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제78회 신의가 풍질을 치료하다가 숨지고 간웅 조조가 유명을 전하며 운수가 다한다
한편 한중왕이 관공 부자가 살해된 것을 전해듣고 통곡하며 바닥에 쓰러지니 문무관리들이 급히 구한다. 한참 뒤에야 깨어나자 부축해 서 내전으로 들인다. 공명이 권한다.
“왕상께서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로부터 이르기를, 생사는 운명에 달렸다, 라고 했습니다. 관공이 평소에 굳세고 자긍심이 있더니 오늘 이렇게 화를 입었습니다. 왕상께서는 우선 존체(옥체)를 보양하시며 천천히 복수를 도모하셔야 합니다. “
“고 孤와 관, 장 두 아우는 도원에서 결의할 때 생사를 같이할 것을 맹서했소. 이제 운장이 죽었으니, 고가 어찌 홀로 부귀를 누리겠소!”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관흥이 울부짖으며 온다. 현덕이 보더니 크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다시 통곡하며 바닥에 쓰러진다. 관리들이 구해서 깨운다. 하루에 통곡하며 혼절하기를 서너 차례 하며 사흘간 죽도 안 먹으며 오로지 통곡할 따름이다. 눈물이 옷자락을 적셔 핏 자국이 얼룩덜룩하다. 공명과 관리들이 거듭 말린다.
현덕이 말한다.
“고와 동오는 맹세코 해와 달을 같이하며 살지 못할 것이다!”
공명이 말한다.
“듣자니 동오에서 관공의 수급(잘린 머리)을 조조에게 바쳐, 조조가 왕후(왕과 제후)의 예로써 장례를 치렀다 합니다.”
“왜 그리했겠소?”
“이것은 바로 동오가 재앙을 조조에게 떠넘기려는 것인데 조조가 그 계략을 알아차려 관공을 두터운 예로써 장사지낸 것입니다. 왕상으 로 하여금 동오에 원한을 품도록 하는 것입니다. “
“내 즉시 병력을 이끌고 동오의 죄를 물어 내 원한을 씻겠소!”
공명이 간언한다.
“불가합니다. 바야흐로 지금 동오는 우리가 위나라를 치기를 바라고, 위나라 역시 우리가 동오를 치기를 바랍니다. 서로 휼계 譎計(남을 속이는 잔꾀)를 품고 기회를 노릴 것입니다. 주상께서 오로지 안병부동(병력을 움직이지 않음)하시며 우선 관공을 위해 발상 發喪하셔야 합니다. 동오와 위나라가 서로 불화하기를 기다려, 그 틈을 타서 정벌하셔야 합니다.”
관리들도 거듭 권하며 간언한다. 그제서야 현덕이 죽을 먹으며 천중(동서 양천 지방)의 대소장사(지위가 높고 낮은 문무관리들)에게 모 두 괘효 掛孝(상복을 입음)하도록 지시한다. 한중왕이 몸소 남문을 나가 관공의 혼을 부르며 장례를 치르는데 하루종일 호곡 號哭(목놓 아 슬피 울어댐)한다.
한편 조조는 낙양에서 관공의 장례를 치른 뒤, 매일밤 눈만 감으면 관공이 보인다. 조조가 몹시 놀라고 두려워 관리들에게 묻자 그들이 답한다.
“낙양의 행궁은 오래된 전각에 요사스런 기운이 많으니 새로 전각을 지어 머무셔야 합니다.”
“내 이미 전각 하나를 지어올려 건시전 建始殿이라 이름짓고 싶었으나 양공 良工(솜씨가 좋은 기술자)이 없어 한스러웠소.”
가후가 말한다.
“낙양의 양공으로 소월이란 사람이 있는데 무척 똑똑합니다.”
조조가 불러들여 도상(설계도)을 그리라 한다. 소월이 아홉 간의 대전(큰 전각), 낭무(행랑), 누각을 그려서 조조에게 바친다. 조조가 보 더니 말한다.
