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23회 예정평이 벌거벗고 역적을 꾸짖고 길태의가 조조를 독살하려 한다

    한편, 조조가 유대, 왕충을 베려 한다. 공융이 간언한다.

    "두 사람은 본래 유비의 적수가 아니었는데 만약 참하시면 장사들의 마음을 잃으실까 두렵습니다."

    조조가 살려주고 작록을 거둔 뒤 스스로 출병해 현덕을 치려 한다. 공융이 말한다.

    "지금 한창 엄동설한인데 병력 동원은 아직 불가합니다. 새봄을 기다려도 늦지 않습니다. 먼저 사람을 보내서 장수, 유표에게 귀순을 권 하고 서주를 다시 도모하십시오."

    조조가 그렇다 여겨서 먼저 유엽더러 장수에게 가서 유세하게 한다. 유엽이 양성에 이르러 먼저 가후를 만나서 조조의 높은 덕을 늘어놓 자 가후가 유엽을 집안에 머물게 한다.

    이튿날 장수를 만나서 조조가 유엽을 보내서 귀순을 권한 걸 말한다. 의논하는데 때맞춰 원소의 사자가 온다. 장수가 들라 명한다. 사자가 서신을 바친다. 장수가 읽어보니 역시 귀순을 권한다. 가후가 사자에게 묻는다.

    "요새 병력을 일으켜서 조조를 친다더니 승부가 어떻소?"

    "엄동설한이라 잠시 병력을 물렸소. 지금 장군께서 형주의 유표와 더불어 국사 國士의 풍모를 구비하셨기에 청하러 왔을 뿐이오."

    가후가 크게 웃는다.

    "너는 본초에게 돌아가서 '너희 형제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어찌 천하의 국사를 받아들이겠는가?'라고 전하라."

    사자의 면전에서 서신을 찢어발기고 꾸짖어서 쫓아버린다. 장수가 말한다.

    "지금 한창 원소가 강하고 조조가 약한데 이제 서신을 훼손하고 사자를 쫓아보냈으니 원소가 쳐들어오면 어쩌겠소?"

    "조조를 따르는 것만 못합니다."

    "내가 앞서 조조와 원수졌는데 어찌 받아들이겠소?"

    "조조를 따를 이유가 셋입니다. 무릇 조 공이 천자의 밝은 조서를 받들어서 천하를 정벌하니 그것이 마땅히 따를 첫째 이유입니다. 원소 가 강성하므로 우리가 적은 세력으로 추종한들 틀림없이 우리를 중히 여기지 않겠지만, 조조가 비록 약해도 우리를 얻으면 반드시 기뻐 할 테니 그것이 마땅히 따를 둘째 이유입니다. 조 공에게 왕패 王霸의 뜻이 있으니 사사로운 원한을 분명 풀어서 밝은 덕을 사해에 보일 테니 그것이 마땅히 따를 셋째 이유입니다. 장군께서 망서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장수가 따라서 유엽을 부른다. 유엽이 조조의 덕을 크게 칭송하고 말한다.

    "승상께서 옛 원한을 기억하신다면 어찌 기꺼이 저를 보내서 장군과 좋은 의를 맺으려 하시겠습니까?"

    장수가 크게 기뻐하고 즉시 가후 등을 데리고 허도에 가서 투항한다. 장수가 조조를 만나서 계단 아래에서 절하자 조조가 황망히 일으켜 서 그 손을 잡고 말한다.

    "과거 실수가 있었지만 마음에 새기지 마시오."

    장수를 탕무장군에 봉하고 가후를 봉해 집금오를 맡게 한다. 조조가 즉시 장수더러 유표에게 귀순을 권하는 서찰을 쓰게 한다. 가후가 진언한다.

    "유경승은 명류 名流를 사귀기 좋아하니 이제 문명 있는 선비를 보내서 설득해야 항복할 겁니다."

    조조가 순유에게 묻는다.

    "누구를 보내야겠소?"

    "공문거가 적임입니다."

    조조가 그렇게 여긴다. 순유가 나와서 공융을 만나 말한다.

    "승상께서 문명 있는 선비를 얻어서 사자로 삼고자 하시오. 공께서 임무를 맡을 수 있겠소?"

    "제 친구 예형 '정평'은 재주가 저보다 열 배 낫소. 이 사람은 황제의 측근으로 마땅해서 단지 사자에 그칠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천자께 천거하리다."

