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제68회 감녕이 일백 기병을 이끌고 위나라 영채를 습격하고 좌자가 술잔을 던져 조조를 희롱한다
한편 손권은 유수구에 머물며 군마를 수습하는데 보고가 올라오니 조조가 한중에서 사십만 대군을 이끌고 합비를 구하러 온다는 것이다.
손권이 모사와 상의해 먼저 동습과 서성 두 사람더러 오십여 척의 큰 배를 이끌고 유수구에 매복하게 한다. 진무에게 명해 인마들을 대령해 강둑을 순찰하게 한다.
장소가 말한다.
"이제 조조가 멀리 오니 반드시 그 날카로운 기세를 꺾어야 합니다."
이에 손권이 부하들에게 묻는다.
"조조가 멀리서 오는데 누가 앞장서 적병을 깨뜨려 그 날카로운 기세를 꺾어놓겠소?
능통이 나서며 말한다.
"제가 가겠습니다."
"병사는 얼마나 데려가겠소?"
"삼천 인이면 족하겠습니다."
감녕이 말한다.
"일백 기병만 있으면 바로 적병을 격파하겠는데 하필 삼천입니까?"
능통이 크게 노한다. 둘이 손권 앞에서 다투며 일어선다.
손권이 말한다.
"조조의 군세가 대단하니 가벼이 대적할 수 없소."
이에 능통에게 명령해 삼천 병사를 거느려 유수구를 나와 정찰하다 조병과 만나면 바로 교전하라 명한다.
능통이 명령대로 삼천 인마를 거느려 유수의 성채를 떠난다. 먼지 구름이 일더니 조 병(조조의 군대)이 어느새 당도한다. 선봉장 장요가 능통과 맞붙어 오십여 합을 싸워 승부를 못 낸다.
손권은 능통이 실수할까 여몽에게 명령해 그를 도와 영채로 돌아오게 한다. 감녕은 능통이 돌아오자마자 손권에게 고한다.
"제가 오늘 밤 일백 인마만 거느려 조병의 영 채를 습격하겠습니다. 만약 사람이나 말이나 하나라도 잃어버린다면 전공으로 치지 않겠습 니다."
손권이 그를 장하게 여겨 수하에 있던 일백의 마병(기병)을 감녕에게 주고 게다가 술 오십 병과 양고기 오십 근을 병사들에게 하사한다. 감녕이 영채로 돌아간다.
감녕이 일백 사람에게 줄지어 앉으라 지시하고 먼저 은사발에 술을 따라 스스로 두 사발을 마신다. 이어서 일백 사람에게 지시한다.
"오늘 밤 명령을 받들어 적진을 습격할 곳이오. 여러분에게 청하노니 각자 한 사발 가득 들이키고 힘을 내어 전진해 주시오."
사람들이 듣더니 서로 눈치를 본다. 감녕은 사람들 얼굴에 어려워하는 빛이 보이자 손에 칼을 뽑아들고 성을 내며 꾸짖는다.
"내가 상장 上將인데도 목숨을 아끼지 않거늘 너희가 어찌 머뭇거리냐?"
사람들이 감녕의 낯빛이 바뀌는 것을 보고 모두 일어나 절하며 말한다.
"죽기로 싸우겠습니다."
감녕이 술과 고기를 내어 일백 사람과 함께 마신다. 식사를 마쳐 이 경에 이를 무렵 하얀 거위의 깃털을 백 개 가져다 투구에 꽂아 표시 로 삼는다. 모두 갑옷을 걸치고 말에 올라 조조 영채 둘레로 나는 듯이 달려가 방어용 녹각을 뽑아 치우고 크게 한바탕 함성을 지르며 영채 안으로 돌입해 곧바로 중군으로 쳐들어가 조조를 죽이려 한다.
알고보니 중군은 수레와 짐을 길가에 놓아 겹겹이 둘러싸놓은지라 뚫고 가자니 철통 같아 나아갈 수 없다. 감녕이 일백 기병만 거느리 고 좌충우돌한다. 조병이 놀라 허둥대며 적병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 너도나도 소란스럽다.
