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제24회 국가의 역적이 동귀비를 흉악하게 죽이고 유황숙이 패주하여 원소를 찾아간다
한편, 조조가 의대의 조서를 보고서 여러 모사와 상의해서 헌제를 폐하고 다시 덕 있는 자를 골라서 옹립하려 한다. 정욱이 간한다.
"명공께서 위세가 사방에 진동하고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건, 한나라 천자를 받든다는 명분 때문입니다. 지금 제후들이 평정되지 않았 는데 서둘러 폐립하시면 반드시 전쟁의 단서가 됩니다."
조조가 이에 중지한다. 동승 등 다섯 사람과 그들의 전가족을 성문마다 끌고가서 처형한다. 죽은 사람이 모두 7백여 인이다. 성중의 관민 이 보고서 눈물 흘리지 않는 이 없다. 뒷날 시를 지어 동승을 기렸다.
밀조를 넣어 의대를 주니
천자의 말씀, 금문을 나서네
예전에 천자의 수레를 구하더니
이날 다시 성은을 입었다
우국충정으로 병이 나서
간당 제거를 꿈에서도 바랐다
충성과 절개 영원히 남을테니
성패야 누가 다시 논하리오
다시 왕자복 등 네 사람을 기렸다.
흰 비단에 서명해서 충성을 맹서하고
비분강개해 임금의 복수를 생각했네
충��을 다했건만 가련하게 멸족되니
한 조각 붉은 마음 천추를 가리라
한편, 조조가 동승 등의 무리를 죽이고도 노기가 풀리지 않아서 검을 차고서 입궁해 동 귀비를 죽이려 한다. 동 귀비는 바로 동승의 누 이동생으로 황제가 사랑해 벌써 임신 5개월이었다. 그날 황제가 후궁에서 한창 복 황후와 함께 동승의 일을 밀담하고 있었지만, 여태 아무 소식을 못 들었다. 갑자기 조조가 검을 차고 입궁하는데 성난 얼굴이라 황제가 크게 놀라 창백해진다. 조조가 말한다.
"동승이 모반했는데 폐하께서 모르셨습니까?"
"동탁은 이미 처형되지 않았소?"
조조가 고함 지른다.
"동탁이 아닙니다! 동승 말입니다!"
황제가 벌벌 떤다.
"짐은 정말 몰랐소."
"손가락을 상처내어 조서를 쓰신 걸 잊으셨습니까?"
황제가 답하지 못한다. 조조가 소리쳐서 무사들이 동 귀비를 잡아서 끌고온다. 황제가 사정한다.
"동 귀비는 잉태한지 다섯 달이니 승상께서 가엾게 여겨주시오."
"천패 天敗(하늘이 적이나 음모 따위를 무찌름)가 아니었다면 제가 벌써 죽었습니다. 어찌 이 여자를 남겨서 후환을 만들겠습니까?"
복 태후가 사정한다.
"궁궐에 유폐해서 출산한 뒤 죽여도 늦지 않소."
"역적의 씨앗을 남겨서 모친의 복수라도 시키고 싶습니까?"
동 귀비가 울며 하소연한다.
"시신을 훼손치 말아주오. 제발 시신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마오."
조조가 흰 비단을 바로 앞에 가져오게 한다. 황제가 동 귀비에게 울며 말한다.
"그대가 구천에 가더라도 짐을 원망치 마오!"
말을 마치고 눈물이 비오듯하다. 복 태후도 통곡한다. 조조가 노해서 말한다.
"꼭 하는 짓이 계집아이 같구나!"
무사들에게 소리쳐서 동 귀비를 끌어내고 궁문 밖에서 목졸라 죽인다. 뒷날 시를 지어 동 귀비를 기렸다.
춘전에서 성은을 입은 것도 헛되구나
애처롭다! 뱃속의 용종 龍種도 같이 죽었다
당당한 황제라도 구하기 어려워서
얼굴을 가리고 눈물만 샘솟듯했네
조조가 감궁관 (궁정 감독관)에게 지시한다.
