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제59회 허저가 발가벗고 마초와 싸우고 조조가 편지를 써서 마초와 한수를 갈라놓는다
한편 그날밤 양쪽 병력이 어지럽게 싸우다 벌이다 날이 밝자 저마다 병력을 거둔다. 마초 馬超가 위하 渭河 어귀에 주둔해 밤낮으로 병력을 나눠 앞뒤로 들이친다. 조조 曹操가 위하에 머물며 배들을 쇠사슬로 이어 배다리를 세개 만들어 남쪽 강기슭과 잇닿게 한다. 조 인 曹仁이 군을 이끌고 위하를 끼고 영채를 세워, 양초차량 糧草車輛 (군량을 나르는 수레)을 병풍처럼 이어 붙인다. 마초가 듣고서 군 사들더러 각각 풀다발을 끼고 불씨를 나르게 한다. 한수 韓遂와 더불어 군을 이끌고 힘을 합쳐 영채 앞으로 들이닥쳐 풀더미를 쌓아놓고 거센 불을 피운다. 조조 병력이 막아내지 못해 영채를 버리고 달아나니 수레며 배다리며 모조리 불살라진다. 서량병 西涼兵이 크게 이 겨 위하를 가로막는다. 조조가 당장 영채를 세우지 못하자, 속으로 걱정스럽고 두렵다. 순유 荀攸가 말한다.
"위하의 사토 沙土 (모래와 점토의 혼합토양)로써 토성을 쌓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조조가 병사 3만을 뽑아 흙을 날라 성을 쌓는다. 마초가 다시 방덕과 마대더러 각각 5백 군마를 거느려 오가며 맞부딪히게 하는데다 사 토가 부실해 쌓은 것도 바로 무너지니 조조가 아무 계책도 쓰지 못한다.
당시 9월이 지나가니 날씨가 몹시 춥고 짙은구름이 잔뜩 껴서 며칠째 날이 개이지 않는다. 조조가 영채에 머물며 마음이 갑갑한데 누군가 알린다.
"한 노인이 승상께 방략을 말씀드리겠다고 하옵니다."
조조가 불러들여 만난다. 그 사람은 두루미 같은 골격에 소나무 같은 자태를 지녀서 생김새가 고풍스럽다. 물어보니 바로 경조 출신으로 남산에 은거하는 누자백이고 도호는 몽매거사다. 조조가 손님으로 예우하자 자백이 말한다.
"승상께서 위 渭를 점거해 영채를 다지려 하신 지 오래인데 지금도 어째서 때맞춰 세우지 못하고 계십니까?"
"사토로 이뤄진 땅이라 보루를 쌓아도 완성되지 않소. 은사께 어떤 양책이라 있으면 가르쳐 주시겠소?"
"승상께서 용병은 신묘하신데 어찌 천시 天時를 알지 못하십니까? 날마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삭풍이 불어오니 필시 크게 얼어붙게 됩니다. 바람이 불면 병사들을 내보내 흙을 날라 물을 뿌리면 토성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조조가 크게 깨달아 자백을 후하게 포상하나 받지 않고 떠난다. 그날밤 북풍이 크게 분다. 조조가 군을 모조리 내몰아 흙을 날라 물을 뿌리게 하는데, 물을 채울 도구가 없어 비단주머니를 만들어 물을 담아 대니 성을 쌓는 대로 얼어붙는다. 날이 밝자 사토가 얼어서 굳어 토성이 완공된다. 세작이 마초에게 알리자 마초가 병력을 이끌고 가서 살피니 크게 놀라 귀신이 도울까 의심한다. 다음날 대군을 모아 북을 울리며 나아간다. 조조가 몸소 승마해 영채를 나오니 겨우 허저 한 사람만 뒤따른다. 조조가 채찍을 쳐들어 크게 외친다.
"맹덕이 여기 홀로 왔으니 청컨대 마초도 나와서 답하라."
마초가 승마해 창을 잡고 나오자 조조가 말한다.
"내 영채가 완성되지 않아 네가 업신여겼다만 이제 하룻밤새 하늘이 도와서 쌓아 올렸으니 네 어찌 어서 항복하지 않겠냐!"
