 진궁이 깊이 생각한다.
'나는 조조가 좋은 사람인줄 알고 벼슬도 버리고 따라왔어. 알고보니 이리 같은 놈! 오늘 살려두면 반드시 세상을 어지럽히겠구먼.'
칼을 뽑아 조조를 죽이려 한다.
진실로 이리나 독사 같은 못 된 자들
조조 동탁 원래 같은 길을 걷는 자들
과연 조조의 생명은 어찌될까. 다음 회를 보면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