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제79회 형이 핍박하자 조식이 시를 짓고 유봉이조카로서 숙부를 저버려서 사형을 받는다
한편 조비 曹丕는 조창 曹彰이 병력을 거느려 오자 놀라서 관리들에게 묻는데 한사람이 일어나서 나오며 그를 찾아가 절복 折服(굴복)시 키겠다 말한다. 사람들이 쳐다보니 바로 간의대부 가규 賈逵다. 조비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가규를 보낸다. 가규가 명령을 받고 성을 나 와서 조창을 만나니 조창이 묻는다.
“선왕께서 남긴 새수 璽綬(옥새와 인끈/ 옥새)는 어디 있소?”
가규가 낯빛을 고쳐 말한다.
“집안에 장자가 있고 나라에 저군 儲君(왕세자)이 있으니 선왕의 새수는 군후께서 물어볼 것이 아닙니다.”
조창이 침묵하더니 마침내 가규와 함께 입성한다. 궁문 앞에 이르러 가규가 묻는다.
“군후께서 이렇게 오신 것은 오로지 분상 奔喪(멀리서 급히 부모의 상을 치르러 옴) 때문입니까? 아니면 왕위를 다투려해서입니까?”
“분상하러 온 것이지 다른 뜻은 없소.”
“정말 다른 뜻이 없다면 어찌해서 병력을 이끌고 입성하십니까?”
조창이 즉시 소리쳐 좌우의 장사들을 물리친 뒤 척신 隻身(홀몸)으로 들어가서 조비를 배견 拜見한다. 형제 두 사람이 서로 껴안고 크게 곡한다. 조창이 부하 군마들을 모조리 조비에게 준다. 조비가 조창더러 언릉 鄢陵으로 돌아가서 지키라 하니 조창이 작별하고 떠난다.
이에 조비가 왕위에 순조롭게 올라 건안 25년을 연강 延康 원년으로 고친다. 가후 賈詡를 태위로, 화흠 華歆을 상국으로, 왕랑 王朗을 어 사대부로 봉한다. 대소관료 모두 승진하고 상을 받는다. 조조 曹操에게 무왕 武王이란 시호를 올리고 업군 鄴郡 고릉 高陵에 묻는다. 우 금 于禁에게 그곳 일을 감독 시킨다. 우금이 명을 받들어 그곳에 도착하니 하얀 분을 바른 벽에 관운장 關雲長이 7군을 수몰하고 우금을 사로잡은 것을 그려놓았다. 그림에서 운장은 근엄하게 윗자리에 앉고 방덕 龐德은 분노한 채 굴복하지 않는데 우금은 바닥에 엎드려 절 하며 살려달라 애걸하는 모습이다. 알고보니 우금이 패전해서 사로잡히고도 죽음으로써 절개를 지키지 못하고 항복하고도 다시 돌아오 자 조비가 그 사람됨을 부끄럽게 여겨서 미리 사람을 시켜서 그린 것이다. 일부러 그곳으로 불러 그림을 보고 부끄럽게 만든 것이다. 그 자리에서 우금이 그림을 보더니 부끄럽고 괴로워 분노하다가 병이 나서 오래지 않아 사망한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탄식했다.
서른 해가 지나도록 오래 알고 지낸다고 말하더니
불쌍하구나! 어려움에 빠지자 조씨에게 등돌렸네
사람을 알더라도 마음속까지 알지 못하는 것이니
호랑이를 그린다고 곧바로 뼛속부터 그리겠는가?
(호랑이의 뼛속 즉 마음속부터 그리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사람의 진심을 알기도 어렵다)
한편 화흠이 조비에게 아뢴다.
“언릉후는 이미 군마를 넘겨주고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임치후 조식 曹植과 소회후 조웅 曹熊, 두 사람은 분상 奔喪하지 않으 니 도리에 따라 죄를 물어야 합니다.”
