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20회 조아만이 허전에서 사냥하고 동국구가 공신각에서 밀조를 받는다

    조조가 검을 들어서 장요를 죽이려는데 현덕이 팔을 잡아 제지하고 운장이 조조 면전에 무릎 꿇었다.

    "이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니 마땅히 남겨 쓰셔야 합니다."

    이렇게 현덕이 말하자 운장도 말한다.

    "제가 평소 문원이 충의지사인 걸 압니다. 그 목숨을 보전해주소서."

    조조가 검을 땅에 던지고 웃는다.

    "나도 문원의 충의를 알아서 희롱했을 뿐이오."

    몸소 포박을 풀고 옷을 벗어 입히고 자리에 올라오게 한다. 장요가 감복해 귀순한다. 조조가 장요를 중랑장으로 임명하고 관내후에 봉하여 장패를 귀순시키게 한다.

    여포가 죽었고 장요도 투항했다 하자 장패도 휘하 부대와 투항한다. 조조가 후하게 포상한다. 장패가 다시 손관, 오돈, 윤례를 투항시킨다. 오로지 창희가 귀순하지 않는다. 조조가 장패를 낭아의 상으로 삼는다. 손관 등도 각각 임명해서 청주, 서주의 연해 지역을 지키게 한 다. 여포의 처자는 허도로 데려간다. 삼군을 크게 위로하고 진지를 거둬 철군한다. 조조가 말한다.

    "유사군의 공이 크니 임금을 뵙고 벼슬을 받고서 돌아와도 늦지 않소."

    백성들이 머리를 조아려 사례한다. 조조가 거기장군 차주를 불러 서주를 다스리게 한다. 조조 군이 허창으로 돌아가서 출정 인원에게 벼슬과 상을 내리고 현덕을 승상부에 머물게 하고 가까이 집을 구해 쉬게 한다.

    다음날 헌제가 조회를 열자 조조가 표를 올려 현덕의 공을 아뢰고 황제와 만나게 한다. 현덕이 조복을 갖추고 궁정에서 절한다. 황제가 전각을 오르게 해 묻는다.

    "그대 조상은 어찌되오?"

    현덕이 아뢴다.

    "저는 중산정왕의 후예로서 효경황제 각하의 현손, 유웅의 손자이자 유홍의 아들입니다. "

    황제가 족보를 가져다 살펴보게 하고 종정경 宗正卿에게 읽게 한다.

    "효경황제께서 아드님 열네 분을 얻으셨습니다. 일곱째 아드님께서 중산정왕 유승이십니다. 유승께서 육승정후 유정을 낳으시고 유정께 서 패후 유앙을 낳으시고 유앙께서 장후 유록을 낳으시고 유록께서 기수후 유연을 낳으시고 유연께서 흠향후 유영을 낳으시고 유영께서 안국후 유건을 낳으시고 유건께서 광릉후 유애를 낳으시고 유애께서 교수후 유헌을 낳으시고 유헌께서 조읍후 유서를 낳으시고 유서께 서 기양후 유의를 낳으시고 유의께서 원택후 유필을 낳으시고 유필께서 영천후 유달을 낳으시고 유달께서 풍령후 유불의를 낳으시고 유 불의께서 제천후 유혜를 낳으시고 유혜께서 동구범령 유웅을 낳으시고 유웅께서 유홍을 낳으시고 유홍께서 벼슬을 못하셨는데 유비께 서 바로 유홍의 아드님이십니다."

    황제가 족보를 따져보니 현덕이 황제의 숙부다. 크게 기뻐하며 편전에 들여서 숙부와 조카의 예를 베푼다. 황제가 생각한다.

    '조조가 권력을 농단해 국사가 짐을 거치지 않는데 지금 이런 영웅이 숙부이니 짐을 돕겠구나!'

    현덕을 좌장군 의성정후로 봉한다. 연회를 열어 환대하고나자 현덕이 사은하고 조정을 나선다. 이로부터 유 황숙이라 불린다.

    조조가 부중으로 돌아오자 순욱 등 모사들이 몰려와 말한다.

    "천자께서 유비를 숙부라 하니 명공께 무익할까 두렵습니다."

