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45회 조조가 삼강구에서 군을 잃고 장간이 군영회에서 함정에 빠진다

    한편, 주유는 제갈량의 말을 듣고 더욱 그를 원망해 죽일 마음을 품는다. 다음날 군대를 점검하고 들어가 손권에게 작별을 고하자 손권이 말한다.

    "경은 먼저 가시오. 고 孤(왕이나 제후가 스스로를 일컫는 말)는 병력을 일으켜 후속하겠소."

    주유가 나와서 정보, 노숙과 더불어 병력을 이끌고 떠나며 공명에게 동행을 청한다. 공명이 흔쾌히 그들을 따라가 함께 배를 타니 돛을 올려 줄줄이 하구를 향해 나아간다. 삼강구를 5, 6십 리 남겨두고, 배들이 차례대로 정박한다. 주유가 중앙에 진을 치고, 강둑에서 서쪽 산에 의지해 결영 結營 (영채를 세움)해서 그 둘레에 주둔한다. 공명은 다만 한조각 작은 배 안에서 쉰다.

    주유가 병력 배치를 마치고 사람을 시켜 공명을 불러 의논한다. 공명이 중군 中軍 장막에 이르러 인사를 마치자 주유가 말한다.

    "지난날 조조는 병력이 적고 원소는 많았으나 도리어 원소를 이긴 것은 허유의 꾀를 써서 먼저 오소의 식량을 차단해서요. 이제 조조 병 력이 8십만이고 아군은 겨우 5, 6만이니 어찌 그들을 막겠소? 역시 먼저 조조 군량을 끊음이 필수이니 그 뒤에야 격파할 수 있소. 내 이 미 조조 군대의 양초 糧草(식량과 말먹이)를 탐지해보니 모두 취철산에 있소. 선생이 한상 漢上에 오래 머물러 지리를 잘 알 것이오. 번 거롭겠지만 선생께서 관, 장, 자룡 등과 함께 가시고 저 역시 병력 1천을 드릴테니 성야 星夜 (별이 빛나는 밤. 한밤)에 취철산으로 가서 조조의 양도 糧道(식량 수송로)를 끊어주시오. 피차 각각 주인을 위한 일이니 행여나 꺼리지 마시오."

    공명이 속으로 생각한다.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어 꾀를 부려 해칠 셈이구나. 핑계를 대면 필시 웃음거리가 되니 일단 응하고 따로 계책을 세우는 것만 못하리라.'

    이에 흔쾌히 응낙하니 주유가 크게 기뻐한다. 공명이 인사하고 나가자, 노숙이 은밀히 주유에게 말한다.

    "공께서 공명을 시켜 군량을 약탈하게 하심은 무슨 의견 意見(여기서는 뜻, 의사)이오?"

    "내 직접 그를 죽이고 싶으나 남들이 비웃을까 두려워 조조 손을 빌려 죽여 후환을 없애려 할 뿐이오."

    노숙이 듣더니 공명을 찾아가 그가 아는지 모르는지 살핀다. 그런데 보자니 공명은 전혀 어려운 기색 없이 군마를 점검해 떠나려 한다. 노숙이 참지 못해 말을 꺼내 건드린다.

    "선생께서 이렇게 가서 가히 성공하시겠소? 못하시겠소?"

    공명이 웃으며 말한다.

    "저는 수전 水戰, 보전 步戰, 마전 馬戰, 차전 車戰 무엇이든 통달했는데 어찌 공적을 못 세울까 걱정하겠소? 강동의 그대나 주랑처럼 한 가지만 능한 이들과 비교치 마시오."

    "저와 공근을 어찌 한가지만 능하다 하시오?"

    "제가 듣자니 강남 소아들이 이렇게 노래한다지요. '길가에 매복하고 관문을 지킴은 자경이요 강물에서 수전은 주랑이네.' 공 같은 사람 은 육지에서 단지 길가에 매복해 관문을 지킬 뿐이요 주공근은 단지 수전에 알맞고 육전 陸戰은 능하지 못할 뿐이요."

    이에 노숙이 이 말을 주유에게 고지하자, 그가 노해 말한다.

    "어찌 나를 육전에 능하지 못한다 업신여기냐! 그가 갈 것 없소! 내 친히 1만 군마를 거느려 취철산으로 가 조조의 양도를 끊겠소!"