"이제부터 외척이나 종친이라도 내 지시 없이 함부로 입궁하면 참하라. 엄중히 지키지 못해도 똑 같이 처벌하겠다."
또한 심복 3천으로 어림군(황제 친위대)을 채워서 조홍이 통솔해서 지키게 한다. 조조가 정욱에게 말한다.
"지금 동승 등을 죽였지만 아직 공모자 마등, 유비가 남았으니 없애야겠소."
정욱이 말한다.
"마등이 서량에 주둔해서 아직 가볍게 취할 수 없습니다. 서찰을 보내서 구슬리고 의심치 않게 하고서 서울로 유인해서 도모해야 합니다 . 유비는 현재 서주에서 기각지세로 포진해서 역시 가볍게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지금 원소가 관도에 주둔하고 늘 허도의 심장을 겨누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단 동쪽을 정벌하면 유비 세력은 반드시 원소에게 구원을 요청할 겁니다. 원소가 빈 틈을 노려서 내습한다면 어떻게 감당하시겠습니까?"
조조가 말한다.
"아니오. 유비는 인걸 人傑이오. 지금 격파하지 않아서 날개가 달린다면 도모하기 몹시 어렵소. 원소가 강하다지만 일처리에 의심을 품 고 결단치 못하는데 어찌 걱정하겠소?"
한창 의논하는데 곽가가 밖에서 들어온다. 조조가 묻는다.
"동쪽으로 유비를 정벌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원소가 걱정되니 어째야겠소?"
곽가가 말한다.
"원소는 성질이 주저하고 의심이 많고 모사끼리 서로 시기하니 걱정할 게 못 됩니다. 유비는 새로 군을 정비해 그 무리가 마음으로 따르는 건 아니니 승상께서 병력을 이끌고 동쪽을 정벌하시면 한번 싸워서 평정하실 수 있습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해 말한다.
"내 뜻에 바로 맞소."
20만 대군을 일으켜서 5로로 나눠서 서주로 진군한다.
세작 細作(첩자)이 탐지해서 서주로 들어가서 보고한다. 손건이 먼저 하비로 가서 관공에게 알리고 이어서 소패로 가서 현덕에게 알린 다. 현덕이 손건과 의논하며 말한다.
"이것은 반드시 원소에게 구원을 요청해야 풀 수 있을 것이오."
이에 현덕이 서찰 1 봉을 다듬고 손건에게 줘서 하북으로 보낸다. 손건이 먼저 전풍을 만나서 자세히 말하고 추천을 구한다.
전풍이 즉시 손건을 원소에게 데리고 들어가서 서신을 바친다. 그런데 원소의 모습이 초췌하고 차림새가 흐트러져 있다. 전풍이 말한다.
"오늘 주공께서 어째서 이런 모습이십니까?"
"내게 아들이 다섯인데 오로지 막내가 내 마음에 아주 흡족했소. 지금 개창 疥瘡 (옴 같은 피부병)을 앓아서 목숨이 위급하오. 내 무슨 마음으로 다른 일을 논하겠소?"
"지금 조조가 동쪽으로 현덕을 정벌해 허창이 공허하니 의로운 군대로써 빈틈을 쳐들어가면 위로 천자를 지키고 아래로 만민을 구할 수 있습니다. 쉽게 얻을 수 없는 기회이니 오로지 명공께서 결단하셔야 합니다."
"나도 이 기회가 최고라는 걸 알지만 아무래도 내 마음이 황홀(여기선 '멍하다'의 뜻)해서 이롭지 못할까 두렵소."
"무엇이 황홀하십니까?"
"다섯 아들 가운데 오로지 이 아들이 가장 기특한데 만약 잘못되기라도 하면 내 목숨이 끊어질 것이오."
결국 출병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손건에게 이른다.
"너는 현덕에게 돌아가서 사정을 말하라. 현덕이 뜻대로 안 돼서 이리 넘어온다면 내가 돕겠다."
전풍이 지팡이로 땅을 치며 말한다.
"이토록 얻기 어려운 기회를 만나고도 젖먹이의 병 때문에 놓친다면 대사를 그르칩니다. 애통하고 애석합니다!"