마초가 크게 노해 앞으로 내달아 잡으려 하나 조조 뒤에서 한 사람이 귀신처럼 눈을 부릅뜨고 손에 쇠칼을 들고 말고삐를 잡고 서 있 다. 마초가 혹시 허저인가 싶어 채찍을 쳐들어 묻는다.
"듣자니 너희 군중에 호후 虎侯라는 놈이 있다던데 어디 있냐?"
허저가 칼을 들고 크게 외친다.
"내가 바로 초군 譙郡 사람 허저다!"
쏘아붙이는 눈빛이 귀신 같고 위풍이 당당하다. 마초가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곧 말머리를 돌린다. 조조 역시 허저를 데리고 영채로 돌 아간다. 양쪽 군대가 바라보며 크게 놀라지 않는 이 없다. 조조가 장수들에게 이른다.
"도적들도 중강 仲康 (허저의 자)이 호후라는 것을 아는구려!"
이로부터 군중에서 모두들 허저를 호후라 부른다.
허저가 말한다.
"제가 내일 반드시 마초를 잡겠습니다."
조조가 말한다.
"마초가 영용하니 함부로 맞설 수 없소."
"맹세코 죽기살기로 싸우겠습니다!"
즉시 사람을 시켜 전서 戰書 (도전장/ 선전포고문)를 보내 호후가 홀로 마초와 내일 결전하겠다 한다. 마초가 전서를 접하고 크게 노 해 말한다.
"어찌 감히 이토록 업신여기냐!"
즉시 다음날 맹세코 호치 虎痴를 죽이겠다 답한다. 차일 次日, 양쪽 군대가 영채를 나와 포진을 마친다. 마초가 방덕을 좌익으로 마대를 우익으로 나누고 한수가 중군을 맡는다. 마초가 창을 꼬나잡고 말을 내달려 높이 외친다.
"호치! 어서 나와라!"
조조가 문기 아래에서 장수들을 되돌아보며 말한다.
"마초는 여포의 용맹보다 덜하지 않소!"
그 말이 미처 못 끝나, 허저가 말에 박차를 가해 칼을 휘두르며 나간다. 1백 합 남짓 싸워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 말들이 지치자 각각 군 중으로 되돌아가 말을 갈아타고 다시 출진한다. 다시 1백 합 넘게 싸워도 승부��� 가리지 못한다. 허저가 성이 나서 재빨리 군중으로 되돌 아가 투구와 갑옷을 벗으니 온몸에 근육이 울퉁불퉁하다. 알몸으로 칼을 들고 몸을 날려 말을 타고 마초와 결전하러 가니, 양쪽 군대가 크게 놀란다. 둘이 다시 3십 합 넘게 싸워 허저가 위력을 떨치며 칼을 들어 곧 마초를 베려 하자 마초가 재빨리 피해 한 창으로 허저의 가 슴팍을 찌르려 덤빈다. 허저가 칼을 버리고 창을 낚아채서 둘이 말 위에서 창을 빼앗고자 다툰다. 허저가 힘이 대단해 우지끈 소리와 함 께 창자루를 부러뜨리니 각자 반토막을 들고 말 위에서 난타한다. 조조가 허저에게 실수가 있을까 두려워 곧 하후연 夏侯淵, 조홍 曹洪 두 장수더러 일제히 나가서 협공하게 한다. 방덕, 마대도 조조 장수들이 일제히 나오는 것을 보고 양날개의 철기들을 지휘해 마구 돌격 하며 어지러이 쳐들어오자 조조 병력이 크게 어지러워진다. 허저도 팔뚝에 화살을 두 대나 맞는다. 장수들은 황망히 영채로 물러 들어가 고 마초는 곧장 강변까지 치고들어가니 조조 병력 태반이 죽거나 다친다. 조조가 명을 내려 굳게 걸어잠가 출전하지 못하게 한다. 마초 가 위하 어귀로 되돌아가 한수에게 말한다.
"제가 악전 惡戰 (마구 격렬히 싸움)한 놈 가운데 허저 같은 놈이 없습니다. 참으로 호치 虎痴(호랑이처럼 사나운 미치광이)입니다!"
