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제97회 무후가 위나라를 토벌하고자 출사표를 다시 올리고, 강유가 조씨 군대를 격파하려고 밀서를 속여서 보낸다
한편, 촉한( 촉나라 ) 건흥 6년 가을 9월, 위나라 도독 조휴가 동오의 육손에게 석정에서 대파되고, 수레와 마필, 군수물자와 병기 따위를 모조리 잃었다. 조휴가 몹시 겁에 질리고 근심이 쌓여, 결국 병이 나더니, 낙양에 도착해 등에 종기가 나서 사망한다. 위나라 군주 조예가 칙령을 내려, 그를 후하게 장사 지내게 한다. 사마의가 병력을 이끌고 돌아오니, 장수들이 맞아들여 묻는다.
"조 도독께서 패전한 것은 곧 원수의 책임이거늘, 무슨 까닭으로 급하게 돌아오셨습니까?"
"내가 보건대 제갈량이 아군의 패전을 안다면, 반드시 그 틈을 노려 장안을 공격하러 올 것이오. 농서 지방에 긴급한 일이 벌어진다면, 누가 구할 수 있겠소? 내가 이런 까닭에 돌아왔을 따름이오."
모두 사마의가 겁을 먹은 탓이라고 여기고, 비웃으며 물러간다.
한편, 동오에서 사자를 보내, 국서를 지니고 촉나라로 온다. 사자는 병력을 내어 위나라를 정벌하기를 요청하며, 아울러 동오가 조휴 를 대파한 일도 이야기한다. 첫째는 자기의 위풍을 과시하는 것이요, 둘째는 촉, 오 두 나라가 화해해 우호 관계를 맺자는 것이다. 후주 유선이 크게 기뻐하며 사람을 보내, 서신을 가지고 한중으로 가서, 공명에게 알리도록 한다. 이때 공명의 병사들과 말들은 강건하고, 군량은 풍족하고, 필요한 물자는 완비돼, 마침 출병하려던 참이다. 공명이 이런 소식을 듣자마자 연회를 베풀어, 장수들을 크게 모아놓 고 출병을 토의한다. 갑자기 한 바탕 거센 바람이 동북쪽에서 불어오더니, 뜰 앞 소나무를 꺾어버려 사람들 모두 크게 놀란다. 공명이 바 로 점을 한 번 치더니 말한다.
"이 바람은 대장 한 사람을 잃을 징조구나!"
장수들이 아직은 믿지 못한다. 한창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알리기를, 진남장군 조운의 장남 조통과 차남 조광이 찾아왔다 고 한다.
공명이 크게 놀라, 술잔을 땅에 떨어뜨리며 말한다.
"자룡이 돌아가셨구나!"
두 아들이 들어와 소리내어 울며 말한다.
"저희 부친께서 어젯밤 3경에 병환이 위중해 돌아가셨습니다."
공명이 발을 구르며 소리내어 운다.
"자룡이 세상을 뜨다니, 국가는 동량棟樑을 하나 잃고, 나는 한 팔을 잃었구나!"
장수들이 눈물 흘리지 않는 이가 없다. 공명이 두 아들에게 명하여, 성도로 들어가 임금을 만나뵙고, 상을 알리게 한다. 후주가 조운의 죽 음을 듣고, 목놓아 크게 울며 말한다.
"짐이 어렸을 때 자룡이 아니었다면, 난군( 난전 ) 중에 죽었을 것이오!"
즉시 조서를 내려 조운을 대장군으로 추증하고, 순평후의 시호를 내려 성도의 금병산錦屏山 동쪽에 묻도록 한다. 묘당을 건립해 사시사 철 제사를 올리게 한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었다.
상산에 호랑이 같은 장수 났으니
지략과 용맹이 관우, 장비 필적하네
한수에서 공훈 세우고
당양에서 이름 떨쳤네
두 번이나 어린 주군 구하고
오로지 옛 황제에 보답할 생각뿐이었네
청사에 그 충렬함을 실어서
백세에 그 꽃다운 이름 전하리라
한편, 후주는 조운의 지난 시절 공로를 생각하여, 장례를 몹시 후하게 지내주고 그 아들 조통을 호분중랑장으로, 조광웅 아문장으로 봉 하고 조운의 분묘를 지키라고 한다. 두 사람이 성은에 고마워하며 떠난다. 그런데 측근 신하가 아뢰기를, 제갈 승상이 군마의 분파分撥( 분배/ 처리 )를 벌써 마치고, 날을 골라 출병할 것이라고 한다. 후주가 조정에서 신하들에게 물으니, 신하들은 아직 가벼이 움직여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후주가 주저하며 결단하지 못하는데 승상령丞相令 양의가 '출사표'를 가지고 왔다고 아뢴다. 후주가 불러들이라 하 교하니, 양의가 출사표를 바친다. 후두가 탁자 위에 뜯어서 읽어보니, 내용이 이렇다.
