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제49회: 제갈량이 칠성단에서 바람을 부르고 주유가 삼강구에서 화공을 퍼붓는다
한편, 주유 周瑜는 산 정상에 서서 한참 관망하다 갑자기 뒤로 넘어져 입으로 선혈을 토해 인상불성에 빠진다. 좌우에서 급히 구해 안으 로 돌아간다. 장수들 모두 문병하러 와서 모조리 경악해 서로 쳐다보며 말한다.
"장강 북쪽에 백만 대군이 범처럼 웅크려 고래처럼 삼키려 하는 차에 뜻밖에 도독께서 이러시니 만일 조조 병력이 들이닥치면, 어쩌겠소 ?"
황망히 사람을 보내 오후 吳侯 손권에게 알리는 한편, 의생을 구해 치료한다.
한편, 노숙 魯肅은 주유가 앓아 누운 것을 보고, 속이 우울해 공명을 찾아가 주유가 갑자기 병든 일을 이야기한다. 공명이 말한다.
"공께서 어떻게 여기시오?"
"이것은 조조에게는 복이요 강동에게는 재앙이오."
공명이 웃는다.
"공근의 병은 내가 치료할 수 있소."
"정말 그렇다면, 국가를 위해 천만다행이오!"
즉시 공명에게 청해 문병한다. 노숙이 먼저 들어가 주유를 만난다. 주유는 머리를 싸매고 누워 있다. 노숙이 말한다.
"도독의 병세가 어떻습니까?"
"속 깊이 울렁거리고 아픈데, 때때로 혼미해지오."
"약은 드셔 보셨습니까?"
"속에서 구역질이 나서, 약을 삼키지 못하오."
"공명을 찾아가 말했더니 그가 능히 도독의 병을 고치겠다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밖에 있는데 불러서 치료시키는 게 어떨는지요?"
주유가 공명을 불러 들이고, 좌우더러 부축시켜 침대에 앉으니 공명이 말한다.
"얼굴도 몰라보겠군요! 귀하신 몸이 편안치 못할 줄 어찌 알았겠소!"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길흉화복을 모르는 법이라 하니, 어찌 스스로 보전하겠소?"
공명이 웃는다.
"하늘도 바람과 구름을 예측하지 못하는 법인데, 사람이 또한 어찌 헤아리겠소?"
주유가 듣고 낯빛이 바뀌며 신음 소리를 내고만다. 공명이 말한다.
"양약 涼藥(열을 내리는 약)을 써야만 풀리겠군요."
"양약을 이미 복용했으나, 아무 효과가 없소."
"먼저 그 기운을 다스리고, 기운이 순해지면 호흡하는 사이 저절로 병은 낫지요."
주유가 헤아리니 공명은 그 의중을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 말을 꺼내 건드려 본다.
"기를 다스리자면 어떤 약을 써야겠소?"
"제게 한 가지 처방이 있는데 바로 도독의 기를 다스릴 것이오."
"선생께서 가르침을 내려주시기 바라오."
공명이 종이와 붓을 찾아, 좌우를 물리치고, 은밀히 16자를 쓰니 이렇다.
'욕파조공 欲破曹公,의용화공 宜用火攻;만사구비 萬事俱備,지결동풍 只欠東風 (조 공을 깨자니 화공 火攻을 써야겠네. 만사를 구비 했으나 동풍 東風만 빠졌구나.)'
다 쓰고, 주유에게 건네주며 말한다.
"이것이 바로 도독이 앓는 까닭이오."
주유가 보더니 크게 놀라 몰래 생각한다.
'공명은 참으로 신인이구나! 벌써 내 속마음을 알다니! 부득불 사실대로 말해야겠구나."
이에 웃으며 말한다.
"선생께서 벌써 제 병의 원인을 아시니 무슨 약으로 고치시겠소? 사세가 위급하니 즉시 가르쳐 주시오."