조비가 이를 따라 즉시 관리 두 사람을 두 곳으로 보내 죄를 묻는다. 하루가 안 돼 소회후에게 갔던 사자가 돌아와 보고한다.
“소회후 조웅이 죄가 무서워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
조조가 그를 후장 厚葬하라 명하고 소회왕으로 추증한다.
또 하루가 지나자 임치후에게 갔던 사자가 돌아와 보고한다.
“임치후는 매일 정의 丁儀와 정이 丁廙 형제 두 사람과 어울려 흥겹게 술을 마시는데 사명(사자)이 온 것을 듣고도 임치후는 가만히 앉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정의가 욕하기를, ‘지난날 선왕께서 본래 우리 주공을 세자로 삼으시려 했으나 신하들이 헐뜯어 가로막은 것이다. 지금 선왕의 상 喪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바로 골육에게 죄를 묻다니 무슨 까닭이냐?’ 라고 했습니다. 정이도 말하기를, ‘우리 주께서 총명함이 세상에서 으뜸이니 마땅히 대위를 물려받으셔야 하거늘 지금 도리어 얻지 못하셨다. 너도 묘당(종묘/ 조정)의 신하인데 어찌 사람의 재능을 이렇게 모르냐!’ 라고 했습니다. 이에 임치후가 노해서 무사들에게 소리쳐서 신을 마구 매질해서 쫓아냈습니다.”
조비가 듣더니 크게 노해서 즉시 허저 許褚에게 명을 내려 호위군 虎衛軍 3천을 거느려 부리나케 임치로 가서 조식 등 1천 인을 잡아오 라 한다. 허저가 명을 받들고 군을 이끌고 임치성에 이른다. 수비하는 장수가 막아서자 허저가 당장 베어버리고 곧바로 성중으로 들어 간다. 아무도 감히 봉예(용맹스러운 진격)를 막아내지 못해서 부당(관청)으로 질러간다. 그런데 조식이 정의, 정이 등과 더불어 모두 만 취해 쓰러져 있다. 허저가 모조리 포박해 수레에 싣고 그 밑의 대소관리들을 모조리 업군으로 압송해서 조비의 발락 發落(처분)을 기다 린다. 조비가 명을 내려 먼저 정의, 정이 등을 모두 주륙(처형)한다. 정의의 자는 정례 正禮, 정이의 자는 경례 敬禮인데 패군 沛郡 사람 으로 당대의 문사 文士다. 그들이 피살 당하자 많은 사람들이 슬퍼한다.
한편, 조비의 어머니 변씨 卞氏는 조웅이 목매어 죽은 것을 듣고 마음이 몹시 비통하다 . 그런데 조식이 사로잡히고 그 무리 정의를 비롯 한 사람들이 이미 살해된 것을 다시 듣고 크게 놀란다. 급히 내전을 나와서 조비를 불러 만난다. 조비는 어머니가 나온 것을 보고 황망히 배알 拜謁하러 온다. 변씨가 통곡하며 조비에게 말한다.
“네 아우 식 植은 평소 술을 즐기고 미친 듯이 굴었다. 아마도 스스로 품은 재주를 믿어서 이렇게 방종한 것이다. 너는 동포(형제자매)의 정을 생각해서 그 목숨만은 살려주거라. 그래야 내가 구천에서도 눈을 감겠다.”
“소자도 그 재주를 몹시 아끼는데 어찌 해치겠습니까? 이제 그 성질을 다스리려 할 뿐이오니 모친은 걱정 마소서.”
변씨가 눈물을 뿌리며 들어간다. 조비가 편전을 나와서 조식을 불러들인다. 화흠이 묻는다.
“방금 태후께서 전하께 자건 子建(조식)을 죽이지 말라고 권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소.”
“자건은 재주와 지혜를 품어 결국 연못의 이무기로 만족치 않습니다. 어서 없애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됩니다.”
“어머니 말씀을 어길 수 없소.”
