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제106회 공손연이 양평에서 패전하여 죽고 사마의가 꾀병으로 조상을 속인다
한편, 공손연은 요동의 공손탁의 손자이며, 공손강의 아들이다. 건안 12년, 조조가 원상을 추격해 요동에 이르기 전에, 공손강이 원상을 베어서 그 목을 조조에게 바치니, 조조가 공손강을 ‘양평후’로 봉했다. 공손강이 죽으며 두 아들을 남겼는데 장남은 공손황, 차남은 공손 연이고 둘 다 어렸다. 공손강의 아우 공손공이 직위를 계승했다. 조비가 황제로 있을 때, 공손공을 ‘거기장군 양평후’로 봉했다. 태화 2년, 공손연이 장성하여, 문무를 겸비하고 성미가 굳세고 싸움을 좋아해, 그 숙부 공손공의 지위를 빼앗자, 조예가 공손연을 ‘양렬장군 요동태 수’로 삼았다. 그 뒤 손권이 장미와 허연을 사자로 삼아, 금은보화를 가지고 요동으로 가서 공손연을 ‘연왕’으로 봉했다. 공손연이 중원을 두려워해 장미와 허연 두 사람을 베어서 그 목을 조예에게 보냈다. 조예가 공손연을 ‘대사마 낙랑공’으로 봉했다. 공손연이 마음 속으로 만족치 못하고, 그 무리와 상의해, 스스로 연왕이라 일컫고, 연호를 ‘소한 원년’으로 고친다. 부장 가범이 간한다.
“중원에서 주공을 상공의 작위로써 대우하니, 결코 비천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배반하면 참으로 순리를 거스릅니다. 게다가 사마의는 용병에 뛰어나서, 서촉의 ‘제갈 무후’조차 그를 이기지 못했거늘, 하물며 주공께서 어찌하겠습니까?”
공손연이 크게 노해, 좌우에게 소리쳐 가범을 결박해, 처형하려고 한다. 참군 윤직이 간한다.
“가범의 말이 맞습니다. 성인께서 이르시길, 국가가 장차 망하려면 반드시 요얼妖孽( 불길한 징조 )이 있다, 하셨습니다. 이제 나라 안에 괴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새 개가 두건을 쓰고 붉은 옷을 입은 채 집으로 올라가서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합니다. 또한 성남 에서 향민들이 밥을 짓는데 밥시루 속에 아이 하나가 삶아져 죽어 있었습니다. 양평의 저잣거리에서 땅이 갑자기 꺼져서 구멍이 생기더 니 한 덩어리의 고기가 솟아 나왔는데, 둘레가 수 척이고, 귀, 입, 코를 모두 갖추었지만 손과 발만 없고 칼이나 화살에도 끄떡 없는데 도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복자( 점쟁이 )가 점치기를, ‘형체는 있지만 완성되지 않고 입은 있지만 소리가 나지 않는구나. 국가가 멸망하려니 이런 형태가 나타났구나.’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 모두가 상서롭지 못한 징조입니다. 주공께서 마땅히 흉사를 피하고 길사를 좇아야지 경거망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공손연이 벌컥 크게 노해 무사들에게 소치려 윤직을 포박해서 가범과 함께 저잣거리에서 처형하라 하고, 대장군 비연을 ‘원수’로, 양조 를 선봉장으로 삼아, 요동의 병사 15만을 일으켜 중원으로 쇄도한다.
변방의 관리가 위나라 황제 조예에게 알린다. 조예가 크게 놀라 사마의를 조정으로 불러 토의한다. 사마의가 아뢴다.
“신이 거느린 마보( 기마병과 보병 ) 관군 4만으로 적병을 족히 격파할 수 있습니다.”
“경의 군대는 수가 적고 길은 머니 수복하기 어려울까 걱정이오.”
“용병이란 병력이 많은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능히 기지奇智를 쓸 수 있는가에 달렸을 뿐입니다. 신이 폐하의 홍복에 의지하여, 반드시 공손연을 잡아서 폐하께 바치겠습니다.”
“경이 보기에, 공손연이 무슨 거동을 할 것 같소?”
“그가 성을 버리고 미리 달아나는 것이 상계上計( 상책 )입니다. 요동을 지키며 대군을 막는 것이 중계中計입니다. 양평을 좌수坐守( 고 수 )하는 것이 하계下計이니 공손연은 신에게 잡히고 말 것입니다.”