    이에 황제에게 표를 올린다. 그 글은 이렇다.

    "신이 듣자니, 홍수가 범람하면 황제께서 더욱 어진이를 생각하시고, 사방에서 두루 찾아서 어질고 훌륭한 이를 초빙한다 했습니다. 예전에 세종께서 정통을 이어서 장차 토대를 넓히려 하셨습니다. 공훈과 업적을 떨치고자 선비들이 떼지어 몰려왔습니다. 폐하께서 지혜와 덕이 넘치십니다. 제위를 계승하신 뒤 액운을 만나셨지만 근면하시고 공손하셨습니다. 유옥 維嶽에서 신령이 강림하니 뛰어난 인재가 일제히 나타났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초야에 묻힌 선비, 평원 출신의 예형 '정평'은 지금 나이 24세로 착하고 얌전하며 바르고 성심이 있고 영재가 탁월합 니다. 처음에 예문을 섭렵하고, 관리가 돼서 심오하게 통찰했습니다. 눈으로 한번 보면 늘 외워서 입으로 낭송합니다. 귀로 잠깐 들으면 마음 속에 잊지 않습니다. 성품이 도에 합치하고 생각이 신묘합니다. 홍양의 깊은 계책, 안세의 묵식 默識으로 예형을 비교해도 참으로 놀라고도 남습니다. 충성하고 과감하고 정직하고 지조는 눈서리 같습니다. 착한 일을 보면 놀란 듯이 반가워하고 나쁜 일을 미워해 원 수 보듯합니다. 임좌의 항행(고상한 행동을 견지하는 것)이나 사어의 굳센 지조로도 결코 그를 능가할 수 없습니다.

    지조 鷙鳥(사나운 새) 백 마리가 물수리 하나만 못한 법입니다. 예형을 입조시키면 반드시 출중할 것입니다.. 뛰어난 언변에 넘치는 기세는 물이 솟구치듯합니다. 의혹을 해소하고 엉킨 걸 풀어주고 적에게 임하여도 여유가 있습니다.

    예전에 가의가 일부러 한나라의 속국 흉노의 신하가 되기를 청해 흉노의 선우를 속임수로 얽어매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옛날에 종군이 긴 밧줄로 굳센 남월의 왕을 묶어서 오려 했습니다. 가의와 종군 모두 약관의 나이에 황제를 위해서 비분강개하니 옛날부터 그들을 아름답다고 기렸습니다. 근래에도 노수와 엄상이 역시 남다른 재주로 대랑에 발탁됐습니다. 예형도 마땅히 그럴 만하니, 용이 치솟아 하늘에 닿고 은하수까지 날개를 퍼덕이고 자미원처럼 빛나고 무지개처럼 광채를 드리울 것입니다. 폐하를 가까이 모시는 많은 선비들을 돕기에 충분하고 사대문이 더욱 빛날 겁니다.

    균천 鈞天의 광악처럼 뛰어나게 아름다울 겁니다. 궁궐에 비상한 보물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예형 같은 사람은 천하에 많지 않습니다. 격초의 노래, 양아의 시는 지극히 묘해 재주꾼들이 탐내는 것입니다. 비토, 요뇨 같은 빠른 말들이 발이 안 보이게 빨리 달리는 것은 왕량, 백락 같은 뛰어난 기수가 잘 몰아서입니다. (이런 인재를) 신 등이 구차하게 감히 아뢰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 신중하게 선비를 취하시니 반드시 그를 시험해보십시오. 예형을 벼슬 없이라도 불러보시기 간청하옵니다. 만약 채용할 만하지 않으면 폐하를 속인 죄를 받겠습니다."

    황제가 읽고서 조조에게 맡긴다. 조조가 사람을 시켜서 예형을 불러온다. 인사를 마쳤지만 조조가 앉으라 명하지 않는다. 예형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한다.

    "천지가 광활하다지만 어찌 한 사람도 없는 것이냐!"

    조조가 말한다.

    "내 수하에 수십 사람이 있고 모두 당세의 영웅이거늘 어찌 사람이 없다고 하냐?"

    "듣고 싶소."

    "순욱, 순유, 곽가, 정욱은 기지가 심오하고 원대하니 소하, 진평인들 못 따른다. 장요, 허저, 악진, 이전은 용맹해서 맞설 수 없으니 잠팽, 마무라도 못 따라온다. 여건, 만총은 종사를 맡고, 우금, 서황은 선봉을 맡는다. 하후돈은 천하의 비상한 인재다. 조자효는 세상의 복된 장수다. 어찌 사람이 없을 수 있냐?"