“모두 자건이 입만 열면 문장을 짓는다 하오나 신은 아직 잘 믿지 못하겠습니다. 주상께서 불러 그 재주를 시험하십시오. 능히 해내지 못 하면 바로 죽이십시오. 과연 해낸다면 신분을 낮춰서 천하 문인들의 입을 막으십시오.”
조비가 그를 따른다. 얼마 뒤 조식이 들어와 겁에 질린 채 엎드려 죄를 청한다.
조비가 말한다.
“나와 너는 정 情을 따지자면 형제이지만 의 義를 따지면 임금과 신하다. 네 어찌 재주를 믿고 예의를 업신여기냐? 지난날 선군 先君께서 살아 계실 때 너는 늘 문장을 남들에게 과시했으나 나는 아무래도 타인을 써서 대필하는 게 아닐까 심히 의심했다. 내 이제 네가 일곱 걸 음을 걷는 동안 시 한수를 짓는지 보겠다. 네가 과연 해낸다면 죽음은 면할 것이나 해내지 못한다면 무거운 치죄(처벌)를 받을 것이니 결 코 조금도 용서하지 않겠다. “
조식이 말한다.
“바라건대 제목을 내려주십시오.”
이때 궁전 벽에 수묵화가 하나 걸려 있는데, 두 마리 소가 흙담 아래에서 싸우다 한 마리가 우물에 떨어져 죽는 것을 그려 놓았다. 조비 가 그림을 가리키며 말한다.
“바로 이 그림을 주제로 하라. 시 속에는 ‘두 소가 담 아래 싸워서 한 소가 우물에 떨어져 죽는다’ 라는 자양 字樣(귀절)을 넣어서는 안 된 다. “
조식이 일곱 걸음을 걷자 시가 벌써 완성된다. 시는 이렇다.
두 고기덩이가 나란히 길을 가는데
머리 위에 오목한 뼈를 둘렀구나
서로 흙산 아래에서 마주쳐서
갑자기 서로 치고 나가려 하네
둘이 맞서도 모두 강하지는 못하니
한 고기덩이 토굴 속으로 넘어지네
힘이 같지 않아서가 아니라
강성한 기운을 다 쏟아내지 못해서네
조비와 신하들 모두 놀란다. 조비가 말한다.
“일곱 걸음에 문장을 완성했다만 오히려 늦은 것 같구나. 네 능히 듣자마자 시 한수를 지을 수 있지 않겠냐?”
“바라건대 주제를 정해주십시오.”
“나와 너는 형제이니 이것을 주제로 해라. 역시 ‘형제'라는 자양을 넣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식이 별로 사색하지 않더니 즉시 입으로 한수를 읊조린다.
콩을 삶는 데 콩깍지를 태우니
콩은 가마솥 안에서 우는구나
본시 한 뿌리에서 태어났거늘
어찌 이렇게 급하게 끓이는가!
조비가 듣더니 눈물을 줄줄 흘린다. 그 어머니 변씨가 뒤에서 나오며 말한다.
“어찌 형이 이토록 심하게 아우를 핍박하냐!”
조비가 황망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한다.
“국법을 폐할 수 없어 그랬을 뿐입니다.”
이에 조식을 안향후 安鄉侯로 지위를 낮춘다. 조식이 작별하고 말을 타고 떠난다.
조비가 왕위를 계승한 뒤 법령을 새로 고쳐 한 漢나라 황제를 위협하고 핍박하는 것이 그 아버지보다 심하다. 어느새 세작(간첩)이 성도 成都로 들어와서 보고한다. 한중왕 漢中王(유비)이 듣고 크게 놀라 문무관리들과 상의하며 말한다.
“조조가 죽고서 조비가 왕위를 계승해 천자를 핍박함이 조조보다 심하오. 게다가 동오 東吳의 손권 孫權은 두손 모아 조씨의 신하를 칭 했소. 고 孤는 먼저 동오를 정벌해 운장의 복수를 하고 싶소. 그 다음 중원을 토벌해 난적 亂賊을 제거하겠소.”