“거기까지 왕복하는 데에 얼마나 걸리오?”
“4천 리 떨어진 곳이니 가는 데에 백 일, 치는 데에 백 일, 휴식에 6십 일, 대략 1년은 족히 걸립니다.”
“만약 ‘오’나 ‘촉’이 침범하면 어찌하겠소?”
“신에게 이미 수어( 방어 ) 대책이 서 있으니 폐하께서 근심하지 마소서.”
조예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사마의더러 군대를 일으켜 공손연을 토벌하러 가라고 한다. 사마의가 조정을 떠나서 성을 나간다. 사마의가 호준을 선봉장으로 삼아 선두 부대를 이끌고 요동으로 가서 영채를 세워 주둔하게 한다. 이 소식을 초마( 정찰 기마병 )가 재빨리 공손연 에게 알리니 공손연이 비연과 양조에게 병사 8만을 나눠서 요대에 주둔하고, 2십여 리에 걸쳐서 해자를 파고, 녹각( 사슴뿔 모양의 방어 도구 )을 설치하게 하니, 방어 태세가 몹시 엄밀하다. 호준이 사람을 시켜 사마의에게 알리니 사마의가 웃는다.
“적병이 우리와 맞붙어 싸우지 않고, 우리 군대를 지치게 할 속셈이오. 내가 헤아려보니, 적군의 태반이 이곳에 있어, 그 소굴은 텅 비어 있을 테니, 이곳을 버리고 곧장 양평으로 달려가는 것이 낫겠소. 그러면 적병이 반드시 구원하러 갈 테니 도중에 이를 치면 틀림없이 전 공全功( 완전한 공훈 )을 거둘 것이오. “
이에 군대를 지휘해 지름길을 따라 양평으로 출발한다.
한편, 비연이 양조와 상의하며 말한다.
“위군이 공격하러 오더라도 교전하지 마시오. 그들이 천리를 오니, 양초( 군량과 말먹이풀 ) 가 공급되지 않아, 오래 버티기 어려 워, 양초가 떨어지면 틀림없이 퇴각할 것이오. 그들이 퇴각하기를 기다려, 기습한다면 사마의를 잡을 수 있소. 지난날 사마의가 촉나라 병사와 대치할 때, 위남을 굳게 지켜, 공명이 끝내 군중에서 죽었소. 오늘 그 방법을 똑같이 써야겠소.”
두 사람이 상의하고 있는데 급보가 날아든다.
“위군이 남쪽으로 갔습니다.”
비연이 크게 놀라 말한다.
“그들이 우리 군대가 양평에 적은 것을 알아채고, 우리의 노영老營( 군대의 본거지 )을 습격하러 간 것이오. 양평을 잃으면 우리가 이곳을 지킨들 아무 이익이 없소이다.”
곧 영채를 철거하고 뒤이어 출발한다.
재빨리 탐마( 정찰 기마병 )가 사마의에게 급보하니 사마의가 웃는다.
“내 계책에 걸려들었구나!”
하후패와 하후위 두 사람더러 각각 1군을 이끌고 제수濟水의 강가에 매복하게 한다.
“요동 병사들이 오거든 양쪽에서 일제히 나오시오.”
두 사람이 계책을 받고 떠난다. 어느새 비연과 양조가 군을 이끌고 앞으로 오는 것이 보인다. 한차례 포성이 울리더니, 양쪽에서 북을 두드리고 깃발을 흔들며, 왼쪽에서 하후패가, 오른쪽에서 하후위가 군을 이끌고 일제히 달려 나온다. 비연과 양조 두 사람이 전혀 싸 울 마음이 없어 길을 뚫고 달아난다. 수산까지 달아나다가 마침 공손연의 병사와 마주쳐 병력을 한데 합친 뒤 말머리를 되돌려 다시 위나라 병사와 교전한다. 비연이 말을 타고 나와서 욕한다.
“적장아! 속임수를 쓰지 마라! 네가 어찌 감히 출전하지 않냐?”
하후패가 말을 몰고 칼을 휘두르며 맞서러 나온다. 몇번 부딪혀 싸우지 않고, 하후패가 한칼에 비연을 베어서 말 아래로 떨구니, 요동 군 사들이 크게 혼란에 빠진다. 하후패가 병사를 내몰아서 덮치니 공손연이 패잔병을 이끌고 양평성으로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굳게 지키며 출전하지 않는다. 위군이 사방을 포위한다.
