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제55회 유현덕이 지혜롭게 손부인을 움직이고 제갈공명이 또다시 주공근을 도발한다
한편 현덕 玄德은 손부인 孫夫人의 방 안 양쪽으로 창칼이 수풀처럼 빽빽하고, 시비(시중드는 여종)들이 모두 검을 차고 있는 것을 보고 , 저도 모르게 창백해진다. 관가파 管家婆 (집안을 관리하는 여자)가 진언한다.
"귀인께서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부인께서 어려서부터 무술을 좋아하여, 거주하시면서 늘 시비들에게 격검 擊劍 (검술)을 시키는 것을 즐겨서 이렇습니다."
유비가 말한다.
"부인이 보고 즐길 일이 아니오. 내 몹시 심한 心寒 (마음이 떨림. 실망함)하니, 잠시 치우라 하시오."
관가파가 손부인에게 아뢴다.
"방 안에 병기들을 늘어놓아, 교객 嬌客 (신랑. 사위)께서 불안해 하시니, 이제 치우시는 게 좋겠습니다."
손부인이 웃으며 말한다.
"반평생을 시살 廝殺 (교전. 싸움)하신 분이, 아직도 병기가 무섭다고요?"
명을 내려 모조리 치우고, 시비들에게도 검을 풀어놓고 시중 들게 한다. 그날밤 현덕이 손부인과 혼례를 치르고, 둘이 정을 통해 즐겁 고 흡족하다. 현덕이 또한 금백 金帛 (돈과 비단)을 시비들에게 나눠줘 그들의 마음을 사고, 먼저 손건에게 지시해 형주로 돌아가 기 쁜 소식을 전하게 한다. 이로부터 며칠을 잇달아 음주한다. 오국태도 십분 十分 경애한다.
한편 손권은 사람을 시상군으로 보내 주유에게 알린다.
"내 모친이 강력히 주장하여 내 누이를 유비에게 시집보냈소. 뜻밖에 농담이 진담이 돼버렸소. 이 일을 어떻게 되돌리겠소?"
주유가 듣고 크게 놀라, 한 가지 꾀를 짜내고, 밀서를 써서 그 심부름꾼에게 줘서, 되돌아가 손권을 만나게 한다. 손권이 밀서를 뜯어본다 . 밀서는 대략 이렇다.
"제가 도모한 일이, 이렇게 뒤집힐 지 몰랐습니다. 기왕에 농담이 진담이 됐으니 이것을 이용해 계책을 써야 합니다. 유비는 효웅의 면모가 있고 관, 장, 조운 같은 장수가 있을 뿐더러 제갈량이 계책을 잘 쓰니 결코 남의 밑에 오래 머물 사람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 그를 동오에 잡아두는 게 으뜸이니 궁실을 성대히 지어, 그 심지를 꺾으십시오. 미녀들과 완호 玩好(좋아하는 물건)들을 많이 보내어 이목을 즐겁게 하십시오. 관우, 장비와의 정을 잊게 하고 제갈량과의 약속을 잊게 하고서 각각 한곳씩 병력을 배치하여 그뒤 병력으로써 공격하면 대사가 이뤄질 것입니다. 지금 그를 풀어주면 교룡이 비구름을 얻음이니 연못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명공께서 심사숙고하소서."
손권이 보고 나서 밀서를 장소에게 보이자 장소가 말한다.