'선제께서, 한나라와 역적은 양립할 수 없고, 왕업이 중원 밖 외진 곳에 머물 수 없음을 걱정하신 까닭에, 신에게 역적을 토벌하라 부탁 하셨습니다. 선제께서 명철하시게 신의 재주를 헤아려 보시고, 신이 역적을 토벌하려 해도, 재주는 미약하고 적들은 강한 것을 아셨습니 다. 그러나 역적을 토벌하지 못하면, 왕업도 망하는 것이니, 다만 앉은 채 망할 날만 기다린다면, 누구와 더불어 저들을 토벌하겠습니까? 이 때문에 선제께서 저에게 맡기시며 주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신이 어명을 받은 날, 잠자리도 편안하지 못하고 음식을 먹어도 맛있는 줄 몰랐습니다. 오로지 북쪽 정벌을 위해, 우선 남만으로 들어갔 습니다. 그러므로 5월에 여수를 건너고, 불모지를 깊숙히 들어가며, 병일이식並日而食( 하루 먹을 식사를 이틀에 나눠 먹음/ 몹시 곤궁 함 )했으나, 신이 스스로를 아끼지 않은 까닭은 아니었습니다. 생각컨대 왕업이 촉도蜀都( 촉나라의 서울 곧 성도 )에 한정돼서는 안 될 것이므로, 위난을 무릅쓰더라도 선제 폐하의 유지를 받들어야지, 의논만 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적도들은 서쪽 에서 지치고 동쪽에서도 힘들어, 병법에서 이르듯이 그 틈을 노려야 할 것이니, 이 때야말로 서둘러 진격해야 할 때입니다. 이에 삼가 다 음과 같이 아룁니다.
고조 황제께서는 해와 달과 같이 밝고, 모신( 참모 )들은 지략이 몹시 깊었으나, 위험을 겪고 상처를 입어서 위기에 처한 뒤에야, 비로소 평안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폐하께서는 고조 황제에 미치지 못하시고, 신하들은 장량과 진평과 같지 않은데도, 장책長策( 상책/ 만전의 계책/ 장구한 계책 )으로 승리를 거두려 하면서도, 가만히 앉은 채 천하를 평정하겠다니, 이것이 신이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첫번째 사안 입니다.
유요( 동한 말기 양주 자사 )와 왕랑( 동한 말기 회계 태수 )이 각 주를 점거하고 있었지만, 안정을 의논하고 계책을 말하면서, 어지럽게 성인 말씀을 인용하며 세월을 허송하니, 갖가지 어려움이 마음 속에 가득차게 되고, 온갖 어려움에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올해 싸우지 않고, 내년에도 정벌에 나서지 않는 식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손책으로 하여금 편안히 세력을 키우고 결국 강동을 병탄하게 만든 것입니 다. 이것이 신이 이해할 수 없는 두번째 사안입니다.
조조는 지략에서 사람들을 크게 뛰어넘고, 그 용병은 손자와 오자를 방불했습니다. 그러나 남양에서 포위되고, 오소에서 위험을 겪고, 기연에서 위기에 처하고, 여양에서 핍박 받고, 북산에서 참패를 당하고, 동관에서 거의 죽을 뻔한 뒤에야, 한때 겉으로마나 천하를 평정 할 수 있었습니다. 하물며 신은 재주가 미약한데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평정하려 하겠다니, 이것이 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세번째 사안입 니다.