한편, 조조는 마초를 깨뜨릴 꾀를 짜낸다. 몰래 서황 徐晃과 주령 朱靈에게 시켜 함께 위하를 건너 영채를 세워 앞뒤로 협공하게 한다. 하 루는 조조가 토성 위에서 보니 마초가 수백 기를 이끌고 바로 영채 앞까지 오는데 그 오고감이 나는 듯하다. 조조가 한참 살피더니 두무 兜鍪 (투구)를 바닥에 내던지며 말한다.
"마아 馬兒가 죽지 않으면 내 묻힐 땅도 없겠구나!"
하후연이 듣고서 속으로 분기가 치솟아 소리높인다.
"제 비록 여기서 죽을지언정 맹세코 마적 馬賊을 멸하겠습니다!"
곧 휘하 1천여 인을 이끌고 영채 문을 활짝 열고 곧장 뒤쫓는다. 조조가 미처 말리지 못해 허둥지둥 스스로 말에 올라 도우러 달린다. 조 조 병력이 다다르자 마초는 곧 전군 前軍 (선봉부대)을 후대 後隊(후미대열)로 돌리고 후대를 선봉으로 삼아 일자 一字로 펼친다. 하후 연이 다다르자 마초가 맞이해 마구 싸운다. 마초가 어지러운 병사들 가운데 멀리 조조를 찾아내어 곧 하후연을 내버리고 바로 조조를 잡으려 한다. 조조가 깜짝 놀라 말머리를 돌려 달아난다. 조조 병력이 크게 어지러워진다.
한창 뒤쫓는데 보고가 들어오니, 조조의 1군이 이미 하서(위하 서쪽)에 영채를 세웠단다. 마초가 크게 놀라 조조를 뒤쫓을 마음이 사라져 서둘러 군을 거둬 영채로 돌아가 한수와 상의한다.
"조조가 빈 틈을 타서 하서로 건너와 아군은 앞뒤로 적병을 맞게 됐으니 이를 어찌해야겠습니까?"
부장 이감이 말한다.
"땅을 잘라주고 화친을 청하여, 양쪽이 우선 각각 군을 거둠만 못합니다. 겨울을 어떻든 넘기고, 따뜻한 봄날이 오면 다시 계책을 세워 야 합니다."
한수가 말한다.
"이감의 말이 최선이니 따를 만하네."
마초가 머뭇거려 결단하지 못하는데 양추와 후선도 함께 화친을 구하라 권한다. 이에 한수가 곧 양추를 사자로 삼아, 바로 조 조 영채로 가서 글을 전하여, 땅을 잘라주고 화친할 것을 이야기한다. 조조가 말한다.
"그대는 우선 돌아가시오. 내일 사람을 보내 회답하겠소."
양추가 인사하고 떠난다. 가후가 들어와 조조를 만나 말한다.
"승상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공의 소견은 어떻소?"
"병불염사 兵不厭詐 (전쟁에서 속임수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 했으니 거짓으로 허락하십시오. 그런 뒤 반간계를 써서 한, 마가 서로 의심하게 만들면 일고에 격파할 수 있습니다."
조조가 손뼉을 치며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천하의 고견이란 서로 합치하는 게 많나 보오. 문화 文和(가후의 자)의 꾀가 바로 내 속마음이오."
이에 사람을 보내 회서(답서)에 이렇게 쓴다.
'우리가 서서히 병력을 물린 뒤 그대들에게 하서 땅을 돌려주겠소.'
한편으로 배다리를 놓아 군을 물릴 뜻을 보인다. 마초가 회서를 받고 한수에게 말한다.
"조조가 비록 화친을 허락했지만 그는 간웅이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만약 준비하지 않으면 도리어 제압 당합니다. 제가 숙부와 더불어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며 병력을 운용하여, 오늘은 숙부께서 조조 쪽을, 저는 서황 쪽을 맡고, 내일은 제가 조조 쪽을, 숙부께서 서황 쪽을 맡아, 두 갈래로 나눠 방비한다면 그 속임수를 막을 수 있습니다."
한수가 그 계책에 따라 움직이는데 어느새 누군가 조조에게 알려주니 조조가 가후를 돌아보며 말한다.
"우리 일이 이뤄지겠구려!"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묻는다.
"내일 누가 내 쪽으로 오는가?"
"한수라 하옵니다."