"제가 재주 없으나, 일찍이 이인 異人을 만나 기문둔갑 奇門遁甲의 천서 天書를 받아, 호풍환우 呼風喚雨할 수 있소. 도독께서 동남풍이 필요하실 때, 남병산 南屏山에 대 臺 하나를 지어, 칠성단 七星壇이라 일컬으시오. 높이는 9척, 3층으로 올려, 120인으로써 손에 기치 ( 각종 깃발)을 들고 둘러싸게 하시오. 제가 대를 올라 작법 作法 (마술 따위를 부림)하면, 3일 밤낮으로 동남대풍 東南大風이 불어 도독 의 용병을 도울 것이니, 어떻소?"
"3일 밤낮이 아니라 하룻밤이라도 대풍이 불면, 대사를 이루겠소. 다만 일이 눈앞에 닥쳤으니 늦어선 안 되오."
"11월 20일 갑자에 바람을 불러, 22일 병인에 바람이 그치면 어떻겠소?"
주유가 듣고 크게 기뻐하며 벌떡 일어난다. 명을 전해 5백 명의 건장한 병사를 남병산으로 보내 단을 쌓는다. 120인을 뽑아 깃발을 들고 단을 지키며 명을 기다리게 한다.
공명이 작별 인사 후 군막을 나가, 노숙과 더불어 말을 타고, 남병산으로 가 지세를 살피고, 병사들에게 명령해 동남쪽에 붉은 흙으로 단을 쌓게 한다. 둘레는 24장, 각 층은 높이 3척, 모두 9척이다. 아래 1 층은 이십팔숙 二十八宿 (고대 중국 별자리)의 깃발을 꽂아 세운다. 동방 일곱 깃발은 청기 青旗로 각 角, 항 亢, 저 氐, 방 房, 심 心, 미 尾, 기 箕이니 창룡 蒼龍의 형상이다. 북방 北方 일곱 깃발은 조기 皂 旗(검은 깃발)로 두 斗, 우 牛, 여 女, 허 虛, 위 危, 실 室, 벽 壁이니 현무 玄武의 기세다. 서방 西方 일곱 깃발은 백기 白旗로, 규 奎, 누 婁, 주 冑, 묘 昴, 필 畢, 자 觜, 삼 參이니 백호의 위용이다. 남방 南方 일곱 깃발은 홍기 紅旗로 정 井, 귀 鬼, 유 柳, 성 星, 장 張, 익 翼, 진 軫이니 주작 朱雀의 모습이다.
제2층은 둘레에 황기 黃旗 예순 넷을 꽂아 64 괘 卦를 나타내고 8 자리씩 나눠 세운다. 위의 1층은 네 사람이 각각 속발관 束髮冠을 머리 에 쓰고, 검은 비단 도포에 봉의 鳳衣 (도교의 선인이 입는 옷)를 입고, 박대 博帶(넓은 허리띠)를 둘러, 붉은 신을 신고, 방거 方裾 (네 모진 옷자락)차림으로, 앞 왼쪽에 선 1인은 손에 긴 장대를 들고, 그 꼭대기는 닭깃털로 보 葆 (깃대 장식)를 삼아, 풍신 風信 (계절풍)을 부른다. 앞 오른쪽에 선 1인은 손에 역시 긴 장대를 들고, 그 꼭대기는 칠성 七星(북두칠성)을 그린 호대 號帶 (신호용 긴 명주 띠)를 매달아 풍색 風色 (바람. 날씨)을 표시한다. 뒤 왼쪽에 선 1인은 보검을 받들고, 뒤 오른쪽에 선 1인은 향로를 받든다. 단 아래 24인은 각 각 정기 (깃발) 旌旗, 보개 寶蓋(화려한 일산), 대극 大戟, 장과 長戈, 황모 黃旄 (누런 깃 장식의 깃발), 백월 白銊(흰 도끼), 주기 朱旛 (붉은 깃발), 조현 皂縣(검은 깃발의 일종)을 들고 사방을 둘러 선다.
공명이 11월 20일 갑자 길진 吉辰(좋은 날)에 목욕재계해, 몸에 도의 道衣를 걸치고 맨발에 머리를 풀어헤친 채, 칠성단 앞으로 가, 노숙 에게 분부한다.
"자경께서는 군중으로 가, 공근의 조병을 도우시오. 만약 제 기도에 응답이 없더라도, 괴이히 여기실 것은 없소."
