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40회 채부인이 형주를 바칠 의논을 하고 제갈량이 신야를 불사른다

    한편 현덕이 공명에게 조조 병력을 막을 계책을 묻자 공명이 말한다.

    "신야는 작은 고을이라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요새 듣건대 유경승이 위독하니 가히 이 기회를 틈타 형주를 취해 안신 安身 (정착. 뿌리 내림)할 땅으로 삼으면 조조를 막을 만합니다."

    "공의 말씀은 몹시 좋습니다. 그러나 제가 경승의 은혜를 입어 어찌 차마 도모하겠습니까?"

    "이제 취하지 않으면 후회한들 어쩌지 못합니다."

    "내 차라리 죽을지언정 차마 의를 저버리는 일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한편, 하후돈이 패해 허창으로 돌아가 스스로 포박해 조조를 만나 땅에 엎드려 죽기를 청한다. 조조가 풀어주자 하후돈이 말한다.

    "제가 제갈량의 궤계 詭計 (속임수)에 빠졌습니다. 화공을 써 아군을 격파했습니다."

    "자네가 젊어서부터 용병했거늘 어찌 좁은 곳에서는 화공을 방비할 것을 몰랐는가?"

    "이전과 우금이 일찍이 언급했었습니다. 이제 후회한들 어쩌겠습니까!"

    이에 조조가 이전과 우금을 포상한다. 하후돈이 말한다.

    "유비가 이토록 창궐하니 참으로 뱃속의 근심거리입니다. 어서 제거해야 합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유비와 손권 뿐이오. 나머지야 개의치 않소. 이제 이번 기회에 강남을 소평 掃平 (소탕하고 평정)해야겠소."

    명령을 전해 50만 대군을 일으키고 조인과 조홍을 제1대로, 장요와 장합을 제2대로, 하후연과 하후돈을 제3대로, 우금과 이전을 제4 대로 삼는다. 조조 스스로 장수들을 거느려 제5대가 된다. 각 부대마다 10만 병력이다. 또한 허저를 절충장군으로 삼아 3천 병력을 이끌 고 선봉을 맡게 한다. 건안 13년 가을 7월 병오일 丙午日을 골라 출병한다.

    대중대부 공융이 간언한다.

    "유비와 유표 모두 한실종친이라 함부로 정벌해선 안 됩니다. 손권도 6군에 호거(호랑이처럼 걸터앉음)한데다 대강(장강/양자강)이 험 준하니 역시 쉽게 취하지 못합니다. 이제 승상께서 이러한 무의지사 (명분없는 군대)를 일으키니 천하의 소망을 잃을까 걱정입니다."

    조조가 노해 말한다.

    "유비와 유표, 손권 모두 황명을 거스르는 신하인데 어찌 토벌하지 않을 수 있겠소?"

    공융을 꾸짖어 물리고 영을 내려 더 이상 간언하는 자는 반드시 처형할 것이라 한다. 공융이 부중을 나가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한다.

    "지극히 어질지 못한 자가 지극히 어진 자를 치다니 어찌 지지 않을 수 있으리!"

    이때 어사대부 치려의 식객이 그 말을 듣고 치려에게 알려준다. 공융이 늘 치려를 깔보고 업신여기니 치려가 속으로 한을 품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고는 들어가서 조조에게 고하고 덧붙인다.

    "공융이 평소 승상을 무시하고 예형과 어울렸습니다. 예형이 공융을 칭찬해, "중니(공자)께서 살아 계신 것 같소."라 하고, 공융은 예형을 칭찬해 "안회께서 되살아난 듯하오." 라 했습니다. 예전에 예형이 승상을 모욕한 것도 바로 공융이 사주한 것입니다."

    조조가 크게 노해 정위(최고 사법관)에게 명해 공융을 잡아들인다. 공융에게 아들이 둘인데 나이가 아직 어려 그때 마침 집안에서 마 주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좌우에서 급히 알린다.

    "존군 尊君 (남의 부친의 높임말)께서 정위에게 잡혀가셔서 처형되십니다. 두 공자께서 어찌 서둘러 피하시지 않습니까?"