    노숙이 다시 이 말을 공명에게 고하자, 그가 웃으며 말한다.

    "공근이 내게 양도를 끊게 함은은 실은 조조를 이용해 나를 죽이려 할 뿐이오. 내 그래서 한마디 말로써 그를 희롱했더니 그가 용납치 못 한 것이오. 목금 目今(현재)은 사람을 활용해야 할 때이니 다만 바라건대 오후 吳侯 (손권)와 유사군께서 한마음으로 협력하셔야 성공 할 수 있소. 각각 서로 해치려 하면 대사는 끝장나오. 조조 도적은 꾀가 많고 그가 평소 남들 양도를 끊는 데 익숙하니 지금 어찌 중무장 해 방비치 않겠소? 공근이 가면 반드시 잡히게 되오. 지금은 다만 수전으로 결판 내어 북군 北軍의 예기를 꺾고 흔듦이 우선이니 따로 묘 책을 내어 격파해야 하오. 바라건대 자경께서 좋은 말로써 공근에게 고해주시면 다행이겠소."

    노숙이 그날밤 돌아가 주유를 만나 공명의 말을 자세히 전해주자, 그가 머리를 흔들고 발을 구르며 말한다.

    "그 식견이 나보다 열 배는 낫구나. 이제 죽이지 않으면 뒷날 필시 우리나라의 화가 되리라!"

    "지금은 사람을 써야 할 때이니 바라건대 국가를 중히 여기시오. 더욱이 조조를 쳐부순 뒤 그를 도모해도 늦지 않소."

    주유가 그렇다 여긴다.

    한편, 현덕은 유기에게 강하를 지키게 분부하고, 스스로 장수들을 거느려 병력을 이끌고 하구 夏口로 간다. 멀리 바라보니 남쪽 강둑을 따라 기번 旗旛 (각종 깃발)이 은은하니 동오가 벌써 병력을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강하 병력을 모조리 옮겨 번구 樊口에 주둔 시킨다. 현덕이 사람들을 모아 말한다.

    "공명이 동오로 떠난 뒤 아무 소식이 없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소. 누가 가서 허실을 탐청하고 돌아와 알려주겠소?"

    미축이 말한다.

    "제가 가고 싶습니다."

    이에 현덕이 양고기와 술과 예물을 준비하고, 미축을 동오로 보내어 군을 호궤한다는 명목으로 허실을 탐청한다. 미축이 명을 받들어 작은 배를 타고 물길을 따라 내려가 주유의 큰 진지 앞에 곧장 다다른다. 병사들이 들어와 주유에게 알리자, 그가 미축을 불러들인다. 미축이 두번 절을 올리고, 현덕의 공경하는 뜻을 전해 술과 예물을 올려 바친다. 주유가 거둬 들여 연회를 배풀어 미축을 환대한다. 미축이 말한다.

    "공명이 여기 머문 지 오래라 이제 함께 돌아가고 싶소."

    "공명은 바야흐로 나와 더불어 조조를 쳐부술 계책을 세우고 있는데 어찌 떠날 수 있겠소? 나 역시 유예주를 만나 뵙고 양책 良策을 함께 의논하고 싶소. 그러나 대군을 통솔하는 몸이라 잠시도 떠날 수 없소. 만약 예주께서 이곳을 왕림해주시면 내 소망이 크게 이뤄지겠소."

    미축이 응낙하고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간다. 노숙이 주유에 묻는다.

    "공께서 현덕을 만나고자 하시다니 무슨 계획이 있는 것이오?"

    "현덕은 세상이 아는 효웅 梟雄 (사납고 용맹한 호걸)이니 제거하지 않을 수 없소. 내 이제 기회를 잡아 그를 유인해 죽여 참으로 국가를 위해 일대 후환을 없애겠소."

    노숙이 거듭 말리지만 주유는 전혀 듣지 않고, 은밀히 명령을 내린다.

    "현덕이 도착하면 먼저 도부수 刀斧手 5십 인을 벽의 壁衣 (실내에 치는 막) 안에 숨겨 내가 술잔을 던지는 것을 신호로 뛰쳐나와 그를 처치하라."

    한편, 미축은 돌아가 현덕을 만나, 주유가 주공을 면회해 따로 상의하고 싶어 한다고 두루 이야기한다. 현덕이 지시해 빠른 배 한 척을 준 비해 당장 떠나려 하니, 운장이 간언한다.