이 말을 미처 마치기도 전에 요화 廖化가 자리에서 나와서 통곡하며 엎드려 말한다.
“관공 부자가 살해된 것은 참으로 유봉 劉封과 맹달 孟達의 죄입니다. 바라옵건대 이들 두 도적놈을 주살하소서.”
현덕 玄德이 곧 사람들을 보내 잡아들이려 하자 공명 孔明이 간언한다.
“불가합니다. 우선은 천천히 도모해야 합니다. 급하면 변고가 생기게 됩니다. 이들 두 사람을 군수 郡守로 승진시켜 따로 부임해서 갈 라지게 하십시오. 그런 뒤에 사로잡아야 합니다.”
현덕이 이를 따라서 사자를 보내서 유봉을 승진시켜 면죽 綿竹을 지키게 한다. 알고보니 팽양 彭羕이 맹달과 교분이 몹시 두터워서 이 사실을 전해듣더니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다. 서신을 작성해 자신의 심복을 보내서 맹달에게 빨리 알리게 한다. 그 사자가 남문 밖으 로 나서자마자 마초 馬超의 순시군(순찰하는 군사)에게 잡혀서 마초에게 압송된다. 마초가 사실을 캐내어서 즉시 팽양을 찾아간다. 팽양 이 맞아들여 술을 내어 접대한다. 술이 몇순 돌자 마초가 건드려본다.
“지난날 한중왕께서 공을 몹시 후대했는데 지금은 어째서 점점 박대하는 것이오?”
팽양이 술에 취해서 미워하며 욕한다.
“노혁 老革(늙은 병사/ 욕으로 많이 씀)놈이 함부로 하지만 네 반드시 무슨 수를 쓰더라도 복수할 것이오!”
마초가 더욱 떠본다.
“저 역시 원한을 품은지 오래요.”
“공께서 부하 병사들을 일으켜서 맹달과 연결해서 외부에서 합세하고 제가 천병(서천의 병력)을 이끌고 내응한다면 대사를 도 모할 수 있소.”
“선생의 말씀이 지당하오. 내일 다시 의논합시다.”
마초가 팽양에게 작별하자마 팽양의 사로잡은 심복과 압수한 서신을 가지고 한중왕을 만나 낱낱이 고한다. 현덕이 크게 노해서 즉시 팽 양을 하옥해서 고문하게 한다. 팽양이 옥중에서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다. 현덕이 공명에게 묻는다.
“팽양이 모반할 마음을 가졌는데 어찌 다스려야겠소?”
“팽양이 비록 광사 狂士(자유분방한 사람)이나 가만두면 재앙이 생길 것입니다.”
이에 현덕이 팽양을 옥중에서 사사(독약으로 자살하게 함)한다.
팽양이 죽자 누군가 맹달에게 알린다. 맹달이 크게 놀라 허둥대는데 사명(사자)이 도착해 유봉더러 면죽으로 돌아가 지키라 한다. 맹달 이 황급히 상용 上庸 방능 房陵의 도위 都尉 신탐 申耽과 신의 申儀 형제 두 사람을 불러서 상의한다.
“나는 법효직(법정)과 더불어 한중왕을 위해 공을 세웠소. 이제 효직은 이미 죽고 한중왕은 지난날의 공로를 잊고 나를 해치려는데 어찌 해야겠소?”
신탐이 말한다.
“제게 계책이 하나 있사오니 한중왕이 공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맹달이 크게 기뻐하며 무슨 계책인지 서둘러 묻는다. 신탐이 말한다.
“저희 형제는 위나라에 귀순하고 싶은지 오래입니다. 공께서 표(임금에게 올리는 상주문)를 작성해서 한중왕에게 작별하고 위왕 조비에 게 귀순하시면 조비가 중용할 것입니다. 저희 두 사람도 뒤따라 넘어가겠습니다.”