    "둥지가 뒤집혔는데 어찌 온전한 알이 있겠습니까?"

    미처 말을 마치지 못해 정위가 들이닥쳐 공융 식구와 아울러 두 아들을 모조리 잡아 처형한다. 공융의 시신을 저잣거리에 호령(범죄자를 대중에 공개)한다. 경조 사람 지습이 시체에 엎드려 곡한다. 조조가 듣고 크게 노해 죽이려 하자 순욱이 말한다.

    "제가 듣자니 지습이 늘 공융에게 간언하기를 '공께서 지나치게 강직하니 화를 부르는 길입니다.'라 했답니다. 지금 공융이 죽자 와서 곡 하니 바로 의로운 사람입니다. 죽여선 안 됩니다."

    이에 조조가 그만둔다. 지습이 공융 부자의 시신을 거둬 모두 묻어준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렸다.

    공융이 북해에 거해 호기가 무지개 넘어가네
    자리에 손님들 가득하니 술동이 텅빌 날 없구나
    문장은 세속을 놀래고 담소는 왕공을 조롱하네
    역사는 강직을 기리고 그 대중 大中을 써야 하리

    조조가 공융을 죽인 뒤 명령을 전해 5개 부대의 군마들이 차제 次第 (차례)로 출발하고 단지 순욱 등이 남아 허창을 지킨다.

    한편, 형주의 유표가 병세가 위중해 사람을 시켜 현덕을 불러 탁고 託孤 (사후에 남겨진 자식을 맡김. 고아를 맡김)하고자 한다. 현덕이 관, 장을 데리고 형주에 다다라 유표를 만난다. 유표가 말한다.

    "내 병이 벌써 고황 膏肓 (신체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 머지않아 죽을 것이오. 아우님께 특별히 탁고하오. 내 아들들이 재주 없으니 내 유업을 잇지 못할까 걱정이오. 내 죽은 뒤 아우님께서 스스로 형주를 다스리시오."

    현덕이 눈물 흘리며 절을 올려 말한다.

    "제가 마땅히 힘껏 조카님을 보필해야지 어찌 감히 다른 마음을 먹겠습니까?"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래에서 보고하기를, 조조 스스로 대병력을 이끌고 온다 한다. 현덕이 서둘러 유표에게 작별을 고해 그날밤 신야로 되 돌아간다. 유표가 병중에 이 말을 듣고 적잖이 놀라 말을 더듬더니 유촉 遺囑 (부탁하는 유언)을 적는 것을 상의하게 한다. 그 내용은 현 덕이 보좌하고 맏아들 유기가 형주의 새 주인이 될 것을 명하는 것이다. 채 부인이 듣고 크게 노해 안쪽 문을 걸어 잠그고 채모와 장윤 두 사람을 시켜 바깥 문을 차단한다. 이때 유기가 강하에서 아버지 병환이 위중한 것을 알고 문병하러 형주에 이른다. 바깥 문에 다다르자 채모가 가로막고 말한다.

    "공자께서는 부친의 명을 받들어 강하를 진수(주둔해 수비함)하니 그 임무가 지극히 무겁습니다. 이제 함부로 직무를 버리시니 만약 동 오 병력이 쳐들어온다면 어찌하겠습니까? 들어가 주공을 만나면 주공께서 필시 진노하셔 병환이 더욱 심해질테니 효도가 아닙니다. 어 서 돌아가셔야 마땅합니다."

    유기가 문 밖에서 한바탕 크게 곡하고, 말에 올라 강하로 되돌아간다. 유표가 병세가 위독한 가운데 유기를 기다리지만 오지 않는다. 8월 무신일 戊申日에 수차례 크게 외치더니 죽는다. 뒷날 누군가 유표를 기리는 시를 지었다.

