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제72회 제갈량이 슬기롭게 한중을 취하고 조아만은 야곡에서 철군한다
한편 서황은 군을 이끌고 한수에 도달하더니 왕평이 애써 간언하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한수를 건너서 주둔한다. 황충과 조운이 현덕에게 고한다.
"저희가 제각기 부하 병력을 이끌고 가서 조병들과 싸우겠습니다."
현덕이 응윤하니 두 사람이 병력을 이끌고 간다.
황충이 조운에게 말한다.
"이제 서황이 용맹을 믿고 오니 일단 쉬었다가 맞서야겠소. 날이 저물어 적병이 지치기 기다려 그대와 내가 병력을 나눠 양쪽에서 칩시다."
조운이 받아들여 제각기 1군을 거느려 영채에 주둔한다. 서황이 병력을 거느려 진시부터 신시까지 줄곧 도전하나 촉병은 꼼짝 않는다. 서황이 모든 궁노수들더러 전진해서 촉병 영채를 사격하라 한다. 황충이 조운에게 말한다.
"이제 서황이 궁노를 쏘게 한 것은 실은 곧 물러나려 해서요. 이 틈에 칩시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병들 후미가 과연 물러나려 움직이는 것이 보고된다. 이에 촉병 진영에서 북소리 크게 울리고 황충은 좌 측에서 나오고 조운은 우측에서 병력을 거느려 나온다. 양쪽에서 협공하자 서황이 대패한다. 병사들이 쫓겨서 한수에 빠져죽은 것을 헤 아릴 수 없다. 서황이 죽기살기로 싸워서 빠져나와 영채로 돌아가 왕평을 꾸짖는다.
"너는 우리 군세가 위기에 빠질 것을 보고도 어찌 구원하지 않았냐? "
"만약 제가 구원에 나섰다면 이 영채도 보전하지 못했을 것이오. 제가 먼저 공께 가시지 말라고 간했으나 공께서 듣지 않아 이렇게 패한 것이오."
서황이 크게 노해 왕평을 죽이려 하자 왕평이 그날밤 부하 병력을 이끌고 영채로 들어가서 방화한다. 조병들이 크게 어지러워져 서황이 영채를 버리고 달아난다.
왕평이 한수를 건너서 조운에게 투항한다. 조운이 데리고 현덕을 만나서 왕평이 한수의 지리를 모조리 말하니 현덕이 크게 기뻐하며 말한 다.
"고(제후가 스스로를 일컫는 말)가 왕자균을 얻다니 이제 한중을 취할 게 틀림없구려."
곧 명을 내려 왕평을 편장군으로 삼고 향도사(길을 안내하는 관리)의 일을 맡긴다.
한편 서황은 달아나 조조를 만나서 왕평이 반역해서 현덕에게 투항한 것을 이야기한다. 조조가 크게 노해 친히 대군을 통솔해 한수의 채 책(진지)을 빼앗으러 온다. 조운은 고립된 군대로써 맞서기 어려울까 근심해 한수 서쪽으로 물러나 양군이 강물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다. 현덕이 공명과 더불어 형세를 살피러 온다.
공명이 한수의 상류두 上流頭(하천의 상류 방향)를 보니 일대의 흙산이 있는데 가히 천여 명을 매복할 만하다. 영채로 돌아가 조운을 불 러서 분부한다.
"그대는 5백 인을 이끌고 모두 고각(북과 피리)를 지니고 흙산 아래 매복하게 하시오. 반야 半夜(한밤)나 황혼에 영채 안에서 소리가 들 릴 것이오. 소리가 한번 울리면 뇌고 擂鼓(북을 맹렬히 두드림)를 한바탕 하되 출전하지는 마시오."
자룡이 계책을 받고 떠난다. 공명이 높은 산 위에 은밀히 살펴본다.
이튿날 조병들이 와서 싸움을 걸지만 촉군 진영에서 한 사람도 나오지 않고 궁노 한발 쏘지 않자 조병들이 스스로 돌아간다. 그날밤이 깊어 공명이 살피니 조병 진영에서 등불이 꺼지고 병사들이 쉬려 한다. 이에 호포를 쏘니 자룡이 듣고 고각을 일제히 울린다.
