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84회 육손이 촉군의 영채를 7백리에 걸쳐 불사르고 공명이 교묘히 팔진도를 펼친다

    한편, 한당과 주태는 선주가 영채를 옮겨 서늘한 곳으로 간 것을 탐지하고 급히 육손에게 알리러 온다. 육손이 크게 기뻐하며 곧 병력을 이끌고 동정을 살피러 온다. 그런데 평지의 1둔屯( 둔屯은 옛날 군대의 작전 단위 )은 불과 만여 명인데 태반이 노약자 무리이고 깃발에 ‘ 선봉 오반'이라고 크게 써놓았다. 주태가 말한다.

    “내가 보기에 이들 병력은 마치 애들 장난 같을 뿐이니 바라건대 한 장군과 더불어 양 갈래로 치겠소. 이기지 못하면 군령을 달게 받겠소 .”

    육손이 한참 살피더니 채찍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앞쪽 산골짜기 안에 은은히 살기殺氣가 일어나니 그 밑에 필시 복병이 있을 것이오. 평지에 이러한 약병들을 두고 아군을 유인할 따름 이니 공들은 절대 나가선 안 되오.”

    장수들이 듣더니 모두 육손을 나약하다고 여긴다. 다음날 오반이 병력을 이끌고 관 앞에 와서 싸움을 거는데 무력을 과시하며 욕설을 쉬 지 않는다. 많은 이가 갑옷도 벗고 벌거숭이가 되어 누워 자거나 앉아 있다. 서성과 정봉이 군막 안으로 들어와 육손에게 아뢴다.

    “촉병이 아군을 몹시 업신여기오! 저희가 바라건대 출격하겠소!”

    육손이 웃으며 말한다.

    “공들은 다만 혈기지용血氣之勇( 충동적 용기 )만 믿으며 손오병법孫吳兵法( 손자와 오자의 병법 )은 알지 못하오. 이것은 저들이 적군을 유인하는 계책이오. 3일 후에 반드시 그 거짓됨이 드러날 것이오.”

    서성이 말한다.

    “3일 후 저들이 영채를 이미 다 옮기면 어찌 능히 칠 수 있겠소?”

    “나도 저들이 영채를 옮기길 바라던 참이오.”

    장수들이 비웃으며 퇴장한다. 3일이 지나자 장수들을 관 위에 불러모아 관망하니 오반의 병력이 이미 물러난 것이 보인다. 육손이 가리 키며 말한다.

    “살기가 일어나는구려! 유비가 틀림없이 산골짜기에서 나가는 것이오.”

    그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촉병들 모두 완전무장한 채 선주를 빽빽히 호위해 가는 것이 보인다. 오병들이 보더니 모두 간담이 쪼개진다. 육손이 말한다.

    “내가 공들의 공격 주장을 듣지 않은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오. 이제 복병이 모두 떠났으니 열흘 안에 반드시 촉병을 격파할 것이오.”

    장수들 모두 말한다.

    “마땅히 초기에 촉병을 격파했어야 했소. 이제 잇달아 영채들이 5, 6백 리에 걸쳐 있소. 서로 지키다 7, 8월이 지나가면 그들이 요해要害 ( 요해지/ 전략 요충지 )를 모두 고수하고 있을 텐데 어찌 능히 격파하겠소?”

    “공들은 병법을 모르오. 유비는 바로 세상의 효웅梟雄( 사납고 용맹한 영웅 )인데다 지모智謀도 많아서 그 병력이 처음 집결할 때는 법도 가 정전精專( 정돈되고 통일됨)했소. 이제 수비를 오래해도 아군의 헛점을 찾지 못해 저들 병력은 피로하고 사기는 떨어지니 바로 오늘 이 저들을 칠 기회요.”

    장수들이 그제서야 탄복한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렸다.