    예형이 웃는다.

    "그대 말씀이 틀렸소. 이들 인물은 내 다 알고 있소. 순욱은 상갓집에 문상하고 병 문안이나 하게, 순유는 무덤이나 지키게, 정욱은 문지기나 하게, 곽가는 시나 읊게, 장요는 북 치고 피리나 불게, 허저는 소나 말을 방목이나 하게, 악진은 문서나 받고 조서나 읽게, 이전은 서신과 격문이나 전달하게, 여건은 도검이나 갈고 만들게, 만총은 술이나 마시고 밥이나 축내게, 우금은 판때기를 짊어지고 담장이나 쌓게 , 서황은 개돼지나 잡게 하기에 알맞소. 하후돈은 몸뚱이만 좋은 장군이요 조자효는 요재물만 아는 태수라 부르오. 나머지는 모두 옷걸이 같은 자들이오!"

    조조가 노해서 말한다.

    "너는 뭐가 잘났냐?"

    "천문지리에 하나라도 통하지 않는 게 없고 삼교구류 三教九流에 하나라도 깨닫지 못한 게 없소. 위로 임금을 요순처럼 만들고, 아래로 공자, 안회보다 덕을 베풀 수 있소!"

    이때 장요가 곁에 있었는데 검을 뽑아 베려 한다. 조조가 말한다.

    "마침 북을 치는 관리가 부족한데 조만간 조정에서 연회를 베풀테니 예형을 북 치는 관리에 임명하겠다."

    예형이 사양하지 않고 응하고 돌아간다. 장요가 말한다.

    "그 자가 불손하게 말하는데 왜 죽이지 않으십니까?"

    "그 자는 평소 헛된 명성을 가져서 원근에 소문났으니 오늘 죽이면 천하에서 나더러 인물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할 것이오. 그 스스로 하겠다니 북치는 일을 맡겨서 모욕하겠소."

    다음날, 조조가 관아의 대청에서 크게 연회를 베풀고 북치는 관리에게 북을 치게 명령한다. 북치는 관리가 말한다.

    "북을 치려면 새 옷으로 갈아 입어야 하오."

    그러나 예형은 헌옷을 입은 채 들어가서 북을 치는데, '어양삼과'란 곡으로 음절이 특별히 묘하고 그윽하니 쇠나 돌을 치는 듯도 하다. 앉은 손님들이 듣고서 비분강개해 눈물 흘리지 않는 이 없다. 좌우에서 꾸짖는다.

    "어찌 옷을 갈아 입지 않냐!"

    예형이 사람들 눈앞에서 찢어진 헌옷을 벗자 벌거벗은 몸뚱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앉은 손님들이 모두 얼굴을 가린다. 예형이 사타구니가 드러나는데도 낯빛이 그대로다.

    조조가 꾸짖는다.

    "묘당에서 어찌 이다지도 무례하냐?"

    "임금을 속이고 업신여기는 것이야말로 무례한 것이다. 내가 어버이께서 물려주신 형태를 드러내서 깨끗한 몸을 보일 뿐이다!"

    "네가 깨끗하다니 누구는 더럽냐?"

    "네가 어진 것과 어리석은 걸 식별치 못하니 눈이 탁해서다! 시서를 읽지 않으니 입이 탁해서다! 충언을 용납치 않으니 귀가 탁해서다! 고금에 통달하지 못하니 몸이 탁해서다! 제후를 용납치 않으니 뱃속이 탁해서다! 늘 찬역하려 하니 마음이 탁해서다! 내가 바로 천하의 명사인데 북이나 치게 하니 양화가 중니(공자)를 업신여기고 장창이 맹자를 훼방한 것과 같을 뿐이다! 패왕의 공업을 이루겠다면서 사람을 이토록 무시하냐!"

    이때 공융이 좌석에 있다가 조조가 예형을 죽일까 두려워서 조용히 진언한다.

    "예형의 죄는 서미 胥靡의 형벌에 처할 만하니 옛날 현명한 임금이 꿈에서 찾았던 훌륭한 인재로는 부족합니다."

    조조가 예형을 가리키며 이야기한다.

    "너를 형주에 사신으로 보내겠다. 유표가 투항하면 너를 공경대신으로 삼으마."