“그대의 계획이 고의 뜻과 몹시 일치하나 다만 동량으로 쓸 재목이 없을까 걱정이오.”
“여기서 성문 밖 3십 리에 연못이 하나 있사오니 약룡담 躍龍潭이라 하옵니다. 그 앞에 사당이 하나 있사오니 약룡사라 하옵니다. 사당 옆에 한그루 커다란 배나무가 있어 그 높이가 십여 길이니 건시전을 지을 만합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즉시 사람들을 시켜 그곳으로 가서 벌목하도록 한다. 다음날 되돌아와 보고하기를, 그 나무는 톱질로 자를 수도 없거니와 도끼로 쳐도 도끼날이 들어가지 못한다고 한다. 조조가 믿지 않고 몸소 수백 기(기마)를 거느려 곧바로 약룡사 앞으로 가서 말 에서 내린다. 그 나무를 올려다보니, 정정 亭亭하기가 마치 화개 華蓋(제왕의 수레에 사용하는 일산)와 같고 운한 雲漢(은하수)까지 치솟 은 듯한데 전혀 구부러지지 않았다. 조조가 베어내라고 명령하자 향로(촌로/ 시골노인) 몇 사람이 와서 간한다.
“이 나무는 수백년이나 되옵고 늘 신인께서 그 위에 사시니, 지금 베어낼 수 없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조조가 크게 노해 말한다.
“내 평생에 천하를 돌아다니기를 4십여 년으로 위로는 천자, 아래로는 서인(서민)들까지 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다. 무슨 요신 妖 神(요사스런 귀신)이라고 감히 고의 뜻을 거스르겠냐!”
말을 마치더니 차고 있던 검을 뽑아 직접 나무를 벤다. 쨍! 소리가 나면서 조조의 온몸에 피가 뿌려진다. 조조가 악! 크게 놀라 검을 내던 지고 말을 타고 내궁으로 돌아간다. 그날밤 2경(밤9-11시)에 조조가 편안히 드러누워 잘 수 없어 전각 안에 앉아 있다가 안석에 기대어 잠든다. 문득 누군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검을 들고, 검은 옷을 입고 바로 조조 면전으로 와서 손가락질하며 말한다.
“나는 바로 배나무의 신이다. 네가 건시전을 짓겠다니 찬역할 뜻을 품고 내 신목 神木을 베려온 것이구나! 네 운수가 다한 것을 알고 일 부러 너를 죽이러 왔다!”
조조가 몹시 놀라 급히 부른다.
“무사는 어디 있냐?”
그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검을 들어 조조를 베려 한다. 조조가 크게 외마디 소리를 내더니 문득 놀라 깨어난다. 두뇌의 동통 疼痛(쑤시 듯이 아픔/ 몹시 아픔)을 참을 수 없어 급히 좋은 의생을 찾으라 지시한다. 치료해도 낫지 않아 관리들 모두 걱정한다.
화흠이 들어와 아뢴다.
“대왕께서 신의 神醫 화타가 있는 것을 모르십니까?”
“바로 강동에서 주태를 치료한 사람 말이오?”
“그렇습니다.”
“비록 그 명성을 들었으나 아직 그 의술을 모르겠소.”
“화타는 자가 원화이며 패국의 초군 사람입니다. 그 의술은 신묘해서 세상에 드뭅니다. 환자가 있다면 약을 쓰든 침을 쓰든 뜸을 쓰든 즉 시 치유됩니다. 만약 오장육부의 질병을 앓아 약으로 치료할 수 없다면, 마폐탕을 먹여 병자를 마취해 죽은 듯이 만들어놓고 뾰족한 칼 로써 그 배를 가릅니다. 약탕으로써 그 장부를 씻는데 병인(환자)은 아무 동통을 못 느낍니다. 씻기를 마친 뒤, 약선(약을 입힌 실)으로써 꿰매고 약을 바르면 한달이나 스무날이 지나서 바로 회복됩니다. 그 신묘함이 이렇사옵니다.