저 감녕의 일백 기마가 영채 안을 휘저으며 닥치는대로 죽인다. 곳곳의 영채마다 북소리 요란하고 횃불을 별처럼 밝히고 함성이 크게 울 린다. 감녕이 영채의 남문을 뚫고 나와도 아무도 감히 막지 못한다.
손권이 주태에게 명해 1군을 이끌고 돕게 한다. 감녕이 일백 기병을 이끌고 유수로 되돌아 온다. 조조는 매복이 있을까 두려 워 감히 추격하지 못한다. 후대에 누군가 시를 남겨 기렸다.
작은 북 소리 땅을 뒤흔들며 달려드니
동오 병사 가는 곳마다 귀신도 우는구나
하얀 깃털 꽂고 바로 조조 진영을 꿰뚫으니
모두 감녕을 호랑이 같은 장수라 말하네
감녕이 일백 기병을 거느려 영채로 돌아오나 사람 하나 밀 한 필 잃지 않았다. 영문에 다다라 일백 사람에게 명해 북을 치고 피리를 불게 하며 입으로 만세를 불러 환호성이 천지를 뒤흔든다,
손권이 몸소 나와 영접하니 감녕이 말에서 내려 절하며 엎드린다. 손권이 부축해 일으키며 감녕의 손을 잡고 말한다.
"장군이 이렇게 다녀와서 늙은 도적을 놀라게 만드셨소. 고 孤가 말리지 않은 것은 다만 경 卿의 담력을 보고자 했기 때문이오."
즉시 비단 천 필과 예리한 칼 백 자루를 내려주니 감녕이 고개 숙여 받아 그들 일백 사람에게 나눠 준다. 손권이 여러 장수에게 말한다.
"맹덕에게 장요가 있지만 고에겐 감흥패가 있으니 족히 서로 대적할 만하겠소."
다음날 장요가 병력을 이끌고 도전한다. 능통은 감녕이 공을 세운 것을 보았기에 분연히 말한다.
"제가 장요와 맞서고 싶습니다."
손권이 허락해 능통이 마침내 병력 오천을 거느려 유수를 나온다.
손권이 몸소 감녕을 데리고 싸움터로 가서 싸움을 구경한다. 포진을 마쳐 장요가 출마하는데 왼쪽은 이전이고 오룐쪽은 악진이다. 능통 이 말을 내달려 칼을 들고 진지 앞으로 나간다.
장요가 악진을 출전시킨다. 둘이 오십 합을 싸워도 승부를 가리지 못한다. 조조가 전해듣고 몸소 말을 몰아 문기 아래 나와서 두 장수의 감투를 지켜보더니 조휴에게 명해 몰래 냉전(저격하는 화살)을 쏘게 한다.
조휴가 재빨리 장요 배후로 가서 활을 당겨 한 발 쏘니 능통이 타고 있던 말에 바로 맞는다. 그 말이 곧바로 솟구치니 능통이 번쩍 들려 뒤집어져 땅에 나뒹군다. 악진이 황급히 창을 들고 찌르러 온다.
그러나 창 끝이 미처 닿기 앞서 활시위 소 리 들리더니 화살 한 발이 악진의 얼굴에 바로 맞아 몸이 뒤집혀 굴러 떨어진다. 양쪽 병사들이 일제히 나와서 각각 장수를 구해 영채로 돌아가고 징을 울려 싸움을 끝낸다.
능통이 영채로 돌아와 손권에게 절을 올려 사례하자 손권이 말한다.
"화살을 쏴 그대를 구한 이는 감녕이오."
이에 능통이 머리를 조아려 감녕에게 절한다.
"공께서 이렇게 은혜를 내려주실지 몰랐소."
이로부터 감녕과 더불어 생사지교 生死之交를 맺어 다시는 나빠지지 않는다.
