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43회 제갈량이 선비들과 설전을 벌이고 노자경이 사람들의 뜻을 물리친다

    한편, 노숙과 공명은 현덕과 유기에게 작별을 고하고 배를 타고 시상군으로 향한다. 두 사람이 배 안에서 함께 의논해 노숙이 공명에게 말한다.

    "선생께서 손 장군을 만나시거든 절대로 조조의 병다장광 兵多將廣 (병사들과 장수들이 많음. 군사력이 대단함)을 이야기해서는 안 되십니다."

    "자경께서 당부하지 않으셔도 제가 이미 대답할 말을 정해 두었습니다."

    배가 강둑에 다다라 노숙이 공명에게 관역에서 잠시 쉴 것을 청하고 자신은 먼저 가서 손권을 만난다. 손권은 마침 문무 관리들을 당상에 모아서 의사하고 있었는데 노숙이 돌아온 게 보고되자 서둘러 불러들여 묻는다.

    "자경이 강하에 가서 몸소 허실을 알아보니 어떠하였소?"

    "대략 알아냈습니다만 천천히 아뢰겠습니다."

    손권이 조조의 격문을 노숙에게 보여주며 말한다.

    "조조가 어제 사자에게 격문을 쥐어 보냈는데 내 우선 그 사자를 보내고 이제 사람들을 모아 상의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되지 않았소. "

    노숙이 격문을 받아 들고 살핀다. 대략 이렇다.

    '내 요새 황제의 명을 받들어 조서에 따라 죄인을 토벌하오. 깃발을 남쪽으로 향하자 유종은 속수무책이었고 형양의 백성들은 우러러 보 며 귀순했소. 내 지금 웅병 백만과 상장 上將 1천 명을 거느려서 장군과 더불어 강하에서 힘을 합쳐 함께 유비를 토벌하고 토지를 같이 나눠 영원한 맹호 盟好를 맺고자 하오. 행여나 관망하지 말고 어서 답신을 보내주기 바라오.'

    노숙이 읽고 나서 말한다.

    "주공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아직 세우지 못했소."

    장소가 말한다.

    "조조는 백만 대병을 거느린데다 천자의 이름을 빌려 사방을 정벌하니 그를 거역하는 것은 불순합니다. 게다가 주공께서 조조를 맞설 만 했던 것은 장강 덕분이었습니다. 이제 그가 이미 형주를 얻었으니 장강의 험준한 잇점도 그나 우리나 다를 바 없게 돼서 지금 형세로는 대적할 수 없습니다. 제가 헤아려 보건대 납항 納降 (투항을 받아들임)이 만안지책 萬安之策 (만전을 기하는 계책)입니다."

    모사들 모두 말한다.

    "자포의 말씀이 하늘의 뜻에 들어맞습니다."

    손권이 깊이 신음하며 입을 열지 않는다. 장소가 다시 말한다.

    "주공께서는 이래저래 머뭇거리실 필요 없습니다. 조조에게 항복하면 동오 백성들이 편안해지고 강남 6군을 가히 보전하게 됩니다."

    손권이 머리를 낮게 숙이고는 아무 말이 없다.

    잠시 뒤 손권이 옷을 갈아 입으러 일어나니 노숙이 뒤따라 간다. 손권이 그 뜻을 알아차려 손을 붙잡고 이야기한다.

    "경은 어떻게 하고 싶소?"

    "방금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장군을 몹시 그르치는 것들입니다. 사람들 모두 조조에게 항복해도 되겠지만 장군만은 그러실 수 없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말하시오?"

    "저나 다른 사람들이야 조조에게 항복한들 고향으로 돌아가 벼슬을 더할 수도 있고, 다스리던 고을을 잃는 것도 아닙니다. 장군께서 조 조에게 항복하신다면 어디에 의지하시겠습니까? 지위는 고작 열후에 불과할테고 수레는 불과 1승이요 마필도 불과 한 필일 것이며 종인 들도 불과 몇몇일텐데 어찌 지금처럼 남면해서 고 孤(군주나 제후가 스스로를 낮춰 부르는 말)라고 일컫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사람 들 뜻이야 각각 자기를 위하는 것일 뿐, 귀담아 들어서는 안 되십니다. 장군께서 어서 대계를 정하십시오!"

