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제38회 공명이 융중에서 천하를 삼분할 계책을 정하고 손씨가 장강에서 원수를 갚는다
한편 현덕이 공명을 찾아가 두번이나 못 만나 다시 찾아가 만나려 하자 관공이 말한다.
"형장께서 두번이나 몸소 배알하러 찾아가니 예의가 너무 지나치오. 생각하면, 제갈량은 헛된 명성만 있을 뿐 실제 학문은 없어 일부러 피해 감히 만나지 못하는 것이오. 형께서 어찌 보잘것 없는 자에게 미혹되시는 게 이렇게 심하시오?"
"그렇지 않다. 예전에 제나라 환공이 동곽 東郭의 야인 野人을 만나려 해도 다섯번이나 되돌아오고서야 한번 만날 수 있었다. 하물며 내 가 대현 大賢을 만나려 하는데야!"
장비가 말한다.
"형님 틀렸수! 그깟 촌뜨기가 어찌 대현이겠수? 이번에 형님이 가실 것 없이, 그자가 안 오면 내가 삼노끈으로 꽁꽁 묶어 오겠수다!"
현덕이 꾸짖는다.
"너희가 주나라 문왕이 강자아를 만난 일을 듣지 못했냐? 문왕조차도 그렇게 현자를 공경하는데 너희가 어찌 이렇게 무례하냐! 이번에 너는 가지 마라. 내가 운장과 함께 가겠다."
"두 형님이 모두 가시는데 아우가 어찌 뒤에 남겼수?"
"네가 같이 갈 것이면 예를 잃지 말아라."
장비가 응낙한다. 이에 세 사람이 말을 타고 융중으로 간다. 초가집에서 반 리쯤 떨어진 곳에서 현덕이 말에서 내려 걷다 마침 제갈균을 만난다. 현덕이 황망히 인사해 묻는다.
"오늘 형께서 집에 계시지 않습니까?"
"어제 저녁 막 돌아왔습니다. 장군께서 오늘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말을 마쳐 훌훌 떠나간다. 현덕이 말한다.
"이번에 요행히 선생을 만나게 됐구나!"
장비가 말한다.
"저자가 무례하오! 우리를 안내해 집으로 데려가도 괜찮지 않수! 무슨 까닭으로 자기 혼자 가버린단 말이우!"
"각자 사정이 있을텐데 어찌 억지로 하겠냐?"
세 사람이 집앞에 이르러 문을 두들겨 동자가 문을 열고 나와 물어 현덕이 말한다.
"수고스럽겠다만 선동 仙童 (신선을 모시는 동자)이 선생께 가서, 유비가 선생을 만나뵈러 일부러 찾아왔다 말씀드려라."
"오늘 선생께서 비록 집에 계시나 이제 초당 위에서 낮잠을 주무셔 아직 깨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잠시 통보를 멈춰라."
관, 장 두 사람에게, 문앞에서 기다리게 분부한다. 현덕이 천천히 걸어 들어가 바라보니 선생은 돗자리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다. 현덕이 두손 모아 섬돌 아래 선다.
한동안 선생이 잠에서 안 깬다. 관, 장이 밖에서 오래 서 있어 동정을 살필 수 없어 들어가 현덕을 바라보니 여태 지켜 서 있다. 장비가 크 게 노해 운장에게 이른다.
"저놈의 선생이 어찌 저렇게 오만하다 말이우! 보자니까 형님께서 섬돌 아래 지켜 서 계시고 그자는 높이 베고 누워 계속 자면서 일어나 지 않는구려! 우리가 밖으로 나가며 불을 확 질러 그자가 일어나나 안 일어나나 한번 봅시다!"
운장이 거듭 말려 멈춘다. 현덕이 다시 두 사람에게 문밖으로 나가 기다리라 명한다. 초당 위를 올려다보니 선생이 몸을 돌려 일어나는가 싶더니 다시 벽을 보고 잠이 든다. 동자가 알리려 하자 현덕이 말한다.
