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제61회 조운이 장강을 가로막아 아두를 빼앗고 손권이 글을 보내어 늙은 조아만을 물리친다
한편, 방통 龐統, 법정 法正 두 사람은 현덕 玄德에게 권해 술자리에서 유장 劉璋을 죽이면 서천 西川을 손바닥에 침뱉듯이 쉽게 얻을 것 이라 권한다. 현덕이 말한다.
"내 촉중 蜀中에 처음 들어와 아직 은혜와 신의를 세우지 못해, 이런 짓을 결코 행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이 거듭 설득하나 현덕은 따르지 않을 뿐이다. 다음날, 다시 유장과 더불어 성중에서 연회를 열어, 피차(서로) 충곡 衷曲 (속마음 )을 털어놓으니 정호 情好(우정)가 매우 친밀해진다. 술이 거나해지자 방통이 법정과 상의한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주공을 유부득 由不得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따르지 않음)해야겠소."
곧 위연 魏延을 시켜 당상으로 올라 칼춤을 추다 틈을 봐서 유장을 죽이라 하니, 위연이 마침내 검을 뽑아 말한다.
"술자리에 즐길 것이 없사오니 바라건대 칼춤으로 놀아볼까 하나이다."
방통이 곧 무사들을 불러들여, 당 아래 줄지어 세우고, 위연이 손쓰기만 기다린다. 그러나 유장의 수하 장수들이 보니, 위연이 술자리 앞 에서 칼춤을 추는데다 섬돌 아래 무사들도 칼집을 매만지며 당 위를 노려보는지라, 종사 장임 張任 역시 검을 뽑아 춤추며 말한다.
"칼춤은 상대가 있어야겠기에 제가 바라건대 위 장군과 함께 춤추겠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보며 술자리 앞에서 춤춘다. 위연이 유봉 劉封에게 눈짓하자 유봉도 검을 뽑아 춤을 돕는다. 이에 유괴 劉瑰, 냉포 冷苞, 등현 鄧賢도 각각 검을 뽑아 나오며 말한다.
"저희가 군무 群舞를 추어 재미를 돋구겠습니다."
현덕이 크게 놀라 급히 좌우가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말한다.
"우리 형제가 상봉해 통음하며 아무 의심도 없는데다 이 자리가 홍문 鴻門의 모임도 아니거늘 무슨 칼춤이오? 검을 버리지 않는 자 당장 참하겠소!"
유장 역시 질타한다.
"형제가 모이는데 하필 칼을 차겠소?"
시위들에게 명해 패검을 모조리 수거한다. 모두 뿔뿔이 당을 내려간다. 현덕이 장수들을 대 위로 불러, 술을 내리며 말한다.
"우리 형제는 같은 종친에 혈육으로서 함께 대사를 의논하니 아무 딴 마음이 없소. 그대들은 절대 의심치 마시오."
장수들 모두 사례한다. 유장이 현덕의 손을 잡고 울며 말한다.
"형의 은혜를 맹세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두 사람이 저녁 늦도록 즐겁게 마시고 헤어진다. 현덕이 영채로 돌아와 방통을 책망한다.
"여러분이 어째서 나를 불의에 빠뜨리려 하시오? 이제부터 절대 이러지 마시오!"
방통이 탄식하며 물러난다.
한편, 유장이 영채로 돌아오자, 유괴 등이 말한다.
"주공께서 오늘 연회석상의 광경을 보셨습니까? 어서 돌아가 후환이 생기는 것을 면함만 못합니다."
"내 형 유현덕은 다른 사람과 다르오."
장수들이 말한다.
"비록 현덕은 그런 마음이 없더라도 그 수하들 모두 서천을 집어삼켜 부귀를 도모하고자 합니다."
"그대들은 우리 형제의 정을 갈라놓지 마시오!"
결국 듣지 않고 날마다 현덕과 즐겁게 만난다.