다음날 조조가 장수들을 이끌고 영채를 나오니 좌우에서 그를 둘러싼다. 조조 홀로 중앙에 우뚝 서 있는데 한수 부하 병졸 가운데 많은 이가 조조를 알아보지 못하는지라 출진해서 바라볼 따름이다. 조조가 소리높이 외친다.
"자네들 조공이 누군지 보고 싶은가? 나 역시 사람일 뿐이라 눈이 네개 있지도 입이 두개 달리지도 않았다네. 다만 꾀가 많을 뿐이지."
병사들 모두 놀란 기색이다. 조조가 사람을 시켜 적진으로 넘어가 한수에게 말하게 한다.
"승상께서 삼가 한 장군과 만나 하실 말씀이 있다 하십니다."
한수가 즉시 출진해 바라보니 조조는 아무 무기도 없을 뿐더러 갑옷도 입지 않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홀로 말을 몰아 나온다. 두 사람의 말머리가 가까워지자 각각 말고삐를 잡고 대화한다. 조조가 말한다.
"내가 장군의 부친과 함께 효렴으로 뽑혀 내 일찍이 그분을 숙부로 섬겼소. 또한 공과 함께 벼슬길에 올라 어느새 몇년이나 지났소. 장군, 금년에 나이가 몇이시오?"
"마흔이오."
"지난날 경사(서울)에서 모두들 청춘소년이었는데 어느새 중순(중년)이 되었구려! 어찌해야 천하를 청평(태평)하게 만들어 함께 즐기겠소!"
이렇게 옛일을 늘어놓으며 군사 이야기는 전혀 꺼내지 않더니 말을 마치고 크게 웃는다. 한 시진(2 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말머리를 돌려 작별해 각자 영채로 돌아간다.
벌써 누군가 이 일을 마초에게 알리니 마초가 황망히 찾아와 한수에게 묻는다.
"오늘 조조가 진 앞에서 이야기한 것은 무슨 일입니까?"
"다만 경사에서 있었던 옛일일 뿐이네."
"어찌 군사 이야기를 하시지 않았습니까?"
"조조가 말하지 않는데 내 어찌 홀로 이야기하겠는가?"
마초가 속으로 몹시 의심하나 말없이 물러난다.
한편 조조는 영채로 돌아와 가후에게 말한다.
"공께서 내가 진 앞에서 대화한 뜻을 아시지 않소?"
"그 뜻이 비록 절묘하나 아직 두 사람을 갈라놓자면 모자랍니다. 제게 한가지 계책이 있사오니 한, 마가 서로 원수가 돼 죽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조조가 그 계책을 묻자 가후가 말한다.
"마초는 일개 용부(용맹한 사내)일 뿐이라 기밀을 알지 못합니다. 승상께서 친히 서찰을 하나 쓰셔서 한수에게만 주시되 중간에 몽롱( 흐릿함)하게 글자를 쓰고 요해처(중요한 부분)에 덧칠해 고친 뒤 한수에게 보내시며 일부러 마초로 하여금 알게 하소서. 마초는 필시 서찰을 찾아내어 볼 것입니다. 만약 거기서 요긴한 부분을 보면 모조리 고쳐져 있겠지요. 마초는 한수가 기밀한 일이 들킬까 두려워서 고친 줄로만 여겨서, 이것이 바로 승상과 한수, 두 사람이 단독으로 대화한 의심스런 정황과 부합한다 생각할 것입니다. 의심하면 결국 분란이 생깁니다. 우리가 또한 한수의 부하 장수들과 몰래 연결해 서로 갈라놓는다면 마초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이 계책이 참으로 훌륭하오!"
곧 서찰을 1봉 써서 요긴한 부분은 모조리 덧칠해 고친 뒤 잘 봉해서 일부러 눈에 띄게 많은 종인들을 건너편 영채로 보내 서찰을 놓고 돌아온다.
과연 누군가 마초에게 알리자 마초가 더욱 의심이 들어 곧장 한수의 거처로 가서 서찰을 찾자 한수가 그 서찰을 마초에게 준다. 마초가 보니 글자를 고치고 덧칠한 게 보여 한수에게 묻는다.
"서찰을 어째서 모조리 고치고 덧칠을 하셨습니까?"
"원래 서찰이 이러하였네만 왜 그런지는 모르겠네."