"공근의 계책이 바로 제 뜻과 맞습니다. 유비는 출신이 미천하고 천하를 분주히 다니느라 아직 부귀를 누려보지 못했습니다. 화려한 집에서 자녀와 금백을 그로 하여금 항유하게 하면 자연히 공명, 관, 장 등과 멀어지게 됩니다. 그들 서로 원망하게 만든 뒤에 형주를 도모 할 수 있습니다. 주공께서 공근의 계책에 따라 속행하십시오. "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그날 바로 동부를 수리하고 꽃과 나무를 널리 심고 각종 기물을 성대히 갖춰 현덕과 누이를 청해 거주하게 한다. 또한 여악사 수십 명과 아울러 금옥, 화려한 옷과 각종 좋은 물건들을 더해준다. 오국태는 손권의 좋은 뜻으로만 알아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 현덕이 과연 음악과 여색에 빠져 형주로 돌아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한편 조운은 오백 병사와 더불어 동부 앞에 머물며 하루종일 아무 할 일이 없어 다만 성밖으로 나가 활을 쏘고 말달릴 뿐이다. 점점 연말이 다가오는데 조운이 갑자기 깨닫는다.
'공명이 분부하며 내게 비단주머니 세개를 줘서 남서에 도착하면 첫번째 주머니를 열라 하였고 연말이 되면 두번째 주머니를 열라 하였다. 위급해 아무 대책이 없을 때가 되면 세번째를 열라 하였다. 이 안에 신출귀몰할 계책이 있을테니 주공을 보호해 귀가할 수 있다. 이제 올해가 곧 끝나려 하는데, 주공께서 여색에 탐닉해 만날 수도 없으니 어찌 두번째 비단주머니를 열어 보고 실행하지 않겠는가?'
곧 그것을 뜯어 살피니, 참으로 신묘한 계책이 들어 있다. 그날 바로 부당으로 서둘러 가서 현덕을 만나고자 한다.
시비들이 아뢴다.
"조자룡이 긴급한 일이 있어 귀인께 말씀 드리러 왔다 합니다. "
현덕이 불러 들여 묻자 조운이 몹시 놀란 척 말한다.
"주공께서 화려한 집에 깊숙히 머무시며 형주로 돌아가실 것을 잊으셨을 뿐입니까? "
"무슨 일로 이렇게 경괴 驚怪(놀라고 의아함)하시오?"
"오늘아침 공명이 사람을 보내어 알리기를 조조가 적벽오병(격전)의 한을 갚겠다며, 정병 5십만을 일으켜 형주로 쇄도하여 매우 위급 하오니, 청컨대 주공께서 바로 되돌아오시라 합니다."
"부인과 상의하는 게 필수겠소."
"부인과 상의하시면, 필시 주공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이야기하지 마시고, 오늘밤 바로 길을 떠남만 못합니다. 지체하면 일을 그르칩니다."
"그대는 우선 잠시 물러가시오, 내 나름대로 방법이 있소."
조운이 고의로 몇번이나 조르고 물러난다. 현덕이 들어가 손부인을 만나 은근슬쩍 눈물을 떨구자, 손부인이 말한다.
"부군께서 무슨 까닭으로 번뇌하시오?"
"내 한몸 타향으로 떠돌다가, 평생 어버이를 모시지 못한데다, 종조(조상)의 제사도 못 올리니, 곧 대역불효 大逆不孝요. 이제 세단 歲旦 (원단/설)이 가까워, 내 마음이 읍앙 悒怏 (우울한데다 즐겁지 않음)해지는구려."
"당신은 나를 속이지 마시오. 내 이미 듣고 알고 있소. 방금 조자룡이 형주의 위급을 아뢰어, 당신이 되돌아 가고자, 이렇게 핑계를 대시 는군요."
현덕이 무릎 꿇어 고한다.
"부인께서 이미 아시거늘 내 어찌 감히 부인을 더 이상 속이겠소? 내 떠나고 싶지 않으나, 형주를 잃게 만들면, 천하 사람들의 웃음거리 가 될 것이요, 떠나자니 부인과 아쉽게 이별해야 하오. 이래서 번뇌하오."
"첩이 이미 부군을 모시게 되었으니 부군께서 가시는대로 첩도 당연히 따라야지요."
"부인의 마음 비록 이와 같으나, 아무래도 국태와 오후께서 어찌 부인이 가는 것을 용납하겠소? 부인께서 이 유비를 가련히 여기시면, 잠 시 작별하게 해주시오."