그런데 급보가 날아들어, 장로 張魯가 병마를 정돈해 곧 가맹관 葭萌關을 침범할 것이라 한다. 유장이 곧 현덕에게 청해 그곳으로 가서 막아달라 한다. 현덕이 흔쾌히 승낙해 그날 바로 부하 병력을 이끌고 가맹관으로 간다. 장수들이 유장에게 권해, 대장들을 시켜 곳곳 의 관애 關隘 (험준한 길목)를 지켜 현덕의 병변 兵變 (군사반란)을 막으라 한다. 유장이 처음에는 따르지 않다가 사람들이 애써 권하 자 명령을 내려, 백수 白水의 도독 양회 楊懷, 고패 高沛 두 사람에게 부수관 涪水關을 지키라 한다. 유장은 성도로 돌아간다. 현덕이 가 맹관에 도착해 병사들을 엄히 단속하고 널리 은혜를 베풀어 민심을 얻는다.
어느새 세작이 동오 東吳로 들어가 보고한다. 오후 吳侯 손권 孫權이 문무관리들을 모아 상의한다. 고옹 顧雍이 아뢴다.
"유비가 병력을 나눠 멀리 산험 山險 (산세가 험한 곳)을 지나니 쉽게 돌아오지 못합니다. 어찌 1군을 보내 서천의 길목을 가로막아 그 귀로를 끊은 뒤 동오 병력을 모조리 일으켜 일고에 형, 양을 함락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는 놓쳐선 안 될 기회이옵니다."
손권이 말한다.
"이 계책이 참으로 훌륭하오."
한창 상의하는데 병풍 뒤에서 누군가 크게 소리치며 나온다.
"이 계책을 아뢴 자를 참하라! 내 딸의 목숨을 해칠 셈이냐?"
사람들이 놀라 바라보니 곧 오국태 吳國太다. 국태가 노해 말한다.
"내 일생에 유일한 딸이, 유비에게 시집간 것이다. 이제 병력을 동원하면 내 딸의 생명이 어찌되겠냐?"
그래서 손권을 꾸짖는다.
"네가 부형의 유업을 맡아 편안히 81주를 거느린 것도 아직 모자라, 작은 이익 때문에 혈육을 생각하지 않는구나!"
손권이 그저 네, 네 하며 답한다.
"노모의 가르침을 어찌 감히 어기겠습니까!"
곧 관리들에게 호통쳐 물러가게 한다. 국태가 몹시 한스러워 하며 들어간다. 손권이 난간 아래 서서 생각한다.
'이 기회를 한번 잃으면 형, 양을 어느 날에나 얻으리오?'
한창 곰곰이 생각하는데, 장소 張昭가 들어와 묻는다.
"주공께서 무슨 일로 우의 憂疑(근심하고 의구심을 가짐)하십니까?"
"방금 전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소."
"이는 극히 쉬운 일입니다. 이제 심복 장수 하나에게 병사 5백을 줘서 형주로 잠입해, 밀서 1봉을 군주 郡主 (제후의 딸)께 전하게 하십시오. 국태께서 병세가 위중하셔 친딸을 만나고자 하신다고 전하여, 군주를 모시고 그날밤 동오로 돌아오게 하십시오. 아울러 현덕에게 평생 아들이 하나뿐인 같이 데려오라 하십시오. 그러면 현덕은 형주와 아두를 맞바꾸러 올 것입니다. 설령 그렇게 해주지 않더라도 병력을 마음대로 출동하는데 무슨 걸림돌이 있겠습니까?"
"이 계책이 참으로 훌륭하오! 내게 한 사람이 있으니 이름이 주선이고 담력이 대단하오. 그는 어려서부터 남의 집을 제집 드나들 듯하며 내 형을 따랐소. 이제 그를 보내면 되겠소."
"절대 새어나가선 안 되옵니다. 바로 명을 내리셔서 떠나게 하셔야 합니다."