이때 가을비가 끊임없이 한달을 그치지 않고 내려서 평지의 수심이 3척에 이르니, 군량을 운반하는 배가 요하遼河 어귀에서 곧바로 양평 성 아래까지 올 지경이 된다. 위군이 모두 물 속에서 지내니, 걷거나 앉거나 늘 불안하다. 좌도독 배경이 군막으로 들어와 고한다.
“빗물이 그치지 않아, 영내가 진창이니, 병사들이 머무를 수 없습니다. 청컨대 앞쪽의 산 위로 옮기게 해주십시오.”
사마의가 노해서 말한다.
“곧 공손연을 잡을 참인데, 어찌 영채를 옮기다는 말이오? 영채를 옮기자는 말을 다시 꺼내는 이는 참하겠소!”
배경이 ‘네, 네’ 하며 퇴장한다.
얼마 뒤 우도독 구련도 들어와서 고한다.
“병사들이 빗물 때문에 고생하니, 태위께 바라옵건대 영채를 높은 지대로 옮기게 해주십시오.”
사마의가 크게 노해서 말한다.
“내가 군령을 이미 발했거늘 네놈이 어찌 감히 어기려드냐!”
즉시 구련을 밖으로 끌어내서 처형하고 그 목을 남문 밖에 걸어둔다. 이에 병사들이 벌벌 떤다.
사마의가 영을 내려서 양쪽 영채의 인마를 잠시 2십 리 밖으로 물리니, 성 안의 병사와 백성들이 성을 나와서 땔나무를 베고 땔감을 채취하고, 소와 말을 방목한다. 사마 진군이 묻는다.
“예전에 태위께서 상용을 치실 때, 병력을 8로( 8개 방면 )로 나눠, 8일만에 성 아래에 당도해, 마침내 맹달을 사로잡아 큰 공을 세우셨습 니다. 이제 대갑( 갑옷을 갖춰 입은 무장병 ) 4만이 수천 리를 왔는데 성지( 성 / 도시 )를 치라고 명하지 않고, 도리어 오랫동안 진창 속 에서 지내게 만들고 게다가 적의 무리로 하여금 땔나무를 베고 소와 말을 방목하도록 방치하십니다. 태위께서 무슨 뜻을 가지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마의가 웃으며 말한다.
“공께서 병법을 모르신다는 말씀이오? 지난날 맹달은 군량이 많고 병력이 적었고 아군은 군량이 적고 병력이 많은 까닭에 싸움을 서두 르지 않을 수 없었소. 출기불의( 적의 예상을 깨는 방향으로 진격함 )해 돌연히 공격해야 비로소 승리를 거두는 것이오. 이제 요동 군 사는 많고 아군은 적고, 적군은 굶주리고 아군은 포식하고 있는데 하필 힘껏 공격해야겠소? 마땅히 적들이 저절로 달아나게 한 뒤에 기 회를 타서 공격해야 하오. 내 이제 한줄기 길을 열어줘서 저들로 하여금 땔나무를 베고 소와 말을 방목케 하는 것은 저들을 저절로 달아 나게 만들려 해서요.”
진군이 탄복한다.
이에 사마의가 사람을 낙양으로 보내 군량을 보내주라고 재촉한다. 위나라 황제 조예가 조회를 열자 신하들 모두 상주한다.
“요새 가을비가 끊임없이 한달을 그치지 않아 인마들이 피로하니 사마의를 불러들이고 잠시 군을 거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마 태위는 용병에 능하고, 위기에 잘 대처하고, 좋은 계책을 많이 갖고 있어서, 공손연을 잡는 것도 날자만 헤아리며 기다리면 될 일 이오. 어찌 경들이 걱정할 필요가 있겠소?”
마침내 신하들의 간언을 듣지 않고 사람들을 시켜 군량을 사마의의 군전軍前( 전장 / 싸움터 / 전초기지 / 전선 )까지 보낸다.
사마의가 영채 안에 머무는데, 다시 며칠이 지나자 비가 그치고 하늘이 개인다. 이날밤 사마의가 군막을 나와서 우러러 천문을 살피니 홀연히 어느 별 하나가 크기는 북두성과 같은데 몇 길이나 되는 빛줄기를 끌며 수산의 동북쪽에서 날아와서 양평의 동남쪽에 떨어진다. 이에 각 영채의 장수와 병사들이 놀라지 않는 이가 없다. 사마의가 이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뭇 장수에게 말한다.