조조가 창패昌霸( 동한 말기의 무장 )를 다섯 차례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 동오를 치기 위해 ) 소호를 네 차례 넘어갔으나, 성공하 지 못했습니다. 이복李服( 동승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려 한 장군 )을 임용했으나, 이복이 조조를 도모했습니다. 하후연에게 위임했으나, 하후연은 패전해 죽었습니다. 선제께서도 늘 조조를 유능하다고 칭찬하셨으나, 그런 조조도 이렇게 실수를 했습니다. 하물며 신은 노 둔하고 재능이 떨어지거늘 어찌 반드시 이긴다고 하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이해할 수 없는 네번째 사안입니다.
신이 한중으로 온 이래, 겨우 한 해가 지났을 뿐입니다. 그러나 조운, 양군, 마옥, 염지, 정립, 백수, 유합, 등동 같은 장수들과 아울러 곡장曲長( 고대 군대 편제의 하나인 ‘곡'의 지휘관 ), 둔장屯將( 주둔 기지의 지휘관 ) 7십여 인을 잃었습니다. 돌장, 무전, 빈수, 청강, 산 기, 무기武騎 등 여러 부대의 장졸도 1천여 인을 잃었습니다. 이들 모두는 수십년 동안에 걸쳐, 1개 주가 아니라 사방에서 규합한 정예 병력입니다. 다시 몇년이 지나면, 3분의 2를 잃을 텐데, 무엇으로 적들을 도모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이해할 수 없는 다섯번째 사안입니 다.
이제 백성은 궁핍하고 병졸은 지쳤지만, 그렇다고 쉴 수는 없는 형세입니다. 쉴 수 없을 뿐 아니라, 머물며 지키는 것과 싸우러 가는 것 은, 소모되는 인력과 재화가 마찬가지입니다. 조속히 도모하지 못하면서, 1개 주( 곧 촉나라가 근거한 1개 주, 익주 지방 )로써 적들과 지 구전을 펴겠다니, 이것이 신이 이해할 수 없는 여섯번째 사안입니다.
무릇 천하의 일이란, 헤아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지난날 선제께서 초에서 패군敗軍( 패전 )하셨습니다. 이런 일을 당하였을 때, 조조 는 손뼉을 치며, 천하가 이미 평정된 듯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뒤에, 선제께서 동쪽으로 오초( 동오 )와 연결하고, 서쪽으로 파촉을 취하 여, 병력을 일으켜 북쪽을 정벌하여, 하후연의 수급을 베었습니다. 이것은 조조의 실계失計( 실책 )이니, 한사漢事( 한나라를 중흥시키는 대사 )가 곧 이뤄질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뒤에, 오나라가 맹약을 어겨서, 관우가 훼패毀敗( 무너지고 패전함 )하고, 자귀秭歸( 중국 호북 성 서쪽의 지명 )에서 차질蹉跌( 미끄러져 다침/ 실패 )하니, 조비가 황제를 칭했습니다. 무릇 모든 일이 이와 같으니, 예측하기 어렵습니 다. 신은 삼가 온몸을 바쳐 일하며, 죽음에 이러서야 멈출 것입니다. 그러나 일의 성패와 이둔利鈍( 순조로움과 곤란 )은, 신이 능히 명 확하게 예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후주가 읽고나서 몹시 기뻐하며, 즉시 칙령을 내려 공명에게 출병을 명한다. 공명이 어명을 받들어, 3십만 대군을 일으켜, 위연에게 선봉부대를 총지휘하게 하고 진창의 길어귀로 가도록 한다. 재빨리 세작( 첩자 )이 보고를 올리러 낙양으로 들어간다. 사마의가 상주해 위나라 군주에 알리니, 문무관료를 크게 불러 모아 상의한다. 대장군 조진이 신하들의 반열에서 나와서 상주한다.
“신이 예전에 농서를 수비했으나, 공은 미약하고 죄는 큰지라, 황공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겠습니다. 이제 바라옵건대, 대군을 이끌고 제 갈량을 잡으러 가고 싶습니다. 신이 근자에 대장 한 사람을 얻었는데, 그는 6십근 대도( 큰 칼 )를 쓰고,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서역의 명마를 타고, 2석石( 활의 세기를 재는 단위 )짜리 철태궁鐵胎弓( 강궁의 일종/ 내부를 쇠로 만든 활 )을 잡아당기며, 유성추流星鎚( 투척 무기의 일종 ) 세 개를 숨겼다가 던지는데, 백발백중이옵니다. 만부부당지용萬夫不當之勇( 1만의 사나이도 당하지 못할 용맹 )을 가졌습 니다. 그는 농서의 적도사람으로 이름이 왕쌍이고 자전이라 부릅니다. 신은 이 사람을 선봉으로 천거하옵니다.”