발을 동동 구르고 길게 탄식하며 나간다.
원소가 출병치 않으려 하자 손건이 할 수 없이 그날밤 소패로 돌아가서 현덕에게 이 일을 모두 말한다. 현덕이 크게 놀란다.
"이렇다면 어째야겠냐?"
장비가 말한다.
"형장께서 걱정 마시오. 조조 병력이 멀리 와서 피곤할테니 그들이 막 도착한 것을 노려서 먼저 영채를 기습하면 조조를 격파할 수 있소."
"평소 너를 한낱 용사로만 여겼다만, 지난 번에 유대를 잡을 때 제법 계책을 쓰더라. 지금 바치는 계책도 병법에 맞구나."
이에 그 말을 따라서 병력을 나눠서 영채를 기습하려 한다.
한편, 조조가 군을 이끌고 소패로 온다. 한창 행군하는데, 광풍이 거세게 불어대고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크게 나더니 아기 牙旗 (끝을 상아로 장식한 큰 깃발) 하나가 바람에 부러진다. 조조가 행군을 멈추고 여러 모사를 모아서 길흉을 묻는다. 순욱이 말한다.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어왔습니까? 무슨 색깔 깃발이 부러졌습니까?"
"동남쪽에서 불어와서 귀퉁이의 아기를 꺾었는데, 색깔은 청색, 홍색 두 가지요. "
"별 다른 징조가 아니라 오늘밤 유비가 틀림없이 영채를 기습하러 올 겁니다."
조조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모개가 들어와서 말한다.
"마침 동남쪽에서 바람이 일어서 청홍색 아기 하나를 꺾었는데 주공께서 길흉을 어떻게 내다보십니까?"
"그대 의견은 어떻소?"
"제 어리석은 의견은, 오늘밤 분명 누군가 영채를 기습하러 온다고 알려주는 겁니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탄식했다.
애통하다! 황제의 후예, 세력이 곤궁해
몽땅 병력을 나눠서 영채를 공격하구나
그러나 상아깃발 꺾여서 미리 알려주니
하늘은 어째서 간악한 영웅을 따르는가
조조가 말한다.
"하늘이 내게 보답하는구나. 즉시 방비해야겠소."
병력을 아홉 부대로 나눠서 단지 한 부대만 남기고 먼저 영채를 비우고서 나머지 무리는 모두 여덟 방면으로 매복한다. 이날밤 달빛 이 희미하다. 현덕이 좌측에, 장비가 우측에, 두 부대로 나눠서 출발한다. 손건만 남겨서 소패를 지키게 한다.
한편, 장비 스스로 계책이 성공했다 여기고서 경기병을 앞세우고 조조 영채로 돌입한다. 그러나 드문드문 많지 않은 인마가 있을 뿐인데 사방에서 불빛이 크게 일고 함성이 일제히 울린다. 계략에 빠진 걸 알고서 장비가 영채 밖으로 급히 나간다. 정동쪽 장요, 정서쪽 허저, 정남쪽 우금, 정북쪽 이전, 동남쪽 서황, 서남쪽 악진, 동북쪽 하후돈, 서북쪽 하후연, 여덟 군데에서 군마가 쇄도한다. 장비가 좌충우돌, 이리저리 앞뒤로 치고받는다. 거느린 병사들이 원래 조조의 옛 병사들이라 사세가 위급하자 모조리 투항해버린다.
장비가 한창 싸우는데 앞에서 서황이 한바탕 무찔러 오고 뒤에서 악진이 추격한다. 장비가 한가닥 혈로를 뚫고 포위를 돌파해서 단지 수 십 기만 거느리고 소패로 돌아가려 하지만 퇴로가 끊겼다. 서주, 하비로 가려고도 하지만 조조군이 끊어놓았을까 두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길이 없자 망탕산 쪽으로 달아난다.