노숙이 작별해 떠나고, 공명이 단을 지키는 장사들에게 부탁한다.
"단을 떠나서는 안 된다. 머리를 맞대 귓속말해서도 안 된다. 함부로 어지러운 말을 해서도 안 된다. 영을 어기는 자 참한다!"
모두 명을 받든다. 공명이 천천히 걸어 단을 올라 방위가 정해진 것을 살피고, 향로에 분향하고, 사발에 물을 붓더니 하늘을 우러러 속으 로 기도한다. 단을 내려와 막사로 내려가 조금 쉬며, 병사들에게 명해 교대로 식사하게 한다. 공명이 하루에 세 차례 단을 올라, 세 차례 단을 내려온다. 그러나 동남풍은 불 기미가 없다.
한편 주유는 정보, 노숙 등 한 무리 군관을 불러, 막사 안에서 오로지 동남풍이 불기만 기다려, 병력을 출동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한편 으로 손권에게 글을 보내 접응을 청한다. 황개는 벌써 스스로 화선 火船 20척을 준비해, 뱃머리에 빼곡히 큰 못을 박는다. 배 안은 갈대, 마른 장작을 실어, 어유 魚油로 적셔, 그 위에 유황과 염초 등 인화물을 깔고, 각각 청포와 유단(기름종이)로 덮어 가린다. 뱃머리 위는 청룡아기 青龍牙旗를 꽂고, 꼬리는 각각 주아 走舸 (쾌속선의 일종)을 매단다. 막사에서 살피며, 오로지 주유의 호령을 기다린다. 감녕, 감택은 채화, 채중을 붙들고 외채 外寨(바깥 진지)에서 날마다 음주하며 아무도 강기슭을 오르지 못하게 한다. 그들 주위는 모조리 동오 군마들이라 물샐 틈 없이 지키며, 오로지 위에서 호령이 내려지기만 기다린다.
주유가 마침 안에서 의논하는데, 탐자 探子가 와서 알린다.
"오후 吳侯(손권)께서 배를 80리 밖에 정박하셔, 도독에게서 좋은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십니다."
주유가 노숙을 보내 부하 관병들과 장사들에게 두루 고한다.
"모두 배, 무기, 돛, 노 따위를 수습하라. 호령이 나오면, 시각을 어기지 말라. 어기는 즉시 군법을 따르겠다."
장병들이 하나하나 주먹을 문지르고 손을 비비며, 싸움을 준비한다.
이날 점점 밤이 가까울수록 하늘은 청명해 미풍도 불지 않는다. 주유가 노숙에게 이른다.
"공명 말이 틀렸소. 융동(엄동설한)에 어찌 동남풍이 불겠소?"
"제 생각에 공명이 틀린 말을 할 리는 없소."
3경 무렵, 홀연히 바람 소리가 들리고 깃발들이 펄럭인다. 주유가 밖으로 나가 바라보니 깃발 끝자락이 드디어 서북쪽으로 나부껴, 삽 시간 霎時間에 동남풍이 크게 분다.
주유가 깜짝 놀라 말한다.
"이 자는 천지를 조화하는 법을 얻어 귀신도 못 헤아릴 술법을 가졌구나! 이 자를 살려두면, 동오에 화근이 되고 말리라. 어서 죽여야지 살려두면 훗날 우환이 되겠구나."
급히 호군교위 護軍校尉 정봉 丁奉과 서성 徐盛, 두 장수를 불러 지시한다.
"각각 1백인을 거느려, 서성은 강물을 따라, 정봉은 지름길로 가, 모두 남병산 칠성단에 당도해, 아무 것도 묻지 말고, 제갈량을 잡아 바 로 목을 베시오. 그 수급을 갖고 와서 공을 청하시오."
두 장수가 명을 받아, 서성은 배를 타고, 도부수 刀斧手 1백이 힘차게 노를 젓는다. 정봉은 말을 타고, 궁노수 弓拏手 1백이 각각 말을 몰 아 남병산으로 달려간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었다.
칠성단 위로 와룡이 오르니, 하룻밤새 동풍이 불어와 강물이 솟구치네.