조병들이 깜짝 놀라 겁채(적진을 습격함)를 의심해 영채를 나오나 아무 적군도 없다. 영채로 돌아가 쉬려는데 호포 소리 또 울리고 함성이 땅을 흔들어 산골짜기에 메아리치니 조병들이 밤새 불안하다. 잇달아 사흘 밤을 이렇게 놀라고 의심스럽자 조조가 속으로 겁을 먹어서 영채를 거둬 3십 리를 물러나 공활(사방이 트이고 넓음)한 곳에 주둔한다.
공명이 웃으며 말한다.
"조조가 비록 병법을 알지만 궤계(속임수)를 모르구나. "
현덕에게 친히 한수를 건너서 배수의 진을 칠 것을 청한다. 현덕이 계책을 묻자 공명이 말한다.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조조는 현덕이 강물을 등지고 영채를 세우자 속으로 의혹이 일어나 사람을 시켜 전서 戰書(싸움을 통지하는 글)를 보낸다. 이튿날 양군이 서로의 중간에 자리잡은 오계산 앞에 포진한다. 조조가 문기(진지 출입구의 큰 깃발) 아래 출마해 양쪽에 용봉정기(왕을 상징하 는 용과 봉황이 그려진 깃발들)를 나부끼며 세차례 뇌고를 울리더니 현덕을 불러 답화(대답/ 응답)하게 한다.
현덕이 유봉과 맹달 그리고 천중(서천 땅)의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나오자 조조가 채찍을 들어 크게 욕한다.
"유비! 은혜를 잊고 의리를 저버리고 도리어 조정에 반역한 도적아!"
현덕이 말한다.
"나는 바로 대한의 종친으로 천자의 조서를 받들어 역적을 토벌하겠다. 너는 위로는 모후를 시해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 천자의 난여 鑾 輿 (임금이 타는 가마)를 참용 僭用(주제 넘게 사용함)하니 이게 반역이 아니면 무엇이냐?"
조조가 노해 서황더러 출마해 싸우라고 한다. 유봉이 나가서 맞이해 교전하는데 현덕은 먼저 진지 안으로 달아난다. 유봉이 서황을 이기 지 못해 말머리를 돌려서 달아난다. 조조가 하명한다.
"유비를 잡아들이는 자는 바로 서천의 왕을 시키겠다."
대군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떼지어 달려온다.
촉병들 모두 한수 쪽으로 달아나며 영채를 버리고 마필과 군기 軍器 (병장기/ 무기)를 내던져 길가에 가득하다. 조병들 모두 앞다퉈 취하 자 조조가 급히 징을 쳐 군대를 거둔다. 뭇 장수가 묻는다.
"저희가 바로 유비를 잡으려는데 대왕께서 무슨 까닭에 군대를 거두십니까?"
"내가 보니 촉병이 한수를 등지고 안영 安營(영채를 세워 주둔)한 것이 첫번째 의심스러운 점이오. 많은 마필과 군기를 버린 것이 두번째 의심스러운 점이오. 어서 군대를 물리고 옷이나 물건을 줍지 못하게 하시오."
곧 명령을 내린다.
"함부로 물건 하나라도 줍는 자는 바로 참하겠다. 화급히 병력을 물려라. "
조병들이 막 머리를 돌리는데 공명이 호기(신호용 깃발)를 들어올린다. 현덕은 중군에서 병력을 이끌고 바로 나오고 황충은 좌변에서, 조운은 우변에서 내달려오니 조병이 크게 무너져 달아난다.
공명이 그날밤 추격하자 조조가 남정으로 군대를 되돌릴 것을 전령한다. 그런데 다섯 갈래에서 불길이 치솟는 게 보인다. 알고보니, 엄안 이 낭중을 수비해주자 위연과 장비가 병력을 나눠 내달려서 남정을 먼저 빼앗은 것이다. 조조가 놀라 양평관 쪽으로 달아난다. 현덕의 대군이 뒤따라 남정 포주 褒州에 다다른다.
