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제87회 승상이 남쪽 도적을 정벌하러 군대를 크게 일으키고 오랑캐왕이 천병에 맞서다가 처음으로 사로잡힌다
한편, 제갈 승상이 성도에 머물며, 큰 일 작은 일 가리지 않고, 모두 몸소 공무를 처리하고 결단한다. 양천(동천과 서천) 백성들이 기쁘 게 태평성대를 즐기니,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고, 길에 떨어진 물건도 줍지 않는다. 다행히 여러 해 잇달아 크게 풍년이 들어, 늙은이나 어 린이나 모두 배를 두드리고 노래를 부르며, 나라에서 노역을 시켜도, 서로 앞다퉈 부지런히 일한다. 이리하여, 군수물자, 무기, 여러가지 쓸 것들이 완비되지 않은 것이 없다. 쌀은 곳간에 가득하고, 재물은 곳집에 들어찬다.
건흥 삼 년에 익주에서 급보가 날아드니, 오랑캐 왕 맹획이 오랑캐 십만 대군을 크게 일으켜, 국경을 넘어 침략한다고 알린다. 건녕의 태 수 옹개는 한나라 십방후 옹치의 후예인데, 맹획과 연결해 반란을 일으킨다. 장취군의 태수 주포와 월취군의 태수 고정, 두 사람이 성을 갖다바친다. 겨우 영창의 태수 왕항 홀로 반역에 가담하지 않는다. 이제 옹개, 주포, 고정, 세 사람의 부하 병사들이 모두 맹획을 도와, 길앞잡이로 나서 영창군을 공격한다. 이제 왕항과 공조 벼슬의 여개가 백성을 모아, 이곳 성을 사수하나, 형세가 위급하다. 이에 공명이 조정으로 들어가, 후주에게 아뢴다.
“소신이 보건대 남만(남쪽 오랑캐)이 복종하지 않으니, 참으로 국가의 큰 우환입니다. 소신이 마땅히 대군을 이끌고, 토벌하러 가야겠습 니다.”
“동쪽으로 손권이, 북쪽으로 조비가 있는데, 이제 상부께서 짐을 버리고 가셨다가, 오나라와 위나라가 쳐들어오면 어찌하겠소?”
“동오는 방금 우리나라와 화친을 맺어, 다른 마음이 없을 것입니다. 다른 마음이 있더라도, 이엄이 백제성에 있으니, 이 사람이 육손을 막을 수 있습니다. 조비는 얼마전에 패하여, 날카로운 기세를 이미 잃어, 아직 멀리까지 도모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마초가 한중에서 곳 곳의 길목을 지키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소신이 또한 관흥과 장포 들에게 군대를 둘로 나눠 도우라 할 것이니, 폐하를 지키는 데 아무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소신이 먼저 오랑캐 땅을 소탕하고, 그 뒤 북쪽 정벌에 나서 중원을 도모하여, 선제께서 소신을 세번 찾아오 신 은혜를 갚고, 폐하를 부탁 받은 무거운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짐은 나이가 어리고 아는 것이 없으니, 오로지 상부께서 알아서 하시오.”
말을 미처 마치기 앞서, 자리에서 한 사람이 나오며 말한다.
“불가합니다! 불가합니다!”
사람들이 누군가 보니, 남양 출신의 간의대부 왕련 '문의'이다. 왕련이 간언한다.
“남쪽은 불모이고 열병이 창궐합니다. 승상께서 국가의 중임을 맡았는데 스스로 원정을 떠나는 것은 옳지 않 습니다. 게다가 옹개 들은 옴 같은 하찮은 질병이니 대장 한 사람을 보내도 성공할 것입니다.”
“남만은 우리나라에서 몹시 멀어 많은 사람이 천자의 교화를 받지 못하여, 굴복시키기 몹시 어려우니 내 스스로 정벌해야겠소. 때로 강경하게 때로 부드럽게 따로 헤아릴 것이 있으니, 남에게 쉽게 맡길 일이 아니오.”
왕련이 거듭 애써 권고하나, 공명이 따르지 않는다.
이날, 공명이 후주에게 고별하고, 장완을 참군參軍(군사참모)으로, 비위를 장사長史(비서장/ 막료장)로, 동궐과 번건 두 사람을 연사掾史(문서 등을 다루는 관리)로 임명한다. 조운과 위연은 대장으로 군마를 총독한다. 왕평과 장익은 부장으로 삼는다. 천중川中(동서 양천 즉 촉나라 땅)의 장수 수십 인을 더하여, 모두 합쳐 천중의 오십만 대군을 일으켜서 익주로 출발한다.