"어찌 초고(초벌원고)를 보낼 리 있겠습니까? 이건 결국 숙부께서 제가 상세한 것을 알까 두려워 미리 고치신 것입니다."
"조조가 착오로 초고를 잘못 봉해서 보낸 것 아니겠냐?"
"저는 더욱 못 믿겠군요. 조조는 정세 精細한 사람인데 어찌 착오를 저지르겠습니까? 저와 숙부가 힘을 합쳐 도적을 죽여야지 어찌 갑자 기 이심을 품으십니까?"
"네가 내 마음을 못 믿겠다면 내일 내가 진 앞에서 조조를 속여 이야기를 나눌 테니 너는 진 안에서 뛰쳐나와 한창에 그를 찔러 죽이거라."
"만약 그렇다면야 숙부의 진심을 믿을 수 있사옵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약정한다. 다음날, 한수가 후선, 이감, 양흥 梁興, 마완 馬玩, 양추 등 다섯 장수를 거느려 출진한다. 마초가 진문 그늘 속에 숨는다. 한수가 사람을 시켜 조조 영채로 가서 크게 외치게 한다.
"한 장군께서 승상께 하실 이야기가 있다 하시오!"
조조가 곧 조홍에게 명령해 경기(경기병) 수십을 거느려 진 앞으로 바로 나가 한수를 만나게 한다. 그들 사이가 몇 걸음으로 좁혀지자 조홍이 말 위에서 몸을 숙여 말한다.
"지난 밤 승상께서 장군의 말씀을 감사히 여기시고 절대 착오가 없게 하라 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곧 말머리를 되돌린다.
마초가 듣고서 크게 노해 창을 꼬나쥐고 말을 몰아 바로 한수를 찌르려 하니 다섯 장수가 가로막아 화해를 권해 영채로 돌아간다.
"조카님은 의심하지 마시게. 내게 아무 대심 歹心(악의)이 없네."
마초가 그 자리에서 마지못해 믿지만 원망하며 떠난다. 한수가 다섯 장수와 상의한다.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결)해야겠소?"
양추가 말한다.
"마초가 용맹을 믿고서 늘 주공을 능멸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니 조조를 이긴다면 어찌 가만두겠습니까? 제 못난 소견은 몰래 조조에게 넘어가 훗날 열후에 봉해질 기회를 잃지 않음만 못합니다."
"나는 마등과 일찍이 의형제로 맺었거늘 어찌 차마 배신하겠소?"
"일이 이왕 이리 됐으니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누가 가서 소식을 전하겠소?"
"바라건대 제가 가겠습니다."
한수가 곧 밀서를 적어 양추에게 줘서 조조 영채로 보내 투항하겠다 전한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한수를 서량후로, 양추를 서량태수로 삼고, 나머지도 모두 벼슬을 내린다. 불을 지르는 것을 신호로 함께 마초를 도모 하기로 약정한다. 양추가 절을 올려 사례하고 돌아가 한수를 만나 그 일을 자세히 말한다.
"오늘밤 방화해 안팎으로 접응할 것을 약정했사옵니다."
한수가 크게 기뻐하며 곧 병사들에게 영을 내려 중군 막사 뒷쪽에 마른 장작을 쌓고 다섯 장수는 도검을 차고 기다리게 한다. 연회를 베풀어 마초가 취석 就席(착석)하면 도모할 것을 상의하지만 머뭇거리며 결단하지 못한다.
뜻밖에 마초가 벌써 비세 備細 (상세한 사정)를 탐지해, 곧 친수 親隨 (좌우의 시종) 몇사람을 거느려 검을 지닌 채 먼저 가고, 방덕과 마대에게 명해 뒤따라 돕게 한다. 마초가 한수의 막사에 숨어든다. 다섯 장수가 한수와 밀어를 나누는 가운데 양추가 설득하는 것을 마초가 듣는다.
"일을 늦춰서 아니 되오니, 어서 손을 쓰셔야 합니다!"
마초가 크게 노해 검을 휘두르며 곧장 난입해 크게 꾸짖는다.
"도적떼가 어찌 감히 나를 죽이려 하냐!"