    호장虎帳*에서 병법을 논하며 육도삼략을 살피고
    향이香餌*를 준비해 고래와 거북을 낚아올리네
    삼분三分*에 이로부터 영웅과 준걸도 많지만
    다시 강남의 육손陸遜이 명성을 드높이네

    한편, 육손이 촉을 격파할 계책을 세우고 글을 적어 사자를 보내 손권에게 아뢰며 촉을 깰 수 있다는 뜻을 보인다. 손권이 읽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강동에 또다시 이러한 이인異人(남다른 사람)이 있으니 고가 어찌 걱정하랴! 장수들 모두 글을 올려 그를 나약하다 말해도 고 홀로 믿지 않았는데 이제 그의 말을 보니 과연 나약한 게 아니었소.”

    이에 동오의 병력을 크게 일으켜 접응하러 간다.

    한편, 선주는 효정에서 수군을 총동원해 물길을 따라 내려가며 수채(수군 진지)를 세워 주둔하게 한다. 동오 영토로 깊이 들어가니 황권 이 간언한다.

    “수군이 강물을 따라 내려가니 전진은 쉬우나 후퇴가 어렵습니다. 신이 바라건대 전구前驅(앞서 가는 사람)가 될 터이오니 폐하께서는 마땅히 후진(후방 진지)에 머무셔야 만무일실萬無一失일 것입니다.”

    “오적吳賊들이 간담이 떨어지고 짐이 장구대진長驅大進( 멀리 거침없이 진격함 )하거늘 거칠 것이 무엇이겠소?”

    신하들이 애써 간하지만 선주가 듣지 않고 곧 양쪽으로 병력을 나눈다. 황권에게 명해 강북의 병사들을 통솔해 위구魏寇(위나라 군대를 낮춰 부르는 말)를 막도록 하고, 선주는 직접 강남의 제군諸軍(여러 군대)을 통솔해 강을 사이에 두고 영채를 나눠 세워 진격을 도모한다. 세작이 탐지해 밤낮없이 가서 위주魏主 조비에게 알린다. 세작은 촉병이 동오를 정벌하며 수책樹柵( 목책/ 나무 울타리 )으로 영채를 잇달아 세워 가로세로 7백여 리에 걸쳐 4십여 군데에 주둔하는데 모두 산림에 영채를 세웠다고 말한다. 또한 황권에게 병력을 맡 겨 북쪽 강가에에서 매일 1백 여리를 경계하러 나가는데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위주가 듣더니 얼굴을 쳐들고 웃으며 말한다.

    “유비는 곧 패전할 것이오.”

    신하들이 그 까닭을 듣기를 청하자 위주가 말한다.

    “유현덕은 병법을 깨우치지 못했소. 어찌 7백 리에 걸쳐 영채를 잇달아 세우며 적병을 막겠다는 것이오? 원습原隰(평원과 습한 저지대) 과 험저險阻(위험하고 거친 지형)에 병력을 주둔하는 것은 병법에서 크게 꺼리는 것이오. 현덕은 동오 육손의 손에 반드시 패할 것이오. 열흘 안에 소식이 오고 말 것이오.”

    신하들이 아직 믿지 못하고 모두 군대를 내어 방비할 것을 청하니 위주가 말한다.

    “육손이 이기면 반드시 동오의 병력을 모두 일으켜 서천을 취하러 갈 것이오. 동오 병력이 멀리 가면 국내가 공허할 테니 짐이 병력으로 써 돕겠다는 핑계를 대며 세 갈래로 일제히 진병한다면 동오는 손바닥에 침 뱉듯이 취할 수 있소.”

    모두 배복拜服( 우러러 탄복함 )한다. 위주가 영을 내려 조인은 1군을 지휘해 유수로 출병하고 조휴는 1군을 지휘해 동구로 출병하고 조 진曹真은 1군을 지휘해 남군으로 출병하게 한다.

    “3로의 군마는 정해진 기일에 회합해 동오를 암습暗襲( 몰래 급습함 )하시오. 짐이 뒤따라 직접 접응하러 가겠소.”

    조견調遣( 동원과 파견 )을 이렇게 정한다.

    이렇게 위병들이 동오를 습격하려는데, 마량은 서천에 이르러 공명을 만나 도본을 바치며 말한다.

    “이제 강을 끼고 7백여 리에 걸쳐 4십여 개의 둔屯( 진지/ 병영 )을 세우니 모두 냇물과 산골짜기에 가깝고 수풀이 무성한 곳입니다. 주 상께서 저에게 명해 도본을 가지고 와서 승상께 드려 살펴보도록 하셨습니다.”