그런데 관공(관우)의 셋째 아들 관색이 군영으로 들어와, 공명을 만나서 말한다.
“형주가 함락된 뒤, 포가장鮑家莊으로 피신해 병을 치료했습니다. 늘 천중으로 와서 선제를 뵙고, 함께 복수하려 했으나, 상처가 미처 낫지 않아, 길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요새 병이 다 나았으나, 알고보니 오나라 원수들은 모두 이미 주륙 당한 뒤라, 서천으로 달려와 황제 폐하를 뵈려는데, 마침 도중에, 남쪽을 정벌하는 군대를 만나, 일부러 찾아왔습니다.”
공명이 듣고, 아! 감탄해 마지않는다. 사람을 보내 조정에 알리며, 관색을 선봉으로 삼아, 함께 남쪽 정벌에 나선다. 큰 무리를 이룬 인 마가 각각 대오를 맞춰 행군한다.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며, 밤에 머물고 새벽에 떠난다. 이르는 곳마다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는 다.
한편, 옹개는 ‘공명이 대군을 거느리고 온다’고 듣고, 바로 고정, 주포와 상의해 병력을 세 갈래로 나눈다. 고정은 가운데를, 옹개는 왼쪽 을, 주포는 오른쪽을 맡는다. 세 갈래에서 제각기 병력을 오, 륙만씩 이끌고 맞선다. 이에 고정이 악환을 선봉으로 삼는다. 악환은 키가 아홉 척이요, 생김새가 추악한데, 한 자루 방천극을 잘 쓰며, 만부부당지용萬夫不當之勇(홀로 만 명의 사내를 당할 용맹)을 가졌다. 수 하 병력을 이끌고 대채(큰 영채/ 본진)에서 떨어져 나와, 촉군을 맞으러 온다.
한편, 공명은 대군을 이끌고, 익주의 경계에 이른다. 선봉 위연과 부장 장익, 왕평이 익주의 어귀에 이르자마자, 악환의 군마와 마주친다. 양쪽 진영이 마주보며 둥글게 포진하자, 위연이 말을 타고 나와서 크게 욕한다.
“반적(역적)은 어서 항복하라!”
악환이 말을 내달려, 위연과 창칼을 교차한다. 몇 합을 안 싸우고, 위연이 못 이기는 척 달아나자, 악환이 뒤쫓아 온다. 몇 리 못 달아나, 함성이 크게 울리며, 장익과 왕평, 2로군이 몰려와, 뒷길을 끊는다. 악환이 되돌아 가려는데, 세 장수가 힘을 모아 막아 싸워, 악환을 사로잡는다. 그를 포박해 대채로 끌고가, 공명을 만나러 들어간다. 공명이 사람을 시켜, 결박을 풀어주고, 술과 음식을 내어 대접한다. 공명이 묻는다.
“그대는 누구의 부장이오?”
“저는 고정의 부장입니다.”
“나는 고정을 충의지사(충의로운 인물)라고 알고 있소. 그러나 이제 옹개가 꾀어, 이렇게 됐소. 이제 그대를 풀어줘 돌려보내니, 고 태수 더러 어서 투항하여, 큰 화를 면하라 하시오.”
악환이 인사를 올리고 떠나, 되돌아가 고정을 만나, 공명의 덕을 이야기하니, 고정도 감격해 마지않는다.
다음날 옹개가 영채를 찾아와, 인사를 마치고 말한다.
“악환이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소?”
“제갈량이 의롭게 여겨, 풀어준 것이오.”
“이것은 제갈량이 이간시키려는 꾀요. 우리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고, 이 사람을 풀어준 것이오.”
고정이 반심반의하며, 마음속으로 주저한다. 그런데 ‘촉나라 장수가 싸움을 건다’고 한다. 고정 스스로 삼만 병력을 거느리고 나가 맞이 한다. 몇 합 안 싸우고 말머리를 돌려서 달아나니, 위연이 병력을 이끌고 크게 진군하여, 이십 리 남짓 뒤쫓아 무찌른다.
다음날 옹개도 병력을 일으켜 싸우러 나오지만, 공명은 잇달아 사흘을 싸우러 나오지 않는다. 나흘째에 옹개와 고정이 병력을 두 갈래로 나눠, 촉나라 영채를 치러 온다.