이에 몰래 주선을 파견하니 5백 인을 객상(떠돌이 장사꾼)으로 위장해 거느려 간다. 또한 국서를 위조해 그들에 대한 반힐 盤詰 (자세한 신문)을 대비하고, 선박 안에 병기를 숨긴다. 주선이 명을 받들어 형주 물길을 따라서 온다. 배들을 강변에 정박하고 주선이 직접 형주로 들어가 문지기더러 손 부인께 아뢰라 한다. 부인이 주선을 불러들이자 주선이 밀서를 바친다. 부인이 읽어보니 국태께서 병세가 위중하 시다 하는지라, 눈물 흘리며 떨며 묻자 주선이 절하며 아뢴다.
"국태께서 매우 병세가 위중하사, 단석(아침저녁)으로 오로지 부인만 생각하십니다. 지체하시면, 만나뵙지 못하실까 두렵습니다. 부인 더러 아두를 데려와 한번 보게 하라 시키셨습니다."
"황숙께서 병력을 이끌고 멀리 나갔으니 내가 돌아가고자 하면 우선 사람을 보내 군사께 알려야 갈 수 있소."
"만약 군사께서 회답하시기를 '황숙께 알려드려 명령을 받고서야 배에 타실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알리지 않고 떠나면, 가로막지 않을까 두렵소."
"대강 大江(장강/ 양자강) 안에 이미 배들을 준비해두었습니다. 지금 바로 부인께서 수레를 타고 성을 나가시면 되옵니다."
손부인이 모친의 병세 위중을 듣고 어찌 황망하지 않겠는가? 곧 7세 어린이 아두 阿斗를 데리고 수레에 탄다. 30여 인이 수행하는데 각 각 도검을 지니고 말에 올라 형주성을 나와 바로 강변에서 배에 오른다. 부중 사람들이 알리려 할 때 손 부인은 이미 사두진 沙頭鎮에 다 다라 배를 탄 뒤다.
주선이 막 개선 開船 (배를 운항함)하려는데 강둑에서 누군가 크게 외친다.
"개선을 멈추시오! 부인과 전행 餞行 (술을 베풀어 배웅함)하게 해주시오!"
그를 바라보니 바로 조운 趙雲이다. 알고보니 조운은 순찰하다 방금 돌아와, 이 소식을 듣고 화들짝 놀라 겨우 4, 5기만 거느리고 질풍처 럼 강가를 따라 뒤쫓아 온 것이다. 주선이 손에 장과(긴 창의 일종)을 들고 크게 꾸짖는다.
"네 누구라서 감히 주모 主母를 막아서냐!"
병사들에게 소리쳐, 일제히 개선하고, 각각 무기를 들고 나와, 선상에 줄지어 서게 한다. 순풍을 맞은데다 물살도 빨라 배들이 물길을 따 라 간다. 조운이 강가를 따라 뒤쫓으며 외친다.
"부인께서 떠나시는 것은 마음대로 하시더라도, 다만 한마디 아뢸 말씀이 있소!"
주선이 거들떠보지 않고 오로지 배를 빨리 가게 하라 다그칠 따름이다. 조운이 강가를 따라 10여 리를 뒤쫓다가 강여울목에 한척의 어선이 비스듬히 묶여 있는 것을 발견하더니, 말을 버리고 창을 잡고 어선으로 뛰어오른다. 어부와 조운 두 사람이 배를 움직여, 부인이 앉은 큰 배를 뒤쫓는다. 주선이 병사들에게 명해 방전(화살을 쏨)하는 것을 조운이 창으로 쳐내니 화살들이 분분히 낙수 落水 한다 . 대선 大船까지 한길 남짓 접근하자 오병 吳兵들이 창으로 마구 찌른다. 조운이 작은 배 위에서 창을 버리더니, 차고 있던 '청홍검'을 뽑 아들어, 찌르는 창들을 헤치고, 동오 선박에 몸을 솟구쳐 뛰오른다. 순식간에 큰 배에 오르자 오병들 모두 몹시 놀라 쓰러진다.
조운이 선창 안으로 들어가니 부인이 아두를 품에 안고 조운에게 소리친다.