    공명이 도본을 보더니 탁자를 내리치며 괴로워 부르짖는다.

    “대체 누가 주상께 이렇게 영채를 세우라 했소?”

    “모두 주상께서 직접 하신 것이지 다른 사람의 계책이 아닙니다.”

    공명이 탄식한다.

    “한조漢朝( 한나라 왕조 )의 기수氣數( 명운 )도 끝이구나!”

    마량이 그 까닭을 묻자 공명이 말한다.

    “원습原隰( 평원과 습한 저지대 )과 험저險阻( 위험하고 거친 지형 )에 영채를 세우는 것은 병법에서 크게 꺼리는 것이오. 저들이 화공을 쓴다면 어찌 해구解救( 위험이나 곤경을 벗어남 )하겠소? 또한 어찌 잇달아 7백 리에 걸쳐 영채를 세워서 적을 막을 수 있겠소? 재앙이 멀지 않았소! 육손이 막아서 지키며 나오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니 그대는 어서 천자를 만나러 가서 영채들을 옮겨야지 이래서는 안 되오.”

    “만약 오병이 벌써 이겼다면 어찌해야겠습니까?”

    “육손은 감히 뒤쫓아 오지 않을 것이니 성도를 아무 걱정 없이 지킬 수 있소.”

    “육손이 무슨 까닭으로 뒤쫓지 않겠습니까?”

    “위병들이 그들의 배후를 칠까 두려워서요. 주상께서 잘못 되시면 마땅히 백제성으로 모시고 가서 피하시오. 내가 서천으로 들어올 때 이미 십만 병력을 어복포魚腹浦에 매복시켰소.”

    마량이 크게 놀라 말한다.

    “제가 어복포에 수차례 왕래했으나 여태 병졸 하나 본 적이 없거늘 승상께서 어찌 이런 거짓말을 하십니까?”

    “뒷날 틀림없이 보일 테니 더 묻지 마시오.”

    마량이 표장表章( 신하가 군주에게 올리는 글 )을 구해서 부리나케 어영으로 돌아간다. 공명이 성도로 돌아와 군마를 조발調撥( 동원 )해 구원에 나서려 한다.

    한편, 육손은 촉병이 느슨해진 것을 보고 방비를 그만두고 군막으로 나아가 대소 장사들을 불러모아 명령을 듣게 한다.

    “내가 왕명을 받들어 온 이래 아직껏 출전하지 않았소. 이제 촉병을 살피며 그들의 동정을 충분히 알았으니 먼저 남쪽 강변의 1개 진영을 선취하려는데 누가 용감히 가서 취하겠소?”

    그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한당, 주태, 능통 등이 응답하며 나온다.

    “저희가 가겠습니다.”

    육손이 모두 물러가라며 그들을 쓰지 않고 오로지 부하들 가운데 말장末將( 지위가 낮은 장수 ) 순우단淳于丹을 불러 말한다.

    “내 그대에게 5천 병사를 줄테니 강남(여기서는 장강의 남쪽 강변)의 제4영을을 취하시오. 촉의 장수 부동傅彤이 지키는데 오늘 저녁 성 공한다면 내 직접 병력을 거느려 접응하겠소.”

    순우단이 병력을 이끌고 떠나자 다시 서성과 정봉을 불러 말한다.

    “그대들은 각각 병력 3천을 거느려 영채에서 5 리 바깥에 주둔해 순우단이 패해서 돌아올 때 뒤쫓는 병력이 있으면 출격해 구출하되 적 병을 추격하지는 마시오.”

    두 장수가 병력을 이끌고 떠난다.

    한편, 순우단은 황혼 무렵에 병력을 거느려 전진한다. 촉병의 영채에 이르니 벌써 3경이 지난 뒤다. 순우단이 병사들에게 북을 두드리며 쳐들어가게 한다. 촉의 영채에서 부동이 병력을 이끌고 튀어나와 창을 꼬나쥐고 순우단에게 달려든다. 순우단이 대적하지 못하고 말머 리를 돌린다. 그런데 함성이 크게 일더니 1군이 퇴로를 가로막는다. 선두의 대장은 조융趙融이다. 순우단이 길을 뚫고 달아나지만 병사 태반을 잃는다.