말을 마치고, 눈물이 비오듯하다. 손부인이 권한다.
"부군께서 번뇌하지 마시오. 첩이 마땅히 모친께 애써 고하여, 반드시 첩과 부군이 함께 떠날 수 있도록 우리를 놓아 주시게 하겠소."
"국태께서 기꺼이 받아주시더라도, 오후께서 틀림없이 막아설 것이오."
부인이 한참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한다.
"첩과 부군이 정단 正旦(설날)에 하례 드릴 때, 강변에서 조상 제사를 올린다 핑계대고, 말없이 떠나는 것은 어떻겠소?"
현덕이 다시 무릎 꿇고 사례한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죽어도 은혜를 못 잊을 것이오. 절대 누설해선 안 되오."
둘이 상의를 마친다. 현덕이 은밀히 조운을 불러 분부한다.
"정단 날에 그대는 먼저 군을 이끌고 성을 나가, 관도에서 기다리시오. 내가 조상 제사를 핑계로, 부인과 함께 달아나겠소."
조운이 영낙 領諾(응낙)한다. 건안 15년 봄 정월 원단에, 오후가 문무 관리를 당상에 크게 불러 모은다. 현덕이 손부인과 들어가 국태에 게 절한다. 손부인이 말한다.
"부주 夫主 (남편)께서 조상들의 묘소가 모두 탁군 涿郡에 있는 것을 생각하며 밤낮으로 슬퍼해 마지않습니다. 오늘 강변으로 가서 멀리 북쪽을 향해 요제 遙祭 (멀리 타향에서 올리는 제사)를 치르고자 하여, 모친께 알릴 뿐입니다."
오국태가 말한다.
"이것은 효도이거늘 어찌 따르지 않으랴! 네 비록 구고 舅姑 (시부모)를 알지 못하나, 네 남편과 함께 제사 지내러 어서 가는 것이, 역시 부인된 예의리라."
손부인이 현덕과 함께 절을 올려 사례하고 나간다.
이렇게 손권 측을 기만한 것이다. 부인이 수레에 올라, 허리띠를 바짝 조은다. 현덕이 말에 올라, 몇 기의 근수 跟隨(가까이에서 시중 드는 하인)를 거느려 성을 나가, 조운과 만난다. 5백 병사가 앞뒤로 빽빽히 호위하여, 남서 南徐를 떠나 길을 간다. 그날 손권이 만취하 여, 좌우에서 근시 近侍(가까이서 시중드는 사람)들이 부축해 후당으로 들어가자, 문무 관리들 모두 해산한다. 관리들이 현덕과 부인 이 도둔 逃遁(도피)한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저녁이 다 됐을 때다. 손권에게 보고하려 하나, 그가 취해 아직 깨어나지 못한다. 겨우 잠에서 깨어난 시각이 5경 (새벽 3-5시)이다.
다음날, 손권이 현덕의 도주를 전해 듣더니, 급히 문무 관리들을 불러 상의한다. 장소 張昭가 말한다.
"오늘 이 사람이 달아나면, 조만간 반드시 화란 禍亂이 생길 테니, 어서 뒤쫓아야 합니다. "
손권이 진무 陳武와 반장 潘璋에게 정병 5백을 줘, 밤낮없이 힘써 뒤쫓아 잡아오라 명령한다. 두 장수가 명을 받아 떠난다. 손권이 현덕을 깊이 원망하여, 탁자 위의 옥 벼루를 내던져 산산조각이 난다. 정보 程普가 말한다.
"주공께서 노기가 하늘을 찔러, 진무, 반장이 그를 잡을 수 없음을 헤아리지 못하셨습니다."
"어찌 감히 내 명령을 거스르려 하오!"
