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제86회 진복이 하늘을 논하여 장온을 놀라게 하고 서성이 화공으로 조비를 깨뜨린다
한편, 동오의 육손이 위나라 병력을 물리치자 오왕 손권이 육손을 보국장군 강릉후 형주목으로 임명한다. 이로부터 모든 군권이 육손에 게 넘어간다. 장소와 고옹이 오왕에게 동오 스스로 개원(연호를 고침)할 것을 청한다. 그런데 위나라 군주 조비가 사자를 보냈다 하므 로 손권이 불러들인다. 사명(사자)이 설명한다.
“촉나라에서 지난날 구원을 요청하니 위나라가 한때나마 현명하지 못하게 출병해서 응했습니다. 이제는 크게 후회하고 네 갈래 병력을 일으켜 서천을 취하려는데 동오도 접응해야겠습니다. 촉나라를 얻으면 절반씩 나누겠습니다.”
손권이 그말을 듣고 결정하지 못한다. 이에 장소와 고옹 들에게 물으니 장소가 말한다.
“육백언(육손)에게 반드시 높은 식견이 있을 테니 물어보소서.”
손권이 곧바로 육손을 불러들인다. 육손이 이르러 아뢴다.
“조비가 중원을 틀어잡았으니 서둘러 도모하지 못합니다. 이제 따르지 않으면 원수가 되고말겠지만 소신이 보건대 위나라와 오나라는 제갈량의 적수가 아닙니다. 우선은 부득이 응낙하고 군대를 정비하며 위나라의 네 갈래 병력이 어찌되나 탐청해야겠습니다. 네 갈래 병 력이 이기면 천중이 위급해져서 제갈량이 앞뒤로 구원하지 못합니다. 이때 주상께서 곧바로 출병해서 접응해 서천을 선취하는 것이 좋 은 계책입니다. 네 갈래 병력이 패전하면 그때 따로 상의하겠습니다.”
손권이 그말을 따라서 위나라 사신에게 말한다.
“군수를 아직은 갖추지 못했으니 날을 골라서 길을 떠나겠소.”
사자가 작별을 고하고 떠난다. 손권이 사람을 시켜서 알아보니 서번의 병력이 서평관으로 출병하나 마초를 보더니 싸우지도 않고서 스 스로 물러났다. 남만왕 맹획도 병력을 일으켜 네 고을을 공격하나 위연이 의병계疑兵計로써 모두 무찌르자 본거지로 돌아갔다. 상용의 맹달도 병력을 이끌고 가다가 병에 걸려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위나라 조진이 병력을 이끌고 양평관으로 출격하나 조자룡이 곳곳 의 험로를 틀어막으니 과연 장수 하나가 지키는 관문을 만 명이 열지 못하는 형세였다. 조진이 야곡도에 병력을 주둔하나 마침내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손권이 이러한 소식을 듣고서 문무관리에게 말한다.
“육백언이 참으로 귀신같이 헤아리오. 고가 함부로 움직였다면 서촉의 원한을 샀겠소.”
그런데 서촉에서 사신 등지를 보냈다 한다. 장소가 말한다.
“이것도 제갈량이 적병을 물리치려는 계책입니다. 등지를 세객(유세객)으로 보냈습니다.”
“어떻게 답해야겠소?”
“먼저 전각 앞에 커다라 솥을 세우고 수백 근의 기름을 담습니다. 그 밑은 숯불을 놓고 기름을 펄펄 끓여 키 크고 얼굴이 큰 무사 천 사람을 가려뽑아 제각기 칼을 쥐고서 궁문에서 전각 위까지 늘어세웁니다. 그 뒤 등지를 불러들여 그가 사설을 늘어놓게 기다리지 마시고 여 식기(한고조 유방을 위해 제나라에서 유세했다가 결국 솥에 삶아졌다)가 제나라에서 유세했던 옛 이야기를 꺼내서 그를 꾸짖으며 여식 기처럼 삶아버리겠다 말씀하셔서 어떻게 답하는지 보소서.”