    "사람들의 의논이 내 소망을 크게 저버렸소. 자경이 대계를 깨우쳐 주는 것이 내 견해와 꼭 맞소. 이것은 하늘이 자경을 내게 내리신 것이 오! 다만 조조가 원소의 무리를 새로 얻은데다 요새 형주의 병력까지 더했으니 그 세력을 대적하기 어려울까 걱정이오."

    "제가 강하에 가서 제갈근의 아우 제갈량을 여기 데려 왔으니 주공께서 그에게 물어 허실을 알아내십시오."

    "와룡 선생이 여기 있다 말이오?"

    "현재 관역에서 쉬고 있습니다."

    "지금은 저녁이라 만나기에 늦겠소. 내일 문무 관리들을 장하에 불러 모아 먼저 그에게 우리 강동의 영준 英俊 (재능이 출중한 사람)들을 보여주고 공당(관아)으로 불러 올려 의사 議事 하겠소."

    노숙이 명령을 듣고 떠난다. 다음날 관역에 가서 공명을 만나 다시 부탁한다.

    "오늘 우리 주공을 만나시거든 절대로 조조 병력이 많을 것은 말씀드리지 마십시오."

    공명이 웃는다.

    "제가 상황을 봐 가며 대처할 것인즉 결코 그르침이 없을 겁니다."

    노숙이 이에 공명을 막하로 데려간다. 벌써 장소, 고옹 등 한 무리 문무 관리 스물 남짓이 아관박대 峨冠博帶 (관리들이 머리에 높은 관을 쓰고 허리에 넓은 띠를 두르던 차림) 차림으로 옷 매무새를 가다듬어 단정히 앉아 있다. 공명이 한 사람 한 사람 인사하고 성명을 묻 는다. 인사를 마치고 손님 자리에 앉는다. 장소 등이 보니 공명이 태도는 생기가 넘치고 외모는 당당한 것이 아무래도 유세하러 온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장소가 먼저 입을 열어 그를 긁어본다.

    "저는 강동의 보잘것 없는 선비이지만 오래전부터 선생께서 융중에서 고고히 은거하시며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견주셨다고 들었습니 다. 과연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제가 평소에 저를 그렇게 견준 게 맞습니다."

    "요새 듣자니 유예주가 선생의 초려 小可(초가집)를 세번 찾아가 요행히 선생을 얻었다 하더군요. 그래서 물고기가 물을 얻은 듯이 여기 고는 형양 지방을 석권한 마음을 먹었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루 아침에 조조에게 복종하게 됐으니 무슨 할 말이 있을지 미심쩍구 려."

    공명이 생각해보니 장소는 손권 수하 가운데 제일 가는 모사인지라 만약 먼저 그를 압도하지 못하고서야 어찌 손권을 설득하리오. 답한다.

    "제가 보기에 한수 漢水 상류 지방을 취하는 것이야 손바닥 뒤집듯 쉬웠습니다. 그러나 저희 주공이신 예주께서는 인의를 궁행 躬行 (몸 소 실천)하셔 차마 같은 집안의 기업을 빼앗을 수 없으신지라 애써 사양하셨던 것 뿐입니다. 유종은 풋내기라 남들의 간사한 말을 듣고 어리석게도 스스로 투항해 결국 조조가 창궐하게 됐습니다. 지금 저희 주공께서는 강하에 둔병해 따로 좋은 기회를 노리시는 것이니 남 들이 쉽게 그 뜻을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선생은 언행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선생은 스스로 관중과 악의에 견준다 하셨는데 관중은 환공을 모셔 제후를 제패하고 천하 를 크게 바로잡았습니다. 악의는 미약한 연나라를 떠받쳐 제나라 70여 성을 함락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참으로 세상을 구제할 재주를 가졌었다 하겠습니다. 선생은 초려에서 단지 한가로이 풍월이나 읊어대고 무릎을 껴안고 앉아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제 유예주에게 종 사했으니 마땅히 생령(백성)들을 위해 이익을 진흥하고 폐해를 제거하고 저들 어지러운 도적을 소멸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유예주는 선생을 얻지 못했을 때에는 오히려 환우 寰宇 (천하. 우주)를 종횡하고, 할거하는 성지가 있었습니다. 선생을 얻자 모두 우러러 봤습니 다. 삼척동자라도 이제 호랑이가 날개를 단 셈이라 한실을 부흥하고 조씨는 즉시 멸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정의 옛 신하들이나 산림에 숨어지내는 선비들도 눈을 씻고 살피며 기대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빛을 가리는 구름을 걷어내 해와 달이 눈부시게 빛나게 하고, 수화 水火 (물과 불. 재난)에 빠진 백성들을 건져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야를 포기하고 번성으로 달아나더니 당양에서 패전해 하구로 달아나니 어디 몸을 머물 데가 있습니까? 이것을 보면, 유예주는 선생을 얻고 나서 도리어 예전보다 못하게 된 것입니다. 관중과 악의가 과연 이러했습니까? 제 못난 소견이니 행여나 너무 노여워 하지 마십시오!"