한편, 공명은 위연에게, 양쪽 방면을 정탐하라 한다. 정말로 옹개와 고정의 양쪽 병력이 오는데, 복병에게 걸려서 태반이 죽고, 사로잡힌 이는 헤아리지 못한다. 모조리 대채로 압송해 온다. 옹개의 부하들은 한쪽에 갇히고, 고정의 부하들은 다른 한쪽에 갇힌다. 공명이 촉나라 병사들에게 노래를 시킨다.
“고정의 사람들은 살려주고, 옹개의 사람들은 모조리 죽이리라.”
병사들 모두 이 말을 듣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명이 옹개의 사람들을 끌고오라 시켜 그들에게 묻는다.
“너희 모두 누구의 부하냐?”
“고정의 부하입니다.”
공명이 그들 모두 살려주라 시키고, 술과 밥을 주어 위로한다. 사람들을 시켜, 입구까지 배웅해 영채로 돌아가게 놓아준다. 공명이 다시 고정의 사람들을 불러 물으니, 모두 “저희는 참으로 고정의 부하 병사입니다.”라고 말한다. 공명이 또한 그들 모두 살려주라 시키고, 술과 밥을 내린다. 큰 소리로 말한다.
“옹개가 오늘 사람들을 투항시키며, 너희 주인과 주포의 머리를 베어 바쳐, 공로로 삼겠다고 했지만, 차마 받아들이지 못했다. 너희는 고정의 부하 병사이니, 너희를 풀어줘 돌아가면, 다시는 배반하지 말아라. 또다시 잡혀온다면, 결단코 쉽게 용서하지 않겠다.”
모두 고마워, 절을 올리고 떠난다. 본채로 돌아가 고정을 만나, 이 일을 알린다. 이에 고정이 몰래 사람을 보내, 옹개의 영채에서 살펴 들어보니, 풀려서 돌아온 사람들 모두 공명의 덕을 이야기하고, 이 때문에 옹개의 많은 부하 병사가 고정에게 귀순할 마음을 가졌다. 이렇더라도 고정은 속으로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다시 한 사람을 시켜 공명의 영채로 들어가, 허실을 알아보게 한다. 그 사람을 길에서 매복 중이던 병사가 잡아, 공명에게 끌고온다. 공명이 일부러 그를 옹개 부하로 착각한 척하며, 군막으로 불러들여 묻는다.
“너희 원수元帥는 고정과 주포 두 사람의 머리를 베어 바친다더니, 무슨 까닭에 약속한 날짜를 어기냐? 네놈이 이렇게 세세하지 못해서야, 어떻게 세작 노릇을 하겠냐!”
공명이 술과 밥을 그에게 내리고, 밀서를 하나 써, 부탁한다.
“너는 이 서신을 옹개에게 전하여, 어서 손을 써서 일을 그르치지 말라고 하라.”
세작이 절을 올리고 떠나, 고정을 다시 만난다. 공명의 밀서를 바치며, ‘옹개가 이러이러하다’고 말한다. 고정이 밀서를 읽고나서 크게 노한다.
“내가 진심으로 대했거늘, 도리어 해치려 들다니, 인정으로 보나 도리로 보나, 용서하기 어렵구나!”
악환을 불러 상의하니, 악환이 말한다.
“공명은 어진 사람이니, 배반하면 좋지 않습니다. 우리가 모반해 나쁜 짓을 한 것은, 모두 옹개 때문입니다. 그를 죽여, 공명에게 투항 하는 것만 못합니다.”
“어떻게 손을 써야겠소?”
“술자리를 마련해 사람을 시켜 옹개를 부르십시오. 그에게 다른 마음이 없다면 거리낌 없이 오겠으나, 오지 않는다면 반드시 다른 마 음이 있습니다. 주공께서 그 앞쪽을 치시고, 저는 영채 뒤 좁은 길에 숨어 기다리면, 잡을 수 있습니다.”