    "주유는 꾀가 많은 사람인데다 공명에게서 아무 서신도 없으니 속임수가 있을까 두렵소."

    "내 이제 동오와 연결해 함께 조조를 쳐부수려 한다. 주랑이 보자는데 가지 않으면 동맹의 뜻에 어긋난다. 서로 믿지 못해서는 일이 성공 하지 못하리라."

    "형장께서 굳이 가시겠다면 제가 동행하고 싶소."

    장비도 말한다.

    "나도 따라 가겠소."

    "운장만 나를 따라 오너라. 익덕은 자룡과 함께 영채를 지키고, 간옹 簡雍은 악현 鄂縣을 지키시오. 내 갔다 곧 돌아오리다."

    분부를 마친 즉시 운장과 더불어 작은 배를 타고 종자 스물 남짓을 거느려 쏜살같이 노를 저어 강동으로 간다. 현덕이 살펴보니 강동의 몽동 艨艟 (싸움배의 일종)과 전함들이며 각종 깃발들과 갑병(무장병)들이 좌우로 분포해 가지런히 펼쳐져 있어 속으로 몹시 기뻐한다. 병사들이 주유에게 급보한다.

    "유예주께서 오셨습니다."

    "배는 몇 척이 따라 왔는가?"

    "단지 한 척에 종인은 스물 남짓입니다."

    주유가 웃는다.

    "그 자 목숨도 이제 끝장이구나!"

    이에 명을 내려 도부수들을 먼저 매복시키고서 영채를 나가 영접한다.

    현덕이 운장 등 스물 남짓을 이끌고 바로 중군 막사로 가서 인사를 마친다. 주유가 현덕을 윗자리로 청하니 현덕이 말한다.

    "장군은 천하에 이름을 떨치지만 저는 재주 없습니다. 어찌 번거롭게 장군이 과중한 예를 베푸십니까?"

    이에 손님과 주인 자리를 나눠 앉아 주유가 연회를 베풀어 접대한다.

    한편, 공명은 우연히 강변으로 왔다가 현덕이 이곳으로 와서 도독과 만난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서둘러 중군 막사로 가서 몰래 동정을 살핀다. 그런데 주유 얼굴에 살기가 흐르고 양쪽 벽의 壁衣 속에 도부수들을 몰래 숨겨 놓인 것이 보인다. 공명이 크게 놀란다.

    "이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다시 현덕을 보니 태연히 담소하고 있다. 그런데 그 배후에 한 사람이 검을 매만지며 서 있는데 바로 운장이라 공명이 기뻐한다.

    "우리 주공은 무사하시겠구나."

    결국 들어가지 않고 다시 몸을 돌려 강변으로 가서 기다린다.

    주유가 현덕과 연회에서 음주해 술이 몇 차례 돌자 일어나 술잔을 드는데 운장이 검을 매만지며 현덕 배후에 서 있다. 황망히 누구 냐 묻자 현덕이 말한다.

    "제 아우 관운장입니다."

    주유가 놀라 말한다.

    "지난날 안량, 문추를 참한 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주유가 크게 놀라 등줄기에 식은 땀을 흘리며 술을 부어 운장에게 권한다.

    잠시 뒤 노숙이 들어오니 현덕이 말한다.

    "공명은 어디 있습니까? 번거로우시겠지만 자경께서 불러 주십시오."

    "장차 조조를 쳐부수기를 기다려 공명을 만나셔도 늦지 않습니다."

    현덕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한다. 운장이 현덕에게 눈짓하자 현덕이 알아차려 즉시 몸을 일으켜 주유에게 작별한다.

    "저는 잠시 이별해 뒷날 적병을 쳐부수고 공을 세운 뒤 고개 숙여 축하드리겠습니다."

    주유도 붙들지 않고 원문 轅門 (장수가 드나드는 문)을 나가 배웅한다.

    현덕이 주유와 헤어져 운장과 더불어 강변으로 가니 공명이 벌써 배에 타 있다. 현덕이 크게 기뻐한다. 공명이 말한다.

    "주공께서 오늘 큰일날 뻔하셨는데 아십니까?"

    현덕이 깜짝 놀란다.

    "알지 못했습니다."

    "운장이 없었으면 주공을 하마터면 주유가 해칠 뻔했습니다."