조예가 크게 기뻐하며, 곧 왕쌍을 전각 위로 불러 올린다. 그를 바라보니, 신장이 9척이요 얼굴은 검고 눈동자는 누런데, 곰 같은 허리요 범 같은 등을 가졌다. 조예가 웃으며 말한다.
“짐이, 이런 대장을 얻다니, 이제 무엇이 걱정이겠소!”
곧 비단 전포와 황금 갑옷을 하사해, 호위장군虎威將軍 전부대선봉前部大先鋒으로 봉한다. 조진은 대도독이 된다. 조진이 성은에 감사 드리고, 조정을 나와서, 곧 십오만 정병을 이끌고, 곽회, 장합과 회합하여, 길을 나눠 애구( 요충지 )를 지키게 한다.
한편, 촉병 전초부대가 진창을 정찰한 뒤, 공명에게 돌아가 알린다.
“진창 길어귀에 이미 성 하나를 쌓았고, 성 안에는 학소라는 장수가 지키고 있사온데, 해자는 깊고 보루는 높으며, 녹각( 적군 진출로에 뿌리는, 사슴뿔 같이 생긴 방어 무기 )을 곳곳에 놓아, 십분( 충분 ) 방호하고 있사옵니다. 이 성은 버려두고, 태백령을 따라 기산으로 나 가는 것이 심히 편하겠습니다.”
공명이 말한다.
“진창 바로 북쪽이 가정이니, 반드시 이 성을 점령해야, 비로소 진병할 수 있소.”
위연에게 명하여, 병력을 이끌고, 성 아래 이르러, 사방으로 공격하게 한다. 날마다 공격해도 깨뜨리지 못하여, 위연이 되돌아가, 공명에 게, 진창성을 격파하기 어렵다고 고한다. 공명이 크게 노하여, 위연을 참하려는데, 막사 안에서 한 사람이 고한다.
“제가 비록 재주 없으나, 승상을 다년간 수행하며, 여태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바라옵건대, 진창성 안으로 들어가, 학소에게 귀순을 설득 할 터이오니, 활을 당겨 화살 한 발 쏠 필요 없사옵니다.”
사람들이 누군가 보니, 그는 바로 부곡部曲( 군대 편제 단위/ 부하 )을 맡고 있는 은상이다. 공명이 말한다.
“그대가 무슨 말로 설득하겠소?”
“학소는 저와 같이 농서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교계交契( 사귐 )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제 저곳으로 가서, 이해득실로써 설득하면, 틀림 없이 귀순하러 올 것입니다.”
공명이 즉시 가라고 명한다. 은상이 말을 몰아, 곧바로 성문 아래 이르러 외친다.
“학백도( 학소 )의 고인故人( 옛 친구/ 오랜 친구 ) 은상이 찾아왔소!”
성 위 사람이 학소에게 알린다. 학소가 성문을 열어 들어오게 하니, 성을 올라가 만난다. 학소가 묻는다.
“고인께서 무슨 일로 이곳을 오셨소?”
“나는 지금 서촉 공명 막하에서, 군기軍機( 군사 업무 )를 보좌하는데, 상빈으로서 대우받고 있소. 특별히 내게 명해 공을 찾아뵙게 했 소. 공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소. ”
학소가 발연勃然히( 왈칵 ) 낯빛을 고쳐 말한다.
“제갈량은 우리나라의 원수요! 나는 위나라를 섬기고 그대는 촉나라를 섬기며 각자 그 군주를 섬기는 것이오! 지난날 곤중昆仲( 형과 아 우 )이었으나, 이제는 원수로 갈라섰구려! 그대는 더 이상 말할 것 없이, 어서 성을 나가시오!”
은상이 다시 말을 꺼내려는데, 학소가 벌써 적루( 망루 ) 위로 나가버린다. 위나라 병사들이 은상에게 급히 말을 타라고 재촉하여, 성 밖 까지 쫓아나온다. 은상이 고개 돌려 바라보니, 학소가 가슴을 보호하는 나무 방패에 기대어 선 것이 보인다. 은상이 말을 멈춰 세워, 채찍 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백도 현제賢弟( 동생의 높임말 )! 어찌 이렇게 인정이 없는가?”