"놀라게 해선 안 된다."
다시 한 시진 時辰 (오늘날 2시간)을 더 서서 기다려서야 공명이 깨어나 시를 읊는다.
큰 꿈을 누가 먼저 깨울까? 평소 내 스스로 알았네.
초당에서 봄꿈은 족하고 창밖 해는 느릿느릿하구나.
공명이 읊고나서 몸을 돌려 동자에게 묻는다.
"속객 俗客 이 찾아오지 않았냐?"
"유황숙께서 오셔서 서서 기다리신 지 오랩니다."
이에 공명이 몸을 일으켜 말한다.
"어째서 어서 알리지 않았냐! 일단 옷을 갈아 입어야겠구나."
후당으로 들어가 다시 한참 지나서야 옷과 갓을 차려 나와 맞이한다. 현덕이 바라보니 공명은 키가 8척이요 얼굴은 관옥 같고 머리에 윤건을 쓰고 몸에 학창의를 입어 표표한 게 신선의 기개가 풍긴다. 현덕이 허리 굽혀 인사해 말한다.
"한실의 보잘것없는 후예, 탁군의 어리석은 자가 오래전부터 선생의 큰 명성을 우레처럼 들어왔습니다. 예전에 두 차례 찾아와 만나뵈려 했으나 만나지 못해 벌써 몇자 글을 남겼는데 아직 읽어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남양의 야인이고 천성이 게으르고 제멋대로입니다. 장군께서 거듭 왕림해주시니 몹시 부끄러워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예를 갖춰 인사하고 손님과 주인 자리로 나눠 앉는다. 동자가 차를 바친다. 차를 마시고 공명이 말한다.
"지난번에 남기신 글의 뜻을 살피오니, 장군께서 백성과 나라를 걱정하시는 마음을 알고도 남았습니다. 다만 제가 어리고 재주가 모자라 잘못 물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마덕조나 서원직의 말이 어찌 허튼 이야기이겠습니까? 저를 비천하다 버리지 마시고 아무쪼록 가르침을 내려주시기 바라옵니다."
"사마덕조나 서원직은 당세의 뛰어난 선비입니다. 저는 밭이나 가는 농부일 뿐이니 어찌 천하의 일을 이야기하겠습니까? 두분께서 잘못 천거하셨습니다. 장군께서 어찌 미옥 (아름다운 구슬)을 버려 완석(쓸모없는 돌)을 구하십니까?"
"대장부가 경세기재(세상을 다스릴 남다른 재주)를 갖고서 어찌 임천 林泉 (수풀과 샘. 숨��지내는 삶을 비유) 속에서 헛되이 늙어가겠 습니까? 바라건대 선생께서 천하창생 (천하의 모든 사람)을 생각하셔 저의 우둔함을 깨우쳐 구해주시기 바랍니다."
공명이 웃는다.
"장군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
"한실이 기울고 무너지고 간신이 국가권력을 빼앗습니다. 제가 제 힘을 헤아리지 못한 채 천하에 대의를 펴기를 바라나 지혜와 책략이 얕고 짧아 결국 아무 것도 이룬 게 없습니다. 선생께서 저의 우매함을 깨우쳐 재앙에서 건져주신다면 참으로 만번 다행이겠습니다."
공명이 말한다.
"동탁이 반역한 뒤부터 천하의 호걸들이 우르르 일어났습니다. 조조는 세력이 원소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마침내 원소를 이긴 것은 오로 지 하늘이 도와서만이 아니라 책략에서 이긴 까닭도 있습니다. 이제 조조가 벌써 백만의 무리를 가진데다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니 이것은 참으로 더불어 창칼을 겨눌 수 없습니다. 손권은 강동을 점거한 지 벌써 3대에 이르고 나라는 험준하고 백성이 따르니 이것은 그 가 나를 돕게 할 것이지 그를 도모해서는 안 됩니다.