"왜 이리 무례하시오?"
조운이 검을 집어넣고 두손 모아 예를 갖춰 말한다.
"부인께서 어디로 가시려 하십니까? 어째서 군사께 알려드리지 않으셨습니까?"
"제 노모께서 병세가 위독하셔서 알릴 틈이 없었소."
"주모께서 문병 가신다 하시더라도 무슨 까닭으로 작은 주인을 데려가십니까?"
"아두는 내 아들이니 형주에 남겨두면 돌볼 이가 없소."
"주모께서 틀리셨습니다. 주인께서 일생에 이 한점 혈육을 얻으셨을 뿐인데, 소장이 당양 장판파의 백만대군 가운데 구출했습니다. 오늘 부인께서 도리어 데려가신다면, 이 무슨 도리이겠습니까?"
부인이 노해 말한다.
"너는 단지 밑에 있는 일개 무사일 따름이거늘 어찌 감히 우리 집안 일에 끼어드냐!"
"부인께서 가시고 싶으시면 바로 가시되 다만 작은 주인을 두고 가십시오."
부인이 소리친다.
"네가 반로 半路(도중)에 배 안으로 난입하니, 필시 반란할 마음이 있구나!"
"작은 주인을 두고 가시지 않으시면 제 비록 만번 죽은들 결코 부인을 놓아드릴 수 없습니다."
부인이 소리쳐 시비들더러 달려와 붙잡게 하나, 조운이 밀쳐 넘어뜨리고 아두를 빼앗아 품속에 안고 뱃머리로 나간다. 강가로 가려 하지 만,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죽이자니 도리에 어긋날까 두려워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겠다. 부인이 소리쳐 시비들더러 아 두를 빼앗게 하지만 조운이 한손은 아두를 꽉 안고, 한손은 검을 잡으니 사람들이 감히 접근하지 못한다. 주선이 뱃고물에 있으며 오로 지 배를 나아가게 할 따름이다. 순풍을 맞고 물살이 급해 중류를 향해 떠나간다. 조운이 고장난명 孤掌難鳴(한 손으로는 손뼉을 칠 수 없 음/ 외로운 처지)이라 겨우 아두를 보호할 뿐인데 어찌 능히 배를 떠나 강가에 닿으리오?
매우 위급한데 하류 쪽 강어귀에서 1자로 펼쳐진 십여 척의 배가 몰려 온다. 배 위에 깃발이 휘날리고 북소리 진동하니 조운이 생각 한다.
'이번에 동오의 계책에 빠졌구나!'
그런데 뱃머리의 어느 대장이 손에 장모(긴창)을 들고 소리높여 크게 외친다.
"수수 嫂嫂 (형수)! 조카를 두고 가시오!"
알고보니, 장비 張飛가 순초(순찰)하다 이 소식을 듣고 서둘러 유강 油江의 좁은 입구로 와서 마침 동오의 배들을 발견하고 황급히 막아 선 것이다.
그 자리에서 장비가 검을 뽑아들고 동오 선박으로 뛰어오른다. 장비가 배에 오르자 주선이 칼을 들고 맞서나 장비의 한칼에 베여 쓰러진 다. 장비가 그 머리를 손부인 앞에 던지자 부인이 크게 놀란다.
"숙숙 叔叔(작은아버지)께서 어찌 이리 무례하시오?"
"수수께서 저희 가가(형)를 중하게 여기시지 않으시고 사사로이 귀가하시니 이것이 무례요!"
"제 모친께서 병중하셔서 심히 위급하시오. 그대 가가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다간, 내 일을 그르치고 말 것이오. 만약 나를 놓아 돌아 가게 하지 않으면, 내 진정 바라건대 강에 빠져 죽겠소!"
장비가 조운과 상의한다.
"부인을 핍박해 죽이면 신하된 도리가 아니오. 다만 아두를 보호하고, 배들은 통과시켜야겠소."
이에 부인에게 말한다.