맹달이 문득 깨달아 즉시 표 한통을 쓰더니 사자에게 준다. 그날 저녁 5십여 기를 이끌고 위나라로 귀순하러 간다. 사명이 표를 가지고 성도로 돌아가 한중왕에게 상주하며 맹달이 위나라로 귀순한 것을 말한다. 선주가 크게 노한 채 표를 읽으니 이렇다.
‘신 달 達이 삼가 생각하건대 전하께서 장차 이여지업 伊呂之業(이윤 伊尹과 여상 呂尙의 업적)을 세우시고 환문지공 桓文之功(춘추시 대 패자 환공 桓公과 문공 文公의 업적)을 추구해서 대사를 초창 草創하시며 오 吳, 초 楚 지역의 세력을 빌린다면 이로써 유위지사 有 為之士(유능한 사람)들이 우러러보며 귀순할 것입니다. 신은 위질 委質(임금에게 충성을 다짐)한 이래 지금까지 건려 愆戾(허물)가 산 처럼 쌓였습니다. 신이 스스로 이렇게 알 정도이니 하물며 임금께는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지금 왕조에 영준 英俊(영민하고 준수한 사 람)들이 인집 鱗集(군집)하는데 신은 안으로 아무런 보좌할 기량 器量이 없고 밖으로 장령 將領(장수)의 재능도 없으면서 공신의 반열에 올랐으니 참으로 스스로 부끄럽고도 남을 일입니다!’
‘신이 듣자니 범려 范蠡는 식미 識微(미세한 것을 보고 본질을 꿰뚫음)했으나 오호 五湖(고대 오월 지역의 호수)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습 니다. 구범 舅犯(진나라 문공 시절의 사람)은 사죄했으나 하상(강물 위)을 준순 逡巡(머뭇거리며 떠돎)했습니다. 무릇 좋아서 만나는 사 이에도 청명 請命(목숨을 살려달라고 함)과 걸신 乞身(걸해골 乞骸骨이라고도 하며 임금께 바쳤던 자신의 몸을 이제 그만 내려주라는 뜻 으로 임금께 사직을 청하는 것인데 초나라 항우와 범증의 고사에서 유래)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바로 거취의 구분을 깨끗 이하려는 것입니다. 하물며 신은 비루한데다 아무런 으뜸갈 큰 공훈도 없사오니 때때로 스스로 죄스러워 마음속으로 전현 前賢(옛 현인)을 생각하며 일찍부터 이러한 부끄러운 일을 멀리하려고 했습니다. 옛날에 신생 申生은 효성이 지극했으나 부친에게 의심을 받았으며 자서 子胥(오자서)는 충성이 지극했으나 임금에게 주살됐습니다. 몽염 蒙恬은 국경을 개척했으나 형벌을 받았으며 악의 樂毅는 제 齊나 라를 격파했으나 참녕 讒佞(모함)을 만났습니다. 신은 그러한 책을 읽을 때마다 감개 感慨해서 눈물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이제 친 히 그런 일을 당하니 더욱 상도 傷悼(가슴 아프게 몹시 슬픔)합니다!’
‘얼마 전에 형주 荊州에서 거듭 패전하자 대신들이 절개를 지키지 못하고 백 사람 가운데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신 홀 로 일부러 스스로 방능 房陵과 상용 上庸에 이르러 밖에서 거듭 걸신 乞身과 자방 自放(스스로 벗어나거나 예법의 구속에서 탈출한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자퇴의 뜻)을 바랐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전하의 성은으로 깊이 헤아리셔서 신의 마음을 가엽게 여기시고 신의 행동을 불쌍히 여기소서. 신은 참으로 소인 小人인지라 시종 始終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알면서도 하는데 감히 죄가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신이 늘 듣자니 옛말에, 교제를 끊어도 악성 惡聲(악평)을 하지 않으며 떠나는 신하는 원사 怨辭(원망하는 말)를 하지 않는다, 라고 하였 습니다. 신은 과거 군자의 가르침을 받드오니 바라건대 군왕께서 격려해주십시오. 신은 황공하기 그지없는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현덕이 읽기를 마쳐 크게 노해서 말한다.