고정이 그 말을 따라 술자리를 마련하여, 옹개를 부른다. 과연 어제 풀려난 병사의 말을 듣고 의심하며, 두려워 오지 않는다. 이날밤 고정이 병력을 이끌고, 옹개의 영채를 쳐들어간다. 알고보니, 공명이 풀어줘 목숨을 살린 사람들 모두 고정의 덕이라고 생각하여, 이틈에 싸움을 돕는다. 옹개의 군대가 싸우지도 않고, 스스로 흐트러진다. 옹개가 말을 타고 산길 쪽으로 달아나는데 2 리를 못 가서, 북소리 울리며 1군이 튀어나오니, 바로 악환이다. 악환이 방천극을 꼬나쥐고, 말을 몰아 앞장선다. 옹개가 미처 손을 놀리지 못하고, 악환의 방 천극에 찔려 말 아래 굴러떨어지니, 악환이 그 목을 베어서 높이 매단다. 옹개의 부하 병사 모두가 고정에게 투항한다. 고정이 양쪽 부대 를 이끌고 공명에게 투항하러 와, 군막 안에서 옹개의 목을 바친다.
공명이 위에 앉아, 무사들에게, 고정을 끌어내어 목을 베어 오라고 소리친다. 고정이 말한다.
“저는 승상의 큰 은혜에 감격하여, 이제 옹개의 수급을 가지고 투항하러 왔거늘, 어째서 저를 베라 하십니까?”
“네가 거짓으로 항복하고서 감히 나를 속일 셈이냐!”
“승상께서 제가 거짓으로 항복한 줄 어떻게 아십니까?”
공명이 상자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어, 고정에게 주며 말한다.
“주포가 이미 사람을 보내, 은밀히 항복문서를 바치며, 너와 옹개가 생사지교(생사를 같이하는 사귐)를 맺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찌 하루아침에 이 사람을 쉽게 죽이겠냐? 그래서 네 거짓 항복을 안 것이다.”
고정이 억울해 외친다.
“주포의 반간지계입니다. 승상께서 절대 믿지 마소서!”
“나도 한쪽 말만 믿기 어렵다. 주포를 잡아온다면, 비로소 네 진심이 드러나겠구나.”
“승상께서 의심치 마소서. 제가 주포를 잡아와, 승상께 보인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내 의심이 사라지겠다.”
고정이 즉시 부장 악환과 수하 병사들을 이끌고, 주포의 영채를 쳐들어간다. 영채에서 십 리 떨어진 곳에 이르자, 산 뒤에서 1군이 나오니 바로 주포의 군대다.
주포는 고정의 군대가 오자 황망히 고정과 이야기하려는데, 고정이 크게 욕한다.
“네놈이 무슨 까닭에 밀서를 제갈 승상에게 보내, 반간지계로 나를 해치려 했냐?”
주포가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벌어진 채, 미처 대답하지 못한다. 갑자기 악환이 주포의 말 뒤로 돌아가, 방천극으로 찌르니 주포가 말 아래 나뒹군다. 고정이 소리높여 말한다.
“따르지 않는 놈은 모두 죽이겠다!”
이에 병사들이 일제히 투항한다. 고정이 양쪽 군을 이끌고 공명을 찾아와, 군막 안에서 주포의 수급을 바친다. 공명이 크게 웃는다.
“내 일부러 그대로 하여금 두 역적을 죽여 충심을 드러내게 했소.”
마침내 고정을 익주의 태수로 임명하여, 세 고을을 모두 다스리게 하고, 악환을 아장牙將(하급 장교)으로 임명한다. 이렇게 세 갈래 반 란군을 평정했다.
이에 영창태수 왕항이 성을 나와 공명을 영접한다. 공명이 성으로 들어가 인사가 끝나자 묻는다.
“누가 공과 함께 이 성을 지켰기에 아무 염려가 없었소?”
“오늘날까지 이 고을이 위태롭지 않은 것은 모두 영창의 불위 출신의 여개 '계평'에 의지해서입니다. 모두 그 덕분입니다.”
공명이 여개를 부르니, 여개가 들어와 인사를 마친다. 공명이 말한다.
“공께서 영창의 이름높은 선비라고 들은 지 오래요. 덕분에 성을 지켰소. 오랑캐 땅을 평정하는데, 어떤 고견이 있소?”
여개가 지도 한 장을 가져와 바치며 말한다.
“제가 오랫동안 벼슬을 하며, 남쪽 사람들의 반역하려는 속셈을 안 지 오랩니다. 그래서 사람을 몰래 그들 땅에 들여보내, 병력을 주둔해 싸우기 좋은 곳을 살펴, 평만지장도 平蠻指掌圖라는 지도를 그리게 했습니다. 이제 감히 명공께 바칩니다. 명공께서 살펴보시면, 오랑캐를 정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공명이 크게 기뻐하며, 여개를 행군교수 겸 향도관(길을 안내하는 관리)으로 삼는다. 이에 공명이 병력을 이끌고 크게 진군하여, 남만 깊숙히 들어간다.