학소가 말한다.
“위나라 법도를 형도 아실 것이오. 내가 국은( 나라의 은혜 )을 입어, 다만 죽음으로써 갚을 뿐이오. 형께서 더 말씀하지 마시고, 속히 제 갈령에게 돌아가, 어서 성을 치러 오라고 하시오. 나는 두렵지 않소!”
은상이 돌아가 공명에게 고한다.
“학소가 제가 입을 여는 것도 기다리지도 않고, 제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다시 가서, 이해득실로써 설득해보시오.”
은상이 다시 성 아래 이르러, 학소에게 만나기를 청하니, 학소가 적루 위로 나온다.
은상이 말을 멈춰 세워, 크게 외친다.
“백도 현제! 내 충언을 들어보시오! 그대가 한낱 고립된 성을 지킨들, 어찌 수십만 대군을 막겠소? 이제 어서 항복하지 않으면, 뒤늦게 뉘 우쳐도 소용 없소. 게다가 대한( 한나라 )을 따르지 않고, 간악한 위나라를 섬기다니, 하늘을 우러러 어찌 천명을 모르고, 청탁( 맑음과 흐림/ 선악 )을 분별치 못하오? 바라건대 백도께서 잘 생각해보시오!”
학소가 크게 노해, 활을 집어들어 화살을 메겨, 은상을 겨누며 꾸짖는다.
“나는 앞서 말한 대로다.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물러가면, 나도 쏘지 않을 것이오!”
은상이 공명에게 돌아가, 학소의 이런 광경光景을 자세히 말한다. 공명이 크게 노해 말한다.
“필부 놈의 무례가 몹시 심하구나! 어찌 내게 공성 도구가 없는 줄 알고 업신여긴단 말이냐!”
토인土人( 원주민 )을 불러, 묻는다.
“진창성 안에 인마가 얼마나 있는가?”
토인이 고한다.
“잘은 모르겠으나, 대략 3천 쯤 있을 것입니다.”
공명이 웃으며 말한다.
“이깟 작은 성으로 어찌 나를 막으랴! 다른 구원 병력을 기다릴 것 없이, 화속火速히( 부리나케 ) 공격하라!”
이에 군중에서 1백 승乘( 수레 등을 세는 단위 )의 운제雲梯( 공성용 접이식 사다리가 장비된 수레 )를 동원한다. 운제 1 승에 열몇 사람 씩 타고, 주위를 나무 판자로 방호했다. 병사들은 제각기, 짧은 사다리와 가벼운 밧줄을 가지고, 군중에서 요란한 북소리가 울리면, 일제 히 성을 오른다. 촉병들이 운제를 동원해 사방에서 몰려오는 것이 보이자, 학소가 즉시 영을 내려, 3천 병사가 제각기 불화살을 들고, 사 면에 나눠 선다. 운제가 성벽에 접근하기를 기다려, 일제히 불화살을 쏜다. 다음날 다시 사방에서 북을 두드리고 함성을 지르며 진격한 다. 학소가 급히 명령해, 돌을 운반해 구멍을 뚫어, 칡 밧줄로 묶은 뒤, 휘둘러서 수레를 때리니, 모두 부딪혀 부서진다. 공명이 다시 사람 들에게 명령해, 흙을 ���라 성 둘레 해자를 메우게 하고, 요화에게 지시해, 삽과 괭이를 든 병사 3천을 이끌고, 밤중에 땅굴을 파게 해, 성 안으로 몰래 들어가려 한다. 학소가 다시 성 안에 깊은 해자를 파서, 가로로 자른다. 이렇게 밤낮으로 공격하여, 스무 날이 지나지만, 깨 뜨릴 계책이 없다.
공명이 마음 속으로 근심한다. 그런데 누군가 알린다.
“동쪽으로 구원병이 오는데, 깃발 위에 크게 ‘위나라 선봉대장 왕쌍'이라 적혔습니다.”
공명이 묻는다.
“누가 그를 맞아 싸우겠소?”
위연이 말한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대는 선봉대장이니, 함부로 출전할 수 없소. 누가 감히 그를 맞겠소?”
비장裨將( 주장을 보조하는 장수/ 부장/ 편장 ) 사웅이 그 소리에 답하며 나온다. 공명이 3천 병사를 주어서 보낸다. 공명이 다시 묻는다.