"저희 가가께서는 대한의 황숙이지만 수수를 모욕하신 적이 없소. 오늘 떠나시면 가가의 은의를 생각하셔서 어서어서 돌아오시오."
말을 마치고, 아두를 안고 조운과 함께 배를 돌리고, 손 부인과 다섯 척의 배를 떠나게 놓아준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조자룡을 찬미했 다.
지난날 당양에서 주공을 구하고
오늘은 대강으로 몸을 날렸다네
배 위 오병들 모두 간담이 터지니
자룡의 영용함 세상에 다시 없네
또 시를 지어 익덕을 찬했다.
예전 장판교에서 노기가 치솟아
범처럼 호통쳐 조병들을 물리쳤네
오늘 강물 위에서 주인을 구하니
청사는 만세에 그 이름을 전하리
두 사람이 환희하며 배를 돌린다. 몇리 못가, 공명 孔明이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맞이하러 와서, 아두를 이미 탈취한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한다. 세 사람이 말머리를 나란히 돌아온다. 공명이 문서를 가맹관으로 보내 현덕에게 알린다.
한편, 손 부인은 동오로 돌아가, 장비와 조운이 주선을 죽이고 강을 가로막아 아두를 빼앗은 것을 자세히 말한다. 손권이 크게 노해 말한 다.
"내 누이가 이미 돌아와, 그와는 이제 친척이 아니니, 주선을 죽인 원수를 어찌 갚지 않으랴!"
문무관리들을 불러 모아 상의해, 군을 일으켜 형주를 쳐서 빼앗으려 한다.
한창 조병 調兵 (군사의 운용/ 파병)을 상의하는데 조조가 40만 대군을 일으켜 적벽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고 한다. 손권이 크게 놀라, 형주를 공략하는 것을 미루고, 조조를 막을 것을 상의한다. 누군가 알린다.
"장사 長史(비서실장) 장굉 張紘이 질병으로 집으로 돌아가는데, 이미 질병이 있다며 애서 哀書를 바쳤나이다."
손권이 뜯어 읽어보니, 그 글에서 손권에게 말릉 秣陵 (현재의 남경/ 난징)으로 옮겨기를 권한다. 말릉의 산천은 제왕의 기운이 있으므 로 어서 이곳으로 옮겨야 만세의 대업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손권이 글을 일람한 뒤 곡하며 관리들에게 말한다.
"장자망 張子網이 내게 권하기를, 말릉으로 옮겨 머물라 하거늘 내 어찌 따르지 않으리오?"
즉시 명을 내려 건업 建業으로 도읍을 옮겨 석두성 石頭城 (본래 초나라의 금릉성)을 쌓게 한다. 여몽 呂蒙이 진언한다.
"조병이 몰려오니, 유수 濡須의 강어귀에 오 塢 (둑/ 보루/ 성채)를 쌓아올려 막아야 합니다."
장수들 모두 말한다.
"강둑에 올라 적병을 치고, 재빨리 배에 타면 되지, 어쩌자고 성을 쌓겠소?"
여몽이 말한다.
"군사는 이둔 利鈍(날카로움과 무딤/ 순탄과 곤란/ 이해/ 승패)이 있고, 싸움은 필승이란 것이 없소. 졸연히(갑자기) 적병을 만나, 보병과 기병이 압박해서, 사람들이 강물에 다다를 틈이 없다면, 어찌 능히 배를 타겠소?"
손권이 말한다.
"사람은 멀리 걱정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생긴다 하였소. 자명 子明(여몽의 자)의 견해가 심히 멀리 내다보는 것이오."
결국 병사 수만 명을 보내 유수에 보루를 쌓는다. 새벽부터 밤까지 아울러 공사하여, 기한을 정해 준공을 고하게 한다.
한편, 조조는 허도에 머물며, 위엄과 복록이 나날이 심해진다. 장사 동소 董昭가 진언한다.