    현덕이 그제서야 깨달아 공명에게 번구로 함께 돌아가기를 청하자 그가 말한다.

    "제 비록 호랑이 아가리에 들어 있으나 안전하기 태산 같습니다. 이제 주공께서는 다만 선박과 군마들을 수습해 기다리시다가 1월 20일 갑자일에 맞춰 자룡을 시켜 작은 배를 남쪽 강가에 대어 기다리게 해주십시오. 절대 착오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현덕이 그 뜻을 묻자 공명이 말한다.

    "다만 동남풍이 불어와야 제가 귀환하게 될 것입니다."

    현덕이 다시 물어보려는데 공명이 그에게 어서 배를 출발시키게 재촉한다. 현덕이 운장과 종인들을 데리고 배를 타고 가는데 몇리 못 가 상류 쪽에서 5, 6십척의 배가 몰려 내려온다. 뱃머리에 대장 하나가 장팔사모를 비껴들고 서 있으니 바로 장비다. 혹시 현덕에게 일이 생겨 운장 혼자 힘으로 어려울까 걱정해 일부러 접응하러 온 것이다. 이래서 세 사람이 함께 영채로 돌아간 것이야 말할 필요 없겠 다.

    한편, 주유는 현덕을 배웅하고 영채 안으로 돌아왔는데 노숙이 들어와 묻는다.

    "공께서 현덕을 이곳으로 유인하고서 어째서 손을 쓰지 않으셨소?"

    "관운장은 세상이 알아주는 호랑이 같은 장수요. 그가 현덕을 언제나 따라 붙어 만약 내가 손을 썼다가는 틀림없이 그가 해칠 듯했소."

    노숙이 깜짝 놀란다. 그런데 조조가 보낸 사자가 서찰을 지니고 왔다고 하므로 주유가 불러들인다. 사자가 서찰을 바치는데 봉투 위에 '한나라 대승상이 주도독에게 내리니 열어보라.' 라고 찍혀 있다. 주유가 크게 노해 서찰을 찢어 땅바닥에 내던지고 어서 사자를 참하라 호통 친다. 노숙이 말한다.

    "양쪽 나라가 서로 다퉈도, 찾아온 사자를 참하지 않소."

    "사자를 참해서 시위하겠소."

    결국 사자를 참해 그 잘린 머리를 따라온 종인에게 줘 돌려보낸다. 이어서 영을 내려 감녕을 선봉으로, 한당을 좌익으로, 장흠을 우익으 로 삼고, 주유 스스로 장수들을 이끌고 접응하기로 한다. 다음날 4경에 식사를 하고, 5경에 배를 움직여 북소리 드높게 함성을 울리며 전 진하게 한다.

    한편, 조조는 주유가 서찰을 훼손하고 사자를 참한 것을 알고 크게 노해 채모, 장윤 등 한 무리 형주 항장(항복한 장수)들을 불러 선두를 맡게 한다. 조조 스스로 후군을 맡아 전선들을 독려해 삼강구에 다다른다. 벌써 동오 선박들이 강물 가득 몰려온다. 앞장선 대장이 뱃머 리에 앉아 크게 외친다.

    "내가 바로 감녕이다! 뉘라서 감히 나와 결전하겠냐?"

    채모가 아우 채훈 蔡壎을 전진시킨다. 두 배가 접근하자 감녕이 활을 뽑아 화살을 매겨 채훈을 바라보고 쏘니 시윗소리와 함께 맞아 쓰 러진다. 감녕이 전선들을 휘몰아 크게 진격하며 쇠노 1만 기로 일제히 사격하니 조조군이 견디지 못한다. 우변에서 장흠이, 좌변에서 한당이 곧장 조조군 가운데를 두들겨 들어간다. 조조군 태반이 청주, 서주 출신이라 평소 수전에 서툴러 대강 大江(장강/양 자강)에서 전선들이 흔들리자 제대로 서지 못한다. 감녕 등 3로의 전선들이 물 위를 종횡한다. 주유도 전선들을 독려해 싸움을 도우니 조조군 가운데 화살에 맞고 포에 맞은 자가 무수하다. 이시 巳時 (오전 9시에서 11시)부터 미시 未時 (오후 1시에서 3시)까지 줄곧 무찌르는데 주유가 비록 유리하나 소수 병력으로 다수 병력을 맞서지 못할까 우려해 마침내 징을 울려 배들을 거둔다.