    달아나고 있는데 산 뒤에서 1군이 막아서니 그 우두머리는 번장 사마가 沙摩柯다. 순우단이 죽기살기로 싸워 탈출하는데 배후에서 3로의 군대가 뒤쫓는다. 영채 밖 5리 쯤에 이르러 동오군의 서성과 정봉이 양쪽에서 달려드니 촉병들이 물러가 순우단을 구출 해 영채로 돌아간다. 순우단이 화살이 꽂힌 채 육손을 만나 죄를 청한다.

    육손이 말한다.

    "그대의 잘못이 아니오. 내 일부러 적인들의 허실을 떠보려했을 따름이오. 촉병을 깨뜨릴 계책을 이미 정했소."

    서성과 정봉이 말한다.

    "촉병의 군세가 대단해 격파하기 어려운데 헛되이 스스로 병졸과 장수를 잃을 뿐이오."

    육손이 웃으며 말한다.

    "내 이런 계책은 오로지 제갈량만 속아넘어가지 않을 것이나 하늘이 도와서 그가 부재하니 나로 하여금 큰 공을 세우게 할 것이오."

    마침내 대소 장사들을 불러모아 영을 듣게 한다. 주연은 수로로 진병하되 내일 오후에 동남풍이 크게 불면 배에 모초 茅草( 띠, 여러해살 이 풀의 일종 )를 싣고 계책대로 움직이게 한다. 한당은 1군을 이끌고 북쪽 강변을, 주태는 1군을 이끌고 남쪽 강변을 치게 한다.

    사람마다 손에는 모초를 한다발 들고 몸에는 유황과 염초燄硝를 지니고 제각기 불씨를 휴대하고 창칼을 잡고 일제히 상륙하라는 것이 다. 일단 촉군의 진영에 이르면 바람을 타고 불을 붙여서 촉병의 4십 둔 가운데 오로지 2십 둔만을 불태워 매번 1둔을 건너뛰고 다음 1둔을 불사르라 명한다.

    병사마다 미리 마른 식량을 갖게 해 잠시도 물러나지 말고 밤낮으로 추격해 오로지 유비를 사로잡아야 멈출 것이라 한다. 장수들이 군령을 듣고나서 각자 계책을 수령해 떠난다.

    한편, 선주는 어영에서 동오를 깨뜨릴 계책을 생각한다. 갑자기 군막 앞 중군 中軍의 기치(각종 깃발)가 바람도 안 부는데 저절로 쓰러진 다. 이에 정기 程畿에게 묻는다.

    "이게 무슨 징조요?"

    "오늘밤 오병들이 영채를 습격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젯밤 모조리 죽였는데 어찌 감히 다시 오겠소?"

    "만약 육손이 적병을 떠보려는 것이었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는데 누군가 알린다. 산 위에서 멀리 바라보니 오병들이 모조리 산 둘레를 따라 동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선주가 말한다.

    "이것은 의병 疑兵( 거짓으로 진영을 갖춰 적병을 현혹하는 병력 )이오."

    사람들더러 움직이지 말라 하고 관흥과 장포에게 각각 5백 기를 이끌고 순찰에 나서라 명한다. 황혼 무렵 관흥이 돌아와 아뢴다.

    "강북의 영채에서 불길이 치솟습니다. "

    선주가 급히 명해 관흥은 강북으로, 장포는 강남으로 가서 허실을 살펴보도록 한다.

    "만약 오병이 온다면 어서 돌아와 알리라."

    두 장수가 명령을 받들어 떠난다. 초경 무렵에 동남풍이 몰아친다. 그런데 어영의 왼쪽 진지에서 불꽃이 피어오른다. 바야흐로 구원하 려는데 어영의 오른쪽 진지에서도 불길이 치솟는다. 바람이 몰아치고 불길이 거세어 나무들 모두 불붙는다. 함성이 크게 진동하며 양쪽 진지의 군마들이 일제히 나와서 어영 안으로 흩어져 달아난다.