"예로부터, 인신(신하) 가운데 승상처럼 공로 있는 이가 없었습니다. 비록 주공, 여망이라도 승상께 미치지 못하나이다. 즐풍목우 櫛風 沐雨(바람으로써 머리를 빗고, 비로써 목욕함)하시며, 서른 해를 넘게, 군흉(흉악한 무리)을 소탕하고, 백성을 위해 제해(재난이나 골칫거리를 제거함)하셔서 한실을 다시 살리셨거늘 어찌 신재 臣宰 (중신/ 재상)들과 동렬에 서시겠습니까? 위공의 지위를 받으실 뿐 더러, '구석 九錫'을 더하여, 공덕을 드러내야 할 것이옵니다."
저 구석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첫째, 거마(수레와 말); 둘째, 의복; 셋째, 악현 樂懸(왕들의 음악); 넷째, 주호 朱戶 (붉은 문이 달린 집); 다섯째, 납폐 納陛 (처마 밑에 놓아, 높은 사람이 밟고 오르게 하는 섬돌); 여섯째, 호분 虎賁 (용사/ 문을 지키는 병사들); 여섯째, 부월(작은 도끼와 큰 도끼/ 권력의 상징); 여덟째, 궁시(활과 화살); 아홉째, 거창규찬 秬鬯圭瓚(제사에 쓰이는 검은 기장으로 만든 술 과 술잔)이다.
시중 순욱 荀彧이 말한다.
"불가합니다. 승상께서 본래 의병을 일으키셔, 한실을 바로잡으셨으니 마땅히 충정한 뜻을 간직하시고 겸퇴(겸양)하시는 절개를 지키셔 야 합니다. 군자는 덕으로써 사람을 아끼는 것이지 이리해서는 안 됩니다."
조조가 그 말을 듣고 발연히(벌컥) 낯빛이 바뀐다. 동소가 말한다.
"어찌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소망을 막겠습니까?"
결국 표를 올려 조조를 위공으로 높이고 구석을 더할 것을 청한다. 순욱이 탄식한다.
"오늘 이런 일을 보게 될 줄 생각하지 못했구나!"
조조가 듣고, 이를 몹시 원망하며 자기를 돕지 않는다 여긴다. 건안 17년 겨울 10월, 조조가 병력을 일으켜 강남 정벌에 나서며, 순욱에 게 동행을 명한다. 순욱은 조조가 자기를 죽일 마음이 있음을 알아, 병을 핑계로 수춘 壽春에 머문는데 조조가 사람을 시켜 음식 1 합 盒(함/ 상자/ 갑/ 곽)을 보낸다. 합 위는 조조의 친필로 봉기 封記 (봉함을 표기함)했는데, 합을 열어 살피니 아무 것도 없다. 순욱이 그 뜻을 알아차려 곧 독약을 복용해 사망한다. 향년 50세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탄식했다.
가련하게 *권문에 잘못 발을 담갔네
뒷사람들은 *유후와 견주지 말지니
죽을 때 한나라 군주를 볼 낯이 없었네
그 아들 순운 荀惲이 애서 哀書를 보내 조조에게 알리자 조조가 몹시 오회 懊悔 (뉘우침)해 그를 후하게 장례 지내도록 명하고 시호를 경후 敬侯라 한다.
한편, 조조의 대군이 유수에 이르러, 먼저 조홍 曹洪더러 3만의 철갑마군(철갑 중기병)을 거느리고 강변까지 정찰하게 하니, 돌아와 보 고한다.
"멀리 강변 일대에 정기(깃발들)가 무수하나, 적병들이 어디 모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조조가 안심하지 못해 스스로 병력을 거느려 전진해 유수 입구에 군진 軍陣 (군대의 진용)을 펼친다. 조조가 1백 남짓의 사람을 거느려 산비탈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전선들이 각각 5 대열로 나뉘어 차례대로 배열돼 있다. 깃발들도 다섯가지 색으로 구분하고, 병기들도 선 명한데 중앙의 큰 배 위 청라 青羅 일산 밑에 손권이 앉아 있다. 그 좌우에 문무관리들이 양 옆으로 시립해 있다. 조조가 채찍으로 가리켜 말한다.