"군주 郡主 (제후의 딸 곧 손부인)께서 어려서부터 무술을 좋아하시고, 엄의 嚴毅 (엄숙하고 굳셈) 강정 剛正 (굳세고 바름)하신지라, 장수들이 모두 무서워 합니다. 이미 기꺼이 유비를 따라 가셨으니, 틀림없이 그와 한 마음으로 떠나셨습니다. 뒤쫓는 장수들이 군주를 뵈오면 어찌 손을 쓰겠습니까?"
손권이 크게 노하여,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고, 장흠 蔣欽과 주태 周泰를 불러 명을 듣게 한다.
"그대 두 사람은 이 검을 들고 가서 내 누이동생과 유비의 목을 취해 오시오! 명령을 어기는 자 당장 참하시오!"
장흠과 주태가 명을 받들어 뒤따라 3천 군을 이끌고 추격한다.
한편 현덕은 채찍을 가하고 말고삐를 풀어 길을 서둘러 그날밤 두 차례 잠시 쉴 뿐 갈 길을 재촉한다. 점점 시상군 경계에 가까워지는데 멀리 뒤쪽에서 먼지구름이 크게 일어나는데 추격병이 다다랐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현덕이 황망히 조운에게 묻는다.
"추격병이 따라붙었으니 어찌해야겠소?"
"주공께서 선행하십시오. 제가 뒤를 막겠습니다. "
앞쪽의 산기슭을 돌아가자 1군이 길을 막아선다. 선두 대장 2명이 성난 목소리로 높이 외친다.
"유비는 어서 말에서 내려 포박을 받으라! 주 도독의 장령을 받들어 지켜 기다린지 오래다."
알고보니 주유가 현덕의 탈주를 두려워 해 먼저 서성과 정봉을 시켜 삼천 군을 거느리고 요충지에 주둔해 대기하게 하였다. 그 때 사람들을 시켜 멀리 살펴 보고 현덕이 지름길로 온다면 반드시 이 길로 오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날 서성, 정봉은 현덕 일행이 다다 른 것을 조망하고 각자 병기를 챙겨 길을 가로막은 것이다. 현덕이 놀라 당황해 말고삐를 잡아당겨 돌려 조운에게 묻는다.
"앞으로 많은 병력이 막아서고 뒤로 추격병이 있어 앞뒤로 길이 없는데 어찌해야겠소?"
"주공 당황하지 마십시오. 군사께서 세 가지 계책을 비단주머니에 넣어주셨습니다. 벌써 두 개를 열어 모두 효험을 봤습니다. 아직 세번 째 주머니가 남았는데 위급한 때를 만나서야 풀어보라 분부하셨습니다. 오늘 참으로 위급하니 마땅히 뜯어서 봐야겠습니다. "
곧 비단주머니를 열어 현덕에게 바친다.
현덕이 보고 나서 급히 추격해온 병사들 앞에서 손 부인에게 울며 고한다.
"내게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 지경에 이르러 이실직고하겠소."
"부군께서 무슨 하실 이야기가 있더라도 사실대로 말씀하십시오."
"지난날 오후와 주유가 공모해 부인을 이용해 이 유비를 장가오게 한 것은 참으로 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유비를 유수(가둠) 해 형주를 빼앗으려 했을 따름이오. 형주를 빼앗고 나면 나를 죽이고 말겠지요. 부인을 미끼로 써서 나를 낚은 것이오. 나는 만번 죽 어도 두렵지 않소만, 어찌 부인에게 남자 같은 흉금이 있으니, 나를 가련히 여기지 않으시겠소? 어제 오후가 곧 해치려 한다고 전해듣고, 형주에 환난이 닥친다는 핑계로 돌아갈 계책을 삼았소. 다행이 부인께서 나를 버리지 않고 여기까지 함께 오셨소. 이제 오후께서 다시 사람들을 시켜 뒤쫓게 한데다, 주유 또한 사람을 시켜 앞에서 가로막으니, 부인께서 나서지 않으면 이 화를 풀 수 없겠소. 만약 부인께서 윤허하지 않으시면, 나는 청컨대 수레 앞에서 죽어 부인의 은덕을 갚고자 하오."