손권이 그 말을 따라서 기름솥을 세운다. 그 좌우에 무사들을 세워서 제각기 무기를 쥐여서 등지를 부른다. 등지가 옷과 갓을 바로잡고 들어온다. 궁문 앞에 이르자 무사들이 양쪽에 위풍도 늠름하게 제각각 강철 칼, 큰 도끼, 긴 검, 짧은 가지 창 들을 들고서 전각 앞까지 늘어섰다. 등지가 그 뜻을 깨닫고도 아무런 두려운 기색 없이 떳떳히 나아간다. 전각 앞에 이르니 죄인을 삶는 큰 솥 속에서 기름이 뜨겁 게 끓어오른다. 좌우 무사들이 바라보니 등지는 오히려 빙긋이 웃고 있다. 측근 신하가 주렴 앞으로 끌고가나 등지는 두 손 모아 허리를 굽힐 뿐 절을 올리지 않는다.
손권이 주렴을 걷어올려 크게 꾸짖는다.
“어째서 절하지 않냐!”
등지가 앙연히 답한다.
“큰 나라 천자의 사신은 작은 나라 임금에게 절을 올리지 않소.”
손권이 크게 노해 말한다.
“네놈이 주제를 모르고 세치 혀만 믿으며 여생(여식기)이 제나라에서 유세한 옛일을 흉내내냐? 어서 기름솥으로 들어가라!”
등지가 크게 웃으며 말한다.
“동오에 어진 이가 많다고 말들 하지만 한낱 글쟁이를 두려워할 줄 누가 알았으랴!”
손권이 더욱 화노해서 말한다.
“고가 어찌 네까짓 필부놈이 두렵겠냐!”
“등백묘(등지)가 두렵지 않다면서 어째서 유세하러 온다고 두려워하시오?”
“네놈이 제갈량을 위해서 세객으로 왔으니 위나라와 절교하고 촉나라로 돌아서라 말하지 않겠냐?”
“나는 촉나라의 한낱 유생이지만 일부러 오나라의 이해를 위해서 찾아왔소. 그런데 군대를 배치하고 기름솥을 늘어놓아 한낱 사자를 거 부하니 어찌 그런 도량으로 사람들을 받아들이겠소?
손권이 그 말�� 듣더니 어쩔 줄 모르게 부끄럽다. 곧바로 무사를 내쫓고 등지를 전각으로 부른다. 등지를 앉혀서 묻는다.
“오나라와 위나라의 이해가 어떻소? 선생이 가르쳐 주시기 바라오.”
“대왕께서 촉나라와 화친을 맺으시면서 위나라와도 화친을 맺으시렵니까?”
“고는 이제라도 촉주(촉나라 군주)와 화친을 맺고 싶소만 촉주가 어리고 식견이 얕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잘 지내지 못할까 걱정이오.”
“대왕께서 당세의 이름난 영웅호걸이시고 제갈량도 한 시대의 준걸입니다. 촉나라는 산천이 험하고 오나라는 장강이 굳게 막아줍니다. 두 나라가 화친을 맺으면 서로 입술과 이처럼 되니, 나아가면 천하를 함께 삼키고 물러나면 솥발처럼 설 수 있습니다. 이제 대왕께서 인 질을 보내서 스스로 위나라의 신하라 일컬으면, 위나라는 반드시 대왕은 위나라 황제를 알현하고 태자는 황궁 안에서 황제를 모시라 요 구할 것입니다. 그것을 따르지 않아서 위나라가 병력을 일으켜서 온다면 촉나라도 물길을 따라서 진격할 것이고, 이렇다면 강남은 더 이상 대왕이 가지지 못합니다. 대왕께서 제 못난 소견을 그럴 듯하다 여기지 않으시면, 저는 당장 대왕 앞에서 죽어서 세객 노릇을 끝내 겠습니다.”
그 말을 마치고 옷을 걷어 올려서 기름솥 안으로 뛰어들려는데 손권이 서둘러 막아서 후전으로 불러들여 상빈으로 대우한다. 손권이 말 한다.
“선생의 말씀은 고의 뜻과 들어맞소. 고가 이제 촉주와 화친을 맺으려는데 내 말을 전달해 줄 수 있겠소?”