    지난날에 원 씨가 하삭 河朔에 거하고 유군 劉君은 한양을 장악하나
    모두 암탉이 설쳐 집안에 누가 되더니 가련하게 머지않아 멸망했구나

    유표가 죽어버리자 채 부인이 채모, 장윤과 함께 상의해 유촉을 위조해 둘째아들 유종을 형주의 주인으로 삼은 뒤, 거애 舉哀 (초상을 치러 소리높여 곡함)하고 부고를 돌린다. 이때 유종의 나이 막 14세인데 제법 총명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말한다.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셨지만 형은 현재 강하에 있고 더구나 숙부 현덕은 신야에 있소. 자네들이 나를 주인으로 세웠지만 만약 형과 숙 부가 출병해 죄를 묻는다면 어찌 풀겠소?"

    관리들이 미처 답하지 못하는데 막관 (막료/보좌) 이규 李圭가 답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게 몹시 훌륭합니다. 이제 서둘러 강하에 부고를 전하시고 큰 공자 (유기)를 청해 형주의 주인으로 삼으십시오. 현 덕을 시켜 함께 일을 처리하게 하십시오. 북으로 가히 조조를 대적할 수 있고 남으로 가히 손권을 막을 수 있으니 만전을 기하는 계책입 니다."

    채모가 꾸짖는다.

    "네 뭔데 감히 어지러운 말로 주공의 유명을 거스르냐!"

    이규가 크게 욕한다.

    "네놈이 안팎으로 무리지어 음모를 꾸며 유명을 위조해 맏이를 폐하고 어린 아들을 세워 형양 9군을 눈 깜짝할 사이에 채 씨 손에 넘기려 하구나! 돌아가신 주공의 유령이 반드시 너를 죽일 것이다!"

    채모가 크게 노해 좌우에게 소리질러 끌어내 참하게 하지만 이규가 죽음에 이르러서도 크게 욕해 마지않는다. 채모가 유종을 주인으로 세운다. 채 씨 종족이 형주의 병력을 나눠 거느린다. 치중 治中 (주를 다스리는 자사의 보좌관의 일종) 등의와 별가 (일종의 보좌관) 유선에게 명해 형주를 수비한다. 채 부인이 스스로 유종과 더불어 양양으로 가서 주둔해 유기와 유비를 방비한다. 유표의 관을 양양성의 동쪽 한양 들판에 묻지만 끝내 유기와 현덕에게는 부고를 보내지 않는다.

    유종이 양양에 이르러 말을 세워 쉬는데 누군가 알리니,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곧장 양양으로 온다는 것이다. 유종이 크 게 놀라 괴월, 채모 등을 불러 상의한다. 동조연 東曹掾 부손이 진언한다.

    "비단 조조 병력이 오는 것만 근심스러운 게 아닙니다. 이제 공자(유기)는 강하에 있고 현덕은 신야에 있는데 우리 가운데 아무도 가서 상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출병해 죄를 묻는다면 형양 지방이 위태롭습니다. 제게 계책이 하나 있으니 가히 형양의 백성들을 태산처럼 안정시킬 뿐더러 주공의 명작 (명예와 지위)도 보전할 수 있습니다."

    "어떤 계책이오?"

    "형양 9군을 조조에게 바치는 게 좋습니다. 조조가 필시 주공을 후대할 것입니다."

    유종이 꾸짖는다.

    "이게 무슨 소리요! 내가 선군으로부터 기업을 이어받아 자리가 아직 평온치 못하거늘 어찌 그 땅을 남에게 줄 수 있겠소?"

    괴월이 말한다.

    "부공제(부손의 자가 공제다)의 말이 옳습니다. 무릇 거스르고 따르는 것도 대체 大體 (일의 큰 줄거리)가 있으며, 강하고 약한 것도 정 해진 형세가 있습니다. 오늘날 조조가 남정북토 (남쪽을 정벌하고 북쪽을 토벌함)하고 조정을 장악해 명분이 서는데 주공께서 맞서면 그 명분이 불순합니다. 게다가 주공께서 이제 막 자리에 올랐기에 외환 外患이 가라앉지 않으면 곧 내우 內憂가 일어납니다. 형양의 백 성들이 조조 병력이 오는 것을 들으면 미처 싸우기도 전에 간담이 서늘해질텐데 어찌 더불어 대적하겠습니까?"