부인이 노해 말한다.
"제 오라비가 나를 골육으로 여기지 않는데 내게 무슨 면목이 있어 그를 중히 바라보겠소! 오늘의 위기는 제가 마땅히 스스로 풀겠소."
이에 종인들에게 호통쳐 수레를 밀고 곧장 앞으로 나가 수레의 주렴을 말아올려 몸소 서성과 정봉을 꾸짖는다.
"너희 두 사람이 어찌 반역하냐?"
서성, 정봉 두 사람이 황망히 말에서 내려 병기를 놓고 수레 앞에서 두 손 모아 대답한다.
"어찌 감히 반역하겠습니까? 주 도독의 장령을 받들게 되어, 이곳에 둔병하며 오로지 유비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손 부인이 크게 노해 말한다.
"주유는 역적이다! 우리 동오가 너희를 저버린 적이 없었다! 현덕은 바로 대한의 황숙이시며 내 남편이다. 내 이미 모친과 오라버님께 형 주로 따라갈 것이라 말씀드렸다. 그런데 너희 둘이 산기슭 쪽에서 군마들을 이끌고 도로를 막으니 우리 부부의 재물을 빼앗으려 할 따 름이냐?"
서성, 정봉이 그저 네, 네 하며 변명한다.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청컨대 부인께서 노여움을 푸십시오. 이것은 저희가 간여한 일이 아니오라 주 도독의 장령입니다."
손부인이 호통친다.
"너희가 주 도독만 무섭지, 나는 두렵지 않냐? 주유가 너희를 죽인다면, 나는 어찌 주유를 죽이지 못하겠냐?"
주유에 대해 한바탕 크게 욕하고, 호통쳐서 수레를 밀어 전진하게 한다. 서성, 정봉이 생각한다.
'우리는 아랫사람이거늘 어찌 감히 부인을 위요 違拗 (어기고 반항함)하겠는가?'
게다가 조운이 잔뜩 노기를 품고 있는 게 보여 할 수 없이 병력을 멈춰 세우고 대로를 열어줘 통과시킨다.
겨우 5, 6리를 못 가, 배후에서 진무와 반장이 뒤쫓아 당도한다. 서성, 정봉이 그 일을 자세히 말하자, 진무, 반장 두 장수가 말한다.
"그대들이 그를 놓아줘 가게 한 것은 틀렸소. 우리 두 사람은 오후의 지시를 받들어 특별히 그를 잡아 되돌아가려 왔소."
이에 네 장수가 병력을 모아 길을 나서 뒤쫓는다. 현덕이 한창 가는데 뒤에서 함성이 크게 이는 것이 들린다. 현덕이 다시 손 부인 에게 고한다.
"뒷쪽에서 추격병이 다시 오는데 어찌해야겠소?"
"부군께서 선행하십시오. 제가 조자룡과 더불어 뒤를 맡겠습니다."
현덕이 먼저 3백 군을 이끌고 강기슭 쪽으로 떠난다. 자룡이 수레 옆에서 늑마 勒馬 (말고삐를 잡아 말을 세움)하고, 사졸들을 전개하 여 그 장수들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네 장수가 손 부인을 발견하고 말에서 내려 손을 모아 선다. 부인이 말한다.
"진무, 반장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소?"
두 장수가 답한다.
"주공의 명을 받들어 부인과 현덕을 모시고 돌아가고자 합니다."
부인이 정색해 꾸짖는다.