    "그가 이제 황제의 숙부가 되었으니 내가 천자의 조서로 명하면 더더욱 승복할 수 밖에 없소. 게다가 그를 허도에 머물게 해서 명분은 임 금을 모신다지만 실은 그를 안에서 장악하는 것이니 무엇이 두렵겠소? 내 걱정은 태위 양표가 원술의 친척인 것이요. 두 원 씨와 내응하 면 피해가 얕지 않겠소. 즉시 제거해야 하오."

    몰래 사람을 시켜 양표가 원술과 교통한다 무고해서 하옥하고 만총에게 죄를 다스리게 한다.

    이때 북해태수 공융이 허도에 있다가 조조에게 간언한다.

    "양공 가문은 대대로 덕행 뛰어난데 어찌 원 씨 때문에 벌하십니까?"

    조조가 말한다.

    "이건 조정의 일이오."

    "성왕이 소공을 죽였다면 주공이 몰랐다고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조조가 할 수 없이 양표의 관직을 빼앗아 향촌으로 보낸다. 의랑 조언이 조조의 전횡에 분노하더니 상소해서, 조조가 교지를 받들지 않 고 대신의 죄를 함부로 거둔다 탄핵했다. 조조가 크게 노해서 즉시 조언을 잡아죽였다. 이로부터 백관 가운데 벌벌 떨지 않는 자 없었다. 모사 정욱이 조조에게 설한다.

    "지금 명공의 위명이 날마다 성대한데 어찌 이 기회에 왕패지사 王霸之事를 행하지 않으십니까?"

    "조정에 충신이 아직 않으니 가볍게 움직여선 안 되오. 천자께 사냥을 청해 동정을 살피겠소."

    이로부터 좋은 말, 이름난 매, 뛰어난 개를 가려 뽑고 궁시를 구비하고 성 밖에 병력을 소집하고서 조조가 천자에게 사냥을 청한다. 황제 가 말한다.

    "사냥은 정도가 아니라서 꺼리오."

    "옛날 제왕들께서 춘모하묘, 추선동수의 사냥으로 사계절 들로 나가 천하에 무위를 보이셨습니다. 지금 사해가 어수선한데 마땅히 사냥 으로 무예를 닦게 하소서."

    황제가 마지못해 따르고 소요마를 타고 활과 화살로 보조궁과 금비전을 가지고 난가를 타고 출성한다. 현덕이 관, 장과 함께 만궁과 화살을 지니고 엄심갑을 입고 병기를 쥐고서 수십 기를 거느리고 난가를 따라 허창을 떠난다. 조조가 조황비전마를 몰고 1십 만의 무리를 이끌고 천자와 함게 허전에서 사냥한다. 병사들이 사냥터에 늘어선 게 둘레가 2백여 리다. 조조가 천자와 나란히 말을 몰아 말머리 하나 차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그 뒤는 모조리 조조의 심복 장교다. 문무백관은 멀리서 시종하고 아무도 감히 접근하지 못한다.

    그날 헌제가 허전에 말을 몰아오자 현덕이 길 가에 서 있었다. 황제가 말한다.

    "짐이 황숙의 활솜씨를 보고 싶소."

    현덕이 명을 받들어 말을 타는데 풀숲에서 토끼 한 마리 튀어나온다. 현덕이 쏘아서 한 발에 명중한다. 황제가 갈채한다. 흙언덕을 돌아서 지나자 가시덤불에서 큰 사슴이 나온다. 황제가 세 발을 연사하나 맞히지 못하고 조조를 돌아보며 말한다.

    "그대가 쏘시오."

    조조가 황제의 보조궁과 금비전을 받아서 힘껏 당겨 쏘자 사슴 등에 바로 맞아 풀숲에 쓰러진다. 군신과 장교가 금비전을 보고서 천자가 맞힌 줄만 알고 모두 뛰어오르며 황제를 향해 만세를 부른다. 조조가 말을 몰아 튀어나와서 천자의 앞을 가리고 답례한다. 모두가 실색한다.

    현덕 뒤 운장이 크게 노해서, 누운 누에 눈썹을 치켜세우고 붉은 봉황 눈을 부릅뜨고 칼을 쥐고 말을 박차 조조를 베려한다. 현덕이 보고 서 황망히 손을 젓고 눈짓으로 제지한다. 관공이 형이 그러자 감히 움직이지 못한다. 현덕이 몸을 숙여 조조에게 축하한다.