하루는 화타가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의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화타는, 이것은 음식이 내려가지 않는 병이다, 라고 했습니다. 물 어보니 과연 그랬습니다. 화타가 마늘즙을 석 되를 마시게 하자 뱀 한 마리를 토해내니 길이가 2, 3척인데 그때부터 음식이 바로 내려갔 습니다.
광릉태수 진등이 마음 속에 번민이 가득하고 얼굴이 벌개져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자 화타에게 치료를 요청했습니다. 화타가 약을 마시 게 하자, 벌레를 석 되나 토해내는데 모두 머리가 붉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꿈틀거렸습니다. 진등이 그 까닭을 묻자 화타가, ‘이것은 어성 魚腥(물고기의 비린 냄새/ 물고기)을 많이 드셔서 이렇게 독충이 생긴 것입니다. 오늘은 비록 낫더라도 3년 뒤에 반드시 재발할 텐데 구 해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뒤 진등이 과연 3년이 되자 사망했습니다.
또한 누군가 미간 眉間에 혹이 생겨 가려워 견딜 수 없는지라 화타에게 보였습니다. 화타가, 이 속에 날짐승이 들어있소, 라고 말하자 사 람들 모두 웃어넘겼습니다. 그런데 화타가 칼로 갈라보니 한마리 노란 참새가 날아가고 병자는 즉시 치유됐습니다.
누군가 개에게 발가락이 물리고 이어서 살덩어리가 두개 자라나더니 하나는 아프고 하나는 가려워 모두 참을 수 없었습니다 화타가, 아 픈 곳은 바늘이 열개 있고 가려운 곳은 흑백 바둑알이 두알 있을 것이오, 라고 말했지만 사람들 모두 믿지 않았습니다. 화타가 칼로 절개 하자 과연 그의 말대로였습니다.
이 사람은 참으로 편작이나 창공과 같은 사람입니다. 현재 금성에 머물러 여기서 멀지 않은데 대왕께서 어찌 부르지 않으시겠습니까?”
조조가 즉시 사람을 보내서 그날밤 화타를 불러들이고, 진맥해서 질환을 살피게 한다. 화타가 말한다.
“대왕 두뇌의 동통은 환풍 患風(중풍) 때문입니다. 병의 뿌리가 뇌대 腦袋(머리) 속에 들어, 풍연 風涎을 배출하지 못합니다. 부질없이 탕 약을 드신들 치료할 수 없습니다. 제게 한가지 방법이 있사오니 먼저 마폐탕을 드신 뒤 예리한 도끼로 뇌대를 갈라 풍연을 꺼낸다면 병을 뿌리뽑을 수 있습니다.”
조조가 크게 노해 말한다.
“네가 고를 죽일 작정이구나!”
“대왕께서는 일찍이 관공이 독화살을 맞아 오른 팔을 다친 것을 제가 뼈를 긁어서 독을 치료하는데도 관공이 아무 두려운 기색이 없었던 것을 들어보셨습니까? 지금 대왕께서 하찮은 질병에 어찌 이렇게 의심이 많으십니까?”
“팔이 아픈 것은 긁어내도 되겠지만 뇌대를 어찌 절개하겠냐? 네놈이 필시 관공과 정이 두터워 이 기회에 복수하려는 것이구나!”
좌우 사람들에게 소리쳐 옥중에 가두어서 진상을 밝히도록 고문하라 한다. 가후가 간언한다.
“이런 양의(훌륭한 의사)는 세상에 필적할 이가 드무니 아직 폐해서는 안 됩니다.”
조조가 질타한다.
“이 놈이 기회를 타서 나를 죽이려하거늘 정녕 길평과 무엇이 다르랴!”
급히 영을 내려 추궁하고 고문하도록 한다.
화타가 옥중에 있을 때 어느 옥졸이 있으니 성이 오 吳인데 모두 오압옥 吳押獄이라 부른다. 이 사람이 매일 술과 밥을 화타에게 갖 다바친다. 화타가 그 은혜에 감동해 마침내 말한다.