행군하는 도중에 갑자기 ‘천자의 사자가 당도했다’고 한다. 공명이 군중으로 불러들이니, 한 사람이 하얀 도포를 입고 오는데, 바로 마속 이다. 그의 형, 마량이 얼마전에 죽어 상복을 입었다. 마속이 말한다.
“주상의 칙명을 받들어, 병사들에게 술과 비단을 내립니다.”
공명이 천자의 조서를 읽고나서, 명령에 따라 하나하나 나눠주고, 마속을 군막 안에 붙잡고 이야기한다. 공명이 묻는다.
“천자의 조서를 받들어, 남만을 평정하려 하오. 유상(마속의 자)에게 고견이 있다고 들은 지 오래인데, 가르쳐주기 바라오.”
“한 말씀 드리오니, 승상께서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남만은 땅이 멀고 산이 험함을 믿고, 복속하지 않은 지 오래입니다. 비록 오늘 그들을 격파하더라도, 내일은 다시 반란합니다. 승상의 대군이 그곳에 이르면 반드시 평정해 복속시키겠으나, 군대를 거두어 북쪽으로 조비 를 토벌하는 날이 오면, 남만이 우리의 빈 틈을 알고, 재빨리 반란할 것입니다. 무릇 용병의 도는, ‘마음을 침이 상책이요 성을 침은 하책 이다, 마음으로 싸움이 상책이요 군대로 싸움은 하책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라옵건대 승상께서 그들의 마음을 복종시킨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공명이 탄복한다.
“유상이 내 폐부 깊숙히 알고 있구려!”
이에 마속을 참군(참모)으로 임명하여, 즉시 대병력을 이끌고 전진한다.
한편, 남만왕 맹획은 ‘공명이 지혜로써 옹개 들을 격파했다’고 듣고, 세 고을의 원수와 상의한다. 첫번째 고을은 금환삼결 원수, 두번째 고을은 동도나 원수, 세번째 고을은 아회남 원수다. 세 고을의 원수가 들어와, 맹획을 만나니, 맹획이 말한다.
“이제 제갈 승상이 대군을 거느려, 우리 땅을 침범하니, 부득불 힘을 모아 맞서야겠소. 그대 세 사람은 병력을 세 쪽으로 나누어 나아가 시오. 이기는 이를 동주洞主(고을의 우두머리)로 삼겠소.”
이에 병력을 나누어 금환삼결이 가운데를, 동도나가 왼쪽을, 아회남이 오른쪽을 맡는다. 제각기 남만병 5만을 거느려 명령대로 떠난다.
한편, 공명이 영채 안에서 의논하는데, 초마(정찰병)가 급보를 전하여, ‘세 고을의 원수가 병력을 세 갈래로 나누어 온다’고 한다. 공명이 듣더니 곧 조운과 위연을 부르지만 분부를 내리지 않고, 왕평과 마충을 다시 불러, 부탁한다.
“이제 남만병이 세 갈래로 오니, 자룡과 문장(위연)을 보내고 싶으나, 이 두 사람이 이곳 지리를 몰라, 아직은 쓰지 못하겠소. 왕평은 왼 쪽으로 가, 적병을 맞고, 마충은 오른쪽으로 가, 적병을 맞으시오. 나는 자룡과 문장을 시켜 뒤에서 돕겠소. 오늘 군마를 정돈하여, 내일 해가 뜨는 대로 출발하시오.”
다시 장의와 장익을 불러 분부한다.
“그대 두 사람은 함께 한 무리 군을 이끌고 가운데로 가, 적을 맞으시오. 오늘 군대를 점검하여, 내일 왕평, 마충과 모여, 진격하시오. 내가 자룡과 문장을 보내고 싶으나, 아무래도 두 사람이 이곳 지리를 몰라, 아직은 쓰지 못하겠소.”
장의와 장익이 명령을 듣고 간다. 공명이 그들을 쓰지 않자 조운과 위연에게 성난 빛이 보인다. 공명이 말한다.
“내가 두 사람을 쓰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중년의 나이에 위험을 무릅쓰다가 오랑캐에게 당하여, 우리의 날카로운 기세를 잃을 까 두려워서요.”