“누가 또 감히 가겠소?”
비장 공기龔起가 그 소리에 맞춰 나온다. 공명이 그에게도 3천 병사를 주어서 보낸다. 성 안의 학소가 병력을 이끌고 출격할까 염려해, 공명이 인마를 2십 리 물려서, 영채를 세운다.
한편, 사웅이 군을 이끌고 전진해, 왕쌍과 마주친다. 싸운지 3합을 못 넘겨, 왕쌍이 한 칼로 쪼개어 죽인다. 촉병들이 패주한다. 왕쌍이 뒤따라 쫓아온다. 공기가 맞이해, 교마交馬( 교전 )한지 겨우 3합에 역시 왕쌍이 참한다. 패병들이 공명에게 돌아가 알리니, 공명이 크게 놀라, 황망히 요화, 왕평, 장의 세 사람에게 나가서 맞아 싸우게 한다. 양쪽 진영이 대치하자, 장의가 출마하고, 왕평과 요화가 좌우 진각 陣角( 고대 군대 진영의 양 날개 쪽 )에 버티어 선다. 왕쌍이 말을 몰아, 장의와 몇 합을 교마하나, 승부가 안 난다. 왕쌍이 지는 척 달아나 자, 장의가 뒤따라 쫓는다. 왕평이 보니 장의가 꾀에 빠진 것이라, 애타게 “쫓지 말라!” 외친다.
장의가 급히 말머리를 돌리는데, 왕쌍이 던진 유성추가 어느새 날아와, 그 등을 명중한다. 장의가 말안장에 엎드린 채 달아나자, 왕쌍이 말머리를 돌려 뒤쫓는다. 왕평과 요화가 차단하고, 장의를 구해 진지로 돌아간다. 왕쌍이 병력을 몰고 와서, 한바탕 크게 무찌르니, 촉병 사상자가 극히 많다. 장의가 수 차례 피를 토하며, 공명에게 돌아가 이야기한다.
“왕쌍이 영웅이라 맞설 수 없습니다. 지금 2만 병력이 진창성 밖에 진을 치고, 사방으로 채책( 방어용 나무 울타리 )을 세워, 큰 성을 쌓 아 올리고, 해자를 깊게 파서, 몹시 엄중하게 방어합니다.”
두 장수를 잃은데다 장의마저 부상을 입자, 공명이 즉시 강유를 불러 말한다.
“진창 입구 저쪽 길로 나아갈 수 없는데, 따로 무슨 계책이 있겠소?”
“진창성이 견고하고, 학소가 몹시 굳게 방어합니다. 게다가 이제 왕쌍이 도우니, 참으로 취할 수 없습니다. 대장 한 사람에게 명해, 산과 물에 의지해, 영채를 세워 굳게 지키며, 조진을 고립시키는 것만 못합니다.”
공명이 그 말을 따라, 즉시 왕평과 이회 두 사람에게 명하여, 2천 병력을 이끌고, 가정의 좁은 길을 지키게 한다. 위연에게도 명하여, 한 무리 군을 이끌고 진창의 입구를 지키게 한다. 마대를 선봉으로, 관흥과 장포를 전후구응사前後救應使( 앞뒤로 구원하는 지휘관 )로 삼고 지름길을 따라 야곡을 나와, 기산 쪽으로 출발한다.
한편, 조진은 지난날 사마의에게 공로를 빼앗긴 것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낙구洛口( 낙양으로 들어가는 길어귀/ 관문 )에 도착하자, 곽회 와 손례에게 동쪽과 서쪽을 나눠 수비하도록 일렀다. 또한 진창성이 위급함을 알려오자, 이미 왕쌍에게 명해 구원병을 이끌고 가도록 하였는데, 왕쌍이 적장을 베어 공을 세운 것이 전해진다. 조진이 몹시 기뻐하며, 중호군中護軍 대장 비요費耀에게 명하여, 선두부대 총 지휘를 대행하게 하고, 장수들에게 제각기 애구隘口( 좁은 산의 입구/ 요충지 )를 지키도록 한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산골짜기에서 촉나라 세작( 첩자 )을 잡아왔다고 알린다. 조진이 압송해 들여서, 군막 아래 무릎 꿇리게 한다. 그 세작이 고한다.