백성들을 안심시킨 뒤 현덕이 공명에게 묻는다.
"조조가 이렇게 왔는데 어째서 패배가 빨랐던 것입니까?"
"조조는 평소 사람됨이 의심이 많이 비록 용병에 능해도 의심에 빠져 패한 게 많습니다. 제가 의병 疑兵(적병을 현혹시키는 병력)을 내어 이긴 것입니다."
"이제 조조가 양평관으로 물러나 지키니 그 세력이 외로운데 선생께서 장차 무슨 계책으로 격퇴하시겠습니까?"
"제가 이미 산정해두었습니다."
곧 장비와 위연을 보내며 병력을 나눠 양 갈래에서 조조의 양도(군량 수송로)를 끊게 하고, 황충과 조운더러 병력을 나눠 양 갈래에서 불을 놓아 산을 태우라고 한다. 네 갈래 군장 軍將(군대의 지휘관)이 제각기 향도관을 이끌고 떠난다.
한편 조조는 양평관으로 물러나 지키며 군대를 시켜 초탐(정탐/ 정찰)하게 한다. 돌아와 보고한다.
"이제 촉병들이 여기저기 소로 小路를 막아놓고 섶(땔감)을 베어놓은 자리마다 불태우는데 그들 병력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조조가 의혹에 빠진 사이 다시 보고가 들어오니 장비와 위연이 병력을 나눠 군량을 약탈한다는 것이다. 조조가 묻는다.
"누가 감히 장비를 대적하겠소?"
허저가 말한다.
"제가 가겠습니다!"
조조가 허저더러 1천 정병을 거느려 양평관으로 이어진 길을 가서 양초 수송을 호위하라고 한다. 해량관 解糧官이 허저를 맞이해, 기뻐하며 말한다.
"장군께서 이곳에 오시지 않으면 양초를 양평관까지 가져갈 수 없습니다."
곧 수레 위의 술과 고기를 허저에게 준다. 허저가 통음하더니 어느새 크게 취해서 술기운이 올라 양차(군량 수송 수레)들을 어서 끌고 가 라고 다그친다.
해량관이 말한다.
"날이 이미 저물고 앞의 포주는 산세가 험악해 아직은 통과할 수 없습니다."
"내게 만부지용 萬夫之勇(만 명의 사내에 맞설 용맹)이 있거늘 어찌 타인을 두려워하랴! 오늘밤 달빛이 밝으니 때마침 양차를 움직이기 좋을 것이오."
허저가 앞장서 칼을 비껴들고 말을 내달려 군을 이끌고 전진한다.
2경이 지나 포주로 가는 길을 따라간다. 길을 반쯤 가자 문득 산요 山凹(산중의 오목하게 낮은 곳)에서 고각 소리 하늘을 흔들며 1개 지대가 막아선다. 선두의 대장 바로 장비다. 장팔사모를 꼬나쥐고 말을 내달려 바로 허저에게 덤빈다. 허저가 칼을 휘두르며 가서 맞이하나 술 취해 장비를 대적하지 못해 불과 몇 합에 장팔사모에 어깨를 찔려 말 아래 구른다. 병사들이 황급히 구해 일으켜 뒤로 물러나 달아난다. 장비가 양초 수레를 모조리 빼앗아 돌아간다.
한편 뭇 장수가 허저를 보호해 돌아가 조조를 만나니 조조가 의사에게 명해 금창(창칼에 의한 상처)을 치료하게 하는 한편, 친히 병력을 거느려 촉병과 결전하러 온다. 현덕이 군을 이끌고 맞이해 양쪽이 포진하자 현덕이 유봉에게 출마를 명한다.
조조가 욕한다.
"신발이나 팔던 어린 놈아! 늘 가짜 아들을 시켜 대적하구나! 내가 황수아 黃鬚兒(노란 수염의 아이/ 조조의 아들 조창을 일컫는 말)를 부르면 네 가짜 아들은 육젓이 될 것이다!"
유봉이 크게 노해 창을 꼬나쥐고 말을 몰아 곧장 조조에게 덤빈다. 조조가 서황더러 나가서 맞이하라 명하니 유봉이 지는 척 달아난다.