    예형이 가려고 하지 않는다. 조조가 말 세 필을 준비하고 부하 두 사람에게 그를 끌고 가게 한다. 또한 자기 밑의 문무관리들더러 술을 마 련해서 동문 밖에서 배웅케 한다. 순욱이 말한다.

    "예형이 오더라도 인사하러 일어나지 맙시다."

    예형이 온다. 말에서 내려서 들어왔는데 모두 가만히 앉아 있다. 예형이 목놓아 크게 운다. 순욱이 묻는다.

    "어째서 우냐?"

    "시체를 넣은 관들 가운데 왔으니 어찌 안 울겠냐?"

    모두 말한다.

    "우리가 죽은 시체라면 너는 바로 머리 없는 미친 귀신이겠구나!"

    "내 바로 한나라 신하로서 조만(조조를 멸시해서 부르는 말)의 도당이 아니거늘 어찌 머리가 없겠냐?"

    모두 그를 죽이려 하자 순욱이 급히 말린다.

    "쥐나 참새 같은 인간인데 칼을 더럽히기도 아깝소."

    "내 바로 쥐나 참새라도 인성이 남았지만, 너희는 버러지라고 할 밖에!"

    모두 한탄하며 흩어진다.

    예형이 형주에 이르러 유표를 만나고서 비록 덕을 칭송하지만 실은 비웃고 풍자한다. 유표가 기분 나빠서 그더러 강하로 가서 황조를 만 나라 한다. 누군가 유표에게 묻는다.

    "예형이 주공을 놀렸는데 어찌 죽이지 않으십니까?"

    "예형이 여러번 조조를 욕보였지만 조조가 죽이지 않은 건 인망 人望을 잃을까 두려워서요. 그래서 지금 내게 사신으로 보냈으니 내 손을 빌려 그를 죽이고 내가 현자를 해쳤다는 악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오. 내 지금 황조에게 보낸 것은 조조에게 그 의도를 내가 꿰뚫고 있 는 걸 알리기 위해서요"

    다들 훌륭하다고 칭송한다.

    이때 원소가 보낸 사신도 도착한다. 유표가 여러 모사들에게 말한다.

    "원본초가 사신을 보내왔고 조맹덕이 보낸 예형도 여기 있으니 어느 편을 따라야 하겠소?"

    종사중랑장 한숭이 진언한다.

    "지금 두 영웅이 대치하니 장군께서 하시려거든 이 틈에 적을 깨뜨리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은 자를 택해서 따라야 합니다. 지금 조조는 용병을 잘하고 현준한 이들이 다수 따르니 그 세력이 틀림없이 원소를 먼저 취할 것이고 그 뒤 강동으로 병력을 이동할텐데 장군께서 막아내실까 걱정입니다. 형주 전체로써 조조에게 붙으면 필시 장군을 후대할테니 최선의 방책입니다."

    "그대가 허도에 가서 동정을 살펴온 뒤 다시 상의해야겠소."

    "군신에게 각자 역할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 장군을 모시니 비록 끓는 물과 타오르는 불길에 뛰어든들 오로지 명령대로입니다. 장군께서 위로 천자를 따르시고 아래로 조공을 따르시겠다면 저도 그리할 겁니다. 망설이고 정하지 못하시는데 제가 서울에 갔다가 천자께서 벼 슬을 내리시면 천자의 신하가 되는 것이니 다시 돌아와서 장군을 위해 죽을 수 없게 됩니다."

    "그대가 먼저 가서 살피시오. 내 따로 생각이 있소."

    한숭이 유표와 작별하고 허도로 가서 조조를 만난다. 조조가 한숭을 시중으로 삼고 영릉태수를 맡긴다. 순욱이 말한다.

    "한숭이 동정을 살피러 와서 아직 공훈도 없는데 벼슬을 크게 내리셨습니다. 또한 예형의 소식을 모르는데 승상께서 한숭에게 묻지 않은 건 무슨 까닭입니까?"

    "예형이 나를 태심하게 모욕하므로 유표의 손을 빌려 죽이려했는데 또 물을 필요가 있소?"

    마침내 한숭을 형주로 되돌려보내서 유표를 설득케 한다. 한숭이 유표를 다시 만나서 조정의 성덕을 칭송하고 아들을 보내서 천자를 뵙 도록 권한다. 유표가 크게 노한다.

    "네가 두 마음을 품었냐?"

    베려고하자 한숭이 크게 외친다.