“소인은 간세奸細( 첩자/ 간첩 )가 아니오라, 기밀을 전하러 도독을 찾아오다가, 잘못되어 복로군( 길에 매복해 경계하는 병사 )에게 붙 잡혀 온 것이오니, 바라옵건대 좌우 사람들을 물려주십시오.”
이에 조진이 그 결박을 풀어주고, 좌우를 잠시 물리니, 그가 고한다.
“저는 바로 강백약( 강유 )의 심복으로, 본관( 강유를 지칭 )이 저를 통해 밀서를 보내셨습니다.”
“밀서는 어디 있는가?”
그가 품 속에서 꺼내어 바친다. 조진이 뜯어서 읽어보니 이렇다.
「罪將姜維百拜,呈書大都督曹麾下:維念世食魏祿,忝守城邊;叨竊厚恩,無門補報。昨日誤遭諸葛亮詭計,陷身於巔崖之中。思 念舊國,何日忘之?今幸蜀兵西出,諸葛亮甚不相疑。賴都督親提大兵而來,如遇敵人,可以詐敗。維當在後,以舉火為號,先燒蜀人糧 草,卻以大兵翻身掩之,則諸葛亮可擒也。非立功報國,實欲自贖前罪。倘蒙照察,速賜來命。」
‘죄장( 죄지은 장수 ) 강유가 백배사죄 드리오며, 조 대도독 휘하麾下에 글을 바칩니다. 오로지 오랫동안 위나라 녹을 먹은 것만 생각하 며, 치욕스럽게 성변을 지키고 있습니다. 두터운 은혜를 부끄럽게 입고, 보답할 길이 없었습니다. 지난날 제갈량의 속임수에 빠져, 높은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옛나라를 생각하며, 어찌 하루라도 잊겠습니까? 이제 다행히 촉병은 서쪽으로 출병하고, 제갈량은 의심 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독께서 친히 대군을 이끌고 오셔서, 적군을 조우하시면, 지는 척하십시오.제가 뒤에 머물다가, 불을 피워올려 신 호하고, 먼저 촉인들의 양초( 군량과 말먹이풀 )를 태울 테니, 그때 도독께서 대군을 이끌고 몸을 돌려 습격하시면, 제갈량을 잡을 수 있 습니다. 공을 세워 나라에 보답하려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지난날의 죄를 씻으려 함입니다. 아무쪼록 잘 살펴주시고, 어서 명을 내려주 십시오.’
조진이 읽고나서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이것은 하늘이 나로 하여금 공을 이루게 하심이라!”
찾아온 이를 크게 포상하고, 곧 돌아가 보고하게 하며, 기일을 맞춰 회합하기로 한다. 조진이 비요를 불러 상의한다.
“이제 강유가 몰래 밀서를 바치며, 나에게 이렇게저렇게 하라고 했소.”
“제갈량은 모략이 많고, 강유도 지략이 많습니다. 혹시 제갈량이 시킨 것이서, 그 속임수에 빠질까 두렵습니다.”
“그는 본래 위나라 사람이었으나 부득이하게 촉나라에 투항한 것이거늘 어찌 또 의심하겠소?”
“도독께서 가벼이 진군하지 마시옵고, 다만 본채를 지키고 계십시오. 제가 바라건대 1군을 이끌고 강유와 접응할 터이니, 공을 이룬다면, 도독께 공이 돌아올 것입니다. 간계에 빠지면, 제 스스로 책임 지겠습니다.”
조진이 크게 기뻐하며, 곧 비요에게 명해 병력 5만을 이끌고, 야곡 쪽으로 진군하도록 한다. 두, 세 정程( 거리의 단위 )을 가서, 군마를 멈춰 세우고, 사람을 시켜 정탐하게 한다. 그날 신시申時( 오후 3시에서 5시 ) 무렵, 돌아와 보고한다.
“야곡으로 가는 길로 촉병이 오고 있습니다.”
비요가 황급히 진군할 것을 재촉한다. 촉병이 미처 교전하기도 전에 달아나니, 비요가 병사들에게 추격을 명한다. 촉병이 다시 와서, 막 대진對陣하려는데, 촉병이 또 퇴각한다. 이렇게 세 차례 되풀이한다. 다음날 신시까지 이어지니, 위병들이 하루 동안 밤낮으로 쉴 엄두 를 못내며, 오로지 촉병의 공격을 두려워한다. 비로소 병사들이 자리잡고 밥을 하려는데, 홀연히 사방에서 함성이 요란하고, 북 소리, 피 리 소리 일제히 울리며, 촉병들이 산과 들을 뒤덮으며 몰려온다.
