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제73회 현덕이 추대를 받아 한중왕에 즉위하고 운장이 양양군을 빼앗는다
한편 조조는 병력을 물려 야곡에 이른다. 공명은 그가 틀림없이 한중을 포기하고 달아날 것이라 헤아려 마초를 비롯한 여러 장수를 보내 병력을 열 몇 갈래로 나눠 불시에 공격한다. 이에 조조가 오래 버티지 못한다.
게다가 위연에게 화살을 맞아 급급히 군대를 거둬 돌아가니 삼군의 예기가 모조리 떨어진다. 앞쪽 대열이 조금 행군하자 양쪽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바로 마초의 복병이 쫓아와서 조병들 모두 간담이 부서진다. 조조가 명령해 병사들이 서둘러 가며 밤낮으로 쉬지 않고 달아 난다. 곧장 경조에 이르러 비로소 안심한다.
한편 현덕은 유봉, 맹달, 왕평 등에게 상용의 여러 군을 쳐서 빼앗으라 한다. 신탐을 비롯한 이들은 조조가 이미 한중을 포기한 채 달아난 것을 듣고 곧 모조리 투항한다. 현덕이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크게 삼군을 위로하니 인심 人心이 크게 기뻐한다. 이에 뭇 장수 모두 현덕을 제왕으로 추존할 마음을 가지나 아직 감히 당장 사뢰지 못하고 제갈 군사에게 품고 稟告(아뢰어 여쭘)하러 온다.
공명이 말한다.
"내 마음 속에 이미 정탈 定奪(어떤 일에 대한 가부)을 정해놨소."
곧 법정 등을 이끌고 들어가 현덕을 만나 말한다.
"지금 조조가 권력을 전횡하니 백성에게 임금이 없습니다. 주공께서 인의를 천하에 떨치시고 이미 양천(서천과 동천)을 장악하시어 가히 이로써 하늘에 응하고 인심을 따라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셔야 합니다. 명정언순 名正言順(명분이 바르고 말이 순리를 따름)이오니 이로써 국적(국가의 역적)을 토벌해야 합니다. 이 일은 늦춰서는 아니 되오니 청하옵건대 바로 길일을 잡으소서."
현덕이 크게 놀라 말한다.
"군사의 말씀이 틀렸습니다. 유비가 비록 한나라 종실이지만 곧 신자(신하)입니다. 만약 그런 일을 하면 바로 한나라에 반역하는 것입니 다."
"그렇지 않습니다. 바야흐로 이제 천하가 갈라지고 무너져 영웅들이 여기저기 일어나 제각기 한 곳을 제패해 사해(천하)의 재능과 덕망 있는 인물들이 사사망생 捨死亡生(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아끼지 않음)하며 그 윗사람을 섬기는 것은 그들 모두 반룡부봉 (용과 봉황에 게 붙음/ 세력가에게 붙음)해 공명 功名을 건립하고 싶어서입니다. 이제 주공께서 사람들의 의심을 피해서 의리만 고집하시다가 사람 들의 소망을 잃어버릴까 두렵사옵니다.”
“제가 참람하게 존위(황제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면, 정말 감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다시 장책 長策(좋은 계책)을 상의하십시오.”
장수들이 일제히 말한다.
“주공께서 의견을 억지로 물리치시기만 하시면, 사람들의 마음이 떠날 것입니다.”
공명이 말한다.
“주공께서 평생 의리를 근본으로 삼으셔서 아직 존호(황제의 호칭)를 일컫지 못하십니다. 이제 형주와 양양, 동천과 서천을 가졌으니 잠시 한중왕에 오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현덕이 말한다.
“그대들이 비록 나를 왕으로 높이고자 하나, 천자의 명조 明詔(명철한 조서)를 받지 않으면 이것은 참람한 짓이오.”
공명이 말한다.
“지금은 마땅히 종권 從權(당시의 형편에 따라 대처함)해야지 상리 常理(당연한 도리)만 고집하시면 안 됩니다.”
장비가 소리지른다.
“성씨가 다른 이들도 모두 군주가 되려는데 하물며 형님은 바로 한조의 종파이시오! 한중왕은 막설하고, 바로 황제라 칭한들 못할 게 무 엇이오!”
현덕이 꾸짖는다.
“너는 여러 말 마라!”
공명이 말한다.