    "여러분 말씀을 내가 따르지 않겠다는 게 아니오. 다만 선군의 유업을 하루아침에 포기해 남에게 줘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까 두렵소."

    말을 미처 못 마쳐 한 사람이 당당히 진언한다.

    "부공제나 괴이도(괴월)의 말씀이 몹시 훌륭한데 어찌 따르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바라보니 바로 산양 고평 출신의 왕찬 '중선'이다. 왕찬은 삐쩍 마르고 키가 작다. 어려서 중랑 채옹을 찾아간 적이 있다. 당시 채옹은 빈객들이 자리를 가득 채운 가운데에서도 왕찬이 왔다고 하자 신발을 거꾸로 신은 채 뛰어나가 맞이했다. 빈객들이 놀라 말했다.

    "채중랑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아이만 우대하십니까?"

    "이 아이는 남다른 재주가 있어 저보다 뛰어납니다."

    왕찬의 견문이 넓고 기억력이 특출나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했다. 일찍이 길가의 비문을 한번 보고 바로 외워 읊었다. 남들이 두는 바둑 이 어지러워도 왕찬이 외워 그대로 다시 두는데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또한 산술을 잘했다. 그 문사가 뛰어나 그 시대에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나이 열일곱에 황문시랑으로 천거됐으나 응하지 않았다. 뒷날 형주로 피란해 유표가 상빈으로 대우했다.

    그날 왕찬이 유종에게 말한다.

    "장군께서 스스로 헤아려 조공에 비해 어떻습니까?"

    "그보다 못합니다."

    "조공은 군대가 강하고 장수가 용감한데다 지혜가 넘치고 꾀가 많습니다. 하비에서 여포를 사로잡고, 관도에서 원소를 꺾었으며, 농우에서 유비를 쫓아내고 백랑에서 오환을 격파했습니다. 제거하고 평정한 자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대군으로써 형양을 공격하니 그 세력을 대적하기 어렵습니다. 부, 괴 두 분의 꾀는 멀리 바라보는 계책입니다. 장군께서 머뭇거리다 후회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의 가르침이 극히 옳습니다. 다만 모친께 먼저 알려드려야겠습니다."

    그러나 채부인이 병풍 뒤에서 돌아나와 유종에게 말한다.

    "이미 중선, 공제, 이도 세 분의 소견이 같은데 내게 굳이 고할 필요 있냐?"

    이에 유종이 뜻을 정하여 항복문서를 써서 송충에게 몰래 조조의 진영으로 가서 바치라 한다. 송충이 명을 받아 완성에 달려가서 조조를 만나 항서를 바친다. 조조가 크게 기뻐해 송충을 후하게 포상한다. 그에게 유종이 성을 나와 조조를 영접할 것과 조조가 그를 영원히 형주의 주인으로 인정할 것을 전하게 한다. 송충이 조조를 작별하고 형양으로 돌아간다. 강을 건너는데 한줄기 인마가 달려든다. 바로 관운장이다. 송충이 피하지 못하고 붙잡히니 관운장이 형주의 일을 캐묻는다. 송충이 숨기다가 운장이 거듭 캐묻자 어쩌지 못하고 전후사정을 낱낱이 고한다. 운장이 크게 놀라 송충을 신야로 압송하여 현덕을 만나 낱낱이 이야기한다.

    현덕이 듣고 크게 곡한다. 장비가 말한다.

    "일이 이미 이렇게 됐으니 먼저 송충을 참하고 출병해 강을 건너 양양을 빼앗고 채씨와 유종을 죽인 뒤에 조조와 더불어 교전해야 합니 다."

    "너는 입을 다물라. 내 나름대로 헤아리는 게 있다."

    현덕이 송충을 꾸짖는다.

    "너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벌이는데 어찌해서 어서 내게 알리지 않았냐? 이제 너를 참한들 아무 이로울 게 없으니 어서 돌아가라."

    송충이 작별 인사를 올리고 머리를 감싼 채 쥐새끼처럼 달아난다.