"너희들 필부 패거리가 우리 남매를 이간해 화목하지 못하게 할 셈이냐! 내 이미 타인에게 시집갔으니, 오늘 형주로 가는 것이, 결코 다른 사람과의 사분 私奔 (남녀가 사통해 달아남)이 아니다. 나는 우리 부부더러 형주로 돌아가라 말씀하신 모친의 뜻을 받든 것이다 . 내 오라버님이 오셨더라도, 역시 마땅히 예의를 차려 갔을 것이다. 너희 두 사람이 병위 兵威를 믿고서, 나를 살해할 셈이냐?"
욕을 듣는 네 사람이 서로 엿보며 각자 곰곰이 생각한다.
'그들은 1만년이 지나도 남매이다. 게다가 오국태가 작주 作主 (책임지고 결정함) 한 것인데, 오후는 대효지인 大孝之人이니, 어찌 모친 의 말씀을 거스르겠는가? 내일이라도 화를 내며 낯빛을 바꾸면 바로 우리가 그른 것이다. 인정을 베품만 못하리라.'
게다가 군중에 현덕은 안 보이고, 다만 조운이 눈을 부릅뜨고 눈썹을 치켜세운 채 시살하기만 기다리고 있는지라, 이들 네 장수가 예, 예 하며 물러간다. 손 부인이 명해 수레를 밀고 곧 길을 간다. 서성이 말한다.
"우리 네 사람 함께 가서 주 도독을 뵙고, 이 일을 아룁시다."
네 사람이 머무거리며 매듭짓지 못하는데 1군이 질풍처럼 달려온다. 바라보니 장흠과 주태다. 두 장수가 묻는다.
"그대들은 유비를 발견하지 못하였소?"
"아침에 지나갔는데 벌써 반나절이 됐소."
장흠이 말한다.
"어째서 붙잡지 않았소?"
네 장수가 각각 손 부인이 이야기했던 일을 말한다. 장흠이 말한다.
"바로 오후께서 이렇게 될까 걱정하셔, 이 한 자루 검을 내리시며, 먼저 그 누이를 죽인 뒤 유비를 베어 죽이라 지시하셨소. 어기는 자 바 로 참하겠소!"
"벌써 멀리 떠났는데, 어찌하겠소?"
"그들은 보병들을 제법 거느려 서둘러 가기 어렵소. 서, 정, 두 장군은 어서 도독께 달려가 급보하여, 물길에서 쾌속선으로 뒤쫓게 하시오 . 우리 네 사람은 강기슭으로 추격하겠소. 수륙 어디서든 따라잡아 죽일 것이지, 결코 그들의 말을 듣지 마시오.'
이에 서성, 정봉이 주유에게 급보하러 간다. 장흠, 주태, 진무, 반장 넷은 병력을 거느리고 강을 따라 뒤쫓는다.
한편 현덕 일행의 인마는 시상에서 제법 떨어져 유랑포에 이르니 마음이 비로소 조금 좀 놓인다. 강기슭에 다다라 건너려 하는데 온통 강물만 출렁일 뿐 배 한 척 안 보인다. 현덕이 고개 숙여 침음 沈吟 (깊이 생각함)한다. 조운이 말한다.
'주공께서 호랑이 아가리에서 피하셔서 이제 우리 경계에 가깝습니다. 제가 헤아리기에, 군사께서 틀림없이 준비를 해두셨을 텐데, 무 엇 때문에 걱정하십니까?"
현덕이 듣고 나더니, 맥연 驀然히 (언뜻) 동오에서 번화하게 지낸 일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처연히 눈물을 흘린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렸다.
오, 촉이 성혼하니 강물도 맑은데, 명주처럼 아름다운 신부는 황금으로 꾸민 신방으로 걸어 들어갔네.
누가 알았으리오? 한 여자가 천하를 가볍게 여기고, 삼국을 정립하려던 유현덕의 마음을 흔들 줄이야!
현덕이 명해 조운이 앞으로 가서 선박을 찾아 보는데, 후면에서 먼지와 흙바람이 하늘을 찌르며 일어난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현덕이 높은 데 올라 멀리 바라보니, 군마들이 땅을 뒤덮어 오고 있는지라 탄식한다.