“주공께서 마땅히 권변 權變을 따라 먼저 한중왕에 오르시고 그런 뒤 천자께 표주 表奏(신하가 글을 올려 아룀)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현덕이 두세번 사양하며 미루더니, 겨우 의윤 依允(신하의 청을 허락함)한다. 건안 14년 가을 7월 면양 沔陽 에 단을 쌓아올리니 모나 고 둥글게 9 리에 걸치고 오방 五方(중앙가 동서남북)을 나눠서 두고, 제각기 정기(각종 깃발)와 의장을 설치한다. 허정 許靖과 법정이 현덕에게 단을 오를 것을 청하더니 관면 冠冕(왕관)과 옥새를 바친다. 현덕이 남쪽을 향해 앉고, 한중왕이 된 것을 관원들이 배하 拜賀( 경하)한다. 아들 유선이 왕세자가 된다. 허정을 태부 太傅로, 법정을 상서령으로 봉한다. 제갈량은 군사 軍師가 되어, 군대와 국가의 중 대사를 총리(전체를 관리함)한다. 관우, 장비, 조운, 마초, 황충을 오호대장군 五虎大將軍으로 봉한다. 위연은 한중태수가 된다. 기타 각 각 공훈에 따라 벼슬을 정한다.
현덕이 한중왕에 오르고 곧 표 (임금께 올리는 글)를 잘 다듬어 써서, 사람을 시켜 허도로 보낸다. 표는 이렇다.
‘저 유비는 구신지재 具臣之才(머릿수나 채우는 평범한 신하의 재능)를 가졌으나 상장 上將의 임무를 맡아 삼군을 총독해 바깥으로 역적 들을 토벌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도적들의 난리를 소제하거나 왕실을 편안하도록 바로잡지 못하고 오래도록 폐하의 성스러운 교지 를 널리 퍼뜨리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육합 六合(천지와 동서남북)의 곳곳이 흉흉하고 아직 편안하지 못하니 오로지 걱정하며 밤마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 못 이루고 머리가 깨지는 듯이 앓고 있습니다.
낭자 曩者(지난날)에, 동탁이 난계 亂階(화란의 근원)를 만들어, 그 뒤부터 군흉 群凶(흉악한 무리)이 종횡하며 해내(천하)를 잔인하게 해쳤습니다. 폐하의 성덕이 위림 威臨(위세로써 군림함)하는 것에 힘입어, 인신(신하)들이 함께 호응해 혹은 충의로써 힘껏 토벌하고 혹 은 상천 上天(하느님)께서 천벌을 내려 포역 暴逆(난폭하고 인도에서 벗어남/ 그런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유독히 조조가 오래도록 아직까지 교제 梟除(소멸)되지 않고 국권을 멋대로 빼앗아 그 자심 恣心(자기 마음대로 함)이 극히 난폭합니다. 신 臣이 지난날 거기장군 동승과 더불어 조조를 토벌할 것을 도모하였으나, 기밀을 지키지 못해, 동승이 함해 陷害(남을 해로움에 빠뜨림)를 당했습니다 . 신은 파월 播越(파천/ 임금이 피란을 떠남/ 여기서는 그냥 피란)하며 근거지를 잃어, 충의가 열매를 맺지 못하니 마침내 조조로 하여금 궁흉극악 窮凶極逆(성정이 몹시 흉악함)하게 만들어, 주후 主后(황후)를 육살 戮殺(살륙)하고 황자를 독살했습니다. 비록 동맹을 규합해 힘을 떨쳐 싸울 것을 생각했으나, 나약한데다 굳세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공을 세우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해 나라의 은혜를 갚 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자나깨나 길게 탄식하니, 밤마다 무서운 역병처럼 두렵사옵니다.
이제 신 臣의 많은 관료들이 생각하기에, 지난날 우서 虞書에 적혀 있는대로, 구족 九族이 화목하고 현자들이 힘써 보좌하는 것을, 제왕 들이 서로 전하니, 이러한 도리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주나라가 2 대를 살피고, 아울러 여러 왕후를 세운 것은, 참으로 진 晉나라 와 정 鄭나라가 함께 도와준 것에 의지한 것입니다. 고조 황제께서 용흥 龍興(용처럼 흥기함)하시고 왕의 아우들을 존중해, 구국 九國을 크게 다스리게 하니, 그들이 마침내 (한나라에 반역한) 여 씨들을 참하여, 대종 大宗을 안정시켰습니다. 이제 조조가 모든 곧고 바른 것을 미워하고 그를 따르는 무리가 실로 번성하며 화심 禍心 (남을 해칠 마음)을 품고 빼앗고 훔치는 것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이윽고 종실 이 미약해지고 제족 (황족)이 무위 無位 (벼슬이 없음)하니 고식 古式 (고대의 법식)을 짐작해 잠시 따라서 신 臣을 대사마 大司馬 한중 왕 漢中王으로 높이고자 합니다.