모두 깜짝 놀란다. 마초가 한칼로 한수의 면문 面門 (얼굴/ 입)을 찌르려 하자 한수가 황망히 손으로 막지만 왼손이 잘려 떨어진다. 다섯 장수가 칼을 휘두르며 일제히 달려든다. 마초가 급히 막사 밖으로 나가자 다섯 장수가 에워싸 죽이려 한다. 마초 홀로 보검을 휘두르며 힘껏 다섯 장수와 맞선다. 보검이 번뜩이자 붉은 피가 흩뿌리니 마완이 베여 꼬꾸라지고 양흥이 찔려 쓰러진다. 나머지 세 장수는 각자 도망간다. 마초가 다시 막사로 들어가 한수를 죽이려 하지만 이미 좌우에서 구해 달아난 뒤다. 장막 뒤에서 한줄기 불길이 치솟자 각 영 채에서 병력이 모두 출동한다. 마초가 황급히 말에 오르니 방덕과 마대도 도착해 서로 어지럽게 싸운다. 마초가 군을 이끌고 뚫고 나오 는데 조조 병력이 곳곳으로 몰려오니 앞은 허저, 뒤는 서황, 좌는 하후연, 우는 조홍인데, 서량 병사들이 서로 싸우고 죽인다. 마초가 방 덕과 마대를 찾지 못하자 1백여 기를 이끌고 위교 渭橋 위를 가로막는다.
하늘이 어슴프레 밝아오는데 이감이 1군을 거느려 다리 아래를 지나자 마초가 창을 꼬나쥐고 말을 내달려 뒤쫓는다. 이감이 창을 끌며 달아난다. 바로 그때 우금 于禁이 마초 배후에서 뒤쫓아 활을 당겨 마초를 쏜다. 마초가 배후에서 시윗소리가 들리자 재빨리 피하니 도 리어 앞쪽의 이감이 명중돼 낙마해 죽는다. 마초가 말머리를 돌려 우금에게 달려들자 우금이 박차를 가해 달아난다. 마초가 되돌아가 다 리 위에 주찰 住紮 (주둔)하는데 조조 병력이 앞뒤로 크게 몰려온다. 호위군 虎衛軍이 앞장서 죄어들며 마초에게 어지러이 화살을 날린 다. 마초가 창으로 쳐내니 화살 모두 분분히 땅에 떨어진다. 마초가 영을 내려, 따르는 기병들더러 뚫고 나가게 하지만 조조 병력의 포위 가 굳고 두터워 빠져나가지 못한다. 마초가 다리 위에서 크게 한소리 외치더니 하북 쪽으로 뛰어들지만 뒤따르는 기병들은 모두 가로막 히고 마초 홀로 적진 가운데 치고받다가 몰래 쇠뇌를 쏘는 것에 맞아 말 아래 굴러떨어진다. 마초가 땅에 떨어지니 조조 병사들이 몰려 닥친다.
몹시 위급한데 서북쪽에서 한떼의 군병이 달려드니 바로 방덕과 마대다. 두 사람이 마초를 구해 군중에서 전마(싸움말 )를 가져다 마초를 태우고 몸을 돌려 한줄기 혈로를 뚫어 서북쪽으로 달아난다. 조조가 마초의 탈주를 듣고 장수들에게 전령한다.
"밤낮없이 힘써 마초를 뒤쫓으시오. 그 수급을 얻으면 천금을 포상하고 만호에 봉하고, 사로잡으면 대장군에 봉하겠소."
장수들이 명을 받고 각자 힘써 공을 다투어 줄줄이 추격한다. 마초는 사람과 말이 모두 지치지만 오로지 바삐 달아날 뿐이다. 뒤따르던 기병들도 모두 흩어지고 보병으로서 따라오지 못한 이들은 많이들 잡혀간다. 겨우 2십 기 남짓이 남아 방덕, 마대와 함께 농서 隴西, 임 조 臨洮 쪽으로 달아난다.
조조가 안정까지 뒤쫓아 마초가 멀리 달아난 것을 알고서야 장안 으로 회군하고 장수들을 소집한다. 한수는 이미 왼손이 잘리고 없어 불구가 되었다. 조조가 장안에서 군마를 쉬게 하고, 한수를 서량후에 봉한다. 양추와 후선도 열후에 봉하고 위수의 어귀를 지키라 한다. 이제 조조가 군을 거느려 허도로 돌아가려는데 양주의 참군 양부 '의산'이 장안으로 조조를 찾아온다. 조조가 묻자 양부가 말한다.