공명이 절묘한 계책을 베풀지 않았으면 주랑이 어찌 재능을 떨쳤으리.
정봉의 군마들이 먼저 도착해 바라보니, 단 위에서 깃발을 든 장사들이 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정봉이 말에서 내려, 칼을 쥔 채 단을 오 르나 공명은 안 보여, 단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황급히 묻자, 답한다.
"방금 단을 내려 가셨습니다."
정봉이 다급히 단을 내려가 찾는데, 서성의 배가 벌써 도착해 있다. 두 사람이 강변에서 만난다. 소졸 小卒(졸병)이 보고한다.
"어젯밤 빠른 배 한 척이 요 앞 여울목에 정박했는데, 방금 보니 공명이 머리를 풀어헤친 채 배를 탔습니다. 그 배는 상류로 갔습니다."
정봉, 서성이 수륙 양로로 추격한다. 서성이 지시해 돛을 활짝 펴, 바람을 타게 한다. 멀리 바라보니, 그 앞선 배가 멀지 않아 서성이 뱃머리에서 고성 高聲으로 크게 외친다.
"군사께서는 멈추시오. 도독께서 청하실 일이 있다시오!"
그러나 공명은 뱃꼬리에 서서 크게 웃는다.
"도독께 돌아가 용병을 잘하시라 전하시오. 제갈량은 잠시 하구로 돌아가, 다른 날 다시 만나 뵐 것이오."
"잠시만 멈추시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소."
"내 이미 도독께서 나를 용납치 않아 반드시 해치러 올 것을 알아, 미리 조자룡더러 와서 접응하게 했소. 장군! 굳이 추격하지 마시오!"
서성이 보니 앞 배는 돛을 올리지 않아, 오로지 뒤쫓을 뿐이다. 점점 가까워지자, 조운이 활을 집어 들고 화살을 매겨, 뱃꼬리에 서서 크 게 외친다.
"나는 상산의 조자룡이다! 영을 받아 특별히 군사를 모시러 왔다. 너는 왜 뒤쫓냐? 본래 1발에 너를 쏴 죽일 것이나, 양가 兩家의 화기 和 氣를 잃게 할 것이 틀림없으니 네게 내 수단만 보여주마!"
말을 마치더니, 화살이 날아 와, 서성의 배 돛을 끊어 버린다. 그 돛이 추락해 물에 빠지니, 배가 비틀거린다. 조운이 지시해 돛을 활 짝 펴, 순풍을 타고 가버린다. 그 배가 나는 듯하니, 뒤쫓아도 미치지 못한다.
강기슭의 정봉이 서성의 배를 강기슭 가까이 불러, 말한다.
"제갈량의 신기묘산, 사람이 미치지 못하겠소. 게다가 조운은 만부지당 萬夫不當의 용맹을 갖췃소. 그대는 당양 장판의 일을 알지 못하 오? 우리는 부득불 돌아가 알려야겠소."
이에 두 사람이 돌아가 주유를 만나, 공명이 미리 조운과 선약해 영접하게 한 것을 말하자, 주유가 크게 놀라 말한다.
"그 자가 그토록 꾀가 많으니, 내 밤새 편히 잘 수가 없겠소!"
노숙이 말한다.
"우선 조조를 쳐부순 뒤, 다시 도모합시다."
주유가 그 말을 따라, 장수들을 불러 모아 영을 듣게 한다. 먼저 감녕에게 지시해 채중과 항복한 병사들을 데리고 남쪽 기슭으로 가게 한 다.
"북군의 기호 旗號(깃발)를 들고, 바로 오림 烏林 지역으로 가면, 바로 조조의 둔량 屯糧 (식량을 쌓아둠) 장소가 나올 것이오. 군중으로 깊이 침투해, 불을 붙여 신호하시오. 다만 채화는 막사 안에 남겨 두면, 내 따라 쓸 데가 있소."
두번째로 태사자를 불러 분부한다.
"그대는 3천 병력을 이끌고, 황주 경계로 곧장 가, 조조의 합비 合淝 접응 병력을 끊고, 조조 병력을 마주치거든, 불을 놓아 신호하시오. 홍기 紅旗가 보이면, 바로 오후 吳侯께서 이끄시는 접응 병력이 도착한 것이오."