“닷새 뒤 이번에 별이 떨어진 곳에서 틀림없이 공손연을 참하게 될 것이오. 내일 힘을 합쳐 성을 쳐야겠소.”
뭇 장수가 명령을 받고 다음날 새벽에 군을 이끌고 사방에서 에워싸더니 흙산을 쌓고 땅꿀을 파고 포가砲架( 화포를 쏘는 받침대 )를 세우고 운제를 장비해 밤낮으로 쉬지 않고 공격하며 화살을 소나기처럼 성 안으로 퍼붓는다. 공손연의 성 안에 군량이 바닥나자 모두가 소와 말을 잡아서 먹는다. 사람마다 원망하며 성을 지킬 마음이 없어 공손연의 머리를 베어서 성을 바치고 투항하려고 한다. 공손연이 이를 듣고 몹시 놀라고 근심하며 상국 왕건과 어사대부 유보를 시켜 위나라 진영을 찾아가 항복을 청하게 한다. 두 사람이 성 위에서 밧 줄에 매달려서 내려와, 사마의를 찾아가서 고한다.
“태위께 청컨대 2십 리를 물러나시면 저희 임금과 신하들이 스스로 투항하러 오겠습니다.”
사마의가 크게 노해 말한다.
“공손연이 어찌 직접 오지 않냐? 몹시 무례하구나!”
무사들에게 소리쳐서 이들을 끌어내어 처형하고, 그들의 종인( 수행원 )에게 그 목을 넘겨준다.
종인이 돌아가서 알리니, 공손연이 크게 놀라, 시중 위연衛演을 위나라 진영으로 보낸다. 사마의가 군막으로 나와서 뭇 장수를 불러서 양쪽에 세운다. 위연이 무릎으로 걸어가서 밑에서 무릎을 꿇고 고한다.
“바라건대 태위께서 천둥벼락 같은 노여움을 가라앉히십시오. 일자를 약정해서 저희 세자 공손수를 인질로 보내겟습니다. 그런 뒤에 저 희 임금과 신하들이 스스로 결박해서 항복하러 오겠습니다.”
사마의가 말한다.
‘군사의 대요大要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싸울 수 있다면 싸워라.’, ‘싸울 수 없다면 지켜라.’, ‘지킬 수 없다면 달아나라.’, ‘달아날 수 없다 면 항복하라.’, ‘항복할 수 없다면 죽을 뿐이다.’ 했다. 하필 아들을 인질로 보내야겠냐?”
위연을 꾸짖어 보내며 공손연에게 돌아가서 알리라고 한다. 위연이 머리를 감싸쥐고 쥐새끼처럼 달아나서 공손연에게 돌아가서 고한다. 공손연이 크게 놀라 아들 공손수와 몰래 의논을 마치더니, 인마 1천을 뽑아서 그날밤 2경 무렵에 남문을 열고 동남쪽으로 달아난 다. 아무도 없는 듯하자, 공손연이 속으로 기뻐한다. 그런데 십 리를 못 가서 갑자기 산 위에서 한차례 포성이 들리더니 북 소리와 피리 소리가 일제히 울린다. 1군이 가로막는데 중앙은 바로 사마의다. 좌측은 사마사요 우측은 사마소인데 두 사람이 크게 외친다.
“반적( 역적 )은 거기 서라!”
공손연이 크게 놀라 급히 말을 몰아 길을 찾아 달아난다. 재빨리 호준의 병사들이 오는데 좌측은 하후패, 하후위, 우측은 장호, 악침의 병사들이다. 사면에서 철통같이 포위한다. 공손연 부자가 어쩔 수 없이 말에서 내려 항복한다. 사마의가 말 위에서 여러 장수를 돌아보며 말한다.
“내가 어젯밤 병인일에 하늘에서 큰 별이 여기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오늘밤 임신일에 이렇게 될 줄 알았소.”
뭇 장수가 칭송한다.
“태위께서 참으로 신기神機( 귀신 같은 재능 )를 가지셨습니다!”
