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47회 감택이 사항서를 바치고 방통이 교묘히 연환계를 쓰게 만든다

    한편, 감택은 자가 덕윤으로, 회계 산음 사람이다. 집은 가난했으나 배우기를 좋아해, 남에게 고용돼 일하며 일찍이 책을 빌려 읽었다. 한 번 읽으면 잊어버리지 않았다. 말재주가 좋고, 어려서부터 담기 膽氣 (담력)가 있었다. 손권이 불러 참모로 삼았는데 그와 황개는 서로 매우 아꼈다. 황개는 그가 언변이 좋고 담력이 있음을 알아 그더러 거짓 항복 문서를 쓰게 하고 싶었다. 감택이 흔쾌히 응낙해 말한다.

    "대장부가 처세해 공업을 세우지 못하면, 초목과 더불어 썪어 갈 일만 남지 않겠소? 공께서 주군을 위해 몸을 훼손했는데도 제 어찌 미천 한 목숨을 아까워하겠소!"

    황개가 침대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절하며 사례한다. 감택이 말한다.

    "이 일은 늦춰선 안 되니 지금 즉시 행해야 하오."

    "서찰은 이미 다듬어 두었소."

    감택이 서찰을 받아 들고 바로 그날밤 늙은 어부로 변장해 작은 배를 타고 북쪽 강기슭으로 간다. 이날밤 한성 寒星 (차가운 밤하늘의 별. 겨울의 별)이 하늘 가득한데 3경 무렵 벌써 조조군의 수채 水寨(수상 진지)에 닿는다. 강을 순찰하던 병사가 붙잡아 그날밤 조조에게 알린다. 조조가 말한다.

    "간세(간첩)가 아니겠냐?"

    "한낱 늙은 어부가 동오의 참모 감택이라 자칭하며 기밀 사항을 가져 왔다 합니다."

    조조가 그를 데리고 들어 오라 시킨다. 병사가 감택을 데리고 오니 윗자리는 등촉 燈燭(등불과 촛불)이 휘황한데 조조가 방석에 기대어 오만하게 앉아 묻는다.

    "너는 동오의 참모라면서 여기는 무슨 일로 왔냐?"

    "사람들이 조 승상은 현자를 구하기를 목마른 듯이 한다더니 이제 이렇게 묻는 것을 보니 심히 맞지 않는구나. 황공복! 그대도 잘못 생각 했구나!"

    "내가 조만간 동오와 교병(교전)할 텐데, 네가 사사로이 여기를 오니 어찌 묻지 않겠냐?"

    "황공복은 바로 동오 3세에 걸친 오랜 신하요. 그러나 이제 주유가 뭇 장수들 앞에서 까닭없이 독타 毒打 해 분노를 이기지 못하오. 그래서 승상께 투항해 복수의 계책을 삼고자 특별히 그 일을 내게 맡겼소. 나와 공복은 참으로 골육과 마찬가지라 곧장 달려와 밀서를 바치 려 하오만 승상이 받아들이실까 모르겠소."

    "밀서는 어딨소?"

    감택이 서찰을 꺼내 바친다. 조조가 서찰을 펼쳐 등불 아래 읽는다. 서찰은 대략 이렇다.

    '제가 손 씨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본래 다른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사세를 논의하니 강동 여섯 고을 병력으로써 중국(중원)의 백만대군을 맞서면, 중과부적임은 해내가 의견을 같이합니다. 동오의 장수와 관리들은 슬기롭거나 우둔하거나 막론하고 모두 그것이 불가함을 압니다. 주유 어린 놈은 속이 좁고 어리석은데 그 재능을 자부해 함부로 달걀로 돌을 치려 합 니다. 게다가 상벌을 제멋대로 하여, 죄 없는 이를 처벌하고, 공 있는 이를 포상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랜 신하이나 아무 까닭 없이 저를 꺾어 모욕하니 마음이 참으로 한스럽습니다! 엎드려 듣자오니 승상께옵서는 진심으로 인물을 대하고, 관대하고 겸양하게 선비들을 받 아들이신다 하오니 저는 무리를 이끌고 투항해 공을 세우고 치욕을 씻기를 도모하고자 하옵니다. 양초 糧草며 차장 車仗 (짐. 화물. 무라 )은 배에 실어 헌납하겠습니다."