“방금 소신을 삶으려던 분도 대왕이시요 이제 소신을 사신 삼으려는 분도 대왕이십니다. 대왕께서 여우처럼 의심이 많아서 결정하지 못 한다면 어찌 남 말을 들으시겠습니까?”
“고의 뜻은 벌써 정했으니 선생은 의심하지 마시오.”
이에 오왕이 등지를 머물게 하고서 많은 관리를 모아서 묻는다.
“고가 강남의 여든 두 주를 손에 넣고 형주와 양양을 가졌지만 도리어 서촉의 외진 곳보다 못한 셈이오. 촉나라는 등지가 있어서 군 주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데 오나라는 아무도 촉나라로 들어가 고의 뜻을 전할 사람이 없구려.”
그런데 누군가 자리에서 나와서 아뢴다.
“소신이 사신으로 가겠습니다.”
사람들이 바라보니 오군의 오 출신의 장온 '혜서'이다. 현재는 중랑장이다. 손권이 말한다.
“경이 촉나라로 가서 제갈량을 만나 고의 뜻을 잘 전하지 못할까 걱정이오.”
“공명도 사람일 뿐인데 소신이 어찌 두려워하겠습니까?”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장온에게 큰 상을 내리고 등지와 함께 서천으로 들어가 우호를 맺으라 한다.
한편, 공명은 등지가 떠난 뒤에 후주 유선에게 아뢴다.
“등지가 이번에 가서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오나라는 어진 이가 많으니 틀림없이 누군가 답례하러 올 것입니다. 폐하께서 사신을 예우해 그가 오나라로 돌아가 맹호를 맺도록 만드십시오. 오나라와 화친하면 위나라는 함부로 촉나라에 출병하지 못하게 됩니다. 위나라와 오나라가 평안하면 소신은 남쪽을 정벌해 오랑캐 나라를 평정하고 그 뒤에 위나라를 도모하겠습니다. 위나라가 꺾이면 동오도 오 래가지 못하니 다시금 천하를 하나로 묶는 기업基業을 이룰 것입니다.”
후주가 옳다고 여긴다.
그런데 동오에서 장온을 보내서 등지와 더불어 서천으로 들어와 답례한다고 한다. 후주가 문무관리를 궁궐로 모아서 등지와 장온을 불 러들인다. 후주가 예의를 다해 마지않는다. 연회를 끝내고 모든 관리가 장온을 숙소까지 배웅한다. 다음날 공명이 연회를 베풀어 접대한 다. 공명이 장온에게 말한다.
“선제(유현덕)께서 생전에 오나라와 화목하지 못했으나 이미 붕어하셨소. 지금의 주상께서 오왕을 깊이 사모해 옛 원한을 잊고서 영원 히 맹호를 맺고서 힘을 모아서 위나라를 깨고자 하시오. 바라건대 대부께서 돌아가 좋은 말씀을 드리기 바라오.”
장온이 응낙한다. 술이 제법 거나하자 장온이 즐겁게 웃으며 마음을 놓아서 제법 오만한 마음도 든다. 이튿날 후주가 황금과 비단을 장 온에게 내리며 성곽 남쪽에 있는 우정郵亭 위에서 잔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서 배웅한다. 공명이 은근히 술을 권한다. 그렇게 술을 마시는데 갑자기 누군가 술 취한 채 들어와서 당당히 인사하더니 자리에 앉는다. 장온이 괴이하게 여겨서 공명에게 묻는다.
“이 사람이 누굽니까?”
“현재 익주에서 학사로 있는 진복 '자칙'입니다.”
장온이 웃으며 말한다.
“학사라면 무엇을 배워서 가슴 속에 쌓았는지 궁금하오.”
진복이 정색하고 말한다.
“촉에서 삼척동자도 배우러 나서는데 나 같은 이가 배우지 않겠소?”
“그렇다면 무엇을 배우셨소?.”
진복이 대답한다.
“위로는 천문이요 아래로는 지리와 삼교구류, 제자백가,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소. 고금의 흥망성쇠, 성현의 경전 經傳(경전과 해석서), 읽지 않은 것이 없소.”