    "장군께서 저를 저버리셨지 저는 장군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괴량이 말한다.

    "한숭이 가기 전 이미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유표가 사면한다.

    황조가 예형을 참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유표가 사연을 물었다. 대답한다.

    "황조가 예형과 함께 음주하다가 둘다 취했습니다. 황조가 예형더러 '그대가 허도에 있어보니 어떤 인물이 있더이까?' 물었습니다. 예형 이 '큰 아이는 공문거, 작은 아이는 양덕조요. 이 둘을 빼고 따로 인물이 없소.'라 했습니다. 황조가 다시 '나를 비교하면 어떻소?'라 하자 '너 따위야 묘당 속 귀신 같으니 비록 제사를 받더라도 아무 영험이 없는 게 안타깝구나!' 라고 예형이 말했습니다. 황조가 크게 노해서 ' 네가 나를 흙이나 나무로 만든 인형으로 여기냐!' 하고서 바로 베었습니다. 예형이 숨이 끊어질 때까지 입에서 욕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유표가 그 죽음을 듣고서 아! 탄식해 마지않고 앵무주 鸚鵡洲 가장자리에 묻게 한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탄식했다.

    황조의 재능이란 뛰어난 이의 짝이 못 돼
    예형이 이 강어귀에서 목을 잃었네
    지금도 앵무주 가장자리를 지나노라면
    오로지 무정한 푸른 물만 흐를 뿐이네

    한편, 조조가 예형의 죽음을 알고서 웃는다.

    "썩은 유생의 혀가 칼 같더니 도리어 자기를 죽였구나!"

    그리고 유표가 투항하지 않았다 해 병력을 일으켜 죄를 물으려 한다. 순욱이 간언한다.

    "원소를 아직 누르지 못하였고 유비도 아직 없애지 못하였는데 강한 江漢 (형주 지역)에 용병하신다면, 심장과 복부를 버리고 손발을 돌 보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먼저 원소를 멸하고서 유표를 멸하시면 강한을 한번에 쓸어서 평정하실 수 있습니다."

    조조가 따른다.

    한편, 현덕이 떠나간 뒤부터 동승이 매일 왕자복 등과 상의하지만 마땅한 계책이 없다. 건안 5년, 새해 첫날에 조정의 하례에서 조조의 교만방자가 더욱 심하자 울분이 치솟아 병이 된다. 황제가 국구가 아픈 걸 알고 조회 뒤에 태의를 보내어 치료한다. 태의는 낙양 출신의 길태 '칭평'이다. 사람들이 길평이라 부르는 당대의 명의다. 길평이 동승의 부중에 가서 약을 쓰고 치료하며 아침저녁으로 자리를 뜨지 않는다. 늘 동승이 길게 아! 하거나 짧게 탄식하는 걸 보면서도 감히 묻지 못한다.

    대보름밤, 길평이 작별하려 하자 동승이 붙잡아서 두 사람이 음주한다. 밤늦도록 마시다 동승이 피곤해서 옷을 입은 채 잠든다. 그런데 왕자복 등 네 사람이 왔다기에 동승이 나가서 맞이해 들인다. 왕자복이 말한다.

    "대사가 이뤄지겠소!"

    "설명해주시오."

    "유표가 원소와 연결해서 50만 대군을 일으켜 10로로 나눠서 쇄도하오. 마등은 한수와 연결해서 서량군 72만을 일으켜 북쪽에서 쇄도 하오. 조조가 허창의 병력을 모조리 일으키고 분산해서 대적하니 성중이 공허하오. 우리 다섯 집안 하인만 모아도 1천여 인이오. 오늘밤 주중에서 큰 연회를 열어 대보름을 경하하는 틈에 부중을 포위하고 돌입해서 죽여야 하오. 이 기회를 놓쳐선 아니 되오!"

    동승이 크게 기뻐하고 즉시 하인들에게 무기를 수습하케 하고 자기도 갑옷을 입고 창을 움켜쥐고 말에 오른다. 내문 앞에 모두 모이기로 약속하고서 동시에 진병한다. 그날밤 2경에 병력이 모두 도착한다. 동승이 손에 보검을 쥐고 곧장 걸어서 들어가 후당에서 연회를 여는 조조를 발견하고서 크게 외친다.

    "조조 역적아! 거기 서라!"

    한칼에 베어버리고 손으로 뒤집는다. 삽시간에 잠이 깨니 바로 남가일몽 南柯一夢인데 입으로 아직도 조조를 욕하고 있다. 길평이 다가와서 외친다.