형주는 북으로 한 漢, 멱 沔의 두 강물이 있어 남쪽 바다에 이르는 이익을 모조리 가지고, 동쪽으로 오군 吳郡 및 회계군과 잇닿고, 서쪽 으로 파촉 지방과 통하니 이것은 용무지지 用武之地 (전쟁하기 좋은 땅)이지 주인이 능히 지킬 곳은 아닙니다. 이것은 하늘이 장군께 내 린 것이나 마찬가진데 장군께서 어찌 버리실 수 있겠습니까?
익주 益州는 지형이 험준해 지키기 쉽고 옥야천리 沃野千里 (기름지고 매우 넓은 땅)라 천부지국 天府之國 (하늘이 내린 땅)입니다. 거 기서 기반해 고조 황제께서 제업 帝業을 이루셨습니다. 오늘날 유장 劉璋이 어리석고 흐립니다. 민은국부 民殷國富 (백성은 충실하고 나 라는 부유함)하지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지능지사 智能之士 (지식과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밝은 군주를 바라고 있습니다.
장군께서 황실의 후예이신데다 신의가 사해에 현저하고 영웅들을 거느리고 어진이를 생각하시기를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하십니 다. 만약 형주와 익주를 얻는다면 그 험난한 땅을 지키고 서융의 오랑캐들과 화친하고 남쪽으로 이월 彝越의 오랑캐들을 달래고 바깥으 로 손권과 맺고, 안으로 정리 政理 (정치)를 갈고 닦아야 합니다.
천하의 변고를 기다려 즉시 뛰어난 장수에게 명해 형주의 병력을 거느려 완락 宛洛 (오늘날 남양과 낙양)으로 향하게 합니다. 장군께서 몸소 익주의 대군을 거느려 진천 秦川 (오늘날 섬서성과 감숙성)으로 나가시면 백성들 가운데 밥을 싸들고 나와 장군을 맞이하지 않을 이 있겠습니까? 참으로 이와 같다면 가히 대업을 이뤄 가히 한실을 중흥하게 됩니다. 이것이 제가 장군을 위해 꾀하는 것입니다. 장군께 서 이것을 도모하십시오."
말을 마쳐 동자에게 명해 책 한 두루마리를 꺼내와 중당 中堂에 걸어 현덕에게 가리켜 말한다.
"이것이 서천 西川 54주의 지도입니다. 장군께서 패업을 이루시려면 북으로 조조에게 천시 天時를 가지도록 양보하고, 남으로 손권에게 지리 地利를 가지도록 양보해, 장군께서는 가히 인화 人和를 가져야 합니다. 먼저 형주를 취해 내 집으로 만든 뒤 즉시 서천을 취해 토대 를 세워 정족지세 鼎足之勢 (옛날 솥의 세다리처럼 각각의 세력이 팽팽함)를 이뤄야 가히 중원을 도모할 만합니다."
현덕이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손을 모아 사례해 말한다.
"선생의 말씀으로 돈개모색 頓開茅塞 (갑자기 크게 깨우침)하니 구름과 안개가 걷혀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형주의 유표나 익주의 유장이 모두 한실의 종친이라 제가 어찌 차마 뻬앗겠습니까? "
"제가 밤에 천상 天象을 살피니 유표는 오래지 않아 세상을 뜹니다. 유장은 대업을 이룰 군주가 아닌지라 결국 장군께 넘어오고야 맙니 다."
현덕이 듣고서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려 사례한다. 이 자리의 이야기는 바로 공명이 초가집을 떠나기 전에 벌써 천하를 셋으로 나눌 것을 안 것이니 참으로 만고에 걸쳐 아무도 따르지 못할 것이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렸다.