    조조 군대가 패전해 돌아가자, 조조가 한채 旱寨(육지의 영채)로 올라가 병사들을 재정비하고, 채모와 장윤을 불러 꾸짖는다.

    "동오 병력이 적은데도 도리어 패했으니 너희가 마음을 다하지 않아서다!"

    채모가 말한다.

    "형주 수군은 오래도록 조련받지 못한데다 청서(청주, 서주) 병사들은 평소 수전에 익숙하지 못해 이토록 패하게 됐습니다. 이제 우선 수채 水寨(수상 진지)를 구축해 청서 병사들은 가운데 있게 하고, 형주 병사들은 바깥에 있게 해 매일 충분히 숙련되게 교습하면 비로소 용병할 수 있습니다."

    "네가 수군 도독이니 알아서 할 것이지 내게 아뢸 필요 있냐?"

    이에 장, 채 두 사람이 수군을 훈련하러 물러간다. 장강을 따라 24개의 수문을 설치해, 큰 선박을 바깥에 배치해 성곽으로 삼고, 작은 배 는 안에 두어 오가게 한다. 저녁이면 불을 피워 하늘이고 물이고 온통 붉은 빛이다. 한채(육상 진지)도 3백여 리에 걸쳐 연화 煙火 (전쟁 에 쓰이는 봉화)가 끊이지 않는다.

    한편, 주유는 승리를 거두고 영채로 돌아와 삼군을 호궤하고 포상하는 한편, 사람을 오후 吳侯(손권)가 있는 곳에 보내 승첩을 알린다. 그 날밤 주유가 높이 올라가 관망하니 서쪽에서 불빛이 하늘을 찌른다. 좌우에서 고한다.

    "이 모두 북군 北軍의 등화에서 나오는 빛입니다."

    주유도 속으로 놀란다.

    다음날, 주유가 친히 조조 수군을 살피러 가는데, 명을 내려 누선(누각을 갖춘 큰 배) 한 척을 수습해 고악 鼓樂(취타음악/악대/군악대) 를 대동한다. 건장 健將 (용맹한 장수) 몇몇이 수행하는데 각각 굳센 활과 쇠뇌를 지니고 일제히 배에 올라 쏜살같이 전진한다. 조조 영 채 주변에 이르러 주유가 명을 내려 정석 矴石 (닻으로 쓰는 큰 돌)을 내리고 누선 위에서 일제히 고악을 연주한다. 주유가 그들 수채를 살피고 속으로 크게 놀란다.

    "수군 운용의 묘 妙를 깊이 알고 있구나! 저들 수군 도독이 누구요?"

    좌우에서 말한다.

    "채모, 장윤입니다."

    주유가 생각한다.

    '두 사람은 강동에 오래 머물러 수전에 익숙하니 내 반드시 계책을 써 저 두 사람을 없애야 조조를 격파하겠구나.'

    한참 살피고 있는 사이 벌써 조조군이 주유가 그들 영채를 엿보는 것을 조조에게 급보한다. 조조가 명령해 배를 출동해 잡아들이라 한다. 수채에서 깃발이 움직이자 주유가 급히 닻을 올리게 지시한다. 양쪽 여기저기 노를 저어 강물 위를 나는 듯이 떠나간다. 조조 수채에서 전선들이 출동했을 때 주유 누선은 이미 몇 리 떨어져 따라잡지 못해 돌아가 조조에게 보고한다.

    조조가 뭇 장수에게 묻는다.

    "어제 한바탕 져서 예기가 꺾인데다 오늘 다시 그가 우리 영채를 엿봤소. 내 무슨 계책으로 그를 깨야겠소?"

    말이 미처 끝나기 앞서 갑자기 누군가 나와서 말한다.

    "제가 어려서부터 주랑과 동창으로 사귀었습니다. 바라건대 제 세치 못난 혀로써 강동으로 가서 그를 항복하도록 설득하겠습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바라보니 구강 출신의 장간 '자익'이다. 지금 밑에서 막빈으로 지낸다. 조조가 묻는다.

    "장자익이 주공근과 교분이 두텁소?"

    "승상 마음놓으세요. 제가 강좌 江左(장강 동쪽)에 다다르면 성공하고 말고요."

    "무엇을 갖고 가겠소?"