“우리가 지리를 안다면 어쩌시겠소?”
“두 사람은 마땅히 조심하며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두 사람이 앙앙히 물러난다.
조운이 위연을 자기 영채로 불러 상의한다.
“우리 두 사람이 선봉인데도 지리를 모른다며 쓰려 하지 않소. 이제 저들 후배를 선봉으로 삼으니, 우리가 어찌 부끄럽지 않겠소?”
위연이 말한다.
“우리 두 사람이 지금 말을 타고 직접 가서 정탐합시다. 토인(원주민)을 잡아, 길앞잡이를 시켜, 남만병을 대적한다면, 큰 일을 이룰 것 입니다.”
조운이 이 말을 따라, 말을 타고 가운뎃길로 달려간다. 몇 리 못 가, 저 멀리 먼지구름이 크게 인다. 두 사람이 산비탈을 올라 바라보니, 과연 수십 기의 남만병이 말을 몰아 온다. 두 사람이 양쪽에서 튀어나오자, 남만병들이 크게 놀라 달아난다.
조운과 위연이 제각기 몇 사람씩 사로잡아, 본채(본진의 영채)로 돌아와, 술과 음식을 먹이고, 자세히 묻는다. 남만병이 고한다.
“앞쪽은 금환삼결 원수의 대채(큰 영채)인데, 산의 입구에 있습니다. 대채 옆 동서 양쪽으로, 오계동五溪洞 그리고 동도나와 아회남의 영채 뒷쪽과 이어집니다.”
조운과 위연이 이 말을 듣고, 정병(정예 병력) 3천을 뽑고, 사로잡아온 남만병을 길앞잡이로 삼는다. 군대를 일으킬 즈음, 이미 2경(밤 열 시 전후)의 하늘은 달과 별이 밝으니, 달빛이 비추는 가운데 행군한다. 바야흐로 금환삼결의 대채에 이르니 4경 무렵인데, 남만병이 이제 일어나 아침밥을 지으며, 날이 밝는 대로 한바탕 싸우려고 준비한다. 갑자기 조운과 위연이 양쪽에서 달려드니, 남만병이 크게 어 지럽다. 조운이 곧바로 중군으로 쳐들어가, 마침 금환삼결 원수와 마주친다. 겨우 1합을 싸워, 조운이 그를 창으로 찔러 말 아래 떨구고, 그 잘린 머리를 높이 매단다. 나머지 병사는 무너져 흩어진다. 위연이 병력을 반으로 나눠, 동쪽으로 동도나의 영채를 치러 간다. 조운도 병력을 반으로 나눠, 서쪽으로 아회남의 영채를 치러 간다. 남만병의 대채로 쳐들어갔을 때, 하늘이 이미 밝아온다.
앞서 말했듯이, 위연이 동도나의 영채로 쳐들어가니, 동도나가 ‘뒷쪽에서 어떤 군대가 쳐들온다’고 듣고, 병력을 이끌고 적병을 막으러 영채를 나온다. 갑자기 영채 앞쪽 문에서 함성이 한바탕 일며, 남만병이 크게 어지럽다. 알고보니, 왕평의 군마가 일찌감치 왔다. 양쪽에 서 협공하자, 남만병이 대패한다. 동도나가 길을 뚫고 탈주하나, 위연이 추격하지 못한다. 한편, 조운이 병력을 이끌고 아회남의 영채 뒤 로 쇄도할 때, 마충도 이미 영채 앞으로 쇄도했다. 양쪽에서 협공하자, 남만병이 대패하고, 아회남은 어지러운 틈에 탈주한다. 제각가 군 사를 거둬 되돌아가, 공명을 만나니, 공명이 묻는다.
“세 고을의 남만병 중에서 두 고을의 우두머리가 달아났다는데, 금환삼결 원수의 수급(잘린 머리)은 어디 있소?”
조운이 그의 수급을 바친다. 모두 말한다.
“동도나와 아회남이 모두 말을 버리고, 고개를 넘어 달아나는 바람에, 추격하지 못했습니다.”
공명이 크게 웃는다.
“두 사람도 내가 이미 잡았소.”
조운, 위연과 장수들 모두 믿지 않는다.
잠시 뒤, 장의가 동도나를 결박해 오고, 장익도 아회남을 결박해 온다. 공명이 말한다.