장온이 웃으며 말한다.
“큰소리치니 하늘의 일을 묻겠소. 하늘은 머리가 있소?”
“머리가 있소.”
“머리는 어느 쪽에 있소?”
“서쪽에 있소. 시경에, 내권서고乃眷西顧(이에 서쪽을 돌아보다)라 했으니 이로써 미루어 머리는 서쪽에 있소.”
장온이 또 묻는다.
“하늘은 귀가 있소?”
“하늘은 높이 있으면서 낮은 곳의 소리를 들어서 살피오. 시경에, 두루미가 저 깊은 연못에서 울어도 하늘에서 듣는다, 하였소. 귀가 없이 어찌 듣겠소?”
장온이 또 묻는다.
“하늘은 발이 달렸소?”
“발도 있소이다. 시경에, 하늘이 힘들고 어렵게 걷는다, 했으니 발이 없이 어찌 걷겠소?”
진복이 또 묻는다.
“하늘도 성姓이 있소?”
“어찌 성이 없겠소?”
“무슨 성이오?”
진복이 답한다.
“유 씨요.”
“어찌 아오?”
“천자의 성이 유 씨인 것으로 알 수 있소.”
진복이 또 묻는다.
“해는 동쪽에서 생기오?”
“비록 동쪽에서 생기나 서쪽에서 지는 것이오.”
이때 진복의 말소리가 맑고 대답이 물 흐르듯하니 자리 앉은 이들이 모두 놀란다. 장온이 아무 말도 못하자 진복이 묻는다.
“선생은 동오의 명사인데 하늘의 일을 물으셨으니 반드시 하늘의 이치를 잘 아실 것이오. 오래전에 천하가 혼돈한 상태에서 갈라지고 음양이 나뉘어졌소. 가볍고 맑은 것은 위로 떠올라 하늘이 되고, 무겁고 탁한 것은 아래로 굳어서 땅이 됐소. 공공씨가 싸움에 지고 불주 산에 박치기를 해서 하늘의 기둥이 부러지고 땅이 엎어졌소. 하늘이 서북쪽으로 기울고 땅은 동남쪽으로 주저앉았소. 하늘은 이미 가볍 고 맑은 것이 위로 떠오른 것인데, 무엇 때문에 서북쪽으로 기울었겠소? 또한 가볍고 맑은 것 밖에 무엇이 둘러싸고 있겠소? 선생께서 가르쳐주시오.”
장온이 대답할 말이 없어 자리를 피하며 사례한다.
“뜻밖에도 촉나라에 준걸이 많구려! 강론을 듣고서야 제 무지몽매를 깨우쳤소.”
공명은 장온이 부끄러울까 걱정해서 좋은 말로 풀어준다.
“술자리에서 질문이 어려웠지만 모두 농담일 뿐이오. 족하께서 나라를 편안케 하는 길을 깊이 아시겠지 어찌 말장난을 아시겠소?”
장온이 고개숙여 고마워한다. 공명이 또한 등지에게 다시 오나라로 들어가 답례하라며 함께 가도록 한다. 장온과 등지 두 사람이 공명에 게 작별을 고하고 동오로 찾아간다.
한편, 오왕은 장온이 촉나라로 들어가 아직 돌아오지 않자 문무관리를 모아서 상의한다. 그런데 측근 신하가 아뢴다.
“촉나라가 등지를 장온과 함께 보내, 우리나라로 들어와서 답례한다고 합니다.”
손권이 불러들인다. 장온이 전각 앞에 엎드려 후주와 공명의 덕을 두루 칭송하며 촉나라가 맹호를 영원히 맺고자 일부러 상서 등지를 보 내어 답례한다 말한다.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술자리를 베풀어 대접한다. 손권이 등지에게 묻는다.
“오나라와 촉나라가 한마음으로 위나라를 멸하면 천하가 태평하고 두 임금이 나눠서 다스릴 테니 어찌 기쁘지 않겠소?”
“하늘에 두 개의 해가 없고 백성에게 두 임금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위나라를 멸한 뒤에 천명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아직은 알지 못합니 다. 다만 임금 된 이는 덕을 갈고닦고 신하 된 이는 충성을 다해서 전쟁을 치뤄야 안식이 올 따름입니다.”