유예주 당시 고궁한 걸 한탄하는데
다행히 남양에 와룡선생 있었네
언제 정족지세를 이룰지 알고 싶거늘
선생은 웃기만 하며 지도를 가리키네
현덕이 절해 공명에게 청한다.
"제가 비록 명성도 미미하고 덕도 박하지만 바라건대 선생께서 비천한 저를 버리지 않고 산을 나와 도와 주십시오."
"저는 오랫동안 밭갈고 김매기를 즐기고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몰라 능히 명을 받들지 못합니다."
현덕이 눈물흘려 말한다.
"선생께서 나오지 않으시면 창생 (백성)은 어찌합니까?"
말을 마쳐 눈물이 옷소매를 적셔 옷깃이 온통 젖는다. 공명이 그 뜻이 지극한 것을 보고 말한다.
"장군께서 버리시지 않으신다면 바라건대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현덕이 크게 기뻐하며 명을 내려 관, 장이 들어와 절하고 금과 비단을 예물로 바친다. 공명이 고사해 받지 않자 현덕이 말한다.
"이것은 대현을 초빙하는 예물이 아니라 다만 유비의 촌심 寸心을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
공명이 그제서야 받는다. 이에 현덕이 그 집에서 함께 하룻밤 묵는다. 이튿날 제갈균이 돌아와 공명이 부탁한다.
"내가 유황숙의 은혜를 받아 나가지 않을 수 없겠다. 너는 여기서 가히 농사를 짓되 절대 논밭을 버려 거칠게 하지 말라. 내가 뜻을 이룬 뒤 여기 되돌아와 은거하겠다. "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렸다.
그몸이 날아오르기 앞서 물러남을 생각했으니
뜻을 이뤘으면 그때 말씀을 잊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선주께서 돌아가시며 간절히 부탁한 뒤
별은 떨어지고 가을바람은 쓸쓸하던 오장원!
다시 고풍 古風 한 편으로 기렸다.
고조께서 눈처럼 하얀 칼 빼어들고
망탕에서 흰 뱀 베어내 피가 흐르네
진과 초를 멸해서 함양에 들어가나
이백년 전 거의 왕업 끊어질 뻔하네
크도다! 광무께서 낙양을 중흥하나
환제 영제 이르러 무너져 갈라지네
헌제께서 천도해 허창으로 가지만
줄줄이 사해에서 호걸들 일어나네
조조가 권력을 장악해 천시를 얻고
강동에서 손 씨는 홍업을 여는데
고궁한 현덕은 천하를 떠돌아 다녀
홀로 신야성에서 백성을 걱정하네
남양의 와룡선생이 커다란 뜻 가져
웅대한 전략 품고 병법에 능통하네
서서가 현덕을 떠나가며 말을 남겨
초가집을 세번 찾아온 마음을 아네
선생이 이때 나이 스물일곱 살인데
거문고와 책을 챙겨 논밭을 떠나네
먼저 형주를 취한 뒤에 서천을 취해
경륜을 크게 펼쳐 세상을 바꾸리라
종횡무진! 세치 혀에 풍뢰가 일고
담소하지만 속으로 우주를 바꾸네
용양호시! 천지사방을 안정시키니
만고천추 그 이름 바래지 않으리라
현덕 등 세 사람이 제갈균과 작별해 공명과 더불어 함께 신야로 돌아간다. 현덕이 공명을 스승같이 대해 같은 식탁에서 먹고 같은 침상 에서 자며 하루내내 천하의 일들을 함께 의논한다. 공명이 말한다.
"조조가 기주에서 현무지를 만들어 수군을 조련하니 필시 강남을 침범할 뜻을 가졌습니다. 몰래 사람을 장강 너머로 보내 허실을 정탐해 야 합니다."
현덕이 그 말을 따라 사람을 강동으로 보내 정탐시킨다.