사마의가 그들을 처형하라고 전령하니, 공손연 부자가 마주보며 죽음을 맞는다. 사마의가 곧 군을 이끌고 양평을 점령하러 간다. 성 밑에 미처 이르기 앞서, 호준이 벌써 군을 이끌고 성 안으로 들어간다. 성 안의 인민이 향을 사르고 절하며 맞이한다. 위군이 모조리 성으로 들어간다. 사마의가 관아 위에 앉아 공손연의 종족과 아울러 함께 모반한 관료 등을 모두 죽이니 그들의 잘린 목이 7십여 개 를 헤아린다. 사람들이 사마의에게 고한다.
“가범과 윤직이 공손연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간절하게 간언했으나, 모두 공손연에게 살해됐습니다.”
사마의가 곧 그들의 묘를 조성하고 그 자손들을 높인다. 곳간의 재물로써 삼군( 전군 )을 포상하고 위로한 뒤 군을 거느리고 낙양으로 돌아간다.
한편, 위나라 황제가 궁중에 있는데, 밤 3경에 이르자, 갑자기 한바탕 음산한 바람이 불어, 등불을 꺼뜨린다. 그런데 모 황후가 수십 명의 궁인을 이끌고 옥좌 앞까지 와서 목숨을 내놓으라고 한다. 조예가 이 때문에 병이 생긴다. 병이 점차 침중沉重(심각 )해져 시중 광록대부 유방과 손자에게 명해 추밀원의 모든 사무를 관장하게한다. 또한 문제( 조비 )의 아들 연왕 조우를 불러들여 대장으로 임명해, 태자 조 방의 섭정을 돕도록 한다. 조위의 사람됨이 공검恭儉( 공손하고 검소함 )하고 온화한데, 이러한 대임을 맡으려 하지 않고, 한사코 사양하 며 받지 않는다. 조예가 유방과 손자를 불러 묻는다.
“종족宗族 내에서 누가 좋겠소?”
두 사람이 오래도록 조진( 조자단 )의 은혜를 입은지라, 이에 천거한다.
“조자단의 아들 조상이 좋겠습니다.”
조예가 이를 따른다. 두 사람이 또 상주한다.
“조상을 쓰시겠다면 연왕은 귀국歸國( 연왕이 다스리는 지역으로 돌아감 )시키소서.”
조예가 그 말을 받아들인다. 두 사람이 곧 조예에게 조서를 내려달라 청하고, 조서를 가지고 연왕에게 가서 황제의 칙유를 전한다.
“천자께서 조서를 써서 명하시기를, 연왕은 즉시 귀국하라 하셨습니다.”
연왕이 눈물 흘리며 울고 떠난다. 곧 조상을 대장군으로 봉하여, 조정의 정무를 모두 대신하도록 한다. 조예가 병세가 점차 위중해지자 급히 사자에게 부절을 가지고 사마의를 찾아가서 조정으로 돌아오라는 명을 전하게 한다. 사마의가 명을 받고 곧장 허창으로 돌아와 위 나라 황제를 만나러 들어간다. 조예가 말한다.
“짐은 다만 경을 만나지 못할까 근심했소. 오늘 만날 수 있으니 죽어도 한이 없소.”
사마의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신이 도중에 폐하의 성체가 불안하다고 듣고는, 신에게 날개가 달려 궁궐로 날아오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습니다. 오늘 용안을 뵙게 되니, 신의 다행입니다.”
조예가 하교하여, 태자 조방, 대장군 조상, 시중 유방과 손자 등을 모두 어탑御榻( 황제가 앉거나 눕는 침구 ) 앞까지 불러들인다. 조예가 사마의의 손을 잡고 말한다.
“지난날 유현덕이 백제성에서 병세가 위급할 때, 어린 아들 유선을 제갈공명에게 탁고하니 공명이 이 때문에 충성을 다 바치다가 죽어서야 멈추었소. 편방偏邦( 중원이 아닌 외딴 곳의 국가 )도 이러한데 하물며 대국은 어떡해야겠소? 짐의 어린 아들 조방은 나이가 이제 겨 우 여덟 살이니 아직은 종묘사직을 감당할 수 없소. 부디 태위와 종형宗兄( 일가친적의 연장자 ), 원훈구신元勳舊臣( 큰 공을 세운 오랜 신하)들은 힘껏 그를 보좌해 짐의 마음을 저버리지 마시오!”
다시 조방을 불러 말한다.