한편 조조는 악진이 화살에 맞자 몸소 막사를 찾아가 조치한다. 다욤날 병력을 두섯 갈래로 나눠 유수를 습격한다. 조조가 가운데를 맡 고 왼쪽 첫 갈래는 장요가, 두번째 갈래는 이전이 맡는다. 오른쪽 첫 갈래는 서황이, 두번째 방덕이 맡는다.
각 갈래마다 일만 인마를 거느려 강변으로 쇄도해 온다. 이때 동습과 서성 두 장수가 배 위에 있었는데 다섯 갈래 군마가 몰려오자 동오 병사 모두 두려운 낯빛이 보인다.
서성이 말한다.
"주군의 봉록을 받아먹어 주군의 일에 충성해야 하거늘 어찌 두려워 하는가?"
마침내 용맹한 병사 수백을 거느려 작은 배를 타고 강건너로 가서, 이전이 이끄는 병사들 속으로 쳐들어 간다.
동습이 배 위에서 병사들에게 명해 북을 맹렬히 치고 함성을 질러 위세를 더하게 한다. 홀연히 강물 위로 사나운 바람이 크게 불고 하 얀 물결이 하늘 높이 솟아 파도가 흉용하다.
병사들은 큰 배가 곧 뒤집힐 듯하자 다퉈서 배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구하려 한다. 동습이 검을 잡고 크게 꾸짖는다.
"장수가 군주의 명을 받아 여기서 도적들을 막고 있거늘 어찌 감히 배를 버리고 가냐!"
곧 하선한 병사를 열 명 남짓 베어버린다.
잠시 뒤 바람이 거세어 배가 뒤집혀 동습이 결국 강 어귀에 빠져 죽는다. 서성은 이전의 병사들 속에서 좌충우돌한다.
한편 진무는 강변의 교전 소식을 듣고 한 무리 군을 이끌고 와서 바로 방덕과 마주쳐 양군이 혼전한다. 유수의 성채 안에 있던 손권은 조병이 강변으로 쇄도한 것을 전해듣고 몸소 주태와 더불어 군을 이끌고 전진해 돕는다.
마침 서성이 이전의 군중에서 한바탕 휘저으며 싸우는 것을 본 손권이 군대를 지휘해 돌입해 돕는다. 그러나 장요와 서황의 2개 지대에게 오히려 손권이 포위되고 만다. 조조가 높은 언덕에서 보니 손권이 포위된지라 서둘러 허저에게 명해 말을 내달려 칼을 들고 군중에 돌입하게 하니 손권군이 두 조각으로 쪼개져 피차 서로 구할 수 없다.
한편 주태가 군중을 뚫고 나와 강변에 이르지만 손권이 보이지 않는다. 말을 되돌려 바깥에서 다시 진중으로 돌입해 휘하 병사들에게, " 주공은 어디 계신가?"라고 묻는다. 어느 군인이 손가락으로 저기 병마들이 몰려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한다.
"주공께서 포위돼 심히 위급하십니다."
주태가 앞장서 돌입해 손견을 찾아내어 말한다.
"주공! 어서 제 뒤에 바짝 붙어 탈출하십시오."
이에 주태가 앞서고 손권이 그 뒤에 붙어 힘껏 돌격한다.
주태가 강변에 이르러 다시 되돌아보니 손권이 사라져 또다시 몸을 돌려 진중으로 돌입해 재차 손권을 찾아내니 손권이 말한다.
"궁노를 일제히 쏘아대서 탈출할 수 없는데 어찌하겠소?"
"주공께서 앞에서 가시고 제가 뒤를 맡으면 포위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손권이 말을 내달려 앞서고 주태는 좌우에서 막아 지키느라 몸 여러 군데가 창에 찔리고 화살이 박히지만 마침내 손권을 구해낸다. 강변에 다다르자 여몽이 수군 1지대를 거느리고 달려와 배에 타는 것을 돕는다.
손권이 말한다.
"나는 주태가 세 번이나 돌격한 덕분에 두터운 포위를 벗어날 수 있었소. 다만 서성이 아직도 포위돼 있는데 어떻게 탈출하겠소?"
주태가 말한다.
"제가 다시 구하러 가겠습니다."