한편, 손권이 손책의 사후, 강동에 뿌리박아 부형의 기업을 이어받아 널리 현사를 받아들이고 오회에 빈관을 열어 고옹과 장굉을 시켜서 사방의 빈객을 접견케 한다. 해마다 너도나도 추천한다. 당시에,
회계 출신의 감택 '덕윤'
팽성 출신의 엄준 '만재'
패현 출신의 설종 '경문'
여남 출신의 정병 '덕조'
오군 출신의 주환 '휴목', 육적 '공기'
오인 출신의 장온 '혜서'
회계 출신의 능통 '공속'
오정 출신의 오찬 '공휴'
이들이 모두 강동으로 온다. 손권이 그들을 공경하는 예의가 몹시 후했다. 게다가 뛰어난 장수를 몇몇 얻는다. 바로,
여양 출신의 여몽 '자명'
오군 출신의 육손 '백언'
낭야 출신의 서성 '문향'
동군 출신의 반장 '문규'
여강 출신의 정봉 '승연'
문무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보좌한다. 이리해 강동에서 득인지성 得人之盛(인재를 많이 얻음)이라고 일컫는다.
건안 7년 조조가 원소를 격파하고 사자를 강동에 보내어 손권에게 아들을 입조시켜 임금을 곁에서 모시라고 한다. 손권이 주저하니 오태부인이 주유와 장소 등과 의논한다. 장소가 말한다.
"조조가 아드님을 입조시키라 함은 제후를 견제하는 방법이지요. 그러나 거스르면 강동으로 출병하여 형세가 위태로울까 걱정입니다."
주유가 말한다.
"장군께서 부형의 유업을 이어받아 6군의 사람들을 거느려 병사는 정예하고 식량은 넉넉하고 장사들은 명령을 받듭니다. 어째서 핍박을 받아 인질을 보내야겠습니까? 인질을 보내면 조씨와 동맹하지 않을 수 없어 그가 부르면 가지 않을 수 없으니 이렇게 남에게 통제를 받습니다. 인질을 보내지 말고 천천히 변화를 살펴 따로 좋은 계책으로 막으십시오."
오태부인이 말한다.
"공근의 말씀이 옳소."
손권이 결국 그 말을 따라 사자는 돌려보내고 아들은 보내지 않는다. 이때부터 조조가 강남을 정벌할 마음을 가진다. 다만 북방이 아직 안정되지 않아 남쪽을 정벌할 틈이 없었다.
건안 8년 11월 손권이 병력을 이끌고 황조를 정벌하기 위해 대강에서 싸운다. 황조군이 거듭 패한다. 손권의 부장 능조가 앞장서서 작은배를 타고 하구에서 적을 무찌르다가 황조의 부장 감녕의 화살에 죽는다. 능조의 여 열다섯살 아들 능통이 분투하여 시신을 찾아온다. 손권이 보니 형세가 불리하므로 동오로 회군한다.
한편, 손권의 아우 손익이 단양태수가 된다. 손익은 굳세고 술을 좋아하여 취하면 사졸들을 채찍질다. 단양의 독장 규람과 군승 대원이 늘 손익을 살해할 마음을 먹더니 손익의 하인 변홍을 심복으로 삼아서 손익을 죽이려 한다. 이때 손익이 장수들과 현령들을 집결시켜 연회를 베푼다. 손익의 아내 서씨가 아름다운데다 지혜로와 점을 잘 쳤다. 그날 점괘가 융하므로 손익에게 외출하지 말 것을 권한다. 손익이 따르지 않고 사람들과 크게 모임을 갖는다.
저녁에 자리를 파하자 변홍이 문 밖으로 따라나와 칼을 뽑아 손익을 죽인다. 규람과 대원이 변홍에게 뒤집어 씌우고 저잣거리에서 처형한다. 이 틈에 그들이 손익의 재산과 시첩들을 빼앗는다. 규람이 서씨의 미모를 보고 그녀에게 이른다.