    "수행할 동자 하나와 배를 움직일 노복 두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조조가 몹시 기뻐하며 장간에게 술을 권하고 떠나보낸다. 장간이 갈건과 베옷 차림으로 작은배를 타고 곧장 주유의 영채에 다다라 전한다.

    "옛 친구 장간이 찾아왔소."

    주유가 마침 장막에서 의사하다가 장간의 도착을 듣고 웃으며 장수들에게 말한다.

    "세객이 왔구려!"

    뭇 장수를 가까이 불러 목소리를 낮춰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한다. 뭇 장수 모두 명을 듣고 나간다.

    주유가 옷차림을 바로한다. 종자들 수백 모두 비단 옷을 입고 화모 花帽 (꽃무늬 화려한 모자)를 쓰고 앞뒤로 그를 호위해 나간다. 장간이 푸른 옷을 입은 동자를 데리고 당당히 걸어오니 주유가 인사해 맞이한다. 장간이 말한다.

    "공근! 그간 무양하셨소?"

    "자익! 고생이 많소. 멀리 강호를 건너 조 씨를 위해 세객으로 왔소?"

    장간이 깜짝 놀라 말한다.

    "내 오래 족하를 만나지 못해 일부러 옛정을 나누러 왔거늘 어찌 나를 세객으로 의심하오?"

    주유가 웃으며 말한다.

    "내 옛날 사광 師嚝만큼 총명하지는 못해도 현가 絃歌 (거문고에 맞춰 부르는 노래)를 듣고 풍아한 뜻은 알 수 있소."

    "족하가 고인을 이리 대하니 청컨대 그만 물러가겠소."

    주유가 웃으며 그 팔을 잡아당기며 말한다.

    "내 다만 형이 조 씨를 위해 세객으로 왔는가 걱정했을 뿐이오. 그런 마음이 없다면서 어찌 벌써 가시려 하오?"

    마침내 함께 장막으로 들어가 인사를 마치고 자리 잡아 즉시 영을 내려 강좌 江左의 영걸들을 모조리 불러 자익을 만나게 한다.

    잠시 뒤 문관과 무장들은 각각 비단옷을 입고, 부하 편장과 비장 등 장교들은 모두 은갑옷을 걸치고 두 줄로 나눠 들어온다. 주유가 지시 해 모두 인사를 마쳐 양쪽으로 줄지어 앉는다. 술자리를 크게 열어 군중에서 승리를 기리는 음악을 연주하며 술을 돌린다. 주유가 관리 들에게 고한다.

    "이분은 저와 같은 스승을 두고 뜻이 맞는 벗이오. 비록 강북에서 왔지만 조 가의 세객은 아니니 여러분은 의심치 마오."

    패검을 풀어 태사자에게 주며 말한다.

    "공은 내 검을 차고 술자리를 감독하시오. 오늘 연회는 다만 벗들이 사귀는 정을 나누는 것뿐이니 만약 조조와 동오 군려 軍旅 (전장의 군대) 사이의 일을 제기하는 자 있거든 즉시 참하시오!"

    태사자가 응낙하고 검을 잡고 윗자리에 앉는다. 장간이 경악해 감히 여러 말 못한다. 주유가 말한다.

    "내 군을 거느린 이래 술 한 방울 마시지 않았소. 오늘 고인을 만난데다 아무 의심이 없어 마땅히 한바탕 취하게 마시리다."

    말을 끝내 크게 웃으며 창음 暢飲(시원스레 마심)하고 술잔이 오고간다. 술이 제법 거나해지자 주유가 장간의 손을 끌고 함께 장막 밖으 로 걸어나간다. 좌우 병사들이 모두 완전무장하고 과 戈와 극 戟을 들고 서 있다. 주유가 말한다.

    "우리 병사들이 제법 웅장하지 않소?"

    "참으로 곰이나 호랑이 같은 병사들이오."

    주유가 다시 장간을 끌고 장막 뒤로 가서 쭉 멀리 바라보니 양초 糧草(식량과 말먹이풀)가 산처럼 쌓여 있다. 주유가 말한다.

    "우리 양초가 제법 넉넉하지 않소?"

    "병력은 정예하고 양초는 풍족하니 듣던대로요."

    주유가 거짓으로 취한 체 크게 웃으며 말한다.

    "주유가 자익과 더불어 같이 배울 때 오늘 같은 날이 올지 생각이나 했겠소?"