손권이 크게 웃는다.
“그대의 충심이 참으로 이와 같구려!”
등지에게 크게 상을 내리고 촉으로 돌려보낸다. 이로부터 오나라와 촉나라가 우호를 맺는다. 한편, 이 일을 위나라의 세작인(간첩)이 탐지해서 부리나케 중원으로 알리러 들어간다.
위나라 군주 조비가 듣고서 크게 화내며 말한다.
“오나라와 촉나라가 화친을 맺다니 틀림없이 중원을 도모할 속셈이오. 짐이 먼저 정벌하는 것만 못하겠소.”
이에 문무관리를 크게 모으더니 병력을 일으켜 오나라를 치는 것을 상의한다. 이때 대사마 조인과 태위 가후는 이미 죽고 없다. 시중 신 비가 자리에서 나와서 아뢴다.
“중원은 지금 땅은 넓지만 백성이 적으니 병력을 일으킨들 아직은 이롭지 않습니다. 오늘날 쓸 계책은 앞으로 십 년은 병력을 기르며 둔 전을 실시해서 식량과 병력을 넉넉히 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그런 뒤 병력을 운용해야 오나라와 촉나라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조비가 화내며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선비의 이야기오! 이제 오나라와 촉나라가 화친을 맺으면 조만간 국경을 침범할 텐데 어찌 한가롭게 십 년을 기다리겠 소?”
곧바로 교지를 내려서 병력을 일으켜 오나라를 치려는데 사마의가 아뢴다.
“오나라는 장강이 험해 배가 없으면 건너지 못합니다. 폐하께서 반드시 어가를 타고 몸소 정벌하시려면 크고 작은 싸움배를 갖추어 채 영 땅에서 진격해서 수춘을 빼앗고 광릉에 이르서 강구를 건너서 곧바로 남서를 빼앗는 것이 상책입니다.”
조비가 이 말을 따른다. 이날부터 밤낮없이 공사를 다그쳐서 용주(용처럼 폭이 좁고 긴 배) 열 척을 만드니 길이가 스무 길 남짓으로 이 천 사람도 실을 만하다. 싸움배를 삼천 척 넘게 만든다. 위나라 황초 오 년 가을 팔 월에 높고 낮은 장수와 관리를 불러모아 명령을 내리 니 조진을 선봉으로 삼고, 장요, 장합, 문빙 들을 대장으로 삼아서 앞서게 한다. 허저, 여건은 중군에서 호위를 맡고 조휴가 합후(선봉의 반대)를 맡는다. 유엽, 장제는 참모가 된다. 앞뒤로 물과 뭍으로 병사들이 삼십만이 넘는데 날을 골라서 병력을 일으킨다. 사마의를 상서 복야로 앉혀서 허창에 머물게 해서 모든 나랏일은 모두 사마의에게 물어서 처리하게 한다.
위나라 병력이 길을 떠나는 것을 동오의 세작이 탐지해서 오나라로 알리러 들어간다. 측근 신하가 허겁지겁 오왕에게 아뢴다.
“이제 위왕 조비가 몸소 용주를 타고서 물과 뭍에서 삼십만이 넘는 대군을 거느리고 채영에서 출진해서 틀림없이 광릉을 취하려는데, 장 강을 건너서 강남에 상륙한다면 큰 재앙입니다.”
손권이 크게 놀라서 곧바로 문무관리를 불러모아 상의한다. 고옹이 말한다.
“이제 주상께서 이미 서촉과 화친을 맺었으니 서신을 가다듬어 제갈공명에게 보내서 병력을 일으켜서 한중에서 출격해서 세력을 나누게 하십시오. 동시에 대장을 한 사람 보내서 남서에 주둔해서 막도록 하십시오.”
“육백언(육손)이 아니면 이렇게 막중한 임무를 맡을 수 없겠소.”
“육백언은 형주를 지키고 있어서 함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고가 그것을 몰라서가 아니오. 눈앞에 아무도 그를 대신할 이가 없구려.”