    "네가 조공을 해치려 하구나!"

    동승이 놀랍고 두려워 답하지 못한다. 길평이 말한다.

    "국구께서 놀라지 마십시오. 제 비록 의생이지만 한나라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날마다 국구께서 탄식하시는 걸 봤으나 감히 묻지 못하였습니다. 마침 꿈을 꾸시다 말씀하시므로 진정을 알게 됐습니다. 행여나 감추지 마십시오. 만약 제가 쓰일 데 있다면 구족이 멸해도 후회가 없겠습니다."

    동승이 얼굴을 가리고 울며 말한다.

    "다만 진심이 아닐까 두렵소."

    길평이 손가락 하나를 깨물어 끊어 맹서로 삼자, 동승이 의대의 조서를 꺼내 보여주며 말한다.

    "지금 내 소망이 이뤄지지 않는 건 바로 유현덕, 마등이 각자 떠나서 쓸 만한 계책이 없어서요. 그래서 근심하다가 병이 됐소."

    "여러 사람이 마음 쓸 필요 없습니다. 조조 역적의 목숨이 단지 제 손에 달렸습니다."

    동승이 까닭을 묻자 길평이 말한다.

    "조조가 늘 두풍(두통발작)을 앓는데 뼛속까지 아프고 한번 발작하면 제게 치료 받습니다. 조만간 조조가 부를 때 독약으로 죽인다면 구태여 창칼을 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럴 수만 있다면야 한나라 사직을 구하는 게 모두 그대에게 달렸소!"

    이에 길평이 작별하고 돌아간다. 동승이 속으로 기뻐하고 후당에 걸어 들어갔는데, 집안의 노비 진경동이 시첩 운영과 함께 몰래 밀어를 나누고 있다. 동승이 크게 노해서 좌우를 불러서 잡아들였다. 죽이려다 부인이 권해서 살려주고 각각 매 40대를 치고서 자물쇠를 잠그어 가둔다. 진경동이 한을 품고 밤이 깊자 자물쇠를 끊고서 담을 넘어 달아난다. 바로 조조의 부중으로 가서 밀고한다. 조조가 밀실로 불러서 묻자 경동이 이른다.

    "왕자복, 오자란, 종집, 오석, 마등 다섯 사람이 집주인의 부중에서 기밀을 상의하는 게 틀림없이 승상을 도모하는 것이옵니다. 집주인이 흰 비단 한 조각을 꺼내던데, 뭔가 대단한 게 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길평이 손가락을 깨물어 맹서하는 것도 봤습니다."

    조조가 진경동을 부중에 숨긴다. 동승이 그가 다른 곳으로 달아난 줄만 알고서 찾지 않는다. 다음날 조조가 두풍을 가장하고서 길평을 불러 투약케 한다. 길평이 스스로 생각한다.

    '이 역적은 이제 끝났다!'

    몰래 독약을 갖고 부중으로 들어간다. 조조가 침대에 누워서 길평더러 투약케 한다. 길평이 말한다.

    "한번 복약하시면 즉시 낫습니다."

    약탕기를 가져오게 해서 조조의 면전에서 다린다. 약이 반쯤 다려지자 길평이 몰래 독약을 넣고서 직접 바친다. 독약을 탄 것을 알고서 조조가 느릿느릿 약을 먹지 않는다. 길평이 말한다.

    "뜨겁게 드셔서 땀이 좀 나야 즉시 낫습니다."

    조조가 일어나며 말한다.

    "너도 경전을 읽어서 예의를 알텐데. '임금께서 병이 나서 약을 드실 때 신하가 먼저 맛본다. 아버지가 아파서 약을 드실 때 아들이 먼저 맛본다.' 하였다. 너는 내 심복인데 어찌 먼저 마신 뒤에 바치지 않냐?"

    "약으로 병을 치료하는데 왜 맛을 봐야겠습니까?"

    길평이 일이 누설된 걸 알고서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서 조조의 귀를 붙잡고서 약을 입에 부워 넣으려 한다. 조조가 약을 밀쳐서 땅에 흩뿌려지자 벽돌이 모두 갈라진다. 조조가 미처 언급하기 전에 이미 좌우에서 길평을 잡아놓았다. 조조가 말한다.

    "내가 아픈 게 아니라 너를 시험해봤을 뿐이다! 네 감히 나를 해칠 마음을 품다니!"