결국 창을 휘두르며 다시 몸을 돌려 그 두터운 포위 가운데 돌입해 서성을 구해낸다. 두 장수 각각 중상을 입은 상태다. 여몽이 병사들에게 지시해 강둑 위의 적병들을 향해 난사해 두 장수를 구해 배에 태운다.
한편 진무는 방덕과 크게 싸우지만 후면에 아무 지원병이 없어 방덕에게 쫓겨 산골짜기 입구까지 가니 수풀이 빽빽해 다시 몸을 되돌려 싸우려 한다. 그러나 나뭇가지에 옷소매가 걸려 대적하지 못하고 마침내 방덕에게 살해된다.
조조는 손권이 탈출하자 스스로 말을 몰아 병력을 동원해 강변까지 뒤쫓아 마주보고 사격한다. 여몽이 화살이 바닥나 당황하자 강 건너 한 무리 배가 당도한다. 앞장선 대장은 바로 손책의 사위인 육손으로 스스로 십만 병력을 거느려 도착한다.
한바탕 사격해 조병을 물리치고 기세를 타고 강둑을 올라 조병을 뒤쫓아 죽여 전마 수천 필을 빼앗는다. 조병이 사상자를 헤아릴 수 없 게 대패해 돌아간다. 이런 난전 가운데 진무의 시신을 찾아낸다.
손권은 진무가 죽은데다 동습도 강물에 빠져 죽은 것을 알고 몹시 애통해 하고 사람들을 시켜 물 속에서 동습의 시신을 찾아내어 진무의 시신과 함께 크게 장례 지내준다. 또한 주태가 자신을 구호한 공에 감격해 연회를 베풀어 환대한다.
순권이 친히 술잔을 잡고 그 등을 어루만지고 알굴 가득 눈물 흘리며 말한다.
"경께서 두 번이나 구해주며 목숨숨을 돌보지 않았소. 수십 군데 찔리고 베여 살갗이 마치 그림을 새긴 듯하오. 고 역시 어찌 참으로 골 육의 은혜로써 대해 경에게 병마의 중임을 맡기지 않겠소? 경은 바로 고의 공신이니 고는 마땅히 경과 더불어 영용과 고락을 같이하겠 소."
말을 마치고 주태에게 명해 옷을 벗어 장수들에게 보이게 한다. 그 피부가 마치 칼로 도려낸 듯한 흉터가 온 몸에 걸쳐 있다. 손권이 흉 터들을 가리키며 일일이 묻는다.
주태가 전투에서 상처를 입은 상황을 자세히 말한다. 상처 하나에 술 한 잔을 마시게 손권이 명하니 이 날 주태가 크게 취한다. 손권이 청 라 비단으로 만든 일산을 내려 출입할 때마다 펼쳐서 영예를 드러내게 한다.
손권이 유수에 머물며 조조와 대치하기 한달 남짓이지만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 장소와 고옹이 사뢴다.
"조조의 세력이 강대해 힘으로 취할 수 없습니다. 싸움을 오래 끈다면 사졸들을 크게 잃게 됩니다. 화친을 요청해 우선 백성을 안정시킴 만 못하옵니다."
손권이 그 말을 따라 보즐에게 명령해 조조를 찾아가 화친을 구하며 해마다 세공을 바칠 것을 약속하게 한다. 조조가 보자니 강남은 아 직 쉽게 점령할 수 없어 이를 따른다. 손권더러 먼저 인마들을 물려야 자신이 철군할 것이라 한다.
보즐이 돌아가 사뢰자 손권이 오로지 장흠과 주태를 남겨 유수구를 지키게 하고 나머지 대병력을 모조리 배에 태워 말릉으로 되돌아간 다.
조조가 조인과 장요를 남겨 합비에 주둔하게 하고 허창으로 철군한다. 여러 문무관리들이 모두 의논해 조조를 위왕으로 세우려 한다. 상서 벼슬에 있던 최염이 그것은 불가하다고 힘써 말한다.
관리들이 말한다.