    어영에서 병사들이 서로 짓밟으니 죽은 이를 헤아릴 수 없다. 뒷쪽에서 오병들이 쇄도하는데 그 군마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지 못한다. 선주가 급히 말을 타고 풍습의 영채로 달아나지만 그곳 영채 안에서도 불빛이 하늘로 치솟는다. 강남이나 강북이나 대낮처럼 훤하다.

    풍습이 황망히 말에 올라 수십 기를 이끌고 달리다가 오장 서성의 병사와 마주쳐 서로 맞서 싸운다. 선주가 이를 보더니 말머리를 돌려 서쪽으로 달아난다. 서성이 풍습은 놓아두고 병력을 이끌고 뒤쫓는다. 선주가 황망한데 그 앞을 1군이 가로막으니 바로 오장 정봉이다. 양쪽에서 협공하니 선주가 크게 놀라는데 사방 모두 달아날 길이 없다. 그런데 함성이 크게 일며 1군이 두터운 포위 망을 뚫고 들어오니 바로 장포다. 선주를 구출해 어림군 御林軍을 이끌고 달아난다.

    이렇게 가는데 앞쪽에 또다른 1군이 몰려오니 바로 촉장 부동의 병사들이다. 병력을 한데 합쳐서 간다. 배후에서 오병이 따라붙 는다. 선주가 어느 산에 이르니 그 이름이 마안산이다. 장포와 부동이 선주에게 청해 산 위에 올라보니 산 밑에서 또다시 함성이 인다. 육손의 대군이 마안산을 에워싼다. 징포와 부동이 죽을 각오로 산 입구를 막아낸다. 선주가 멀리 바라보니 들판 가득 불빛이 끊이지 않 고 시체가 겹겹이 쌓여 강을 메우며 흘러간다.

    다음날 오병이 다시 사방에 불을 놓아 산을 태워 병사들이 마구 달아나니 선주가 놀라고 허둥댄다. 문득 불길 속에서 어느 장수가 몇 기 를 이끌고 산으로 달려오는데 바로 관흥이다. 관흥이 엎드려 청한다.

    "사방에서 불길이 핍근 逼近(몹시 가깝게 닥침)하니 오래 머물 수 없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속히 백제성으로 피하시어 다시 군마를 거두 셔야 하옵니다."

    "누가 감히 후미를 차단하겠는가?"

    부동이 아뢴다.

    "바라옵건대 소신이 죽음으로써 막아내겠습니다!"

    이날 황혼 무렵에 관흥은 앞에, 장포는 가운데 있고, 부동을 남겨 후미를 차단하게 하고, 선주를 바짝 붙어 지키며 산 아래로 달려간다. 오병들은 선주가 달아나자 모두 전공을 다툰다. 각각 대군을 이끌고 천지를 뒤덮듯이 몰려와 서쪽으로 뒤쫓는다. 선주가 병사들에게 명 해 모두 갑옷을 벗어 그것으로 길을 메운 뒤 불살라 뒤쫓는 군대를 막으라 한다. 이렇게 달아나고 있는데 함성이 크게 울리며 오장 주 연이 한 무리 군을 이끌고 강변을 따라 달려와 진로를 가로막는다.

    선주가 울부짖는다.

    "짐이 여기서 죽는구나!"

    관흥과 장포가 말을 달려 맞부딪혀 싸우다가 화살을 맞아 돌아온다. 각각 중상을 입은지라 뚫고 나가지 못한다. 배후에서 함성이 다시 일며 육손이 대군을 이끌고 산골짜기 안에서 달려온다.

    선주가 황망하고 위급한 사이 하늘은 어느새 동이 터온다. 그런데 앞쪽에서 함성이 하늘을 뒤흔들더니 주연의 병사들이 분분히 골짜기 로 떨어지고 곤곤히 바위 아래로 뛰어내린다. 한 무리 병사들이 뚫고들어와 어가를 구한다. 선주가 크게 기뻐하며 바라보니 바로 상산 조자룡이다. 당시 조운은 천중 川中(동천, 서천의 양천 지방)의 강주 江州에 있다가 오, 촉이 교전함을 듣고 군을 이끌고 나왔다. 그런 데 동남쪽 일대에서 불빛이 하늘을 찌르자 조운이 속으로 놀라 저 멀리 바라보니 뜻밖에도 선주가 곤경에 처해 있기에 조운이 용맹을 떨 치며 들이쳐 온 것이다. 조운이 온 것을 들은 육손이 후퇴를.명한다.