    조조가 탁자 위의 서찰을 10여 차례 뒤집어 살피더니 갑자기 탁자를 내려치고 눈을 부릅떠 크게 노해 말한다.

    "황개가 고육계를 써 너더러 사항서 詐降書(거짓 항복 문서)를 중간에서 처리하게 해 감히 나를 희롱하려는구나!"

    좌우에게 그를 끌어내 참하라 시킨다. 좌우에서 달려들어 감택을 둘러싸나 그는 낯빛이 바뀌지 않은 채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는다. 조조가 다시 불러서 꾸짖는다.

    "내 이미 네 간사한 꾀를 알아챘는데 무슨 까닭으로 비웃냐?"

    "내 너를 비웃는 게 아니다. 우리와 황공복이 사람을 몰라 본 것을 비웃을 뿐이다."

    "사람을 못 알아보다니?"

    "죽이려면 어서 죽이지, 하필 많이 묻냐!"

    "나는 어려서부터 병서들을 숙독해, 간사한 속임수를 탐지한다. 너희 이런 계략은 다른 사람은 속이기 좋아도 나는 어림없다!"

    "너는 서찰에 쓰인 그 일도 간사한 꾀라 말하는 것이냐?"

    "내, 네 꾀가 어떻게 파탄났는지 말해줘서, 네 죽어도 원망이 없게 해주마! 너는 진심으로 서찰을 바쳐 투항한다면서, 어째서 약속 날짜를 밝히지 않았냐? 지금 이런데도 네 무슨 할 말이 있냐?"

    감택이 듣고 나서 크게 웃는다.

    "너는 황공 惶恐(부끄러움)하지도 않냐! 감히 병서를 숙독했다 으스대냐! 차라리 어서 병력을 거둬 돌아감만 못하겠다! 만약 교전하면 반드시 주유에게 잡힐 것이다! 배우지 못한 무리야! 내가 네 손에 죽다니 참으로 애석하구나!"

    "어째서 나더러 배우지 못했다 하냐?"

    "네가 기모 機謀(계책)을 모르고, 도리를 밝히지 못하니 어찌 배우지 못한 게 아니냐?"

    "너는 내가 어디가 그렇게 밝지 못하다는 것이냐? "

    "네가 현자를 대우하는 예의를 갖추지 못한 것이야 말할 필요 있겠냐? 오로지 죽으면 그만일 뿐이다."

    "네가 설득해서 이치가 맞다면 내 자연히 우러러 받들겠다."

    "어찌 듣지도 못했냐? '주인을 배신하는 데, 날짜를 정하지 않는 법이다.' 하였다. 만약 기일을 약정했다가 저쪽은 급박한 사정으로 손 쓰 지 못하는데 이쪽은 도리어 접응한다면 일이 반드시 누설될 것이다. 기회를 엿보다 행동하지 어찌 날짜를 미리 서로 정하겠냐? 네가 이 이치를 모르면서, 좋은 사람을 죽이려 하니 참으로 배우지 못한 무리구나!"

    조조가 듣더니 낯빛을 고쳐 자리를 내려와 사과한다.

    "내가 보기에 일이 분명치 않아, 존위 尊威 (드높은 위엄)를 잘못 범했으니 아무쪼록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오."

    "제가 황공복과 더불어 마음을 기울여 투항함이 마치 갓난 아기가 부모를 바라보듯하는데 어찌 속임수가 있겠습니까?"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두 사람이 큰 공을 세우면 뒷날 벼슬을 내려 반드시 남들 위에 앉히겠소."

    "저희는 작록을 바라 온 것이 아니라 참으로 천명에 응하고 민심을 따를 뿐입니다."

    조조가 술을 내어 대접한다.

    얼마 뒤 누군가 막사로 들어와 조조 귓가에 은밀히 이야기한다. 조조가 말한다.

    "서찰을 가져와라."

    그 사람이 밀서를 바친다. 조조가 살펴보더니 낯빛이 달라지게 크게 기뻐한다. 감택이 몰래 생각한다.

    '이것은 틀림없이 채중, 채화가 황개가 벌을 받은 소식을 전한 것이다. 조조가 그래서 내가 투항한 게 진실이라 믿어 기뻐하구나.'

    조조가 말한다.

    "번거롭겠지만 선생께서 강동으로 되돌아가 황공복과 더불어 먼저 소식을 강너머 보내면, 내 병력을 이끌고 접응하리다."