이들 두 부대가 제일 먼저 떠난다. 세번째로 여몽을 불러 3천 병력을 거느려 오림으로 가, 감녕이 조조 채책 寨柵을 불사르는 것을 접응 하게 한다. 네번째로 능통을 불러 3천 병력을 거느려, 바로 이릉 彝陵 입구로 가, 오림에서 불이 치솟으면, 출병해 접응하게 한다. 다섯번 째로 동습을 불러 3천 병력을 거느려, 한양 漢陽을 곧장 취해, 한천 漢川으로부터 조조 영채로 내달려, 백기가 보이면 접응하라 한다. 여 섯번째로 반장 潘璋을 불러 3천 병력을 거느려, 모조리 백기를 들고 한양으로 가 동습과 접응하게 한다.
여섯 부대의 군마들이 각각 길을 나눠 떠난다. 황개에게 영을 내려 화선 火船을 안배해, 소졸을 보내 조조에게 오늘밤 투항하겠다는 글을 바치게 한다. 한편으로 전선 4개 함대를 뽑아, 황개의 배를 뒤따라 접응하게 한다. 제1대의 영병 領兵(지휘) 군관은 한당, 제2대의 영 병 군관은 주태, 제3대의 영병 군관은 장흠, 제4대의 영병 군관은 진무다. 4개 함대는 각각 전선 3백척을 이끌고, 전면에 각각 화선 20척을 배치한다. 주유 스스로 정보와 더불어 큰 몽동 전선 위에서 독전하고, 서성과 정봉이 좌우에서 호위하는데, 다만 노숙이 감택, 모사들 과 함께 영채를 지킨다. 정보가 보니 주유의 용병이 법도가 있어, 깊이 탄복한다.
한편 손권은 사자를 보내 병부 兵符 (장수가 명령을 발포하는 신부)를 보내고 말하기를, 이미 육손을 선봉으로, 점황 蔪黃 지역으로 바 로 가도록 보내고, 오후 손권 스스로 뒤에서 접응할 것이라 한다. 주유도 사람을 보내 서산에서 방화하면, 남병산에서 깃발을 들게 한다. 각각 준비를 마쳐, 오로지 황개의 거동을 기다린다.
이제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 유현덕은 하구에서 오로지 공명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데 한무리 선단이 몰려 오니 공자 유기가 직접 소식을 알고자 온 것이다. 현덕이 적루 敵樓 (적을 살피는 망루)로 불러 자리잡고 앉아, 이야기한다.
"동남풍이 거세게 불기에, 자룡을 보내 공명을 접하게 하였으나, 지금까지 오는 게 보이지 않아, 내 마음이 몹시 걱정이네."
소교 小校(병사)가 손가락으로 번구 어귀를 가리켜 말한다.
"돛에 바람을 가득 실은 배가 오고 있는 게 아무래도 군사이십니다."
현덕이 유기와 더불어 영접하러 적루를 내려간다. 잠시 뒤, 공명, 자룡이 강기슭을 오르니, 현덕이 크게 기뻐한다. 문안 인사를 마쳐, 공명이 말한다.
"우선 다른 이야기를 할 틈이 없습니다. 지난날 약속한 군마며 전선은 모두 준비되지 않았습니까?"
현덕이 말한다.
"수습한 지 오랩니다. 오로지 군사께서 배치해 쓰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명이 현덕, 유기와 더불어 막사로 들어가 좌정한 뒤, 조운에게 이른다.
"자룡은 3천 군마를 거느려, 강을 건너 바로 오림의 소로 小路(좁은 길. 지름길)로 가, 수풀과 갈대가 우거진 곳에 매복하시오. 오늘밤 4 경 이후, 조조가 필시 그 길로 달아날 것이오. 그들 군마가 지나기를 기다려, 반쯤 지나거든 불을 놓으시오. 모조리 다 죽일 것은 없고, 절 반만 죽이면 되오."
"오림에는 두 갈래 길이 있소. 한 갈래는 남군으로 통하고, 한 갈래는 형주로 가는 것이오. 어느 갈래 길로 올지 알지 못하시오?"