    조운이 무찌르다 주연과 마주쳐 바로 교봉 交鋒(창칼을 교차해 싸움)한다. 불과 1합에 한 창에 주연을 찔러 말 아래 떨구고 오병을 죽이 고 쫓아버려 선주를 구해서 백제성으로 달려간다. 선주가 말한다.

    "짐은 비록 탈출하더라도 장수와 사졸들은 장차 어찌되겠소?"

    "적군이 뒤따르니 오래 지체할 수 없사옵니다. 폐하께서 우선 백제성으로 들어가 쉬시면 소신이 다시 병력을 이끌고 다른 장수들을 구하 러 가겠습니다.'

    이때 선주 곁에 겨우 백여 인이 남아 백제성으로 들어간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한탄했다.

    모초를 들고 불을 붙여 영채를 줄줄이 태우니
    현덕 玄德이 외로이 백제성으로 달아나네
    하루아침에 그 위명이 촉, 위를 놀라게 했거늘
    오왕 吳王은 어찌 서생을 예우하지 않는가

    한편 부동은 후미 차단을 맡지만 동오 군대가 사방팔방으로 포위한다. 정봉이 크게 외친다.

    "천병 川兵( 서천의 군대 곧 촉한의 군대 )은 죽은 자가 무수하고 항복한 자도 극히 많다. 네 주인 유비도 이미 사로잡혔다. 이제 네 힘은 다하고 형세는 외롭거늘 어찌 어서 항복하지 않냐?"

    부동이 꾸짖는다.

    "나는 한나라 장수이거늘 어찌 동오의 개들에게 항복하겠냐!"

    창을 꼬나쥐고 말을 몰아 촉군을 이끌고 힘을 떨쳐 죽기로 싸운다. 백여 합이 넘도록 좌충우돌하지만 뚫고 나갈 수 없다. 부동이 장탄식 한다.

    "나도 이제 끝이구나!"

    말을 마치고 피를 토하며 동오 병사들 속에서 죽는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부동을 기렸다.

    이릉에서 오, 촉이 크게 싸워
    육손이 꾀를 내어 불사르네
    죽을 때도 동오 개들을 욕하니
    부동은 부끄럽지 않은 한나라 장수

    촉한의 제주 祭酒( 관직명, 박사들의 우두머리 ) 정기는 필마匹馬로 강변까지 달려가 수군들을 불러 적병에 맞서러 가라 한다. 그러나 오 병들이 그 뒤에 따라오자 수군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난다. 정기의 부장이 외친다.

    "오병이 왔습니다! 정 제주께서도 어서 피하십시오!"

    정기가 노해서 말한다.

    "내가 주상을 따라 출군한 이래 여태까지 적병을 피해 달아난 적이 없다!"

    그말을 미처 마치기 전에 오병들이 달려와 사방으로 길이 없자 정기가 검을 뽑아 자결한다. 후세 사람이 시를 남겨 기렸다.

    비분강개한 촉한의 정 제주는
    몸에 지닌 검 한 자루로 군왕께 보답하네
    위기에 임해도 평소의 뜻을 바꾸지 않으니
    널리 명성을 얻어 만고에 향을 피우네

    이때 오반과 장남은 이릉성을 포위한지 오래인데 갑자기 풍습이 와서 촉병이 패전했다고 말한다. 곧 군을 이끌고 선주를 구하러 가니 손항 孫桓 이 비로소 빠져나올 수 있다. 장남과 풍습 두 장수가 가는데 앞에서 오병이 몰려오고 뒤에서 손항이 이릉성에서 서둘러 나와 서 양쪽으로 협공한다. 장남과 풍습이 힘을 떨쳐 충돌하나 빠져나오지 못한 채 난전 중에 죽는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기렸다.