    "저는 이미 강동을 떠난 몸이라 되돌아 갈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승상께서 따로 기밀을 지킬 사람을 보내십시오."

    "다른 이가 갔다가 일이 누설될까 두렵소."

    감택이 거듭 사양하다 한참 지나 말한다.

    "떠나면 오래 머물 수는 없으니 바로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조조가 금백 金帛(황금과 비단. 재물)을 하사하나 감택이 받지 않고 작별해 영채를 떠나 다시 조각배를 타고 강동으로 되돌아가 황개를 만나 앞서 일어난 일을 낱낱이 이야기한다. 황개가 말한다.

    "공의 능숙한 언변이 아니었다면 저는 헛되이 고생만 했을 뻔했소."

    "내 이제 감녕의 영채로 가서 채중, 채화의 소식을 알아보겠소."

    "그러면 아주 좋지요."

    감택이 감녕의 영채로 가니 감녕이 맞아 들인다. 감택이 말한다.

    "장군이 지난번에 황공복을 구하다 주공근에게 모욕을 당해 내 몹시 언짢소."

    감녕은 웃기만 할 뿐 답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채화와 채중이 온다. 감택이 눈짓을 보내자 감녕이 알아차려 말한다.

    "주공근이 그 재능만 믿고, 우리를 전혀 생각하지 않소. 내 이제 모욕을 당해 강좌 江左 (장강 동쪽. 동오) 사람들 보기 부끄럽소!"

    말을 마치고 이를 박박 갈며 탁자를 내리쳐 크게 소리 지른다. 이에 감택이 감녕 귓가에 낮은 소리로 이야기하는 체하니 감녕은 머리를 수그린 채 말이 없고 거듭 길게 탄식할 뿐이다.

    채중, 채화가 보니 감택, 감녕 모두 반역의 뜻이 있는지라 말로써 건드려 본다.

    "장군 어째서 번뇌하십니까? 선생은 어째서 불평하십니까?"

    감택이 말한다.

    "내 복중 腹中 (뱃속. 마음속)의 고통을 그대가 어찌 알겠소!"

    채화가 말한다.

    "오후(손권)를 배신해 조조에게 넘어가려는 것 아닙니까?"

    감택이 놀라 낯빛이 바뀐다. 감녕이 검을 뽑으며 일어나 말한다.

    "우리 일이 들켜 어쩔 수 없이 너희를 죽여 입을 다물게 해야겠구나!"

    채화, 채중이 황급히 말한다.

    "두 분께서 걱정치 마십시오. 저희도 심복지사 心腹之事(깊이 숨겨둔 일)를 고하겠습니다."

    감녕이 말한다.

    "어서 말해봐라!"

    "저희 두 사람은 바로 조 공께서 보내 거짓 항복한 자들이온데, 두 분께서 귀순할 마음을 가졌다면, 저희가 앞장서 모셔 가겠습니다."

    "네 말이 과연 참이냐?"

    두 사람이 일제히 소리낸다.

    "어찌 감히 속이겠습니까?"

    감녕이 기쁜 척 말한다.

    "그렇다면 이야말로 하늘이 도우시구나!"

    두 채 씨가 말한다.

    "황공복과 장군께서 치욕을 당한 일은 저희가 이미 승상께 알려 드렸습니다."

    감택이 말한다.

    "내 이미 황공복을 위해 승상께 서찰을 바쳐 오늘 일부러 흥패(감녕)를 만나 함께 항복할 약속을 맺으려 했을 뿐이오."

    "대장부가 밝은 주인을 찾았으니 당연히 마음을 기울여 넘어가야지요."

    이에 넷이 함께 음주하며 심사 心事를 함께 논의한다. 두 채 씨가 즉시 글을 써 몰래 조조에게 알리기를, 감녕과 자기들이 함께 내응할 것 이라 한다. 감택이 따로 글을 써 사람을 보내 조조게 몰래 알린다. 글 속에 자세히 적기를, 황개가 오고 싶으나 아직 기회를 얻지 못했다 한다. 다만 뱃머리에 푸른 아기 牙旗 (천자나 장군의 큰 깃발)을 세우고 오는 이가 있으면 바로 황개인 줄 알라 한다.