"그대만 순문약(순욱)이 어찌되었는지 못 보았단 말이오?"
최염이 크게 노해 말한다.
"때가 왔구나! 때가 왔구나! 변고가 있고 말겠구나! 스스로들 알아서 하시오!"
최염과 불화하던 이가 있어 조조에게 고지하니 조조가 크게 노해 최염을 잡아들여 하옥해 심문한다. 최염은 호랑이 같은 눈에 용처럼 구부러진 수염을 길렀는데 오로지 조조를 크게 욕하며 임금을 업신여기는 간사한 역적이라 한다. 죄수를 심문하는 벼슬아치인 정위가 조조에게 알리자 조조가 명령해 옥중에서 때려죽인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렸다.
맑은 물 같은 최염은 천성이 굳세었네
용 수염, 호랑이 눈, 무쇠 심장을 가져
간사를 멀리하고 절개를 드러냈구나
충심으로 한나라 임금을 섬겨 천고에 이름을 떨치네
건안 이십일년 여름 오월에 신하들이 헌제에게 글을 올려 위공 조조의 공덕을 칭송하며 그 공덕이 하늘과 땅에 닿아 옛날의 이윤이나 주공도 미치지 못하니 마땅히 그 작위를 높여 왕이 돼야 할 것이라 한다. 헌제가 즉시 종요에게 명령해 조서를 기초해 조조를 위왕으로 책립한다.
조조가 거짓으로 세 번 글을 올려 사양한다. 조서를 내려 세 번 모두 받아들이지 않자자 조조가 이에 명을 따라 위왕의 작위를 받는다. 열 두 개의 주옥이 달린 면류관을 쓰고 금은으로 꾸민 수레를 탄다. 그 수레를 여섯 마리 말이 끌고, 나가고 들어올 때 사람들의 왕래를 통 제하며 업군에 위왕의 궁궐을 지어올리고 세자를 세울 것을 의논한다.
조조의 본처인 정부인은 자식을 낳지 못했다. 첩 유씨는 조앙을 낳았지만 장수를 정벌할 때 완성에서 전사했다. 변씨는 네 아들을 낳았 으니 첫째는 조비, 둘째는 조창, 셋째는 조식, 넷째는 조웅이다.
이에 정부인을 내치고 변씨를 위왕비로 세운다. 셋째아들 조식 '건양'이 극히 총명해 붓만 들면 문장이 완성되니 조조가 후사로 삼고자 한다. 맏아들 조비가 책립 받지 못할까 두려워 중대부 가후에게 계책을 묻는다.
가후가 이렇게저렇게 하라 알려준다. 이로부터 조조가 출정해 아들들이 송행할 때마다 조식이 공덕을 칭송해 입만 열면 문장을 이룬다. 오로지 조비만이 부친과 작별할 때 눈물흘리며 절할 따름이니 좌우에서 모두 감탄한다.
이에 조조는 조식이 약삭빠르기만 하지 진심은 조비보다 못하지 않은가 의심한다. 조비가 또한 조조를 가까이 모시는 이들을 매수하게 모두 조비의 덕을 칭송한다. 조조가 후사를 세우려다가 주저해 결정하지 못하고 가후에게 묻는다.
"고가 후사를 세우려 하는데 누구를 세워야겠소?"
가후가 대답하지 않아 조조가 까닭을 묻자 가후가 말한다.
"생각한 것은 있사오나 즉답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
"대체 무슨 생각이오?"
가후가 대답한다.
"윈본초와 유경승 부자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조조가 크게 웃으며 마침내 맏아들 조비를 왕세자로 세운다. 그해 겨울 시월에 위왕의 궁궐이 완성돼 사람들을 곳곳에 보내 진기한 꽃과 과일을 거둬 모아 뒷뜰에 심어 기른다. 사자가 동오에 이르러 손권을 만나 위왕의 영지를 전하고 다시 온주로 가서 감귤을 취한다.
그때 손권이 위왕을 존양하고 있어서 곧 사람을 시켜 본성에서 커다란 감귤 사십여 꾸러미를 골라 그날밤 업군으로 가져오게 한다.