한편, 현덕이 군을 이끌고 영채를 덮치는데 영채 문에 접근하자 함성이 크게 일어난다. 뒤에서 1군이 튀어나와 먼저 인마 절반을 꺾는다. 하후돈도 쇄도한다. 현덕이 포위를 뚫고 달아나지만 이제 하후연이 뒤쫓는다. 현덕이 고개 돌려보니 겨우 30 기만 수행한다. 서둘러 소 패로 달아나려 하지만 벌써 소패성 안에 불길이 치솟자 소패를 포기하고 서주, 하비 쪽으로 가려 한다. 그러나 조조군이 산과 들을 가득 메워 퇴로를 막아섰다. 현덕이 돌아갈 길이 없자 원소의 '뜻대로 안 되면 넘어오시오.'란 말을 떠올린다. 지금 잠시 몸을 맡긴 뒤 따로 좋은 꾀를 내려한다. 결국 청주 쪽으로 달아나지만 바로 이전이 막아선다. 현덕이 홀로 황야로 빠져나가 북쪽으로 도주하는데 이전이 다른 병사들을 쫓느라 지나친다.
한편 현덕이 홀로 청주 쪽으로 하루 300 리를 달린 끝에 청주성 아래에서 문을 열라 외친다. 문지기가 성명을 묻고서 자사(감찰관)에게 보고한다. 자사가 바로 원소의 맏아들 원담이다. 원담이 평소 현덕을 존경하다가 홀로 온 걸 알고서 즉시 문을 열어 맞이한다. 공해 公廨 (관청 건물) 안으로 들여서 사연을 상세히 묻자, 현덕이 패전하고 넘어오는 뜻을 자세히 말한다. 원담이 이에 현덕을 역관에 머물게 하 고서 서찰을 보내서 아버지 원소에게 보고한다. 한편으로 휘하 병력을 내어서 현덕을 호위해서 보낸다. 평원 입구에 다다르자 원소가 몸소 무리를 이끌고 업소 鄴邵 30리 밖까지 나와서 현덕을 영접한다. 현덕이 절을 올려 사례하자 원소가 황망히 답례하며 말한다.
"지난번에 어린애가 앓아서 구원할 기회를 놓치고서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했소. 이제 다행히 만났으니 평생 한이 될 뻔한 게 크게 위로 가 되오."
"곤궁한 유비가 오래전부터 넘어오고자 하였으나 어쩐 일인지 기회가 닿지 않더니 이제 조조에게 공격받아 처자식도 모두 버려졌습니다 . 장군께서 사방의 인재를 받아들이시는 걸 떠올리고서 몹시 부끄러운 걸 무릅쓰고 곧장 왔습니다. 거둬주시기를 간청하오니 마땅히 은 혜를 갚아드릴 걸 맹서합니다."
원소가 크게 기뻐하고 매우 후대해서 함께 기주에 머물게 한다.
한편, 조조가 그날밤 소패를 취하고서 즉시 서주로 진격한다. 미축, 간옹이 막아내지 못하고 성을 포기하고 달아난다. 진등이 서주를 바 친다. 조조 대군이 입성해서 백성을 안심시키고 여러 모사를 모아서 하비성을 취할 방도를 상의한다. 순욱이 말한다.
"운장이 현덕의 식구를 보호해서 하비성을 사수할 겁니다. 속히 취하지 않으면 원소가 노릴까 두렵습니다."
"내 평소 운장이 무예가 뛰어난 인재인 걸 아껴서 그를 얻어서 쓰고 싶었소. 사람을 시켜서 투항을 설득하는 게 낫겠소."
곽가가 말한다.
"운장은 의기가 깊고 무거워서 틀림없이 항복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보내서 설득하다가 운장이 해칠까 두렵습니다."
장막 아래 한 사람이 나오며 말한다.
"제가 관공과 좀 아는데 가서 설득하겠습니다."
모두 바라보니 바로 장요다. 정욱이 말한다.
"문원이 비록 운장과 알고 지냈다지만, 그를 살펴보면 말로 설득될 사람이 아닙니다. 제게 계책이 하나 있습니다. 그를 오갈 길 없게 만든 뒤 문원을 시켜서 설득한다면 그가 반드시 승상께 넘어올 겁니다."
와궁을 놓아서 맹호를 쏘고 좋은 미끼로 큰 물고기를 잡는구나
그 계책이 어떨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