“필부놈이 내게 반역하면서 어찌 감히 문사 文辭로써 희롱하는 것이냐!”
즉시 병력을 일으켜 잡아들이려 하자 공명이 말한다.
“유봉을 보내서 진병 進兵 시키면 두 호랑이를 서로 다투게 만들 것입니다. 유봉이 공을 세우든 패적 敗績(패전)하든 반드시 성도로 돌아 올 것이니 그때 바로 제거한다면 가히 두가지 해악을 근절할 수 있습니다.”
현덕이 그 말을 따라 사자를 면죽으로 보내 유봉에게 전유 傳諭(어명을 전달함)한다. 유봉이 명을 받고 병력을 인솔해 멩달을 잡으러 간 다.
한편 조비가 마침 문무관리를 모아서 의논하고 있는데 근신(가까이에서 모시는 신하)이 아뢴다.
“촉장 맹달이 투항해 왔습니다.”
조비가 맹달을 불러들여 묻는다.
“그대가 이렇게 온 것은 거짓 항복이 아니오?”
“신이 관공의 위기를 구하지 않아서 한중왕께서 신을 죽이려 하셨습니다. 그래서 죄가 두려워 투항한 것이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조비가 아직 준신 准信(신임)하지 못하는데 유봉이 병력 5만으로 양양을 공격하며 오로지 맹달과 싸우겠다고 한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조비가 말한다.
“그대가 만약 진심이라면 어서 양양으로 가서 유봉의 수급을 가져오시오. 그때 비로소 믿겠소.”
“제가 이해득실로써 설득한다면 병력을 움직일 것도 없이 유봉도 투항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조비가 크게 기뻐하며 곧 맹달을 '상기상시 건무장군 평양정후 신성태수'에 임명해 양양과 번성을 수비하도록 한다. 알고보니 하후상과 서황이 벌써 양양에 머물면서 상용의 여러 곳을 빼앗으려 하는 참이다. 맹달이 양양에 도착해 두 장수와 인사를 마치고 유봉이 성 밖 5십 리에 하채 下寨(진지를 세워 주둔)한 것을 탐지한다. 맹달이 즉시 서신 하나를 쓰더니 사자를 시켜 촉군 영채로 가져가서 유봉에게 귀순을 권한다. 유봉이 서신을 읽더니 크게 노해서 말한다.
“이놈은 숙부와 조카의 의를 그르치게 하더니 또다시 우리 부자 사이마저 갈라놓아 나를 불충불효한 사람으로 만들 셈이구나!”
서신을 찢어발기고 사자를 참한다. 다음날 군을 이끌고 싸움을 걸러 온다.
서신을 찢고 사자를 참한 것을 알고 맹달이 왈칵 크게 노해서 병력을 이끌고 맞이하러 나간다. 양군이 포진을 마치자 유봉이 문기 門旗 아래 말을 멈춰세워 칼을 들어 맹달을 가리키며 욕한다.
“나라를 배반한 도적놈아! 어찌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냐!”
“네 죽음이 임박했거늘 아직도 고집을 피우며 돌아볼 줄 모르냐!”
유봉이 몹시 성나서 말에 박차를 가하고 칼을 휘두르며 맹달에게 덤벼든다. 싸운지 3합이 안 돼 맹달이 패주하니 유봉이 그틈을 타고 2 십여 리를 추격하는데 갑자기 한바탕 함성소리 일더니 복병이 모조리 뛰쳐나온다. 왼쪽은 하후상이 달려들고 오른쪽은 서황이 달려들고 맹달도 되돌아서서 다시 싸운다. 3군이 협공하자 유봉이 대패해 그날밤 상용으로 달아나니 배후에서 위병들이 뒤쫓는다. 유봉이 성 아래 이르러 문 열라 외치자 성 위에서 화살을 난사한다. 신탐이 적루 敵樓(방어용 성루) 위에서 외친다.