“저는 곧 죽을 것이나 다만 <청낭서 青囊書>를 아직 세상에 전하지 못해 한스럽소. 공의 후의에 감동해도 아무 보답할 길이 없소. 제가 편지를 써드릴 테니, 사람을 보내 저희집에 전해서 청낭서를 가져오면 공께 드려서 제 의술을 이어가게 하겠소.”
오압옥이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제가 그 책을 얻는다면 이 일을 그만두고 천하의 병인들을 치료해 선생의 덕을 전하겠습니다!”
화타가 즉시 서찰을 써서 오압옥에게 준다. 오압옥이 곧바로 금성으로 가서 화타의 처를 찾아가서 청낭서를 얻는다. 옥중으로 돌아와 화 타에게 주자 검간 檢看(검사)을 마쳐 오압옥에게 증정한다. 오압옥이 가지고 귀가해 보관한다. 열흘 뒤에 화타가 마침내 옥중에서 죽는 다. 오압이 관을 사서 염을 한다. 차역 差役(강제노역/ 노동/ 여기서는 옥졸의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서 청낭서를 꺼내서 익히려 는데 그 처가 그 책을 불태우고 있지 않은가! 오압옥이 크게 놀라 황망히 빼앗지만 전권이 모두 불타서 겨우 한두 장만 남았다. 오압옥이 노해서 그 처를 욕하자 처가 말한다.
“비록 화타와 똑같이 신묘하게 의술을 익힌들 결국 옥중에서 죽는다면 어디다 쓰겠소?”
오압옥이 한탄해 마지않는다. 이리해 청낭서는 세상에 더이상 전하지 못하고 그나마 전하는 것은 고자, 닭, 돼지 등에 관한 하찮은 내 용이 타다남은 한두 장에 실려 있을 뿐이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탄식했다.
화타의 선술 仙術은 장상*에 비할지니
담 너머 엿보듯이 신묘하게 진단하네
한스럽게 누군가 그 서책마저 망실하니
후인들은 청낭서를 다시는 볼 수 없구나!
한편, 조조는 스스로 화타를 죽인 뒤 병세가 더욱 심해지는데다 동오와 서촉의 문제까지 걱정스럽다. 그런데 측근 신하가 아뢰기를 동오의 사신이 와서 서찰을 바친다고 한다. 조조가 서찰을 뜯어보니 대략 이렇다.
‘신 손권은 오래전부터 천명 天命이 이미 왕상께 온 것을 알고 있사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조속히 대위 大位(황제의 자리)를 바로잡으 시고, 장수를 파견해 유비를 소멸해 양천(파촉과 한중 지역)을 소평하소서. 신은 즉시 무리를 이끌고 영토를 바치며 투항하겠나이다.’
조조가 다 읽더니 꺼내서 신하들에게 보이며 말한다.
“이 녀석이 나를 화롯불 위에 올리려 하구나!”
시중 진군 등이 아뢴다.
“한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쇠미하고 전하의 공덕은 외외 巍巍(우뚝 솟음)하니 생령(백성)들이 우러러 마지않습니다. 이제 손권이 신하를 칭하며 귀명 歸命(귀순)하니 이것은 천인 天人(하늘과 사람)이 함께 응하고 이기 異氣(다른 성씨들)가 모두 한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마땅히 천인의 뜻을 순응해 조속히 대위를 바로잡으소서!”
조조가 웃으며 말한다.
“내가 한실을 다년간 섬겨왔소. 비록 공덕이 백성들에게 미치더라도 내 지위는 이미 왕위에 올랐고 공명과 작록이 이미 지극한데 어찌 감히 더 다른 바람이 있겠소? 만약 천명이 고에게 있다면 고는 주나라 문왕(그의 아들 무왕이 중국을 통일함)처럼 되겠소.”
사마의가 말한다.
“이제 손권이 신하를 칭하며 귀부하니 왕상께서 관직을 봉하고 작위를 내리며 그에게 유비를 막으라 명하십시오.”