“내가 여개의 도본을 살펴보고, 그들 제각기 채자(방책/ 울타리/ 영채)를 가진 것을 알았소. 우선 자룡과 문장의 날카로운 기세를 돋구 어, 중지重地(중요한 곳)를 깊숙히 쳐들어가게 만들어, 먼저 금환삼결을 깨게 했소. 곧이어 병력을 나눠, 좌우 영채 뒷쪽을 치고, 왕평과 마충으로 돕게 하였소. 자룡과 문장이 이 일을 못 맡아서가 아니었소. 내가 헤아리니, 동도나와 아회남은 반드시 산속 지름길로 달아나 겠기에, 장의와 장익을 보내, 매복해 기다리고, 관색도 병력을 이끌고 도우라 하여, 이 두 사람을 사로잡았소.”
장수들 모두 탄복한다.
“승상의 기산機算(기지와 꾀)은 귀신도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공명이 영을 내려, 동도나와 아회남을 장막 안으로 끌고와, 포박을 모두 풀고, 술과 음식과 옷을 내린다. 각자의 고을로 돌아가. 다시는 악인을 돕지 말라고 한다. 두 사람이 눈물 흘리며 절하고, 제각기 샛길로 떠난다.
공명이 장수들에게 이른다.
“내일 맹획이 반드시 스스로 병력을 이끌고 싸울 것이니, 이 기회에 잡아야겠소.”
조운과 위연을 불러 계책을 주고, 각자 5천 병력을 이끌고 가도록 한다. 다시 왕평과 관색을 불러, 함께 한 무리 군을 이끌고, 계책을 받아 떠나게 한다. 공명이 처리를 마치고, 장상에 앉아 기다린다.
한편, 남만왕 맹획이 장막 안에서 정좌하고 있는데, 갑자기 초마(정찰병)가 달려와, ‘세 고을의 원수가 모두 공명에게 잡혀가고, 부하 병 사도 제각각 무너져 달아났다’고 한다. 맹획이 크게 노하여, 곧 남만병을 일으켜 줄줄이 출발시켜, 왕평의 군마와 마주친다. 양쪽이 둥글 게 포진하자, 왕평이 말을 타고 나와, 칼을 비껴들고 바라본다. 문기門旗가 열리며, 남만의 기병 수백이 양쪽으로 전개하고, 가운데에서 맹획이 말을 타고 나온다. 머리는, 보석을 박은 자금紫金(일종의 진귀한 광물)으로 만든 왕관을 쓰고, 몸은 옥돌로 장식한 붉은 비단옷을 걸치고, 허리는 옥돌을 갈아 사자를 아로새긴 띠를 두르고, 발은 매부리처럼 뾰죡한 푸른 신발을 신고, 털이 꼽슬꼽슬한 적토마赤兔 馬를 타고, 소나무 무늬를 새긴 보검 두 자루를 매고, 당당히 관망하더니, 좌우의 남만 장수를 돌아보며 말한다.
“사람들이 늘 제갈량이 용병을 잘한다고 말하던데, 이제 포진한 것을 보니, 깃발들이 잡다하게 어지럽고, 대오도 뒤죽박죽 엉망이오. 창 칼과 기계도 우리를 이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소. 이제야 지난날 들은 것이 틀렸음을 알겠소. 진작에 이것을 알았다면, 나는 오래 전에 반 란했을 것이오. 누가 용감히 촉나라 장수를 잡아, 우리 군위(군대의 위엄)를 떨치겠소?”
말이 미처 끝나기 앞서, 한 장수가 대답하며 나서니, 그 이름 환망아장이다. 한 자루 절두대도를 휘두르며, 황표마黃驃馬(누런 바탕에 흰 점이 박힌 말)를 타고, 왕평에게 달려든다. 두 장수가 창칼을 부딪혀, 몇 합 싸우지 않고, 왕평이 달아난다. 맹획이 병력을 내몰아 크게 진군하니, 줄지어 끊임없이 추격한다. 관색도 조금 싸우다 달아나, 2십 리 남짓 후퇴한다.