"아들을 낳는다면 손중모 같아야 할 것이오! 유경승(유표)의 자식 같다면 개돼지일 뿐이오!"
갑자기 큰소리가 울리더니, 남선(강남의 배/ 동오의 전선)들이 일제히 나는듯이 몰려온다. 유수의 보루 안에서도 1군이 나와서 조조군을 공격한다. 조조군이 달아나는데 제지할 수 없다. 문득 1천백 기가 산기슭까지 뒤쫓는데 선두에서 말을 모는 이는 파란 눈에 자줏빛 수염이다. 사람들 모두 그가 바로 손권임을 안다. 손권이 몸소 1대의 군마를 거느려 조조를 추격한다. 조조가 크게 놀라 급히 말머리를 돌리는데 동오의 대장, 한당과 주태 2 기가 곧장 치고 들어온다. 조조 배후에서 허저가 말을 내달려 칼을 휘 두르며 두 장수를 맞서는 틈에 조조가 탈출해 영채로 돌아온다. 허저가 두 장수와 30여 합을 싸우고서야 돌아온다. 조조가 영채로 돌아 가 허저를 크게 포상하고 장수들을 책망한다.
"적병을 맞이해 먼저 달아나 우리의 예기를 꺾다니! 다음에도 이러면 모조리 목을 베겠소!"
이날밤 3경 무렵, 홀연히 영채 밖에서 함성이 크게 진동한다. 조조가 급히 말에 올라보니 사방에 불길이 치솟고 오병들이 대채 大寨를 쳐 들어와, 새벽까지 무찌르니 조병 曹兵들이 50여 리를 물러나 영채를 세운다. 조조가 마음속으로 울민 鬱悶(우울하고 괴로움)해 병서 를 넘기고 있는데 정욱 程昱이 말한다.
"승상께서 이미 병법을 아시거늘 어찌 병귀신속 兵貴神速(용병은 귀신처럼 빠른 것을 귀하게 여긴다)을 모르시겠습니까? 승상께서 병 력을 일으키셔 오래 끌다보면 손권이 준비할 수 있게 되옵니다. 저들이 유수 강어귀를 끼고 보루를 쌓아, 아군이 공격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병력을 물려 허도로 돌아가 따로 좋은 계책을 세움만 못하옵니다."
조조가 응하지 않아, 정욱이 나간다. 조조가 책상에 기대 누워 있는데 파도 소리가 흉용하니 마치 만 마리 말들이 날뛰는 것 같다. 조조가 급히 바라보니 대강(장강/ 양자강) 가운데 둥그러 붉은 해가 솟아, 그 빛이 눈부시다. 하늘을 우러러보니 또한 두 개의 태양이 서 로 마주 비춘다. 강 가운데 그 붉은 해가 곧장 솟구쳐 올라 영채 앞 산 속에 떨어지니 그 소리가 우레 같다. 번쩍 깨어나보니 막사 안 에서 꾼 한바탕 꿈이다. 군중의 병사가 오시(낮 12시 전후 1시간)를 알린다. 조조가 말을 준비하라 시켜, 50여 기를 이끌고 곧장 영채를 나가서 꿈속에서 본 해가 떨어진 산기슭에 다다른다. 그곳을 살펴보고 있는데, 갑자기 한떼의 인마가 보이니 앞장선 이는 황금투구에 황 금갑옷이다. 조조가 바라보니 바로 손권이다.
손권은 조조가 온 것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고 산 위에 말을 세워 놓고, 채찍으로 조조를 가리켜 말한다.
"승상께서 중원을 차지해 부귀가 이미 극에 달하셨거늘 무슨 까닭에 탐심이 부족해 우리 강남을 침략하는 것이오?"
조조가 답한다.
"그대는 신하로서 왕실을 존중하지 않고 있소. 나는 천자의 조서를 받들어 그대를 토벌하러 왔을 뿐이오!"