    "승상께서 세상에 드문 신궁이십니다!"

    조조가 웃는다.

    "이것은 천자의 홍복일 뿐이오."

    말을 돌려 천자에게 하례하지만 끝내 보조궁을 돌려주지 않고 자기가 걸어 두른다.

    사냥이 끝나고 허전에서 연회를 베푼다. 연회를 마치고 천자가 허도로 돌아간다. 모두가 각자 돌아가서 쉰다. 운장이 현덕에게 묻는다.

    "조조 역적놈이 임금을 업신여기기에 제가 죽여서 나라의 해악을 없애려 했거늘 형께서 왜 말리셨소?"

    "속담에 쥐 잡다가 장독 깬다 했다. 조조가 황제와 말머리 하나 거리이고 심복들이 빽빽히 둘러쌌는데 아우가 한 때 분노로 가볍게 움직 였다 혹시 그르쳐서 천자께서 다치시면 도리어 우리가 죄를 뒤집어 쓸 것이다."

    "오늘 역적을 죽이지 못해 훗날 분명 재앙이 될 것이오."

    "비밀로 하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라."

    한편, 황제가 궁으로 돌아와 복황후에게 울며 말한다.

    "짐이 즉위한 이래 간웅이 계속 일어나서 먼저 동탁의 재앙, 그 뒤 이각, 곽사의 난이 있었소. 보통 사람도 받지 않을 고통을 나와 그대가 겪었소. 조조를 얻자 사직을 떠받칠 신하인줄 알았소. 뜻밖에 나라를 움켜쥐고 권력을 농단하고 임금이 행할 위엄과 은혜를 함부로 베풀 고 있소. 짐이 볼 때마다 등 뒤에서 가시가 찌르듯하오. 오늘 사냥터에서 자기가 하례를 받는 게 무례하기 이를 데 없소! 조만간 분명 다 른 음모를 꾸밀테니 우리 부부는 언제 죽을지 모르오!"

    "조정에 가득한 공경대신 모두 한나라 녹을 먹는데 국난을 구할 이 하나 없겠습니까?"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밖에서 들어와 말한다.

    "황제 폐하, 황후 마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천거하는 사람이 나라의 해악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황제가 바라보니 복황후의 아버지, 복종이다. 황제가 눈물을 거두고 묻는다.

    "황장(황제의 장인)께서도 조조의 전횡을 아시오?"

    "허전에서 사슴을 쏜 일, 누가 모르겠습니까? 다만 조정에 가득히 조조의 종족 아니면 그 부하들뿐입니다. 황실 친척이 아니면 누가 충성을 다해 역적을 치겠습니까? 이 늙은 신하는 재주가 없어 이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거기장군 국구 동승이야말로 맡길 만합니다."

    "동 국구가 여러차례 국난에 헌신한 걸 평소 짐이 알고 있소. 불러서 대사를 함께 의논해야겠소."

    "폐하 좌우에 모두 조조의 심복인데 기밀이 새면 재앙이 얕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찌해야겠소?"

    "제가 계책이 있는데 폐하께서 옷 한 벌과 옥대 하나를 장만하셔서 몰래 동승에게 주소서. 그리고 옥대 속에 밀조(비밀 조서)를 숨겨서 주고 돌아가서 보게 하면 주야로 획책할 수 있습니다. 귀신도 모를 겁니다."

    황제가 그렇다 여기고 복종이 작별하고 나간다. 황제가 스스로 밀조를 짓는데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고서 몰래 복황후에게 줘서 옥 대의 자주색 비단 안감 속에 기워 넣게 하고서 비단 도포를 스스로 입고 그 옥대를 매고서 내사에게 동승을 불러 들이게 한다. 동승이 황 제에게 인사를 마치자 황제가 말한다.

    "짐이 밤이 되니, 황후와 함께 예전 패하에서 겪은 고초를 이야기하며 국구의 큰 공을 생각해 다만 불러들여서 위로하려 할 뿐이오."

    동승이 머리를 바닥에 닿도록 숙여 사례한다. 황제가 동승을 이끌고 전각을 나가서 대묘에 이르러 공신각 功臣閣 안을 올라간다. 황제가 분향하고서 동승을 데리고 공신 초상화를 바라본다. 중간에 한나라 고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우리 고조 황제께서 어디서 기신하시고 어떻게 창업하셨소?"