    현덕이 한창 근심하고 있는데 공자 유기가 이적을 보낸다. 그가 지난날 구해준 은혜를 잊지 못한 현덕이 계단을 달려가 맞이하고 거듭 사례한다. 이적이 말한다.

    "대공자 大公子 (유기)께서 강하에 계시면서, 유형주께서 이미 돌아가신 것을 들었으나 채 부인이 채모 등과 상의해 대공자께 부고하지 않고 마침내 유종을 주군으로 세웠습니다. 공자께서 사람을 양양으로 보내 정탐하게 해서 돌아와 보고했는데 소문이 사실이었습니다. 사군께서 모르고 계실까 걱정하셔 저를 보내 부고를 전하고 아울러 사군께 요청해 휘하 정병을 모조리 동원해 함께 양양으로 가 죄를 묻 고자 하십니다."

    현덕이 서찰을 다 읽고나서 이적에게 말한다.

    "기백 機伯 (이적의 자)은 단지 유종이 자리를 빼앗은 것만 알지 유종이 이미 형양 9군을 조조에게 바친 것을 모르는구려!"

    이적이 크게 놀라 말한다.

    "사군께서 어찌 아십니까?"

    현덕이 송충을 사로잡은 일을 낱낱이 이이야기하자 이적이 말한다.

    "일이 이렇다면 사군께서는 차라리 문상을 명분으로 양양으로 달려가십시오. 유종을 유인한 뒤 사로잡아 그 일당을 처형해 형주를 차지 하시는 게 낫습니다."

    공명이 말한다.

    "기백의 말씀이 옳습니다. 주공께서 따르셔야 합니다."

    현덕이 눈물 흘리며 말한다.

    "내 형님께서 돌아가시며 내게 어린 아들을 부탁하셨는데 이제 그 아들을 잡아 그 땅을 빼앗는다면 언젠가 죽어 구천에서 무슨 낯으로 형님을 다시 볼 수 있겠습니까?"

    "이 일을 행하지 않는다면 이제 조조 병력이 벌써 완성에 다다랐는데 어떻게 대적하시겠습니까?"

    현덕이 말한다.

    "번성으로 피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상의하고 있는데 탐마(정찰기병)가 급보를 전하니 조조 병력이 이미 박망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현덕이 황망히 이적을 강하로 되돌려 보내 군마를 정돈하게 하는 한편, 공명과 더불어 적을 막을 계책을 상의한다. 공명이 말한다.

    "주공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번에 화공으로 하후돈의 인마들 가운데 태반을 불살랐습니다. 이번에 조조 군대가 다시 오니 필 시 그가 저 계략에 걸려들었던 것을 가르쳐줬을 겁니다. 우리가 신야에 머물러서는 위험하니 어서 번성으로 가는 것이 낫습니다."

    사람을 보내 4개 성문에 방을 써 붙여 거주민들에게 고지한다.

    '남녀노소를 막론해 따르고 싶은 자는 오늘 즉시 모두 나를 따라 번성으로 잠시 피난하는데 착오가 없도록 하라.'

    손건을 강가로 보내 선박을 조달해 백성을 구제하고, 미축을 보내 관리들을 호위해 번성으로 가게 한다.

    한편으로 장수들을 불러모아 명령을 듣게 하니 먼저 운장에게는 1천 군을 이끌고 백하 白河 (한수 漢水의 지류) 상류로 가서 매복하 게 한다.

    "사람마다 포대를 가져가 흙과 모래를 채워 백하의 물을 막으시오. 내일 3경이 지나, 하류에서 사람과 말의 함성과 울부짖음이 들리거든 급히 포대를 허물어 물을 놓아 덮치고, 물살을 따라 하류로 달려가 접응하시오."

    또한 장비를 불러 1천 군을 거느려 박릉 博陵의 나루터에 매복하게 한다.

    "이곳의 물살은 가장 느려서 조조 군대가 수공을 받으면 반드시 이곳으로 도망 올 것이니 가히 기세를 타고 달려들어 접응할 수 있소."

    또한 조운을 불러 지시한다.