손권이 웃으며 말한다.
"이 말이 어찌 부끄럽지 않겠소? 천하에서 어찌 그대가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함을 모르겠소? 나는 한조 漢朝를 존중하지 않음이 아니 라 바로 그대를 토벌해 국가를 바로잡고자 할 따름이오!"
조조가 크게 노해 장수들에게 소리쳐 산을 올라 손권을 잡으라 하는데 한바탕 북소리 울리더니 산 배후에서 2개 부대가 출현한다. 우변은 한당과 주태요 좌변은 진무와 반장이다. 네 장수가 3천 궁노수를 거느려 난사하니 화살이 빗발친다. 조조가 급히 장수들을 이끌고 되돌아 달아난다. 배후에서 네 장수가 뒤쫓아 매우 급박하다. 추격 받는 도중에 허저가 호위군을 이끌고 막아서 조조를 구해 돌아간다. 오병들이 일제히 개가(승전가)를 울리며 유수로 돌아간다.
조조가 영채로 돌아가 생각한다.
'손권은 등한인물 等閒人物 (평범한 사람)이 아니구나. 붉은 해가 응하니(조짐이 나타나니) 먼훗날 필시 제왕이 될 것이다."
이에 마음속으로 병력을 물릴 뜻이 생긴다. 그러나 동오의 비웃음을 받을까 두려워 진퇴를 결정하지 못한다. 양쪽이 서로 대치하기 한달 남짓, 수차례 싸워 승부를 나눠 가진다. 다음해 정월이 되자 봄비가 연면 連綿 (그치지 않음)해 수항 水港 (강과 그 지류)이 모두 물이 차올라 병사들이 진흙탕 속에서 고초가 보통이 아니다. 그날도 영채 안에서 모사들과 상의하고 있는데, 누구는 조조에게 병력을 거두자 하고, 누구는 곧 봄날이라 따뜻해질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려야지 물러나선 안 된다고 말한다. 조조가 주저하며 결단하지 못한다. 그런 데 보고가 들어오니, 동오의 사자가 서찰을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조조가 열어서 보니, 대략 이렇다.
'고 孤(제후의 1인칭)와 승상은 피차 모두 한조의 신재(중신/ 재상)이오. 승상께서 보국안민을 생각하시지 않고 망녕되게 간과(각종 창 / 무기)를 움직여 생령(백성)을 잔인하게 학살하니 어찌 인인(어진 사람)의 할 바이겠소? 즉일(가까운 시일) 춘수(봄물/ 얼음 녹은 물 )가 바야흐로 흐를 테니, 공께서 마땅히 속히 떠나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또다시 적벽의 화를 입게 되리다. 공께서 스스로 생각하셔야 할 것이오.'
그 서찰 후면에 덧붙이기를, '족하께서 죽지 않으면, 고는 안심할 수 없소이다.'라 하였다. 조조가 읽기를 마쳐, 크게 웃는다.
"손중모가 나를 업신여기지는 못하구나!"
내사(찾아온 사자)를 중하게 포상하고, 곧 명을 내려 군을 거두게 하고, 여강태수 廬江太守 주광 朱光에게 명령해 완성 皖城을 굳게 지키게 하고, 스스로는 대군을 이끌고 허창 許昌으로 돌아간다. 손권도 군을 거둬 말릉으로 돌아간다. 손권이 장수들과 상의한다.
"조조가 비록 북쪽으로 떠났으나 유비는 아직 가맹관에서 돌아오지 않았으니, 내 어찌 조조를 막은 병사들을 이끌고 형주를 취하지 않겠 소?"
장소가 계책을 바친다.
"우선은 출병하지 마시옵소서. 제게 꾀가 하나 있사오니, 유비로 하여금 다시는 형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겠나이다."
조맹덕의 웅병이 방금 북방으로 물러갔는데
손중모 장대한 포부, 다시 남방을 도모하네
장소가 무슨 계책을 꺼내놓을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