오는 길에, 짐꾼들이 지쳐 산기슭에서 쉬는데 어느 선생이 나타난다. 그의 한쪽 눈이 멀고 한쪽 다리는 절뚝거리는데 머리는 하얀 등나 무 관을 쓰고 몸은 푸른 누더기옷을 걸치고 있다. 짐꾼들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며 말한다.
"여러분이 짐을 나르느라 수고하니 빈도(도인이 스스로 낮추는 말)가 여러분을 대신해 메고 가고 싶은데 어떻소?"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니 선생이 짐꾼마다 각각 오 리씩 짐을 대신 메고 간다. 그런데 선생이 메고 난 짐들 모두 가벼워진다. 사람들 모두 놀라고 의심한다. 선생이 떠날 때 감귤 수송을 감독하는 관리에게 말한다.
"빈도는 바로 위왕과 동향으로 좌자 '원방'이고 도호는 오각선생 烏角先生이오. 여러분이 업군에 도착하거든 이 좌자의 뜻을 전해주시오."
감귤을 가진 이들이 업군에 이르러 조조를 만나 감귤을 바친다. 조조가 몸소 갈라보는데 모두 빈 껍질뿐 속에 아무 과육이 없다. 조조가 크게 놀라 감귤을 가져온 사람들에게 묻는다. 감귤을 가져온 사람이 좌자를 만난 일을 이야기한다.
조조가 아직 믿지 못하는데 문지기가 보고한다.
"어느 선생이 좌자를 자칭하며 만나뵙고자 합니다."
조조가 불러들이자 감귤을 가져온 사람이 말한다.
"이 분이 바로 도중에 만난 사람입니다."
조조가 꾸짖는다.
"네가 무슨 요술을 부려 내 과일을 훔쳐 갔냐?"
좌자가 웃으며 말한다.
"어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가 감귤을 갈라보니 모두 속에 과육이 있는데 그 맛이 몹시 달콤하다. 다만 조조가 가른 것들만 모두 비어있다.
조조가 더욱 놀라 좌자에게 자리를 내주며 그에게 묻는다. 좌자가 술과 고기를 찾자 조조가 명해 그에게 주는데 술을 다섯 말이나 마 시고도 취하지 않고 양 한 마리를 다 먹고도 배가 부르지 않는다. 조조가 묻는다.
"대체 무슨 술법으로 이렇게 하였소?"
"빈도가 서천의 가릉과 아미산 속에서 도를 배운지 삼십년이었는데 석벽 속애서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나 다가 가 보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기를 수일이었는데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석벽을 깨뜨려 천서 天書 세 권을 얻었는데 이름해 둔갑천서 遁甲天書였습니다 . 상권의 이름은 천둔 天遁, 중권의 이름은 지둔 地遁, 하권의 이름은 인둔 人遁이었습니다.
천둔을 익히면 능히 구름과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지둔을 익히면 산과 돌을 뚫고나올 수 있습니다. 인둔을 익히면 사해를 구름처럼 떠다니고 모습을 숨겨 변신하고 칼을 던져 남의 수급을 취할 수 있사옵니다. 대왕의 지위 이제 신하로서 극히 높아져 있사오니 어찌 한걸음 물러나 빈도를 따라 아미산 속으로 들어가 수행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천서 삼 권을 드리겠습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서둘러 용퇴하고자 생각했으나 어찌된 것인지 조정에서 마땅한 사람을 얻지 못했소."
좌자가 웃으며 말한다.
"익주의 유현덕은 바로 제실의 후예이신데 어찌 이 자리를 양보해 그분께 드리지 않소? 그리하지 않는다면 빈도가 검을 날려 그대의 머 리를 취하겠소."
조조가 크게 노해 말한다.
"이놈은 바로 유비의 세작이구나!"
좌우 사람들에게 소리쳐 잡아들인다. 좌자가 크게 웃어 마지않는다. 조조가 열몇 명의 옥졸에게 명해 그를 붙잡고 치게 한다. 옥졸들 이 힘껏 통타하지만 좌자는 도리어 쿨쿨 코를 골며 숙면해 전혀 아프거나 괴롭지 않다.