"마초는 여포의 용맹을 가진데다 강인들의 마음을 깊이 얻고 있습니다. 이제 승상께서 이 참에 뿌리뽑지 않으시면 훗날 기력을 길러 농서 윗쪽의 군현들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날 것입니다. 승상께서 당장 회군을 멈추십시오."
"본래 병력을 남겨서 정벌하고자 했으나 어쩌다보니 중원에도 일이 많고 남방도 아직 평정하지 못하여, 오래 머물지 못하겠소. 군께서 고를 위해 지켜주시오."
양부가 승낙하자 양부를 양주자사로 천거하고 기성에서 병력을 거느리고 마초를 막하게 한다. 양부가 떠나며 조조에게 청한다.
"장안에 대군을 주둔하여 돕게 하십시오."
"이미 정해두었으니 그대는 안심하시오."
양부가 나자 장수들이 묻는다.
"애초에 역적들이 동관를 점거하고 위수 북쪽의 도로가 막혀도 승상께서는 하동으로부터 풍익 馮翊 (섬서성 대려현)을 공격하지 않으셨 습니다. 도리어 동관 방면을 지키시며 시일을 끄시다가 뒤에 북쪽으로 건너 영채를 세워 굳게 지킨 것은 무슨 까닭이었습니까?"
"당초 역적들이 동관을 지키고 있었는데 만약 내가 오자마자 바로 하동을 취했으면, 역적들이 틀림없이 각각 영채를 세워 여러 나루를 나눠 지켜서, 우리가 하서를 건널 수 없었을 것이오. 내가 그래서 우리의 강성한 병력을 모두 동관 앞에 모아서 역적들로 하여금 남쪽을 지키게 하고, 하서는 준비가 안 되게 만든 덕분에 서황과 주령이 건널 수 있었던 것이오. 내가 그 뒤에 병력을 이끌고 북쪽으로 건너, 수 레를 잇고 목책으로써 용도 甬道 (통로)를 만들고 얼어붙은 토성을 쌓아서 역적들로 하여금 우리를 약하다 여겨 그 마음을 교만하게 하 여 준비하지 않도록 했던 것이오. 내가 이에 교묘히 반간계를 써서 우리 사졸들의 힘은 비축하먄서도 하루아침에 그들을 격파했소. 이게 바로 이른바, '번개가 급히 치면 귀를 막을 틈도 없다' 하는 것이오. 병법의 변화는 결코 한 가지가 아니오."
장수들이 다시 묻기를 청한다.
"승상께서는 역적들이 병력을 더하고 무리를 불리는 것을 들으실 때마다 기뻐하셨는데 무슨 까닭이었습니까?"
"관중은 외지고 멀어서 만약 역적의 무리가 각각 험준한 지형에 기댄다면 그들을 정벌해도 1, 2년 걸려 평정하기 어 렵소. 이제 그들이 한 군데로 몰려든다면 그 무리가 비록 많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이 통일되지 않으므로 이간질하기 쉬워 일거에 가히 멸 할 수 있으니 내가 그러므로 기뻐했던 것이오."
장수들이 절을 올리며 말한다.
"승상의 신묘한 계모는 사람들이 미치지 못합니다!"
"역시 그대들 문무 관리의 힘 덕분이오."
곧 병사들을 무겁게 포상하고 하후연을 남겨 장안에 병력을 주둔한다. 항복한 적병들을 곳곳에 나눠 배치한다. 하후연이 풍익의 고릉 출신의 장기 '덕육'을 경조윤으로 천거하자 조조가 하후연과 함께 장안을 지키게 한다. 조조가 서울로 회군한다. 헌제가 난가를 타고 성곽을 나와 영접한다. 헌제가 조서를 내려, 앞으로 조조는 천자를 알현해도 이름을 고하지 않고, 황제 앞에서 종종걸음하지 않고, 황제 앞에서 칼을 차고 신을 수 있는 특전을 내리니 옛날 한나라 승상 소하와 같다. 이로부터 위엄이 안팎으로 진동한다.