조조가 병력을 이끌고 추격하는데 촉병 진영 사방에서 고각 소리 일제히 울린다. 조조는 복병이 있을까 두려워 급히 퇴군하는데 조병들 이 서로 짓밟아 죽은 자 극히 많다. 양평관으로 달아나 쉬려는데 촉병들이 성 아래까지 뒤쫓아 동문을 불지르고 서문에서 소리지른다. 또한 남문을 불지르고 북문에서 북을 요란히 두드린다. 조조가 크게 두려워 양평관을 버리고 달아나니 촉병이 추격한다.
조조가 한창 달아나는데 앞쪽에서 장비가 1군을 이끌고 가로막고 조운도 1군을 이끌고 추격한다. 황충도 병력을 이끌 고 포주 방면에서 달려든다. 조조가 대패하니 장수들이 조조를 보호해 길을 뚫고 달아난다. 야곡 입구에 이르자 앞쪽에서 먼지 구름이 피어오르고 한갈래 병력이 몰려온다.
조조가 말한다.
"이 병사들이 복병이라면 나도 끝장이구나!"
이윽고 병력이 가까워지니 바로 조조 둘째 아들 조창이다. 조창의 자는 자문으로 어려서부터 기사 騎射(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고 여력 膂力(체력/ 기력)이 남달라 능히 맨손으로 맹수를 잡았다. 조조가 일찍이 그를 경계했다.
"네가 독서는 않고 궁마(활쏘기와 말타기)를 좋아하는데 이것은 필부의 용맹이지 어찌 족히 귀하겠냐?"
조창이 말했다.
"대장부 마땅히 위청과 곽거병이 사막에서 공을 세우고 수십만 무리를 장구 長驅(멀리 몰아감)해 천하를 종횡한 것을 배워야지 어찌 능히 박사가 되려고만 하겠습니까?"
조조가 일찍이 여러 아들의 뜻한 바를 물은 적이 있었다. 조창이 말했다.
"장수가 되고 싶습니다. "
"장수가 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
"갑옷을 입고 무기를 잡고 어려움에 처해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몸소 사졸들을 우선하는 것입니다. 포상은 반드시 실행하고 처벌을 하되 반드시 믿음을 줘야 합니다."
조조가 크게 웃었다.
건안 23년 대군 代郡의 오환 烏桓(중국의 고대 북방 민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조조가 조창더러 병력 5만으로 토벌하라 명했다. 조 조가 출발에 앞서 경계했다.
"집에 머물 때는 부자지간이지만 일을 받으면 군신지간이 된다 하였다. 법 집행은 사사로운 정을 따르지 말아야 함을 마땅히 깊이 경계 해라."
조창이 대북에 이르러 몸소 싸움터에서 앞장서 곧장 상건 桑乾까지 쳐들어가니 북방이 모두 평정됐다. 조조가 양평에서 패진 敗陣 (싸움 터에서 패전함/ 진지를 빼앗김)한 것을 전해들은 조창이 도우러 온 것이다. 조조는 조창이 오자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내 황수아가 왔으니 유비를 틀림없이 격파하겠구나!"
병력을 이끌고 다시 돌아가 야곡 입구에 주둔한다. 조창이 온 것이 현덕에게 보고된다.
현덕이 묻는다.
"누가 감히 조창과 싸우러 가겠소?"
유봉이 "바라건대 제가 가겠습니다." 라고 말하자 맹달도 가겠다고 말한다. 현덕이 말한다.
"두 사람이 함께 가시오. 누가 성공하는지 지켜보겠소."
제각기 5천 병력을 이끌고 맞이하러 가는데 유봉이 앞서고 맹달은 뒤따른다.
조창이 출마해 유봉과 교전해 겨우 3합에 유봉이 크게 져서 돌아온다. 맹달이 병력을 이끌고 전진해 싸우려는데 조병들이 크게 혼란에 빠진 게 보인다.