조조가 노해 큰 칼(형틀의 일종)을 가져다 쇠못을 박고 쇠자물쇠로 잠궈 감옥에 집어넣어 사람들로 하여금 지키게 한다. 그러나 칼에 채운 자물쇠가 모조리 떨어져 좌자가 바닥에 드러눕는데 그는 아무 손상이 없다. 잇달아 칠 일을 감금해 음식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살 펴보니 좌자는 바닥에 단정히 앉아 예전의 하얗던 얼굴이 오히려 발갛게 변해 있다.
옥졸이 조조에게 알리자 조조가 끌어내어 묻는다. 좌자가 말한다.
"나는 몇년을 먹지 않아도 괜찮소. 또한 하루에 천 마리의 양을 먹어도 배를 다 채울 수 없소. "
조조가 어쩔 도리가 없다.
이날 관리들 모두 왕궁의 큰 잔치에 온다. 술잔을 돌리고 있는데 좌자가 발에 나막신을 신고 술자리 앞에 선다. 관리들이 놀라고 괴이하 게 여긴다. 좌자가 말한다.
"대왕께서 오늘 산해진미를 구비해 신하들을 불러모아 크게 잔치를 여시니 사방의 진기한 것들이 극히 많으나 그 가운데 무엇인가 모자 르다면 빈도가 바라건대 그것을 얻어 드리겠소."
조조가 말한다.
"용의 간을 끓인 국이 필요한데 네가 할 수 있겠냐?"
"무엇이 어렵겠소!"
먹과 붓을 가져다 분장 粉牆 (화려한 담벼락) 위에 한 마리 용을 그린 뒤에 옷소매를 털자 용의 배가 저절로 갈라진다. 좌자가 용의 배에 서 용간 한 조각을 제출하자 붉은 피가 더욱 흐른다. 조조가 불신해 꾸짖는다.
"네가 앞서 옷소매에 숨겨 놓았던 것뿐이다!"
"지금 추운 겨울이라 초목이 고사했소. 대왕께서 몹시 꽃을 좋아하시니 뜻대로 바라시는 것을 말씀해보시오."
"나는 모란꽃을 보고 싶을 뿐이다."
"쉬운 일이오."
큰 화분을 술자리 앞에 가져다 놓게 하고 물을 뿌린다. 눈깜짝할 사이에 모란 한 그루가 솟아올라 두 송이 꽃이 피어난다. 관리들이 크게 놀라 좌자를 불러 함께 앉혀 음식을 먹인다.
잠시 뒤 포인 庖人 (요리사)이 생선회를 바치니 좌자가 말한다.
"생선회는 마침 송강의 농어가 제 철이오."
조조가 말한다.
"천 리나 떨어져 있거늘 어찌 능히 구하겠냐?"
"이것도 무엇이 어렵겠소!"
낚시대를 가져 오게 해 대청마루 아래 연못에 드리우자 눈깜짝할 사이에 수십 마리의 큰 농어가 낚여 전각 위에서 펄떡거린다.
조조가 말한다.
"내 연못에 원래 이 물고기들이 있었다."
"대왕께서 어찌 속이려고만 하시오? 천하의 농어들은 아가미가 두 개뿐이나, 오로지 송강의 농어들만이 아가미가 넷이니 이로써 가려낼 수 있소."
관리들이 살피니 과연 아가미가 넷이다. 좌자가 말한다.
"송강 농어를 삶으려면 반드시 자아강 紫芽薑 (보라색 싹이 튼 생강)이 지금 필요하오."
"네가 역시 구할 수 있겠냐?"
"쉬울 뿐이오."
금분 金盆 하나를 가져오게 해 옷으로 덮자 잠시 뒤 자아강이 금분에 가득해 조조 앞에 갖다 바친다. 조조가 손으로 금분을 받는데 금분 안에 책 한 권이 보인다. 책 이름은 '맹덕신서'다. 조조가 꺼내서 읽어보니 한 자도 틀리지 않다. 조조가 크게 의심하는데 좌자가 탁 자 위의 옥배를 가져다 거기에 좋은 술을 따라 조조에게 바치며 말한다.