    풍습의 충성은 비할 데 따로 없고
    장남의 의로움은 쌍벽이 드무네
    전장에서 기꺼이 싸우다 죽으니
    역사책에 모두 아름다움을 전하네

    오반이 두터운 포위를 겨우 뚫고 나오지만 다시 오병들의 추격을 받는다. 다행히 조운이 나타나 그를 구해서 백제성으로 돌아간다. 이 때 만왕 사마가는 필마로 달아나다가 주태를 만나 2십여 합을 싸워 결국 주태에게 살해된다. 촉장 두로와 유녕은 모두 동오에 항복한다. 촉군 진영의 식량과 물자가 모두 한 웅큼도 남지 않는다. 촉한의 장수와 병졸 가운데 항복한 이가 무수하다. 이때 손부인은 동오에 있으 면서 효정에서 패전해 선주가 군중에서 죽었다고 잘못 전해진 것을 듣고 수레를 몰아 강변으로 간다. 서쪽을 바라보며 통곡하더니 마침 내 강물에 뛰어들어 죽는다. 후세 사람들이 묘당을 강변에 세워 효희사 梟姬祠 ( 효웅 유현덕의 여인을 모시는 사당 )라 이름 지었다. 이것을 숭상하는 이들이 또한 시를 지어 노래했다.

    선주의 병력이 백제성으로 돌아가니
    부인이 홀로 살 수 없어 목숨을 버리네
    지금도 강가에 비석이 남아 있으니
    천추에 열녀의 이름 여전히 또렷하네

    한편, 육손은 큰 공을 세우고 승전한 병력을 이끌고 서쪽으로 추격한다. 기관 夔關( 장강 상류의 중요 관문 )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육손 이 말에 올라 앞쪽의 산과 강 둘레를 살펴보니 한바탕 살기가 하늘을 찌름이 느껴진다. 곧 말을 멈춰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한다.

    "앞쪽에 틀림없이 매복이 있으니 삼군이 함부로 나아갈 수 없소."

    즉시 거꾸로 십여 리를 물러나 지세가 공활한 곳에 진세를 펼쳐 적병을 방어하도록 한다. 곧 초마( 정찰병 )를 보내 정탐하도록 한다. 초마가 돌아와 아무 병사도 그곳에 없다고 한다. 육손이 믿지 못하고 말에서 내려 산을 올라 바라보니 여전히 살기가 솟아오른다. 육손이 다시 영을 내려 자세히 정탐하게 하지만 초마가 돌아와 앞에 사람 한 명, 말 한 마리도 없다고 보고한다.

    육손이 보니 해가 서쪽으로 저무는데 살기가 더욱 등등한다. 이에 마음 속으로 주저하며 영을 내려 심복으로 하여금 다시 가서 살펴보게 하니 돌아와 보고하기를, 강변에 단지 난석 亂石(잡석)이 8, 9십 군데 쌓여 있을 뿐 아무런 인마도 없다고 한다. 육손이 몹시 의아해 하며 영을 내려 토인(현지주민)을 찾아 물어보게 한다. 잠시 뒤 몇 사람이 도착하니 육손이 묻는다.

    "누가 난석을 쌓았소?"

    "이곳의 지명은 어복포인데 제갈량이 서천에 들어올 때 이곳으로 병력을 이끌고 와서 돌을 가져다가 사탄 沙灘(모래톱 가의 여울) 위에 진세를 꾸며 놓았습니다. 이때부터 늘 구름 같은 기운이 안에서 피어오릅니다."

    육손이 듣고나서 말에 올라 수십 기를 이끌고 그 석진 石陣( 돌로 만든 진세 )을 보러 간다. 산비탈 위에 말을 세워 바라보니 사면팔방에 온통 문과 출입구다. 육손이 웃으며 말한다.

    "이것은 사람을 현혹하는 술법일 뿐이니 무슨 보탬이 되겠소!"

    곧 몇 기를 이끌고 산비탈을 내려가 곧바로 석진으로 들어가 살핀다. 부장이 말한다.