    "형의 높은 재주로써 참으로 지나친 것도 아니지요."

    주유가 장간의 손을 잡고 말한다.

    "대장부가 처세해 자기를 알아주는 주공을 만나, 밖으로 군신의 의리를 내게 맡기고, 안으로 골육 같은 은혜를 베풀어, 내 말은 꼭 행하시 고 내 계책은 꼭 따라주시고, 화복 禍福을 함께하시니, 가령 소진, 장의, 육가, 역생(역이기)이 다시 태어나 그 입으로 은하수처럼 유려 하게 말하고, 그 혀로 칼날처럼 예리하게 설득한들 어찌 내 마음을 흔들겠소?"

    말을 마치고 크게 웃는다. 장간 얼굴이 흙빛이다. 주유가 다시 장간을 데리고 장막으로 들어가 장수들과 또 음주하며 그들을 가리켜 말 한다.

    "이들 모두 강동 영걸들이오. 오늘 이렇게 만나 가히 군영회 群英會(영웅들의 모임)라 부를 만하오."

    저녁에 이르도록 음주해 촛불을 밝히자 주유가 몸소 일어나 칼춤을 추며 노래를 지어 부른다. 노래는 이렇다.

    장부가 처세해 공명을 세우고, 공명을 세우면 평생 위안이리라.
    평생 위안을 이루면 내 곧 취하고, 내 취해 미치도록 마시리라.

    노래를 마치자 자리에서 모두 환호하고 웃는다. 밤이 깊자 장간이 사양한다.

    "술기운을 못 이기겠소."

    주유가 술자리를 끝내라 명하니 장수들이 작별해 나간다. 주유가 말한다.

    "오래도록 자익과 더불어 함께 잠자지 못해 오늘밤 발을 나란히 자고 싶소."

    이에 거짓으로 크게 취한 척하며 장간을 끌고 장막으로 들어가 같이 잔다. 주유가 옷을 그대로 입고 자다가 어지럽게 구토한다. 장간이 어찌 잠이 오겠는가? 베개를 베고 듣자니 군중에서 북을 울려 2경을 알려 일어나 바라보니 꺼지지 않은 촛불이 아직 밝다. 주유를 돌아 보니 코를 우레처럼 골고 있다. 장간이 장막 안 탁상 위를 보니 한 뭉치 문서가 있어 침대에서 일어나 엿보니 그 모두가 왕래하는 서신이 다. 그 가운데 한 봉투는 위에 '채모, 장윤이 삼가 봉합니다.'라 적혀 있다. 장간이 크게 놀라 몰래 읽어본다. 서신은 대략 이렇다.

    "저희가 조조에게 항복한 것은 벼슬이나 녹을 바라서가 아니라 사세가 급박했던 것뿐입니다. 이제 이미 북군 北軍을 영채 안에서 기만하 고, 오로지 기회를 보는 즉시 조조 머리를 바치겠습니다. 조만간 사람이 오면 관련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행여나 의심치 마십시오. 우선 이렇게 경복 敬覆 (공경해 답장드림)합니다."

    장간이 생각한다.

    '원래 채모와 장윤이 동오와 연결했구나! ...'

    서신을 몰래 옷 속에 감춘다. 다시 다른 서신들을 살펴보려는데 침대에서 주유가 몸을 뒤집으므로 장간이 급히 등불을 꺼 취침한다. 주유가 중얼거린다.

    "자익! 내 몇달 안에 그대에게 조조 도적놈 머리를 보여주겠소!'

    장간이 마지못해 응하는데 주유가 다시 말한다.

    "자익! 또 오시오! ... 그대에게 조조 도적놈 머리를 보여줄테니! ..."

    장간이 물어보려는데 주유는 다시 곯아떨어진다.

    장간이 침대에 엎드려 4경이 가까워지자 어떤 사람이 장막으로 들어와 부른다.

    "도독!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습니까?"

    주유가 꿈에서 갑자기 깨어난 듯이 그에게 묻는다.

    "침대에서 자는 사람은 누군가?"

    "도독께서 자익더러 같이 자자고 청하신 것을 어찌 망각하셨습니까?"

    주유가 뉘우치며 말한다.

    "내 평소 술 취한 적이 없는데 어제 취하고 실수해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구나."

    "강북에서 사람이 도착했습니다."