    한편, 조조는 잇달아 서찰을 두 편이나 받지만 속으로 의혹이 가라앉지 않아 모사들을 불러 모아 상의한다.

    "강좌 江左(장강 동쪽)의 감녕이 주유에게 모욕 받아 내응하기를 바라고, 황개는 책망 받아 납항 納降(투항을 접수시킴)하러 감택을 보 냈으나 모두 아직 깊이 믿지 못하겠소. 누가 감히 주유 영채로 들어가 실상을 탐청 探聽해보겠소?"

    장간 蔣幹이 진언한다.

    "제가 지난번 동오에 헛걸음만 해 아직 공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바라건대 몸을 던져 다시 한번 가서 힘껏 실상을 알아내 돌아 와 승상께 알려 드리겠습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해 즉시 장간더러 배를 타게 한다. 장간이 작은 배를 타고 곧장 강남의 수채 水寨(수상 진지)에 접근해 사람을 시켜 알 리게 한다.

    주유가 장간이 다시 온 것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내 성공은 이 사람에게 달렸구나!"

    곧 노숙에게 부탁한다.

    "방사원을 모셔 와서, '이렇게저렇게' 하시오."

    원래, 양양의 방통 '사원'은 피난하여 강동에 머물고 있었다. 노숙이 일찍이 주유에게 추천했으나 그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주유가 먼저 노숙을 시켜 방통에게 계책을 물었다.

    "조조를 격파하자면 무슨 계책을 써야겠소?"

    방통이 은밀히 노숙에게 말했다.

    "조조군을 격파하자면 화공을 써야 하오. 다만 대강 위에서 배 한척이 불붙어도 나머지는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오. 오로지 연환계로써 그들을 한곳에 못박은 뒤에야 성공할 수 있소."

    노숙이 그것을 주유에게 고하자 주유가 탄복하고 노숙에게 말했다.

    "우리를 위해 그 계책을 행할 이는 방사원뿐이오."

    "다만 조조가 간사교활한데 무슨 수로 방사원을 보내겠소?"

    주유가 골똘히 생각해도 마땅란 방책을 찾지 못하는데, 장간이 다시 왔다는 것이다. 주유가 크게 기뻐하며 한편으로 방통에게 부탁하고 한편으로 장간을 부른다. 장간이 보자 하니 주유가 나와서 맞이하지 않으므로 마음이 흔들리고 걱정이 생겨 어느 외진 강기슭에 닻을 내려두고, 영채로 주유를 찾아간다. 주유가 낯빛을 고쳐 말한다.

    "자익! 무슨 까닭으로 나를 그토록 속였는가?"

    장간이 웃으며 말한다.

    "그대를 옛부터 형제처럼 여겨서 일부러 마음 속 깊은 일을 쏟아놓으려 왔는데 어찌 속였다 하시오?"

    "나를 설득하여 항복하게 만들 속셈이라면 바닷물이 마르고 돌이 가루가 되기를 기다리는 격이네! 지난번에 옛날 사귀던 정으로 자네를 청항 한바탕 취하고 잠자리를 함께했었네. 그러나 자네는 도리어 사사로운 서찰을 훔쳐 인사도 없이 조조에게 돌아가 채모와 장윤을 죽여서 내 일을 그르쳤네. 오늘 무슨 까닭으로 다시 왔는가? 보나마나 좋은 뜻을 품지 않았겠지! 내가 옛정만 아니라면 한칼에 조각낼 것이네! 본래 자네를 보내고 나서 어쨌든 2, 3일 사이에 조조 도적을 격파할 참이었네. 자네를 군중에 머물게 해서는 다시 누설이 되겠지."

    좌우에게 명한다.

    "자익을 서산의 암자로 보내서 머물게 하라. 조조를 격파한 뒤 강건너 보내도 늦지 않지."

    장간이 다시 입을 열려 하나 주유가 이미 뒤로 들어가버린다. 좌우가 말을 끌고와 장간을 태워 서산 뒤 작은 암자로 데려가 머물게 한다. 병사 2인이 시중을 든다. 장간이 암자 안에서 마음이 울적하고, 먹고 자는 것도 불안하다. 그날밤 별들이 하늘 가득 한데 홀로 암자 뒤로 걸어나가니 책 읽는 소리가 들려온다. 발길 닿는대로 걷다 보니, 산 벼랑 둘레에 작은 초옥(초가집)이 있는데 안에 서 등불이 뿜어져 나온다. 장간이 가서 엿보니 한 사람이 검을 걸어 놓은 채 등불 앞에서 손오병서 孫吳兵書를 읊고 있다. 장간이 생각하니 이 사람은 틀림없이 이인 異人이라, 문을 두들겨 뵙기를 청한다. 그 사람이 문을 열고 나와 맞이하는데 생김새와 행동거지가 속되지 않다. 장간이 성명을 묻자 답한다.