촉병들이 일제히 옆으로 비켜서며, 사륜거( 네바퀴 수레 ) 1량이 나오는데, 공명이 그 위에 반듯이 앉아 있다. 사람을 시켜 위나라 주장主 將을 불러 대답할 것을 청한다. 비요가 말을 몰아 나오더니, 멀리 공명이 보이자, 마음 속으로 몰래 기뻐하고, 좌우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 한다.
“촉병들이 공격해 오면, 바로 후퇴해 달아나라. 산 뒤에서 불길이 치솟으면, 몸을 돌려 공격하라. 나도 병력을 거느리고 돕겠다.”
분부를 마치고 비요가 말을 타고 나와 호통친다.
“지난날의 패장이 지금 어찌 또 왔냐!”
공명이 말한다.
“너는 가서, 조진을 불러 직접 대답하게 하라!”
비요가 욕한다.
“조 도독은 금지옥엽이시거늘, 어찌 기꺼이 너 따위 반적( 역적 )과 만나시겠냐!”
공명이 크게 노하여, 깃털부채를 한번 흔들자, 왼쪽에서 마대가, 오른쪽에서 장의가, 양쪽에서 이끄는 병력이 돌격해 나온다. 위병들이 바로 퇴각한다. 3십 리를 못 가서, 멀리 바라보니, 촉병들 배후에서 불길이 치솟고, 함성이 끊이지 않는다. 양쪽에서 병사들이 몰려나오 는데, 왼쪽은 관흥이요 오른쪽은 장포다. 산 위에서 시석矢石( 화살과 돌 )을 빗발치듯 아래로 쏘아댄다. 위병들이 대패한다. 비요가 계 략에 빠진 것을 알아채고, 급히 병사들을 산골짜기 쪽으로 후퇴시키지만, 결국 사람도 말도 지친다. 배후에서 관흥이 힘이 펄펄한 병사들을 이끌고 추격하니, 위병들이 서로 짓밟고 물에 떨어져 죽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비요가 목숨을 구하고자 달아나다가, 신기슭 입 구에서 한 무리 병사와 마주치니, 바로 강유다. 비요가 크게 욕한다.
“반적 놈은 믿을 수 없구나!”
강유가 웃으며 말한다.
“조진을 잡으려 했는데, 잘못돼서 네놈이 걸려들었구나! 어서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비요가 말을 몰아 길을 뚫고 산골짜기 쪽으로 달아나지만, 갑자기 산골짜기 안에서도 불빛이 하늘을 찌르고, 배후에서 추격병이 몰려온 다. 비요가 자문自刎( 스스로 목을 베거나 찌름/ 자살 )해 죽고, 나머지 무리는 모조리 항복한다.
。孔明亦曰:「可惜大計小用矣。」
공명이 한밤까지 병력을 동원해, 곧장 기산 앞에 이르러 진을 쳐서, 군마를 거두어 주둔하고, 강유에게 큰 상을 내린다. 강유가 말한다.
“조진을 죽이지 못해 한스럽습니다.”
공명 역시 말한다.
“큰 계책을 작은 데 쓴 것이 아깝소.”
한편, 조진은 비요를 잃은 것을 듣고, 후회해 마지않더니, 곧 군대를 후퇴시킬 계책을 곽회와 상의한다. 이에 손례와 신비가 한밤중에 위나라 군주에게 표를 올려 아뢰기를, 촉병이 다시 기산으로 나와, 조진이 병사와 장수를 잃고, 형세가 몹시 위급하다 한다. 조예가 크게 놀라, 즉시 사마의를 불러들여 말한다.
“조진이 병사와 장수를 잃고, 촉병이 다시 기산으로 나왔다는데, 경에게 물리칠 계책이 있소?”
“신에게 이미 제갈량을 물리칠 계책이 있사옵니다. 굳이 무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촉병은 자연히 달아나게 될 것입니다.”
자단( 조진의 자 )이 승산이 없는 것을 보고도
중달( 사마의의 자 )에게 좋은 계책이 있다고 매달리네
그 계책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