    "날이 저물었으니 바라옵건대 도독께서 어서 돌아가셔야 합니다."

    육손이 석진을 나오려는데 홀연히 광풍이 크게 분다. 삽시간에 모래와 돌이 날아올라 천지를 뒤덮는다. 괴이한 돌들이 뾰족뾰족하고 나 뭇가지들이 검처럼 날카롭게 갈라져 있다. 모래가 날고 흙이 일어나 산처럼 겹겹이 쌓인다. 강물 소리가 요란하고 물결이 솟구치니, 마 치 창칼이 부딪히고 북을 두드리는 듯하다. 육손이 크게 놀란다.

    "내가 제갈의 계책에 빠졌구나."

    급히 돌아가려는데 나갈 길이 없다.

    놀라 헤매는데 어느 노인이 말 앞에 서서 웃으며 말한다.

    "장군께서 이 석진을 나가려 하시오?"

    "바라건대 장자 長者(어르신)께서 인도해 주십시오."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서히 간다. 곧장 석진을 나가는데 거침이 없이 산비탈 위까지 배웅한다. 육손이 묻는다.

    "장자는 누구십니까?"

    "이 늙은이는 제갈공명의 악부 岳父(장인) 황승언이오. 지난날 사위가 서천을 들어갈 때 이곳에 석진을 벌여 팔진도 八陣圖라 이름했소. 여덟 개의 문을 반복했는데 그 둔갑하는 것에 따라 휴 休、생生、상傷、두杜、경景、사死、경驚、개開요. 매일 매시에 그 변화가 끝이 없으니 가히 십만 정병에 비할 만하오. 그가 떠날 때 늙은이에게 부탁하며, 훗날 동오의 대장이 석진에서 헤매면 절대 이끌어 주지 말라 했었소. 늙은이가 바위 위에서 보자니 장군께서 사문 死門으로 들어갔소. 이 진을 알지 못해 틀림없이 헤매리라 생각했소. 늙은이는 평 소 선한 것을 좋아해 차마 장군을 이곳에 빠뜨려 둘 수 없어 일부러 생문을 찾아 나온 것이오."

    "공께서 일찍이 이 진법을 배우시지 않으셨습니까?"

    "변화가 무궁해 배울 수 없었소."

    육손이 황망히 말에서 내려 사례하고 돌아간다. 훗날 두공부(두보)가 시를 지었다.

    공 功은 삼국을 뒤덮고
    팔진도를 만들어 이름 높네
    강물은 흐르거만 돌은 구르지 않으니
    동오를 병탄하지 못해 한스럽구나

    육손이 영채로 돌아가 탄식한다.

    "공명은 참으로 와룡 臥龍이구나! 나는 따라갈 수 없구나!"

    이에 반사 班師(군대를 거느리고 돌아감 )를 명한다. 좌우에서 말한다.

    "유비가 패전하고 세력도 다해서 성 하나에 고립돼 지키니 참으로 이 기회에 공격해야 합니다. 지금 석진을 보고 후퇴하라니 무슨 까닭 입니까?"

    "내가 석진이 두려워 물러나겠소? 내가 생각하기에 위주 조비는 그 간사함이 그 부친과 다름이 없소. 이제 내가 촉병을 추격함을 그가 알고 필시 빈 틈을 노려 내습할 것이오. 내가 서천 깊이 들어간다면 급히 물러나기 어렵게 되오."

    곧 한 장수에게 영을 내려 후미를 방어하도록 하고 육손은 대군을 통솔해 돌아간다. 병력을 물린지 이틀이 안 돼 세 곳에서 사람들이 와 서 급히 보고한다.

    "위병 조인이 유수로, 조휴가 동구로, 조진이 동구로 출병했습니다. 세 갈래 병마가 수십만으로 밤낮없이 국경으로 오는데 아직 그 의도 를 모르겠습니다."

    육손이 웃으며 말한다.

    "내가 예상한 것을 벗어나지 못하구나. 내 이미 영을 내려 막도록 했소."

    웅대한 마음으로 서촉을 삼키려다가
    또다시 승산을 내서 북조를 막아야겠네

    어떻게 적병을 물리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