"남군은 사세가 급박해, 조조가 감히 가지 못해, 반드시 형주 쪽으로 오고, 그 뒤 대군 大軍이 허창으로 달아날 것이오."
조운이 계책을 받들어 떠난다. 다시 장비를 불러 말한다.
"익덕은 3천 병력을 거느려 강을 건너, 이릉 쪽 길을 차단하고, 호로곡 葫蘆谷 입구로 가 매복하시오. 조조가 감히 남이릉 南彝陵으로 가 지 못하고, 틀림없이 북이릉으로 갈 것이오. 내일 비가 온 뒤, 그는 틀림없이 솥을 놓고 밥을 지을 것이오. 밥 짓는 연기가 솟거든, 바로 산비탈에서 불을 놓으시오. 비록 조조를 사로잡지 못하더라도, 익덕은 거기서 공을 세움이 적지 않을 것이오."
장비가 계책을 받들어 떠난다. 다시 미축, 미방, 유봉, 세 사람을 불러, 각각 배를 타, 강을 돌며 패군 敗軍들을 죽이거나 사로잡게 한다. 세 사람이 계책을 받들어 떠난다. 공명이 일어나, 공자 유기에게 말한다.
"무창은 일망지지 一望之地 (눈으로 살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의 땅)이니, 가장 긴요합니다. 공자께서 어서 돌아가시기를 청합니다. 휘 하 병력을 거느리고, 안구 岸口에 포진하십시오. 조조가 한바탕 패해 도망쳐 오거든,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나 성곽을 함부로 떠나서 는 안 됩니다. "
유기가 현덕, 공명을 작별해 떠난다. 공명이 현덕에게 말한다.
"주공께서는 번구에 주둔하셔서, 높은 곳에서 살피며 편안히 앉아 오늘밤 주랑이 큰 공을 세우는 것을 보시면 됩니다."
이때 운장이 옆에 있었으나, 공명이 전혀 거들떠보지 않는다. 운장이 참지 못하여, 소리 높여 말한다.
"이 관모 關某, 형장을 따라 정전 征戰한 지 다년 多年이나, 아직 낙후 落後 (낙오)한 적 없소. 금일 대적 大敵을 만나거늘, 군사께서 도리 어 아무 것도 맡기지 않으시니, 이게 무슨 뜻이오?"
공명이 웃는다.
"운장! 괴이히 여기지 마시오! 내 본래 족하 足下께 제일 긴요한 애구 隘口를 맡겨 드리고 싶었으나, 어쩐지 무언가 거리끼는 게 있어, 감 히 가라 못하겠소."
"무엇이 거리끼오? 어서 알려 주시기 바라오."
"석일 昔日 조조가 족하를 심히 후하게 대하여, 족하께서 마땅히 보답해야 할 것이오. 금일 조조가 패전하면, 반드시 화용도 華容道로 달 아나오. 만약 족하로 하여금 그곳으로 가라 하면, 틀림없이 그를 놓아 줄 것이오. 이래서 감히 가라 못하겠소."
"군사께서 쓸데없는 걱정을 하시는구려! 당시 조조가 저를 중히 대한 것은 맞지만, 제가 이미 안량을 참하고, 문추를 주살해 백마의 포위 를 풀어 그에게 보답했소. 금일 마주친들, 어찌 함부로 풀어주겠소!"
"만약 놓아주면, 어찌하시겠소?"
"바라건대, 군법을 따르겠소."
"그렇다면, 군령장 軍令狀(군법 준수 각서)을 쓰시오."
운장이 군령장을 건네고, 말한다.
"만약 조조가 그 길로 오지 않으면 어찌하오?"
"저도 그대에게 군령장을 주겠소."
운장이 크게 기뻐하는데, 공명이 말한다.
"운장께서 화용소로 華容小路(소로는 좁은 길. 지름길) 높은 산 위에 시초 柴草 (장작과 마른 풀)를 퇴적 堆積하여, 한줄기 불과 연기를 피워 올려, 조조를 유인해 오게 하시오."