말을 미처 마치기 앞서서 한 사람이 자리에서 재빨리 나온다.
“소신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바라건대 한 무리 군대를 통솔해서 위병(위군)을 막겠습니다. 조비가 몸소 장강을 건넌다면 소신이 기필코 사로잡아서 전하께 바치겠습니다. 장강을 건너지 않더라도 위병의 태반을 죽여서 위병이 감히 동오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손권이 누군가 보니 바로 서성이다.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경이 강남 일대를 지킨다면 고가 무엇을 걱정하겠소?”
곧 서성을 안동장군으로 봉해서 건업과 남서의 군마를 모두 지휘하게 한다. 서성이 성은에 감사하며 어명을 받들어 물러간다. 곧바로 관 군에게 명령을 내려서 무기와 장비를 잔뜩 갖추고 깃발들을 곳곳에 세워서 강가를 지키는 계책으로 삼는다.
그런데 한 사람이 일어나서 나오며 말한다.
“오늘 대왕께서 막중한 임무를 장군에게 맡겨서 위병을 깨뜨려 조비를 생포하려는데 장군은 어째서 군마를 빨리 동원해서 강을 건너지 않고, 회남에서 적병을 맡겠다 하시오? 조비 병력이 오기만 기다리다 후회막급할까 두렵소.”
서성이 바라보니 바로 오왕의 조카 손소다. 손소의 자는 공례이며 벼슬은 양위장군으로 일찍의 광릉을 수비했다. 나이가 어리지만 남에 게 지기 싫어하고 담력과 용기가 대단하다. 서성이 말한다.
“조비의 군세가 대단한데다 이름난 장수를 선봉으로 삼았으니 우리가 강을 건너서 칠 수는 없소. 저들의 배가 북쪽 강가에 모두 모이기 를 기다려서 깨뜨릴 계책이 내게 있소.”
“내 수하에 삼천 군마가 있고 광릉의 도로와 지형을 잘 알고 있으니 바라건대 스스로 강북으로 가서 조비와 한바탕 죽기살기로 싸우겠소 . 이기지 못하면 군령을 달게 받겠소.”
서성이 따르지 않는데도 손소가 고집을 부리며 가겠다 한다. 서성이 들어줄 마음이 없어도 손소는 거듭 가겠다 하니 서성이 화내며 말한 다.
“네가 이렇게 호령(군령)을 듣지 않는다면 내 어찌 장수들을 통제하겠냐?”
무사들에게 소리쳐서 끌어내서 참하라 한다. 도부수(도끼와 칼을 든 무사)들이 손소를 붙잡아서 원문(군문) 밖으로 끌고가서 검은 깃발을 세운다. 손소의 부하장수가 손권에게 급보하니 손권이 서둘러 말을 타고 손소를 구하러 온다. 무사가 이제 형을 집행하려는데 손권이 어느새 도착해서 도부수를 쫓아서 손소를 구한다. 손소가 소리내 울며 아뢴다.
“소신이 왕년에 광릉에 있어서 그곳 지리를 잘 압니다. 그곳으로 나아가서 조비를 무찌르지 않고서 그가 장강을 건너기를 기다린다면 동 오는 머지않아 끝장입니다!”
손권이 곧장 영내로 들어가니 서성이 영접해서 안으로 들여서 아뢴다.
“대왕께서 소신을 도독으로 삼아서 병력을 거느려서 위나라를 막으라 하셨습니다. 이제 양위장군 손소가 군법을 준수하지 않고 군령을 어기니 마땅히 참해야겠는데 대왕께서 무슨 까닭에 풀어주십니까?”
“손소가 혈기가 바야흐로 장한 탓에 군법을 어겼으니 제발 너그럽게 용서하기 바라오.”
“법은 소신이 세운 것도 대왕께서 세우신 것도 아니고 국가의 전형입니다. 친척이라고 풀어주면 어찌 사람들에게 명령이 듣겠습니까?”