알고보니, 마초와 오란 양쪽 병력이 몰려오자 조병이 동요한 것이다. 맹달이 병력을 이끌고 협공한다. 마초의 사졸들은 날카로운 기세를 길러놓아 이곳에서 휘무양위 耀武揚威(무력을 과시함)하니 그 기세를 당할 수 없어 조병이 패주한다.
조창이 마침 오란과 마주쳐 둘이 교봉해 불과 몇 합에 조창이 극(장병기의 일종)으로 한번에 오란을 찔러 말 아래 굴린다. 삼군(전체 군 사)이 혼전을 벌인다. 조조가 병력을 거둬 야곡 입구에 주둔한다. 조조의 둔병이 오래 되는데 진병하자니 마초가 거수 拒守 (요충지에 자리잡고 견고히 지킴)하고, 병력을 거둬 돌아가자니 촉병에게 비웃음을 살까 두렵다. 조조가 속으로 머뭇거려 매듭짓지 못한다.
때마침 포관 庖官(요리를 담당하는 관리)이 계탕(닭탕)을 바친다. 조조가 사발 안의 계륵(닭갈비)를 보고 속으로 무엇인가 느낀다. 침음 (깊이 생각함)하고 있는데 하후돈이 막사 안으로 들어와 야간구호(야간의 군대 암호)를 정해줄 것을 청한다. 조조가 별 생각 없이 말한 다.
"계륵! 계륵!"
하후돈이 뭇 관리에게 전령하자 모두 '계륵'이라 한다.
행군주부 양수는 계륵 두 글자를 전하는 것을 보더니 수행하는 병사들더러 각각 행장(짐)을 꾸려서 귀정 歸程(돌아가는 여정)을 준비하 라 한다. 누군가 하후돈에게 그것을 보고하자 하후돈이 크게 놀라 양수를 불러들여 묻는다.
"공께서 무슨 까닭에 행장을 수습하시오?"
"오늘밤 호령을 듣고 위왕께서 조만간 병력을 물려 되돌아가실 것을 알았소. 계륵이란 먹자니 고기는 없고 버리자니 그래도 맛은 있는 것이오. 이제 진격하자니 이기지 못하겠고 그대로 있자니 아무 이익도 없어 빨리 돌아감만 못하오. 내일 위왕께서 필시 반사 班師(군대 를 후톼시킴/ 승리를 거둬 군대를 거둬 돌아감)하실 것이라 먼저 짐을 꾸려서 길을 떠날 때의 황란(서두름)을 면하려 하오."
"공께서 참으로 위왕의 폐부를 아는구려!"
역시 행장을 수습한다.
이에 영채 안의 장수들 가운데 돌아갈 계획을 준비하지 않는 이 없다. 이날밤 조조가 심란해서 고이 잠들지 못하고 손에 동부 鋼斧(구리 도끼)를 들고 영채를 돌아다니며 사행 私行 (관리의 사사로운 나들이)을 한다. 그런데 하후돈 영채의 ���사들이 제각기 행장을 준비하고 있다. 조조가 크게 놀라 막사로 돌아가 하후돈을 불러들여 그 까닭을 묻는다.
하후돈이 말한다.
"주부 양덕조(양수)가 미리 대왕의 돌아갈 뜻을 알아차렸습니다."
조조가 양수를 불러서 묻자 양수가 계륵의 뜻을 답한다. 조조가 크게 노한다.
"네가 어찌 감히 말을 지어서 우리의 군심을 어지럽히냐!"
도부수들에게 소리쳐 그를 끌어다 참하고 수급(잘린 머리)을 원문(군영의 바깥문)에 호령 號令(범죄자를 공개하는 것)하라고 한다.
원래 양수는 사람됨이 재주를 믿고 방광 放曠 (호방해 예속에 구애 받지 않음)해 여러 차례 조조의 뜻을 거슬렀다. 조조가 일찍이 화 원(정원) 하나를 만들었다. 완성되자 조조가 가서 살피더니 아무 포폄 褒貶 없이 다만 붓을 가져다 문 위에 '활 活' 자만 써놓고 가버렸다 . 사람들 모두 뜻을 깨닫지 못했다.
양수가 말했다.
"문 門 안에 활 活을 더하면 곧 '넓을 활 闊' 자요. 승상께서 화원의 문이 넓은 게 싫은 것이오."