"대왕께서 이 술을 드시면 천 년은 사실 수 있소."
"네가 먼저 마셔봐라."
좌자가 곧 머리에 쓴 관 위의 옥잠을 뽑아서 옥배 속에 한번 긋자, 술이 두 조각으로 나뉜다. 스스로 그 절반을 마시고 나머지는 조조에게 바친다. 조조가 꾸짖자 좌자가 옥배를 공중에 던지니 한 마리 하얀 비둘기가 되어 전각을 돌아서 날아간다. 관리들이 우러러 보는 사이 좌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좌우 사람들이 알린다.
"좌자가 궁문을 나갔습니다."
조조가 말한다.
"이런 요망한 놈은 반드시 없애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장차 해를 끼칠 것이다."
곧 허저에게 명해 철갑군 3백을 이끌고 뒤쫓아 붙잡으라 한다. 허저가 말에 올라 군을 이끌고 성문까지 뒤쫓아 내다보니 좌자가 나막신을 신고 천천히 가고 있다. 허저가 나는 듯이 말을 몰아 뒤쫓지만 따라붙지 못한다. 줄곧 뒤쫓다 어느 산 속에 들어가니 양치는 아 이가 양떼를 몰아오는데 좌자가 양떼 속으로 달아난다. 허저가 화살을 뽑아 그를 쏘나 좌자가 순식간에 사라져 허저가 양떼를 모조리 죽 여 돌아온다.
양치는 아이가 양을 지키며 통곡하는데 홀연히 지상에 있던 양의 머리가 사람 말을 하며 아이를 부른다.
"양머리들을 모조리 죽은 양들의 배 위에 놓거라."
아이가 크게 놀라 얼굴을 가리고 달아난다.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놀라 달아날 것 없다. 네 양들을 살려 보답하겠다."
아이가 돌아보니 좌자가 이미 지상의 죽은 양들을 모두 살려서 뒤쫓아 오고 있다. 아이가 급히 물어보려 할 때 좌자는 벌써 옷소매를 털 고 가버리는데 그 걸음이 나는 듯해 별안간 사라진다.
아이가 돌아가 주인에게 고하자 주인이 감히 숨기지 못해 조조에게 알린다. 조조가 좌자의 모습을 그려 곳곳에 붙여 좌자를 붙잡으라 한 다. 사흘 안에 성 안팎에서 애꾸눈에 다리 하나를 절고 흰 등나무 관을 쓰고 푸른 누더기옷을 입고 나막신을 신은 모두 똑 같은 모습의 선 생이 3, 4백 명이나 되어 길거리에서 소란을 피운다.
조조가 명령해 돼지와 양의 피를 그들에게 뿌려 성 남쪽의 교장(훈련장)으로 압송한다. 조조가 친히 갑병 오백 인을 거느리고 그 선생들을 에워싸고 모조리 참한다. 사람마다 잘린 목 속에서 각각 한 줄기 푸른 기운이 뿜어져 한참 솟아올라 거대한 좌자의 형상을 이룬다. 좌자가 하늘을 향해 백학 한 쌍을 불러 올라타서 박수 치며 크게 웃으며 말한다.
"쥐새끼가 금호 金虎(백호)를 쫓는구나! 간웅도 하루아침에 끝장이다!"
조조가 명령해 화살을 쏘아대지만 홀연히 광풍이 크게 일어 돌과 모래를 날리고 목이 잘린 시체들이 모조리 벌떡 일어나 손에 머리를 들 고 연무청 위를 향해서 조조를 치러 온다. 문관과 무장들이 얼굴을 가리고 놀라 자빠져 서로 돌아보지 않는다.
간웅의 권세 능히 나라를 기울게 하지만
도사의 선기(신선의 예언) 또한 비범하구나
조조의 목숨이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