신이 삼가 세번 자성하며 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일방 一方 (한 지역)을 맡아 힘을 다했으나 아직 공을 세우지 못했는데, 신이 획득 한 것이 이미 지나친지라, 고위 高位을 또 더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아, 신의 관료들을 중죄 重罪로써 꾸짖었습니다. 신의 관료들은 핍박을 받으며 신을 의리로써 추종해왔습니다. 신이 물러나자니, 다만 아직 구적 寇賊 (도적)을 효수하지 못했고, 국난 國難이 미이 未已(그 치지 않음)했습니다. 종묘 宗廟가 기울어 위급하고, 사직이 장차 무너지려 하니 성신 誠臣(충신)은 근심으로 머리가 깨질 듯하는 나날입 니다. 만약 응권통변 應權通變 (임기응변/ 임시변통)으로 성조 聖朝 (천자의 조정)를 편안케 할 수 있다면, 비록 물과 불을 무릅쓰더라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중의 眾議 (사람들의 의논)를 따라, 삼가 인새 印璽 (옥새)를 받아서 국위 國威를 존중하겠습니다.
작호 爵號(벼슬 이름)를 우러러 보면, 그 자리가 높고 사랑이 두텁습니다. 신이 고개 숙여 보효 報效 (보은)를 생각하니, 근심은 깊고 책 무는 무겁습니다. 놀랍고 두려워 벌벌 떨리고 숨이 가빠서 마치 깊은 골짜기에 임한 것과 같으니, 신이 어찌 감히 힘과 정성을 다해서 육 사 六師 (천자가 통솔하는 6개 군대)를 장려하고 군의 群義를 거느려, 응천순시 應天順時 (천명에 응하고 시세를 따름)로써 흉역(흉악하 고 패륜한 자)을 박토 撲討(토벌)해 사직을 안녕시키지 않겠습니까? 삼가 엎드려 표를 올려 아룁니다.’
표문이 허도에 다다르자 업군에 있던 조조는 현덕이 스스로 한중왕에 오른 것을 전해 듣고, 크게 노해 말한다.
“돗자리나 짜던 어린 놈이, 어찌 감히 이러냐! 내 맹세코 멸망시키리라!”
즉시 전령하여, 경국지병 傾國之兵(전국의 병력)을 모조리 일으켜, 양천(현덕이 장악한 동천과 서천 지방)으로 가서, 한중왕과 자웅을 겨 루려 한다. 한 사람이 반열에서 나와 간언한다.
“대왕께서 한 때의 노여움으로써 친히 거가(제왕이 타는 수레)를 움직여 원정을 떠나심은 불가하옵니다.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사오 니, 활을 당겨 화살 하나 쏠 것 없이, 유비로 하여금 촉에서 스스로 화를 입게 할 수 있사옵니다. 그의 병력이 쇠해 힘이 다하기를 기 다려, 단지 장수 한 사람 보내서 정벌하시면, 바로 성공할 것이옵니다.”
조조가 그 사람을 보니, 바로 사마의 司馬懿다. 조조가 기뻐하며 묻는다.
“중달(사마의의 자)에게 어떤 고견이 있소?”
“강동의 손권이 그 누이를 유비에게 시집 보냈으나 기회를 봐서 절취 竊取해서 데려갔습니다. 유비가 또한 형주를 점거한 채 돌려주지 않으니 피차 모두 절치지한 切齒之恨(몹시 심한 원한)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설변 舌辨(말재주가 뛰어남)이 있는 인물에게 시켜 서신을 들고 손권을 찾아가서 설득해, 병력을 일으켜 형주를 취하게 하십시오. 유비는 필시 양천의 병력을 일으켜 형주를 구원하러 올 것입니다 . 그때 대왕께서 병력을 일으켜 한천 漢川을 취하신다면, 유비의 수미 首尾(머리와 꼬리)가 서로 돕지 못할 테니, 그 형세가 틀림없이 위 태로울 것입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글을 다듬어 만총 滿寵을 사자로 삼아, 밤낮으로 강동으로 가서 손권을 만나게 한다. 손권은 만총이 찾아온 것을 알고, 곧 모사들과 더불어 상의한다. 장소가 진언한다.