“중달( 사마의 )은 짐과 한몸이니 너는 마땅히 삼가 그를 예우하라.”
곧 사마의에게 명하여, 조방을 이끌고 앞으로 가까이 오라고 한다. 조방이 사마의의 목을 껴안고 놓아주지 않는다. 조예가 말한다.
“태위는 어린 아들이 오늘 이렇게 좋아하는 정을 잊지 마시오!”
말을 마치더니 줄줄 눈물을 떨군다. 사마의가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 흘린다. 위나라 황제가 정신이 혼미해져 말도 할 수 없어 다만 손으 로 태자를 가리키다가 얼마 뒤 죽는다. 재위 13년, 나이 36세다. 이때가 위나라 경초 3년 봄 정월 하순이다.
즉시 사마의와 조상이 태자를 받들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한다. 조방 '난경'은 조예의 양자이다. 그 동안 궁중에 숨겨놓아 사람들이 아무도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조방이 조예에게 ‘명제’라는 시호를 추증하고, 고평릉에 안장한다. 곽황후를 '황태후'로 높인다. 연호를 정시원년으로 고친다. 사마의가 조상과 더불어 정무를 보좌한다. 조상이 사마의를 몹시 공손히 섬겨서 큰일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그에게 알린다. 조상은 소백 昭伯이라 불리고 어려서부터 궁중을 출입했다. 명제가 조상의 언행이 공손하고 신중한 것을 보고, 몹시 아꼈다. 조상의 문하에 식객이 5백 명인데, 그들 중에 다섯 사람이 겉멋에 빠져 서로를 높인다. 평숙이라 불리는 하안, 등우의 후예로서 현무라 불리는 등양, 공소라고 불리는 이승, 언정이라 불리는 정밀, 소선이라 불리는 필범이 그 다섯이다. 또한 대사농大司農 환범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원칙이라 불리는데 지모를 제법 갖추어 많은 이들이 그를 꾀주머니라고 칭한다.
이들 몇 사람이 모두 조상의 신임을 받는다. 하안이 조상에게 고한다.
“주공의 대권을 타인에게 위탁하지 마십시오. 후환이 생길까 두렵습니다.”
“사마공은 나와 더불어 선제로부터 탁고(고아를 맡김)의 명을 받았거늘, 어찌 차마 그를 배신하겠소?”
“지난날 선공께서 중달과 더불어 촉군을 격파할 때 누차에 걸쳐서 그의 기세에 눌려서 죽음에 이른 것인 데 주공께서 어찌 살피지 않으십니까?”
조상이 갑자기 깨닫고, 곧 여러 관리와 토의를 마치더니, 위나라 황제 조방을 만나러 들어가서 말한다.
“사마의의 공이 높고 덕이 무거우니, 태부太傅가 되어 마땅합니다.”
조방이 이를 따르니, 이 때문에 병권이 모두 조상에게 넘어간다. 조상이 아우 조희를 중령군으로, 조훈을 무위장군으로, 조언을‘산기상시’로 임명해 각각 3천의 어림군을 이끌고, 금궁禁宮의 출입을 마음대로 하게 한다. 또한 하안, 등양, 정밀을 ‘상서’로, 필범을 ‘사예교위’로, 이승을 하남윤으로 임명한다. 이들 다섯 사람이 밤낮으로 조상과 더불어 의사한다.
이에 조상 문하의 빈객들이 나날이 많아진다. 사마의가 병을 핑계로 외출하지 않고, 두 아들도 모두 퇴직해 한가로이 지낸다. 조상이 매일 하안 등과 더불어 음주하며 환락을 즐긴다. 무릇 의복과 그릇을을 쓰는 것이 조정과 차이가 없다. 각처에서 귀하고 진기한 물건들을 바치면 먼저 상등품을 자기가 가진 뒤 나머지를 궁궐에 바친다. 가인과 미녀들이 부원에 충만한다. 황문 장당이 조상에게 아첨하며 섬겨서 사사로이 선제(조예)의 시첩 78인을 골라서 조상의 부중으로 들여보낸다. 조상이 또한 가무에 뛰어난 양갓집 자녀 34인을 골라서 가악家樂(부자의 집안에서 사사로이 두는 노래하는 기녀)으로 삼는다. 또한 크고 화려한 누각을 짓고, 금과 은으로 그릇을 만들며 뛰어난 장인 수백 인을 부려서 밤낮으로 공작하게 한다.