"내가 네 남편의 원수를 갚았으니 마땅히 나를 따르라. 따르지 않으면 죽인다."
"남편이 얼마전에 죽어서 바로 따르지는 못하오. 회일 晦日(음력말일)에 제사를 올려서 탈상한 뒤 성친 成親 (결혼)해도 늦지 않소."
규람이 받아들인다. 서씨가 손익의 심복 장수였던 손고와 부영을 부중으로 불러들여 눈물흘리며 고한다.
"선부가 생전에 늘 두 분을 충의롭다 하셨소. 이제 규람과 대원 두 도적놈이 남편을 죽이고도 변홍에게 모함하고 우리의 재산과 하인을 모조리 나눠 가졌소. 게다가 규람이 저를 강제로 욕보이려 하기에 허락하는 척ㅎ해서 안심시켰소. 두 장군께서 어서 사람을 보내어 오후(손권)께 알리고, 몰래 두 도적을 도모하여 원수와 치욕을 갚아주신다면 죽어도 은혜를 잊지 않겠소!"
말을 마치고 거듭 절하니 두 사람이 눈물흘리며 말한다.
"저희가 평소 부군의 은혜를 크게 입었습니다. 즉시 따라죽지 못한 까닭은 원수를 갚고자 해서였습니다. 부인께서 명하시데 어찌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은밀히 심복을 손권에게 보내어 알린다. 말일에 이르러 서씨가 손고와 부영을 불러 밀실의 휘장에 숨기고 당상에서 제사를 올린다. 제사를 마치고 상복을 벗어서 목욕하고 향을 뿌리고 화장하는데 웃고 말하는 것이 태연하다.
규람이 듣더니 몹시 기뻐한다. 그날밤 서씨가 비첩을 보내어 규람을 부중으로 부른다. 대청에 술자리를 차려 음주한다. 서씨가 취한 규람을 밀실로 데려간다. 규람이 기뻐서 취한 채 들어가니 서씨가 크게 외친다.
"손, 부 두 장군은 어디 계시오!"
두 사람이 칼을 들고 튀어나온다. 규람이 손 쓰지 못하는 틈에 부영이 한칼에 베고 손고가 한칼을 찔러 죽인다. 서씨가 다시 대원을 연회에 부른다. 대원이 부중에 들어와서 대청에서 역시 손, 부에게 살해된다. 한편으로 사람들을 보내어 두 도적의 식구와 잔당을 죽여서 다스린다. 서씨가 다시 상복을 입고 규람과 대원의 머리를 손익의 영전에 올려서 제사지낸 다. 하루가 안 돼 손권이 몸소 군마를 거느리고 단양에 이른다. 그가 서씨가 이미 규람과 대원을 죽인 것을 보고 손고와 부영을 아문장으로 삼아 단양을 지키게 하고 서씨를 귀가시켜 양로한다. 강동사람치고 서씨의 덕을 칭송치 않는 이 없었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렸다.
재주와 절개 모두 갖춤은 세상에 드문데
간악한 무리가 하루아침에 제거되는구나
용신은 도적을 따르고 충신은 죽을 뿐이니
살아서 복수한 동오의 여장부만 못하구나
한편, 동오 곳곳에서 산적들이 모조리 평정된다. 대강에 전선 7천여 척을 보유한다. 손권이 주유를 대도독으러 삼아 강동의 육군과 수군을 모두 총통하게 한다. 건안 12년 겨울 10월 손권의 어머니 오태부인이 위독해져 주유와 장소를 불러 이른다.
"나 오태부인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동생 오경과 더불어 월중에 옮겨와 살게 됐소. 뒤에 손씨 집안으로 시집와서 네 아들을 낳았소. 맏아들 손책을 낳을 때 꿈속에서 달이 내품에 안겼소. 뒤에 차남 손권을 낳을 때도 꿈서속에 달이 들어와 안겼소. 점쟁이가, 꿈에서 달이 들어와 안기면 아들이 귀해질 운명이라고 했소. 불행히 손책이 요절해 지금 강동의 기업은 손권에게 넘어갔소. 바라건대 여러분이 한마음으로 그를 도와준다면 내가 죽어도 한이 없겠소!"