"조조가 연기를 바라보고, 매복이 있을 걸 알텐데, 어찌 기꺼이 오겠소?"
"병법에 나오는 허허실실 虛虛實實 이야기를 듣지 못했소? 조조가 비록 용병에 능하다 하나, 이것으로 그를 기만할 수 있소. 그가 연기를 보면, 허장성세 虛張聲勢라 여겨, 반드시 그 길로 올 것이오. 장군은 절대 용서하는 마음을 품지 마시오."
운장이 장령 將令(군령. 장수의 명령)을 받은 뒤, 관평, 주창과 5백인의 도수 刀手를 이끌고, 화용도에 매복하러 갔다. 현덕이 말한다.
"내 아우는 의기 義氣가 심히 중 重하여, 과연 조조가 화용도로 간다면, 아무래도 그를 놓아줄까 걱정입니다."
"제가 밤에 건상 乾象(천문 현상)을 관찰하니 조조 도적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닙니다. 저렇게 인정을 베풀어, 운장더러 놓아 주게 하는 것 도, 역시 아름다운 일이겠습니다."
"선생의 신산 神算을 세상이 어찌 조금이라도 따르겠소!"
공명이 마침내 현덕과 더불어 번구로 가 주유의 용병을 살피고, 손건, 간옹을 남겨 수성 守城하게 한다.
한편 조조는 대채 大寨 (큰 진지) 안에서 장수들과 더불어 상의하며, 오로지 황개의 소식을 기다린다. 그날 동남풍이 몹시 거세게 불자, 정욱이 들어가 조조에게 고한다.
"오늘 동남풍이 부니, 미리 제방 隄防(방비)해야 합니다."
조조가 웃는다.
"동지일양생 冬至一陽生 (동지 이후 해가 점점 길어지는 현상을 양기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으로 봤다)이라 양기가 다시 돌아오는 시 기에, 어찌 동남풍이 불지 않겠소? 괴이할 게 무엇이오?"
그런데 어느 병사가 강동에서 작은 배 한 척이 황개의 밀서를 가지고 왔다고 알리므로, 조조가 급히 불러 들인다. 그 사람이 서찰을 바치는데, 내용은 이렇다.
"주유의 경계가 엄하여 탈출할 방도가 없습니다. 이제 파양호에서 새로 군량이 도착하여 주유가 저를 보내어 순찰하게 하니 방편으로 삼습니다. 아무튼 강동의 명장을 죽여 그 목을 가지고 투항하겠습니다. 오늘 저녁 3경, 배 위에 청룡아기를 꽂은 것이 바로 군량을 실은 배입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장수들과 더불어 수채의 큰 배 위로 가서, 황개의 배가 도착하는지 관망한다.
한편 강동에서는 하늘이 점차 저녁으로 향하자 주유가 채화를 불러내, 병사를 시켜 그를 포박해 넘어뜨리니, 그가 외친다.
"나는 무죄 無罪요!"
주유가 말한다.
"네 뭐하는 놈이기에, 감히 거짓으로 항복했냐! 내 이제 군기에 제사지낼 제물이 모자란데 네 수급을 빌려야겠다."
채화가 어쩔 수 없자, 크게 외친다.
"너희 감택과 감녕도 벌써 모반했구만!"
"그거야 내가 시킨 것이다."
채화가 후회해 마지않는다. 주유가 다그쳐 강변의 조도기 皂纛旗 아래 끌고가, 술을 땅에 뿌리고 지전 紙錢을 태우더니, 한칼에 채화를 목베어, 그 피로 군기에 제사 올리고 배들을 출전 시킨다. 황개는 세번째 화선 火船을 타고 홀로 엄심갑 掩心甲 (가슴갑옷)을 입고 손에 예리한 칼을 들었는데, 깃발에 크게 '선봉 황개'라 적었다. 황개가 가득히 순풍을 받아 적벽으로 진발한다.
이때 동풍이 크게 일어, 파랑 波浪이 흉용 洶湧(몹시 사나움)하다. 조조가 중군에서 멀리 강건너를 바라보니, 모든 강줄기가 금빛 뱀이 굼실대는 듯하여, 물결을 뒤집고 희롱한다. 조조가 바람을 맞아 크게 웃으며, 아주 마음에 들어한다. 그런데 병사 하나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강남에서 은은히 한무리 돛배들이 바람을 타고 옵니다."