“손소가 법을 어긴 것은 마땅히 장군의 처치에 맡겨야 하오. 그러나 이 애는 본래 성이 유 씨인데 고의 형님께서 몹시 아껴서 손 씨 성을 내렸소. 고에게 제법 공로를 쌓았는데 이제 죽인다면 형제의 의리를 저버리게 되오.”
“우선 대왕의 체면을 봐서, 죽을 죄를 잠시 미루겠습니다.”
손권이 손소더러 서성에게 절을 올리라 하지만 손소가 기꺼워하지 않고 오히려 서성에게 소리높여 말한다.
“내 의견을 따르면 반드시 군을 이끌고 조비를 깨뜨릴 수 있소! 죽더라도 그대의 생각을 따르지 못하겠소!”
서성의 낯빛이 바뀐다. 손권이 손소를 꾸짖어 내쫓고 서성에게 말한다.
“이런 녀석 하나 없은들 오나라에 손해가 있겠소? 이제부터 다시는 그를 쓰지 마시오.”
말을 마치고 돌아간다. 이날밤 누군가 서성에게, 손소가 자신의 수하 정병 3천을 거느리고 강을 건넜다 알린다. 서성은 그들이 잘못되면 오왕의 체면을 깎을까 두려워, 곧 정봉을 불러서 비밀계획을 건네주며 3천 병력을 이끌고 강을 건너서 도우라 한다.
한편, 위왕 조비가 용주를 타고서 광릉에 이르고, 선봉 조진은 벌써 병력을 이끌고 대강大江(장강) 가에 포진한다. 조비가 묻는다.
“강가에 얼마나 병력이 있소.”
조진이 말한다.
“강 건너 멀리 바라봐도 아무도 보이지 않고 아무 깃발이나 영채도 없습니다.”
“틀림없이 속임수요. 짐이 직접 그 허실을 살피러 가겠소.”
이에 물길을 크게 열어서 용주를 내어서 대강에 이르러 강가에 정박한다. 용주 위에, 용과 봉황, 해와 달을 그려놓은 다섯가지 빛깔의 깃 발을 세우고 여러가지 황제의 장식물을 가득 채우니, 그 빛이 눈부시다. 조비가 용주 안에 가만히 앉아서 멀리 강남을 바라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아서 고개 돌려 유엽과 장제를 돌아보며 말한다.
“강을 건너도 되지 않겠소?”
유엽이 말한다.
“병법에 실실허허實實虛虛라 했사옵니다. 저들이 대군이 오는데 어찌 정비하지 않았겠습니까? 페하께서 서두르지 마시옵소서. 우선 사 나흘을 기다려서 저들의 동정을 살피고, 그런 뒤에 선봉을 보내서 강을 건너 정탐하도록 하소서.”
“경의 말씀이 내 뜻과 들어맞소.”
이날 날이 저물어 강물 위에서 밤을 보낸다. 이날밤 달이 구름에 가려져 컴컴한데 병사들 모두 등불을 드니, 하늘과 땅을 비추어 흡사 대 낮처럼 밝다. 멀리 강남을 바라보니 역시 불빛 한 점 보이지 않는다.
조비가 좌우의 사람에게 묻는다.
“대체 어찌된 까닭이오?”
측근 신하가 아뢴다.
“생각건대 폐하의 천병(천자의 군대)이 온다고 하자 허겁지겁 달아났을 뿐입니다.”
조비가 속으로 비웃는다. 동틀 무렵 안개가 크게 껴서 천지에 자욱하니 서로 얼굴도 못 알아보겠다. 잠시 뒤 바람이 일더니 안개가 흩어 지고 구름이 걷힌다. 멀리 강남 일대가 모두 연달아 성벽이고, 성루 위에 창칼이 햇빛에 번쩍인다. 성벽 곳곳에 모두 각종 깃발과 호대號 帶(깃대에 매달아 신호하는 긴 명주 띠)가 꽂혔다. 눈 깜빡할 사이에 몇 사람이나 와서 알린다.
“남서의 강변 일대에서 석두성까지 수백 리를 잇달아서 성곽과 배와 수레가 실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모두 하룻밤새 이루어졌습니다 .”