"날마다 서둘러 달아나느라 사람들은 지치고 말들도 힘이 다했는데 추격병이 또다시 당도하니, 죽을 수 밖에 없겠구나!"
점점 함성이 가까워진다. 몹시 황급한 순간에 갑자기 강변을 따라 봉선 篷船 (돛이 없는 작은 배)들 20여 척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운이 말한다.
"하늘이 도와 여기 배가 있습니다! 일단 건너편으로 노를 저은 뒤 다시 조처합시다!"
현덕과 손 부인이 곧 배에 오른다. 자룡이 5백 군을 이끌고 역시 모두 배에 오른다. 그런데 선창 가운데 한 사람이 윤건에 도복을 입은 채, 크게 웃으며 나와 말한다.
"주공! 기뻐하십시오! 저 제갈량이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랩니다."
배 안에 손님으로 꾸민 이들도 모두 형주의 수군이다. 현덕이 크게 기뻐한다. 머지않아 동오의 네 장수가 뒤쫓아 온다. 공명이 강기슭의 그들을 가리켜 말한다.
"내가 이미 계책을 마련한 지 오래다. 너희는 되돌아가 주랑에게 전해 다시는 미인국 美人局(미인계)을 수단으로 쓰지 말라 하라."
강기슭에서 어지러이 화살을 날리나 배들이 이미 멀어진 뒤다. 장흠 등 네 장수가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다.
현덕과 공명이 한창 가고 있는데 강물 소리 요란하여, 고개돌려 바라보니, 전선들이 무수하다. 장수 수자 帥字 깃발 아래 주유가 역전의 수군을 거느리고, 좌측은 황개, 우측은 한당이 맡아 그 기세가 내달리는 말 같고 빠르기가 유성 流星 같다. 점점 뒤쫓아오자 공명 이 북쪽 강기슭으로 배를 젓도록 지시해 강기슭에 다다라 배들을 모조리 버리고 상륙해 달아나, 수레와 말들이 출발한다. 주유가 뒤 따라 강변에 도착해 역시 강기슭을 올라 추격한다. 지위가 높고 낮은 수군들은 모조리 걸어가고 다만 선두에 관군 기마들이 있을 뿐이 다. 주유가 앞장서고, 황개, 한당, 서성, 정봉이 바짝 뒤따른다. 주유가 말한다.
"이곳이 어디냐?"
병사가 답한다.
"앞쪽은 황주 입구입니다."
내다보니 현덕의 군마들이 멀지 않아, 주유가 힘을 다해 추격하라 명한다.
한창 추격하는데, 북소리 크게 울리더니, 산골짜기에서 한 무리 도수 刀手들이 몰려나오는데 앞장선 대장은 바로 관운장이다. 주유가 거지실착 舉止失措 (행동거지가 평소와 다름. 정신이 나감)해 서둘러 말머리를 돌려 달아난다. 운장이 뒤쫓자, 주유가 말을 급히 몰아 도망간다. 한창 달아나는데, 좌변에서 황충이, 우변에서 위연이 이끄는 2로의 병사들이 튀어나와, 동오군이 대패한다. 주유가 급급 히 배에 오를 때, 강기슭 위의 병사들이 일제히 크게 외친다.
"주유가 묘책으로 천하를 안정시킨다더니, 부인도 넘겨주고 싸움도 졌구나!"
주유가 노해 말한다.
"다시 상륙해 한바탕 죽기로 싸우겠다!"
황개와 한당이 힘써 말린다. 주유가 생각한다.
'내 계책이 성공하지 못하였으니 무슨 면목으로 오후를 찾아가 만나겠는가!'
크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자 금창 金瘡이 다시 터져 배 위에 쓰러진다. 장수들이 서둘러 구하지만 인사불성이다.
두번이나 헛수고하더니, 오늘은 조롱까지 받는구나.
주유의 생명이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