    "나는 방통 '사원'이요."

    "바로 봉추 선생 아니십니까?"

    "그렇소."

    장간이 기뻐하며 말한다.

    "큰 명성 들은 지 오래인데 지금 어찌 이런 곳에 은거하십니까?"

    "주유가 스스로 재주 높은 것을 믿어, 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나는 이곳에 은거하고 있소. 공은 누구시오?"

    "저는 장간입니다."

    그러자 방통이 초옥으로 불러 들여 함께 앉아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장간이 말한다.

    "공의 재주로써 어찌 불리한 쪽으로 오셨습니까? 조 승상께 가시겠다면 제가 모시고 앞장서겠습니다."

    "나도 강동을 떠나려 한 지 오래요. 공이 앞장서시겠다니, 지금 당장 갑시다. 늦추다 주유가 알면, 틀림없이 해를 입게 되오."

    이에 장간과 더불어 그날밤 산을 내려와 강변에 이르러 원래 타고 온 배를 찾아 급히 노를 저어 강북으로 간다. 조조 영채에 이르러 장간 이 먼저 들어가 만나, 앞서 일어난 일을 낱낱이 말한다. 조조가 봉추 선생이 왔다 듣고 몸소 막사를 나와 맞이해 들여 손님과 주인 자리로 나눠 자리 잡아 앉아 묻는다.

    "주유, 어린 놈이 자기 재능을 믿고 사람들을 업신여겨 좋은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소. 내 오래전부터 선생의 큰 명성을 들었는데 이제 왕 림해주시니 아무쪼록 아낌없이 가르쳐 주시오."

    "제가 평소 듣자니 승상께서 용병하시는 데 법도가 있다 합니다. 이제 바라건대 한번 군용 軍容(정비된 군대의 기상, 위용 등등)을 보고 싶습니다."

    조조가 말을 준비하라 시켜 방통을 데리고 함께 먼저 한채 旱寨(육상진지)를 둘러본다. 방통이 조조와 더불어 나란히 말을 몰아 높이 올 라가 멀리 바라보더니 말한다.

    "산을 옆에 끼고 숲을 의지해 앞뒤로 돌보고, 출입하는 데 문이 있고, 물러나고 나아가는 데 곡절 曲折이 있으니, 비록 손오 孫吳 (손자와 오기)가 다시 태어나고 양저(사마양저)가 다시 나온들, 역시 이보다 나을 수 없겠습니다."

    "선생은 과찬하지 마시오. 바라건대 가르침을 내려 주시오."

    이에 다시 함께 수채 (수상진지)를 둘러본다. 바라보니, 남쪽으로 24개의 문이 나뉘어 있는데, 각각 몽동 艨艟 (옛 싸움배의 하나) 전함 들이 쭉 둘러싸 성곽처럼 되어, 가운데에 작은 배들을 두었으며 왕래하는 수로가 있고, 기복 起伏에 질서가 있다. 방통이 웃으며 말한다.

    "승상께서 용병을 이리 하시니, 명불허전 名不虛傳 (명성이 헛되이 전해지지 않음) 입니다!"

    그리고 강남을 가리키며 말한다.

    "주랑 周郎아! 주랑아! 망할 날이 멀지 않구나!"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영채로 돌아가 막사로 불러 들여 술을 내어 함께 음주하며, 병기 兵機 (용병의 적절한 대책)를 이야기한다. 방통이 거 리낌없이 웅변하고 그 응답이 물흐르듯한다. 조조가 몹시 탄복해 마음을 다해 대접한다. 방통이 취한 척 말한다.

    "감히 묻겠는데, 군중에 양의 良醫(뛰어난 의사)가 있지 않습니까?"

    조조가 왜 그러냐 묻자 방통이 말한다.

    "수군에 질병이 많을테니 꼭 양의를 써 치료해야지요."