    동승이 크게 놀란다.

    "폐하께서 저를 놀리십니다. 성조의 일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고조 황제께서 패상의 정장으로부터 기신하시고 사해를 종횡, 세 해만에 진나라를 없애고 다섯 해만에 초나라를 멸하셔서 드디어 천하를 얻으시고 만세의 기업을 세우셨습니다."

    "조종께서 이렇게 영웅이신데 자손이 이렇게 유약하니 어찌 탄식하지 않겠소!"

    이어서 좌우 두 측근의 초상화를 가리킨다.

    "이 둘은 유후 장량, 찬후 소하 아니오?"

    "그렇습니다. 고조께서 기틀을 다지고 창업하신 건 실로 두 사람의 공입니다."

    황제가 돌아보니 좌우 측근이 조금 떨어졌으므로 은밀히 동승에게 말한다.

    "그대도 이 둘처럼 내 옆에 서야 할 것이오."

    "제가 촌공 寸功도 없는데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짐의 이 도포를 입고 옥대를 두르고 늘 짐 가까이 있는 듯 여기시오."

    동승이 머리를 바닥에 조아려 사례한다. 황제가 도포와 옥대를 벗어서 주고 몰래 말한다.

    "그대는 돌아가서 이걸 세밀히 살펴서 짐의 뜻을 저버리지 마오."

    동승이 알아채고서 도포를 입고 옥대를 두르고서 황제에게 작별하고 공신각을 내려간다. 누군가 금세 조조에게 알린다.

    "황제와 동승이 공신각에 올라가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조조가 즉시 입조해 보러 간다. 동승이 공신각을 나와서 막 궁문을 지나다 마침 조조를 만난다. 급히 피할 데가 없어서 길 가에서 예를 표한다. 조조가 묻는다.

    "국구께서 어찌 오셨소?"

    "천자께서 부르시고 금포와 옥대를 내리셨소."

    "무슨 까닭으로 하사 받으셨소?"

    "제가 예전에 서도에서 천자를 구한 공을 생각하셔서 이렇게 하사하셨나 보오."

    "옥대를 풀어서 살펴보겠소."

    동승이 옥대에 밀조가 있는 걸 조조가 틀림없이 간파할까 두려워 미적거리며 옥대를 풀지 않는다.

    조조가 좌우를 꾸짖는다.

    "어서 풀어 가져 와라!"

    한참 살피고서 웃는다.

    "과연 좋은 옥대가 아니오? 금포도 벗어서 가져오면 살펴보겠소."

    동승이 속으로 무섭고 두려워서 거부하지 못하고 벗어 바친다. 조조가 스스로 집어들어서 햇빛에 비춰서 세세히 살핀다. 살피고서 자기 가 걸치고 옥대를 두르고 좌우를 돌아보며 말한다.

    "옷이 내게 맞는가?"

    좌우에서 아름답다고 칭송한다. 조조가 동승에게 말한다.

    "국구께서 도포와 옥대를 내게 주는 건 어떻겠소?"

    동승이 고한다.

    "임금의 은혜로 받은 걸 함부로 남에게 줄 수 없소. 제가 따로 만들어 올리게 해주시오."

    "국구께서 도포와 옥대를 받은 게 음모가 있어서는 아니겠지요?"

    동승이 놀란다.

    "제가 어찌 감히? 승상께서 필요하시면 바로 가지시오."

    "임금께 받은 걸 어찌 빼앗겠소? 잠시 희롱했을 뿐이오."

    도포와 옥대를 돌려준다.

    동승이 조조와 작별하고 귀가해서 밤이 되도록 홀로 서원에 앉아서 도포를 자세히 거듭 살피지만 아무 것도 없다.

    '천자께서 도포와 옥대를 주시고 자세히 살피게 하셨으니 분명 뜻이 있을텐데 지금 종적을 못 찾겠으니 무슨 까닭인가?'