한편, 하안이 평원에 사는 관로라는 사람이 수술數術( 천문, 점술 등을 망라한 학문 )에 뛰어나다고 듣고는 관로를 불러서 ‘역'을 논의한다. 이때 등양이 그 자리에 있다가 관로에게 묻는다.
“그대가 스스로 ‘역’에 뛰어나다고 하면서 역 속의 사의詞義( 글의 뜻 )를 말하지 않으니 무슨 까닭이오?”
“무릇 역에 뛰어난 이는 역을 말하지 않소.”
하안이 웃으며 그를 칭찬한다.
“가히 요언불번要言不煩( 말이 간단명료해서 번잡한 설명이 필요 없음 )이라 할 만하오.”
이에 관로에게 말한다.
“나를 위해 점을 쳐보시겠소? 내가 ‘삼공’의 지위까지 오르겠소?”
또 묻는다.
“요새 꿈 속에서, 파리 수십 마리가 내 코 위에 몰려오는데, 이것이 무슨 징조요?”
관로가 말한다.
“원개가 요임금을 보필하고, 주공이 주나라를 도왔는데 이들 모두가 온화하고 은혜를 베풀며, 겸손하고 공손했기 때문에 많은 복을 누렸 소. 이제 군후君侯( 벼슬아치에 대한 경칭 )께서 지위가 높고 권세가 크지만 군후의 은덕을 생각하는 이들은 드물고, 위세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많으니, 참으로 조심하며 복을 찾는 길은 아니오. 게다가 코는 산이오. 산이 높고 위태롭지 않다면, 고귀한 신분을 오래 지킬 것이 오. 파리들은 악취에 끌려 모이는 것이오. 지위가 높은 이가 전복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겠소? 바라건대 군후께서는 많은 것은 덜어 내고 적은 것은 보충하며, 예가 아닌 것은 행하지 마시오. 그런 뒤에야 삼공까지 오르고, 파리들도 쫓아낼 수 있소.”
등양이 노해서 말한다.
“이것은 늙은이들이 늘 하는 이야기일 뿐이오!”
관로가 말한다.
“늙은이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볼 수 있고, 늘 하는 이야기는 아직 말하지 않는 것들을 말하는 법이오.”
마침내 소매를 털며 가버린다. 두 사람이 크게 웃으며 말한다.
“참으로 광사狂士( 미친 선비 / 높은 뜻을 가지고 용감하게 나아가는 선비 )요!”
관로가 귀가해 처남에게 이것을 말하니 처남이 크게 놀라 말한다.
“하안과 등양 두 사람은 권세가 몹시 큰데 어찌 그들을 거스르셨소?”
“죽은 사람에게 말한 것인데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오?”
처남이 그 까닭을 물으니 관로가 말한다.
“등양이 걸을 때, 근육이 뼈를 바로잡지 못하고, ‘맥’이 살을 제어하지 못하오. 일어서면 몸이 기울어지니, 마치 손발이 없는 듯하오. 이것 은 ‘귀조鬼躁( 사람이 죽기 직전의 병태의 일종 )’의 상相이오. 하안을 살펴보면, 그 넋이 몸을 지키지 못하고, 혈색이 좋지 않고, 정상精 爽( 정령 )이 연기처럼 부유하여, 그 용모가 마치 마른 나무와 같소. 이것은 ‘귀유鬼幽( 사람이 죽기 직전의 병태의 일종 )’의 상이오. 두 사람은 조만간 반드시 자신의 몸을 죽이는 재앙을 입을 텐데 무엇을 두려워하겠소?”
그 처남이 관로를 미치광이라고 크게 꾸짖고 떠난다.
한편, 조상이 일찍이 하안, 등양 등과 더불어 사냥을 가니, 그 아우 조희가 간한다.
“형의 권위가 태심太甚( 너무 심함 / 대단함 )한데 밖으로 나가서 사냥을 즐기니, 이러다가 다른 이가 노린다면, 후회막급이오.”
“병권이 내 수중에 있거늘 무엇을 두려워하겠냐?”