    "3천 군을 이끌되 4개 부대로 나눠 그 가운데 1개 부대를 장군 스스로 이끌고 동문 밖에 매복하고 나머지 3개 부대는 서, 남, 북의 3개 성문에 매복하시오. 먼저 성 안의 인가 옥상에 유황과 염초 등의 인화지물(인화물질)을 가득 쌓아 두시오. 조조 군대가 입성하면 반드 시 민가에서 쉴 것이오. 내일 황혼 뒤에 반드시 큰 바람이 불테니, 바람이 불거든 서, 남, 북 3개 문의 복병들은 일제히 불화살을 성 안으 로 쏘게 하시오. 성중에서 불길이 치솟기를 기다려, 성 밖에서 함성을 질러 위세를 더해, 적들이 동문 밖으로 몰려 나와 달아나게 놔 두시 오. 이때 그대가 적군을 뒤에서 공격하시오. 동이 트면 관, 장과 회합해 군을 거둬 번성으로 돌아가시오."

    다시 미방과 유봉 두 사람에게 명을 내려 2천 군을 거느려 절반은 홍기(붉은 깃발)를, 나머지 절반은 청기(푸른 깃발)를 들고 신야성 밖 30리 작미파 鵲尾坡 (까치꼬리 언덕) 앞에 주둔하라 한다.

    "조조군이 다다르면 홍기 부대는 왼쪽으로 달아나고, 청기 부대는 오른쪽으로 달아나시오. 그들이 반드시 의심해 감히 뒤쫓지 못할테 니 그대 두 사람은 길을 나눠 달아나 매복하시오. 성중에서 불길이 치솟거든 바로 패잔병을 뒤쫓아 무찌른 뒤 백하 상류로 물러나 접응 하시오."

    공명이 작전 배치를 마쳐 현덕과 더불어 높이 올라 멀리 바라보며 승전 보고를 기다릴 뿐이다.

    한편, 조인과 조홍이 십만대군을 거느려 전대 前隊 (선두 부대)가 되고, 그 앞에 허저가 3천의 철갑군 鐵甲軍을 이끌고 길을 열어 호호탕탕 浩浩蕩蕩 (물살이 거침없이 크게 몰려오는 모습) 신야로 쇄도한다. 이날 오패 午牌(정오)에 작미파 (까치꼬리언덕)에 다다라 멀 리 바라보니 언덕 앞에 한 무리의 인마가 있는데 모조리 청기와 홍기를 흔들어 신호를 주고 받는다. 허저가 병사들을 재촉해 앞으로 나 가니 유봉과 미방이 4개 부대로 나눠 청기와 홍기가 각각 좌우로 들어간다. 허저가 말고삐를 잡아 멈춰 지시한다.

    "일단 전진을 멈춰라. 앞에 필시 복병이 있겠구나. 우리 병력은 여기에 머물러야겠다."

    허저 홀로 급히 말을 달려 전대의 조인에게 급보한다. 조인이 말한다.

    "이것은 의병 疑兵 (적군을 혼란스럽게 만들 목적의 병력)이니 매복이 없는 게 틀림없소. 어서 진병하시오. 나도 병사들을 재촉해 뒤따 르겠소."

    허저가 언덕 앞으로 되돌아가 병력을 거느리고 달려든다. 숲까지 뒤쫓아 살펴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때 해가 이미 서쪽으로 기울 어, 허저가 전진하려는데 산 위가 시끌벅적하다.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산꼭대기에 한 떼의 깃발이 빽빽한 가운데 일산 日傘 아래 왼쪽은 현덕, 오른쪽은 공명 두 사람이 마주앉아 음주한다. 허저가 크게 노해 군을 이끌고 길을 찾아 산을 오른다. 산 위에서 아래로 나무를 굴리고 돌을 날려 전진할 수 없다. 또한 산 뒤에서 함성이 크게 나는지라 길을 찾아 전투하고자 하지만 이미 저물었다.