    당시 조조군이 그곳 수토 水土(풍토)가 맞지 않아 모두 구토하는 질병이 생겨 많이들 죽었다. 조조가 그 일을 걱정하는 참에 방통의 말을 들었으니 어찌 묻지 않겠는가? 방통이 말한다.

    "승상께서 수군을 교련하는 법이 몹시 훌륭합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완전치는 않습니다."

    조조가 거듭 청해 묻자 방통이 말한다.

    "제게 계책이 하나 있사온데 대소 大小 (지위가 높고 낮은) 수군 장졸들로 하여금 아무 질병이 없게 해 편안히 공을 이루게 할 수 있습니 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그 묘책을 듣고 싶어 하자 방통이 말한다.

    "대강 안에서 조류가 드나들고 풍랑이 쉬지 않고 북방 병사들이 배 타는 데 서툰데 이렇게 요동이 그치지 않으니 바로 질병이 생깁니다. 만약 큰 배와 작은 배를 각각 모두 서로 받쳐 주도록, 혹은 30척을 한 줄로, 혹은 50척을 한 줄로 해 뱃머리와 꼬리를 쇠고리로 사슬을 잇고, 위에 넓은 판자를 깔아 놓는다면, 말할 것도 없이 사람도 건너 다니고, 말도 달릴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다니면 풍랑이 불고 조수 가 드나든들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조조가 자리에서 내려와 사례한다.

    "선생의 좋은 계책이 아니면 어찌 능히 동오를 쳐부겠습니까?"

    "제 얕은 소견이니 승상께서 잘 판단하십시오."

    조조가 즉시 전령해 군중에서 철장 鐵匠 (쇠를 다루는 장인)을 불러 그날밤 쇠사슬과 대못을 만들어 배들을 쇠사슬로 묶는다. 병사들이 듣더니 모두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었다.

    적벽에서 격전을 치루자면 화공을 써야 함은, 계책을 헤아려 본 이 모두 동의한 것.
    그러나 방통의 연환계가 아니었더라면 공근이 어찌 큰 공로를 세울 수 있었겠는가?

    방통이 다시 조조에게 말한다.

    "제가 강좌 江左의 호걸들을 살펴보니 많은 이들이 주유를 원망합니다. 제가 세치 혀로 승상을 위해 그들을 설득해 모두 투항하게 하면, 주유는 고립무원 孤立無援 (외로이 아무 도움 받을 데 없음)이라 반드시 승상께 사로잡힐 것입니다. 주유를 깨고 나면, 유비는 아무 대 책이 없게 됩니다."

    "선생이 과연 큰 공을 거두시면, 내 천자께 청해 삼공의 반열에 봉하리다."

    "제가 부귀를 위해서가 아니오라 다만 만백성을 구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승상께서 강을 건너시거든 아무쪼록 그들을 살해하지 마십시 오."

    "내가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하거늘 어찌 차마 인민을 살륙하겠소?"

    방통이 절을 올리며 방문 榜文을 구해 그 집안 사람들을 지키려 하자 조조가 말한다.

    "선생의 가속 家屬 (집안 식구)들은 현재 어디 있소?"

    "강변에 있는데 이 방문을 구하면 보전할 수 있겠습니다."

    조조가 명해 방문 여러 장을 써 방통에게 주니 방통이 절을 올려 사례한다.

    "제가 떠난 뒤 어서 진병하시어 주랑이 알아차릴 틈을 주지 마십시오."

    조조가 그러겠다 한다.

    방통이 작별 인사를 올리고 강변에 다다라 배에 타려는데 강기슭에서 누군가 도포를 입고 대나무 갓을 썼는데, 방통을 손으로 잡아 제지하며 말한다.

    "네가 간도 크구나! 황개는 고육계를 쓰고, 감택은 사항서 (거짓 항복 문서)를 가져 오더니 너는 연환계를 바치러 오다니! 불 살라져 끝 없이 죽어갈 게 두려울 뿐이구나! 너희가 저런 독수 毒手들로써 조조를 속이기는 좋겠다만 나를 속여 넘길 수는 없다!"

    깜짝 놀란 방통은 넋이 날아간다.

    동남 東南이 능히 승리를 거두리라 말하지 말라! 누가 서북 西北에는 사람이 없다 말하리?

    과연 이 사람은 누굴까?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