조조가 이를 따라 손권을 표기장군 남창후로 봉해서 형주목을 맡도록 표를 올린다. 그날 사자를 보내며 고칙 誥勅 (벼슬을 내리는 칙서) 를 가지고 동오로 가도록 한다.
그런데 조조의 병세가 더욱 심해진다. 문득 어느날 밤 꿈 속에서 세마리 말이 같은 구유에서 먹고 있다. 이윽고 조조가 깨어나 가후에게 묻는다.
“고가 지난날 일찍이 꿈 속에서 세마리 말이 같은 구유에서 먹는 것을 보고, 마등 부자가 재앙이 될까 의심했었소. 이제 마등은 죽고 없 는데 어젯밤 또다시 세마리 말이 같은 구유에서 먹는 것을 보았소. 무슨 길흉의 징조이겠소?”
“녹마 祿馬(고대 점술의 용어.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며 하늘을 운행하는 천마)는 길조입니다. 녹마가 조씨에게 귀부한다는 것인데 왕상 께서 구태여 무엇을 의심하시겠습니까?”
조조가 이에 따라 의심하지 않는다. 훗날 누군가 시를 남겼다.
세마리 말이 구유를 함께하는 것은 의심하면서도
스스로 진나라 뿌리를 심어놓은 것을 몰랐구나
조만*이 헛되이 간사하게 웅략을 펼쳤으니
어찌 조정 안의 사마사*를 알았으리오!
이날밤 조조가 침실에 누워 3경이 되자 머리와 눈이 흐리고 어지러워 결국 일어나 안석(몸을 기대는 방석)에 기대어 눕는다. 그런데 문 득 전각 안에서 비단 찢는 소리가 들려 조조가 놀라 바라본다. 바로 복황후, 동귀인, 두 황자 皇子 그리고 복완, 동승 등 스무사람 남짓이 온몸이 피에 물든 채 음침한 어둠 속에 서 있는데 목숨을 내놓으라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온다. 조조가 급히 검을 뽑아 허공을 향해 베러 가는데 큰소리가 나며 벼락이 전우 殿宇(전각/ 궁궐) 서남쪽에 떨어진다. 조조가 놀라 땅에 쓰러지니 근시들이 구출해 별궁으로 옮 겨 양병 養病한다. 다음날 밤 다시 전각 밖에서 남녀들의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날이 밝자 조조가 신하들을 불러들여 말한다.
“고가 융마 戎馬(싸움말/ 전쟁/ 군사) 에서 3십여 년을 보내도 아직 괴이한 일들을 믿은 적 없었소. 오늘 무엇 때문에 이렇겠소?”
신하들이 아뢴다.
“대왕께서 마땅히 도사들에게 명하시어 제단을 만들어 기도하게 하십시오.”
조조가 탄식한다.
“성인께서 이르시길, 하늘에 죄를 지으면 기도할 곳이 없다, 라고 하셨소. 고의 천명이 이미 다했으니 어찌 구하겠소?”
결국 제단을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음날 기 氣가 상초 上焦(신체 윗부분)에 치밀어 눈으로 물체를 볼 수 없자 급히 하후돈을 불러 상의하려 한다. 하후돈이 궁궐 문앞에 이르니 갑자기 복황후, 동귀인, 두 황자, 동승 등이 음운 陰雲(먹구름) 속에 서 있는 것이 보인다. 하후돈이 크게 놀라 혼절해서 쓰러진 것을 좌우 사람들이 일으켜 세우지만 이때부터 병에 걸린다. 조조가 조홍, 진군, 가후, 사마의 등을 함께 와탑 臥榻(침대)으로 불러 뒷일을 부탁한다. 조홍 등이 머리를 조아려 말한다.
“대왕께옵서 옥체를 잘 보전하시면, 머지않아 아무 탈 없이 쾌차하실 것입니다.”
조조가 말한다.