“위나라와 오나라는 본래 원수진 게 없었으나 지난날 제갈량의 설사 說詞 (설변)를 받아들여, 결국 양가 兩家(여기서는 위나라와 오나라 )가 해마다 싸우기를 그치지 않아, 생령 生靈(백성)들이 도탄에 빠졌습니다. 이제 만백녕(만총)이 온 것은 필시 강화할 뜻이 있는 것이니 예를 갖춰 맞이해야 합니다.”
손권이 그 말을 따라, 모사들더러 만총을 성 안으로 맞아들이게 해서 만난다. 인사를 마쳐, 손권이 빈례 賓禮를 갖춰 만총을 대한다. 만총 이 조조의 서찰을 바치며 말한다.
“오나라와 위나라는 원래 원수지지 않았습니다. 모두 유비 때문에 흔극 釁隙 (틈)이 생긴 것입니다. 위왕께서 저를 여기 보내시며 장군께 서 형주를 공격하시면, 위왕께서 병력을 이끌고 한천으로 오셔서, 앞뒤로 협공하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유비를 쳐부순 뒤, 그 강토를 함께 나누고, 서로 침범하지 않을 것을 맹세할 것입니다.”
손권이 서신을 읽고나서, 연회를 베풀어 만총을 접대하고, 관사로 보내서 쉬게 한다. 손권이 모사들과 상의한다. 고옹이 말한다.
“비록 설사 說詞(변설/ 변명하는 말)이지만, 이치가 맞는 것도 있습니다. 이제 한편으로 만총을 돌려보내며, 조조와 만나 앞뒤로 협공할 것을 약속하고, 또 한편으로 사람을 강 너머 보내, 운장 雲長의 동정을 살펴본 뒤에, 일을 실행해야 합니다.”
제갈근이 말한다.
“제가 듣자니 관운장이 형주에 온 뒤, 유비가 중매를 서서 그에게 처실 妻室(아내)을 구해주니, 먼저 아들 하나를 낳고 그 뒤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그 딸이 아직 어려서 혼인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바라건대 제가 가서 주공의 세자와 혼인할 것을 요청하겠습니다. 만약 운장이 기꺼이 허락하면, 즉시 운장과 더불어 함께 조조를 격파할 것을 토의하고, 운장이 따르지 않으면, 그 뒤 조조를 도와 형주를 취해 야 합니다.”
손권이 그 계책을 써서, 먼저 만총을 허도로 돌려보내고, 제갈근을 형주에 사자로 보낸다. 성 안으로 들어가, 운장과 인사를 마치자 운장 이 말한다.
“자유 子瑜께서 이렇게 오신 것은 무슨 이유요?”
“일부러 두 집안의 우호를 맺고자 왔소. 우리 주 오후께 아드님이 한 분 계시니, 심히 총명하오. 관 장군은 따님이 한 분 계시다니 이렇게 결혼을 부탁 드리러 왔소. 양가가 우호를 맺어 함께 힘을 모아 조조를 격파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니, 청컨대 군후 께서 생각해 주시오.”
운장이 버럭 크게 노해서 말한다.
“호랑이 딸을 어찌 개새끼와 맺겠소! 그대 아우만 아니라면, 당장 목을 벨 것이오! 다시는 여러 말 마시오!”
곧 좌우를 불러 그를 끌어낸다.
제갈근이 포두서찬 抱頭鼠竄 (머리를 감싼 채 쥐처럼 숨을 곳을 찾아 달아남)해 돌아가 오후를 만나, 감히 은닉하지 못하고 결국 사실 대로 고한다. 손권이 크게 노한다.
“어찌 이렇게 심히 무례하냐!”
곧 장소를 비롯한 문무 관원들을 불러 형주를 빼앗을 계책을 상의한다. 보즐 步騭이 말한다.
“조조가 오래전부터 한나라를 찬탈할 욕심을 가졌으나 그가 두려워한 자는 유비입니다. 이제 사자를 보내서, 동오로 하여금 흥병(병력을 일으킴)해 촉을 병탄하라 하는데, 이는 동오에 가화 嫁禍 (재앙을 남에게 전가함)하는 것입니다. “
손권이 말한다.
“고 孤 (제후의 1인칭) 역시 형주를 취하고 싶어 한지 오래요.”