    공명이 듣고 나서 소리내 웃는다.

    "붕새는 만리를 날아가니 그 뜻을 어찌 뭇새가 알겠습니까? 비유컨대 사람이 병을 오래 앓으면 마땅히 먼저 죽을 먹은 뒤에 화약 和藥 ( 작용이 부드러운 약)을 복용해 장부(내장기관)가 조화되고 몸이 점차 안정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 뒤에 고기를 먹어 보하고 맹약 猛藥 (작용이 맹렬한 약)으로 치료해야 병의 뿌리가 모조리 없어져 사람이 온전히 살아나게 됩니다. 그 기맥이 안정되기를 바라지 않고 바로 맹약과 후미 (맛이 아주 좋은 음식)를 써서 고치려 하면 참으로 어렵게 되고 맙니다. 제 주공 유예주께서는 지난날 여남에서 패전 해 유표에게 몸을 맡기셨을 때 병력이 천 명이 되지 못한데다 거느린 장수들도 겨우 관우, 장비, 조운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병세가 심하 기 그지없는 때와 똑 같았습니다. 신야는 궁벽한 작은 고을이고 인민도 희소한데다 양식마저 적어서 예주께서 잠깐 몸을 둘 만한 곳에 불과하지 어찌 참으로 장수가 좌수(고수)할 곳이겠습니까? 이렇게 갑병 (무장병력)도 모자라고 성곽도 튼튼치 못하고 군대도 충분히 숙련되지 못한데다 양식마저 하루를 버티기 어려웠지만 박망파에서 적의 근거지를 불사르고 백하에서 수공을 가해서 하후돈과 조인 등 의 가슴을 놀라게 하고 간담을 찢어놓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관중과 악의가 용병해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한 것도 예주께서는 참으로 알지 못하셨습니다. 게다가 차마 같은 집안의 기업을 함부로 빼앗지 못하셨으 니 참으로 크나큰 인의라 하겠습니다. 당양의 패전도, 예주께서 수십만 백성들이 의 義를 따라 늙은이를 부축하고 어린이를 업고 따라오 는 것을 보고 차마 버리지 못하고 하루 겨우 십 리를 가면서도 강릉을 빼앗으러 진격할 생각을 안 하고 백성들과 함께 패전할 것을 감내 하셨으니 참으로 크나큰 인의라 하겠습니다.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병을 대적하지 못했지만 그런 승부는 으레 있는 법입니다. 예전에 고 조황제는 항우에게 수차례 패했지만 해하에서 한차례 싸움으로 성공했으니 이것이 한신의 좋은 계책이 아닙니까? 무릇 한신이 오래전 부터 고조황제를 섬겼지만 일찍이 승리를 거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저 국가의 대계와 사직의 안위는 근본 계획을 세워야지 과대하 게 떠벌이거나 헛된 명예로 남들을 속이는 자들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그들 무리는 앉아서 이야기나 나누는 것이야 남들이 따라올 수 없게 잘하지만 임기응변이 필요한 때에는 백에 하나도 능히 할 수가 없으니 참으로 천하의 웃음거리입니다!"

    이렇게 한바탕 말하자 장소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좌상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묻는다.

    "이제 조 공이 백만 대군과 장수 1천 명을 거느리고 용양호시 龍驤虎視 (용마가 머리를 쳐들고 울부짖고 호랑이가 사냥감을 노려보는 것 .)하며 강하를 평정해 집어삼키려 하는데 공은 어찌하겠소?"

    공명이 바라보니 그는 우번이다. 공명이 말한다.

    "조조가 원소의 개미떼 같은 병력을 거둔데다 유표의 오합지졸을 빼앗은 것이니 비록 백만 대군인들 족히 두려워 할 게 못 되오."

    우번이 비웃는다.