“고가 3십여 년 동안 천하를 종횡하며 군웅을 모두 멸망시키고 다만 강동의 손권, 서촉의 유비를 아직 소제하지 못했소. 고가 이제 병세 가 위급해 다시는 경들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 것이니 특별히 집안일을 부탁하겠소. 고의 장자였던 조안은 유씨 소생이나 불행 히 젊은 나이에 완성에서 숨졌소. 이제는 변씨의 네 아들인 비, 창, 식, 웅이 있소. 고가 평소 사랑한 애는 세째 아들 조식인데 그 사람됨 이 겉치레가 적고 성실하나 술을 좋아하고 방종하므로 세자로 세울 수 없었소. 둘째 아들 조창은 용맹스러우나 무모하오. 네째 아들 조 웅은 병이 많아 보전하기 어렵소. 오로지 첫째 아들 조비는 독후 篤厚(성실하고 인정 많음)하고 공근 恭謹(공손하고 삼감)하니 가히 나의 업을 계승하겠소. 경들은 마땅히 그를 보좌하시오.”
조홍 등이 눈물흘리며 명령을 받들고 나간다. 조조가 근시들에게 명하여, 평소 소장했던 이름난 향수를 가져오게 하여, 여러 처첩에게 나눠주며 다시 부탁한다.
“내 죽거든 너희는 반드시 여공 女工(여자들의 길쌈질)을 삼가 익혀서 사리 絲履(명주실로 만든 신발)를 많이 만들어 팔아서 돈을 벌어 자급하라.”
다시 명을 내려, 많은 첩들은 동작대에서 머물며 날마다 제를 올리고, 여기 女伎(노래나 음악을 하�� 여자)들은 음악을 연주하고 음식을 바치라 한다. 또다시 명을 남기니, 창덕부 彰德府(땅이름)에서 강무 講武(임금이 참석하는 군사훈련)를 성밖에서 하면서 가짜 무덤 72개 를 만들어 절대로 후대 사람들이 자신의 무덤을 알지 못하게 하라고 한다. 이렇게 부탁을 마치더니 장탄식을 하고 눈물을 비오듯이 흘린 다. 얼마 뒤 기절해 죽으니 그의 나이 66세, 때는 건안 25년 봄 정월이다. 훗날 누군가 <업중가 鄴中歌>를 지어 조조를 기렸다.
그곳의 성은 업성 鄴城 그곳의 물은 창수 彰水,
남다른 사람이 그곳을 따라 일어나니
웅대한 지략*으로 멋진 일을 하며 문장도 뛰어나고
주군과 그 신하들은 마치 형제와 부자 같았구나
영웅은 가슴속에 속된 것이 없으니
그 출몰을 어찌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 따르랴
공로도 으뜸 죄악도 으뜸 따로 두 사람이 아니라
악취나 향기나 본래 한 몸에서 다 나왔네
그의 문장은 신묘하고 패기가 있었으니
어찌 구차하게 다른 인재들과 섞이랴
흐르는 물을 가로막고 동작대를 쌓아 태행산과 겨루고
기 氣와 이 理 형세 따라서 때때로 낮아지고 높아졌네
어찌 이런 사람이 반역을 저지르지 아니하고
작게는 패자 覇者, 크게는 왕이 되지 않았으랴!
그러나 패왕도 죽게 되니 아녀자처럼 울며
어쩔 도리 없이 마음 속으로 불평했네
제를 올려도 부질없음을 잘 알고
향수를 나눠줬으니 무정하다고 말할 수 없네
오호라!
고인이 일을 할 때 크고 작음에 구애 없었고
적막하거나 호화롭거나 모두 의미 있었는데
서생들은 무덤 속 사람을 함부로 의논하지만
무덤 속에서는 이런 서생 기질을 비웃을 것이네
한편 조조가 사망하자 문무백관 모두 거애 舉哀(문상하고 애도함)한다. 한편으로 세자 조비, 언릉후 鄢陵侯 조창, 임치후 臨淄侯 조식, 소회후 蕭懷侯 조웅을 찾아가 상을 알린다. 관리들이 금으로 만든 널(사체를 넣는 관)과 은으로 만든 덧널(널을 여기에 넣음)을 써서 조 조를 입렴 入殮(시신을 널에 넣는 것)하고 그날밤 영친 靈櫬(영구)를 업군으로 운반해 온다. 조비가 부친의 상을 듣고 목놓아 통곡하며 대 소관원들을 이끌고 성밖 십 리까지 나온다. 길에 엎드려 영구를 맞이해 성으로 들여서 편전 偏殿에 모신다. 관료들이 괘효 掛孝(상복을 입음)하고 편전에 모여서 곡한다. 그런데 누군가 일어나 말한다.