맹획이 쫓는데, 갑자기 함성이 크게 일며, 왼쪽은 장의, 오른쪽은 장익이 양쪽에서 병력을 이끌고 튀어나와, 돌아갈 길을 끊는다. 왕평과 관색도 병력을 재빨리 되돌려 온다. 앞뒤에서 협공하자, 남만병이 크게 진다. 맹획이 부장들을 이끌고 죽기살기로 싸워, 탈출에 성공하 여 금대산 쪽으로 달아난다. 등 뒤에서 세 갈래 병력이 추격해 와서, 맹획이 한창 달아나는데, 앞쪽에서 함성이 크게 일며, 1군이 가로막는다. 선두의 대장은 바로 상산 조자룡이다. 맹획이 그를 보고 크게 놀라, 황망히 금대산의 샛길로 달아난다. 자룡이 한 바탕 돌 격하자, 남만 병력이 크게 져, 사로잡힌 이가 무수하다.
맹획이 겨우 수십 기와 더불어, 산골짜기로 들어가는데, 등 뒤에서 추격병이 바짝 따라붙는다. 앞쪽은 길이 좁아, 말이 갈 수 없어, 말을 버리고, 산을 기어올라 고개를 넘어 달아난다. 갑자기 산골짜기에서 한 바탕 북소리 울리니, 바로 위연이 공명의 계책을 받아, 보군(보병 ) 5백을 거느려, 이곳에 매복한 것이다. 맹획이 맞서지 못하여, 위연에게 사로잡힌다. 따르던 기병도 모두 항복한다. 위연이 맹획을 대채 까지 압송하여, 공명을 만난다. 공명이 벌써 소와 양을 도살하여, 영채에 술자리를 차렸다. 장막 안에 일곱 겹으로 병사들을 배치하여, 각 각 창칼을 들게 하니, 눈과 서리처럼 하얗게 빛난다. 또한 천자가 내린 황금 월부(지휘권을 상징하는 도끼)와 곡병산개(자루가 휘어진 햇빛가리개)를 들었다. 앞뒤에 우보羽葆(깃털로 장식한 햇빛가리개)를 세우고,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좌우에 어림군御林軍(천자와 서울을 지키는 군대)을 늘여 세우니, 더할 수 없이 엄정하게 포진했다. 공명은 장상에 단좌했는데, 남만병들이 소란스럽게 무수하게 압송돼 오는 것이 보인다. 공명이 군막 안으로 불러들여, 모조리 포박을 풀어주고 타이른다.
“그대들은 모두 좋은 백성인데, 불행히 맹획에게 붙잡혀, 이제 두려움에 떨고 있소. 내 생각에, 그대들 부모, 형제, 처자가 문에 기대어 기 다릴 것인데, 이렇게 패전한 것을 들으면, 틀림없이 배가 찢어지고 창자가 꼬이는 듯하며, 피눈물을 흘릴 것이오. 내 이제 모두를 풀어주 고 돌려보내, 각자의 부모, 형제, 처자를 안심시키겠소.”
말을 마치고, 각자에게 술과 식량을 주며 풀어준다. 남만병들이 은혜에 깊이 감격하여, 눈물 흘리며 절을 올리고 떠난다.
공명이 무사들에게, 맹획을 끌고 오라고 시킨다. 오래지 않아, 그를 앞뒤로 에워싸고, 군막 앞으로 묶어 온다. 맹획이 군막 아래 무릎꿇는 다. 공명이 말한다.
“선제께서 너를 박대하지 않았거늘, 어째서 감히 배반했냐?”
“양천의 땅은 모두 타인이 점유하던 토지인데, 네 주인이 힘으로 빼앗아, 자칭 황제가 됐다. 나는 대대로 이곳에서 살았는데, 너희가 무 례하게 내 토지를 침범한 것이다. 이것이 어째서 배반이냐?”
“내가 이제 너를 잡았으니, 심복心服(마음속으로 순종)하지 않겠냐?”
“산이 외지고 길이 좁은 곳에서, 네 계략에 빠진 것인데, 어찌 기꺼이 복종하겠냐!”
“네가 복종하지 못하겠다니, 내 너를 풀어준다면 어떻겠냐?”
“나를 돌려보내면, 군마를 다시 정돈해, 함께 자웅을 겨루겠다. 다시 사로잡으면, 비로소 복종하겠다.”
공명이 즉시, 그를 묶은 줄을 풀어주라 명한다. 의복을 줘서 입히고, 술과 밥을 내리고, 안장을 얹은 말을 준다. 사람을 시켜 길까지 배웅 하니, 맹획이 곧바로 자신의 본채(본진/ 본부 영채)로 떠난다.
도적이 손아귀에 들어온 것을 다시 풀어 보내네
사람들이 외진 곳에 살며 아직 항복할 마음이 없구나
다시 싸우러 와서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