    "당양에서 군대는 패배하고 하구에서 꾀가 바닥나 구구히 남에게 구원을 요청하러 오고서도 오히려 두렵지 않다고 말씀하시다니 이야 말로 참으로 허풍을 쳐서 남을 속이는 것이구려!"

    "유예주께서 고작 수천의, 인의를 받드는 군대로써 어찌 능히 백만의 잔폭한 무리에 대적하시겠소? 하구로 물러나 지키는 것은 때를 기다리는 것이오. 이제 강동에는 병력이 정예하고 양식이 풍부하고 게다가 장강의 험한 지형이 있는데도 오히려 그 주인으로 하여금 무릎을 꿇고 도적에게 항복하게 만들고자 하니 천하에서 비웃을 것을 염려치 않는 것이오. 이렇게 따지면 유예주야말로 진실로 조조 도적을 두려워 하시지 않는 것이오!"

    우번이 할 말이 없다. 자리에서 또 한 사람이 묻는다.

    "공명은 소진과 장의 (둘 다 전국시대의 유명한 유세가)처럼 혀를 놀려 동오에 유세하고자 하시오?"

    공명이 바라보니 그는 바로 보즐 步騭이다. 공명이 말한다.

    "보자산(보즐)은 소진과 장의를 변사 辯士로만 여기지 소진과 장의 또한 호걸인 것을 모르시는구려. 소진은 여섯 나라의 상인(재상의 인감)을 차서 두르고 장의는 진나라에서 두번이나 재상을 지냈으니 그들 모두 나라를 바로세울 지모를 가졌었소. 강한 자를 두려워 하고 약한 자를 능멸하는 자들이나 창칼을 무서워 하는 자들과 비할 사람들이 아니오. 여러분은 조조의 허풍을 듣자마자 두려워 바로 항복하 기를 조르는 처지에 감히 소진과 장의를 비웃을 수 있소?"

    보즐이 묵묵히 말이 없다. 그때 누군가 묻는다.

    "공명은 조조를 어떤 사람으로 여기시오?"

    공명이 그 사람을 바라보니 바로 설종이다. 공명이 답한다.

    "조조는 한적(한나라 역적)인데 더 물어볼 필요가 있겠소?"

    "공이 틀렸소. 한나라가 지금에 이르러 천수 (하늘이 내린 운수)가 다하려 하오. 이제 조 공은 이미 천하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사람 들 모두 마음으로 귀부하고 있소. 유예주는 천시를 알아보지 못하고 한사코 그와 다투려 하니 이야말로 계란으로 돌을 치는 것인데 어찌 패하지 않을 수 있겠소?"

    공명이 성난 목소리로 말한다.

    "설경문(설종)은 어찌 이렇게 부모도 임금도 없는 사람처럼 말씀하시오? 무릇 사람이란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나 충효를 입신의 근본으 로 삼는 법이오. 공은 한나라 신하가 되었으니 만약 신하답지 못한 사람을 보거든 마땅히 함께 그를 처단해야 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요. 이제 조조가 조상 대대로 한나라의 녹을 먹고도 보답할 생각 없이 도리어 찬역할 마음을 품고 있어 천하에서 함께 분노하고 있소. 공은 이것을 천수가 그에게 돌아가는 것이라 여기다니 참으로 부모도 임금도 없는 사람이오!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에 부족하구려! 청컨대 다 시는 말을 꺼내지 마시오!"

    설종이 얼굴 가득 처참해져 대답하지 못한다. 자리에서 다시 한 사람이 공명의 말이 끝나자마자 묻는다.

    "조조가 비록 천자를 옆에 끼고 제후를 호령한다지만 그래도 상국 相國 조참의 후예요. 유예주가 비록 중산정왕의 묘예(후예)라 말하지 만 도리어 아무 고증할 길이 없고 확실한 것은 돗자리를 짜고 신을 팔던 사내였다는 것 뿐이니 어찌 족히 조조와 맞설 수 있겠소?"

    공명이 그를 보니 바로 육적이다. 공명이 웃으며 말한다.