    이어서 옥대도 뒤져본다. 백옥이 영롱하고 작은 용을 조각하고 꽃을 새기고 뒷면에는 자주 비단을 덧대고 끝을 가지런히 바느질했는데 역시 아무 것도 없다. 동승이 속으로 이상해서 탁상에 올려놓고 거듭 찾아본다. 한참 지나서 아주 지친다. 막 책상에 엎드려 자려는데 갑 자기 촛불 불꽃이 옥대에 떨어져서 안감을 태운다. 동승이 놀라서 털어내지만 이미 일부는 불타 떨어져서 하얀 비단이 조금 보이는데 핏 자국도 드러난다. 급히 칼로 째서 살피니 바로 천자가 손수 피를 내 쓴 밀조다. 밀조는 이렇다.

    '짐이 듣자니 인륜의 크기는 어버이와 자식 사이가 우선이고, 귀천의 차이는 임금과 신하가 무겁다 하오. 요새 역적 조조가 농권하고 임 금을 업신여기고 도당을 만들어 조정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포상과 징벌을 내리며 짐을 거치지 않소. 짐이 밤낮으로 근심하고 천하가 위급할까 두렵소. 그대는 나라의 대신이요 짐의 지척으로서 마땅히 고조 황제 창업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충의를 구비한 열사를 규합하 고 간당을 섬멸해 사직을 다시 안정시킨다면 조종 祖宗께 참으로 다행이겠소! 손가락을 깨물고 피를 흘려 조서를 써서 그대에게 주었 으니 거듭 신중해 부디 짐의 뜻을 저버리지 마오! 건안 4년 봄 3월 조서를 쓰다.'

    동승이 읽고서 눈물을 쏟고 밤새 누워도 잠들지 못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조서를 두번 세번 살피지만 계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책상 위에 조서를 두고서 조조를 멸할 계책을 숙고한다. 곰곰히 생각해도 정해지지 않아 기대어 눕는다. 그런데 시랑 왕자복이 온다. 문지기가 왕자복과 동승이 절친한 걸 알고 막지 못하므로 서원까지 들어온다. 동승이 업드려 깨어나지 않았는데 소매 밑에 눌린 흰 비단에 희미하게 '짐 朕'자가 드러난다. 왕자복이 괴이하게 여겨서 말없이 꺼내 읽고서 소매에 숨기고 동승을 부른다.

    "국구께서 아주 편안하시오! 어찌하면 이렇게 흐트러져서 잠잘 수 있소!"

    동승이 놀라 깨어나고 조서가 안 보이자 넉이 나가서 팔다리를 허둥댄다. 왕자복이 말한다.

    "자네가 조공을 죽이려 하구나! 내가 고발해야겠다."

    동승이 울며 말한다.

    "형께서 이러시면 한실이 끊어지오!"

    "내가 놀렸을 뿐이오. 우리 조상께서 대대로 한나라 녹을 먹었는데 어찌 충심이 없겠소? 형을 도와 한 팔 거들어서 나라의 역적을 같이 처단하고 싶소."

    "형께서 이런 마음을 가져서 나라에 다행이오."

    "마땅히 밀실에서 함께 의장 義狀을 지어서 각각 3족을 돌보지 말고 한나라 임금께 보답할 것이오."

    동승이 크게 기뻐하고 하얀 비단 한 폭을 가져와서 먼저 이름을 적고 서명을 한다. 왕자복도 이름을 적고 서명한다. 쓰고서 왕자복이 말 한다.

    "장군 오자란이 나와 절친하니 공모할 수 있소."

    "조정에 가득한 대신 가운데 오로지 장수교위 종집과 의랑 오석이 내 심복이니 분명 나와 일을 같이 할 것이오."

    상의하는데 마침 종집, 오석이 찾아왔다 하인이 알린다. 동승이 말한다.

    "이건 하늘이 우리를 도와서요!"

    왕자복에게 잠시 병풍 뒤에 숨도록 한다. 동승이 서원으로 두 사람을 맞이해 들인다. 좌정하고 차를 마시고서 종집이 말한다.

    "허전에서 사냥한 일은 그대도 한스럽겠지요?"

    "한을 품은들 어찌할 수 없소."

    오석이 말한다.

    "그 역적놈을 꼭 죽이고 싶소만 우리를 도와줄 이 없는 게 한스러울 뿐이오!"

    종집이 말한다.

    "나라를 위해서 해악을 제거한다면 죽어도 한이 없소."

    왕자복이 병풍 뒤에서 나오며 말한다.