    주유가 꾸짖는다.

    "목소리를 낮춰라!"

    그리고 부른다.

    '자익!'

    장간이 자는 척하자 주유가 몰래 장막을 나간다. 장간이 엿들으니 어떤 사람이 밖에서 말한다.

    "장, 채 두 도독께서 '급절 急切(시간이 촉박함)해서 손을 쓰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셨는데 ..."

    그 다음은 너무 낮게 말해서 확실히 알아듣지 못한다.

    잠시 뒤 주유가 들어와 다시 부른다.

    '자익!'

    그러나 장간은 대답치 않고 머리를 가리고 자는 체한다. 주유도 옷을 벗고 취침한다. 장간이 곰곰이 생각한다.

    "주유는 세심한 사람이라 날이 밝아 그 서신을 못 찾으면 반드시 나를 해치겠지 ...'

    5경까지 자다 장간이 주유를 깨우러 부르나 그는 아직 잠들어 있다. 장간이 두건을 쓰고 몰래 걸어 장막을 나가 동자를 불러 원문을 서둘 러 빠져나간다. 병사가 묻는다.

    "선생께서 어디로 가십니까?"

    "내 여기서 도독을 그르칠까 두려워 잠시 고별하네.'

    병사도 그를 막지 않는다.

    장간이 배에서 내려 급히 조조를 만나자 조조가 묻는다.

    "자익, 맡은 일은 어찌됐소?"

    "주유는 아량이 있는데다 뜻이 드높아 제가 말로써 능히 움직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조조가 노해 말한다.

    "일은 성공하지 못하고 도리어 웃음거리가 됐구나!"

    "비록 주유를 설득치 못했으나 승상에게 한가지 알려드릴 일이 있사오니 좌우를 물려 주십시오."

    장간이 그 서신을 꺼내들고 앞서 일어난 일을 한바탕 말한다. 조조가 크게 노해 말한다.

    "두 도적놈이 이토록 무례하구나!"

    즉시 채모, 장윤을 장막으로 불러 들여 조조가 말한다.

    "내 자네 두 사람을 시켜 진병 進兵하고 싶네."

    채모가 말한다.

    "병사들이 아직 숙련되지 않아 쉽게 진병할 수 없습니다."

    조조가 노해 말한다.

    "병사들이 숙련되면 내 수급 首級을 주랑에게 바치겠구나!"

    채, 장 두 사람이 그 뜻을 몰라 당황해 회답하지 못하는데 조조가 무사들에게 두 사람을 끌어내 참하라고 소리지른다. 잠시 뒤 그들의 수급을 바치자 조조가 그제서야 깨달아 말한다.

    "내가 계략에 빠졌구나!"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읊었다.

    조조는 간사한 영웅이라 당할 수 없는데 잠시 주랑의 속임수에 그만 넘어갔구나.
    채, 장은 주인을 팔아 살고자 했으나 하루 아침 칼 맞아 죽을 줄 누가 알았으랴!

    채, 장 두 사람을 죽이자 장수들이 들어와 그 까닭을 묻는다. 비록 계략에 빠진 것은 알지만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 조조가 장수들에게 말 한다.

    "두 사람이 군법을 태만히 하므로 내 그들을 참했소."

    장수들 모두 탄식해 마지않는다. 조조가 장수들 가운데 모개와 우금을 뽑아 수군 도독으로 삼아 채, 장 두 사람 직무를 대행케 한다.

    세작(첩자)이 탐지해 강동으로 넘어가 보고하자, 주유가 크게 기뻐해 말한다.

    "내 걱정거리는 그 두 사람뿐이었소. 이제 없애버려 내 아무 걱정이 없게 됐소."

    노숙이 말한다.

    "도독의 용병이 이러하니 어찌 조조 도적을 못 깰까 걱정하겠소!"

    "내가 헤아리기에 다른 장수들은 이런 계책을 알지 못할테고, 오로지 제갈량의 식견이 나보다 뛰어나니 이 음모 역시 그를 속여 넘기지 못하리라 생각되오. 자경이 그에게 말을 꺼내 건드려 그가 아는지 모르는지 알아보고 즉시 돌아와 알려주시오."

    반간지계 反間之計가 성공했지만 곁에서 구경하던 사람을 시험하러 가는구나.

    노숙이 공명에게 물어서 어찌될는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