    "공은 바로 원술이 내려 준 귤을 품었다던 육랑이 아니시오? 청컨대 편히 앉아 제 한 마디를 들어보시오. 조조가 조 상국의 후예라면 바 로 대대로 한나라 신하였다는 것이 되오. 이제 권력을 틀어쥐고 제멋대로 굴어대니 이것은 임금만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라 조상을 능멸 하는 것이기도 하오. 한실의 난신일 뿐 아니라 조 씨 집안의 적자 賊子 (도적. 반역자)이기도 한 것이오! 유예주께서는 당당히 황제의 후 예로서 당금(현재)의 황제께서도 족보에 따라 작위를 하사하셨는데 어찌 아무 고증할 길이 없다 하시오? 게다가 고조께서는 정장을 지 내시다 몸을 일으켜 마침내 천하를 소유하셨소. 돗자리를 짜고 신을 팔았다 한들 어찌 족히 치욕이겠소? 공의 어린이 같은 견해야말로 고사 高士 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에 부족하오!"

    육적은 말문이 막히는데 자리에서 누군가 홀연히 말한다.

    "공명의 말들은 모두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 죄다 정론이 아니니 다시 말할 필요가 없겠소. 우선 공명은 무슨 경전을 익히셨는 지 물어봐도 되겠소?"

    공명이 바라보니 그는 바로 엄준이다. 공명이 말한다.

    "경전에서 그럴싸한 글귀나 뒤지는 것은 세속의 썩은 선비들이나 하는 짓이지 어찌 능히 나라를 흥하게 하고 일을 성공시키는 것이라 하 겠소? 더욱이 옛날 신야 莘野에서 밭을 갈던 이윤 伊尹이나 위수에서 낚시하던 자아 子牙 (강태공)나 한고조를 도운 장랑, 진평 같은 사 람들이나 광무제를 도운 등우, 경감 같은 무리는 모두 우주를 바로잡을 재주를 가졌었지만 그들이 생평 生平(평생. 일생)에 무슨 경전을 익혔는지 미심쩍소. 또한 어찌 서생들의, 구구하게 붓과 벼루에 파묻혀 수흑논황 數黑論黃 (제멋대로 어지럽게 시비를 가려서 말하는 것 )하고 무문농묵 舞文弄墨 (글을 놀려 법도를 어지럽히는 것)하는 것을 본받을 수 있겠소?"

    엄준이 고개를 숙이고 기가 꺾여 대답하지 못한다. 그때 누군가 다시 큰소리로 말한다.

    "공은 큰 소리를 즐기지만 여태 참으로 실학 實學 (진실한 학문이나 재능)을 가지지는 못했으니 유자 儒者 (유학자)들에게 웃음거리나 되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오!"

    공명이 그 사람을 보니 바로 여남의 정덕구다. 공명이 답한다.

    "유자에는 군자와 소인이 따로 있소. 군자인 유자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정도를 지키고 사도를 미워하며, 당대에 힘써 은혜를 베풀어 후세에 이름을 남기오. 만약 저들 소인배 유자들이라면 오로지 글귀나 다듬는데 힘을 쏟고 한묵 翰墨(붓과 먹. 문학)만 붙잡고 청춘에는 시부 詩賦나 짓고 호수 皓首 (흰머리)가 돼서는 경전이나 파고 앉아 있소. 붓으로 천마디 말을 써갈긴들 흉중(가슴속) 에는 참으로 아무런 계책이 없는 것이오. 게다가 양웅 揚雄이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몸을 굽혀 유분 劉棻을 섬겼으나 누각에서 떨어져 죽는 것을 면하지 못했으니 이른바 소인의 유자요. 비록 하루에 시부를 지어 만 마디를 써 적은들 무슨 취할 것이 있으리오!"

    정덕구가 대답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공명이 흐르는 물처럼 대답하는 것을 보고 모두 실색(놀라서 얼굴빛이 달라짐)한다. 그때 자리에 장온과 낙통, 두 사람이 있어 다시 어려운 질문을 해보려 하는데 누군가 밖에서 들어와 성난 목소리로 말한다.

    "공며은 당세의 기재이거늘 여러분이 입술과 혀로써 난처하게 하다니 손님을 공경하는 예의가 아니오. 조조의 대군이 국경에 임박했는데 적군을 물리칠 계책은 생각하지 못할망정 헛되이 말다툼이라뇨!"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니 영릉 출신의 황개 '공복'이다. 현재 동오에서 군량을 관리하고 있다. 그 자리에서 황개가 공명에게 말한다.

    "제가 듣건대 말을 많이 해서 이익을 얻느니 차라리 입을 다물라 했습니다. 어찌해서 금석 같은 이야기를 저희 주공께 말씀드리지 않으시고 사람들과 입씨름하십니까?"