“나는 이미 위나라에 항복했다!”
유봉이 크게 노해 성을 공격하려는데 배후에서 추격군이 당도한다.
유봉이 버티고 있을 수 없어 방릉 房陵 쪽으로 달아나나 성 위는 모조리 위나라 깃발이 꽂혀 있다. 신의가 적루 위에서 깃발을 한번 흔들 자 한무리 병사들이 성 뒤에서 튀어나오니 깃발에 크게, ‘우장군 右將軍 서황’이라 쓰여 있다. 유봉이 맞서지 못해 급히 서천 西川으로 달 아난다. 서황이 승세를 타고 추격한다. 유봉의 부하는 겨우 1백여 기인데 성도에 이르러 한중왕을 만나 바닥에 엎드려 울며 앞서 일어난 일을 자세히 아뢴다. 현덕이 노해서 말한다.
“욕자 辱子(못난 아들)가 무슨 면목으로 다시 나를 찾아오냐!”
“숙부의 어려움은 제가 구하지 않은 게 아니오라 오로지 맹달이 간저 諫阻(간언해서 저지함)해서입니다.”
현덕이 더욱 노해서 말한다.
“네가 틀림없이 사람의 음식을 먹고 사람의 옷을 입을 것이니 흙이나 나무로 만든 허수아비는 아닐 것이다! 어찌 헐뜯는 도적놈이 가로막는다고 들어주냐!”
좌우의 사람들에게 명령해 끌어내 참하도록 한다. 한중왕이 유봉을 참한 뒤에야 맹달이 유봉을 회유했으나 서신을 찢고 사자를 참한 것을 전해듣고 마음속으로 몹시 뉘우친다. 게다가 관공을 생각하니 애통해서 결국 병에 걸리니 이 때문에 병력을 움직이지 않는다.
한편 위왕 조비는 왕위에 즉위한 뒤 문무관료들을 모조리 승진시키고 포상한다. 그리고 곧 갑병 甲兵(군인/갑옷을 갖춘 병사) 3십만을 통수해 남쪽으로 패국 沛國 초현 譙縣으로 순시해 선영에서 대향 大饗 (선왕의 제사를 합사하는 것/ 임금이 큰 잔치를 베풂)한 다. 마을의 부로 父老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길을 메워 잔을 들고 술을 바치니 마치 한고조가 패국으로 돌아왔던 옛일을 보 는 듯하다. 누군가 대장군 하후돈의 병세가 위급하다고 알리니 조비가 즉시 업군으로 돌아온다. 그때 이미 하후돈이 세상을 떠난 뒤라 조비가 상복을 입고 성대한 예로써 빈장 殯葬(출상과 매장)을 치른다.
이해 8월 석읍현 石邑縣에 봉황이 내의 來儀(봉황이 은덕에 감동해 와서 춤을 추고 의용을 갖추는 것)하고 임치성 臨淄城에 기린이 출현 하고 황룡 黃龍이 업군에 나타난 것을 아뢰며 칭송한다. 이에 중랑장 이복 李伏과 태사승 허지 許芝가 상의한다. 갖가지 상서로운 징조 가 있으니 바로 위나라가 한나라를 대신할 징조이라 수선 受禪(황제의 자리를 물려받음)의 예를 안배해서 한나라 황제로 하여금 천하를 위왕에게 양도하게 하자는 것이다. 곧 화흠, 왕랑, 신비 辛毗, 가후, 유이 劉廙, 유엽 劉曄, 진교 陳矯, 진군 陳群, 환계 桓階를 비롯한 한 무리 문무관료 4십여 사람이 내전으로 바로 들어가 한나라 헌제 獻帝에게 상주하며 위왕 조비에게 선위할 것을 청한다.
위나라 사직이 이제 막 세워지자
한나라 강산이 벌써 흔들리네
헌제가 어찌 대답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