    병력을 거느리고 도착한 조인이, 신야성을 빼앗아야 쉴 수 있다고 다그친다. 병사들이 성 밑에 다다르니 4개 성문이 죄다 열려 있다. 조조군이 돌입해도 아무도 막아서지 않는다. 성 안에도 역시 한 사람도 없으니 그야말로 성 하나가 텅텅 비었다.

    조홍이 말한다.

    "형세는 외롭고 계책은 궁하니 백성을 모조리 데리고 도차 逃竄 (도피. 도망)한 것이 틀림없소. 아군은 잠시 여기 머물다가 내일 평명 ( 해뜨는 시각)에 진병해야겠소."

    이때 병사마다 지치고 모조리 굶주려 모두들 방을 찾아 밥을 짓는다. 조인과 조홍도 관아로 들어가 쉰다. 초경이 지나, 광풍이 크게 분다 . 문을 지키던 병사가 불이 났다고 급보한다. 조인이 말한다.

    "필시 밥을 짓다 조심하지 않아 불씨가 튄 것일 터, 놀랄 것 없다."

    말을 미처 마치지 못해, 잇따라 급보가 날아드니 서, 남, 북 세개 성문에서 모조리 불길이 치솟는다는 것이다. 조인이 급히 명을 내려 장 수들이 말에 타지만 온 성 안에 불길이 치솟아 위아래 천지가 온통 붉은 색이다. 이날밤 화공으로 지난날 박망파에서 적진을 불사른 승 리를 되풀이한 것이다. 뒷날 누군가 시를 남겨 이를 기렸다.

    간사한 영웅 조조가 중원을 지키다가
    구월에 남정해 한천에 이르렀지만
    풍백이 노해 신야 고을에 임하고
    초융이 불꽃을 퍼부워 하늘을 찌르네

    조인이 장수들을 이끌고 불과 연기를 뚫고 길을 찾아 달아난다. 동문엔 불이 붙지 않았다고 전해듣고 급급히 동문으로 달아난다. 병사들이 서로 짓밟아 죽은 자가 무수하다. 조인 등이 막 불길을 벗어나자 뒤에서 한차례 함성이 일더니 조운이 군을 이끌고 뒤쫓아와 혼전 한다. 패잔병들이 각각 살길을 찾아 달아나니 누군들 기꺼이 몸을 돌려 싸우겠는가?

    한창 달아나고 있는데 미방이 1군을 이끌고 달려들어 다시 한바탕 무찌르니 조인이 대패해 길을 뚫고 달아난다. 유봉이 다시 1군을 이끌 고 가로막아 한바탕 무찌른다. 4경 시각에 이르러 사람과 말이 지쳐 병사들 태반이 초두난액 焦頭爛額 (머리털이 그슬리고 이마가 불에 데임. 매우 고통스럽고 지친 모습)이다. 백하 물가까지 달아나서 물이 별로 깊지 않은 것을 기뻐하며 인마들 모두 물로 뛰어뜨니 곧 몸이 물에 잠긴다. 사람은 서로 아우성치고 말들은 모두 울부짖는다.

    한편, 운장이 상류에서 포대를 사용해 강물을 막아두었다. 황혼 무렵, 멀리 신야에서 불길이 치솟아 4경에 이르러 하류에서 사람들이 소리지르고 말들이 울부짖는 것이 들리자 운장이 급히 명을 내려 병사들이 일제히 포대를 들어낸다. 물살이 도천 滔天 (하늘까지 넘침. 물 살이 대단함)해 하류로 거세게 몰아치니 조조군의 인마들이 모두 물에 빠져 죽은 자가 극히 많다. 조인이 장수들을 이끌고 물살이 완 만한 쪽으로 길을 뚫고 달아난다. 박릉 나루터에 이르지만 함성이 크게 일고 1군이 길을 막는데 당선 當先 (앞장섬)한 대장은 바로 장비 다. 그가 크게 외친다.

    "조조 도적들아! 어서 목을 바쳐라!"

    조조군이 크게 놀란다.

    성안에서 불꽃을 토하는 것을 봤는데
    물가에서 다시 컴컴한 바람을 만나네

    조인의 목숨이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