    "너희 둘이 조 승상을 죽이려 하구나! 내가 고발할테니 동 국구는 증인이 되시오."

    종집이 노한다.

    "충신은 죽는 게 두렵지 않다. 우리가 죽어서 한나라 넋이 될지언정 국가의 역적에게 아부할까 보냐!"

    동승이 웃는다.

    "우리가 바로 그 일 때문에 두 분을 뵙고자 했소. 왕 시랑의 말씀은 모두 농담일 뿐이오."

    소매에서 조서를 꺼내 보여준다. 둘이 읽고서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동승이 서명토록 청한다. 왕자복이 말한다.

    "두 분께서 잠시 계시오. 제가 오자란을 부르러 가리다."

    오자복이 얼마 안 돼 오자란을 데려와서 인사시키고 역시 서명한다. 동승이 후당에서 술을 대접한다. 그런데 서량태수 마등이 찾아왔다 보고한다. 동승이 말한다.

    "내가 아파서 만날 수 없다 전하라."

    문지기가 돌아가서 전하자 마등이 크게 노한다.

    "내가 밤부터 동화문 밖에 있으면서 금포와 옥대를 갖고 나가는 걸 직접 봤거늘 어찌 꾀병이냐! 내가 아무 까닭 없이 온 게 아닌데 어째서 막느냐!"

    문지기가 들어와서 마등이 노한 걸 자세히 알린다. 동승이 일어난다.

    "여러분 잠시 제가 나가보겠소."

    즉시 대청을 나가서 영접한다. 인사를 마치고 좌정하자 마등이 말한다.

    "제가 알현하고 돌아가게 돼서 인사하러 왔는데 어찌 막으셨소?"

    "못난 몸이 심하게 아파서 영접하는 데 실수했으니, 크게 잘못했소."

    "얼굴에 봄빛이 도는 게 아파 보이지 않소."

    동승이 말문이 막힌다. 마등이 옷소매를 털고 일어나서 탄식하며 계단을 내려간다.

    "모두 나라를 구할 자들이 아니구나!"

    동승이 마음이 움직여서 만류한다.

    "누가 나라를 구할 자가 아니란 거요?"

    "허전 사냥 사건으로 아직도 가슴이 답답하오. 공께서 임금의 지척인데 도리어 주색에 빠져서 역적을 칠 걸 생각치 않으니 어찌 황가를 위해서 구난하고 재앙을 바로잡을 사람이겠소?"

    동승이 속임수인가 싶어서 거짓으로 놀란 척한다.

    "조 승상이야말로 나라의 대신으로 조정에서 믿고 의지하는데 어찌 이렇게 말하시오?"

    마등이 크게 노한다.

    "네가 아직도 조조를 좋은 사람이라 보냐?"

    "이목이 두렵소. 목소리를 낮추시오."

    "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두려워하는 무리와 대사를 논할 수 없다!"

    말을 마치고 다시 일어서려 한다. 동승이 마등의 충의를 알고서 말한다.

    "노여움을 푸시오. 제가 공께 보여드릴 게 있소."

    서원으로 불러들여서 조서를 보여준다.

    마등이 읽고서 머리카락이 거꾸로 서고 이를 갈고 입술을 씹어 입 안 가득 피가 흐른하다. 동승에게 말한다.

    "공께서 거사하시면 내 즉시 서량의 병력으로 밖에서 호응하겠소."

    동승이 여럿을 불러서 인사시키고 의장을 꺼내서 서명시킨다. 마등이 술에 피를 타서 맹서한다.

    "우리가 죽어도 약속을 저버리지 않을 걸 맹서하오!"

    좌상의 다섯을 가리킨다.

    "열 사람만 얻으면 대사가 순조롭겠소."

    동승이 말한다.

    "충의지사는 많다고 좋은 게 아니오. 같이할 자가 아니면 도리어 해롭소."

    동승이 백관의 명부를 가져오게 해서 살핀다. 유 씨 종족에 이르자 박수친다.

    "어찌 이 사람과 상의하지 않소?"

    모두 누구냐 묻는다. 마등은 놀라지 않고 그 사람이 올 것이라 한다.

    본래 국구 동승이 천자의 조서를 받았는데
    종친도 한나라 황실을 돕겠구나

    과연 마등의 말대로 될까?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