    억센 옥졸 스물을 불러서 길평을 후원으로 끌고가서 고문한다. 조조는 정자 위에 앉고 길평은 묶여서 땅에 엎어져 있다. 길평의 낯빛 이 그대로고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조가 웃는다.

    "너 같은 일개 의생이 어찌 감히 나를 독살하겠냐? 누군가 너에게 사주했을텐데 밝힌다면 용서하겠다."

    길평이 꾸짖는다.

    "네놈이 기군망상하는 역적이라 천하의 모두가 죽이고자 하는데 어찌 나 홀로겠냐!"

    조조가 두번세번 회유한다. 길평이 노한다.

    "내 스스로 죽이려했지, 어찌 남이 시켜서겠냐? 지금 실패했으니 죽을 밖에!"

    조조가 노해서 옥졸에게 몹시 때리게 한다. 두 시진(1시진은 2시간) 동안 통타하자 살갗이 터지고 살덩이가 갈라지고 피가 흘러 계단에 가득하다. 맞아 죽어서 증인으로 못 쓸까 두려워서 조조가 옥졸더러 조용한 데 끌고가서 잠시 멈추게 한다. 다음날 연회를 연다고 전령하고, 대신들을 불러서 음주한다. 오직 동승이 병이 났다고 오지 않았다. 왕자복 등은 모두 조조가 의심할까 두려워서 올 수 밖에 없다. 조조가 후당에서 연회를 베푼다. 술이 몇차례 돌자 말한다.

    "술자리에 음악이 없어서야 되겠소? 내게 한 사람 있는데 여러분 술이 깰 것이오."

    옥졸 스물에게 지시한다.

    "내 앞에 끌고 와라!"

    잠시 뒤 목에 칼을 씌운 길평이 계단 아래 끌려왔다. 조조가 말한다.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이 자는 악당과 연결해 조정을 배반하고 저를 해치려했소. 오늘 하늘의 도움으로 깨뜨렸으니 저놈의 말을 들어보시길 청하오."

    조조가 먼저 한차례 꼬꾸라지도록 매질하게 한다. 길평이 매를 맞고 혼절해서 쓰러지자 그 얼굴에 물을 뿜는다. 길평이 깨어나서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며 욕한다.

    "조조 역적아! 나를 죽이지 않고서 언제까지 기다릴테냐?"

    "공모자가 원래 여섯인데 너까지 일곱 뿐이냐?"

    길평이 대답 않고 크게 욕만 한다. 왕자복 등 넷이 서로 눈치를 보며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듯하다. 조조가 한편으로 때리고, 한편으로 물을 붓게 한다. 그러나 길평은 결코 용서를 빌지 않는다. 조조가 길평이 흔들리지 않자 끌고가도록 지시한다.

    여러 관리가 흩어지는데 조조가 왕자복 등 넷만 남겨서 야간에 연회를 베풀겠다 한다. 넷이 넋이 나간 채 머물러서 기다릴 뿐이다. 조조가 말한다.

    "원래 머물게 하려 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물을 일이 생겼소. 그대들 넷은 동승과 무엇을 상의했는지 모르오?"

    왕자복이 말한다.

    "별다른 일을 상의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흰 비단에 무엇이라 적혔소?"

    왕자복 등 모두 숨기고 감추자 조조가 진경동을 불러서 대질케 한다. 왕자복이 말한다.

    "네가 어디서 봤냐?"

    진경동이 말한다.

    "너희가 사람들 눈을 피해서 여섯이 한 곳에서 서명해놓고서 어찌 발뺌하냐?"

    왕자복이 말한다.

    "이 도적놈이 국구의 시첩과 간통하고서 혼나자 주인을 무고하는 것이니 믿어선 안 됩니다."

    조조가 말한다.

    "길평이 독살을 꾀한 게 동승이 시킨 게 아니면 누구겠냐?"

    왕자복 등이 모두 모른다 이야기하자 조조가 말한다.

    "오늘 저녁 자수하면 아직 용서할 수 있지만 만약 일이 밝혀지기를 기다린다면 그때는 진실로 용서하기 어렵다!"

    왕자복 등이 모두 결코 그런 일이 없다 말한다. 조조가 좌우 장수들에게 소리쳐서 넷을 붙잡아 가두게 한다. 다음날 무리를 이끌고 동승 의 집으로 가서 문병한다. 동승이 나와서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조조가 말한다.