이에 담장을 개축한다. 개조를 마쳐서 다시 조조를 청해 살피게 한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누가 내 뜻을 알았소? " 라고 묻자 좌우 사람들이 "양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조조가 비록 칭찬하나 속으로 몹시 미워했다.
또 하루는 새북 塞北(만리장성 이북/ 북쪽 변방)에서 연유(농축시킨 우유 같은 것) 1 합 盒을 보내왔다. 조조가 스스로 '일합소 一合酥'라 는 세 글자를 합 위에 쓰더니 안두 案頭(탁상)에 놓이두었다. 양수가 그것을 보고 숟가락을 가져다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 조조가 까닭을 믇자 양수가 답했다.
"합 위에 분명히 일인일구소 一人一口酥(조조가 쓴 글자들을 해체한 것으로 한 사람마다 한 입씩 연유를 먹으라는 뜻)라 쓰였는데 어찌 감히 승상의 명을 거스르겠습니까? "
조조가 즐거워 웃었지만 속으로 미워했다.
조조는 남이 몰래 자기를 모해 謀害(음모를 꾸며 해침)할까 두려워 늘 좌우 사람들에게 분부했다.
"나는 꿈 속에서 사람을 잘 죽이니 무릇 내가 잠들면 너희는 절대 가까이 오지마라. "
하루는 장중 帳中에서 낮잠을 자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어느 근시(가까이서 모시는 사람)가 황급히 복개 覆蓋(덮개/ 두껑 여기선 이불 따위를 뜻함)를 가져오는데 조조가 벌떡 일어나 검을 뽑아서 참하고 다시 침대 위에서 자더니 반향 半晌(반나절)이 지나서 일어나더니 놀란 척 물었다.
"누가 내 근시를 죽였느냐? "
사람들이 사실대로 대답했다.
조조가 통곡하며 후하게 장례 지내주라고 명하니 모두 조조가 참으로 꿈 속에서 살인한 줄 여겼다. 오로지 양수 홀로 그 뜻을 알아차려 장례 지낼 때 그를 가리키며 한탄했다.
"승상께서 꿈 속에 계셨던 게 아니라 그대가 꿈 속에 있었을 뿐이오!"
조조가 듣고 더욱 미워했다.
조조의 셋째 아들 조식이 양수의 재능을 아껴 늘 양수를 만나 담론을 나눠 밤새 쉬지 않았다. 조조가 조식을 세자로 세울 것을 상의하자 조비가 이를 알고 은밀히 조가 朝歌(지명/ 은나라 주왕의 도성)의 장 長으로 있던 오질 吳質을 내부 內府로 불러들여 상의했다. 사람들이 알아차릴까 두려워 커다란 상자 안에 오질을 숨겨 놓고 사람들에겐 그 안에 견필 絹疋(비단 옷감)이 있다 말하며 부중으로 반입했다.
양수가 그 일을 알고 바로 조조에게 고하러 왔다. 조조가 사람을 시켜 조비의 저택 문 앞에서 사찰하게 했다. 조비가 황망히 오질에게 고 하자 오질이 말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명일에 큰 상자에 비단을 다시 넣어 미혹하십시오."
조비가 그 말대로 큰 상자에 비단을 집어넣었다. 조조의 사자가 상자 안을 뒤져보니 과연 비단이라 돌아가서 조조에게 알렀다. 이 때문 에 조조는 양수가 헐뜯어 해치려한 것으로 의심해 더욱 미워했다.
조조는 조비와 조식의 재간을 시험하고 싶었다. 하루는 제각기 복성의 문을 나가라 명하고는 도리어 몰래 사람을 보내 문리 門吏더러 절대 내보내지 말라고 명령했다. 조비가 먼저 이르러 문리가 저지하자 부득이 물러나 돌아갔다. 조식이 듣고 양수에게 묻자 양수가 말했 다.
"군께서 왕명을 받들어 나가시는 것이니 막아서는 자가 있다면 참해도 좋습니다."
조식이 그럴 듯하게 여겼다. 이윽고 문에 이르러 문리가 가로막자 조식이 꾸짖었다.