보즐이 말한다.
“이제 조인이 양양, 번성에 둔병 屯兵 하고, 장강도 가로막지 않으니 한로 旱路 (육로)를 따라 형주를 취할 수 있거늘 어떻게 취하지 않고 , 도리어 주공께 동병 動兵 (병력동원)을 요구하겠습니까? 주공께서 사자를 허도로 보내서, 조조를 만나 조인으로 하여금 한로를 따라 먼저 병력을 일으켜 형주를 취하라 요구하시면, 운장은 필시 형주의 병력을 뽑아내어 번성을 취할 것입니다. 만약 운장이 움직이면, 주 공께서 장수 한 사람을 보내셔서 형주를 몰래 취해서 일거에 얻을 수 있습니다.”
손권이 그 의견을 따라 즉시 사자를 강 건너 파견해 조조에게 글을 바쳐 그 일을 진설 陳說(진술)한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사자더러 먼저 돌아가라고 발부 發付(처치/ 발급)하고 뒤따라 만총을 번성으로 보내서 조인을 도와 참모관이 되어 출병을 상의한다. 한편으로 동 오에게 급히 격문을 전해서 병력을 이끌고 물길을 따라 접응해서 형주를 취하라 한다.
한편, 한중왕은 위연에게 명해 군마를 총독해서 동천 東川(한중)을 지키게 하고, 마침내 백관 百官을 이끌고 성도 成都로 돌아간다. 관 리를 보내 궁정을 지어 올리고, 관사 館舍(손님이나 나그네가 머무는 곳)를 마련하고, 성도에서 백수 白水까지 4백여 곳에 관사와 우정 郵亭 (편지를 전달하는 사람이 쉬어가는 곳)을 세운다. 널리 양초(식량과 말먹이풀)를 쌓고, 군기 軍器 (군대의 무기)를 많이 만들어, 중 원으로 진격할 것을 도모한다. 세작인(간첩)이 조조가 동오와 연결해 형주를 취하려 하는 것을 탐청 探聽해서, 즉시 촉으로 들어와 급보 한다.
한중왕이 황망히 공명을 불러 상의하니 공명이 말한다.
“제가 이미 조조의 이런 음모를 헤아려 놨습니다. 동오에 모사들이 극히 많으니, 반드시 조조에게 부탁해서 조인이 먼저 출병하게 요청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겠소?”
“사명 使命(사자)을 관부로 보내서 운장에게 알려서, 먼저 병력을 일으켜 번성을 취하여, 적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면 자연히 와해될 것입니다.”
한중왕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전부사마 前部司馬 비시 費詩를 사자로 삼으니 고명 誥命(조정에서 벼슬을 내리는 조서)을 지니고 형주로 간다. 운장이 성곽을 나와서 그를 영접해 입성한다. 공청(관청)에 이르러 인사를 마쳐 운장이 묻는다.
''한중왕께서 내게 무슨 벼슬을 내리셨소? "
"오호대장 가운데 으뜸입니다."
운장이 누가 오호장인지 묻자 비시가 답한다.
"관, 장, 조, 마, 황입니다. "
운장이 노한다.
"익덕은 내 아우요. 맹기는 대대로 명문이오. 자룡은 내 형을 오래 따라다녀 곧 내 아우요. 그들의 지위가 나와 나란한 것은 좋소. 그런데 황충은 어떤 자이기에 감히 나와 동열이란 말이오! 대장부는 결코 늙은 병졸과 같은 대오에 설 수 없소! "
결국 인수 印綬(관리의 도장을 매단 끈/ 벼슬의 상징)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비시가 웃는다.
"장군께서 틀렸습니다. 지난날 소하와 조참은 고조 황제와 더불어 함께 대사를 일으켜 가장 친근했으나 한신은 초나라의 망장 亡將(망명 한 장수)일 뿐이었습니다. 그 뒤 한신의 지위가 왕에 이르러 소하나 조참의 윗자리에 올랐으나 소하나 조참이 이것 때문에 원망했다고는 듣지 못했습니다. 이제 한중왕께서 비록 오호장의 작위를 두셨으나 장군과는 형제의 의를 가져 한몸처럼 보고 계십니다. 장군께서 곧 한 중왕이요 한중왕께서 곧 장군이십니다. 어찌 남들과 같겠습니까? 장군께서 한중왕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마땅히 휴척 休戚(안락과 근심 )과 화복을 함께해야지 벼슬의 높낮이를 따져서는 아니 되십니다. 바라건대 장군께서 깊이 생각하소서. "
운장이 크게 깨달아 거듭 고개숙여 말한다.