다시 손권에게 부탁한다.
"너는 자포와 공근을 사부의 예로써 섬기는데 태만해선 안 된다. 내 동생은 나와 함께 네 부친께 시집왔으니 역시 네 모친이다. 내 죽은 뒤 내 동생 섬기기를 나를 섬기듯하라. 네 누이도 마땅히 아끼고 좋은 사위를 골라 시집보내라."
말을 마쳐 마침내 숨을 거둔다. 손권이 애달피 곡하고 예를 갖춰 장례를 치름이야 말할 필요도 없겠다. 이듬해 봄이 되자 손권이 상의해 황조를 치려 한다. 장소가 말한다.
"상을 치뤄 아직 기년 期年이 안 된지라 출병은 불가합니다."
주유가 말한다.
"원수를 갚는데 어찌 기년을 기다리겠습니까?"
손권이 주저한다. 마침 북평의 도위 여몽이 들어와 손권에게 고한다.
"제가 용추 龍湫(큰 폭포)의 길목을 지키는데 황조의 부장 감녕이 귀순했습니다. 제가 심문하니 감녕의 자는 흥패이고 파군의 임강 출신입니다. 제법 경전과 역사에 통달하고 기력이 있고 유협을 좋아합니다. 그가 일찍이 도망자들을 모아 강호를 주름잡았습니다. 허리에 구리방울을 달고 다니니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으면 모조리 달아났습니다. 또한 서천의 비단으로 돛을 만드니 사람들이 '금범적 錦帆賊 (비단돛을 단 도적)'이라 일컬었습니다. 그뒤에 개과천선하여 무리를 이끌고 유표에게 귀순했습니다. 그러나 유표는 큰일을 이룰 인물이 아니라고 보고서 동오로 넘어오려 했으나 도중에 황조가 붙들어 하구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前東吳破祖時,祖得甘寧之力,救回夏口;乃待寧甚薄。都督蘇飛屢薦寧於祖。祖曰:『寧乃劫江之賊,豈可重用?』寧因此懷恨。蘇飛 知其意,乃置 酒邀寧到家,謂之曰:『吾薦公數次,奈主公不能用。日月逾邁,人生幾何;宜自遠圖。吾當保公為鄂縣長,自作去就之計 。』寧因此得過夏口,欲投江東,恐江東 恨其救黃祖殺凌操之事。某具言主公求賢若渴,不記舊恨;況各為其主,又何恨焉?寧欣然引眾 渡江,來見主公。乞鈞旨定奪。」
"예전에 동오가 황조를 격파하자 감녕의 힘으로 하구를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몹시 박대했습니다. 도독 소비가 거듭 감녕을 황조에게 천거했습니다만 황조는 '감녕은 강물에서 노략질하던 도적인데 어찌 중용하겠소?'라 했습니다. 이에 감녕이 한을 품었습니다. 소비가 눈치채고 술을 마련하고 집으로 불러 이르길, '내 그대를 거듭 천거했으나 왠지 주공이 쓰지 않소. 일월이 빠르게 지나가니 인생이 얼마나 되겠소. 스스로 멀리 도모하시오. 그대를 악현의 장으로 추천할테니 스스로 거취를 정하시오'라고 했습니다. 감녕이 이에 하구를 벗어나 강동으로 넘어오려 했으나 지난날 황조를 구할 때 능조를 죽인 것을 걱정합니다. 제가 그에게, 주공께서 목마른 듯이 현자를 구하시고 옛 원한은 잊어버리신다고 잘 말했습니다. 게다가 각각 주인을 위하는 법인데 어찌 더욱 원망하겠습니까? 감녕이 흔쾌히 무리를 이끌고 강을 건너 주공을 만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균지 鈞旨(명령이나 지시의 높임말)로써 잘 판단해주십시오."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내가 감흥패를 얻었으니 황조를 격파하겠구나!"