"내가 왕명을 받들거늘 누가 감히 막아서냐!"
당장 그를 참했다. 이에 조조가 조식을 유능하게 여겼다. 그 뒤 누군가 조조에게 고했다.
"이것은 양수가 가르쳐준 것입니다."
조조가 크게 노해 이 때문에 조식도 좋아하지 않았다.
양수가 또한 일찍이 조식을 위해서 답안을 수십가지 만들어 조조가 물으면 조식이 즉시 답안대로 답했다. 조조가 매번 병사와 국가를 다 스리는 것을 조식에게 물으면 조식의 대답이 유창해서 조조가 속으로 몹시 의심했다. 그 뒤 조비가 은밀히 조식의 좌우(측근)를 매수해 답안을 훔쳐내서 조조에게 고하러 가도록 했다.
조조가 보더니 크게 노해 말했다.
"필부 놈이 어찌 감히 나를 기만한단 말이냐!"
그때 이미 양수를 죽일 마음을 먹었는데 이제 군심을 어지럽힌 죄목을 핑계 삼아서 살해한 것이다. 양수가 죽으니 그 나이 34세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었다.
총명한 양덕조, 대대로 잠영(높은 벼슬)을 이었네.
붓을 들면 용과 뱀이 달리듯 마음 속엔 비단을 펼치듯.
말을 하면 모두 놀라고 맞서 이김이 뭇 영웅을 앞서네.
죽음은 재주 때문이지 병력을 물리려 해서가 아니라네.
조조가 양수를 죽이고나서 하후돈에게도 노한 척하며 역시 죽일 시늉을 하니 뭇 관리가 살려달라 고한다. 이에 조조가 하후돈을 꾸짖고 그더러 내일 진병하라고 한다.
다음날 병력이 야곡 입구를 나오자 앞에서 1군이 맞이한다. 앞장선 대장은 바로 위연이다. 조조가 위연을 불러서 귀순을 권하자 위연이 크게 욕한다. 조조가 방덕더러 출전하라 명한다. 두 장수가 싸우는데 조병 영채 안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마초가 중앙과 후방 두 곳의 영채를 빼앗은 것이 보고된다.
조조가 검을 뽑아들고 말한다.
"장수들 가운데 후퇴하는 자는 참하겠다!"
뭇 장수가 힘껏 나아간다. 위연이 지는 척 달아나자 조조가 군을 이끌고 돌아가서 마초와 교전한다. 친히 높은 언덕 위에 말을 세워놓고 양군의 싸움을 바라본다.
1군이 앞으로 치고나오며 외친다.
"위연이 여기 왔다!"
활을 들어 화살을 매겨 조조를 쏴 맞춰 조조가 말 아래 꼬꾸라진다. 위연이 활을 버리고 칼을 들고 산 위로 말을 내달려 조조를 죽이러 온다. 이때 측면에서 한 장수가 튀어나오며 크게 외친다.
"나의 주님을 해치지 말라!"
바로 방덕이다. 방덕이 힘을 떨쳐 앞으로 나아가 위연과 싸워 쫓아버리고 조조를 보호해 전진한다. 마초는 이미 물러났다. 조조가 상처를 입은 채 영채로 돌아온다. 알고보니 위연의 화살이 조조의 인중에 명중해 앞니 두 개를 부러뜨려 급히 의사를 불러 치료한다.
조조가 비로소 양수의 말을 기억해 양수의 시체를 거둬서 후하게 장례 지내고, 병력을 거둬서 돌아갈 것을 명한다. 방덕더러 후미를 막 으라 한다. 조조가 전차 氈車(양탄자 같은 것으로 덮은 수레)에 눕고 좌우에서 호분군 虎賁軍(호분은 용사를 뜻함/ 조조의 친위부대)이 호위해서 간다. 야곡의 양쪽 산 위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복병이 쫓아오는 것이 보고된다. 조병들 모두 놀라고 두려워한다.
지난날 동관의 재앙을 떠오르게 하고
그해 적벽의 위기를 방불하게 하는구나
조조의 목숨이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