“저가 현명하지 못해, 족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자칫 대사를 그르칠 뻔했습니다.”
곧 삼가 인수를 받는다. 비시가 비로소 왕지 王旨 (왕의 교지)를 꺼내, 운장더러 병력을 이끌고 번성을 취하라 한다. 운장이 명령을 받들 어, 즉시 부사인과 미방 두 사람을 선봉으로 삼아, 먼저 한 무리 군을 이끌고 형주성 밖에 주둔하게 한다. 한편으로 연회를 성 안에서 베풀어, 비시를 환대한다.
2 경(밤 9시-11시)까지 마시는데 성 밖 영채 안에서 불길이 치솟는다고 알린다. 운장이 곧 갑옷을 걸쳐 말에 올라 성을 나가 살펴보 니 바로 부사인과 미방이 음주하다가 장막에 유화 遺火(실화)해 불이 화포에 붙어버리자 영채 가득 뒤흔들며 군기 軍器(무기 등 군사 물자)와 양초 糧草(식량과 말먹이풀)를 모조리 불태운 것이다. 운장이 병력을 거느리고 불을 꺼서 4 경에 이르서야 불이 모두 꺼진다.
운장이 성으로 들어와, 부사인과 미방을 불러 꾸짖는다.
“내 너희 둘에게 선봉을 맡겼거늘 출사 出師(출병)도 하기 전에, 먼저 허다한 군기와 양초를 불살라 없애고, 화포가 터져 부하 군마들을 죽여서 이토록 일을 그르치니 너희 둘을 무엇에 쓰겠냐!”
당장 두 사람을 베어버리라고 소리지르자 비시가 고한다.
“아직 출사하지 않았는데, 먼저 대장들을 참하면 군사에 불리합니다. 잠시 그 죄를 면해주십시오.”
운장이 노기를 삭히지 못한 채 두 사람을 꾸짖는다.
“내가 비 사마의 면목만 아니라면 너희 둘의 머리를 참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에 무사들을 불러 각각 40 대를 때리고 미방은 남군을, 부사인은 공안을 수비하도록 벌준다. 덧붙여 말한다.
“내가 승리를 거둬서 돌아오는 날에, 조금이라도 차지 差池(실수/ 잘못)가 있으면 두 가지 죄를 함께 벌하겠다!”
두 사람이 얼굴 가득 처참해져, ‘예, 예’ 하며 떠난다. 운장이 곧 요화를 선봉으로 삼고 관평을 부장으로 삼아 스스로 중군을 총독하고 마 량과 이적을 참군으로 삼아서 함께 싸우러 나아간다. 그 전에 호화의 아들 호반이 형주로 찾아와 관공(관운장)에게 투항하니 관공이 지 난날 구해준 정을 생각해 그를 몹시 아꼈다. 그에게 비시를 따라 서천으로 들어가 한중왕에게서 벼슬을 받으라고 명한다. 비시가 관공에 게 작별 인사를 하고 호반을 데리고 촉으로 돌아간다.
한편 관공이 그날 수자대기 帥字大旗(대장을 나타내는 큰 깃발)에 제사를 지내고 막사 안에서 깜빡 잠이 든다. 돼지 하나가 황소처 럼 크고 온몸이 검은데 막사 안으로 뛰어들어 곧장 운장의 발을 물어뜯는다. 운장이 크게 노해 급히 검을 뽑아 베어버리니 그 소리가 비 단 찟는 듯하다. 바로 놀라 깨어나니 한바탕 꿈인데, 바로 왼쪽 발이 음음 陰陰(은은)히 아픈 것이 느껴진다. 마음 속으로 크게 의혹이 들 어, 관평을 불러서 꿈을 이야기한다.
관평이 꿈에 대해 말한다.
“돼지는 용의 모습이 있습니다. 발에 붙은 것은 바로 높이 날아오른다는 뜻이오니, 의기 疑忌(의심하고 꺼림)하실 것 없습니다.”
운장이 관리들을 막사로 불러들여, 몽조 夢兆(꿈속에 나타난 징조)를 이야기하자, 누구는 길하고 상서롭다 말하고, 누구는 상서롭지 않 다고 말하여, 중론이 일치하지 못한다. 운장이 말한다.