    "여러분이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시고 제게 따져물으니 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황개와 노숙이 공명을 데리고 가는데 중문에 이르러 마침 제갈근과 마주치니 공명이 인사를 올린다. 제갈근이 말한다.

    "동생이 강동에 도착하고도 어찌 나를 찾지 않았는가?"

    "아우가 예주를 모시는지라 마땅히 선공후사를 따르는 게 도리입니다.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감히 사사로운 일까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형님께서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후(손권)를 만나 보고 난 뒤에 이야기를 나누세."

    제갈근이 말을 마치고 떠난다.

    노숙이 말한다.

    "얼마전 부탁 드린 것은 절대 실수가 없어야 합니다."

    공명이 고개를 끄덕여 응낙한다. 당상으로 데리고 가자 손권이 계단을 내려와 맞이하니 예우가 두텁다. 인사를 마치고 공명을 자리에 앉 도록 한다. 문무 관리들이 두줄로 늘어선다. 노숙이 공명 곁에 서서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본다. 공명이 현덕의 뜻을 전해주고서 슬그머니 손권을 살핀다. 푸른 눈에 자줏빛 수염으로 의표 儀表(용모와 행동거지)가 당당하다. 공명이 속으로 생각한다.

    '이 사람은 생김새가 남다르니 격동시켜야지 설득해서는 안 되겠구나. 그가 물어오기를 기다려 말로써 격동시키면 되리라.'

    차를 대접하고 손권이 말한다.

    "노자경(노숙)으로부터 족하(상대를 높여 부르는 말)의 재주를 많이 들었는데 이제 다행히 만나게 됐습니다. 감히 요청하건대 이로운 것을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재주 없고 배우지 못해서 명문 明問(상대의 질문을 높여 부르는 말)에 제대로 답하지 못할지 모르겠습니다."

    "족하께서 요새 신야에서 유예주를 도와서 조조와 결전하셨다니 필시 그 군대의 허실을 잘 아시겠습니다."

    "유예주께서는 병력이 미미하고 장수가 모자른데다 신야성이 작고 식량이 없었는데 어찌 능히 조조에 맞섰겠습니까?"

    "조조 병력은 모두 합쳐서 얼마나 됩니까?"

    "마보군(기병과 보명)과 수군을 합쳐서 대략 1백만 남짓입니다."

    "과장하는 것 아닙니까?"

    "과장은 없습니다. 조조는 연주에서 이미 청주군 2십만을 거느렸습니다. 원소를 평정하고 다시 5, 6십만을 얻었습니다. 중원에서 새로 뽑 아모은 병력이 3, 4십만입니다. 이제 다시 형주 군대 2, 3십만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1백 5십만을 밑돌지 않습니다. 제가 1백만 이라 말씀드렸던 것은 강동 선비들을 놀라게 할까 두려워서였습니다."

    노숙이 곁에서 듣더니 실색해서 공명에게 눈짓하는 것을 공명이 못 본 체하는데 손권이 말한다.

    "조조 부하 가운데 전장 戰將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장수)은 또한 얼마나 되오?"

    "족히 지모 있는 선비들과, 능히 원정에 나서 전투를 능숙히 치룰 장수들이 아무래도 1, 2천은 넘지 싶습니다!"

    "이제 조조가 형초 荊楚 (초나라가 형주에 위치했기에 형주의 별칭)를 평정했는데 다시 멀리까지 도모하겠습니까?"

    "바로 지금 강가를 따라 진지를 세우고 전선을 준비하는데 이것이 강동을 도모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무엇을 취하는 것이겠습니까?"

    "만약 그가 병탄할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싸울지 말지를 청하건대 족하께서 저를 위해 결정해 주십시오."

    "제가 드릴 말씀이 있기는 한데 다만 장군께서 기꺼이 따르지 않으실까 두렵습니다."

    "바라건대 고론 高論을 듣고 싶습니다."