이런 소식이 한중에 알려지자 한녕태수 장로가 깜짝 놀란다. 원래 장로는 패국의 풍 출신인데 할아버지 장릉 이 서천의 곡명산에서 도가의 서책를 지어 사람을 미혹하니 모두 경배했다. 장릉이 죽자 아들 장형이 물려받았다. 백성 가운데 도를 배우는 이는 쌀 다섯 말을 바치게 하니, 세상에서 미적 米賊이라 일컬었다.
장형이 죽자 장로가 물려받았다. 장로가 한중에서서 사군 師君을 자칭하고 도를 배우는 이들을 비졸 鬼卒 이불렀다. 우두머리를 제주 祭酒라 하고 많은 무리를 이끄는 이를 치두대제주 治頭大祭酒라 일컬으며 성실과 신의를 앞세우고 속임수를 용납치 않았다.
병을 앓는 이가 있으면 즉시 제단을 설치해 환자를 조용한 방에 집어넣었다. 스스로 반성하고 얼굴을 마주보며 자백한 뒤에야 그를 위하여 기도했다. 기도를 주재하는 이를 감령제주 監令祭酒라 일컬었다. 기도하는 방법을 보자면, 환자의 이름을 적은 뒤, 죄를 인정하면, 글을 세 통 지어서 삼관수서 三官 手書라 이름했다. 한 통은 산꼭대기에서 불살라 하늘에 아뢰고, 한 통은 땅에 묻어 땅에 아뢰고, 한 통은 물에 가라앉혀 물의 신에게 알렸다. 병이 나으면 다섯 말의 쌀로 바쳤다.
의사 義舍라는 건물 안에 쌀과 장작과 고기를 구비하여, 사람들이 오가며 스스로 적당히 먹게 하되, 많이 먹는 이는 천벌을 받는다 하였다. 경내에서 범법자는 반드시 세차례 용서한 뒤에도 고치지 않으면 처벌했다. 이곳은 관리가 없고 모조리 제주의 소관이었다. 이렇게 한중에서 웅거한 지 이미 3십 년이다. 국가에서 이곳은 멀어서 정벌할 수 없기에 장로를 진남중랑장 겸 한녕태수로 임명해 공물을 바치게 하는 데에 그쳤다.
그해, 조조가 서량인들을 격파해 위엄이 천하에 진동하자 장로가 사람들과 상의한다.
"서량에서 마등은 도륙당하고 마초는 방금 패했으니 이제 조조가 한중을 침략할 것 같소. 내가 한녕왕을 자칭하고 군을 이끌고 조조에게 맞설까 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염포가 말한다.
"한천의 백성은 호구가 십만이 넘고 재물과 양식이 풍족하고 사방이 험고합니다. 이제 마초가 얼마전에 패하면서 서량인들이 자오곡을 지나 한중으로 수만이 넘게 몰려왔습니다. 제 생각에는 익주의 유장이 어리석고 나약하니 서천의 42 주를 먼저 취해서 근본으로 삼고 그뒤에 왕을 칭해도 늦지 않습니다."
장로가 크게 기뻐하며 아우 장위와 상의해 출병한다.
한편 익주의 유장 '계옥'은 유언의 아들이자 한나라 노공왕의 후예다. 그 조상이 장제 章帝의 원화 元和(서기84~86년) 연간에 경릉으로 옮겨져 봉해지면서 한 갈래가 이곳에 살게 되었다. 유언은 벼슬이 익주목에 이르렀지만 흥평 원년 (서기 194년)에 병환으로 죽었다. 익주태수 조위 등이 함께 유장을 익주목으로 옹립했다. 유장이 일찍이 장로의 모친과 아우를 죽여서 원수가 되었다. 유장이 방희를 파서태수로 임명해 장로를 막았다.
당시 방희는 장로가 서천을 취하려고 출병하는 것을 탐지하고 서둘러 유장에게 알린다. 유장은 평소 나약한데 소식을 듣고 크게 걱정하여 관리들을 급히 불러서 상의한다. 누군가 당당히 나와서 말한다.
"주공 안심하시지요. 제가 비록 재주 없으나 세치 못난 혀로 장로가 감히 서천을 노리지 못하게 하지요."
촉의 꾀 많은 신하가 진언을 올려서 형주의 호걸을 불러들이겠구나.
이 사람이 누굴까?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