“대장부 나이 육순에 가까운데, 곧 죽어도 무슨 유감이 있으랴!”
이렇게 말하는 사이, 촉의 사자가 다다라 한중왕의 교지를 전하니, 운장을 전장군에 임명하고 절월 節銊을 내려, 형주와 양양의 아홉 개 군의 사무를 총독하게 한다. 운장이 왕명을 받자 관리들이 절을 올려 축하한다.
“이것만 봐도 돼지와 용의 상서로움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운장이 마음 놓고 아무 주저 없이, 마침내 병력을 일으켜 양양의 대로를 달려온다. 조인이 마침 성 안에 있다가, 운장이 스스로 병력을 거느려 온다는 급보를 받는다. 조인이 크게 놀라, 굳게 지키며 출전하지 않으려 한다. 부장 책원이 말한다.
“위왕께서 장군더러 동오와 만나 형주를 취하라 하셨는데, 이제 그가 스스로 찾아왔으니, 이는 스스로 죽으러 온 것입니다. 무슨 까닭에 피하십니까?”
참모 만총이 말한다.
“내가 원래 알기에, 운장은 용맹한데다 꾀가 있으니, 함부로 맞설 수 없소. 굳게 지키는 것을 상책으로 삼음만 못하오.”
효장 驍將(사납고 날랜 장수) 하후존이 말한다.
“그런 말은 서생들이나 하는 것이오. 어찌 ‘물이 넘쳐 오면 흙으로 막고, 적장이 오면 병력으로 막으라’는 속담도 못 들었소? 아군이 이일 대로 以逸待勞(편히 쉬며, 지친 적병을 맞이함 - 손자병병)하니, 저절로 이길 것이오.”
조인이 그 말을 따라 만총에게 번성 수비를 맡기고, 스스로 병력을 이끌고 운장을 맞이한다. 운장은 조병 曹兵들이 오는 것을 알고 관평 과 요화 두 장수를 불러, 계책을 받고 가게 한다. 조병들을 맞이해, 양쪽 진영이 전투대형을 갖춘다. 요화가 출마해 도전하자 책원이 맞이한다. 두 장수가 싸운지 얼마 안 돼 요화가 못 이기는 척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니 책원이 추격하여 형주병들이 2십 리를 퇴각한다. 다음날 다시 와서 도전한다.
하후존과 책원이 일제히 나가서 맞이하자 형주병들이 또 패전한다. 다시 2십여 리를 뒤쫓아 무찌르는데, 배후에서 함성이 진동하고 북과 피리 나란히 울린다. 조인이 서둘러 앞쪽 병사들에게 명령해, 속히 되돌아가라 하지만, 배후에서 관평과 요화가 쳐 들어와서 조병들이 대란에 빠진다. 조인이 계책에 빠진 것을 알아채고 먼저 한 무리 군대를 뽑아내서 양양으로 나는 듯이 달아난다. 양양성에서 몇 리 떨어진 곳에 다다르자, 앞쪽에 수를 놓은 깃발이 나부끼는데 운장이 말을 세워 칼을 비껴들고 갈길을 막아선다. 조인의 간담이 떨리고 심장이 놀라서 교봉하지 못하고 양양의 사로 斜路(큰 길에서 갈라진 길/ 비탈길)로 달아난다. 운장이 뒤쫓지 않는다.
잠시 후, 하후존 부대가 다다라 운장을 보더니 크게 노해서 운장과 교봉하나 1합에 운장에게 베여서 죽는다. 책원은 바로 달아 나지만 관평이 뒤쫓아 한칼에 참한다. 기세를 타고 추격하니 조병들 태반이 양강에 빠져 죽는다. 조인이 번성으로 물러나 지킨다.
운장이 양양을 점령한 뒤, 군대를 포상하고 백성을 어루만진다. 수군사마 隨軍司馬 벼슬의 왕보 王甫가 말한다.
“장군께서 북소리 한번에 양양을 함락하시고 조병들 간담이 깨졌다 하지만, 제 소견으로 논해보겠습니다. 이제 동오의 여몽이 육구에 둔병하고 형주를 집어삼키려 합니다. 그가 병력을 이끌고 형주를 취하면 어떡하시겠습니까?”
운장이 말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오. 그대는 어서 이렇게 조치하시오. 강물의 상하류를 따라 2십 리나 3십 리마다 높은 언덕을 골라 봉화대를 두시오. 봉화대 한 곳마다 병사 5십으로 지키시오. 오병들이 강을 건너면 밤에는 불을 밝히고 낮에는 연기를 피워 신호하시오. 내 친히 가서 격파하겠소.”