    "예전에 천하가 크게 어지러웠던 까닭에 장군께서 강동에서 일어나고 유예주께서 한남 漢南에서 무리를 모아서 조조와 나란히 천하를 다툴 수 있었습니다. 이제 조조는 큰 어려움을 삼제 芟除 (풀을 깎듯이 베어버림)하고 대부분 평정했습니다. 요새 다시 형주를 깨뜨려 위세가 해내 (천하)를 뒤흔듭니다. 비록 영웅이 있더라도 용무지지 用武之地 (무력을 쓸 수 있는 지방. 재주를 펼칠 터전)이 없게 됐습 니다. 그러므로 예주께서 여기까지 둔도 遁逃 (달아남)하셨습니다. 바라건대 장군께서는 힘을 헤아려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오월 지방 사람들로써 중원과 항형 抗衡 (지지 않고 맞섬)할 수 있다면 어서 조조와 단교하는 것만 못합니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어찌 모사 들이 의논하듯이 병력을 거두고 갑옷을 벗어 북면 (신하로서 임금을 섬기는 것)해서 그를 섬기지 않겠습니까?"

    손권이 미처 답하지 못하는데 공명이 다시 말한다.

    "장군께서 겉으로 그에게 복종한다고 하면서 안으로 머뭇거리며 다른 마음을 먹다가는 사세가 다급해져 재앙이 언제 닥칠지 모릅니다."

    "참으로 선생 말씀과 같다면 유예주께서는 어째서 조조에게 항복하지 않으시오?"

    "지난날 전횡 田橫은 제나라의 한낱 장사 壯士 일 뿐이었으나 오히려 의를 지켜 욕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유예주께서는 왕실의 후예로 서 그 영웅스러움이 세상을 뒤덮고 뭇 선비가 우러러 사모하지 않습니까? 일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도 하늘의 뜻. 어찌 몸을 굽혀 남의 밑 에 처하겠습니까?"

    손권이 공명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낯빛이 바뀌어 옷깃을 털며 일어나 후당으로 물러난다. 모두들 비웃으며 해산한다. 노숙이 공명을 책망해 말한다.

    "선생은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하십니까? 다행히 저희 주공께서 관용하고 도량이 넓어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그 자리에서 책망했습니 다. 선생 말씀은 저희 주공을 몹시 묘시 藐視 (경시. 무시. 깔봄)하는 것입니다."

    공명이 얼굴을 들고 웃으며 말한다.

    "어째서 그 말이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까? 내 나름대로 조조를 깨부술 계책이 있는데 제게 묻지 않으시니 말씀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정말 좋은 계책이 있다면 제가 마땅히 주공께 청해 가르침을 구하라 하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조조 백만 무리도 개미떼 같을 뿐입니다! 제가 한번 손을 쓰면 그들 모두 가루가 될 것입니다!"

    노숙이 이 말을 듣고는 후당으로 들어가 손권을 만난다. 손권은 노기가 가라앉지 않아 노숙을 돌아보며 말한다.

    "공명이 나를 이토록 업신여기다니!"

    "신 역시 그것으로 공명을 책망했더니 그가 도리어 웃으며 주공께서 능히 용물 容物 (자기의 성질을 참아내며 사물이나 사람을 용납하 는 것)하지 못하시는지라 그가 조조를 쳐부술 계책을 쉽게 말씀드릴 수 없다 했습니다. 주공께서 그것을 물어보지 못할 까닭이 있겠습니 까?"

    손권이 기분이 풀어져 말한다.

    "원래 공명이 좋은 꾀를 가지고도 일부러 나를 자극하는 말을 했구려. 내가 하마트면 얕은 생각으로 대사를 그르칠 뻔했소."

    노숙과 함께 다시 당상으로 나가 공명에게 이야기를 청한다. 손권이 공명을 보고 사과한다.

    "방금전 선생의 청엄 清嚴 (청정하고 엄숙함)을 모독한 것을 아무쪼록 용서해 주십시오."

    공명도 역시 사과한다.

    "제 언사가 지나쳤습니다. 바라건대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손권이 공명을 후당으로 데려가 술을 내어 대접한다.

    몇차례 술잔이 돌아가 손권이 말한다.

    "조조가 평소 미워하던 자들은 여포, 유표, 원소, 원술, 예주(유비) 그리고 저뿐입니다. 이제 영웅들이 멸망하고 예주와 제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저는 동오를 모조리 남에게 바칠 수는 없습니다. 유예주가 아니라면 함께 힘을 합쳐 조조와 싸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예주가 이제 패했으니 어찌 이 난적에게 대항하겠습니까?"