조조가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보는데, 병사가 칭송한다.
"모두 청룡아기를 꽂았습니다! 그 가운데 큰 깃발에 '선봉 황개'라 높이 적었습니다."
조조가 웃는다.
"공복(황개)이 항복하러 오네! 하늘이 나를 돕네!"
배들이 점점 다가온다. 정욱이 한참 관망하다, 조조에게 말한다.
"오는 배가 아무래도 수상하네요. 어서 수채 가까이 오지 못하게 지시하십시오."
"어떻게 아시오?"
"군량을 실었으면, 배는 필시 깊이 잠깁니다. 지금 오는 배를 관찰하니, 가볍게 떠서 옵니다. 게다가 오늘밤 동남풍이 몹시 부니, 행여나 속임수라면, 어떻게 막겠습니까?"
조조가 깨달아 묻는다.
"누가 가서 막겠소?"
문빙이 말한다.
"제가 물 위는 제법 익숙하니, 한번 가게 해주십시오."
말을 마쳐, 작은 배로 뛰어내려, 손으로 지시하자, 십수척의 순선들이 문빙의 배를 따라 나간다. 문빙이 뱃머리에서 크게 외친다.
"승상의 균지 鈞旨를 전한다. 강남 배들은 수채 가까이 오지 말고, 강 가운데 머물라!"
병사들이 일제히 소리지른다.
"어서 돛을 내려라!"
말을 미처 못 마쳐, 활시위 소리 울리더니, 문빙이 왼팔에 화살을 맞아, 배 안에 쓰러진다. 배 위가 크게 혼란해, 각각 도망쳐 돌아간다. 강남 배들이 조조 수채로부터 겨우 2 리 밖 수면까지 다다른다. 황개가 칼을 들어 지시하자, 앞장선 배들이 일제히 불을 붙인다. 불길이 바람의 위세를 타니, 바람이 불기운을 돕고, 배들이 쏜살같이 나아가, 연기와 불꽃이 하늘을 가린다. 20척 화선 火船이 수채로 돌입하니, 조조 수채의 배들이 일시에 모조리 불붙는다. 게다가 쇠사슬로 묶어놓아, 어디 달아날 수도 없다. 강건너 신호포 소리 울리더니, 사방에서 화선들이 일제히 다다라, 삼강 三江 물 위는 불길이 바람을 타고 날아들 뿐이니, 온통 붉은 빛이 하늘과 땅을 채운다.
조조가 강기슭 위의 영채를 되돌아보니, 거기도 여러군데 불이 붙었다. 황개가 작은 배로 뛰어내려, 뒤따르는 몇몇과 배를 타고, 연기를 무릅쓰고 불길을 뚫어, 조조를 찾는다. 조조가 보니 형세가 다급하여, 막 강기슭으로 뛰어내리려 하는데 장요가 한 척의 작은 각선 腳船 (돛단배의 일종)을 타고 온다. 조조를 부축해 배에 태우는데, 큰 배 한 척이 어느새 나타났다. 장요가 열몇 사람과 더불어 조조를 보호해, 안구 岸口로 나는듯이 달아난다. 황개가 멀리 강홍포絳紅袍 (붉은 도포)를 입은 자가 배에 타는 것을 보고, 조조라고 여겨, 배를 속히 나아가게 다그치며, 손에 예리한 칼을 들고, 소리 높여 크게 외친다.
"조조 도적! 달아나지 마라! 황개가 여기 있다!"
조조가 연달아 구해달라 외친다. 장요가 활을 들어 화살을 매겨, 황개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려, 한 발을 날린다. 이때 바람소리가 마침 크 고, 황개는 불빛에 가려 있으니, 어찌 활시위 소리를 들으리오? 어깻죽지에 명중하여, 뒤집혀 물에 빠진다.
불난리가 성한데 물난리도 만나니, 봉창이 나은 뒤 금창을 앓는 격이구나.
황개의 목숨이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