조비가 크게 놀란다. 원래, 서성이 갈대를 엮어서 허수아비를 만들어 모조리 푸른 옷을 입히고 깃발을 쥐어서 가짜 성곽과 보루 위에 세 운 것이다. 위나라 병사들이 성 위에 허다한 인마가 있는 것을 보고 어찌 간담이 서늘하지 않겠는가? 조비가 탄식한다.
“위나라에 무사들 무리가 천을 넘지만 아무 소용이 없구나. 강남의 인물들을 아직은 도모할 수 없구나!”
이렇게 놀라고 있는데 갑자기 미친 듯이 바람이 크게 불어서 하얀 물결이 하늘까지 넘실거리고 강물이 튀어서 용포(임금의 옷)를 적신 다. 또한 크고 작은 배들이 뒤집어지려 한다. 조진이 허둥지둥 문빙을 시켜서 작은 배를 저어와서 황제를 구원하게 한다. 용주 위에 사람 이 똑바로 서 있지 못하는데 문빙이 용주 위로 뛰어올라 조비를 업고 작은 배로 내려와서 하항河港(큰 강의 항구)으로 달아난다. 그런데 유성마流星馬(고대의 통신연락병)가 알린다.
“조운이 양평관을 나와서 장안을 공격하러 달려옵니다.”
조비가 듣더니 너무 놀라서 낯빛이 하얗게 질려서 어서 병사들을 거두라 명한다. 병사들이 제각기 달아나는데 그 뒤에서 오나라 병사들 이 뒤쫓아 온다. 조비가 교지를 내려서 천자의 물건도 모조리 버리고 달아나라 한다. 조비가 탄 용주가 곧 회하淮河淮水로 들어가려는 데 갑자기 북소리 피리소리 한꺼번에 울리고 함성이 크게 뒤흔들며 옆에서 1군이 몰려오니 선두 대장은 바로 손소다. 위나라 병사들이 막아내지 못하고 태반이 꺾이고 물에 빠져 죽은 이를 헤아릴 수 없다.
장수들이 힘을 떨쳐서 위나라 군주를 구출한다. 위나라 군주가 회하를 따라서 삼십 리를 못 가서 회하 가운데에 갈대밭이 있다. 그곳에 미리 물고기 기름을 부어놓았는데 모조리 불붙는다. 불길이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데 바람이 몹시 거세다. 불꽃이 하늘에 가득 타올라서 조비가 타고 있는 용주를 가로막는다. 조비가 크게 놀라 다급하게 작은 배로 내려간다. 강가에 닿을 때 용주 위에도 어느새 불이 붙었다. 조비가 허둥지둥 말을 타는데 강둑 위에서 1군이 몰려오니 선두 대장은 정봉이다. 장요가 급하게 말을 몰아서 맞이하다가 정봉 이 쏜 화살을 허리에 맞는다. 그러나 서황이 구출해서 위나라 군주를 지키며 달아난다. 꺾인 병사가 무수하다. 그 뒤에서 손소와 정봉이 말, 수레, 무기, 배 들을 빼앗고 거두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위군이 크게 져서 돌아간다. 오나라 장수 서성이 오롯이 큰 공을 세운다. 오왕이 크게 상을 내린다. 장요가 허창으로 돌아가서 마침내 화살 맞은 상처가 터져서 죽는다. 조비가 그를 후하게 장사 지낸 것이야 말할 것도 없다.
한편, 조운이 병력을 이끌고 양평관에서 출격하는데 갑자기 승상이 보낸 문서가 도착했다고 한다. 익주의 기사耆帥 옹개가 남만왕 맹획과 연결해서 오랑캐 병사 십만을 거느리고 네 고을을 침략했기에 조운더러 군대를 돌리라 이르고, 마초를 시켜 양평관을 굳게 지키게 하고 , 승상은 스스로 남쪽을 정벌하려 한다고 한다. 이에 조운이 급히 병력을 거둬 돌아간다. 이때 공명은 성도에서 군마를 정비해서 몸소 남쪽을 정벌하려 한다.
방금 동쪽 오나라가 북쪽 위나라와 맞섰는데
다시 서쪽 촉나라가 남쪽 오랑캐와 싸우겠구나
승부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