    "예주께서 비록 얼마전에 패하셨다 하나 관운장이 아직도 정병 1만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유기도 강하에서 전사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역 시 1만을 밑돌지 않습니다. 조조 무리는 멀리서 오느라 몹시 피로합니다. 요새 예주를 추격하느라 저들이 경기(경기병)를 동원해 하루 밤낮에 3백 리를 내달렸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아무리 센 화살이라도 그 끝에 가서는 얇은 비단조차 뚫지 못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게다 가 북쪽 사람들은 수전 水戰에 서툽니다. 형주의 사민들이 조조에게 붙은 것도 형세가 급박해서일 뿐이지 본심은 아닙니다. 이제 장군께 서 진실로 유예주와 협력동심 協力同心하시면 조조 군대를 반드시 격파하십니다. 조조 군대가 격파되면 반드시 북쪽으로 돌아갈테고 형주와 동오의 세력은 강해져 결국 정족지형 鼎足之形 (서로 팽팽한 형세)이 이뤄지게 됩니다. 성패의 기회는 오늘에 달렸습니다. 장군 께서 잘 헤아려 주십시오."

    손권이 크게 기뻐해 말한다.

    "선생의 말씀을 들으니 돈개모색 頓開茅塞 (띠풀이 가로막은 산길이 갑자기 뚫림)입니다. 제 뜻은 결정됐으니 이제 다른 망서림은 없 습니다. 날을 잡아 병력을 일으켜 조조를 함께 멸합시다."

    마침내 노숙에게 명해서 이 뜻을 문무 관원들에게 전하게 하고, 공명을 관역으로 보내 쉬게 한다.

    손권이 병력을 일으키고자 하는 것을 알아챈 장소가 사람들과 의논해 말한다.

    "공명의 계략에 빠지고 말았구려!"

    서둘러 손권을 만나 말한다.

    "저희가 듣자니 주공께서 병력을 일으켜 조조와 창칼을 부딪힐 것이라 합니다. 주공께서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원소와 비교해 어떻습니 까? 조조는 지난날 병력은 미미하고 장수는 적었지만 북소리 한번 울려 원소를 이겼습니다. 하물며 오늘날 그가 백만 대군을 거느려 남 쪽을 정벌하는데 어찌 함부로 대적하시겠습니까? 만약 공명의 말을 듣고 망녕되게 갑병 (무장병력)을 움직이신다면 이것이 이른 바 장 작을 짊어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손권이 고개를 수그릴 뿐 아무 말이 없다. 고옹이 말한다.

    "유비가 조조에게 패전한지라 우리 강동의 병력을 빌려 그에게 맞서려는 것인데 주공께서 어찌해서 이용 당하려 하십니까? 바라건대 자 포(장소)의 말을 들어주소서."

    손권이 낮게 신음하며 매듭짓지 못한다. 장소 등이 나가자 노숙이 들어와 말한다.

    "장자포 등이 또다시 주공께 병력 출동을 관두도록 권하며 항복하자고만 조르니 이 모두가 제 몸과 처자식이나 보전하려는 신하들이 스 스로를 위해 세운 계책일 뿐입니다."

    손권은 아직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데 노숙이 말한다.

    "주공께서 머뭇거리시다가는 마침내 사람들이 주공을 그르치고 맙니다."

    "경은 잠시 물러가시오. 내 거듭 생각해 보리다."

    이에 노숙이 물러난다. 당시에 무장들 가운데 일부는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문관들은 모두 항복해야 한다고 해서, 의논이 분분 해 일치되지 못한다.

    한편, 손권은 안으로 물러가 침식 寢食을 제대로 못하며 머뭇거리며 매듭짓지 못한다. 오 국태 國太 (임금의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묻는다.

    "무슨 일이 마음에 걸려 침식을 모두 폐하느냐?"

    "이제 조조가 강한에 둔병해 강남을 함락할 뜻을 가졌습니다. 문무 관리들에게 물으니 어떤 이는 항복하자 하고, 어떤 이는 싸우자 합니 다. 싸우자니 중과부적일까 걱정이고 항복하자니 조조가 어찌 나올까 걱정입니다. 이래서 머뭇거리며 매듭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는 어찌 내 언니가 임종하며 남긴 말씀을 기억치 못하느냐?"

    손권이 술 취했다가 방금 깨어난 듯하고 꿈에서 막 벗어난 듯이 그 말이 와 닿는다.

    국모가 임종하며 남긴 말을 떠올려, 주랑 周郎더러 전공을 세우게 하겠구나.

    과연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