“미방과 부사인이 두 곳의 길목을 지키고 있으나 아무래도 전력을 다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반드시 한 사람을 다시 뽑아 형주를 총독하게 하십시오.”
“내가 벌써 치중 治中 반준을 파견해 지키게 했는데 무슨 걱정이오?”
“반준은 평소 시기가 많고 이익을 좋아하므로 임용하시면 안 됩니다. 군전도독 軍前都督 양료관 糧料官 조루 趙累로 하여금 대신케 하십시오. 조루는 사람됨이 충성스럽고 청렴하고 강직하니 이 사람을 쓴다면 만에 하나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내 평소 반준의 사람됨을 알고 있으니 이미 보내놓고서 고칠 필요는 없소. 조루는 현재 양료 粮料(군량과 보급품)를 맡고 있으니 이것도 중요한 일이오. 그대는 너무 의심을 품지 말고, 다만 나에게 봉화대를 지어주러 가시오.”
왕보가 앙앙 怏怏히 작별 인사를 올리고 간다. 운장이 관평에게 선박을 준비해 양강을 건너 번성을 칠 것을 준비하라 명한다.
한편 조인은 앞서 두 장수를 잃고 번성으로 물러나 지키며 만총에게 말한다.
“공의 말씀을 듣지 않아 싸움에서 지고 장수들을 잃어, 양양을 빼앗겼으니 어떡해야겠소?”
“운장은 호랑이 같은 장수이니 함부로 맞서지 마시고 오로지 굳게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데, 운장이 강을 건너 번성을 치러 온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조인이 크게 놀라자 만총이 말한다.
“오로지 굳게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부장 여상이 분연히 말한다.
“제게 수천 병력을 주시면 바라건대 오는 적군이 양강을 건너기 전에 막아내겠습니다.”
만총이 간언한다.
“불가하오.”
여상이 노해서 말한다.
“그대들 문관의 말만 따라, 오로지 굳게 지키면, 어찌 능히 적군을 물리치겠소? 어찌 병법에서 ‘적군이 반쯤 건너면 공격하라.’ 한 것도 듣지 못하였소? 이제 운장이 양강을 반쯤 건너는데 어찌 치지 않겠소? 만약 적병이 성 밑에 다다라 곧 해자 주변에 이르면 서둘러 막아 내기 어렵게 될 것이오!”
조인이 즉시 병력 2천을 주며 여상에게 명하여, 번성을 나가서 맞아 싸우라 한다. 여상이 강어귀에 이르니 바로 앞쪽에 수기 繡旗(수를 놓아 꾸민 깃발)가 휘날리며 운장이 칼을 비껴잡고 출마한다. 여상이 그래도 싸우러 가려 하지만, 뒤의 병사들은 운장의 신위 神威(신 같 은 위엄)가 늠름한 것을 보고 싸우지도 않고 먼저 달아난다. 여상이 소리쳐도 막을 수 없다. 운장이 마구 무찔러 쳐들어오자 조병들이 크 게 져서 마보군(기병과 보병) 절반이 꺾인다. 패잔군이 번성 안으로 달아나자, 조인이 급히 조조에게 사람을 보내서 구원을 요청한다. 사 명(사자/ 심부름꾼)이 한밤에 장안에 이르러, 곧 서찰을 조조에게 바치며 말한다.
“운장이 양양을 깨뜨리고, 현재 번성을 에워싸 몹시 위급하옵니다. 바라건대 대장을 먼저 보내서 구원해주소서.”
조조가 반부 班部(조정의 조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줄) 안의 한 사람을 가리키며 말한다.
“그대라면 가서 번성의 포위를 풀 수 있을 것이오.”
그 사람이 바로 나오는데 사람들이 보니 우금이다. 우금이 말한다.
"장수 하나를 선봉으로 삼을 것을 청합니다. "
조조가 다시 사람들에게 묻는다.
"누가 선봉을 맡아보겠소? "
한 사람이 분연히 나오며 말한다.
"바라건대 견마지로를 다해서 관 아무개를 사로잡아 휘하에 바치겠나이다."
조조가 그를 보더니 크게 기뻐한다.
동오가 와서 기회를 노리기도 전에
먼저 북위가 병력을 더하는구나.
이 사람이 누굴까?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