여몽에게 명해 감녕을 데려오게 해 만난다. 인사를 마치고 손권이 말한다.
"흥패가 여기로 찾아와서 내 마음을 빼앗았거늘 어찌 원한을 품겠소? 아무 의심도 하지 마시오. 내게 황조를 격파할 계책을 가르쳐주시오."
"지금 한조 漢祚 (한나라의 황위와 국통)가 나날이 기울어 조조가 결국 찬탈할 것입니다. 형남 荊南도 조조가 반드시 쳐들어 오겠지요. 유표는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아들들도 우둔하고 열등하니 기반을 계승하지 못합니다. 명공께서 어서 그곳을 도모하십시오. 지체하면 조조가 먼저 도모합니다. 이제 먼저 황조를 취하십시오. 황조는 늙고 혼미하여 재물에 눈멀어 관리와 백성을 착취하니 모두가 원망합니다. 무기는 수리하지 않고 군대는 기강이 없습니다. 명공께서 쳐들어가시면 그 세력을 깰 것입니다. 황조를 격파한 뒤 북을 울려 서쪽으로 진군해 초관을 장악하고 파촉을 도모하시면 패업을 이루실 겁니다."
손권이 말한다.
"이것은 참으로 금옥 같은 이야기요!"
마침내 주유를 대도독으로 삼아 수륙의 군병을 총통하고 여몽을 선봉으로 삼는다. 동습은 감녕과 더불어 부장 副將이 된다. 손권 스스로 십만대군을 거느려 황조를 토벌한다. 세작이 탐지하여 강하에 알린다. 황조가 급히 무리를 모아서 상의한다. 소비를 대장으로, 진취와 등룡을 선봉으로 삼아서 강하병력을 총동원해 대적한다. 진취와 등룡이 몽동 艨艟 (쇠가죽으로 방호하는 싸움배) 선단을 각각 이끌고 면구에 정박하고 몽동마다 강궁과 쇠뇌를 1천여 장씩 배치하고 큰 밧줄로 몽동들을 물 위에 묶어둔다.
동오군이 다다르자 몽동들에서 북소리와 함께 일제히 사격하니 동오군이 진격치 못하고 몇리를 물러나려 한다. 감녕이 동습에게 말한다.
"이렇게 됐으니 진군하지 않을 수 없소."
이에 작은배 1백여 척을 골라서 배마다 정병 50인을 싣는다. 20인은 노를 젓고 30인은 갑옷을 입고 쇠칼을 지니고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몽동선단에 달라붙어 밧줄을 끊으니 몽동들이 뒤엉킨다.
감녕이 몽동 위로 날아올라 등룡을 베어죽인다. 진취가 배를 버리고 달아난다. 여몽이 작은 배로 뛰어내려 스스로 노를 잡고 적군의 선단으로 쳐들어가서 불을 놓아 적선을 불사른다. 진취가 강둑으로 달아나지만 여몽이 죽기살기로 따라붙어 한칼에 가슴을 찔러 고꾸라뜨린다. 소비가 강둑에서 군을 이끌고 맞서지만 동오군이 우르르 상륙하니 막지 못한다. 황조군이 대패하고 소비가 풀숲으로 달아나다가 동오의 대장 반장과 마주친다. 몇합만에 반장이 사로잡아 배 위로 끌고가 손권을 만난다. 손권이 소비를 함거에 가두고 황조를 사로잡으면 함께 처형하려 한다. 삼군을 재촉해 밤낮없이 하구를 공격한다.
황조가 금번적을 쓰지지 않더니
배를 묶은 밧줄을 끊게 만드네
황조의 승부가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회에 풀리리라.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