    "어째서 밤에 연회에 오지 않았소?"

    "좀 아픈 게 아직 낫지 않아 쉽게 나갈 수 없었습니다."

    "국가를 걱정하는 병일테지요."

    동승이 악! 놀란다. 조조가 말한다.

    "국구께서 길평의 일을 아시오?"

    "모릅니다."

    조조가 비웃는다.

    "국구께서 어째서 모르시오?"

    좌우를 부른다.

    "그자를 끌고 와서 국구의 병을 치료케 하라."

    동승이 어찌할 바를 모른다.

    잠시 뒤 옥졸 스무 명이 길평을 계단 아래 끌고 온다. 길평이 크게 "조조 역적아!"라고 욕한다. 조조가 가리키며 동승에게 말한다.

    "이 자가 이미 왕자복 등 넷과 연루됐기에, 내 이미 정위에게 잡아 가두게 했소. 아직 한 명이 남았는데 아직 못 잡았소."

    길평에게 묻는다.

    "누가 너더러 나를 독살하라더냐? 어서 자백하라!"

    "하늘이 나더러 역적을 죽이라 하였다!"

    조조가 노해서 때리라 지시한다. 길평의 몸뚱아리 어디 성한 데가 없다. 동승이 앉아서 살피고서 가슴이 칼로 베이듯하다. 조조가 다시 길평에게 묻는다.

    "네 원래 열 손가락일텐데 지금 어째서 아홉 개뿐이냐?"

    "잘라서 맹서했으니, 나라의 역적을 죽이겠다 맹서했다!"

    조조가 칼을 가져와서 계단 아래에서 나머지 아홉 손가락도 잘라버리라 지시하고 말한다.

    "모조리 잘라버렸으니 네가 맹서해봐라!"

    "아직 입이 있으니 역적을 씹어삼킬 수 있고 혀가 있으니 역적을 욕할 수 있다."

    조조가 혀를 베어내라 하자 길평이 말한다.

    "손을 멈추라! 내 지금 형벌을 참아내지 못해 자백해야겠다. 결박을 풀어달라."

    조조가 말한다.

    "푸는 게 어찌 어렵겠냐?"

    결박을 풀라 명한다. 길평이 일어나서 궁궐 쪽으로 절한다.

    "신이 나라를 위해 역적을 제거치 못한 것도 바로 하늘의 뜻입니다!"

    절을 마치고 계단에 스스로 부딪혀서 죽는다. 조조가 그 지체 肢體를 토막내서 호령(범죄자를 죽여서 시체를 공개하는 것)케 한다. 이때 가 건안 5년 정월이다. 사관이 시를 남겼다.

    한나라 나아질 기미 없는데 나라에 길평이란 의생 있어서
    간당 제거를 맹서하고 목숨 바쳐 천자께 보답하려 하네
    극형에도 언사는 더욱 맵고 참혹히 죽어도 기개는 살아서
    열 손가락 뚝뚝 끊어져도 영원히 남다른 이름 우러르리라

    길평이 이미 죽은 걸 보고 조조가 좌우더러 진경동을 면전에 끌어내도록 한다. 조조가 말한다.

    "국구께서 이 자를 아시오? 모르시오?"

    동승이 크게 노한다.

    "도망간 종놈이 여기 있구나! 즉시 주살해야 하오!"

    "이 자가 모반을 신고해서 지금 대질하거늘 누가 감히 주살한단 말이냐?"

    "승상께서 어찌 도망간 종놈의 말만 들으시오?"

    "왕자복 등 다섯을 이미 잡아서 모두 자백하고 대질했는데 너는 아직도 부인하냐?"

    즉시 좌우를 불러서 체포케 하고, 종자들더러 동승의 침실에 난입해서 의대의 조서와 아울러 의장 義狀을 수색해서 가져오게 한다. 조조 가 흝어보고서 웃는다.

    "쥐새끼들이 어찌 감히 이러냐!"

    명령한다.

    "동승 집안은 귀천을 불문하고 모조리 감금해서 한놈도 놓치지마라."

    조조가 부중으로 돌아와서 조서와 의장을 보여주고 여러 모사와 함께 헌제를 폐하고 새 임금을 옹립할 걸 상의한다.

    피로 쓴 조서 거듭해도 이룬 게 허망하고
    한 조각 맹서의 문서, 재앙을 부르구나

    헌제의 목숨이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