사농 환범도 간하지만 조상이 듣지 않는다. 이때 위나라 황제 조방이 정시 10년을 ‘가평 원년’으로 개원한다. 조상이 계속 권력을 독점하 지만 사마의의 허실을 알지 못한다. 마침 위나라 황제가 이승을 ‘형주자사’로 임명하니, 조상이 곧 이승으로 하여금 중달( 사마의 )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가서, 소식을 염탐하도록 한다. 이승이 곧장 태부( 사마의의 직위 )의 부중으로 가서, 문지기를 시켜서 자신이 온 것을 알리게 한다. 사마의가 두 아들에게 말한다.
“이것은 조상이 시켜서 내 병의 허실을 탐지하러 온 것이구나.”
곧 머리의 관을 벗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침상으로 올라가 이불을 덮고 앉는다. 또한 두 여종에게 자신을 부축하라고 한다. 그러고나서야 이승을 부중으로 들인다.
이승이 앞으로 와서 절하며 말한다.
“그 동안 태부를 만나뵙지 못하였지만 누가 이렇게 병세가 위중한 줄 알았겠습니까? 이제 천자께서 저를 형주자사로 임명하셔서, 일부러 작별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사마의가 거짓으로 답한다.
“정주는 삭방朔方( 북방 / 북쪽 )과 가까우니 준비를 잘하시오.”
“형주자사로 임명됐습니다. ‘정주'가 아닙니다.”
사마의가 웃는다.
“그대가 방금 ‘정주’에서 왔다고?”
“산동의 ‘청주’에서 왔습니다.”
사마의가 크게 웃으며 말한다.
“청주에서 왔구나!”
“태부께서 어쩌다가 병세가 이렇게 됐습니까?”
좌우( 측근 )가 말한다.
“태부께서 귀가 먹었소.”
이승이 말한다.
“제게 종이와 붓을 주십시오.”
좌우가 종이와 붓을 가져다가 이승에게 주니 이승이 글을 써서 바친다. 사마의가 읽더니 웃으며 말한다.
“내가 병이 들어서 귀가 먹었소. 이제 가면 부디 보중保重( 몸 건강을 조심함 )하시오.”
말을 마치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킨다. 시비( 시중을 드는 여종 )가 탕을 바치니, 사마의가 입을 갖다대지만, 탕이 흘러서 소매를 가득 적 신다. 이에 사마의가 목이 메여서 말한다.
“내가 이제 노쇠하고 병세가 위독하니, 단석( 아침저녁 / 매우 짧은 시간 )에 죽게 됐소. 두 아들이 불초하니 바라건대 그대가 가르쳐주구 려. 대장군( 조상 )을 만나거든 제발 내 두 아들을 보살펴 달라고 말해주시오.”
말을 마치더니 침상 위로 쓰러지는데 목이 쉬고 숨이 차다. 이승이 중달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조상에게 돌아가서 그 일을 자세히 말한 다. 조상이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그가 이렇게 늙어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이제 내게 아무 걱정이 없소!”
사마의는 이승이 떠나자 몸을 일으켜서 두 아들에게 말한다.
“이승이 이렇게 가서 내 소식을 전하면 조상이 틀림없이 나를 경계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성을 나가서 사냥을 할 때만을 기다려서, 그를 도모해야겠다.”
하루도 안 지나서, 조상이 위나라 황제 조방에게 고평릉을 찾아가서 선제 조예의 제사를 드릴 것을 청한다. 대소 관료가 모두 어가를 수 행해 성을 나선다. 조상이 동생 셋과 아울러 심복 하안 등과 어림군( 황제의 친위대 )을 이끌고 어가를 호위해 출발하려는데, 사농 환범이 말을 못 가게 붙잡고 간한다.
“주공께서 금병禁兵( 금군 / 황제의 친위대 )을 총지휘하는데, 형제가 모두 나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 안에서 변란이 생기면 어찌하 시겠습니까?”
조상이 채찍으로 가리키며 꾸짖는다.
“누가 감히 변란을 일으키겠냐? 다시는 허튼 소리를 하지 말라!”
이날 사마의는 조상이 성을 나서자, 마음 속으로 크게 기뻐한다. 즉시 옛날에 그의 수하에서 적을 격파하던 사람들과 아울러 가장家將( 옛날 부호들이 고용하던 무장 하인 ) 수십 명을 동원하며, 두 아들을 이끌고 말을 타고, 곧바로 조상을 모살謀殺하러 온다.
문을 닫은 채 좋은 기회가 오기만 기다리다,
군을 이끌고 이제 위풍당당하게 나서네.
조상의 목숨이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