“청하옵건대 세자께서 애도를 멈추시고 우선 대사를 의논하소서.”
사람들이 쳐다보니 바로 중서자 中庶子(태자나 세자 밑의 관리) 사마부 司馬孚(사마의의 동생)가 말한다.
“위왕께서 돌아가시어 천하가 진동하옵니다. 마땅히 어서 사왕 嗣王(뒤를 잇는 왕)을 세워 모두의 마음을 안정시켜야 하거늘 어찌 흐느 껴 우시기만 하십니까?”
신하들이 말한다.
“세자께서 왕위를 이으셔야 하지만 아직 천자의 조명을 득하지 못했으니 어찌 조차간(순식간)에 행하겠소?”
병부상서 진교가 말한다.
“대왕께서 외부에서 훙서(서거)하셨는데 애자 愛子를 사사로이 옹립해 피차간에 변고가 생기면 종묘사직이 위태롭소.”
곧 검을 뽑아 옷소매를 자르고 소리높여 말한다.
“오늘 즉시 세자께서 왕위를 이으시기를 청하옵니다. 관리들 중에 이의를 가진 자, 바로 이 옷소매처럼 될 것이오!”
백관 모두 떨며 두려워한다. 그런데 화흠이 허창에서 급히 말을 타고 왔다고 한다. 사람들 모두 크게 놀란다. 잠시 뒤 화흠이 들어오 니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는다. 화흠이 말한다.
“지금 위왕께서 훙서하시어 천하가 진동하거늘 어찌 조속히 세자께 왕위를 이으시라 청하지 않소?”
관리들이 말한다.
“지금 바로 천자의 조명을 받지 못한 까닭에 왕후 변씨의 전지로써 세자를 왕으로 옹립할 것을 의논하고 있었소.”
“내 이미 한나라 황제의 거처에서 조명을 득해서 여기 가지고 있소.”
모두 기뻐하며 펄쩍 뛰며 칭하한다. 화흠이 품속에서 조명을 꺼내어 읽는다. 알고보니 화흠이 위나라에 첨사 諂事(아첨해서 섬김)하고자 이런 조명의 초안을 쓰고 헌제를 핍박해서 받아들이게 한 것이다. 헌제는 다만 들어줄 수 밖에 없기에 조서를 내려 조비를 위왕, 승상, 기 주목으로 봉한 것이다. 조비가 그날 바로 왕위에 올라 대소관료의 배무 拜舞(고대 조정의 예절로서 무릎꿇고 절을 올리고 춤을 추는 것) 를 받고 기거 起居한다.
한창 연회를 열어 경하하고 있는데 언릉후 조창이 장안에서 십만대군을 이끌고 왔다는 급보가 날아든다. 조비가 크게 놀라 신하들 에게 묻는다.
“황수 黃鬚(노란 수염/ 조창의 별명) 소제(아우)가 평소 성격이 굳세고 무예에 심히 통달했소. 이제 병력을 이끌고 멀리서 오니 필시 고 와 더불어 왕위를 다투려하는 것인데, 어찌해야겠소?”
문득 아래에서 누군가 그 말을 듣자마자 나와서 말한다.
“바라건대 신이 언릉후를 찾아가 편언 片言(한마디 말)으로써 그를 꺾겠습니다.”
모두 말한다.
“대부 大夫가 아니시면 이 재난을 해결할 수 없겠소.”
조씨 집안의 조비, 조창의 일을 살펴보면
윈씨 집안의 원담, 원상의 다툼 같겠구나
이 사람이 누굴까?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